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 해당되는 글 46건

  1. 2009.10.28 <나는 할머니와 산다> - 성장하는 우리들
  2. 2009.10.22 날카롭게 드러나는 현실의 혼돈 - <첫사랑 마지막 의식>
  3. 2009.10.21 ‘엄마’의 이름은 가을 여자 (2)
  4. 2009.10.20 예쁜 손편지를 쓰고 싶게 만드는 이야기 -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5. 2009.10.16 그라운드에서 땀 흘리는 모두, 승자! - <내추럴>
  6. 2009.10.15 덜 잃기 위해 화해하는 이성적인 방법 - <이성적인 화해>
  7. 2009.10.07 시공의 결을 사로잡는 문장의 매력 - <세계의 끝 여자 친구> (6)
  8. 2009.10.06 시리즈가 기대되는 잘 빠진 한국 추리소설 - <무심한 듯 시크하게>
  9. 2009.10.05 눈물 없는 자본주의의 끝없는 시험 - <카스트로 유전자>
  10. 2009.09.30 소년은 어디로 가는가? - <국경을 넘어>

<나는 할머니와 산다> - 성장하는 우리들


 

최민경, <나는 할머니와 산다>, 현문미디어, 2009


띠지에 적혀있는 문구가 무섭다. ‘죽은 할머니의 영혼이 10대 소녀의 몸속에 들어가다!’라니. 분명히 세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저 문구를 보는 순간 깜짝 놀란다. 헉! 뭐지. 공포소설로 청소년문학상을 어떻게 받았을까-라는, 몽글몽글 솟아오르는 혼란스러운 감정을 가까스로 누르며 첫 장을 펼쳤는데! 또 놀랐다. 돌아가신 할머니를 위해 굿을 한단다. 갑자기 온갖 무서운 이야기가 떠오르면서 창밖을 보기가 싫어진다. 할매 귀신이 18층 높이인 우리집 창문 밖에 서 있을까 봐. 꺄울!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성장소설이 좋았다. 그 감정은 어렸을 때보다도 나이를 먹을수록  더 짙어지는 듯하다. 어릴 때는 크느라 주위를 둘러보지 못한다. 집중하는 것은 자기 자신과 친구정도일까. 가족보다도 친구와 비밀을 나누고, 어제 만난 친구를 오늘 만나도 반가워 껴안고 ‘꺄꺄’ 소리 지르기 바쁘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씩 흐르고 가슴 속에 쌓이는 상처도 많아지면서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곁에 있는 친구와 가족, 연인도 물론 소중하지만 자신을 추스를 수 있는 것은 자신뿐인 것이다. 어찌 된 일인지 나는 어릴 때는 잘 읽지 않았던 성장소설에 자주 마음을 위로받곤 한다. 읽으면서 유쾌해지고, 잊고 있던 기억과 감정을 떠올리게 만들어 스스로의 마음을 토닥토닥, 두드릴 수 있게 된다.

공포소설인 줄 알았던 이 책에는 유머도 있고, 아픔도 있고, 애잔함도 있다. 마냥 말괄량이에 철없어 보이는 주인공 은재와 엄마의 토닥거림에는 평소 나와 엄마의 관계를 떠올리며 배시시 웃음을 깨물었고, 할머니가 은재의 몸속으로 들어가 생활하기 시작하면서는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 지 궁금했으며, 뜻밖에 아픔을 간직한 은재의 모습과 할머니의 비밀이 밝혀지면서는 가슴이 찌릿찌릿 저려오기도 한다. 거기에 어른스러운 은재 친구 은혜와 은재의 우정 이야기도 빼놓을 수는 없다. 아이들은 스스로 클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시간의 흐름과 함께 세상 고민의 해답을 스스로 찾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할머니가 손녀의 몸속으로 들어간다는 발상이 독특했기 때문에 사실 나는 조금 다른 걸 기대하기도 했다. 이왕 할머니가 은재의 몸속으로 들어갔다면 좀 더 활발하게 활동해도 좋았지 않았을까. 할머니는 그저 은재의 입을 빌려 가끔 이야기하고 겁(?)을 주고, 부탁을 하지만 활약이 그리 크지 않다. 나는 할머니가 은재에게 더 말하고, 더 많은 이야기를 들어주는 활력적인 관계를 상상했기 때문인지 어째 할머니의 비중이 작은 것이 못내 아쉬웠다.

톡톡 튀는 문체가 매력적으로, 요즘 아이들의 발랄하면서도 그들이 간직한 고민으로 인해 우울해하는 모습들을 잘 그려낸 듯하다. 어른이 되어 쉽게 잊어버릴 법한 십대들의 고민들,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들이 뭉클하게 전해진다. 이것저것 벌어진 일이 많아 약간 산만하다는 느낌도 들지만 전체적으로는 ‘명랑유쾌애잔’한 즐거운 성장소설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분홍쟁이’님은?

책을 좋아하여 책을 분신처럼 여기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 하는, 여전히 꿈을 꾸는 2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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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롭게 드러나는 현실의 혼돈 - <첫사랑 마지막 의식>


이언 매큐언, <첫사랑 마지막 의식>, MEDIA2.0, 2008


가끔 그런 시간이 찾아온다. 말랑거리면서도 우울한 얄궂은 감정에 흠뻑 젖어보고 싶은 때. <체실 비치에서>(문학동네, 2008)로 처음 만난 이언 매큐언이 그런 시간에 떠올랐다. 이 선택이 잘못 된 것이리라곤 조금의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제목조차 달콤하게 ‘첫사랑’이라니. 그런 내 기대는 완전히 무너졌다. 교훈 하나,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지 말라!’. <체실 비치에서>를 읽었을 땐 왜 이언 매큐언의 글을 악마 같다고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책을 쓴 이언 매큐언은 과연 악마 같은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내가 원했던 말랑거리면서 우울한 감정은 어느덧 도망가고 끈적거리고 비릿한 감정만 남았다. 하지만 이 감정도 꽤나 얄궂긴 마찬가지다.

충격은 책 속 단편 처음부터 시작된다. 우연히 발견한 증조부의 일기장에서 존재를 무(無)로 바꾸는 기하학의 비밀을 알게 된 남자의 이야기인 ‘입체 기하학’은 끔찍했으나 눈을 떼지 못할 정도의 매력이 있었다. 무엇이 파괴적이며 퇴폐적인 것을 매혹적인 것으로 바꾸는 것일까. 그런 의문은 근친상간을 다룬 ‘가정 처방’이나 소녀 살인을 다룬 ‘나비’에서 계속 된다. 그리고 책을 덮으며 이 책이 단순한 단편집이 아니라 하나하나의 단편이 모여 하나를 이루고 있음을 어렴풋하게 느끼게 된다.

책 속의 인물들, 그들은 모두 사회의 혼돈 속에서 길을 잃은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사회의 혼돈 속에서 어지럼증을 느끼며 올바르지 못한 성장을 하거나 성장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것은 모두 누구의 탓일까. 단지 사회라는 거대한 매커니즘의 탓으로 돌릴 수 있을까?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임을 알기에 쉽게 외면하지 못하고 이 끔찍함에 눈을 떼지 못하게 된다. 그런 병폐를 담담하게 심지어 아름답게까지 그려내는 작가를 그래서 ‘악마 같다’고 말하게 된다.

우리의 개인주의는 무관심을 낳고 그런 무관심은 사회의 어딘가에서 또 다른 폭력으로 행해짐을 간접적으로 많이 보고 들어왔다. 하지만 경험하지 않는 한, 그것을 마음으로 느끼는 것은 어렵다. 소설은 가끔 현실의 보고가 느끼지 못하게 하는 감정의 부분들을 독자의 마음에 불편함으로 제공한다. 이언 매큐언의 이 소설은 그런 면에서 불편하고 거북하다. 하지만 그 일면들이 마냥 날카롭거나 답답하게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담담하고 때론 아름답다. 어쩌면 작가가 바라보는 시선이 사회의 부조리를 보고 있는 우리의 시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치면 숨이 막혀온다.

독자에게 사회의 일면을 다시 보게 해주는 작가, 그는 충분히 매력적이며 그의 글은 악마적이다. 지금까지 내가 아는 이언 매큐언은 동전의 양면 같은 매력을 지녔다. 한 책에선 감성적이며 아름다웠고, 한 책에선 날카로우며 섬세했다. 또 다른 그의 매력을 밝혀내고 싶다. 오랜만에 작가의 작품들에 대한 집착이 고개를 든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앨리스’님은?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시간에 가장 행복한 27살. 책나무를 타고 이상한 나라에 도착, 앨리스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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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이름은 가을 여자

 

오정희, <가을 여자>, 랜덤하우스, 2009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의 책과 음악 이야기 No. 10 - ‘엄마’의 이름은 가을 여자

「Woman」

하루 세 번은 사랑해 말해줘
선물과 꽃은 항상 잊지 말고
와인잔 만큼 깨지기 쉬운 게
그게 바로 여자야 my name is woman
W-O-M-A-N

* Album from 웅산 『Miss Mister』「Woman」 중

소품집 같은 소설

인생을 물리적인 나이로만(언제나 청춘인 분들도 많기 때문에!) 사계절로 나눠본다면 유년기는 봄, 청년기는 여름, 중․장년기는 가을, 노년기는 겨울에 속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우리 인생에서 가장 긴 시간은 가을인 셈이다. 때로는 우수에 젖고 때로는 영생에 벅찬 가을. 소설가 오정희는 그런 가을을 살아가고 있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두껍지 않은 분량에 25편을 넉넉히 담아낸 <가을 여자>는 소설과 에세이, 콩트 어느 중간쯤에 분류할 수 있을 법한 ‘소품집 같은 소설’이었다. 아니, 출근길에 종종 듣게 되는 라디오 프로그램 ‘여성 시대’에서 막 길어 올린 이야기라고 해도 좋을 듯했다. 

엄마도 어머니도, 가을 여자

이야기의 중심에는 자식 교육에 골몰하는 어머니, 내 마음도 몰라주는 남편이 밉살스러운 아내, 누리고 비린 것만 찾는 시어머니가 얄미운 며느리가 있다. 그리고 그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이름과 모습을 잊어가는 우리 ‘엄마’들이었다. 

나는 ‘엄마’의 모습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10살이 조금 넘었을 무렵부터 ‘엄마’는 어머니가 되었다. ‘엄마’에게도 눈부시게 젊었던 시절이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나에게는 사진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젊은 ‘엄마’보다 주름살이 하나하나 늘어가는 어머니의 모습에 익숙해져 있다(어머니에게도 젊었던 시절이 있다는 걸 이해한다면 살이 찌고 주름이 늘어 ‘늙어간다고’ 푸념하는 어머니에게 절대로 시큰둥한 반응을 보여서는 안 된다!). 

<가을 여자>의 띠지에는 “비탄, 원망, 환멸의 지겹고 숨 막히는 반복, 겨우 고개를 드니 생의 주름만 남은 당신에게”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런 당신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무엇인가? 오정희는 작가의 말에서 그 답으로 이렇게 적는다. “어느 책을 읽다가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은 사랑이다’라는 구절을 대하고 어려운 문제를 푼 듯 속이 후련하고 기뻤다. 그 어떤 불행과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인생은 바래지 않는 순정한 꿈’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환멸과 슬픔과 쓸쓸함 또한 우리의 생을 살게 하고 봐 높이 들어 올리는 힘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며 또 한 번의 아름다운 가을을 맞는다.”(p. 5)

오정희의 힘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눈이다. 자칫, 해마다 돌아오는 어머니의 푸념처럼 들릴 수도 있는 이야기들은 발랄함으로 풀어낸다. 그러면서도 나는 어땠을까, 우리 엄마는 어땠을까, 하고 돌아보게 만드는 것은 분명 오정희가 지닌 공감의 힘이다. 당신은 어느덧 가을의 인생을 살고 있지만 이 가을만큼이나 아름다운 ‘가을 여자’라고, 그러니 우울해하지 말라고. 

가끔씩 공책에 식대를 적는 어머니는 보지만 어머니 손에 책이 들려있는 걸 본 기억은 별로 없다. 어머니의 소일거리는 TV 보기, 그것도 주말 드라마 보기다. <가을 여자>를 어머니에게 권해주고 싶지만 어느 순간 (이제 나도 나이가 들었는지) 깨닫는다. 어머니 이젠 TV만 보지 말고 책도 좀 보세요, 라고 어머니에게 책을 선물하는 건 내 자의적인 만족일 뿐이라는 걸. 대신 <가을 여자> 속 몇몇 에피소드를 어머니와 함께 나눌 예정이다. 어머니 친구들 모임 이름은 무엇인지, 만나면 무슨 이야기들을 하는지, 혹시 아버지가 밉살스러울 때는 없는지 할머니가 누리고 비린 것을 좋아하지는 않으셨는지. 그나저나 우리 어머니가 가을을 좋아하셨던가? 아무래도 그건, 기억력의 문제가 아니라 관심의 문제였던 것 같다.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 [<재즈피플>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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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elyu 2009.10.21 23:37 address edit & del reply

    항상 느끼는 건데,기자님 글은 참 따스하고 포근해요^^

    • 반디앤루니스 2009.10.22 09:10 신고 address edit & del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서 안민용 기자님의 글을 좋아한답니다~~

예쁜 손편지를 쓰고 싶게 만드는 이야기 -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장은진,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문학동네, 2009


‘편지’라는 단어 때문에 이 책이 처음부터 맘에 들었다. 웃기게도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라는 제목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편지에 대한, 누군가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있으며, 또 누군가의 일상을 손글씨로 전해 받고 싶은 마음이 담긴 편지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책을 다 읽은 후 다시 펼쳐 본 띠지에 ‘고독하고 슬프고 따뜻한 소설!’이라 적혀있는 것을 보고 ‘그래!’라는 맞장구 외에 더 할 말이 없음을 깨달았다.

‘이 소설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환하게 번지는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라고 소설가 정한아는 적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물론 그런 행복감을 느낄지도 모르겠지만, 읽기 전에는 책에 대한 호기심이 먼저 든다.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진다. 책속에 나오는 751이 쓴 ‘치약과 비누’라는 소설을 읽고 싶은 궁금증과 비슷할까?

벽지도배를 새로 하고 바닥공사를 하면서 십년동안 그대로 쌓아뒀던 짐을 끄집어내게 되었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아주 강하게 책꽂이 위에 쌓아둔 상자들을 버리라고 하셨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그 신발상자들은 그저 빈 상자가 아니라 이십년 동안 받았던 수많은 손편지들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또 한구석에 쌓아뒀다. 짐정리를 하는 동안 가끔은 부스럭거리면서 몇몇 글을 읽기도 했지. 오래전의 편지글은 십대소녀의 감성을 담고 있기도 했고, 철없는 이십대 청년의 꿈도 담겨있고, 이십대를 보내며 미래에 대한 고민에 가득 찬 친구의 글도 담겨있었다. 그 글들을 보며 내가 아닌 나를 보는 듯한 예전의 추억에 잠겨있으려니 부끄럽기도 했지만 마음 한쪽이 뭔가로 가득 차오르는 그런 충만함을 느끼기도 했다.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는 바로 그런 이야기들이 담겨있는 책이다. 슬프지만 행복한, 그래서 마음이 너무 따뜻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소설 속 주인공이 쓴 소설 ‘치약과 비누’의 마지막 문장이 무엇일까 궁금해지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분명 너무도 따뜻한 문장이겠다, 라는 확신이 생긴다. 책 내용을 간단히 얘기하자면, 주인공인 지훈이가 그의 개 와조(할아버지를 안내하던 맹인견 와조가 사고를 당해 맹견이 되어버린)를 데리고 여행을 떠난다. 이 책에는 ‘그’와 와조가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 담겨있다.

삼 년 동안 눈 먼 개 와조를 데리고 모텔을 전전하며 여행을 다닌 그와 그가 만난 751명의 사람들(물론 그가 만난 사람들 중에 그에게 주소를 적어준 사람들)의 이야기는 ‘글’안에 담겨있다. 그 ‘글’이라는 것은 이 책을 다 읽고 나서야 비로소 온전히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니 부디 누군가의 말처럼 뻔히 속는 것 같은 느낌일지라도 마음 따뜻해지는 행복을 느끼고 싶다면 이 책을 읽으시라. 사족이지만, 내가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의 느낌은 딱 그거였다. 18. 오늘, 나에게 아무도 편지하지 않았다.(39)
 


(사진 제공 루피님)


책을 읽기 시작할 때, 만일 누군가 내게 편지를 써달라고 한다면 이십대에는 편지를 썼겠지만 지금은 아마 쓰지 않을 것이다,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아니, 그때 내가 잘못 생각했었다. 나는 낯선 누군가에게 나를 내보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할 만큼 세상살이에 영악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편지라는 것은 나 자신을 온전히 내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시작은 ‘나’라는 존재가 있음을 전하는 인사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문득 오랫동안 써보지 않은 손편지를 써볼까, 싶은 마음이다. 지금의 내가,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어딘가의 당신에게.

후기: 이 글을 쓰고 난 후, 예쁜 분홍색 한지를 꺼내들고 오랜만에 손편지를 썼습니다. 애인에게 보내는 편지가 아닌데도 마구 설레더군요. 손편지를 쓰는 시간은 고독이지만 따뜻하고 행복한 시간이 됨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루피’님은?
글자를 모르던 4살짜리가 책 한 권 들고 혼자 옥상 계단에 앉아 책을 보더라는 옆집 아줌마의 증언처럼, 어릴 적부터 책 한 권 들고 구석을 찾아 박혀있었지만, 지금은 그것이 결코 구석에 박혀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요. 책을 통해 온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고 믿는 섬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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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운드에서 땀 흘리는 모두, 승자! - <내추럴>

 

버나드 멜러머드, <내추럴>, 사람과책, 2009 


드디어 가을 잔치의 절정인 2009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의 막이 오릅니다. 12년 만에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고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기아 타이거즈와 압도적인 타력으로 두산 베어스에게 승리한 SK 와이번스는  박빙의 승부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어느 팀이 최후의 승자가 될지 관심이 모아지는 가운데, 한편으로는 ‘야구 시즌 끝나면 뭐 보지?’ 고민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누가 우승 트로피를 쥐든 한국 프로야구는 10월 24일(예정)이면 끝이 날 테니까요. 이런 야구팬들을 위해 소설 한 편 소개할까 합니다. 바로 버나드 맬러머드의 <내추럴>입니다.

야구나 영화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작품은 1984년 배리 레빈슨 감독이 연출한 영화 <더 내추럴>의 원작 소설입니다. 로버트 레드포드, 글렌 클로즈가 주연한 이 작품은 야구영화 중에서 수작으로 꼽힙니다. 주인공은 서른넷에 ‘나이츠(Knights)'에 입단,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로이 홉스입니다. 서른넷이라면 웬만한 선수들 은퇴할 나이입니다. 오죽하면 나이츠의 감독 팝은 “서른넷의 신인이란 이미 한쪽 발은 무덤에 걸치고 시작하는 거지.”라고 말합니다.

나이 먹은 것도 서러운데, 팝은 로이에게 좀처럼 출전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그때 팀에서 가장 잘나가던 선수 범프가 불의의 사고를 당해 죽고, 로이는 선발 출장의 기회를 얻습니다. 한쪽 발을 무덤에 걸치든, 지옥에 걸치든 로이는 펄펄 날아다닙니다. 그동안 못했던 야구를 한꺼번에 몰아서 해치우듯 투수들의 공을 푸른 하늘 저 멀리 날려버립니다. 로이의 활약에 용기를 얻은 선수들은 함께 힘을 모아 리그 최하위를 벗어납니다. 그리고 포스트 시즌 진출을 위해 쉴 새 없이 달려갑니다.

하지만 거칠 것이 없어 보이던 로이와 ‘기사들’에게도 슬럼프는 찾아옵니다. 로이가 범프의 애인이었던 메모에 빠져 극심한 타격 부진을 보이자, 나이츠는 예전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로이는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 메모가 원망스럽고, 그토록 잘 맞던 ‘원더보이’(로이의 배트)가 침묵해 더욱 괴롭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관중석에서 일어나 열성적으로 응원하는 여인 아이리스를 봅니다. 그는 아이리스를 만나면서 슬럼프를 벗어나고, 팀은 다시 기세를 올립니다. 하지만 메모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기에, 로이의 모습은 불안하기만 합니다.
 


(영화 <더 내추럴>)


야구란 이름의 게임, 인생이란 이름의 게임

<내추럴>은 퓰리처상 수상 작가 버나드 맬러머드의 데뷔작으로, 1952년에 발표한 소설입니다. 소설을 읽는 내내 풀 HD TV로 1950년대 야구 시합을 보는 듯한 투박함이 느껴졌습니다. 또 제목 ‘The Natural’(재능을 타고난 사람)에서 알 수 있듯, 홈런이 주특기인 걸출한 대형타자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치밀한 야구 경기 묘사는 많이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내려놓는 순간, 가슴 한 구석에서 묵직한 것이 느껴졌습니다.

어두운 과거 탓인지 로이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갈망합니다. 그라운드를 밟는 것은 모든 야구 기록을 바꾸기 위함이고, 타석에 서는 것은 굶주린 원더보이의 허기를 채워주기 위한 것처럼 보입니다. 또 포스트 시즌 진출을 결정하는 마지막 시합에서는 은밀한 거래를 함으로써 경기하는 매순간이 괴롭습니다. 연애도 마찬가지. 그는 아이리스와의 사랑이 아무런 조건 없이 이뤄진 순수한 사랑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여러 가지 이유로 그녀를 멀리합니다. 로이는 최고의 자리에 서고,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여인들의 사랑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행복하지 못합니다. 야구와 사랑, 그 자체를 즐기지 못하니까요. 로이는 생각합니다.

나는 과거 내 삶으로부터 배운 게 하나도 없기에 이제 또다시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어.(306 쪽.)

짐작하셨겠지만 소설 <내추럴>은 영화 <더 내추럴>과 같은 해피엔딩이 아닙니다. 버나드 맬러머드는 야구라는 흥미로운 소재로 이야기를 속도감 있게 펼쳐가지만, 그 속에 한 천재 야구선수의 흥망성쇠를 넣음으로써 삶의 태도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던집니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게임을 충분히 즐기고 있나요? 혹시 도래할 미래(혹은 영영 오지 않은 미래)를 위해 게임을 스스로 망치고 있지는 않나요?

한국시리즈 얘기로 시작했으니, 한국시리즈 얘기로 마무리를 하기로 하겠습니다. 전 기아 타이거즈든 SK 와이번스든 누가 이겨도 상관없습니다. (전 히어로즈 팬이기 때문에, 농담입니다.^^;) 중요한 것은 ‘누가 승자냐’가 아닌 선수들의 플레이, 경기 내용 자체가 아닐까 싶습니다. 불타는 투지와 깨끗한 매너로 끝나는 순간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경기가 펼쳐진다면, 승자와 패자 상관없이 우뢰와 같은 박수를 보내겠습니다. 우리네 삶도 승자와 패자가 따로 없는, 최선을 다한다면 모두가 박수를 받을 수 있는 게임이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더 ‘자연스러운 것’(The Natural) 아닐까요. 반디(ak2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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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잃기 위해 화해하는 이성적인 방법 - <이성적인 화해>

 

장폴 뒤부아, <이성적인 화해>, 현대문학, 2009


“내가 속한 현실 속에서는 당신은 거의 있지도 않아” 이 말이 내게서 떠나지 않았다. 나는 그랑뎅 박사에게 안나가 말한 현실이 도대체 무엇인지 묻고 싶었다. 우리는 여러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지만, 그 관계라는 것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누군가로 인해서 하루를 더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바로 그런 관계에 대해서 묻고 싶었다. 보이지 않는 관계 때문에 우리 모두는 타협할 준비, 이성적으로 화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가. 나는 전문가의 대답이, 내가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대답이 필요했다. 그러나 내가 위험을 무릅쓰고 말하려는 순간에, 가슴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고 나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p. 124)

이 부분을 읽는데 내가 폴 스테른이기라도 한 것처럼 울음 덩어리가 울컥 치솟아 올랐다. 마치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토록 철저히 거부당한 것처럼. 특별히 뭔가를 치명적으로 잃어본 적 없으면서도 나는 어떤 ‘상실’이든 그에 대해 아주 예민해지는 경향이 있다. 마주 사랑했고 나는 아직도 사랑한다고 믿고 있는데 내가 줄곧 바라본 그에게는 더 이상 나란 존재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그래서 그를 생경하게 잃게 되는 비극. 공감에 무딘 내가 나도 모르게 폴에게 감정이입된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폴과 안나는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결혼하고 세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이 자라 새 가정을 이루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삼십 년을 함께한 부부다. 그래서 충분히 사랑하고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믿었는데 아내 안나는 돌연 남편 폴의 모든 것을 거부한다. “당신을 보지도 않고 당신 말을 거의 듣지도 않아. 내가 속한 현실 속에서는 당신은 거의 있지도 않아”라고, “폴, 나는 아프지 않아. 다만 내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고 듣고 싶지 않고 살고 싶게 하지 않는 것들이 있는 것뿐이야. 그러니까 당신이 가는 게 좋겠어. 당신이 해야 할 일을 해. 나는 내가 돌볼 거야”라고. 더 이상 당신은 필요 없어, 라니 이보다 더 치명적인 존재의 거부가 있을까.

공교롭게도 폴의 직업은 죽은 영화 대본을 살리는 스크립트 닥터(Script Doctor)다. 다른 시나리오 작가의 실패한 원본을 조각내어 재배열하고 잘라내고 덧붙이며 깁는…. 그러나 남의 죽은 영화 대본은 여기저기 손봐 살리면서도 폴은 언젠가부터 어긋나기 시작한 아내와의 잘못된 관계는 어쩌지 못한다. 생기 가득하고 삶의 의욕으로 넘치던 아내 마리는 어느 날부터인지도 모르게 무기력한 우울증으로 삶의 의미를 잃고 급기야 폴과 그들의 사랑도 부정하고 깊은 잠에 빠져든다.

폴은 시나리오라는 가상 세계에서는 문제점이 무엇인지 정확히 진단하고 그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으며 자기 능력을 발휘하지만 현실에서는 속수무책일 뿐이다. 게다가 형이 살아생전 그의 모든 세속적인 호화로운 삶을 비판했지만 막대한 유산을 남기고 죽자 형의 재산과 애인까지 거리낌 없이 누리는 노년의 아버지도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한다.

결국 눈물을 왈칵 쏟은 폴은 일을 핑계로 생경해진 아내와 가족을 벗어나 미국으로 더욱 도피한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그곳에서 그는 아내와 가족에게 더욱 옥죄이는 것 같다. 형의 죽음을 기점으로 평생 수호해 왔던 자신의 삶을 부정하고 평생 매도해 왔던 형의 삶을 추구하기 시작한 아버지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시도 때도 없는 아버지의 전화는 차마 외면하지 못한다. 자신을 더 이상 삶의 의미로 받아들이길 거부하는 현실의 아내에게 상처를 받았지만 폴은 오히려 젊은 시절, 그들 부부가 가장 사랑했던 시절의 아내와 꼭 닮은 여자 셀마 샨츠에게 빠져든다.

폴은 셀마를 아내와 따로 생각하지 못한다. 그에게 셀마는 아내의 분신, 가상의 아내다. 마치 아내와 가족은, 분리하려 해도 분리되지 않는 자신의 일부인 듯 폴은 현실의 도피처인 미국에서 끊임없이 현실의 아버지를, 그리고 아내를 돌아본다. 사랑하는 그들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무엇을 놓쳤는지.

도저히 잃어지지 않는 것들

오늘도 여전히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려고, 내 책임을 따져보려고 애를 썼다. 나는 우리의 지난 삶을, 무의미하면서 내밀한 사소한 것들을, 어두우면서 빛나는 이미지들을 떠올려보았다. 나는 바다에 갔을 때 아버지의 배에서 아이들의 목소리와 함께 안나의 목소리를 들었다. 나는 그녀가 오래전에 썼던 향수의 이름과 그 향기를 알고 있었다. 나는 우리가 함께 보낸 지난 30년에 대해서 잊은 게 하나도 없었다. 아무것도 함부로 버리지 않았고 아무것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렇기는 하지만 나는 아주 중요한 것을 놓쳤다. 말하자면 순간의 기억을 놓쳤다. 내가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안나가 조심스럽게 멀어졌던 그때, 모든 일이 어긋나기 시작했던,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날들의 흔적을 놓치고 말았다. (p. 32~33)

결국 폴은 자신이 놓친 것을 찾지 못한 채 있어야 할 현실의 자리로 돌아온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폴은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의심하지만 가능하다. 폴은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장폴 뒤부아는 그것을 ‘이성적인 화해’라고 말한다. 조금의 의구심도 없이 화해의 요건이 완벽하게 갖춰지지 않아도 무언의 용인 아래 각자의 방식으로 적절한 화해를 이끌어낼 수 있는 일종의 현실적인 타협이라고. 폴이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아내에게 상처 입은 것은 그들과의 관계에서 ‘아주 중요한 것’을 놓쳤기 때문이다. ‘아주 중요한 것’은 폴이 그들과 화해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가 되어줄 것이었다.

하지만 폴은 끝내 ‘아주 중요한 것’을 찾지는 못한다. 그래도 그들은 화해한다. 그들 사이에 잃어버린 ‘아주 중요한 것’에는 잠시 눈감고 각자의 방식으로 그들이 함께하는 현실을 이어가는 것이다. ‘이성적인 화해’의 어감은 어딘가 개운하지 못하다. 하지만 더 많은 것을 잃을 수 있으므로 덜 잃기 위해 화해하는 것은 현명하다. 도저히 잃어지지 않는 것들은 잃어서는 안 되므로…. 여전히 사랑한다면.

오늘의 책을 리뷰한 ‘막내집게’님은?
외출에 대한 극도의 ‘귀차니즘’으로 어쩌다 책을 ‘놀잇감’으로 삼게 된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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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의 결을 사로잡는 문장의 매력 - <세계의 끝 여자 친구>


 

김연수, <세계의 끝 여자 친구>, 문학동네, 2009

 

우리가 완벽한 어둠 속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이야기는 계속 고쳐질 것이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제 그가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서 첫 문장은 달라질 것이다. 그는 어둠 속 첫 문장들 속으로 걸어갔다. (p.228, ‘웃는 듯 우는 듯, 알렉스, 알렉스’)

<세계의 끝 여자 친구>를 덮었을 때, 머릿속을 맴돌았던 구절이다. 유리창 사이로 들어온 추양(秋陽)이 따스이 몸을 간질이듯, 김연수의 문장들은 살갗을 타고 돌았다. 9개의 소설, 300페이지를 가득 채운 수많은 문장들 중, 이 문장이 기억난 건 분명 이유가 있다. 문장의 운동성이다. ‘그가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서 첫 문장이 달라지’듯, 그의 문장은 살아 움직인다. 김연수의 문장들은 주제나 내용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을 한참 넘어선다.

문장들은, 소설 내적으로는, 쉼 없이 뛰는 심장이 되어, 소설 속 시간에 생명을 부여한다. 공간, 인물들의 감정 등에 대한 섬세한 묘사는 일상에 묻혀 사라지는 무명의 시간들을 일깨운다. 목표를 향해 달리면서 놓치는 수많은 풍경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둔감해지는 감정들은 소설 속에서 되살아나고, 우리네 일상은 숱한 감정을 품을 수 있는 밭이 된다. 그리고 살아 숨 쉬는 문장의 호흡들, 그로 인해 되살아난 감정의 결들은 서로 입을 맞춘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한 우리는 얘기했고, 더 이상 말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서로 사랑했다. 이른 아침에도, 햇살이 힘없이 늘어지는 오후에도, 눈 그친 깊은 밤에도 우리는 서로를 사랑했다. (p. 124, ‘모두에게 복된 새해 - 레이먼드 카버에게’)

불, 노을, 그리고 응시

<세계의 끝 여자 친구>에는 화자들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강렬한 인상들이 있다. 케이케이가 바라보던 불타는 도시(‘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 사람이 빠져 죽은 바다(‘기억할 만한 지나침’), 어느 날 새벽에 타오르던 붉은 불꽃과 시커멓게 피어나던 검은 연기(‘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 친정엄마가 죽던 날 바라본 노을(‘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등. 이것들은 경우에 따라 극 전개의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는데, 어느 경우에든 화자는 물론 독자들을 낯설게 한다.

평소처럼 관계를 맺고 침대에서 함께 잤다면, 케이케이가 알몸으로 도심의 불길을 바라보지 않았다면 그날은 기억에 남지 않았을 것이다. 또 그 새벽에 붉은 불꽃과 시커먼 검은 연기가 없었다면 그날 새벽 또한 수없이 스쳐지나가는 시간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불은, 노을은, 바다에 빠져 죽은 이는 그들의 시간을 낯설게 하면서 동시에 시간의 존재를 일깨운다. 이는 섬세한 문장이 일상을 깨우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는데, 앞의 것이 몸을 어루만짐이었다면 뒤의 것은 시각과 정서에 충격을 가함으로 우리를 일상에서 벗어나게 만든다.

소통의 불가능성과 가능성

일상으로부터의 탈주, 그렇다면 그 지향점은 어디일까. 먼저 작가의 말에 귀 기울여 본다.

우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을 오해한다. 네 마음을 내가 알아, 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네가 하는 말의 뜻도 나는 모른다, 라고 말해야만 한다. 내가 희망을 느끼는 건 인간의 이런 한계를 발견할 때다. 우린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세상에 사랑이라는 게 존재한다. 따라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p. 316, ‘작가의 말’)

김연수는 먼저 소통 가능성에 대해 항복 선언을 한다. 내가 너를 이해하는 것도, 네가 나를 이해하는 것도 어느 하나 쉽지 않다고, 아니 어쩌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작품 속 인물들도 그렇다. 오래 전 사랑을 나눈 케이케이의 기억을 찾아 한국에 온 ‘나’와 통역사 해피는 소통하지 못하고, 한 사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울며 뛰쳐나간 강의 심정을 도서관 사람들은 모르며(‘내겐 휴가가 필요해’), 알렉스는 리 선생의 이야기를 쓰면서 그를 이해하기는커녕 더욱 괴로워진다(‘웃는 듯 우는 듯 알렉스, 알렉스’).

하지만 세상에 사랑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이유는, 오늘도 누군가와 만나고 싶어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이유는, 김연수가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 이유는 소통의 한계를 느낌과 동시에 새로운 소통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이다. 이 공간에서는 완벽한 소통이 가능하다고 ‘착각’하지 않아도 되고, 소통해야한다고 ‘강요’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마음 가는 대로, 누군가가 만든 기준이 아닌, 온전히 자신에게서 비롯된 살아있는 감정으로 지금, 너를, 만나면 된다. 김연수의 문장이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말이다.

반디의 한 마디 더!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에는 2009년 1월 벌어진 용산참사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정색을 하고 얘기하는 건 아니지만, 잠시 스쳐지나가는 것만으로도 그 울림이 크다. 동시대의 사건을 동시대 작가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다는 건, 눈물겹게 반갑다. 반디(ak2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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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카타리나^^ 2009.10.07 11:00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이 책 리뷰가 요즘 여기 저기 보이네요
    ㅎㅎㅎ 관심이 가긴 하는데...

  2. 조르바 2009.10.07 11:42 address edit & del reply

    안 그래도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라 관심 가득한데, 반디님의 리뷰를 보니 읽고픈 마음이 더욱 불끈해지네요.

    • 반디앤루니스 2009.10.07 13:45 신고 address edit & del

      하하! 조르바님의 마음을 불끈하게 했다니, 감개무량합니다. 근데 책이 수백만배 좋으니 책을 보시면 더 좋을 겁니다..^^

  3. .몬스터 2009.12.07 10:07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내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연속으로 읽었습니다.
    개인과 개인간의 관계에서 느끼는 외로움 뿐 아니라
    사회와 개인이라는 관계 속에서 사회로부터 외면당하는 이들의 외로움 들이 잘 드러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김연수님 글 처음 읽었는데, 관심있게 다른 책들도 살펴봐야겠어요..

    • 반디앤루니스 2009.12.07 10:11 신고 address edit & del

      저도 사회 속 개인이 느끼는 외로움을 느꼈습니다.
      동시대 작가의 글에서 그런 걸 느끼니 위로를 받는 듯한 느낌도 받고.. 좋았어요..^^

시리즈가 기대되는 잘 빠진 한국 추리소설 - <무심한 듯 시크하게>

 

한상운, <무심한 듯 시크하게>, 로크미디어, 2009

 

책을 볼 때 작가의 프로필은 보지 않는데 우연히 이 작가의 프로필은 보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백야행>의 영화를 각색했다는 점이 눈에 확 들어왔다. 오호~ 기대하고 있는 영환데 어떻게 각색했을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책에 대한 기대도 더 높아졌다. 사실 이 작가의 작품을 처음 읽기 때문에 작가 스타일을 몰라서 사실 아무 기대가 없었다. 단지 추리소설이라는 점에 읽을 생각을 했을 뿐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 영화 가운데 이명세 감독의 작품 <인정사정 볼 것 없다>라는 영화가 있다. 그 작품에서 박중훈이 형사로 등장하는데, 주인공 정태석을 보는 순간 딱 그런 타입의 형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식하고 개념 없고 무작정 주먹을 휘두르고 보고 지기 싫어하고 한번 물면 죽는 한이 있어도 안 놓는 독종. 한편 인간적으로는 무심한 듯 시크해보이지만 가슴 깊숙이 인간적인 면을 간직하고 있는 대한민국 보통 남자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정태석은 중년 형사 유병철과 콤비를 이뤄 마약 밀매범을 잡으려고 나이트에서 큰 건을 물어 온다.

성형외과 의사가 마약 밀매를 한다. 정태석은 그 잘생긴 의사에게 두 번이나 싸움에서 지고 분통을 터트린다. 그러다가 그를 잡기 위해 여러 곳을 뒤지다가 살해된 변성수와 같이 다니던 이들의 시체를 발견하고 그들을 살해하는 전문 킬러가 등장했음을 직감한다. 사건은 점점 단순한 마약 밀매에서 야쿠자가 가담한 거대 범죄로 발전을 하고 거기에 변성수의 전적이 콜롬비아 마약상에게 까지 닿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변성수와 연쇄 살인범을 한꺼번에 잡아야 하는 일이 대한민국 열혈 형사 정태석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경찰 소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쌈박한 작품은 보지 못했다. 대한민국다운, 대한민국 스타일의 경찰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다. 인정사정 볼 거 없이 약한 놈에게는 거짓말과 협박도 하고 센 놈에게는 힘으로 밀어 붙여 나가떨어지기도 하고. 총은 있지만 쏠 수는 없고 범인 쫓다가 사고내면 경찰이 물어내야 하고 칼 맞을 두려움과 박봉에 시달리면서도 깡 하나로 버티는 대한민국 경찰들. 뭐 나쁜 경찰도 있지만.

여기에 대한민국의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잘 생기고 외국 대학 나오고 직업이 소위 '사'자가 들어가면 무조건 통하는 현실을 지적하고 있다. 마약 청정국가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고 그럼에도 마약 경유지로 이용되고 있는 점과 마지막에 살포시 등장하는 반전과 추리소설적 묘미까지 보여주고 있다. 또한 캐릭터가 모두 좋다. 정태석뿐만 아니라 이 팀원들 한명 한명이 개성 있게 그려지고 있다. 정말 기대감이 적었는데 만족감이 높은 작품을 만나 행복하다.

잘 읽힌다. 재미있다. 정태석의 사생활보다 좀 더 경찰의 활약을 진지하게 다뤘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도 들지만 작가의 의도가 그게 아니라면 괜찮다. 경찰 생활의 고단함을 유병철을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중년의 위기감도. 사랑에 대한 생각도 유머러스하게 잘 풀어내고 있다. 정태석 시리즈가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도 안 무심하고 하나도 안 시크하지만 그 아이러니가 잘 어울렸다. 영화로 만들어도 괜찮을 것 같고. 작가의 이름을 잘 기억해야겠다. 좋은 추리소설로 또 만나기를 기대해본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매추리’님은?
책만 읽는 은둔자입니다. 평상심을 유지하고자 책을 읽고 있습니다. 추리소설을 아주 좋아하는 마니아입니다. 추리소설은 모셔만 두고 봐도 배가 부르고, 추리소설을 좋아하기에 한국 추리소설의 발전을 간절히 소망하기에 요즘 한국 추리소설이 계속 나오고 있어 기쁘게 생각하고 있는 독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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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없는 자본주의의 끝없는 시험 - <카스트로 유전자>


 

토드 부크홀츠, <카스트로 유전자>, 리버스맵, 2009


사무실 서가 앞에서 어슬렁대고 있는데 <카스트로 유전자>란 소설이 눈에 띄었다. 정장을 입었으나 야수성이 살아있는 남자가 권투를 하는 표지. 하지만 그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토드 부크홀츠’란 저자의 이름이다. 누구더라. 곧, 경제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할 무렵 읽었던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무척 즐겁게 읽었었다. 근데 이 사람 책이 소설을 썼다고? 농구 황제 마이클 조단이 야구 선수로 변신해 세간의 비웃음을 샀던 기억이 떠올랐다. 업종 변경이 얼마나 힘든 일인데. ‘일단 집에 가는 동안에만 읽어보자’는 마음을 먹고, 전철에 올랐다.

책장을 넘기자, 숨 막히는 권투 경기가 펼쳐진다. 젊은 복서 루크 브레이든은 열기 가득한 사각의 링에서 관록 있는 쿠바 복서 페레즈와 한 판 승부를 벌이고 있다. 루크는 자신의 체력은 바닥이 났지만 상대는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것도 알고 있다. 페레즈는 항복하려는 몸짓을 하지만, 코너에서는 고깃덩이가 된 인간을 링 중앙으로 내민다. 이를 목격한 루크는 더 이상의 공격 의지를 상실한다. 하지만 경고로 점수가 깎이고, 페레즈는 달려들고, 성난 관중들이 “브레이든, 노 코호네스(불알 없는 놈)!”을 외치자 루크는 상대의 턱에 주먹을 날린다. 상황 종료. 페레즈는 쓰러지고, 루크는 승자이자 살인자가 된다.

영문학과 교수인 아버지처럼 고상하지도, 그렇다고 충분히 거칠지도 못한 루크는 경기 이후 죄책감에 사로잡혀 6개월 간 두문불출한다. 하지만 링 위에 서지 않는 이상 백수인 그는 생활고에 시달려 월가의 한 투자은행 경비로 취직한다. 날렵한 정장을 빼입고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직원들을 부러운 바라보는 루크. 이후 사장의 눈에 띄기 위해 작업을 펼치던 어느 날 사장에게 호출을 받고 깜짝 놀랄 소식을 듣는다. 금융계의 거물인 폴 트레먼트가 자신을 고용해, 상상 이상의 돈을 만진다는 것이다. 이제 루크는 폴의 시험을 치르며 세계 경제의 중심부, 그리고 거대한 음모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카스트로 유전자>는 속도감 있는 전개로 보는 이를 사로잡는다. (야구 열기가 한창이라 야구 소설 <내추럴>을 읽으려고 했는데, 이 책을 손에 잡고 <내추럴>은 잠시 미루게 됐다. 그런데 이 책 속에 <내추럴>에 대한 언급이 나와 깜짝 놀람.) 성공 뒤에 도사리고 있는 거대한 음모, 서서히 밝혀지는 출생의 비밀, 상원의원과 FBI가 얽힌 추격전, 상원의원의 딸 코리와의 사랑 등 잘빠진 할리우드 스릴러 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이쯤 되면, 저자의 업종변경에 대해 걱정은 기우였음이 곧 밝혀진다.

자본주의 불길에 휩싸인 부나방 혹은 개구리

토드 부크홀츠는 이 소설에서 경제학자로서 자신의 장기를 십분 활용한다. 그는 세계 자본의 흐름을 소설 전반에 배치함으로써 금융 중심의 자본주의 사회가 얼마나 소름끼치는 것인지 보여준다. 하룻밤 사이 천문학적인 돈이 오고가고, 수많은 기업이 파산하기도 한다. 그런데 자본력을 이용해 금융의 흐름을 바꾸고,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사람을 우리는 ‘나쁜 놈’이라 할 수 있을까? 폴 트레먼트는 ‘돈 놓고, 돈 먹기’에서 번 돈으로 생명을 구하고, 희망을 전달하는 수많은 자선 사업을 한다. 또 주식시장에 뛰어드는 사람들 모두 일확천금을 바라고 뛰어든 부나방이 아닌가. 자본에는 인격이 없다.

“월스트리트는 날씨와 같다네. 자연현상과 같아. 허리케인이 상륙하면 플로리다의 이동주택 주차구역에 사는 주민들 200명은 트레일러에 덧댄 파형 강판이 바람에 쓸려 에버글레이즈까지 날아가는 걸 지켜본다네. 그렇다고 기상예보관이 수치심을 느낄까? 멕시코시티에 지진이 발생했을 때 어린이 5천명이 함몰됐는데, 어느 누가 수치심을 느끼던가? 안 됐다는 생각은 할 테지. 하지만 죄책감을 느낄까? 대체 자네가 뭐지? 신이라도 되나? 그런 수치심은 신이나 느끼라고 하게.”(p. 176, 폴 트레먼트가 루크에게 하는 말.)

금융시장은 루크가 피 튀기며 싸웠던 권투 시합장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권투 시합은 사람이 사람을 잘 때릴수록 칭송을 받는 게임이고, 월스트리트는 온갖 작전과 술수로 높은 수익률을 기록할수록 인정받는 게임이다. 권투에서 승자가 챔피언이 되듯,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사람은 승진으로, 고액의 보너스로 보상을 받는다. 여기에 쓰러진 자, 주식으로 돈을 날린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없다. 그들은 ‘루저’(패배자)일 뿐이며, 냉혹한 세상은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줄 만큼 관대하지도, 한가하지도 않다.

또 한 가지 소름 끼치는 것은 루크가 폴 트레먼트의 세계에 편입되는 과정이다. 루크는 처음 자신의 인터뷰로 많은 기업이 손해를 본 것을 보고, 환멸을 느낀다. 하지만 앞에 언급된 폴 트레먼트의 충고(?)를 듣고는 ‘내가 신경 쓸 바 아니’라며 자기 합리화를 시도한다. 또 시험의 난이도가 높아질수록 그가 사용하는 편법의 수위가 높아진다. ‘이곳이 내 길이 아니면 언제든지 떠나겠어’라고 마음을 먹었던 루크는 고가의 펜디 구두에, 초호화 오피스텔에 익숙해지면서 충분히 변한다. 그리고 자신의 트레이너이자, 진실한 친구였던 벅의 말을 의심하는 순간, 그는 더 이상 운동화를 신을 수 있는 루크가 아니다.

<카스트로 유전자>는 우리가 깨어있다는, 세상을 직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얼마나 순진한 생각인지 알려준다. 또 냄비 안의 개구리처럼 자본주의의 열기에 휩싸여 자신을 잃어가는 인간의 모습 또한 보여준다. 개구리의 끝이 죽음이었다면, 자본주의적 인간의 끝은 무엇일까. 혹 그 거대한 변화 앞에 우리는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는 것은 아닐까. 책을 덮는 순간 루크의 이야기는 끝나지만, 우리의 시험은 끝나지 않는다. 반디(ak2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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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어디로 가는가? - <국경을 넘어>

 

소년은 어디로 가는가? - <국경을 넘어>

 
어디에서나 하느님을 본다는 것은 어디에서도 하느님을 못 본다는 것과 같은 말이야. 우리는 매일매일을 살아가지. 하루가 지나면 내일이 오고. 그러다 어느 날 느닷없이 우리는 어떤 사람을 만나지. 여느 사람과 다를 바 없던 사람, 이미 알고 있던 사람을. 하지만 그는 제단에 전 재산을 쌓는 것처럼 어떤 행동을 하고, 이 행동으로 인해 우리는 우리 가슴에 묻혀 있던 것을, 결코 완전히 잃어버리지도 않았고 잃어버릴 수도 없는 그 무엇을 보게 되지. 그것이 그 순간이야. 바로 그 순간 말이야. 우리가 오래도록 기다렸으나 두려워했으며, 우리를 유일하게 구원해 줄 수 있는 그 순간. (p.202)

위 문장은 코맥 매카시의 국경 3부작 중 두 번째, <국경을 넘어>에서 내가 뽑은 가장 희망적인 구절이다. 어느 날 현대 미국문학의 대가라 불리며 포크너, 멜빌, 헤밍웨이와 비견되는 낯선 이름이 혜성처럼 등장한 코맥 매카시. 1933년생 매카시의 긴 문학인생 중 최신작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로드>의 세계적 인기는 이제껏 주목 받지 못했던 그의 과거작들이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내게 했다.

두 작품 모두 힘들게 본 기억이 있는 나는 새로운 작품을 만난다는 기대에 부푼 한편 걱정도 많았다. 인간의 부질없는 욕망과 신의 구원을 무겁고 담대하게 그려낸 카리스마에는 박수를 보내지만, 특유의 건조한 문체와 삶에 대한 희망 없음, 구원을 찾아 떠나는 밑도 끝도 없는 발걸음이 그 못지않게 지루하고 불편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난번 작품보다 세 배는 되어 보이는 두께가 문제였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황량한 사막에서 사소한 욕망 때문에 쫓고 쫓기는 인간 대 인간의 밑바닥 삶을 드러냈다면, <로드>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을 내세워 인간이 인간에게 있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일깨웠다. 생생한 고통과 구원의 묘사가 아름답고 간결한 문장으로 전달되는 것이 영 달갑지만은 않은 것도 어쩌면 인간의 이중성과 도달불능성, 한계와 잠재성의 실체를 확인하는 일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매카시는 희망을 보여줄 터였다. 그의 문장 하나하나는 영혼을 관통하는 것 마냥 절실하게 들릴 것이고 읽지 않으면 곧 후회하게 될 것이다. 

열여섯 소년 빌리, 늑대와 함께 국경을 넘다

<국경을 넘어>는 열여섯 소년 빌리의 모험담이자 성장문학이다. 카우보이 빌리는 또래답지 않은 고집과 순수로 가득 차 있다. 인근 목장에서 일어나는 송아지의 죽음이 늑대 짓임을 안 아버지는 늑대를 사로잡아 송아지의 희생을 막고 금전적 이득을 남기려 한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혼자 늑대를 잡으러 산으로 간 빌리는 두려움과 용기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다 마침내 늑대 사로잡기에 성공한다.

처음에는 강하게 저항하던 늑대가 점차 온순해지자 가만히 늑대의 눈동자와 교감하는 빌리는 문득 늑대가 가엾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늑대를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 보내주기로 마음먹는다. 멕시코 땅으로 가서 풀어주기로 한 것이다. 이때부터 늑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온갖 수난과 역경을 감수하는 빌리의 여정이 시작된다. 과연 빌리의 국경 넘기를 성공할 것인가?

늑대는 때로 반항하며 때로 순응하며 빌리를 따른다. 만나는 사람마다 늑대를 어떻게 할 거냐고 묻지만 늑대에 대한 사람들의 탐욕을 잘 알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대답을 회피한다. 그러던 중 어떤 남자들은 빌리에게 먹을 것과 잠잘 곳을 준다며 유인하고는 늑대를 강제로 투견장에 투입시킨다. 늑대는 거의 60마리의 사냥개들과 2대1로 두 시간 가까이 싸워야 했다. 오로지 죽지 않기 위해 버틴 시간이었다. 빌리는 늑대를 지켜주지 못한 데 죄책감을 느낀다. 결국 늑대의 고통을 막는 일이 늑대를 위해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자신의 소총을 꺼내 늑대의 숨통을 끊는다. 늑대의 사체를 늑대의 땅에 묻어주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성장하는 소년, 막막한 미래 그리고 빛 한 줄기

집으로 돌아오자 부모님은 목장을 습격한 강도들에게 살해당하고 동생 보이드만 살아남았다. 말을 훔쳐 달아난 강도들을 찾기 위해 형제는 다시 길을 떠난다. 가는 도중 아버지가 아끼던 몇 마리 말을 되찾기도 하지만 쉽게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오지 못한다. 두 형제를 속이고 말과 총을 욕심내는 사람들 때문이다. 빌리가 유일하게 의지하고 믿는 똑똑한 동생 보이드는 낯선 사람에게 총을 맞아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보이드는 형이 혼자서라도 가던 길을 계속 가기를 바란다. 보이드를 두고 떠나는 빌리는 강도를 찾지 못한 채 스무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동생을 찾아가지만 보이드는 이미 죽은 뒤다. 동생의 유골을 찾아오던 중 강도로 인해 함께 다니던 말의 목숨까지 위협받는다. 말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던 빌리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채 머물 이유 없이 가던 길을 계속 간다.

빌리의 여정에는 목표가 없다. 가야 할 곳도, 반겨줄 사람도 없다. 그저 여기서 저기로 갈 뿐이다. 이동 중 만난 많은 사람과 그들의 이야기는 빌리의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매카시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빌리의 확실한 미래를 보여주지 않은 채 끝맺는다. 하지만 늑대와 소통하고 자연과 교감하던 빌리의 과거를 통해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희망으로 받아들인다.

매카시의 소설은 아름답다. 여운과 감흥이 뒤따르는 건조한 문체는 매력적인 유혹이기도 하다. 그래서 또다시 읽게 된다. 매카시는 군데군데 희망을 심어두었지만 행과 행, 문장과 문장, 구절과 구절 사이를 흘려 읽는 사람에게는 발견되지 않는 것이다. 희망이란 한 줄도 놓치지 않고 읽는 사람에게만 허락된다. 매카시의 소설 앞에서는 할 줄 모르는 기도를 하고 싶어진다. 마음속에 있는 오기와 욕망을 내려놓아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책을 들 자신이 없다면 매카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라도 반드시 보기를 권한다. 자연과 인간의 평형을 그리는 위대한 매카시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것 같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감성소녀’님은?
아직 20대인 것이 희망. 자칭 예술애호가. 어느 날 문득 알게 되었다. 몰입과 지속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단 것을. 규격적 인간을 선호하는 세상을 거스르며 살고 싶어 책읽기를 선택했다. 로마 스페인광장에서 하루 종일 사람구경하며 책 읽는 삶을 꿈꾸지만 여의치 않은 현실에 로마로 떠나는 사람들의 여권에 도장 찍어주는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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