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에르노'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5.02.03 『남자의 자리』 - 나는 아버지의 시간을 모른다
  2. 2012.05.31 [접어놓은 구절들] 아니 에르노, 《칼 같은 글쓰기》
  3. 2012.05.21 [에디터의 북카트] 현선의 5월 21일 북카트
  4. 2011.06.14 <슬픈 짐승> - 우린 모두, 슬픈 짐승

『남자의 자리』 - 나는 아버지의 시간을 모른다

 

 


아니 에르노 | 『남자의 자리』 | 열린책들 | 2012


영화 ‘국제시장’의 아버지를 떠올려본다. 윤덕수(황정민)는 피난길에 잃어버린 아버지와 여동생을 기억하며 스스로 가장이 된다. 그는 홀로된 어머니와 동생들을 보살핀다. 그게 자신의 의무라 여긴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학업도 포기한다. 남동생의 학비를 벌기 위해 파독 광부에 지원하고 여동생의 결혼 자금을 위해 베트남에 간다. 가족을 위해 희생한 그에게 남은 건 장애가 난 한쪽 다리와 계속 돌봐야 하는 가족뿐이다. 이러한 삶이 당연한 거라 믿으며 그는 의지를 꺾지 않는다. 시간이 흘렀고 그도 늙었다. 자녀들은 자라서 가정을 꾸렸고, 그에겐 손자들도 생겼다. 하지만 가족들은 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시장통의 오래된 가게를 왜 끌어안고 사는지, 왜 오래전 시간을 붙잡고 놓지 않는지를.

아니 에르노가 『남자의 자리』를 통해 아버지의 삶을 되짚으며 말한 것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녀의 고백 같은 아버지 이야기는 내가 알고 있는 주변의 아버지, 보편적인 개념의 아버지였다. 가족을 위해 애쓰면서도 애정을 쉽게 표현하지 못하는 무뚝뚝함, 점점 자신의 영역이 좁아지고 자녀가 자라면서 거리감이 생기는 순서까지 똑같았다. 저자는 그런 아버지가 죽고 나서 그를 기억하며 아버지의 역사를 적었다. 어떤 감정보다 지극히 객관적인 순서의 기록이었다. 작가가 직접 보지 못한 아버지의 모습까지 적을 수 있었던 건, 아버지의 어릴 적 이야기를 들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아버지와 딸 사이가 어떤 교감으로 이루어졌을 한때의 시간이 준 기억. 아버지가, 아버지가 된 순간부터 봐 왔던 모습. 늙어가던 아버지의 생활과 점점 이해할 수 없는 시간이 쌓이는 서로의 삶. 그렇게 아버지의 크기가 달라져 갔다.

이 무렵, 그는 벌컥 화내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증오감에 입가에 뒤틀릴 정도로 심하게 화를 냈다. 나는 어머니와 어떤 공모 의식으로 맺어지고 있었다. 달마다 찾아오는 복통, 골라야 할 브래지어, 화장품 같은 것들을 통해서였다. (…) 우리에겐 그가 필요 없었다. (91쪽)

투병생활을 하던 아버지는 조금씩 달라졌다. 얼핏 추측하기에 육체의 노쇠함보다 정신적인 피폐함이 더 삶을 짓눌렀을 듯하다. ‘나는 이제 상자 하나도 제대로 들지 못해.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가족들에게 어떤 권력도 행사할 수 없어. 나는 혼자야…… 그에 반해 자식들은 점점 자라 다른 세계로 편입하고 세상을 알게 되어 자주적으로 살아간다. 아버지는 관심 혹은 간섭의 기회까지 사라진 영역을 오롯이 혼자 지킨다. 늙고 나약해져, 그만의 세계를 산다.

픽션을 거부하는 그녀의 글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으로 써지고 있지만, 그 개인적인 경험이 그녀만의 기억은 아닌 것 같다. 애틋했던 부모와 자녀 사이도 시간이 흐르면서 무덤덤하고 건조해진다. 살아가는 방식과 시간이 달라 서로 얼굴을 보기도 힘들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늘어나고 벽이 쌓인다. 보통의 가족이 이런 시간을 거친다. 내가 알고 있는 주변의 아버지와 자식들 사이의 모습이다.

나도 다르지 않았다. 아니, 아버지와 나 사이는 그 '보편적'인 범주에조차 속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게 맞겠다. 아버지와는 대화다운 대화를 해본 기억이 없다. 대화로 시작된 말은 싸움으로 끝나기 일쑤였다. 자동으로 차단되는 마음. 서로에게 타인이 되어 살아가는 게 자연스러운, 아버지와 나 사이에 '우리'라는 표현은 없다. 아버지에 관한 이러한 책은 나에게 늘 넘어야 할 거대한 산으로 자리한다. 보편성을 이해하기 위해, 내가 모르는 시간을 알기 위해 부딪혀야만 하는 전쟁 같은 도전이다. 나는 아버지의 시간을 모른다. 그가 어떤 시간을 통과해 어른이 되었고, 어떤 마음으로 부모가 되었으며, 어떤 바람으로 늙어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나는 아니 에르노가 하는 말들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시간을 그녀의 글을 통해, '이런 걸 어떻게 알고 있지?' 하는 물음표를 띄우며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 사이에 오갔을 대화를 그려봤다. 아버지의 유년기를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듣고 있을 딸의 눈빛, 몰랐던 시간이 오고 가며 쌓였을 애틋함과 이해, 아직 멀어지기 전인 부녀의 관계. 나는 바람 같은 시선을 던지며 이 짧은 소설을 꾸역꾸역 삼켰다.

아버지가 화두가 되는 이야기 앞에서 나는 늘 답답하다. 애써 피해가고 싶고, 쉽게 건너가지 못하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다행이었던 건, 그녀가 이 글을 참 담담하게 썼다는 점이다. 감정의 파도가 지극히 일렁일 것 같은 사건 앞에서도 아니 에르노는 기록 의무자처럼 객관적이다. 이게 가능할까 싶지만, 그래야 쓸 수 있었던 그녀의 마음이 보이는 듯하다. 기억, 정리, 기록이 차례차례 가능해지는 순간에 비로소 찾아오는 안도감과 같이. 언젠가 나의 아버지를 더는 볼 수 없는 시간이 오면 나도 이런 기록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지 않고서는 내 가슴속 말, 이해, 정리를 만날 수 없을 것 같다.

그를 멸시한 세계에 내가 속하게 되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그의 가장 큰 자부심이요, 심지어는 그의 삶의 이유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1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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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과 서평을 나누고자 반디앤루니스 '오늘의 책'을 펜벗과 함께 만들어 갑니다.
펜벗이란 서평을 쓰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를 의미합니다.
매주 월요일, 성실한 서평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2월의 펜벗 서평 주제는 '그 남자, 그 여자'입니다.


| 펜벗 일문일답

● ‘그 남자’를 아버지로 생각한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이 책을 읽는 것이 '전쟁 같은 도전'이라고 했는데, 전쟁을 마치고서 아버지의 거대한 산은 좀 작아 보이던가요?

‘그 남자’를 주제로 여러 책의 주인공을 떠올려 봤는데 연인 같은 남자가 많더라고요. 그 많은 남자 사람을 뒤로하고, 언젠가 한번은 마음 다잡고 덤벼 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책이 아니 에르노의 『남자의 자리』였어요. 펜벗 주제가 아니었더라면, 이 책을 다시 책장 구석에 넣어둘 것만 같아서요. 아버지를 소재로 한 영화나 책은 늘, 저를 힘들게 하거든요. 가까이 가기 위해 아주 노력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늘 제자리에 서 있다가 되돌아가곤 합니다. 평소의 저라면 그런 경우 관계 유지를 포기하는데, 가족이라는 이유로 그 단절이 ‘단절’이 되지 않더군요. 이 책을 읽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아, 그 거대한 산이 이제는 작아 보이냐고 물으셨죠? 아니요. 작아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마지막에 어떤 모습으로 서로 마주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힘들어도 다시 산에 오르자 다짐하고 언젠가 또 이런 이야기를 선택할 것 같아요.

● 평소 다양한 장르를 신중하게 소화하는 캔맥주 님의 모습을 보고 노력하는 ‘다독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책은 언제부터 즐겨 읽으셨어요?


저 정말 책을 안 읽고 사는 대한민국 사람이었거든요. 대학에 다닐 때도 전공 서적 외 책을 읽어본 적이 거의 없다고 말하면, 지금 제 주변의 책 지인들이 놀라시더라고요. ‘정말?’ 하면서요. 네, 정말요. ^^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는데, 책을 즐기기 시작한 건 한 5년쯤 된 것 같아요. 우연히 모교 구내서점에 갔다가 『냉정과 열정 사이』를 잠깐 읽었는데요. 서서 읽다 보니 재미있어서 바로 사 들고 나왔어요. 그때부터였어요.
지금도 저는 책을 편식하고 많이 읽지도 못하지만, 책을 옆에 두고 늙어가고 싶은 소박한 바람이 있어요.


● 요즘은 무슨 책을 읽고 계세요?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와 하이타니 겐지로의 『상냥하게 살기』를 같이 읽고 있어요. 내키는 대로 두 책 중 손에 잡히는 책을 읽고 있는데요. 『스토너』는 한 남자의 평범한 일생을 담았어요. 심심한 듯 들릴 수 있는데, 오히려 그의 평범한 삶이 너무 와 닿아요. 이 책의 홍보 문구에서 ‘사는 모습은 달라도, 우리는 누구나 스토너다.’라고 하는데요, 딱 그거였어요. 우리 사는 모습과 너무 닮았어요. 그래서 뭉클하게 공감하게 돼요. 『상냥하게 살기』는 하이타니 겐지로가 사십 대에 발표한 육십사 개의 산문집이에요. 나중에 그가 아와지 섬으로 이주한 후의 일상도 들려주는데, 진지하면서 재미있어요. 문득, 하이타니 겐지로가 좀 엉뚱한 아저씨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제가 학교 다닐 때 이런 선생님을 만났다면 조금은 즐거운 학창 시절을 보내지 않았을까 상상해 보게 돼요.


● ‘펜벗’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펜벗에 선정되고 나서 궁금했어요. 매달 어떤 주제로 새로움을 줄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처음부터 선정된 주제가 저의 기대만큼 새롭거나 신선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말이죠. 그게 반전이었어요. ‘처음’, ‘겨울’, ‘그 남자 그 여자’ 이런 주제가 어떤 책을 떠올리는데 상당한 고민과 관심을 두게 하더라고요. 어떤 책을 골라 볼지 이렇게 많이 고민해본 적이 정말 오랜만이에요. 어떻게 보면 참 평범한 주제일 수 있잖아요. 일상에서 늘 떠올릴 수 있는 주제인데, 이 평범함이 비범함을 만들고 있었어요. 책에 대한 느낌과 의미가 달라지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의 펜벗이 좋아요.
굳이 소박하게 바라는 점 한 가지라도 말해보라면, 펜벗의 주제가 조금 더 친근해져도 좋을 듯해요. 예를 들어, ‘이 주인공만 보면 욕이 나온다.’ 같은 주제요. ^^


오늘의 책을 리뷰한 '캔맥주'님은?

책을 좋아하고 싶어서, 책을 읽어요. 내일도 그럴 수 있기를 바라면서, 오늘도 한 페이지를 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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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어놓은 구절들] 아니 에르노, 《칼 같은 글쓰기》

 

 

아니 에르노 | 《칼 같은 글쓰기》 | 문학동네 | 2005

 

“나는 글을 씀으로써 내 모든 지식뿐 아니라 교양, 기억 등이 모두 연루된 어떤 작업을 통해, 외양을 넘어서 나 자신을 세상에 투사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련의 작업은 하나의 텍스트로, 따라서 타인들에게로 귀착되지요. 그들의 수가 얼마나 되느냐 하는 것은 내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작업’과는 완전히 반대됩니다. 내가 어떤 것에서 치유되어야 한다면, 내게 그 치유는 오직 언어에 대한 작업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전달하는 작업, 즉 하나의 텍스트를 타인에게 증여하는 작업을 의미합니다. 타인이 그것을 받아들이든 거부하든 상관없습니다.” (79쪽)

 

글을 씁니다. 지금도 쓰고 있습니다. 쓰면서 생각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 그러나 그 모든 생각의 기저에, ‘나’가 있습니다. 글을 쓰고 있는 ‘나’, 쓰면서 생각하는 ‘나’, 그 이전의 ‘나’. 나는 ‘나’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나’에 대해서만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또, 글을 쓰다 정작, 그 ‘나’가 드러나기 시작하면 멈칫 하며 뒤로 물러서게 됩니다. 내가 ‘나’이기 때문에 알고 있는 ‘나’를 남들에게 있는 그대로 보일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니 에르노의 글을 읽으면서, 덧대고 포장되지 않은 채 맨몸으로 언어화되어 있는 ‘아니 에르노’를 보게 됩니다. 자신이 부끄러워하는 것과 그것을 부끄러워하는 자신 모두를 드러냄으로써, 부끄러움이라는 주관적 감정의 바깥에서 객관적으로 존재하게 된 한 사람으로서의 그녀를 발견하게 됩니다. 어떤 시·공간이라는 조건 하에서만 현실일 수 있는 ‘아니 에르노’가 모두의 ‘그녀’가 되고, 또 내가 되어갑니다. 그렇게 자신을 세상에 투사해 스스로가 하나의 텍스트가 된 ‘한 사람’이 타인인 ‘나’에게로 귀착되어 옵니다.

 

‘나’는 아니 에르노의 글에 대해 글을 쓰면서 글을 쓰고 있는 ‘나’, 글을 쓰고 있을 ‘나’에 대해, 다시, 생각합니다.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 (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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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북카트] 현선의 5월 21일 북카트

 

 

언제부턴가 만사에 심드렁해졌다는 느낌입니다. 그러니까 요즘의 저는 이래도 흥, 저래도 흥 아니면 이래도 쳇, 저래도 쳇입니다. 뭔가, 열정이 부족하달까요. 원인은 아무래도 극과 극을 오갈 뿐 중도를 모르는 제 성격 탓인 것 같은데요. 극으로 치닿는 열정이 힘들어 놓아버리고선 막상 불끈불끈 하는 감정이 줄어들고 나니 그 삶이 또한 권태롭게 느껴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번에 고른 책이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이고요.

 

 

아니 에르노 | 《단순한 열정》 | 문학동네 | 2006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작가 자신이 연하의 외국인 유부남과 사랑에 빠졌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 소설인데요. 매순간이 오로지 한 남자의 생각으로만 가득 찬 여자의 내면 서술을 통해 이제는 사라져버린 열정과 욕망의 흔적을 기억으로 증언하고 이를 질문하며 끝내는 이별해 화해에 이르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책입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빠지는 것만큼 열정을 필요로 하는 일도 없으니, 아니 에르노의 시간을 경유하며 제 삶의 어디쯤에 있었던(있을) ‘단순한 열정’ 또한 꺼내볼 수 있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다음으로 담은 책은 《단순한 열정》의 짝꿍이라고 할 수 있는 필립 빌랭의 《포옹》입니다. 아니 에르노의 실제 연인이기도 했던 필립 빌랭은 《단순한 열정》의 방식을 차용해 그녀와 나누었던 5년간의 사랑을 이 소설에 기록했는데요.

 

 

필립 빌랭 | 《포옹》 | 문학동네 | 2001

 

아버지가 읽고 있던 《단순한 열정》이 계기가 되어 독자와 작가로 만났고 이후 연인 사이가 되고나서는 필립 빌랭 자신이 《단순한 열정》에서의 아니 에르노의 입장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를 깨닫고 이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한 거고요. 그러니 두 작품을 함께 읽으며, 기다리는 사람에서 기다리게 하는 사람으로 자리를 옮겨간 아니 에르노의 모습을 보는 색다른 재미도 느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고른 책은 최정례의 시집, 《레바논 감정》입니다. 이건 제 짝꿍 희진씨가 “언니가 좋아할 것 같은 시집이에요.”라고 추천해준 책인데요. 책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다들 아시겠지만 다른 사람에게 그이가 좋아할 만한 책을 추천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게 아주 미세한 감각과 감정과 기억의 차이로 수만 갈래의 감상을 낳는 ‘시’인 경우라면 더더욱 그렇고요.

 

 

최정례 | 《레바논 감정》 | 문학과지성사 | 2006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의 추천만으로, 그것도 시집을 덥석 골라 집은 이유는 그 사이 우리가 나누었던 대화에서 서로에 대한 이해가 살포시(?) 드러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요. 일하는 도중에 희진씨가 종종 네이트온을 통해 전해주던 시 선물이 죄다 좋았던 지라 일단 일말의 의심은 버려두고 과감하게 선택해볼까 합니다. 물론 한편으론, '어디, 희진씨가 나를 얼마나 알고 있는지 두고 보자' 하는 심리도 없진 않습니다. 헤헷, 농담입니다, 희진씨!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 (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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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짐승> - 우린 모두, 슬픈 짐승


 

 

모니카 마론 | <슬픈 짐승> | 문학동네 | 2010

 

열렬한 사랑은 구원일까, 저주일까. 아마도 사랑 안에 있을 때에는 찬란한 구원일 테고, 그 사랑에서 벗어났을 때는 끈덕진 저주로 남을 것이다. 사랑이 피었다 지는 광경은 마치 목련이 환하게 흐드러졌다 거무죽죽한 낯빛으로 바닥에 드러눕는 모습과 닮았다. 가끔 생각해본다. 나는 사랑을 위해, 혹은 사랑에 있어 어디까지 갈 수 있나, 사랑에 ‘끝’이 있다면 거기는 어디인가.

 

사랑의 시작과 끝에 모두 도달한 여자가 있다. 여자에게 유일한 사랑이 발아되던 때로 돌아가보자. 어느 날 발작을 일으켜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여자는 단 하나의 질문을 떠올린다. ‘저녁의 발작이 내 죽음을 가상실험한 것으로 끝나지 않고 정말로 그때 내가 죽었다면 내가 놓쳤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그녀는 답한다. ‘인생에서 놓쳐서 아쉬운 것은 사랑밖에 없다’고. 그리고 일 년이 지난 뒤 ‘찾지 않고, 기다리지도 않고’ 어느 날 아침 자신의 옆에 서 있던 그 남자를 만났다. 그녀는 사랑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징후와 그 순간들을 예민하게 포착해낸다.

 

우리가 원했던, 또는 심지어 우리 안에 묻혀 깨어나지 않은 채 숨어 있던 특성들이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순간 우리가 더불어 사는 데 익숙해 있던 다른 특성들을 몰아낸다. 우리는 스스로를 다시 인식하게 된다. 우리는 더 아름답고 더 부드럽고 더 현명하다. 우리는 우리의 소심함과 우리의 악의에서 구원된다. 우리는 가장 사악한 적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우리의 행복으로 모든 나무와 모든 거리와 모든 순간을 환하게 비추고 그때까지 발견하지 못했던 그것들의 아름다움에 대해 경탄한다. 우리는 하늘과 비와 바람과 우리 자신이 하나가 된 것처럼 느낀다. 우리는 마침내 이 세상에 속해 있고 또 마침내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다.

 

사랑은 내 안에 숨어 있던 여러 명의 나를 끄집어 낸다. 그로 인해 전혀 몰랐던 나를 새로이 발견하고 탐구하게 한다. 그러니까 사랑은 자아의 확장을 일어나게 하는 계기인 셈이다. 또 사랑은 우리를 ‘이 세상에 속해 있고 또 마침내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게’ 만든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한편, 우리 자체가 아름다움이 되는 것이다. 삶을 송두리째 황홀로 이끌었던 이 사랑이 끝에 달했을 때 그녀는 자신이 아흔 살인지, 백 살인지 모른다. 여자는 예금해둔 돈을 인출하고, 식료품을 살 때에만 외출을 한다. 사는 게 아닌, 살아지고 있는 거다.

 

나의 마지막 연인, 그 남자 때문에 나는 세상을 등졌다. 나를 떠났을 때 그는 안경을 잊고 내 집에 두고 갔다. 나는 몇 년 동안 그의 안경을 썼다. 건강하던 내 눈을 그의 근시와 뒤섞어 흐릿한 눈으로 만들었다. 그것이 그의 곁에 머물 수 있는 마지막 가능성이었다. (…) 점점 뜸해지고는 있지만 나는 가끔씩 안경을 써본다. 내 연인이 그 안경을 썼을 때 무엇을 느꼈을지 느껴보기 위해서다.

 

마지막 연인이 떠난 뒤 세상과 등지고 오로지 그와 함께 했던 시간을 되살려보는 것을 유일한 의무처럼 지니고 있는 여자는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의 그녀를 떠올리게 한다.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 아니 에르노, <단순한 열정>, 문학동네, 2006

 

떠나간 연인이 남긴 유품 같은 안경을 쓰고 지내는 여자를 그려본다.  그가 보았던 그 무엇을 보려 건강하던 눈까지 흐릿하게 만드는 여자의 모습에선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읽힌다.

 

“너처럼 될 수 없다는 것, 그게 내가 아쉬워하는 그 무엇이지.”

 

- 마르그리트 뒤라스, <이게 다예요>, 문학동네, 2009

 

사랑은 ‘어쩌면 우리가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가설에서 시작되어, ‘결국 우리는 하나가 아니다’라고 그 가설을 배반하는 이론을 정립하며 끝나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우린 모두, 슬픈 짐승이다. 사랑이 주는 환희의 순간은 너무도 짧고, 그것이 남긴 그림자의 길이는 너무도 길다. 하지만 그 짧았던 환희의 순간으로 기나긴 그림자의 날들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게 또 사랑이다. 그러니까, 나는 또 사랑하겠다. 제 몸이 타 들어 갈 것을 알면서도 불의 매혹을 떨칠 수 없는 나방처럼, 두려움도 절망도 없이.


 

 

-컨텐츠팀 에디터 료(fololy@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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