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식'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4.08.25 《송창식 16집》 - 요즘 음악
  2. 2014.08.18 《송창식 골든 제2집》 - 예술가들에게 송창식이란
  3. 2014.08.11 《송창식 골든 제3집》 - 송창식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2
  4. 2014.08.04 《송창식 골든 제1집》 - 송창식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5. 2014.07.28 《송창식 골든앨범: 그대 있음에, 새는》 - 송창식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송창식 16집》 - 요즘 음악

 

 

송창식 | 《송창식 16집》 | 로엔엔터테인먼트 | 2000

 

 

7월 25일부터 5주간 매주 금요일 박재현의 < 송창식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를 소개합니다. 이 글은 독립잡지 [월간 이리] 2014년 3월호부터 7월호에 연재된 글입니다.  이후 새롭게 이어지는 글은 월간 이리를 통해 만날 수 있습니다.

 

 

비트가 멜로디에 앞서는 요즘, 음악에 사실 흥미가 없다. 게다가 멜로디 역시 유치하거나 짧게 반복하는 ‘후크송’ 위주라 오래 듣고 있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현재 가요계엔 작곡가들이 몇 없는지 대부분의 곡이 비슷하게 들린다.

 

밤새 혹은 몇 주 동안 고민해 곡을 정성스럽게 만드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체로 붕어빵 구워내듯 컴퓨터로 쉽게 곡을 만든다. 팥의 양이 아주 조금씩 다른 붕어빵처럼 입력하는 소스에 따라 다른 곡이 무더기로 만들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대중의 기호에 맞춘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래도 작곡가들에게는 항상 아쉬운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송창식은 요즘 음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나는 요즘 후배들 음악이 어떤 것 같으냐고 물어봤다. “컴퓨터 음악이죠. 전혀 다른 식으로 표현하는 것 같아도 옛날에 섬세하게 표현하던 음악과 같은 가치를 갖게끔 변했으니까 어떤 게 더 좋다곤 말 못하죠. 단지 시대에 따라 변한 거지. 그리고 옛날 가수들보다 지금 가수들이 노래 못하지 않아요. 잘하지. 단지 옛날 가수들이 가지고 있던 고 맛은 없지. 근데 옛날 가수들은 요즘 가수들이 꼭 가지고 있는 게 없었지.”

 

나는 그의 말에 “제 세대도 그렇고 요즘 노래는 노래 같지 않다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똑같은 말이 반복되는 가사에 내용도 없잖아요.”라며 의견을 표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그건 듣는 사람이 만족을 못 해서 그런 거지. 실제로 그거 가지고 만족하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그거만 가지고도 충분히 광란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고요. 그러니까 안 그런 사람들은 취향이 다른 거지, 뭐. 옛날에 우리 노래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저 뭐야, 옛날에 뽕짝 좋아하던 분들은 ‘저거 너무 시끄럽고 복잡하다.’ 그러는 분들도 많았어요. 그런 건 언제든지 있어요. 같은 세대 중에도……. 그리고 우리가 음악을 할 때도 미국 음악이라는 게 같이 있었으니까. 솜씨로 봐서 미국 애들한테 안 되니까. 그 솜씨만 가지고 한국 가수는 가수로 안 치는 우리 또래 친구도 많았어요. 그게 무슨 음악이냐 그러고……. 외국 음악만 좋아하고 한국 음악은 안 좋아하는 그런 계층들이 있었어요, 그때도. 그러니까 할 수 없는 거지, 그거야. ‘지금 음악은 음악 같지도 않다.’ 그렇게 말하면 더 음악 같은 다른 음악을 좋아하는 거지, 뭐. 그렇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지금 음악 좋아하잖아요. 일단 싸이 같은 애들 봐요. 그런 가수 우리나라에 있었나? 없었는데. 물론 매체의 장점이 있었지만…….”

 

역시나 그다웠다. 내 예상과는 조금 다른 대답이었다. 그는 지금의 대중음악을 시대의 현상으로 바라보며 그 자체를 인정했다. 자신이 활동하던 시기의 음악과 형식이 다를 뿐이지 수준을 논할 수는 없다는 말이었다.

 

두 음악을 거의 같은 위치에 놓고 바라보는 그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 역시 젊은 시절에 기성세대 혹은 외국 음악만 취급하는 사람들에게 비슷한 말을 들었으니 어쩌면 누구보다도 더 이해가 큰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유를 막론하고 ‘시대’라는 숲을 멀리서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 박수를 보냈다. 그 덕에 나 역시 요즘 음악을 바라보는 눈이 미약하게나마 너그러이 변했다.

 

시간이 흘러 또 어떤 음악이 세상을 울릴지 모르겠지만, 이왕이면 붕어빵식의 공산품보다는 공이 깃든, 세상에 하나뿐인 음악이 중심이 되었으면 좋겠다. 송창식의 그것처럼 음악에 대한 열정과 거기서 파생된 진보적인 시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말의 개성이나마 묻어 있길 바라본다.

 

물론 이러나저러나 난 송창식을 리스트의 맨 윗줄에 올려놓을 테지만.

 

덧붙이며,
그가 인정하는 후배 가수들이 있다. 내가 “가요계 후배 가수 중에 마음에 드시는 가수 있으세요?” 라고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잘 몰라요. 근데 노래 잘하는 가수 많드만! 박정현이라는 가수. 또 알리라는 가수도……. 그리고 그 누구냐 이름이…….” 나는 예전 한 기사가 떠올라 자우림 말씀하시는 거 아니에요, 라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는 “아 걔도 물론 잘하고 걔는 잘한다기보다 기초가 튼튼하더만. 그러고 남자는 걔 이름 뭐지? 젤 유명한 놈 요새, (그때 옆에 있던 함춘호가 김범수? 라고 도움을 줬다) 어, 김범수."

 

오늘의 음반을 리뷰한 '박재현'님은?

87년생으로 단편 소설 '허전한 목을 채우고'로 데뷔했고 장편 소설 「당신만 모르는 이야기」를 출간했다. 현재, 할 말 시원하게 할 수 있는 잡지 「월간 이리」에서 송창식에 관한 글을 쓰고 있으며, 한 여행 잡지에 여행기도 연재할 예정이다. 여전히 엘피를 고집하며 클래식, 재즈, 오래된 가요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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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식 골든 제2집》 - 예술가들에게 송창식이란

 

송창식 | 《송창식 골든 제2집》 | 이엔이미디어 | 1996

 

7월 25일부터 5주간 매주 금요일 박재현의 < 송창식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를 소개합니다. 이 글은 독립잡지 [월간 이리] 2014년 3월호부터 7월호에 연재된 글입니다.  이후 새롭게 이어지는 글은 월간 이리를 통해 만날 수 있습니다.

 

 

대중들이 열광했듯 많은 예술가들도 송창식을 환호했다. 그의 남다른 삶의 방식이 예술가의 어딘가를 자극했을 것 같기도 하지만, 그들은 무엇보다 그의 실력에 감탄했다. 많은 예술가들이 그와 함께 작업하길 원했고, 그 결과 우리가 잘 아는 몇몇 작품들이 잉태되었다. 사실 나는 거물과 거물 혹은 천재와 천재의 만남을 좋아한다. 가령, 폴 매카트니와 스티비 원더의 만남이라든지 샤넬과 스트라빈스키의 만남처럼. 그래서 나에겐 송창식과 다른 예술가와의 만남이 더 흥미롭다.

 

가장 유명한 ‘고래사냥’부터 이야기해야겠다. 작가 최인호는 영화 시나리오를 다 만들어 놓은 후 송창식에게 곡을 요청했다. 이 곡은 송창식을 최고의 가수로 만들어 놓은 동시에 대중가요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곡이 되어 지금까지도 수없이 불리고 있다. 시원한 후렴구도 압권이지만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 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뿐이네.’라는 도입부의 가사와 멜로디도 정말 백미 중의 백미다. (아니, 술 마시고 춤을 춰 봐도 슬플 수밖에 없다니, 이보다 더 어떻게 우리의 마음을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송창식 하면, 서정주도 빼놓을 수 없다. 나는 대학에서 국문학을 복수 전공하며 시 창작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 시인으로 활동 중인 담당 교수님은 이렇게 말했다. “오로지 ‘시’ 하나로 본다면 저는 서정주 시인이 대한민국 최고의 시인이라 생각합니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정치적인 부분을 제하고 과연 예술을 논할 수 있을까 싶지마는 그의 시보다 더 시다운 시는 없어 보인다. (‘동천’이라는 시를 떠올려 보라. 시의 맛을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송창식이 중학생일 때 서정주 시인이 그의 학교에 초청되어 강연한 적이 있었다. 이때 시인의 시 짓는 방법을 듣고 송창식은 큰 감명을 받았다. 그 뒤 시간이 흘러 인기 가수가 된 그는 친구를 따라 우연히 서정주 시인의 집에 들르게 되었고, 친분을 쌓았다.

 

나는 둘의 만남이 궁금해 물어보았다. “저를 종종 부르셨죠. 그러다 어느 날 선생님께서 저에게 시를 한 편 보여 줬어요. 여기에 곡을 붙여 보면 좋을 것 같다고 하면서요. 그래서 만들어 갔더니 참 좋아하시더라고요.” 그 곡이 바로 ‘푸르른 날’이다. 사실 서정주 시인은 자신의 시에 곡을 붙이거나 가수에게 주지 않기로 유명했다. 그만큼 송창식을 인정했던 건 아니었을까. 역시나 이 노래도 훌륭하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라는 가사에 그가 우렁차게 내뱉는 발성이 어우러진 이 곡은 가요 이상의 가곡과도 같은 여운을 준다.

 

또 송창식의 서울예고 1년 선배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을 지내고 현재 서울시 오페라단 단장인 이건용은 80년대부터 여러 차례 송창식과 작업했다. 그가 작곡한 노래를 송창식이 부르는 식이었다. 몇 달 전, 카페 무대에서 그런 곡 중 하나인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를 부른 송창식은 이렇게 말했다. “클래식하는 사람들이 대중가요 하는 사람들과 일을 한다는 것은 굉장히 조심스러운 일이에요. 잘못하다 쫓겨날 수도 있죠.” 그렇다면 그는 왜 굳이 대중 가수인 그와 작업을 했을까? “송창식만 부를 수 있는 노래거든요. 그가 아니면 안 되는 부분이 있으니까요.” ‘황색 예수의 노래’라는 곡은 송창식 외에는 소화할 사람이 없어 초연 이후 아직까지 공연한 적이 없다.

 

협업까지는 아니지만, 송창식을 최고로 여기는 예술가(음악가)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서울예고 동창이었던 지휘자 금난새는 학창 시절 천재가 한 명 있었는데, 그가 바로 송창식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인터뷰 당시 나는 이에 대해서도 가볍게 물어봤다. “그렇지만 금난새가 지휘자 됐지, 나는 안 됐잖아요. 음악 쪽으로는 난 천재가 아니에요. 아마 공부 쪽으로 한 이야기였을 거야. (그는 학창 시절 늘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이야기가 공부 쪽으로 흘러갔지만 그는 성의껏 얘기해 줬다.) 시험공부를 일부러 해서 하는 건 비겁한 일이라 생각했지. 안 좋은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그것도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부터 한계가 있더라고. 집에서 예습, 복습하는 애들을 이길 수가 없어. 더군다나 수업 시간을 빼먹으니깐 안 되더라고. 공부를 안 하고 잘하는 건 고1 때까지야. 더 잘하려면 공부를 좀 해야 돼.”

 

이선희는 송창식을 가장 좋아하는 분이자 자신의 롤 모델이라며 4분이라는 노래 안에 이토록 넓은 세계를 담아내는 게 충격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가수가 되기 전에도 좋아했지만, 가수가 되고 나서 더 좋아하게 됐다는 것 아닌가.

 

박완규는 가수가 된 후 아버지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완규야, 너 높은음 빽빽 부른다고 다 가수가 아냐. 송창식 노래를 한 번 들어 봐. 그냥 듣고 연습해 봐, 그래서 네가 저 사람처럼 노래할 수 있다면 아버지가 널 가수로 인정하마.”

 

현재 가장 가까이에서 송창식을 마주하는 함춘호의 생각은 어떨까. 그의 말을 마지막으로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당시 인터뷰 말미에 했던 내 질문에 그의 답은 이랬다. “좋은 분이죠. 그러니까 음악에 대해서도……. 제가 어릴 적 음악에 눈을 뜰 때 저의 영웅이었죠. 음악을 좋아했기 때문에 듣는 귀가 달랐는데, 소위 말해 음악적인 거, 폼이 있는 거 하셨잖아요. 그게 나한테는 너무 잘 맞았고, 구성이 복잡했고……. 또 성악을 했기 때문에 기타를 치면 너무나 교과서 같았죠. 그 뒤 기타에 눈을 뜨게 됐으니 나의 영웅인 거지. 같이 옆에서 한 지 이제 14년 됐는데 형식과 장르가 없어요. 선생님 음악이. 그냥 노는 거지. 다양하게 놀고 싶은 대로 따라가는 거죠. 말하자면 놀이터 같은 존재에요. 커다란 놀이터에 마당을 만들어서 ‘너 놀아봐.’ 그런 재미를 느끼면서 하죠. 그래서 다른 데서 형식적인 음악을 하는 게 너무 힘들어요.”


 

 

오늘의 음반을 리뷰한 '박재현'님은?

87년생으로 단편 소설 '허전한 목을 채우고'로 데뷔했고 장편 소설 「당신만 모르는 이야기」를 출간했다. 현재, 할 말 시원하게 할 수 있는 잡지 「월간 이리」에서 송창식에 관한 글을 쓰고 있으며, 한 여행 잡지에 여행기도 연재할 예정이다. 여전히 엘피를 고집하며 클래식, 재즈, 오래된 가요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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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식 골든 제3집》 - 송창식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2

 

송창식 | 《송창식 골든 제3집》 | 이엔이미디어 | 2003

 

7월 25일부터 5주간 매주 금요일 박재현의 < 송창식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를 소개합니다. 이 글은 독립잡지 [월간 이리] 2014년 3월호부터 7월호에 연재된 글입니다.  이후 새롭게 이어지는 글은 월간 이리를 통해 만날 수 있습니다.

 

 

- 신곡을 내지 않는 이유


불후의 히트곡 ‘담배가게 아가씨’가 담긴 앨범 《참새의 하루》를 마지막으로 송창식은 새로운 앨범을 발표하지 않았다. 그 사이 2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 이는 그가 공식적으로 음악 활동을 한 시간보다 훨씬 길다.

 

그렇다면 왜 이제는 새로운 곡을 쓰지 않는 걸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책상머리 앞에 앉아 곡을 쓰려고 하는데 하기가 싫더라고요. 90년대가 넘어서면서 어린 가수들의 앨범이 100만 장, 200만 장이 팔려 나갔는데, 전 10만 장 팔아야 잘 판 것이었으니, 화가 나서 못 하겠더라고요. 더 화가 나는 건 그때 유행하던 댄스 음악이라는 게 미국에서 가지고 온 건데, 제대로 된 음악을 가져온 게 아니었어요. 어설프게 가지고 와서 따라 한 거였죠. 저도 한때 댄스 음악을 할까 생각도 해 봤죠.

 

그뿐이 아니었다. 그는 이제껏 낸 앨범 중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다고 했다. 자꾸 내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부족한 상태로 냈다는 것이었다. 특히 자신이 원하는 대로 연주해 줄 반주자가 없다고 했다. 그것이 또 하나의 이유였다.

 

항간에는 그가 이제껏 써놓은 미발표 곡이 천 곡이 넘는다고 알려졌다. (완전한 곡이 아닌 부분적인 의미에서) 나는 그 곡을 전부 취입할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에이, 옛날에도 써놓은 거 취입한 적은 없어요. 취입할 땐 새로 써서 취입을 한 거지. 먼저 쓴 건 무효라니까. 그리고 옛날에 써놓은 건 뒤져보면 너무 좀 유치하고 그렇다고. 나는 ‘한번쯤’도 요즘 것과 예전 것이 다르다고 했다. 그렇지. 옛날에 부른 건 옛날의 내 음악성이고, 지금 부른 건 지금의 내 음악성인 거지.

 

작년 언젠가 그는 새로운 앨범을 내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 작년 말쯤 이에 관해 물어봤었다. 그는 당시 목 상태가 안 좋다고 했었다. 이 목 상태로 되겠어요? 만약 앨범을 내면 기존 곡을 다시 부를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아니 뭐 그런 건 안 정하고. 내 곡 중에도 하고, 남에 곡 갖고도 하고, 신곡으로 하기도 하고 어쨌든 함춘호가 있으니까. 쟤랑 같이 해봐야지. 왜냐하면, 옛날에 발표할 땐 쟤가 없었거든. 그럼 조만간 기대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기대야 뭐 늘 하는 거지. 좀 허무할 뿐이지.

 

이제 그의 곁에는 대한민국 최고의 기타리스트 함춘호가 있다. 송창식을 보고 꿈을 품었다는 함춘호는 무대에서 그와 최고의 호흡을 자랑한다. 그는 송창식처럼 클래식을 전공한 터라 원하는 음을 쉽게 짚어 낸다. 그는 송창식 곡에 세련미를 더한다. 더구나 그의 실력을 의심하는 이도 없다. 송창식도 그를 소개할 때면, 늘 ‘대한민국의 기타’라고 할 정도니. 그렇기에 새로운 앨범을 기대할 수도 있을 터.

 

최근 무대에서 내려온 송창식에게 50대 소녀 팬들이 새로운 곡을 내달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자 그는 신곡을 내면 문화적으로 가치는 있을지 모르지만, 히트하진 못할 거예요, 라며 담담히 자기 생각을 전했다.

 

한 프로그램에서 송창식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예전에 부른 노래지만, 부를 때마다 상황에 따라 표현이 달라지기 때문에 각각 전혀 다른 노래가 된다고.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곡이라고 말이다.

 

흔히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가장 큰 라이벌은 본인의 이전 작품이라고 말한다. 송창식도 자신의 곡을 넘어서는 데 부담이 있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성격으로 보나, 배짱으로 보나 그런 건 전혀 아닐 것이다.

 

종합적으로 생각해 볼 때, 그가 새로운 앨범을 낼 것 같긴 하다. 다만, 신곡이 포함되지 않고 그전에 만들었던 곡을 함춘호와 재해석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아무렴 어떠하랴. 그저 쌍수를 들고 환영할 뿐이다. 신곡이 없다 한들 언제든 그의 무대를 가까이 볼 수 있기에 신곡 이상의 기쁨이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의 목소리도 점차 변하니까 같은 곡이라도 다른 소리가 다가온다. 이명이 되어 한동안 귀에 머무르는 곡도, 시기에 따라 흥얼거리고 재발견하는 곡도 제각각이다.

 

그럼에도 내 입은 근질거린다. “선생님, 그러지 말고 새로운 곡 좀 들려주면 안 될까요?”


 

오늘의 음반을 리뷰한 '박재현'님은?

87년생으로 단편 소설 '허전한 목을 채우고'로 데뷔했고 장편 소설 「당신만 모르는 이야기」를 출간했다. 현재, 할 말 시원하게 할 수 있는 잡지 「월간 이리」에서 송창식에 관한 글을 쓰고 있으며, 한 여행 잡지에 여행기도 연재할 예정이다. 여전히 엘피를 고집하며 클래식, 재즈, 오래된 가요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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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식 골든 제1집》 - 송창식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송창식 | 《송창식 골든 제1집》 | 이엔이미디어 | 2003

 

7월 25일부터 5주간 매주 금요일 박재현의 < 송창식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를 소개합니다. 이 글은 독립잡지 [월간 이리] 2014년 3월호부터 7월호에 연재된 글입니다.  이후 새롭게 이어지는 글은 월간 이리를 통해 만날 수 있습니다.

 

 

- 그게 무슨 장르야

 

지난 3월, 웬일인지 텔레비전에 ‘쎄시봉’이 자주 나왔다. 공중파 아침 방송 두 곳에서 동시에 나올 정도로. 4월 5, 6일 올림픽 공원에서 열린 공연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동아일보 주최라 그런지 규모도 예전에 비해 훨씬 커 보였고 홍보에도 많은 공을 들이는 모습이었다. 그래서인지 45년 전쯤의 쎄시봉과 그때의 주역인 ‘트윈폴리오’ 가 잔잔하게 뿌려댄 열기를 떠올리며 향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요즘에는 송창식을 쎄시봉과 연관 짓는다. 이전에는 주로 포크 음악의 대부라는 이미지로 대중들에게 소비됐다. 하지만 쎄시봉이든 포크의 대부든 그의 음악은 그렇게 몇 단어로 단정 지을 만큼 간단하지 않다. 그는 또래의 포크 가수들과 완전히 노선이 달랐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태자면, 그 역시도 정통적인 의미에서 포크란 민속적이고 저항적인 걸 말하는데 자신은 그렇게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인터뷰에서 나는 그가 지금 하는 음악 말고 다른 음악을 하고 싶지는 않은지 물어봤다. 예를 들어 재즈라든지요? 하면서. 그러자 그가 정색하며 말했다. 내 음악은 장르가 없는 거예요. 그 속에 재즈도 있고, 뽕짝도 있고, 클래식도 있고. 그러니까 새로 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내가 기타를 잘 치기 위해 재즈를 해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사실을 알면서도 내가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난 그가 끈적한 노래를 부르거나 마음대로 스캣 하는 장면을 상상했던 듯싶다. 그는 이미 스윙 리듬 속에서 알 수 없는 의성어를 뱉거나 샤우팅을 하는 등 자신만의 스타일대로 모든 장르를 아우르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가 처음 시작한 음악은 클래식이었다. 중학생 때 나간 성악 콩쿠르에서 1등 없는 2등을 할 정도로 그는 두각을 나타냈다. 2등을 한 것도 출전 학생 중 가장 잘했지만 정식으로 성악을 배우지 않아 1등을 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특유의 우렁차고 맑은 목소리는 여기서 기인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트윈폴리오를 거쳐 솔로로 데뷔한 송창식은 이제껏 좁은 시각으로 음악을 했으며 자신에게 국악적인 요소가 더 많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곡에 한국적인 요소를 차차 담아냈다. 그의 음악은 한국인의 정서를 툭툭 건드렸다. 사람들은 신기해하면서 흥겹게 따라 불렀다. 큰 인기에도 그는 오히려 담담했다. 더 넓게 더 깊이 음악을 탐구해 나갔다. 그것은 다양한 시도로 이어졌다.

 

‘석기시대’라는 밴드를 만들어 록을 시도하기도 했는데 그에게 그 연유를 묻자 이렇게 말했다. 그때는 이전의 목소리와 노래하는 창법이 너무 ‘오디너리’하고 순한 노래를 불렀으니까 난 그게 좀 지루했었어요. 그래서 록도 한번 하자, 해서 한 거지.

 

그의 록커 기질을 알 수 있는 노래가 더러 있는데, 그중 하나가 ‘새는’이다. 사이키델릭하기까지 한 이 곡은 당시 최고의 세션이던 ‘동방의 빛’이 연주를 맡았는데, 키보드 라인이 가히 환상적이다. 또 하나 꼽자면 그 유명한 ‘담뱃가게 아가씨’다. 이 곡은 굳이 설명이 필요 없겠다. 참고로 최근 미국에 진출한 YB가 이 곡을 편곡해 '시가렛 걸' 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 곡을 허락한 원작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미국에서는 그 곡보다 '가나다라' 가 더 인기 있을 거예요. '담뱃가게' 는 펑키가 들어 있거든요. 그건 이미 걔들도 다 아는 건데, '가나다라' 는 생전 처음 들어 보는 거라 신기할 걸요.

 

록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한국에서 가장 먼저 컴퓨터 음악을 들여왔다. 믿기지 않겠지만 그는 1970년대 말부터 애플 컴퓨터를 다뤘고 자신의 집도 컴퓨터로 직접 설계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맨 처음에 내가 사람들에게 보급을 했지. 시퀀스라는 기계였는데 그건 지금처럼 컴퓨터에 들어 있지 않았어요. 많은 사람들이 그거 가지고 만들었죠. 왜 보급만 하고 스스로 사용하지 않았을까. 이유를 묻자 그가 명쾌하게 답했다. 내가 그걸 해봤는데, 한 곡 하는데 일주일이 걸리는 거야. 너무 열악하니까. 내가 하기엔 기계가 너무 부족해. 처음부터 컴퓨터 음악을 하는 사람들한테는 충분한데. 아날로그 음악을 하던 내가 하기엔 좀 너무 부족해요. 2013년인데도 내 맘에 드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없는데.

 

고집과 다양한 시도 끝에 잉태된 그의 음악에 대중들은 열광했다. 전문가들의 찬사도 끊이지 않았다. 대한민국 가요계를 한 단계 진일보시켰다는 평을 들으며 그는 독보적인 위치에 올랐다. ‘굳이 장르를 따지자면’이라는 말을 써도 딱히 꼽을 수가 없다. 클래식, 포크, 트로트, 국악, 록, 재즈가 묘하게 뒤섞여 ‘송창식 표 음악’이라 부를 수밖에. 듣는 입장에서 더 알고 싶은 것도, 후배 가수들이 그의 노래를 어려워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 아닐까.

 

어쩌면 그에게 장르는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이는 역설적으로 대중들에게 큰 의미로 다가온다. 만약 그의 음악을 듣는다면 선 그을 필요가 없다. 그저 새로운 세계에 몸을 맡기면 될 것이다. 부디 신선한 자극에 즐거운 통각을 맛보길. 그러나 아쉽게도 내가 태어난 해와 같은 1987년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더 이상 새로운 ‘송창식 표 음악’을 들을 수가 없었다. 이유가 있다. 다음 호에 그 이유에 대해 다뤄볼 것이다.

 

오늘의 음반을 리뷰한 '박재현'님은?

87년생으로 단편 소설 '허전한 목을 채우고'로 데뷔했고 장편 소설 「당신만 모르는 이야기」를 출간했다. 현재, 할 말 시원하게 할 수 있는 잡지 「월간 이리」에서 송창식에 관한 글을 쓰고 있으며, 한 여행 잡지에 여행기도 연재할 예정이다. 여전히 엘피를 고집하며 클래식, 재즈, 오래된 가요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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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식 골든앨범: 그대 있음에, 새는》 - 송창식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송창식 | 《송창식 골든앨범: 그대 있음에, 새는》 | 뮤직리서치 | 2011

 

7월 25일부터 5주간 매주 금요일 박재현의 < 송창식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를 소개합니다. 이 글은 독립잡지 [월간 이리] 2014년 3월호부터 7월호에 연재된 글입니다.  이후 새롭게 이어지는 글은 월간 이리를 통해 만날 수 있습니다.

 

 

- 첫 만남

 

그렇다. 나는 송창식빠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내가 어렸을 땐 새롭게 등장한 댄스 음악과 눈물 없이도 들을 수 있는 발라드가 득세하던 시절이었다. 송창식, 하면 팔 벌리며 가나다라마바사 부르는 젊은 가수의 모창이 떠오르곤 했다. 땀내 풍기던 중학생 시절, 나의 불알친구는 송 씨라는 이유로 "너희 아빠 송창식 아이가?" 혹은 두꺼운 목소리의 가나다라마바사 같은 말과 노래로 놀림을 받았다. 애들은 좋다고 낄낄댔다. (그런데 참 놀라운 건, 그 친구 삼촌의 성함이 정말 송창식이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성인이 되어 그의 삼촌 집에 우연히 들르게 되었는데, 삼촌은 인연이 닿아 윤형주를 초대한 적이 있으며 윤형주 역시 자신의 친구랑 똑같은 이름은 평생 처음 본다고 했단다.) 나도 물론 웃었다.

 

집으로 돌아오면 나는 묵직한 소니 시디플레이어에 비틀즈를 넣어 듣곤 했다. 사실 억지 춘향으로 간 피아노 학원이나 길보드 차트의 최신 유행 테이프를 가끔 사 듣던 것과 다르게 음악이라는 것을 제대로 향유해 본 게 이때가 처음이었다. 특히 비틀즈에 흥미를 느끼며 《1》을 수백 번 듣고서 차차 정규 앨범까지 섭렵, 미공개 트랙을 모은 <앤쏠로지 1,2,3>마저 모으며 폴과 존의 목소리에 시간을 빼앗겼다. 이후, 대학생이 되어서는 스티비 원더와 카펜터스, 이한철을 즐겼고 제대 후엔 브릿 팝과 마이클 잭슨과 마빈 게이, 사라 본을 반겨 들었다.

 

송창식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시간이 흘러 대학 4학년이 되었다. 교보문고 핫트랙에서 일하던 사촌누나가 종종 샘플 시디를 줬는데, 어느 날인가 흰색 양복 차림의 진지한 가수가 70년대스럽게 담긴 앨범을 내밀었다. 귀한 거라고 했다. 거기엔 심플하게 ’SONG CHANG SIK’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현재보다는 과거 음악에 늘 귀가 움찔했기에(또 당시엔 산울림과 이문세를 듣던 때라) 무척이나 고마운 마음으로 받았다. 하지만 구닥다리 노트북으로 리핑할 생각을 하니 한숨부터 나왔고, 학교생활에 바쁘다는 핑계로 여차저차 청취할 기회를 조금씩 미뤘다.

 

그러던 어느 날, 텔레비전에 그와 그의 친구들이 출연했다. 놀러와 ‘세시봉’ 특집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괴짜라고 했고, 그의 말과 행동에 나 역시 매력을 느꼈다. 무엇보다 노래가 압권이었다. 특히 함춘호의 기타와 합주해 부른 < 한번쯤 >은 정말 굉장했다. 그는 근엄한 소리꾼이 되었다가도 어느새 어린아이가 되어 만득이 인형 만지듯 노래를 마음대로 주물럭거렸다. 무아지경에 빠지면서도 결국 웃고 마는 얼굴이 흥을 더했다. 물론 흥의 중심엔 리드미컬한 스트로크가 있었다. 얼마나 들뜨게 만드는지 손가락 끝이 절로 움직였다. 기타를 한번 쳐보고 싶다는 충동도 함께 흔들거렸다. 풍부한 성량에서 나오는 우렁찬 목소리도 빼놓을 수 없었다. 맑고 곧은 목소리는 격정적인 멜로디에 입혀져 속을 시원하게 뚫고 갔다.

 

 

선물 받은 앨범을 얼른 열어 아이폰에 담았다. 정확히 그때부터였다. 아, 그것은 새로운 세상이었다. 중독적인 구석이 있었다. 레논 앤 매카트니처럼 그 역시 스스로 곡을 만들어냈다는 데 더 마음이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시공간적 여유가 되면 항상 그의 노래를 틀었다. 샤워할 때도 그의 목소리는 재생되어 심심한 공간을 꽉 울려 줬다. 이미 그때는 그의 앨범을 모두 다운 받았을 때였다.

 

레논 앤 매카트니 때와 달리 나의 애정은 잠시도 식지 않았다. 첫 장편소설에도 그의 이야기를 넣었을 정도니. 그해 말엔 한 대학교 아트센터에서 열렸던 ‘세시봉 콘서트’를 관람했다. 맨 앞줄에 앉았던 나는 처음으로 그와 악수할 수 있었다. 묘한 기분이었다. 비현실적이었다면 과장일까. 해가 바뀌어도 마찬가지였다. 평소 턴테이블에 음악을 얹어 듣던 나는 그의 레코드를 더 적극적으로 모았다.(지금까지 그와 관련된 레코드를 총 스물여섯 장 소장하고 있다. 영국산 로저스 스피커에서 나오는 그의 목소리를 듣다 보면 다른 일을 할 수 없을 때가 많다.) 여름에 열린 ‘가인과 특별한 만남’이란 콘서트에선 막 출판된 내 책을 줄 수 있었다. 잠에서 깨어나 한 시간 정도는 화장실에 앉아 무엇이든 읽는다기에 기대가 커, 내 책을 읽었을까, 상상해 봤다. 그 여부에 관해선 나중에 다루려고 한다.

 

해가 지나 그의 노래를 부담 없이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미사리에 있던 그의 전용 라이브 카페가 리모델링을 마치고 < 쏭아 >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연 것이다. 대구에서 살다 서울의 한 출판사에 취직한 나는 더없이 좋은 기회라 여기며 간간이 활동하던 다음 카페 ‘창식사랑 TWO’에도 자주 기웃거렸고 한 달에 한두 번 그곳에서 열리는 모임에 참석했다. 모두 ‘영이야’, ‘한불휘’, ‘수림’, ‘해달’ 같은 닉네임을 실명 대신 사용했다. 낯선 정경이었다. 촌스럽게 내가 이름을 닉네임으로 했던 터라 더 그랬다. 나는 꾸준히 모임에 참석했다. 비슷한 열정을 가진, 혹은 나에겐 없는 추억까지 가진 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둘러앉아 공연을 감상한 뒤엔 간혹 무대에서 내려온 선생님을 초대해 노래의 뒷이야기나 특별한 일화를 들었는데 그게 또 하나의 재미였다. 그러다 어느새 나는 젊다는 이유로 운영진이 되었다.

 

출판사 편집부에서 어김없이 월간지를 만들던 어느 날, 편집장이 말했다. “이번에 인터뷰 코너 재현 씨가 좋아하는 송창식 선생님으로 해볼까요?” 가끔 쏭아에서 선생님에게 인터뷰에 관한 언질을 하기도 했고 허락도 받은 상태였다. 난 환하게 웃었다. 거기다 원래 선배가 담당하던 꼭지를 특별히 내가 취재를 하는 게 어떠냐고 권하기까지 했다.

 

심한 독감에 걸린 선생님과 무사히 얘기를 나누고 무사히 글을 써 무사히 책에 실었다. 다만, 책엔 모든 내용을 담을 순 없었다. 독자층을 생각해 대체로 잘 아는 얘기를 해야 했다.

 

그의 앨범을 듣기 시작한 후로 그를 직접 만나 인터뷰하기까지. 참 많이 듣고 보고 씹고 맛봤다. 그래도 아직은 그를 잘 모르겠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의 얘기를 조금 해보려 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대개 그를 괴짜 정도로 여기기 때문이다. 기존에 알던 것과 카페에서 그가 들려준 여담, 책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 등 그의 세계에 대해 무겁지 않게 그려 내가 느낀 즐거움을 함께 누렸으면 한다. 어쩌면 고루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우리 세대에 더 재밌을지도 모르겠다. 말이 길었다. 프롤로그라 생각해 주길.

 

오늘의 음반을 리뷰한 박재현님은?
87년생으로 단편 소설 '허전한 목을 채우고'로 데뷔했고 장편 소설 「당신만 모르는 이야기」를 출간했다. 현재, 할 말 시원하게 할 수 있는 잡지 「월간 이리에서 송창식에 관한 글을 쓰고 있으며, 한 여행 잡지에 여행기도 연재할 예정이다. 여전히 엘피를 고집하며 클래식, 재즈, 오래된 가요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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