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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9.06 <R> - 리듬, 기교, 사운드 저 아래서

<R> - 리듬, 기교, 사운드 저 아래서

소울 스테디 락커스, <R>, TYLE MUSIC, 2010  


작년 연말 나는 「Break The System」을 그 해의 노래 중 하나로 뽑았다. 기똥차게 선동적이라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지만, 그걸 어색하게 만들지 않는 탄탄한 실력이 좋았기 때문이다. 소울 스테디 락커스(Soul Steady Rockers)의 실력은 첫 EP 『Open the Gate』를 딱 한 번 돌려 듣고도 확인이 가능했다. 레게, 덥, 아프로 비트, 이런 것들을 요리해 줄 젊은 친구들이 나타났으니 기뻐 마땅할 일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이들은 김반장의 후예였다. 「Break The System」에 김반장이 직접 출연하기도 했거니와, 그가 아프로 비트로 국내 음악 씬을 돌파해온 역사가 『Open the Gate』에 고스란히 압축되어 있었다. 레게를 한다는 젊은 친구들의 첫 음반에서 전쟁과 평화를 들먹이는 노래를 재차 듣는 심정이 마냥 상큼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R』은 놀랍다. 『Open the Gate』는 단지 철없던 뽐내기였던 걸까? 지극히 장르적이었던 첫 EP와 다르게 R은 소울로 충만하다. 은은하게 푸-욱 파고드는 밍숭맹숭한 소울 말이다. 첫 곡 「The Changing World」에서 이들은 리듬으로 튀려 하지 않는다. 출렁거리는 베이스만이 이 밴드의 장르 출처를 알려줄 뿐, 이건 그냥 노래, 송(Song)이다. 들썩거리는 악기 하나쯤 있어야 할 자리에 스트링 사운드를 차분히 들여 앉혀놓았다. 그런데 “The Changing World” 라는 별 거 아닌 가사를 계속 반복하는 후렴에서 뭔가 울컥한다. 차분한 곡조에 담긴 청춘의 담백한 고뇌가 조촐하게 마련된 리듬과 기막힌 조화를 이룬다. 이것은 황금비율이다.

「숨 쉴 수 없는 공기」도 마찬가지다. 담백한 레게 리듬이 있고 담백한 젊은이의 말이 있다. 전쟁 반대를 부르짖는 것보다 날카롭지 못한, 마냥 보편적이어서 어쩌면 답이 없는 막막한 고뇌는 밑으로 가라앉는 레게를 만나 긴장감을 부여받는다. 그건 참 뻔하지만, 언제나 위대했다고 말해주고픈 꿀꿀한 긴장감이다. 진정으로 놀라운 건 「숨 쉴 수 없는 공기」가 퍼뜨린 분위기를 이어지는 「Hide & High」가 완벽하게 이어받는다는 사실이다. 권태 직전의 남녀를 묘사한 것 같은 몽롱한 훵크도 여지없이 암묵적으로 위대해진다. 이 노래의 미세하게 들뜬 정조는 『R』의 중심부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다음 곡 「봄비 내리면」은 은은한 소울의 절정이다. 무슨 곡으로든 사람을 휘어잡던 70년대의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 특히 「Fulfillingness’ First Finale」의 발라드와 빛과 소금의 「그대 떠난 뒤」가 동시에 떠오르는 이 노래는 소울 스테디 락커스가 왜 뽐내기 대신 차분한 이야기를 들려주려 했는지 웅변하는 듯하다. 마지막 곡 「Jive Mood」까지, 놓치지 않는 절절한 감정들로부터 『R』은 시작된다.

『R』
은 레게를 신나게 뽐내기 이전에 레게 안에 무엇을 담을 지 먼저 고민한 음반이다. 그 고민이 심해처럼 깊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것을 결국엔 음악과 만나게 하고야 말았다. 리듬, 기교, 사운드보다 노래에 우선권을 부여했고, 그것이 소울을 저절로 풍겨대는 결정적인 이유다. 그냥 ‘김반장의 뒤를 잇는 레게 & 아프로 비트 기대주’ 정도로 머무르며 연주에 천착했어도 별 탈 없을 친구들에게서 대단한 싹수를 발견했다. 『R』은 조금 앞서 발매된 아이앤아이 장단(I and Idjangdan)과 함께 올해에 반드시 거론돼야 할 소울/R&B 분야의 음반이다(소울 스테디 락커스의 준백은 아이앤아이 장단의 멤버이기도 하다). 진보, 태양, 디즈(Deez)가 촉발시킨 장르의 이식과 재현, 현지화 논의를 문득 떠올리며 그 모든 논의로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이 조그만 『R』이 채워주고 있다는 걸 절감한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호떡바보님은?
흥미로운 직장과 알바와 각종 잡일을 하며 보낸 최근 10년 동안 음악에 관한 글도 꾸준히 써 온 두 딸내미의 아빠. 어려운 책과 졸린 영화와 재미있는 만화 보기를 좋아하는 정신연령 20대의 청년. 음악취향Y(http://cafe.naver.com.musicy)를 본거지 삼아 오늘도 여기저기 쏘다니고 있음.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이며 친구들과 '한국힙합-열정의 발자취'를 썼으며, 놀랍게도 철학책 3권에 관여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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