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 해당되는 글 18건

  1. 2014.10.14 바라건대
  2. 2013.11.19 [詩로 물드는 오후] 허연, ‘가시’와 ‘가시2’
  3. 2013.05.09 [詩로 물드는 오후] 최승자,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4. 2012.09.20 [詩로 물드는 오후] 서효인, 가정집
  5. 2012.08.02 [詩로 물드는 오후] 최성수, 서울에 살기 위해
  6. 2012.02.16 [詩로 물드는 오후] 김진완, 기찬 딸
  7. 2010.10.01 [이슈와 추천도서] 가을이 오면, 나는 ‘나’를 읽고 싶어진다. (2)
  8. 2010.09.03 <저녁> - 죽음은 어스름한 저녁 빛을 닮았다
  9. 2009.11.26 <섬> - 외롭지 않다. 나는 자유다 (4)
  10. 2009.10.23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 - 상처받은 이의 쉼 없는 노래 (2)

바라건대

 

사진 출처: 노벨상 공식 홈페이지

 

 

바라건대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노벨상 선정 소식이 들리곤 합니다. 올해에도 어김없습니다. 화학, 물리, 평화, 의학, 경제, 문학까지 각 분야에 걸쳐 수상자를 선정합니다. 분야별 수상자가 알려질 때마다 개인의 영광은 물론 국가의 위상이 드높아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노벨상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마치 로켓 발사를 준비하듯 거대한 ‘카운트다운’ 장치가 작동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전 세계인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는 듯 말이죠.

8일 기준, 생리의학상과 물리학상의 수상자가 발표되었고 이제 남은 4개 분야의 수상자 발표만을 앞두고 있습니다. 기대하는 문학상 수상자는 9일(현지 시간) 발표합니다. “이상적인 방향으로 문학 분야에서 가장 눈에 띄는 기여를 한 분께 수여하라.” 알프레드 노벨은 유언을 통해 문학상의 의의를 짚어주었습니다. ‘기여’라 하면 비단 위대한 한 작품을 뜻하기보다 한 명의 작가가 쓴 작품 전체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사실 역대 문학상 수상자 목록을 살펴보면 고개를 갸우뚱거릴지 모르겠습니다. 프랑스 출신의 철학자 베르그송, 독일 태생의 역사가 몸젠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죠. 20세기 이 전만 해도 ‘literature’ 가 더 광범위하게 해석된 탓입니다. 이때까지는 쓰는 행위 전체를 포함했기에 아름다운 문체와 사상이 담긴 글로써 문학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문학가’에 한정하여 수상하는 것은 20세기 중반부터이고요.

문학상을 발표할 때쯤이면 늘 거론되는 이름이 있습니다. 노벨 문학상 후보로 오른 고은 시인입니다. 고은 시인이 등단한 지 50여 년, 첫 시집인《피안감성》이후,《시여 날아가라》《네 눈동자 》등 지금껏 펴낸 시집만 150여 권에 달하지요. 현재 고은 시인의 작품은 그리스와 아프리카를 비롯해 20여 개국에서 번역되어 전해지고 있습니다.

소쩍새가 온몸으로 우는 동안


별들도 온몸으로 빛나고 있다


이런 세상에 내가 버젓이 누워 잠을 청한다


(고은,《순간의 꽃》中, 문학동네, 2014)

때마침 문학상이 발표되는 9일은 한글날입니다. 1446년 훈민정음 반포 이후, 올해 한글날은 568돌을 맞이하였습니다. 한글 덕분에, 이처럼 빛나는 ‘시’ 또한 우리에게 날아들 수 있었던 것이겠죠. 9일,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에만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수상보다 시인과 시에 더 깊은 관심을 쏟아보면 어떨까요. ‘한글날’이라는 값진 날, 시 한 편을 읊는 것만으로도 나름 문학의, 또는 한글의 의미를 짚어볼 수 있을 테니까요. 노벨의 유언처럼 문학의 ‘이상적인 방향’이란 것 말인데요. 거창하게 말고, 개인에게 있어 아주 소소하게 적용해 보렵니다. 피폐한 현대인의 삶에 위대한 시가 이상적인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기를 바라며.

 

 

연관도서

 

    

 

|Editor_김민경

mins@bnl.co.kr

 

'코너 > 이야기 채집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저문 가을에 삽을 씻고  (0) 2014.11.03
'러버덕'이 뭐기에  (0) 2014.10.28
바라건대  (0) 2014.10.14
당신이 연휴에 TV를 보는 동안  (0) 2014.10.06
친구 할래요?  (0) 2014.09.26
아름다운 식물사회를 위하여  (0) 2014.09.18
Trackback 0 Comment 0

[詩로 물드는 오후] 허연, ‘가시’와 ‘가시2’

가시

 

내 온몸에 가시가 있어 밤새 침대를
찢었다. 어제 나의 밤엔 아무것도 남지
못했고 아무것도 들어오지 못했다
가시는 아무런 실마리도 없이 밤마다 돌아
나오고 나의 밤은 전쟁이 된다.
출구를 찾지 못한 치욕들이 제 몸이라도
지킬 양으로 가시가 되고 밤은 길다.
가시가 이력이 된 날도 있었으나 온당치
않았고 가시가 修辭가 된 적이 있었으나
모든 밤을 다 감당하진 못했다. 가시는
빠르게 가시만으로 완전해졌고 가시만으로
남았다. 가시가 지배하는 밤. 가시의 밤

 

- 허연, 《시인수첩》2013 여름 통권 37호, 38쪽

 

문제는 기억이었어. 망할 놈의 기억, “아무런 실마리도 없이” 불쑥 찾아와서는 평온으로 닿을 수도 있었던 “나의 밤”을, 그 고요를 견딜 수 없는 침묵으로 만들어버렸어. 그래 난 아무도 듣지 못하는 소리를 나만 알아듣고 반응하는 것처럼 철저히 혼자가 되어 무섭도록 외로워져버렸지. 그 밤에 나를 막무가내로 습격한 기억의 조각은 나 이외에 “아무것도” 허락하지 않았거든. 과연 망각이란 내 마음과 생각 따위와 무관하게 독단적으로 진행되는 의식의 흐름이었어. 그것을 간절히 바란다는 건 이미 기억인 것을 다시 기억하는 일에 다름 아닌 거였고. 기억의 반복과 반복된 기억에 의한 깊은 각인이랄까. 마치 단단한 돌 위에 뾰족한 칼로 여러 번 흠집을 내어 글을 새겨 넣듯이. 오히려 말이야. 그렇게 기억의 영역에 굳건히 잔존해있던 “치욕들이 제 몸이라도/ 지킬 양으로 가시가” 되었고. 그런 가시가 “내 온몸에” 돋아 “밤새 침대”만 찢어버렸지. 밤새 이토록 성실히 뒤척이도록. 죽음과 같은 암흑 속에서 살아있는 그대로 치욕으로 음각된 무거운 묘비 밑에 억지로 묻힌 모양새를 하고. 그 밤이 끝나도록, 아침이 올 때까지 묘비의 글씨를 곱씹고 되새기면서. 그 밤, 그 침대 위에서 날이 새도록 몸뚱이를 뒹굴게 했던 가시. 그래 그건, 분명 기억이었어. 

 

가시 2

 

  알약 한 알이 녹는 시간 동안 기억이 훈제가 되는 동안 나의 증언은 계속됐다 블록을 씌운 문자 몇 개가 깜박이면서 나를 재촉했고 나는 가끔씩 눈물을 흘리는 습성과 숨을 몰아쉬는 습성을 털어놓아야 했다 검은 점 몇 개로 나의 이름을 만들고 몇 번의 손가락질로 나의 상태를 증언해야 했다

 

  잠 속에서 셀 수 없이 많은 가시가 돋아나는 것에 대해서도 말해야 했다 누구도 나에게 오지 못하고 내가 누구에게도 가지 못하는 그 가시의 시간에 대해서도 말해야 했다 가시의 시간은 길었으며 고통스러웠고 아무것도 보듬지 못했다고 가시 알레르기까지 고백한 그 시간은 어둡고 길었다

 

  나는 생리 중인 방의 주인이 내민, 이제는 단종된 푸른 줄이 그어진 노트에 사인을 하고 일어났다 쓴맛을 다 본 소년처럼

 

  그래도
  이제는 가시가 나를 지탱하고 있다고
  그 말만은 끝내 하지 않았다

 

- 허연, 《시작》, 2013 여름 통권 45호, 128쪽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 (anejsgkrp@bandinlunis.com)



Trackback 0 Comment 0

[詩로 물드는 오후] 최승자,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최승자 |《즐거운 일기》| 문학과지성사 | 1984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한 숟갈의 밥, 한 방울의 눈물로
무엇을 채울 것인가.
밥을 눈물에 말아먹는다 한들.

 

그대가 아무리 나를 사랑한다 해도
혹은 내가 아무리 그대를 사랑한다 해도
나는 오늘의 닭고기를 씹어야 하고
나는 오늘의 눈물을 삼켜야 한다.
그러므로 이젠 비유로써 말하지 말자
모든 것은 콘크리트처럼 구체적이고
모든 것은 콘크리트 벽이다
비유가 아니라 주먹이며
주먹의 바스라짐이 있을 뿐.

 

이제 이룰 수 없는 것을 또한 이루려 하지 말며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죽는 게 아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살아,
기다리는 것이다
다만 무참히 꺾여지기 위하여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내 몸을 분질러다오
내 팔과 다리를 꺾어

 

 



 




오.


이 절망을 어쩔까요. 원한 적 없이, 냅다 주어진 목숨이 아닙니까. 나는 말이죠. 오늘도 어김없이 살아요. 어제는……, 말하고 싶지가 않아요. 잘 말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요. 하지만 무엇이든 무엇으로든 말하긴 해야겠어요. 한 숟갈의 밥을 목구멍으로 또, 집어넣으며 나 홀로, 최초부터 이미 홀로인 그대로, 끼니때마다 이 몸을 배경으로 재상연 중인, 생(生)이라는 사태의 이 가혹한 몰골을. 그러니까 사랑은, 아무것도 아니었고 아무의 것도 될 수 없는 비유인 것으로, 그것은 그저 원초적인 결핍을 연거푸 들추고 착각과 망상에 근거한 상실에 젖게 할 뿐, 나  대신 밥을 먹어주지도 눈물을 삼키지도 못하는 무능력의 초능력자임을, 내 진작 알아 언제적부터 “이룰 수 없는 것을 또한 이루려 하지 말”아야 했던 것을 “이제”서야 “이제”라고 마음먹게 하는 무책임으로 말미암아, 그래도 살아, 이것이 지속하는 생이 장착한 고도의 트릭이었던고로, “다만 무참히 꺾여지기 위하여”만 나는 기다리고.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내 몸을 분질러다오” 마침내, 내 몸피에 갇힌 이 절망을 말하지 않고도 말할 수 있는 말로써, 팔과 다리가 꺾여 네 꽃병에 꽂힌 채로, 죽지 않고 살고 사랑함으로, 이 몸으로 절절히 절망을 체현해내도록. 그 정도는 나에게.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 (anejsgkrp@bandinlunis.com)




Trackback 0 Comment 0

[詩로 물드는 오후] 서효인, 가정집

 

 

서효인 |《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 민음사 | 2011

 

가정집

 

  그런 게 있습니까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 시원한 집

 

  그곳에는 가정집이 있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집주인 아줌마, 요크셔테리어, 부동산 중개업자, 형광등, 길 고양이, 마을버스가 모두 그랬다 잠 속에서 나는 용달차를 불렀고 귀히 여기던 양장본들을 버렸다 게슴츠레한 요의에 잠의 손을 뿌리치면 창이 없는 방에서 또 다른 골목이 둥그런 지도를 그렸다 습기였다 나는 최대한 건조해지기 위해 입을 다물고 기지개를 켰다 겨울은 늦여름 엿처럼 늘어지고 있다

 

  오래오래 잘 수 있는 방이었다 골목에 줄을 긋고 있노라면, 엎드린 자세 뒤로 누가 쫓아오는 것 같았다 잠이었다 잠에서 깨어나면 방은 여전히 어두웠다 해진 칫솔처럼 머리가 아팠다 어둠의 호위를 받는 그를 방으로 쫓아내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잠과 잠이 손에 손을 잡고 방과 방을 차지했다 집이 아니기 때문일까 나는 잠자코 있어야만 했다 늦은 눈이 내린다 골목의 뒤가 퉁퉁 붓고 있다

 

  이 모든 게 가정집 때문이다 앞으로는 불가능에 관해서만 논하기로 한다 역에서 걸어 3분, 공화당의 금연 선언, 착한 어린이, 수리한 싱크대, 단식하는 개, 친절한 이웃, 그런 게 있습니까?

 

  겨울은 진득하게 늘어지고 더위는 엿같이 풍성할 것이다
  가정집을 찾아야 하는데
  대답이 없다

 

가진 것 없는 이에게 세상은 더 가혹한 법이다. 그리고, 그 사실이 더 서럽게 느껴지는 건, 다름 아닌, 내 집에서다. 바깥세상으로부터 나를 지켜줘야 할 내 보금자리 말이다. 세가 싸면 쌀수록 집은 더 밑으로 혹은 더 위로 올라가기 마련이다. 반지하, 지하, 또는 옥탑. 가파른 오르막 길 양옆으로 기울어지지 않는 게 더 신기해 보이는 집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그 길을 오르고 또 오른다. 그래야 비로소 내가 살 집이 나온다. 하늘과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낭만적 언사는 때려치우자. 길고 긴 여름과 겨울, 그 어디에도 낭만이 비집고 틀어갈 틈이란 없다. 생활은 재미가 아니다. 특히 온도와 습도가 엉망이다. 겨울은 춥고 건조하고 여름은 덥고 습하다. 도무지 중간이란 게 없다. 그냥 극에서 극이다. 가정집이 되지 못한 방들이 그렇다. 그 방에서 누군가는, 억지로 물속에 처박힌 듯, 깨어나지 못한 채 연거푸 잠의 무게에 짓눌리고 있다. '불가능에 관해서만 논'해야 하는 현실, 그 안에서, 그 누군가는, 가능하지 않은 것들만이 가능한 이야기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싸구려 커피가 생각난다.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 미지근해 적잖이 속이 쓰려온다/ 눅눅한 비닐 장판에 발바닥이 쩍 달라 붙었다 떨어진다/ 이제는 아무렇지 않어/ 바퀴벌레 한마리쯤 쓱 지나가도/ 무거운 내일 아침엔 다만 그저 약간의 기침이 멈출 생각을 않는다/ 축축한 이불을 갠다/ 삐걱대는 문을 열고 밖에 나가본다/ 아직 덜갠 하늘이 너무 가까워 숨쉬기가 쉽지를 않다 수만번 본 것만 같다/ 어지러워 쓰러질 정도로 익숙하기만 하다/ 남은 것도 없이 텅빈 나를 잠근다 (장기하와 얼굴들, 싸구려 커피)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 (anejsgkrp@bandinlunis.com)




Trackback 0 Comment 0

[詩로 물드는 오후] 최성수, 서울에 살기 위해

 

 

서울과 노동시 기획위원회 엮음 | 《서울과 노동시》| 실천문학사 | 2010

 

서울에 살기 위해

 

서울에 살기 위해 아침마다 머리를 빗는다
불거진 베갯자국을 지우고, 물칠도 조금 하고
나의 가리마는 왼쪽, 부드럽게 빗어넘긴다
오늘도 하루를 무사히― 머리를 다듬듯
차근차근 넘기기로 한다
붐비는 버스 타고 마이동풍 우이독경의
아침 방송을 들으며 떠나는 나의 시간은 0시
창경궁이 복원되고 국립 중앙박물관은
총독부 건물이던 중앙청으로 옮겨지고
(기이하게도 이것들은 모두 식민지 시대를 연상시킨다)
이 새벽 늘어선 행렬을 바라보는 나의 시계도 0시
                          생각 : 외출중
                          말 : 출타중
                          모든 일은 어제와 동일
갈아타려는 버스는 더러 그냥 지나쳐버리고
주먹으로 한 대 열리지 않는 문을 내지르기도 하지만
너무 흥분하지는 말 것 아무것에도 신경 쓰지 말고
되지 않는 소리로 공자왈 맹자왈 떠들다
소금에 절인 무청으로 돌아오는 저녁
건물 너머로 길게 눕는 검은 노을
돌아보면
서울에 살기 위한 내 하루 노동의 대가도
0

 

- 《장다리꽃 같은 우리 아이들》, 실천문학사, 1990

 

노동자의 하루가 지나간다. 하루, 또 하루, 매일이 같은 날들이 하나의 목적에 매달려 흘러간다. 서울에 살기 위해, 서울에 살기 위해, 서울에 살기 위해. 아무리 되뇌어도 잘 모르겠다. 서울에 산다는 게 도대체 뭔지. 아니다. 실은 잘 모르게 돼버린 것이다. 서울 아닌 곳에서 서울에 사는 걸 생각하는 것과 서울에 살면서 서울에 사는 걸 생각하는 게 달라진 까닭이다. 서울특별시, 삶의 전 영역을 아우르는 대한민국의 중심, 이름 있는 대학에 들어가 이름 있는 기업에 들어간 후 그 이름들 달고 살아보려던 꿈들의 무덤. 사람 아닌 노동자 되어, 아니 그마저도 쉽지 않은 이들의 빼앗긴 이름이 묻힌 생무덤. 그러니까 이제, 서울에 산다는 건 뭐냐. 산다는 건 도대체 뭐냔 말이다. 그럼에도 여태껏 서울을 떠나지 않고, 또 다시 서울에 살기 위해 고스란히 하루를 바치고 있는, 나는 누구냐, 이 말이다. 질문들이 생겨난 지 오래임에도, 무시로 지나치며 대답을 유예한 채, 목적에 목매어 있는 나는, 그러므로 내 지난 시간은, 그리하여 그 시간의 의미값은 “서울에 살기 위한 내 하루 노동의 대가”가 그렇듯, “0”

 

“돌아보면”, 이 모든 말과 글과 생각의 대가도

“0”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 (anejsgkrp@bandinlunis.com)




Trackback 0 Comment 0

[詩로 물드는 오후] 김진완, 기찬 딸


 

김진완 | 《기찬 딸》 | 천년의시작 | 2006

 

   기찬 딸

 

 

   다혜자는 엄마이름 귀가 얼어 톡 건들면 쨍그랑 깨져버릴 듯 그 추운 겨울 어데로 왜 갔던고는 담 기회에 하고, 엄마를 가져 싸아한 진통이 시작된 엄마의 엄마가 꼬옥 배를 감싸쥔 곳은 기차 안, 놀란 할아버지 뚤레뚤레 돌아보니 졸음 겨운 눈, 붉은 코, 갈라터진 입술들뿐이었는데 글쎄
   그게, 엄마 뱃속에서 물구나무를 한번 서자,

 

   으왁,

 

   눈 휘둥그런 아낙들이 서둘러 겉치마를 벗어 막을 치자 남정네들 기차배창시 안에서 기차보다도 빨리 ‘뜨신 물 뜨신 물’ 달리기 시작하고 기적소린지 엄마의 엄마 힘 쓰는 소린지 딱 기가 막힌 외할아버지 다리는 후들거리기 시작인데요, 아낙들 생침을 연신 바르는 입술로 ‘조금만, 조금만 더어’ 애가 말라 쥐어트는 목소리의 막간으로 남정네들도 끙차, 생똥을 싸는데 남사시럽고 아프고 춥고 떨리는 거기서 엄마 에라 나도 몰라 으왕! 터지는 울음일 수밖에요

 

   박수 박수 “욕 봤네이” 외할아버지가 태우신 담배꽁초 수북한 통로에 벙거지가 천장을 향해 입을 딱 벌리고 다믄 얼마라도 보태 미역 한 줄거리 해 먹이자, 엄마를 받은 두꺼비상 여편네가 피도 채 덜 닦은 손으로 치마를 걷자 너도 나도 산모보다 더 경황없고 어찌 할 바 모르고 고개만 연신 주억였던 건 객지라고 주눅 든 외할아버지 짠한 마음이었음에랴 두말하면 숨가쁘겠구요…… 암튼, 그리 하야 엄마의 이름 석 자는 여러 사람의 은혜를 입어 태어났다고 즉석에서 지어진 것이라

 

   多惠子

 

   성원에 보답코자
   하는 마음은 맘에만 가득할 뿐

 

   빌린 돈 이자에 치여
   만성두통에 시달리는
   나의 엄마 다혜자 씨는요,

 

   칙칙폭폭 칙칙폭폭 끓어오르는 부아를 소주 한잔으로 다스릴 줄도 알아
  “암만 그렇다 케도 문디, 베라묵을 것 몸만 건강하모 희망은 있다!”

 

   여장부지요
   기찬,
   기- 차- 안 딸이거든요

 

“딸래미, 생일 축하해!”
“엄마도 나 낳느라 애썼어.”
“아직 안 태어났는데.”
“뭐?”
“지금쯤 막 나오려고 하고 있겠다.”

 

생일을 맞으면 그날 오후 일곱 시 무렵에 전화가 걸려옵니다. 발신자는 대개 어머니. 과거형과 미래형이 뒤섞인, 조금은 희한한 축하 인사를 건네지요. 출생 시각은 일곱 시 오십 분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저를 낳을 때는 진통이 더욱 길게 느껴졌다고 합니다. 당시 살던 산간벽지에서 꽤 고생을 하셨다지요. 수박 두 덩이가 굴러 들어오는 태몽을 꾸었다더니, 저는 그만한 머리통을 들이밀고 세상에 나오려고 했던 것일까요. 매번 처음 듣는 것처럼 탄생 비화에 귀 기울입니다. 언젠가는 첫 울음을 선명하게 기억해낼 것처럼 말이에요.

 

옛 이야기와 함께 깊어가는 생일 밤, 지구와 다른 차원의 별을 생각합니다. 그곳에서는 시간이 지금보다 이십여 년 뒤쳐져 있습니다. 어머니의 말대로라면 제가 ‘지금쯤 막 나오려고’ 하겠지요. 재밌는 일은요. 이쪽의 시간이 차츰 더해질수록 그 별의 시간은 뒷걸음질 한다는 겁니다. 탄생 비화의 당사자가 생을 다한 이후에도요. 지구인들은 방부제보다 대단한 기술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것은 구전口傳입니다. 엄마의 엄마로부터 전해지는 탄생 비화를 노래한 <기찬 딸>에서도 확인할 수 있지요. 구전의 쫀득쫀득한 말맛을요!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hebong2000@bandinlunis.com)




 

Trackback 0 Comment 0

[이슈와 추천도서] 가을이 오면, 나는 ‘나’를 읽고 싶어진다.

 

오랜만에 모두에게 찾아온 긴 연휴를 지내고 나니, 이제 완연한 가을이 와 있는 듯합니다. 번잡한 마음을 추스르고, 몸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있지만, 공연히 창밖으로 애꿎은 시선을 보내게 되는 건, 비단 저만이 아니겠지요. 늦은 밤 평소에 좋아하던 음악을 틀어놓고 마냥 뒹굴어도 좋겠고, 느긋하게 "책상 앞에서 詩集들을 뒤적이"며, "詩의 행간들 속에서 고요가 피어오"르는 걸 보아도 좋겠다, 생각합니다. 한 해의 반 이상을 꼬박 살아낸 우리가, '가을은 낭만의 계절'이라는 낯간지러운 말을 핑계삼아 스스로에게 얼마간의 여유를 주는 것도, 저물어가는 해年와 함께 스스로를 정리할 수 있는 작은 시작이 될 테니까요.

 

 

 

 

「어떤 풍경」

 

고요한 서편 하늘

해가 지고 있습니다

건널 수 없는 한 세계를 

건넜던 한 사람이

 

책 상 앞에서 詩集들을 

뒤적이고 있습니다

 

그가 읽는 詩의 행간들 속에서

고요가 피러오릅니다

그 속에 담겨 있는

時間의 무상함

 

(어떤 사람이 시간의 詩를

읽고 있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최승자, 『쓸쓸해서 머나먼』, 문학과 지성사, 2010, 65쪽 

  

“시집들을 뒤적이”는 일은, 이제까지 미처 알지 못했던 내 안의 언어를 찾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 내 안에 있었지만, 그에 맞는 언어를 갖지 못했던, 어떤 감정과 생각들의 맨얼굴을 보고 싶을 때. 내가 나를 설명하지 못하는 무능력을 절감할 때. 그때야 비로소 추상과 이미지로 열려 있는 시의 세계가, 객관에 지배되는 일상의 우리에게, 간절한 필요로 다가오는 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일상적 삶은 '느낌'에서 '사실'로, '위험'에서 '안전'으로의 끊임없는 이행이다. 예술이 진정한 삶을 복원하기 위한 시도라면, 예술은 일상적인 삶과는 반대 방향을 진행할 것이다. 즉 사실에서 느낌으로, 안전에서 위험으로."  - 이성복,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 문학동네, 2001

 

늘 보고 듣고 느껴왔던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해, 그 생경함으로 '사실'과 '안전'의 지대에 안착한 일상을 뒤흔들고, 자발적인 혼란에 처하는 일. 그게 바로, 시를 읽고, 시에서 타인을 읽으며, 타인을 통해 다시 나를 읽는 방법이 아닐까요. 그러나 '시 읽는 철학자' 강신주가 강조해 말하듯, 이와 같이 "진정한 삶을 복원하기" 위해, "삶을 낯설게 하는" 것은 비단 예술과 시의 역할만은 아닙니다. 다시 말해, "일상적 세계를 동요시키고 낯선 세계를 도래시키는 힘"은 "개념들을 창조하고 그것을 논리적으로 엮음으로써 새로운 사유 문법을 만드는" 철학 또한 충분히 지니고 있는 것일 테니까요.

 

그러니 이 '가을의 낭만'이 자연스럽게 추동하는 "진정한 삶을 복원하기 위한 시도"를 위해, '우리 시에 비친 현대 철학의 풍경'을 그리고 있는 강신주의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을 따라가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가을의 낭만에 기대어 내 자신을 설명해줄 언어를 찾아 헤매다 만난 이 책을 권합니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이즈음이 되면, 그 사이 무감하고 무던해져 버린 일상 속에서, 작년 이맘때쯤과 다른 '오늘의 나'를 찾고 싶어지는 모든 분들에게.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

 


Trackback 1 Comment 2

<저녁> - 죽음은 어스름한 저녁 빛을 닮았다

송기원, <저녁>, 실천문학사, 2010 


생(生)과 사(死)를 구분해, 생을 얻은 순간에 ‘시작’을, 잃은 순간에 ‘끝’이라는 말을 덧댄 의식에 ‘내’가 있다. 나 이전에 시작은 없었고, 나 이후에는 끝도 없을 텐데, 살아 있기 때문에 죽음을 생각할 수 있는 나는, 내가 없는 과거와 미래의 시간에서조차 나를 잃을 줄 모른다. 내가 있고 난 후에 줄곧 나와 함께 했던 생이고, 내 몸에 들러붙어 떨어질 줄 모르는 생이다. 애초에 나와 무관하게 주어진 생이 당연하게 생각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잊고 싶은 건 많지만 어느 것도 잃고 싶어하지 않는 마음이, 그 생에 매달려 있는 끈질긴 집착을 낳는다. 그 집착이, '끝'이 지닐 수 있는 가뿐함을 지우고, 그 자리에 아쉬움을 가득 채워 죽음의 무게를 더한다. 그러니 생의 무게 또한 덩달아 무거워지지 않을 수 없다. 

 

「몸」

참 오래 몸에 머물렀다.

주인인 듯 내가 머무는 동안에, 몸은
벼라별 모욕을 다 겪고, 몇 군데는
부러지고 꺾이고 곪아서, 끝내
만신창이가 되었을 거다.

귓구멍에 감창이 들어차고
뱃구레 가득히 욕지기가 출렁거려
똥구멍이 미어지는 수모를 견대고야, 비로소
몸이 나를 버렸을 거다.

이제 나는 몸이 없는 곳을 떠난다.

그렇게 몸이 없이 사방을 돌아보면, 아아,
몸 이외에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몸이 없는 곳에는 그 어떤 것도 없구나.

-66쪽, 「몸」전문

 

“몸이 없이 사방을 돌아보면”이라는 가정으로 죽음을 상상해본다. 몸 이외에 아무것도 아닌 나를 생각하니, 처음에는 이 몸의 허망함이 먼저 찾아오더니, 그 다음에는 무중력의 가뿐함이 서서히 다가오는 듯하다. 잊고 싶었지만 잊히지 않았던 많은 것들이 그 몸에 새겨져 무게를 더했던 모양이다. 더욱이 “몸이 없는 곳에는 그 어떤 것도 없”다니, 생을 잃을 아쉬움뿐 아니라, 나를 고집하는 의식 따위가 머무를 데 없다. “태어나 첫 숨을 들이마실 때에도 첫 숨만큼 나는 죽었”고 “날아라 새들아 푸른…… 일곱 살 푸르른 때도 십 분의 얼마만큼 나는 이미 죽었”으니, 서른 해 가까이 살아온 나는 “참으로 열심히” 죽어, 그 몸의 무게를 덜어온 것이 아닐까. 그리하여 “죽음의 상상력으로 숨 쉬는 生”이 이리도 가벼울 수 있음을 짐작해, 낮 동안 뜨겁게 생을 달구던 빛을 지나 어스름한 저녁 빛처럼 다가오는 죽음 또한 기꺼이 생각해 볼 일이다.

 

「저녁」

새의 그림자가 길게 끌고 가는 것은 누구일까

땅거미가 야금야금 갉아 먹는 것은 무엇일까

붉은 옷의 승려가 사는 서녘에서는

마지막 시체가 연기를 피워 올리고

떠난다거나 다시 돌아온다는 것도

이미 먼 세상의 일이다

서른세 번, 망자를 거두는 종이 울리면

어렵사리 네가 붙잡은 나마저 사라진다

-43쪽, 「저녁」전문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

 

 

9월 1주 반디 추천책

이성적 낙관주의자
빵과 장미
그들이 위험하다
공유의 비극을 넘어
두더지 지식클럽
나는 반대한다
왜 사람들은 싸우는가?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 장정일의 독서일기
밀수록 다시 가까워지는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1 -세계문학의 숲 1

 

 


Trackback 0 Comment 0

<섬> - 외롭지 않다. 나는 자유다

 

정현종, <섬>, 열림원, 2009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17쪽, ‘섬’)

섬은 외롭다. 망망대해 떠있는 섬, 곁에 친구 섬 있다 하더라도 그 사이엔 수이 건널 수 없는 쪽빛 심연이 있다. 섬은 우리를 닮았다. 아니 우리가 섬을 닮았나? 날로 외로워지는 인간은 오래 전부터 외로운 섬을 닮아간다. 서로 닿지 못해 탄식하는 섬의 한숨. 인생의 반은 견뎌야하는 인간의 쓸쓸함. 그런데 정현종 시인은 그 섬에 가고 싶다 한다. 둘 중 하나다. 외로움을 견디는 유전자를 체득했든지, 아니면 다른 섬을 꿈꾸든지.

정현종 시인의 시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뭔가 끊임없이 만나 속살거리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는 ‘바알간 불꽃의 감나무에 달려가 환하게 환하게 열리’고(‘환합니다’), ‘도토리가 톡 떨어져 굴러가는 도토리나무의 안부가 궁금해 뒤를 돌아본’다.(‘안부’) 또 ‘나무는 그 잎 위에 흘러내리는 햇빛과 입맞추며, 그 위에 내리는 비와 뺨 비빈’다.(‘사물의 꿈1’) 그래, 외롭다 외롭다하여 주저앉아 있으면, 서로 닿을 수 없겠지. 섬의 뿌리도, 사람의 외로움도 한 없이 깊으니까. 그 무게를 온전히 들고 일어나야만 손끝은 낯선 설렘을 마주할 수 있다.
 


(이미지 제공 - 열림원)


‘너’와 ‘내’가 마주선다 하여 고민이 사라지고, 외로움이 다하는 건 아니다. 우리네 삶이 ‘의지’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노 시인이 모를 리 없다. 우리는 끝없이, 끊임없이 떨어지고, “나는 반짝인다”고 노래하기 위해서는 ‘그대 별의 반짝이는 살 속으로 걸어들어가 노래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그대는 별인가’) 그런데 사람 사는 게 참 얄궂은 것이 어느덧 ‘지나친 마음씀’이 고개를 든다. 외로울 때는 몰랐던 집착 같은 사랑. 사랑이란 이름의 아픔. 아픔 끝자락에 매달려 있는 또 다른 외로움….

지나침이 살포시 고개를 들 때까지만 해도 모른다. 문득 찾아오지만.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 외로움에 너무 아파 지금 여기만 벗어나면 될 줄 알았는데, 과한 마음은 날 선 칼날을 불러온다. 이는 시인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어디 우산 놓고 오듯 / 나를 놓고 오지도 못하고 / 이 고생이구나 // 나를 떠나면 / 두루 하늘이고 / 사랑이고 / 자유인 것을”(99쪽, ‘어디 우산 놓고 오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현종 시인은 노래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생명은 숨 쉬기를 멈추지 않기에. ‘강물은 우리의 피요, 바람은 우리의 숨결이며, 흙은 우리의 살’이다. 또 ‘나무는 구름을 낳고, 구름은 강물, 강물은 새들을, 새들은 바람을, 바람은 다시 나무를 낳는’다.(‘이슬’) 어느 곳 하나 쉽게 끊을 수 없는 생명의 무한 순환고리, 고리 속 어딘가에 있을 J에게 시인은 고백한다.

너는 내 속에서 샘솟는다
갈증이며 샘물인
샘물이며 갈증인
너는 내 속에서 샘솟는
갈증이며
샘물인
너는 내 속에서 샘솟는다

(111쪽, 갈증이며 샘물인 - J에게)
 


(이미지 제공 - 열림원)


이번 출간된 정현종 시인의 시선집 <섬>은 열림원의 ‘그림이 있는 포에지’ 시리즈의 첫 결실이다. 짙고 푸른 <섬>에는 정현종 시인의 시 30여 편과 시인이 직접 그린 그림들, 자필 원고가 함께 있다. 시인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니체, 그가 사랑하는 시인 파블로 네루다, 가르시아 로르카의 초상화, ‘움직임’이 만든 화석들, 그리고 숱한 시를 노래했던 그의 손 드로잉까지. 시와 그림이 한데 모인 <섬>은 외롭지 않다. 오생근 문학평론가가 귀띔해준 정현종 시인의 모습으로 <섬> 여행을 마친다.

“‘바오밥 나무’라는 작은 커피숍에 간 적이 있었다. (…) 마침 그날 커피를 마시던 중 들려온 음악 중에 <희랍인 조르바>가 있었다. 이 음악을 듣는 순간, 얼마 전 TV에서 본 카잔차키스의 묘비에 적힌 ”나는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다. 나는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라는 글귀가 떠올랐다. (…) 정현종 시인도 영화의 그 장면이 생각났는지 앉은 자리에서 잠시 두 팔을 들고 흥겹게 춤추는 동작을 취했다.”(139~140쪽, 발문 ‘날자, 행복한 영혼들이여’)

                                                                                                            -반디(ak20@bandinlunis.com)

Trackback 0 Comment 4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 - 상처받은 이의 쉼 없는 노래

 

박후기,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 창비, 2009


여린 사내가 있다. 지나간 사랑을 잊지 못해 깊은 밤 그녀를 노래한다. 지금은 어둠과 찬바람만 가득하지만 어느 시절 그의 사랑은 그저 떨렸을 것이다. “떨림이 없었다면 / 꽃은 피지 못했을 것이다 / 떨림이 없었다면 / 사랑은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다 / 그러나 떨림이 마음을 흔들지 못할 때, / 한시절 서로 끌어안고 살던 꽃잎들 / 시든 사랑 앞에서 툭, 툭, 나락으로 떨어진다”(92~93쪽, ‘꽃기침’에서)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십일 넘어 붉게 아름다운 꽃은 없다. 그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그는 이미 시든 자신의 사랑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슬프다. 사랑은 꽃이 아니기에. 꽃은 내년에 다시 피지만, 사랑은 언제 다시 필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영원히 피지 않을지도….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나간 시간에 편지를 보낼까, 아니면 보이지 않는 그녀를 향해 소리쳐볼까. 스스로 위로도 해본다. “너를 생각하면 / 얼어붙은 뺨보다 가슴이 더 시리지만, / 사랑을 잃고 산길을 헤매는 사람끼리 / 체온을 나누어갖는 밤도 슬프진 않다 / 어차피 네게로 가는 길도 지워졌으리라” (14~15쪽, ‘비박’에서)

하지만 사랑은 빠지는 것. 이성의 방식대로, 심장의 충동대로 사랑에 빠질 수 없다. 사랑은 선택이 아니었기에, 이별은 더더욱 선택이 아니었기에, 위로는 가슴 속 깊은 상처에 닿지 못한다. 치유되지 않는 상처, 위로되지 않는 아픔. 아직 사랑이 다 지나가지 않아서 그런 걸까. 여전히 숨 쉬고 있는 사랑 앞에서, 차라리 거짓말을 사랑하리라.

침묵은
말 없는 거짓말,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
살아야 하는 여자와
살고 싶은 여자가 다른 것은
연주와 감상의
차이 같은 것
건반 위의 흑백처럼
운명은 반음이
엇갈릴 뿐이고,
다시 듣고 싶은 음악은
다시 듣고 싶은
당신의 거짓말이다.
(66쪽, ‘사랑-글렌 굴드’)

여린 사내의 여행

여린 사내가 여행을 떠난다. 그는 그녀를 사랑하듯 세상을 사랑해, 몸을 자리에 쉽게 누일 수 없다. 그는 분명 아픔을 경험한 사람이다. 세상의 화려한 불빛이나 문명의 풍요로움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가로등 밑 공중전화에서 전화카드 돈 떨어지는 소리고 눈 덮인 히말라야 산맥 아래 고향집 대문을 두드리는 불법체류자들’과 ‘간수 같은 누런 오줌을 가랑이 사이로 줄줄 흘러내리는 요양원의 치매 걸린 노인’이다. 아픔은 그렇게 아픔을 알아보나 보다. 그리고,

  저개발지구에서는 꽃들도 난간 위에서 피고 진다. 버려진 꽃들이 생사의 경계 위에서 목을 길게 빼고 망을 본다. 가끔, 발을 헛디딘 꽃잎이 난간 아래로 추락하기도 한다.
  지상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난간 위에 망루를 세웠다. 망루가 서 있던 난간은 무너진 하늘의 일부였다. 그곳은 철거민들의 소도(蘇塗)였지만, 관리들은 용산 4지구라고 불렀다. 누군가 망루에 불을 질렀고, 시커멓게 타버린 사람들이 들것에 실려 급하게 이승을 빠져나갔다.
(44쪽, ‘난간에 대하여’에서)

그의 여행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의 마음이 산 너머 먼 이국으로 향했는지, 아니면 그곳의 절규가 바다 건너 이곳으로 왔는지, 그는 다시 아픔을 노래한다. 노래는 멈추지 않는다. 두 눈 부릅떠 아픔을 바라보며, 노래를 멈추지 않는 걸 보니, 그는 여리지 않다. 다만 아픔을 외면할 수 없어, 슬픔을 노래할 뿐이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죽은 자도 검문소를 통과해야 비로소 죽음에 닿을 수 있다. 포탄에 맞아 이마가 함몰된 도로를 우회하는 것은 산 자나 죽은 자 모두에게 익숙한 일이다. 앰뷸런스는 죽음보다 늦게 도착하고, 소녀는 무너진 발전소를 지나 집으로 간다. 살랑거리는 촛불을 사이에 두고 동생과 숙제하는 밤은 행복하다. (59쪽, ‘소녀들’에서)

‘살랑거리는 촛불을 사이에 두고 동생과 숙제하는 밤은 행복하다’는 이 거짓말 같은 현실. 사내는 ‘당신의 거짓말’을 사랑한다. 아마 그는 ‘세상은 평화롭다’는 거짓말도 사랑할 거다. 반디(ak20@bandinlunis.com)

Trackback 0 Comment 2
prev 1 2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