'아버지'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15.02.03 『남자의 자리』 - 나는 아버지의 시간을 모른다
  2. 2014.11.20 《밤은 고요하리라》 - 아들아, 나는
  3. 2014.11.06 《소금》 - 아버지, 맛 좀 보세요
  4. 2014.08.01 《딸에게 힘이 되는 아빠의 직장 생활 안내서》 - 아버지의 마음
  5. 2009.10.08 가슴을 울리는 낡은 사진관 - <고향사진관> (2)
  6. 2009.06.01 해남 가는 길: 고3 아들과 쉰 살 아버지가 함께한 9일간의 도보여행
  7. 2009.05.11 아버지의 날개: 위기의 중년 가장을 위한 응원 메세지

『남자의 자리』 - 나는 아버지의 시간을 모른다

 

 


아니 에르노 | 『남자의 자리』 | 열린책들 | 2012


영화 ‘국제시장’의 아버지를 떠올려본다. 윤덕수(황정민)는 피난길에 잃어버린 아버지와 여동생을 기억하며 스스로 가장이 된다. 그는 홀로된 어머니와 동생들을 보살핀다. 그게 자신의 의무라 여긴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학업도 포기한다. 남동생의 학비를 벌기 위해 파독 광부에 지원하고 여동생의 결혼 자금을 위해 베트남에 간다. 가족을 위해 희생한 그에게 남은 건 장애가 난 한쪽 다리와 계속 돌봐야 하는 가족뿐이다. 이러한 삶이 당연한 거라 믿으며 그는 의지를 꺾지 않는다. 시간이 흘렀고 그도 늙었다. 자녀들은 자라서 가정을 꾸렸고, 그에겐 손자들도 생겼다. 하지만 가족들은 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시장통의 오래된 가게를 왜 끌어안고 사는지, 왜 오래전 시간을 붙잡고 놓지 않는지를.

아니 에르노가 『남자의 자리』를 통해 아버지의 삶을 되짚으며 말한 것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녀의 고백 같은 아버지 이야기는 내가 알고 있는 주변의 아버지, 보편적인 개념의 아버지였다. 가족을 위해 애쓰면서도 애정을 쉽게 표현하지 못하는 무뚝뚝함, 점점 자신의 영역이 좁아지고 자녀가 자라면서 거리감이 생기는 순서까지 똑같았다. 저자는 그런 아버지가 죽고 나서 그를 기억하며 아버지의 역사를 적었다. 어떤 감정보다 지극히 객관적인 순서의 기록이었다. 작가가 직접 보지 못한 아버지의 모습까지 적을 수 있었던 건, 아버지의 어릴 적 이야기를 들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아버지와 딸 사이가 어떤 교감으로 이루어졌을 한때의 시간이 준 기억. 아버지가, 아버지가 된 순간부터 봐 왔던 모습. 늙어가던 아버지의 생활과 점점 이해할 수 없는 시간이 쌓이는 서로의 삶. 그렇게 아버지의 크기가 달라져 갔다.

이 무렵, 그는 벌컥 화내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증오감에 입가에 뒤틀릴 정도로 심하게 화를 냈다. 나는 어머니와 어떤 공모 의식으로 맺어지고 있었다. 달마다 찾아오는 복통, 골라야 할 브래지어, 화장품 같은 것들을 통해서였다. (…) 우리에겐 그가 필요 없었다. (91쪽)

투병생활을 하던 아버지는 조금씩 달라졌다. 얼핏 추측하기에 육체의 노쇠함보다 정신적인 피폐함이 더 삶을 짓눌렀을 듯하다. ‘나는 이제 상자 하나도 제대로 들지 못해.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가족들에게 어떤 권력도 행사할 수 없어. 나는 혼자야…… 그에 반해 자식들은 점점 자라 다른 세계로 편입하고 세상을 알게 되어 자주적으로 살아간다. 아버지는 관심 혹은 간섭의 기회까지 사라진 영역을 오롯이 혼자 지킨다. 늙고 나약해져, 그만의 세계를 산다.

픽션을 거부하는 그녀의 글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으로 써지고 있지만, 그 개인적인 경험이 그녀만의 기억은 아닌 것 같다. 애틋했던 부모와 자녀 사이도 시간이 흐르면서 무덤덤하고 건조해진다. 살아가는 방식과 시간이 달라 서로 얼굴을 보기도 힘들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늘어나고 벽이 쌓인다. 보통의 가족이 이런 시간을 거친다. 내가 알고 있는 주변의 아버지와 자식들 사이의 모습이다.

나도 다르지 않았다. 아니, 아버지와 나 사이는 그 '보편적'인 범주에조차 속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게 맞겠다. 아버지와는 대화다운 대화를 해본 기억이 없다. 대화로 시작된 말은 싸움으로 끝나기 일쑤였다. 자동으로 차단되는 마음. 서로에게 타인이 되어 살아가는 게 자연스러운, 아버지와 나 사이에 '우리'라는 표현은 없다. 아버지에 관한 이러한 책은 나에게 늘 넘어야 할 거대한 산으로 자리한다. 보편성을 이해하기 위해, 내가 모르는 시간을 알기 위해 부딪혀야만 하는 전쟁 같은 도전이다. 나는 아버지의 시간을 모른다. 그가 어떤 시간을 통과해 어른이 되었고, 어떤 마음으로 부모가 되었으며, 어떤 바람으로 늙어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나는 아니 에르노가 하는 말들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시간을 그녀의 글을 통해, '이런 걸 어떻게 알고 있지?' 하는 물음표를 띄우며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 사이에 오갔을 대화를 그려봤다. 아버지의 유년기를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듣고 있을 딸의 눈빛, 몰랐던 시간이 오고 가며 쌓였을 애틋함과 이해, 아직 멀어지기 전인 부녀의 관계. 나는 바람 같은 시선을 던지며 이 짧은 소설을 꾸역꾸역 삼켰다.

아버지가 화두가 되는 이야기 앞에서 나는 늘 답답하다. 애써 피해가고 싶고, 쉽게 건너가지 못하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다행이었던 건, 그녀가 이 글을 참 담담하게 썼다는 점이다. 감정의 파도가 지극히 일렁일 것 같은 사건 앞에서도 아니 에르노는 기록 의무자처럼 객관적이다. 이게 가능할까 싶지만, 그래야 쓸 수 있었던 그녀의 마음이 보이는 듯하다. 기억, 정리, 기록이 차례차례 가능해지는 순간에 비로소 찾아오는 안도감과 같이. 언젠가 나의 아버지를 더는 볼 수 없는 시간이 오면 나도 이런 기록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지 않고서는 내 가슴속 말, 이해, 정리를 만날 수 없을 것 같다.

그를 멸시한 세계에 내가 속하게 되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그의 가장 큰 자부심이요, 심지어는 그의 삶의 이유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1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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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과 서평을 나누고자 반디앤루니스 '오늘의 책'을 펜벗과 함께 만들어 갑니다.
펜벗이란 서평을 쓰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를 의미합니다.
매주 월요일, 성실한 서평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2월의 펜벗 서평 주제는 '그 남자, 그 여자'입니다.


| 펜벗 일문일답

● ‘그 남자’를 아버지로 생각한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이 책을 읽는 것이 '전쟁 같은 도전'이라고 했는데, 전쟁을 마치고서 아버지의 거대한 산은 좀 작아 보이던가요?

‘그 남자’를 주제로 여러 책의 주인공을 떠올려 봤는데 연인 같은 남자가 많더라고요. 그 많은 남자 사람을 뒤로하고, 언젠가 한번은 마음 다잡고 덤벼 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책이 아니 에르노의 『남자의 자리』였어요. 펜벗 주제가 아니었더라면, 이 책을 다시 책장 구석에 넣어둘 것만 같아서요. 아버지를 소재로 한 영화나 책은 늘, 저를 힘들게 하거든요. 가까이 가기 위해 아주 노력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늘 제자리에 서 있다가 되돌아가곤 합니다. 평소의 저라면 그런 경우 관계 유지를 포기하는데, 가족이라는 이유로 그 단절이 ‘단절’이 되지 않더군요. 이 책을 읽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아, 그 거대한 산이 이제는 작아 보이냐고 물으셨죠? 아니요. 작아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마지막에 어떤 모습으로 서로 마주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힘들어도 다시 산에 오르자 다짐하고 언젠가 또 이런 이야기를 선택할 것 같아요.

● 평소 다양한 장르를 신중하게 소화하는 캔맥주 님의 모습을 보고 노력하는 ‘다독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책은 언제부터 즐겨 읽으셨어요?


저 정말 책을 안 읽고 사는 대한민국 사람이었거든요. 대학에 다닐 때도 전공 서적 외 책을 읽어본 적이 거의 없다고 말하면, 지금 제 주변의 책 지인들이 놀라시더라고요. ‘정말?’ 하면서요. 네, 정말요. ^^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는데, 책을 즐기기 시작한 건 한 5년쯤 된 것 같아요. 우연히 모교 구내서점에 갔다가 『냉정과 열정 사이』를 잠깐 읽었는데요. 서서 읽다 보니 재미있어서 바로 사 들고 나왔어요. 그때부터였어요.
지금도 저는 책을 편식하고 많이 읽지도 못하지만, 책을 옆에 두고 늙어가고 싶은 소박한 바람이 있어요.


● 요즘은 무슨 책을 읽고 계세요?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와 하이타니 겐지로의 『상냥하게 살기』를 같이 읽고 있어요. 내키는 대로 두 책 중 손에 잡히는 책을 읽고 있는데요. 『스토너』는 한 남자의 평범한 일생을 담았어요. 심심한 듯 들릴 수 있는데, 오히려 그의 평범한 삶이 너무 와 닿아요. 이 책의 홍보 문구에서 ‘사는 모습은 달라도, 우리는 누구나 스토너다.’라고 하는데요, 딱 그거였어요. 우리 사는 모습과 너무 닮았어요. 그래서 뭉클하게 공감하게 돼요. 『상냥하게 살기』는 하이타니 겐지로가 사십 대에 발표한 육십사 개의 산문집이에요. 나중에 그가 아와지 섬으로 이주한 후의 일상도 들려주는데, 진지하면서 재미있어요. 문득, 하이타니 겐지로가 좀 엉뚱한 아저씨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제가 학교 다닐 때 이런 선생님을 만났다면 조금은 즐거운 학창 시절을 보내지 않았을까 상상해 보게 돼요.


● ‘펜벗’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펜벗에 선정되고 나서 궁금했어요. 매달 어떤 주제로 새로움을 줄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처음부터 선정된 주제가 저의 기대만큼 새롭거나 신선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말이죠. 그게 반전이었어요. ‘처음’, ‘겨울’, ‘그 남자 그 여자’ 이런 주제가 어떤 책을 떠올리는데 상당한 고민과 관심을 두게 하더라고요. 어떤 책을 골라 볼지 이렇게 많이 고민해본 적이 정말 오랜만이에요. 어떻게 보면 참 평범한 주제일 수 있잖아요. 일상에서 늘 떠올릴 수 있는 주제인데, 이 평범함이 비범함을 만들고 있었어요. 책에 대한 느낌과 의미가 달라지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의 펜벗이 좋아요.
굳이 소박하게 바라는 점 한 가지라도 말해보라면, 펜벗의 주제가 조금 더 친근해져도 좋을 듯해요. 예를 들어, ‘이 주인공만 보면 욕이 나온다.’ 같은 주제요. ^^


오늘의 책을 리뷰한 '캔맥주'님은?

책을 좋아하고 싶어서, 책을 읽어요. 내일도 그럴 수 있기를 바라면서, 오늘도 한 페이지를 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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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고요하리라》 - 아들아, 나는

 

 

로맹 가리 | 《밤은 고요하리라》 | 마음산책 | 2014

 

로맹가리의 삶은 보편적인 삶에 비춰 봤을 때 그 출발점부터 남달랐다. 그의 삶은 시작부터 이기심이 아닌 이타심에서 출발했다. 어려서부터 그는 어머니의 ‘해피엔드’가 되어야 했다. 부모 대부분이 양육 과정에서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자식에게 투영하여 대리만족 하기를 원한다. 그 과정 중에 포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로맹가리는 스스로 어머니의 이상향이 되려고 노력했다. 어머니가 슬퍼할 때 그는 어머니가 좋아하는 행동(창문 밖의 높은 곳을 큰 눈망울로 응시했다)을 취했다. 그는 어머니의 삶을 이해하고, 그 삶을 위로하고 감싸 안으려 했다. 배려의 마음이 자라나 열린 열매가 그의 작품이다.

 

첫 작품인 《유럽의 교육》부터 마지막 작품인 《연》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은 모두 이타심이라는 하나의 고리로 연결돼 있다. 그가 글쓰기에서 자아의 검열과 개입을 극도로 꺼려했던 이유도 바로 '이타심'이다.

 

1945년에 내 삶 가운데 하나가 끝났고 다른 삶이 시작되었네. 계속해서 또 다른 삶이, 매번 사랑할 때마다 새로운 삶이 시작되고, 자네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면 자네의 새 삶이 시작되는 것이고, 우리는 과거에 죽지 않네. 이것이 얼마나 지극한 사실인지 내겐 내 '자아'만으로 충분하지 않네. 이 결핍이 나를 소설가로 만들었고, 나는 다른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소설을 쓰지. (153~154쪽)

 

내가 소설을 시작하는 건 내가 있지 않은 곳으로 달려가기 위해서고,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러 가기 위해서고, 나를 떠나 다른 육체에 깃들기 위해서네. (221쪽)

 

그는 자기 작품을 자신의 소산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밤은 고요하리라》에서 스스로 밝힌 바와 같이 그의 글은 박애의 산물이다. 환한 대낮이 드러내는 모든 경계를 어둠으로 덮어서 경계를 무한대로 확장시키는 밤처럼 그는 자신의 글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사람과 자연을, 사람과 우주를 연결하는 열린 공간이기를 꿈꿨다.

 

그의 죽음의 열쇠를 지닌 《밤은 고요하리라》는 《새벽의 약속》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새벽의 약속》이 그의 어머니를 기리는 책이라면, 《밤은 고요하리라》는 그의 아들을 위한 작품이다. 로맹가리의 유년시절은 보편성의 기준으로는 불우했으나, 그가 느낀 자신의 삶은 언제나 어머니라는 빛으로 채워진 밝은 세상이었다. 태양빛이 식물을 길러내고 곡식과 열매를 익히는 과정처럼 그는 그 자신을 길러낸 빛이 어머니였다고, 그 안에서 행복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어느 날 자신 앞에서 위축된 열세 살 아들을 보면서, 그는 '박애'를 위한 변신을 하기에 아들을 위한 시간이 부족하단 사실을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다른 이유란 없어. 무엇보다 나한텐 너무 어린 아들이 하나 있네. 녀석이 나를 만나기엔, 내가 이 모든 것을 말하기엔 너무 어려. 그 녀석이 이해할 수 있을 때가 되면 나는 여기 없겠지. (…) 녀석이 이해할 수 있을 때 이 모든 걸 말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내가 없을 거란 말이네. (…) 그래서 이 자리에서 그 녀석에게 말하는 거네. 녀석이 나중에 읽을 테지. (11쪽)

 

《밤은 고요하리라》는 로맹가리의 인식의 경계선에 놓인 작품이다. 이 작품 이후로도 《솔로몬 왕의 고뇌》와 《연》이 출간되었지만, 이 작품을 기점으로 그는 아들의 성년을 준비했던 것으로 보인다.

 

로맹가리는 이 책을 그 누구도 아닌 아들이 읽기를 바랐을 것이다. 어머니가 인슐린 쇼크로 수없이 죽음의 위기를 넘기면서도 그는 어린 자식을 위해 하루에도 수십 차례 계단을 오르내리고, 그의 최후 마지막까지 참전 중인 아들에게 전해질 수년 분량의 편지를 썼다. 매일 일곱 시간씩 규칙적으로 글을 쓰던 그가 결전의 날을 앞두었을 때 구상중인 작품이 없었다는 그의 아들의 증언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는 아들이 살아갈 삶에 무언가가 따스한 온기로 남기를 바랐다. 《밤은 고요하리라》는 로맹가리의 부정이 낳은 작품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액션가면'님은?

책을 통해 삶을 배우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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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 아버지, 맛 좀 보세요

 

 

박범신 | 《소금》 | 한겨레출판 | 2013

 

인생을 소금에 비유할 때도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짠맛에 공감했다. 그랬는데, 소금에 짠맛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단맛, 신맛, 쓴맛, 그리고 매운맛까지. 인생도 그렇게 맛으로 딱딱 구분할 수 있을까. 물론 할 수는 있겠지만 《소금》의 아버지들만큼 그 맛이 깊지는 못할 것 같다.

 

사람들은 단맛에서 일반적으로 위로와 사랑을 느껴. 가볍지. 그에 비해 신맛은 나에게 시비를 거는 것 같고, 짠맛은 뭐라고 할까, 옹골찬 균형이 떠올라. 내 느낌이 그렇다는 거야. 쓴맛은 그럼 뭐냐, 쓴맛은 어둠이라 할 수 있겠지. (133쪽)

 

《소금》에는 다양한 아버지 상이 나온다. 흔히 ‘아버지’라고 불리는 평범한 아버지들의 모습이 아니다. 처자식을 두고 가출한 아버지, 자식들을 남기고 무책임하게 죽은 아버지, 자살한 아버지, 술에 절어 폭언을 일삼는 아버지, 가족을 버린 아버지, 그리고 임신한 아이를 두고 책임을 회피하며 죽어도 아버지는 되지 않을 거라 못을 박는 아버지까지. 윤리적 잣대로 판단하자면 그들이 비겁하고 무책임해 보이지만, 그들의 우울, 고통과 고뇌가 이해 못 할 것도 아니지 싶다.

 

'선명우'라는 남자가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집을 나와 다른 인생을 사는 남자. 처자식이 있지만 한 번도 자신의 이름을 가져 보지 않은 남자. 어려서부터 출세하여 가족을 책임져야 했고, 커서는 가족의 바람막이가 되어 자신을 버리고 살아야 했던 남자. 가족을 지키기 위해 꿈도 버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가슴속에 묻어야 했던, 조직에선 큰 소리 한 번 내본 적 없이 평생 희생만 한 것 같은데 막상 돌아온 건 시한부 선고. 그는 이미 존재감을 상실한 옛날의 아버지로 돌아갈 수 없었다. 차라리 사지 마비 환자의 뒤치다꺼리가 편했다. 피를 나누지 않았어도 ‘가족’이라는 이름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사람들과 정을 나누며 인간 선명우로 다시 태어났는지도 모르겠다.

 

편안한 집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돈도 풍족하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그에겐 그의 부재를 걱정하는 새로운 가족이 있었다. 인생의 달콤함은 물질적 풍요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선명우는 새로운 가족을 만나 마음 가는 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느꼈다. 흐르니까 강인지, 강이라서 흐르는 건지 모르겠지만, 흐르면서 머물고 머물면서 흐르는 삶. 날마다 고통스러워도 날마다 황홀할 수 있는 이유다.
나의 아버지를 떠올려 봤다. 그리고 주변의 모든 아버지들을 생각해 봤다. 평소 아버지에게 아버지의 역할을 강조하고 기대어 살고 있지는 않았던지. 책임이라는 무거운 짐은 고스란히 아버지의 인생이 된다. 자유를 찾고 자연으로 돌아가 다시 태어난 선명우에게 당신의 가출이 한 가족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한 가족이 어떻게 파탄이 났는지 단죄하며 물을 자신이 없다.

 

선명우의 다양한 인생의 맛을 몰랐을 때 나도 그에게 화가 났다. 어떻게 그렇게 무책임할 수 있느냐고 따지고 싶었다. 아무리 힘들었어도 가족을 버리는 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한 가정을 그렇게 만든 건 인정하기 싫겠지만, 어디까지나 당신의 잘못이라고. 한 가정에서 아버지의 부재는 과연 누구의 책임일까. 좀 더 일찍 서로의 존재를 알아차려 줬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어쩌면 그 안에 자신이 바라는 가족의 모습, 사회의 모습이 있지 않을까.

 

소금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을 때 삶은 비로소 제자리를 찾아갈지도 모르겠다. 기쁠 때 기뻐할 줄 알고 슬플 때 진정으로 슬퍼할 수 있을 때 짠맛이 단맛이 되고, 신맛이 되고 어떨 때는 매운맛도 되었다가 쓴맛도 되는 거겠지. 희로애락이 소금의 다양한 맛에 녹아든다. '세상이 잘못돼 있으면 어떤 애비들 또한 비뚤어질 수밖에 없다'는 저자의 말이 다시 한 번 마음을 아프게 긁는다.

 

좋은 소금은 사람을 살린다는 말을 가슴에 새겨본다. 다시 태어난 선명우는 남들이 알아주지 않을지 모르지만, 좋은 소금을 만드는데 혼신을 다한다. 그만큼 자신을 찾고자 했던 노력이 아닐지 생각한다. 이제 편안한 삶을 살기 위해 존재하는 '아버지'가 아니라 어엿한 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그들의 이름을 돌려줘야 한다.

 

오늘도 아이와 함께 남편의 귀가를 기다린다. 누군가의 보호가 절실히 필요했던 어릴 적 그때나 한 가정을 이룬 지금이나 나에게도 아버지는 늘 있었으면 좋겠다. 무엇을 바랄 수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아버지’의 존재가 좋다. 저자가 진정으로 바라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 존재에 감사할 수 있도록.

 

오늘의 책을 리뷰한 '녹색 도마도'님은?

한 아이의 엄마입니다. 아이가 책을 무척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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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힘이 되는 아빠의 직장 생활 안내서》 - 아버지의 마음

 

김화동 | 《딸에게 힘이 되는 아빠의 직장 생활 안내서》 | 민음인 | 2013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는 책사기가 조금 망설여졌다. 아들에게 줄 책인데 ‘딸에게 힘이 되는’이라는 표현이 아무래도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만 생각하니 이것은 딸뿐만 아니라 모든 자식에게 부모가 들려주고픈 유익한 사회생활 이야기일 것이라고 판단되었고 두말없이 책을 샀다. 이전에 읽은 필립체스터필드의 《내 아들아 너는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와 유사하다는 첫인상을 받았지만, 시대와 지역이 전혀 다르기에 책 내용이 궁금해 아들에게 주지 않고 내가 먼저 단숨에 읽어버렸다.

 

짐작했듯이 저자는 아버지로서, 평범한 수준의 둘째 딸에게 이전에 미리 알려준 직장생활을 위한 일반적 수칙들을 더욱 구체화해 서술했다. 본인의 경험과 간접적 경험(다른 책들을 통한)을 더해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그 내용을 풍부하게 확장시켰다. 저자는 삶에서 겪은 성공과 실패한 경우를 반추하면서 이를 공통적인 직장생활용 지침서로 엮어냈다.

 

책에는 대학 졸업 후 직장생활 초년생에 막 접어든 자식에게 아버지로서의 기대와 우려가 섞여 있다. 장성한 자식을 가진 나로서도 읽어보니 상당히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서, 일찍이 내게 이와 같은 가르침을 부모 또는 선배가 알려주고 지도해 주었으면 참 좋았을 것이라고 느꼈다. 우선 내가 읽고 나서 아들에게 권했는데, 깊이 있게 읽은 후 직장생활에서 실제로 원칙을 실천하면서 멋지고 행복하게 자기 삶을 꾸려나가길 기대하는 마음이었고, 이는 저자가 책을 쓴 이유와도 같을 것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마치 성경의 십계명과 같이 18계명으로 구성되었다. 첫 번째 계명을 ‘생각과 계획에 집중하라’로 시작하면서 매사 계획수립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마지막인 18번째 계명은 ‘당장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주장인데,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해야 하며 남의 눈을 의식하지 말고 일에 몰두하라는 것이다. 주어진 일의 귀중함을 알고 조직에 기여하는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온 힘을 다 바치라면서 끝을 맺는다.

 

저자는 모든 조직 내에서 이뤄지는 실상을 30년간의 공직생활 경험에 비추어 나름대로 원칙으로서 잘 정리하였다. 초임자뿐 아니라 상당기간 조직생활을 한 사람도 이 책을 통해 스스로 반성하고 개선해 나가는 계기를 만들기에 유용성이 돋보인다. 사실 처세술에 관한 책은 이미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자식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가진 부모로서, 인생의 대선배로서, 직장 상사의 입장에서 상세하게 기본 원칙들을 이리 친절히 알려주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인간관계나 소통, 더불어 자기 사랑에 바탕을 둔 구체적 사례들을 제시해 우리 사회가 함께 성숙하고 건강해지길 바라는 저자의 마음이 엿보인다.

 

실은 나도 저자와 같이 내 인생의 공과를 정리해보고 자식에게 유익한 가르침을 전해주고 싶지만, 나의 삶이 그다지 모범적이지도 성공적이지도 않기에 다만 이 책을 보고 맞장구를 치면서 내심 대리만족을 했다. 혹시 사회생활의 실패사례로서의 교훈이나 교사 역할을 후배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필요성이 대두한다면 나도 이 같은 책을 써볼 엄두를 낼 것이다. 여하튼 이렇게 자신의 실제 삶에서 우러나온 사회생활의 원칙들을 책으로 펴낸 저자의 용기와 노력에 칭찬을 금치 못한다.

 

조직 내에서 일에 임하는 직장인의 마음가짐으로서 여유, 친절, 미소, 겸손, 예의, 팀워크 등 미덕과 독서, 창의력을 열거하고 있는데, 사실상 이 주제들은 새로운 것은 아니고 누구나 공통으로 그 중요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저자도 실감하였던바 꼭 지켜야 할 계명에 포함한 것으로 보인다. 역설적으로 이들은 그만큼 실천하기가 어렵다. 만약 제대로 시행한다면 기대 이상의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으리라 예상된다.

 

한편으로 이 책은 딸에 대한 충고와 조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저자의 이제껏 삶을 분석하고 정리한 결과이며 미래에 대한 조망이라고 볼 수 있다. 저자가 제시한 18개 항목을 재차 숙고해보면서, 자신의 성공과 실패, 시행착오과정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인생 후반부의 출발을 알차게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나와 비슷한 연배에 처한 저자의 상황을 유추해 본 개인적 견해이다.

 

반면 젊은이가 과거의 좁은 한계를 벗어나 자신의 인생을 개척함에 있어 너무 이 책의 가르침에만 의지해서도 안 된다. 물론 불필요한 시간 낭비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삶의 방향 설정과정에 이 원칙들을 참고할 수 있겠지만, 크게 의존치 말고 실패도 두려워하지 말기를 바란다. 인생선배들의 고정관념과 선입견에 의해 자기 자신을 구속하지 말고, 새롭게 자신만의 길을 열어나가는 것 또한 인생의 묘미가 아닐까.

 

이 책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을 느꼈다면, 직장생활 숙달에 요구되는 기법의 서술에 다소 치우쳤다는 점이다. 우리 삶의 근본 목적과 사회화 과정에 대한 깊은 철학적 사고, 우리 사회의 성숙한 어른으로서의 관점과 지도력에 대한 언급이 부족하지 않았나. 부모에서 자식으로 이어지고 다시 그 후손으로 이어지는 우리 인간 삶의 연속 선상에서 기법과 처세술보다는 영성과 지혜가 깃든 가치전수를 기대했었다.

 

그러나 복잡다단한 현실 속에서 인생을 직접 몸으로 겪어본 기성세대가 다양한 가능성을 가진 차세대에게 이만큼 구체적인 삶과 경험의 이야기를 통해 마음에 와 닿게 한 예도 찾기  힘들므로 어느 세대를 막론하고 모두 한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기성세대도 자기가 과연 올바른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지 반문해보자. 성공적인 삶을 위해서 어떤 노력이 요구되는지 반성해 보는 좋은 생각 거리를 제공해줄 것이다.

 

저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고 이해하기 쉽게 기술하여 누구나 읽기 부담 없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지만, 한번 읽어보고 바로 실천에 옮겨 익힐 수 없는 내용이기에 곁에 두고 자주 보면서 적극적으로 적용하려는 노력이 저자가 의도하는 바다.  또 이렇게 해야만 원하는 직장생활의 성공을 확실히 걸머질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yijinmok'님은?

감리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이제 은퇴가 멀지않은 건축 엔지니어입니다. 독서하기를 좋아해서 이전에는 건축공학 위주로 책을 보았지만 근래에 와서 인문학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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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울리는 낡은 사진관 - <고향사진관>

 

김정현, <고향사진관>, 은행나무, 2008


읽는 내내 가슴 한켠이 저릿하고 무겁기만 하더니 종내에는 눈 자락을 붉게 물들어 버렸다. 너도 나도 제 몸 살피기에 급급한 시절에 당최 이런 사람이 있다니? 마음으로 보고도 머리로는 온전히 믿기 힘든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이야기에 절로 숙연해 지게 한다.

무엇으로 그의 삶을 논할 수 있을까? 놓아 버리고 싶을 만큼 힘들었을 세월이 글로나마 이렇듯 아리고 시린데 어찌 무엇으로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 싶다. 몇 번을 들었다 놓았다 했는지 모르겠다. 사실적인 묘사와 섬세한 표현으로 살아 움직이듯 담담히 뿜어내는 감성어린 이야기에 온몸을 내맡기게 되니 말이다.

이 책 <고향 사진관>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저자 김정현의 절친한 벗 故 서용준씨의 이야기다. 그의 아버지가 갑작스런 뇌졸중으로 쓰러져 17년을 몸소 병수발을 해내며 그로 인해 자신의 꿈을 접고 아버지의 곁을 지킨 채 평생을 바친 친구의 한 많은 이야기를 소재로 풀어 놓았다. 저자는 익히 보았던 심금을 울리는 필력에 더 해 애절한 이야기가 포개지니 어지간해서는 눈시울을 붉히지 않고는 못 배겨 나게 한다.

곁에 있어 그 소중함을 잊고 살아가는 산소와 같이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가는 것이 가족이라는 존재, 그런 존재이지 싶다. 허나 그가 걸어온 삶처럼 이 땅의 아들로 장남으로 태어 나 운명처럼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살 수 있을 런지는 자신할 수 없다. 이미 그 자체로서 감당해야 할 커다란 현실이 두렵기만 하고 옹송그려지게 하는 것은 애써 숨기기조차 힘든 비열함의 발로이다. 그러하기에 그의 삶을 존경과 위대함이라는 상투적 의미로 표현하기에는 한참을 못 미치게 하는 진정한 이유에 다르지 않다.

이야기는 용준의 대학입학 즈음을 시작으로 아버지가 갑작스런 뇌출혈로 인한 뇌사상태로 맞은 날벼락 같은 현실로부터 정지한다. 실로 충격과도 같은 무게감이 젊은 용준에게는 감당하기 힘들고 막막하기만 하다. 그러나 그는 다른 형제들이 있건만 장남이라는 허울로 홀로 감내하려 한다. 그러기를 17년. 그 사이 중매를 통해 천사와 같은 희순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 셋을 낳아 키우지만 언제나 그의 중심에는 아버지의 안위만 오롯이 자리 잡고 있다. 신혼여행에서도, 모임에서도, 그의 삶의 나침반은 아버지를 기준으로 회전한다. 더불어 그의 삶을 묵묵히 인정하고 아무런 불평 없이 조용히 함께 해 낸 그의 아내 희순 또한 어지간한 심성으로는 버텨내지 못할 인내의 표본이기에 실로 그 대단함에 무어라 형용할 길이 없다.

그는 변하지 않는 심지 굳은 지극한 효행으로 현실의 고달픈 무게감을 한마디 내색하지도 않은 채, 아버지가 다시금 환한 미소로 화답하여 깨어 날 것이라는 한줄기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는 아버지가 남긴 모든 것을 끝끝내 지키며 아버지가 멈췄던 현실을 온몸으로 감내한다. 그런 희망도 부질없었다. 영원히 눈을 감던 아버지와의 이별에 응어리져 풀지 못했던 그리움은 엉켜 풀리지 못하고 텅 빈 아버지의 빈자리에 맥없이 주저앉아 버리게 한다. 하지만 낡은 사진관속 암실을 위안삼아 그는 그동안 쌓인 울분과 회한의 심정을 마음껏 토해내며 아버지와의 관계를 청산하며 가슴 속 한켠으로 고이 접어 둔다.

훈훈하고 애틋한 사진 바람

이처럼 그의 아픔이 이렇게 끝이 날지라도 걸어 온 삶이 위대하고 숭고해 보일 진데, 그를 뒤덮은 불행의 그림자는 지독한 인연으로 다가온다. 오래도록 그를 짓눌러 오던 자신의 문제에 무시하고 부정하기만 하였던 냉혹한 외면의 현실이 몹쓸 병이 되어 찾아왔기 때문이다. 결국 아무것도 그 어떤 것도 자신을 위해서 한 터럭만큼도 불꽃같은 열정을 펼쳐 보이지 못한 채 허무하리만큼 차디찬 빈껍데기를 가슴에 끌어안고 그렇게 아비가 떠난 길을 따라 흙으로 돌아가는 삶을 살았다. 참으로 눈물 나는 삶이다.

시간을 멈춘 것 같은 옛것을 그대로 간직한 <고향 사진관>의 낡은 사진기를 통해 훈훈하고 애틋한 사진이 바람을 타고 전해오는 것 같다. 사진 속 비워 둔 아버지의 자리에 굵은 눈물로 목이 메게 하고 더 잘 해 주지 못한 불효의 심정에 가슴 져 미게 하는 진정한 가족이라는 사진이 뜨겁게 밀려온다. 그가 보인 가족애의 우직하고 선 굵은 사랑의 진정한 의미는 시대를 초월한 아가페적인 사랑의 남다른 표현이리라.

용준과 그의 아이들이 허름한 사진관 옥상 밤하늘을 보며 별을 헤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게 눈에 밟힌다. 비록 인생의 참맛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역정의 세월에 묻혀 사라져 갔지만 그가 남긴 족적은 이제 더 큰 바람을 타고 사람들의 메마른 가슴을 찾아 텅 빈 영혼을 달래 줄 것이다. 아마도 그는 따스한 훈풍이 되어 또 어디에선가 그의 이야기를 읽고 목메어 눈물짓는 사람들의 마음을 포근히 감싸 줄 런지도 모르겠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동스파파’님은?
책속에서 길을 찾고자 끝없이 시작된 호모부커스를 꿈꾸는 몽상가입니다. 현실은 냉정하고 열정은 침잠하였으나 마음만은 뜨겁게 살고자 오늘을 사는, 어느새 늘어나는 뱃살을 옵션으로 장착한 아주 평범한 회사원입니다. 밥벌이의 지겨움을 책으로 달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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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가는 길: 고3 아들과 쉰 살 아버지가 함께한 9일간의 도보여행

 

송언, <해남 가는 길>, 우리교육, 2009 

‘함께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뼈져리게 느낀 지난 한주였다. 한 사람을 떠나보낸 많은 이들은 슬퍼하고 또 슬퍼했다. 인생이란 긴 길을 걷는 우리에게 ‘동행’이란 어떤 의미일까. 슬플 때 눈물 닦아주고, 힘들 때 어깨를 내어줄 수 있는 동행이 우리에게 있기는 한 것일까. 그때 ‘고3 아들과 쉰 살 아버지가 함께한 9일간의 도보여행’이란 부제를 단 여행 에세이 <해남 가는 길>이 눈에 들어왔다.

<해남 가는 길>은 고3을 눈앞에 둔 아들의 선언으로 시작한다. “아빠, 나 국토순례를 해 볼까 하는데…….” 웬만한 전투보다도 치열하다는 ‘고3 전쟁’을 앞둔 아들의 말에 부모는 지레 걱정부터 앞선다. 시간을 쪼개서 공부를 해도 모자랄 판에 국토순례가 웬말인가. 하지만 부모 자식 간에 감정싸움을 하기 싫은 아버지(저자)는 백기를 든다. 그렇다고 해서 걱정이 멈추는 것은 아니다. 누구와 함께 여행을 할지, 위험하지는 않을지 걱정은 멈추질 않는다. 그 때 아들의 한 마디 “그런 게 아니고, 난 아빠랑 둘이 국토순례를 떠나고 싶어.” 이 말에 아버지는 입가에 미소를 짓게 되고, 부자(父子)의 여행은 시작된다.

여행 한 달 전부터 체력단련도 하고 옷가지도 든든하게 챙겼지만, 12월 31일부터 시작한 여정은 만만치 않다. 한겨울 추위에 찬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등짐은 무겁기만 하다. 거기에 빠르게 달리는 차들이 남긴 세찬 바람은 뼛속 깊숙이 스며든다. 또 길거리에 만난 (로드킬 당한) 수많은 주검들, 나그네들의 여관은 사라지고 연인(?)들의 모텔만 남은 한국의 현실은 속상하기만 하다. 하지만 이들은 걷기를 멈추지 않는다. 왜. 동행이 있기 때문에...

그저 함께 있음

‘해남 가는 길’은 공간적 개념이지만, 시간적 의미가 더 크다. 쉰 살인 아버지와 고등학생인 아들이 9일 동안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함께 보내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길을 걷는 동안 부자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지만, 서로 입을 꾹 다문 채 걷기만 하는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외롭지 않다. 그들은 자신이 마음이 서로에게로 뻗어있다는 것을 어느 순간부터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까 내가 어깨가 끊어질 것처럼 아파서, 배낭 좀 바꿔 메자고 부탁하려고 아빠를 슬쩍 쳐다봤어. 그랬더니 아빠가 나보다 더 힘들어하고 헉헉대는 거야. 그런데 어떻게 배낭을 바꿔 메자고 부탁해. 내가 참고 아빠를 봐준 거라고. 알기는 해?” 나는 고만한 것에 그만 감격했다. “그랬니?” 할 말을 잃었다.(p 34)

이쯤 되면 ‘피 끓는 애정의 결말’을 예상하기 쉽다. 하지만 그들의 길에 사무치는 감동이나 피 끓음은 없다. 하루의 여정이 끝나면 아버지는 9시 뉴스를 보고, 아들은 영어 공부를 한다. 참 멋없는 여관 풍경이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서로를 알아 가는 소중한 시간이 있다. 그 시간을 채운 것은 아버지와 아들의 삶이다. 수덕여관 앞 너럭바위에 새겨진 고암 이응로의 작품, 소리꾼 김창진의 사연 많은 이야기 등, 아들은 아버지의 얘기를 들으며 그의 삶과 가치관을 자연스레 체득한다. 또 아버지는 아들과 소주잔을 비우면서 어느덧 성장한 아들의 무게를 느낀다. 시간이 만들어준 공감이다.

긴 시간 속에 나

전날 내려온 모녀(母女)와 합류해 어머니와 여정의 마지막 날, 네 식구는 KTX를 타고 서울로 돌아간다. 9일 동안 힘들게 내려간 길을 단 몇 시간만에 돌아오면서 아버지는 많은 생각을 한다. 그런데 문득 차창에 비친 아들의 모습에서 자신의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한다. 길과 길이 맞닿아 있듯이 끊임없이 이어질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의 시간. 끝없이 이어진 길에서 한 인간은 작은 존재일 수밖에 없듯, 아버지는 역사의 긴 흐름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겸손한 자세로 자신의 역할을 생각한다. 모든 길을 갈 수도, 모든 것을 쥘 수도 없는 것이 우리가 걷는 길의 법이니까.

평택에서 해남까지 걷는 9일 동안 길 위에서 만난 많은 이들이 부러운 눈길로 이들을 쳐다본다. 서로 시간을 낼 수 있는 여유도, 함께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관계도 부럽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잠시 생각해봤다. 아버지 혹은 가족과 도보 여행을 떠난 적, 아니 단 둘이 떠난 적이 있던가. 특히 도보 여행은 많지 않다. 밤바다가 보고 싶어 무작정 길을 나섰지만 파도 소리만 듣고 새벽녘에 돌아온 제주도의 기억, 멀지 않아 보여 걷기 시작해 5시간 동안 꼬박 걷기만 했던 경포대의 기억이 전부이다.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 긍정적인 대답을 할 수 있는 이는 얼마나 될까. 

책을 덮으며 앞으로 ‘나’의 여정에는 무슨 일이 펼쳐질까 궁금해진다. 가보지 않은 길은 늘 새로운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을 테니까. 바쁜 일상에 여행을 망설이는 나에게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날 것을 권한다. “큰 손해가 아니라면 10분쯤 참는 건 삶의 여유가 아닐까 생각하느니라.”(p 145)

안늘(ak2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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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날개: 위기의 중년 가장을 위한 응원 메세지


 
정우택, <아버지의 날개>, 휴먼드림, 2009


오월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이 있고 어버이날도 있다.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5/21)등 많은 날들이 우리를 기다린다. 오월은 또 결혼이 많은 달이다. 총각 처녀들이 하나의 가정의 가꾸어 나가는 그런 신비로운 달이기도 하다. 장미의 계절!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어느 누가 나를 사랑해줄까? 아내가? 자녀가? 직장의 동료가?  절대 아니다. 내가 나를 미워하는 만큼 그들도 나를 미워한다. 나만 외로운 길, 쓸쓸한 길을 홀로 가야 한다. (p 75)

이 책은 살아가는데 필요한 내용들이 들어 있는 생활백서다. 어찌하면 사회에 잘 적응하고 가정에 잘 적응하여 살아갈 수 있는지 알려준다. 짧은 항목들 중에 필요한 것을 찾아 읽어보면 많은 도움을 준다. 부정적인 글이 아닌 희망을 노래하는 글이다. 자녀는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보는 대로 한다.” 맞아! 어른들은 무단 횡단을 하며 아이에게 횡단보도로 길을 건너라고 하는 것과 같은 말이다. 나는 자녀에게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 부부간에, 가족 간에 서로 사랑하고 아끼는 모습을 보여주면 자녀도 그런 마음을 갖는다. 부모가 돈, 돈하고 다니면 자녀도 돈독이 오른다. 부모가 좋은 학교 타령을 하면 자녀도 학벌병에 걸린다.(p 269)

저자 정우택은 자신도 중년임을 알리며, 일명 ‘삼팔육’, ‘오륙도’의 아버지를 대변하는 글로 그들을 위로하고자 한다. 가족들을 위해 힘들게 살아 왔지만 가족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그분들의 이야기! 그 이야기는 내 부모, 내 신랑, 나의 이야기이다. 서로를 사랑하고 위로하는 그런 따듯함이 새삼 그리워진다. 따사로움 오월, 마음으로부터 전달되어지는 진실한 사랑이 그리워진다.

날개 꺾인 새

<아버지의 날개>. 책 속에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신랑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들어 있다.  내년이면 일흔이신 친정아버지, 쉰 살을 넘어 일명 ‘오륙도’ 세대인 신랑, 마흔을 넘겨 이제 중년소리를 듣는 나, 그렇게 글 속에서 들었던 말들이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로 들려온다. 술을 좋아하시는 아버지 젊은 시절 거의 매일 술로 사셨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그때는 그런 아버지를 원망도 많이 했고 다섯이나 되는 자식들을 버려두고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나버린 엄마를 증오했었다.

무책임한 부모 밑에서 동생들을 거두어야했고 힘들게 공부를 가르쳤다. 내 자신은 뒷전으로 밀린 채. 내게는 남들 다 있는 십대가 없다. 바쁘게 부모의 역할을 대신하며 살아갔기에 사춘기를 몰랐고 이십대의 청춘도 없었다. 그래서 내게는 부모님에 대한 감사나 고마움을 간직할 기회가 부족하다. 내 나이 사십을 넘겨 그 시절 아버지 나이가 되었다. 이제 조금씩 이해를 한다면.

책에 나오는 많은 중년 가장들의 이야기가 가슴에 들어와 나를 울린다. 돈벌이기계로 전락했다고 느끼는 사람들,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가정에서 구박받는 사람들. 그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일까? 다들 바쁘게 살아간다. 공부를 해야 하는 학생들도, 사회생활과 가정을 겸업하여 돌봐야 하는 엄마들도, 한 지붕 아래 살아도 각자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한 지붕, 세 가족’이 많다. 중년의 나이가 되면 남편도 아내도 변한다. 순한 양 같던 아내도 호랑이가 돼버리고, 마냥 친절할 것만 같은 신랑도 잡힌 고기에겐 미끼를 주지 않는다는 말 마냥 불친절하고 독선적으로 변해 간다.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그렇게 흘러간다는 것이다.

연탄불 사랑

많은 부분에 공감이 가지만 그중에서 연탄불 사랑이 더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연탄불은 자신을 태워 주위를 따듯하게 만든다. 자신을 희생하여 주변에 따듯함을 주는 그런 사랑을 배워 보련다. 내가 다른 사람이 붙여 놓은 연탄불에 불을 쬐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 자신이 연탄불이 되어 가족과 다른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전파해야 한다는 것. 여기서 설득력 있게 들려오는 말은 노후 대비는 철저히 하라는 것이다. 자녀에게 의지하려하지 말 것, 오히려 자녀의 생계까지 책임질 일이 생길수도 있다는 것이다. 내게는 딸 하나뿐이기에 딸을 꽃처럼 바라보며 키운다지만 나중에 나이가 들어도 그리 예뻐할 수 있을까?

노후를 대비하라는 소리에 공감은 하지만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투자하는 한국인의 특성상 말일뿐 실천하기 힘든 항목이다. 7남매라는 많은 자식을 두고도 쪽방에서 얼어 죽었다는 어느 노인의 말이 다름 아닌 내 부모를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더 슬프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도시에 살고 있고, 평생을 농촌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오신 분께서 도시 생활을 못 견뎌 하신다며 농촌에 홀로 남아 사시는 것을 보며 어떤 방도를 취해야 할지 사뭇 걱정스러워지는 중이다.

돈보다 중요한 것이 사랑이고 가족의 정이라고, 그래서 귀농을 꿈꾼다고 딸에게 이해를 구했다. 현재의 학교에서 낯선 시골로 이사를 가는 것을 반겨할지 걱정도 된다. 아이에게 상처를 심어주는 것은 아닌지. 모두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빈부격차 없이 돈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다면 자신이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난 꿈을 꾼다. 중년의 가장들이여! 힘을 내시라고, 가족들 모두 당신을 사랑한다고!  

 오늘의 책을 리뷰한 ‘우렁각시’님은?
자신의 얼굴을 책임져야 한다는 사십대. 딸 하나를 키우며 살림을 하는 전업주부. 아직도 오랜 꿈을 꾸고 있는 철없는, 아니 철들고 싶지 않은 마음만은 십대를 바라고 싶다. 오랜 시간 책을 읽어 왔지만 남는 것이 없어 책을 읽고 서평을 쓰며 글 솜씨를 다듬는다. 동화작가를 꿈꾼다. 딸이 어렸을 때 동화를 들려주며 함께 꿈꾸어 갔다. 아이들에게 다정하고 따듯한 동화를 들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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