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4.11.17 지지 않고 계속
  2. 2014.10.01 《게으른 삶》 - 나의 사랑은 느리지만
  3. 2009.04.14 청춘표류 - 실패 없는 청춘은 청춘이 아니다

지지 않고 계속

 

 

 

지지 않고 계속

 

단 하루에 성패가 결정된다는 건 사실 억울한 일입니다. 단 한 번이기에 내가 아는 것을 최대한 써먹어야 한다고, 또 그럴 수 있겠다고 하지만, 최선은 아무리 다해도 부족하고, 가차 없이 잘 못한 상태로 끝날 수 있습니다. 수능만이 아닙니다. 삶에는 ‘단 한 번’만으로 평가에 놓이는 일들이 많습니다. 인생의 중요한 시도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정답인지 오답인지에 따라 가름 나는 등급처럼, 사실 인생은 그렇게 깨끗이 변별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데 말이죠.

 

오직 한 번뿐인 일을 겪어야 한다는 건 번번이 쉽지 않습니다. 오늘의 성과가 다음을 똑같이 기약하지 않으니까요. 중요한 건 틀려도 꺾이지 않고 계속해보겠다는 마음가짐입니다. 어쩌면, 틀릴지도 모를 혼돈과 이미 틀어진 복잡함 속에서 삶의 숱한 ‘단 한 번들’이 흘러가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사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운 일이므로 고통스러운 일이 있더라도 특별히 더 고통스럽게 여길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는 특별히 더 달콤하다. 고통스럽더라도 고통스럽지 않다. 본래 공허하니 사는 일 중엔 애쓸 일도 없다. 세계는 아무래도 좋을 일과 아무래도 좋을 것으로 가득해진다. (…) 그 하찮음으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으니까. 즐거워하거나 슬퍼하거나 하며, 버텨가고 있으니까. (…) 오래지 않아 날이 밝을 것입니다. 계속해보겠습니다. (황정은, 《계속해보겠습니다》, 창비,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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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ditor_정혜원

hyewonjung@bn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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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삶》 - 나의 사랑은 느리지만

 

 

이종산 | 《게으른 삶》 | 문학동네 | 2014

 

반복되는 일상에서 드물게 찾아오는 게으른 순간들. 나는 항상 그런 게으른 순간들을 사랑한다. 빨래를 널어놓고 한숨 돌리는 시간, 카페에 늘어져 차를 마시는 시간, 햇빛 속에서 기지개를 켜는 시간, 소중한 사람과 따뜻한 포옹을 나누는 시간, 그런 순간들로 삶이 채워지기를 언제나 바라왔다. (150쪽, 작가의 말 중에서)

 

"게으른 시간 속에서 더 많이 사랑하기를 빈다."는 작가의 말에 이끌려 설레는 마음으로 《게으른 삶》을 읽기 시작했다. 낯선 타국, 골목에서 길 헤매는 시간을 즐기는 나는 작가 역시도 ‘진짜’ 이야기는 한발 물러나 있는 ‘그곳’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알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소설을 다 읽고도 한참 동안 감상을 쓸 수 없었다. 너구리를 닮은 겁 많은 여자아이와 참치 통조림을 가지고 다니는 담백한 남자아이의 연애 이야기라는데 이견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동조하지도 않았다. 둘의 관계는 친구와 연인 사이 언저리에서 모호하게 이어지며, 그것을 연애라 하더라도 그 온도 자체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채 끝나버린다. TV 예능프로그램에서 서슴없이 성관계와 연애 기술을 얘기하는 시대에 이토록 느리고도 흐릿한 관계라니.

 

너구리(나)는 오랫동안 참치를 짝사랑하면서도, 마음의 진로를 정하지 않는다. 마음에 대해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는다. 굳이 끝장을 보지 않아도, ‘DHA가 풍부한 물고기가 좋다’는 너구리의 말에 ‘좋아하는 동물이 얼굴이 빨개지는 너구리로 바뀌었다’ 말할 줄 아는 참치가 곁에 있는 걸로 충분하다고 여긴다. 언제나 함께 해왔고, 일상을 채우는 수많은 대화가 있으니 그것으로도 만족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문제는 누군가를 향하기 시작한 ‘마음’이 내가 원하지 않더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관성을 지니며, 결정적인 순간에 폭발하게 된다는 데 있다. 막막해져서는 안 된다며 스스로 다독이던 너구리가 결코 행복해질 수 없을 거란 예감에 휩싸이고 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상처 받기 두려워 솔직해지지 않는다면, 누구도 제대로 사랑할 수 없고, 누구에게도 유일한 무언가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너구리는 이미 알고 있다.

 

애써 억눌러 왔던 마음은 그래서 점점 고개를 내민다. 케르베로스에게 잘해주는 참치를 향해 내뱉는 말이 실은 참치에게 꼭 하고 싶었던 말인 것처럼. “잘해주지 마. 넌 주인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잖아. 네가 가면 케르베로스는 기다릴 텐데 너는 돌아오지 않을 거잖아. 내가 틀려?” 기다리지 않겠다는 너구리의 말 역시, 사실은 끊임없이 떠나는 참치를 내내 기다렸고, 알아주기를 바라는 간절함으로 들린다.

 

참치는 여러 번 훌쩍 떠났다가 태연한 얼굴로 돌아왔다. 이제 당분간은 괜찮아. 돌아오면 그렇게 말했다. 참치는 오래 버티고 있었다. 여행을 떠올리게 하는 것들을 침대 밑에 숨겨두고. 머리맡에 있는 여권을 들고 도망치듯 떠나지 않고. 깊은 밤과 이른 아침 사이의 시간에 전화를 걸어 다녀오겠다고 말하지 않고. 어쩌면 그래서 이번에는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돌아오지 않을지도 몰라. 참치에게 내가 돌아와야 할 이유가 됐던 적이 있을까.

 

저 우산을 타고 참치가 내려온다면 물어봐야지. 그리고 내가 돌아와야 할 이유가 됐던 적이 있다고 대답하면 다음에도 그래달라고 말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정도는 들어줄 수도 있지 않겠냐고. 기껏 기다리지 않겠다고 다짐해놓고는 이런 생각. 한심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97쪽)

 

참치의 집에서 머무는 날에게 옹졸한 질투심을 느끼던 너구리의 짝사랑은 이제 종착지를 향해 달려간다. 희수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증명하기 위해 다리에서 뛰어내린 영수처럼, 너구리는 어떻게든 마음에 매듭을 지어보기로 한다.

 

나도 내기를 해볼까? 여기서 뛰어내리면 참치를 정말 그만 기다리는 거다. 여기서 뛰어내리면 난 더 이상 참치가 겁쟁이라고 무시하는 너구리가 아니고 날 한 번도 잡은 적 없는 그애를 기다리는 것도 그만두겠다. 고백하고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니라면 나도 끝내겠다. 나는 난간을 잡고 발을 올렸다. (100쪽)

 

실패가 두려워 회피하고, 귀찮아하고, 계속 미루기만 하면 무엇도 얻을 수 없다. 누구나 안다. 마음에 일종의 부담감과 책임감을 부여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어떤 남녀 관계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나는 내 마음과 자존심을 최우선으로 두는 방식의 연애가 얼마나 위태롭고 허약한지 실패한 지난 연애를 통해 배웠다. 그래서 함께 떠나자는 참치의 제안을 거절하고, 홀로 남기를 택한 너구리의 결정이 안타까웠고, 한편으로는 그것이 가장 너구리다운 결정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산한 새벽 거리를 떠돌다 참치를 생각한 너구리가 더 이상 막막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평화로운 시간 가운데 손에 잡힐 듯 선명하고, 또렷한 순간을 자주 마주하기를. 연애의 끝이 그렇듯, 어떻게 끝맺음을 내야 할지 모르겠으니, 시작처럼 끝도 작가의 말로 마무리 한다.

 

“이 세계 혹은 진실은 언제나 의미를 알 수 없는 빛에 가려져 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곰자'님은?

사람들의 사소한 일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김중혁 작가의 말처럼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위로’할 수는 있다는 생각으로, 일단 잘 듣기 위해 노력하는 단계입니다. 기회가 되면 언젠가 제가 마음으로 전해들은 무수한 이야기를 잘 엮어,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과 세상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 있기를 꿈꾸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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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표류 - 실패 없는 청춘은 청춘이 아니다


다치바나 다카시, <청춘표류>, 예문, 2005.


“너, 정말 하고 싶은 게 뭐야?”

누군가 내게 꿈을 물어본다.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왔다고 자부해온 나였다. 훌쩍 떠나온 길만큼 어느 새 몸뚱이도 머리도 훌쩍 커버린 나지만, 이 질문 앞에서는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간의 발자취를 슬며시 더듬어보니 무언가 이상하다. 그동안 ‘내가 진정 이루고 싶었던 것’에 대한 열정이 떠오르지 않는다. 부끄러웠던 기억이 없다. 좌절의 시간이 없다. 그래서 나는 내 청춘을 청춘이라 자신 있게 외치지 못하고 결국 우물쭈물해버리고 만다.

이 책에서 다치바나 다카시는 11인의 청춘들을 차례로 조망해간다. 자전거 프레임 빌더, 원숭이 조련사, 사진작가, 소믈리에 등 다양한 청춘들을 소개하면서, 그들이 진정 자신이 원하는 길을 찾기까지 겪은 좌절과 방황, 인고의 시간이 과연 어떤 의미였는지를 새삼 느끼게 한다. 물론 심심치 않게 출간되는 여타 성공담 중 하나이지만, 이 책이 부각되는 이유는 그것이 ‘나 자신’을 투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충 적당주의로 얼버무리고 살아가려는 나에게, 그들은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것일까.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으면서, 나는 그저 파도치는 대로 이리저리 쓸려 다니며 사는 것이 제일이라 믿었다. 그것은 머나먼 항해를 조금 피곤하게 할지는 몰라도, 최소한 다치지는 않을 거란 이유에서였다. 괜한 물벼락을 맞느니 차라리 멀미하고 말 일이지 싶었다. 남들에게는 뒤쳐지지 않으려고 아등바등하면서도, 한편으론 너무 튀지 않으려고 끓어오르는 피를 삭히고, 그렇게 적당히 타협하며 평균선만 막연히 넘나들었다. 아아, 나는 정말 멍텅구리 항해자였다. 이 얼마나 한심하고 비겁한 갈지자 선로인가. 최소한의 신기루도 갖지 못한 채 아무 목적 없이 표류하고 있다. 인생에서 가장 큰 회한은 자신이 살고 싶은 대로 인생을 살아가지 못할 때 생긴다고 했거늘.

어느 날, 거울을 보며 조용히 한숨을 내뱉는다.
“너, 나이만 먹었어.”

그것은 현실에 안착하고자 하는 심리, 좀 더 깊숙이 파고들자면 자아에 대한 불안감으로부터 비롯되었다. 혹자는 투쟁이 또 다른 분쟁을 야기한다고 했다. 불합리한 사회제도와 불만, 무관심, 그로 인한 분규와 끊임없는 전쟁, 살인, 가난의 세습과 이기주의의 연결고리 따위가 이제는 지긋지긋하다고 했다. 그래서 그들은 주장한다. 애당초 이놈의 불행한 시대에 잉태된 자체가 잘못이며, 아무리 뭐가 이렇다 저렇다 해봤자 처절한 울부짖음에 지나지 않으므로, 이제 그만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무념무상, 안빈낙도함이 제일이라고. 역사 속 뜻있는 사람들이 속세를 초월하여 초야에 묻혀 지낸 뜻이 여기에 있지 않느냐고. 더불어 제 좋고 남 좋은 게 편안한 인생 아니겠냐고. 그래도 굳이 투쟁하려 들고 싶다면 그 잘난 폐인정신으로 어디 혼자 콕 처박혀 제 밥 적당히 빌어먹고 살 정도의 필살스킬 하나 연마하면 그만이라고.

그러나 그리 살면 무엇 하겠는가. 우습기도 하지. 아무 어려움 없이, 과자공장 기계가 찍어내는 크래커처럼 손쉽게 반죽되고, 똑같은 옷을 입고, 뚝딱 구워져 이내 부스러질 그저 비슷비슷한 인생살이. 수많은 인생 중 ‘일련번호 0000’의 작은 표딱지 하나로 유통되다 저리 안타깝게 폐기되고 말 것을. 나, 그간 죽어도 평범하길 원해왔으나 이제는 도통 내가 정한 노말의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나는 내일 평균치 이상의 식사를 할 수 있고, 모레 누군가에게 벌레보다 못한 대접을 받을 수도 있다. ‘보통’의 범주란 것은 상당히 가변적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타인의 지명도에 반비례한다. 가령 오른손잡이는 보통이다. 보통의 경우(아이러니하지만) 누군가 내게 ‘당신, 오른손잡이군요?’라고 물어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만약 그렇게 물어준다면, 나는 매우 기쁠 것이다. 나는 그 사람에게 이미 ‘특별한’ 존재가 된 것이니까. 마치 어린왕자의 장미 한 송이처럼.

이렇게 쓰고 보니 참으로 구태의연하지만, 나는 타인의 눈빛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일에 이미 넌덜머리가 난 상태이다. 나는 분명 모든 인생들에게 지나가는 에피소드 181이나 182쯤 될 것이다.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그러나 이대로 묻혀가는 것이 억울하고 배알 꼴려 애드리브라도 치고 가야겠다. 기억되고 싶다. 누군가의 인생에 있어 소중한 사람으로 각인되고 싶다. 그러므로 좀 더 투쟁적으로 살아가련다. 치열하게, 누군가의 말대로 더 아파해 보기도 하면서…

‘내가 좋으면 됐지 무얼’ 하고 쓰레기 같은 삶에 만족하는 이들과 늘 불만투성이에 끊임없이 욕심만 부리는 사람들에게도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겠다. 동시에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냐고 스스로 신해철이 되어 절규하겠다. 나, 축구는 헛발질에 바둑도 젬병이라 어깨 너머 눈알만 굴리고, 노래방에선 한껏 띄워놓은 분위기에 발라드 한 키 낮춰 부르는 대참사밖에 일으킬 줄 모르고, 술은 지지리 못하면서 진탕 마셔대다 꼴아박기 일쑤고, 인간관계 또한 그리 썩 좋지 못하며, 페이스나 경제적 여유, 무엇 하나 딱히 내세울 것 없는 못난 청년이지만, 그래, 나는 아직 젊으니까. 수없이 쓰러져도 오뚝이처럼 일어나 하니처럼 달리며 박카스를 벌컥벌컥 마셔댈 수 있으니까. 그게 청춘의 특권이니까.

순응하지 않고,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정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하고 싶은 건 다 하련다. 부끄러움 없는 청춘, 실패 없는 청춘은 청춘이 아니다. 더 부끄러워하자. 더 많이 실패하자. 아자! 내 인생은 이제 막 마알갛게 떠오르는 현재 진행형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최세훈'님은?

20대 청년. 고려대 재학. 제 잘난 맛에 사는 독서가. '내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전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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