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사'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10.08 <에곤 실레> - 벌거벗은 자화상을 생각하다
  2. 2009.06.11 북극곰과 펭귄 - 이기고 싶으면 함께하라!

<에곤 실레> - 벌거벗은 자화상을 생각하다

 

장루이 가유맹, <에곤 실레>, 시공사, 2010 


 

한 남자가 거울 앞에 서 있고, 그 눈이 거울에 비친 자신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진을 더 자세히 보면, 그 눈이 다시 나-보는 이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결국 거울 앞에 서 있는 자신과 거울에 비친 자신, 그 모두를 보고 있는 누군가를 보고 있는 것인데요. 이렇듯, 자아(自我)와 타아(他我) 그리고 타자(他者) 사이를 오가는 예민한 시선이 바로, ‘불안과 매혹의 나르시시스트’ 에곤 실레 그 자체가 아닐까 합니다. 

 

    
 에곤 실레(Egon Schiele), <팔로 머리를 비틀고 있는 자화상>, 1910년


“각 시대마다 예술가는 그 시대의 삶의 단편을 드러낸다. 그리고 바로 예술가라는 개인적 존재의 위대한 경험을 통해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는 것이다.” -에곤 실레

기존의 관념이나 사상을 일소하려는 의지 너머로, 존재론적인 경험을 새로운 예술의 ‘원칙’으로 삼으려는 갈망을 지니고 있었던 에곤 실레. 그에 따르면 “예술가는 규칙에서 벗어나 오로지 자신에게로 향하며 특히 자신이 만질 수 있는 것, 즉 자기의 육체로 향” (29쪽)합니다. 이에 따라 수많은 자화상을 통해 그려낸 그의 벌거벗은 육체는 이미 ‘살의 매력’을 상실한 표현의 매체에 불과하며, 그 자체의 물질성이 아닌 영혼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됩니다. 다시 말해, “육체를 다듬어 표현하기보다는 그대로 인정하며 장식으로 꾸며진 육체를 지우는 그의 욕망은 육체에 상처를 입히고 그 정체를 폭로” (149쪽)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울 앞에 서 있는 에곤 실레의 모습이 거칠고 뒤틀린 터치로 육체를 드러내고 벌거벗은 영혼의 시선으로 누군가를 응시할 때, 그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어떤 불안과 매혹에 휩싸여 그 시선을 피하지 못하는 내가 있다면, ‘나’는 질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단 한 번이라도, 이토록 단호하고 고통스럽게 온전히 벌거벗은 자아와 대면해본 적이 있는가.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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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과 펭귄 - 이기고 싶으면 함께하라!

슈테판푸리에, <북극곰과 펭귄>, 시공사, 2008

 이기고 싶으면 함께하라!

북극곰과 펭귄이 뿔났다. 모 영화처럼 돌연변이가 돼 뿔이 솟은 것은 아니다. 지구가 더워져 도저히 먹고 살 수 없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또 지구온난화야?’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들의 사연을 들으면 쉽게 넘길 일이 아니다. 북극곰은 눈앞에서 사랑하는 그녀를 잃어버렸다. ‘그가 지금껏 보았던 가장 아름다운 여인, 비단처럼 윤이 나던 빛나던 흰털, 흑진주를 박아놓은 듯 신비스러운 검은 눈동자의 그녀’가 북극으로 가는 바다 한 가운데서 탈진하여 비참한 모습으로 죽었다. 사랑도 잃고, 삶의 터전도 잃은 곰은 추위를 찾아 아래로 아래로 향한다.

북극곰의 정반대에는 펭귄이 있다. 이 친구의 운명도 기구하다. 같은 이유로 위로 위로 갈 수밖에 없는 운명. 지금껏 험한 운명이 단번에 필 리 있겠는가. 추위를 찾아 떠난 ‘펭귄 원정대’의 여정은 험난하기만 하다. 동지 펭귄들은 상어, 물개에게 잡아먹히고, 희망봉 바로 앞에서 빠져 죽었다. 또 ‘지상낙원’이라 불리는 동물원이 나머지 펭귄들을 유혹해, 오직 배에 오렌지색 점이 있는 펭귄만이 북으로 향한다. 왜? 집에서 애타게 기다리는 펭귄 식구들이 아른거리기 때문에.

실패, 그리고 또 실패

적도에서 만난 북극곰과 펭귄은 서로에게 ‘불편한 진실’만 알려준다. 아무리 내려가도, 아무리 올라가도 서로가 찾는 추운 곳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충격적 사실. 그토록 고생을 하면서도 내려왔는데,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다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북극곰과 펭귄이 아니다. 이 환상의 짝꿍은 이제 지구 어딘가에 존재할 추위를 찾아 떠난다. ‘검푸른 밤하늘에 특별히 밝게 빛나는 별 하나’를 따라가던 어느 날, 이들은 국도변에서 흰색의 큰 냉동차를 발견한다. ‘유나이티드 피시’(United Fish). 거기엔 연어, 게, 청어, 새우 등 갖은 생선과 사라진 추위가 있었다. “추위는 여기에 있어!”, “인간들이 추위를 훔쳤던 거야”, “이 나쁜 놈들, 나쁜 인간들”(p. 94)

추위가 왜 사라졌는지, 어디에 있는지 확실하게 안 북극곰과 펭귄은 인간 세상으로 진출한다. 그들의 목적? 추위를 찾기 위해서. 방법은 간단하다. 세상의 모든 냉장고에서 추위를 해방시키면 된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몇 날 며칠을 동네 냉장고는 다 열고 다녔는데, 이상하게도 산꼭대기로 돌아오면 여전히 발밑은 질척거렸다. 몸은 녹초가 되고, 아무런 보람도 없다. 또 이들의 습격 소식이 퍼지면서 냉동식품 공장의 모든 출입구는 자동권총으로 무장한 경찰들이 가로 막았다. ‘으앙~’ 정말 울고 싶은 심정이었을 거다. 펭귄은 말한다. “다 소용없어.”(p. 106)


너와 함께, 나와 함께, 우리 모두 함께!


북극곰과 펭귄은 무엇을 해야 추위를 돌려받을 수 있을까. 체질적으로 불을 싫어하는 이들은 촛불시위를 할 수도, 그렇다고 동물원에서의 파업을 선동할 수도 없다. 이때 이들에게 빛을 비춰주는 것은 다름 아닌 희망과 연대의 메시지다. 시계를 되돌려 북극곰이 고향을 떠날 때 ‘어르신 북극곰’과 나눈 대화를 잠깐 들어보자. 당시 북극곰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었다. 어르신 북극곰은 “네가 안 가면 아무도 가지 않을 거야. 우리를 위해 가거라”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위험한 곳에 홀로 가게 생겼는데도 북극곰은 기분이 좋다. “그의 말을 들은 순간 북극곰은 갑자기 지금껏 느끼지 못했던 에너지가 용솟음치는 것 같았다. 근육이 팽팽해지고 가슴은 뜨겁게 타올랐다.”(p. 27) 희망을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희망만으로 세상이 변하지는 않는다. 숱한 시련을 겪으면서 북극곰은 혼자 할 수 있는 게 그리 많지 않음을 깨닫는다. 그 때 만난 이가 펭귄과 동물 친구들이다. 이들은 만남을 통해서 많은 일을 한다. 펭귄은 북극곰을 통해 자신이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고, 동물 친구들과 함께 세상을 바꿀 깜짝 놀랄 일을 준비한다. 여기서 누구하나 빠질 수 없다. 수리부엉이는 절망의 순간에 나타나 북극곰과 펭귄에게 갈 길을 제시해주고, 놀기만 좋아하는 원숭이도 좋은 아이디어를 낸다. 또 새, 벌, 모기 등은 이 프로젝트를 비밀리에 전 세계에 퍼트렸다. 이처럼 동물 친구들은 연대 속에서 세상을 변화시킨다.

용서, 그리고 지금 우리

가장 아름다운 장면을 하나 꼽으라면 동물 친구들과 하이에나의 화해를 들 수 있다. 하이에나는 애초 동물 친구들의 편이 아니었다. 지구가 더워지고, 다른 동물들이 지치면 자동으로 그들의 먹이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이에나들은 ‘세상 변화 프로젝트’에 참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동물 친구들은 하이에나들에게 먼저 손을 내민다. 과거는 과거일 뿐,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데 함께 하자는 것이다. 아직 세상에는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음으로. 동물 친구들의 관용과 아름다운 화해는 ‘인류는 만물의 영장’이란 말을 기억 속에서 삭제하고 싶게 만든다.

<북극곰과 펭귄>은 귀여운 삽화가 들어 있는 우화이다. 책장을 넘기면서 들려오는 그들의 목소리와 머릿속으로 연상되는 그들의 모습이 연신 미소 짓게 만든다. 하지만 책을 뜯어보면 볼수록 우리가 배울 게 많다. 북극곰과 펭귄의 조화는 지역주의, 진보와 보수의 갈등이 만연하는 한국 사회를 꼬집는 듯 하고, 헐뜯기보다 서로 관용으로 대하는 동물 친구들의 모습은 분열 가득한 우리 사회에 필요한 메시지가 아닌가 싶다. 또 포기하지 않는 희망과 모든 이들이 각자의 역할을 할 때 세상은 변할 수 있다는 마음은 오늘 하루의 새로운 동력으로 다가온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여야겠다.

“북극곰아, 펭귄아~ 이번 여름에는 더워도 꾹 참을게~ 시원하게 잘 살렴~”

-안늘(ak2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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