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 해당되는 글 46건

  1. 2010.08.06 <침묵의 무게> - 조금씩 점점 더 가벼워질 수 있도록 (2)
  2. 2010.01.08 <너는 모른다> - 너는 내가 알고 싶기는 하니? (8)
  3. 2009.12.18 <소울 아프리카> - 영혼이 살아 숨 쉬는 대륙
  4. 2009.12.17 <나는 여기가 좋다> - 책 사이로 퍼져나오는 바다 냄새
  5. 2009.12.16 <영원한 것은 없기에> - 단지 두 사람만으로, 사랑은 완성
  6. 2009.12.15 <나이브? 슈퍼!> -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7. 2009.12.09 <나쁜 피> - 돌이킬 수 없는 (2)
  8. 2009.11.12 <죽음의 중지> - 죽음과 국가의 뫼비우스 띠 (2)
  9. 2009.11.10 <가스미초 이야기> - 사진첩의 세피아색 사진들 (4)
  10. 2009.11.03 <신비의 섬> - 개척정신으로 무인도에서 살아가기

<침묵의 무게> - 조금씩 점점 더 가벼워질 수 있도록

헤더 구덴커프, <침묵의 무게>, 북캐슬, 2010


‘세상의 모든 딸들과 부모들에게’ 책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문구가 제일 먼저 눈에 띈다. 세상의 모든 딸들과 부모들이 걱정할 만한 일들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요즘. 내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는 있는지, 공부는 잘하고 있는지를 걱정하던 부모의 마음에 아이가 집으로 무사히 돌아올 때까지의 불안과 염려가 더해졌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끔찍한 아동 성폭력 사건이 뉴스에 종종 등장할 때마다 딸 키우는 가족의 한숨이 한 번 더 깊어지고 만다. 핑크색 잠옷을 입고 뒤돌아 서 있는 표지의 아이, 그 가려진 얼굴이 부모가 모르는 아이의 신변을 대신하며 그 불안한 마음을 건드려 책장을 펼치게 한다. 그리고 그것이 곧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두 소녀의 행방을 찾는 미스터리 소설의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헤더 구덴커프의 <침묵의 무게>는 아동 성폭행과 가정에서의 자녀 학대를 다룬 미스터리 가족 소설이다. 네 살 이후 말을 잃어버린 아이 칼리와 칼리의 목소리를 대신해주는 친구 페트라가 사라지고, 그 아이들을 찾는 과정에서 침묵에 가려져 있던 가족사의 비밀이 서서히 드러난다. 실종된 아이들의 행방과 아이들을 찾는 가족의 심정, 가족과 함께 한 과거의 기억들이 등장인물들 각각에게 할애된 장(章)에서 차례로 오고가며 이야기를 완성해나간다. 칼리의 엄마 안토니아, 오빠 벤, 페트라의 부모인 마틴과 필다, 보안관 루이스, 그들 각각의 시점에서 서술되고 있는 이야기는 서로 다른 가족의 모습과 그 기억을 담아내며, 사라진 아이가 남겨 놓은 가족의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선택적 함묵증을 앓고 있는 칼리의 이야기만은 작가의 시점에서 서술되는데, 이는 밝혀지지 않은 가족사의 비밀을 유지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침묵의 이유’와 관련된 또 다른 긴장감이 만들어진다. 실종된 아이의 행방을 조금씩 알아가며 이야기를 따라가는 독자가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이의 소리는 유예되고 침묵은 계속되며,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침묵의 이유’가 극을 이끌어가는 또 다른 축이 되는 것이다. 결국 가족이기 때문에 알고 있는 것, 그러나 쉽사리 말할 수 없는 것, 혹은 가족이기 때문에 알 수 없는 것들과 관련된 침묵이, 그리고 비밀이, 우리 또한 느끼고 있을지 모르는 가족 문제의 무게를 더해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칼리의 침묵이, 그 침묵에 대한 안토니아의 침묵이, 시간의 흐름과 함께 점점 더 무게를 더하며 그들을 짓누른다. 그러니 가족 사이의 문제들을 각자의 비밀로 남겨 놓고 침묵하는 이들에게는 그만큼의 무게를 안고 삶을 살아야한다는 문제가 남는다. 알게 되는 것의 두려움, 알게 됨으로써 지금까지의 가족이 더 이상 같은 가족일 수 없게 될 것에 대한 두려움, 그것이 침묵을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침묵으로 가족을 지켜나가는 것은 이 책의 '칼리네'가 그랬던 것처럼, 위태로울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아이의 실종이라는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알게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내는 <침묵의 무게>는 가족 안에 있는 우리가 조금씩 점점 더 가벼워져야 할 이유를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지켜나가는 것 뿐만 아니라, 부시고 무너뜨리는 과정에서도 진정으로 서로에게 위안이 될 수 있는 '가족의 의미'가 생겨날 수 있음을 생각해본다.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
 


Trackback 0 Comment 2

<너는 모른다> - 너는 내가 알고 싶기는 하니?

 

정이현, <너는 모른다>, 문학동네, 2009


너는 모른다는 말,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말 중 하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뭐가 문제인지 물었을 때 상대방이 ‘너는 몰라’라고 하면, 둘 사이엔 건널 수 없는 강이 생긴다. ‘그 어떤 말을 해도 너는 이해할 수 없으니 우린 끝’이라 선언하는 잔인한 말. 이 말을 들으면 해결을 위한 뜨거운 의지도, 지금껏 함께한 시간도, ‘나는 소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심연으로 한없이 처박힌다. 만약 사랑하는 이들 간에 이 말이 오고간다면, 사랑은 거기까지다. 정이현 작가는 무슨 독한 마음을 먹었기에 ‘너는 모른다’는 제목을 택했을까.

강남의 고급 빌라에 사는 혜성의 집은 남들보다 잘 산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를 거 없는 평범한 중산층 가정이다. 아버지 상호는 돈을 잘 벌어다 주고, 화교 출신의 새엄마 옥영은 모나거나 별나지 않게 가정을 돌본다. 배다른 동생 유지는 엄마 옥영을 닮아 조용하고, 문제는 일으키지 않는 초등학생이다. 의대에 합격한 혜성 또한 집안 분위기를 잘 맞출 줄 아는 만 스무 살 성인이자, 상호의 자랑거리이다. 가족 중 문제를 일으키는 이는 혜성의 친누나 은성. 다행히 그녀는 따로 살아 집안에 별 문제는 없어 보인다.

그런데 어느 평범한 일요일, 유지가 사라진다. 상호는 사업 파트너를 만나러 나가고, 옥영은 친정어머니를 만난다는 핑계로 옛 연인을 만나러 대만에 가고, 혜성은 남자친구에게 차이고 난동을 부리는 은성을 진정시키러 간 사이, 유지는 바이올린 과외 선생님에게 줄 레슨비와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동안 옥영의 품에 쌓여 바이올린밖에 모르던 아이 유지. 그 아이는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유지가 사라지고 잔잔하던 가정에는 큰 파문이 밀려온다.

당연히 있어야할 곳에 부재가 자리 잡자 가족은 불타듯 불안감에 휩싸인다. 이 불안감은 아이를 잃은 슬픔과 자신들이 어린 유지를 혼자 집에 방치했다는 죄책감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다. 뭔가 뒤가 구린 일을 하는 아버지, 가족들 몰래 옛 연인을 만나는 어머니, 한때 동생을 납치해 상호에게 돈을 뜯어내자고 했던 은성, 뭔지 모를 상실감에 타인과 소통하기를 꺼려하는 혜성까지. 사건을 해결하고, 상처를 치유하는데 각자 다른 생각과 방식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옥영의 눈동자에 피로와 불안, 도탄과 고통의 그림자가 일렁였다. 그럼에도 절망의 깊다란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으려는 필사적인 의지가 느껴졌다. 상호는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둔 바짓주머니를 뒤져 답배갑을 찾았다.
“내 얘기 좀 들어요.”
아내가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녀는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경찰을 더 이상 못 믿겠어. 그 사람들은 조그만 아이 하나 없어진 일에는 큰 관심이 없어. 하긴 그 사람들한텐 그게 당연하겠지만.” (…) “딴 방법이 일을 거야. 오늘부터 같이 찾아봐요. 이대로 경찰 손에만 맡겨두었다가는 정말로 어떻게 될지 몰라.”
“에이 썅, 그만하라고 했지!”

(206~207쪽)

사라진 아이를 찾는 과정에서 가족들이 ‘너는 모르는’ 사실들이 하나둘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갈등은 커진다. 네가 알아서는 안 되는 사실들과 또 굳이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사실들은, 판도라의 상자에 봉인됐던 온갖 불행이 되어, 사람의 마음을 긁고 또 할퀸다. 여기서 정이현 작가는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되는 사실과 사실이 밝혀져야만 사건이 해결되는 모순된 상황이라면 우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답을 내리기 쉽지 않다. 더욱이 그것이 가정의 해체와 딸아이의 실종이라는 정면충돌이라면, 답은 진실의 문제가 아닌 선택의 문제로 남겨진다.

작품은 이처럼 ‘앎’과 ‘모름’ 사이에서 갈등해야 하는 우리의 숙명을 드러내는 한편,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민낯을 주저함 없이 까발린다. 돈을 위해서라면 인륜을 저버리는 냉혹한 어른들의 세상, 화교라는 낙인으로 숨 한 번 크게 쉬지 못하는 우리 사회, 애정 결핍으로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의 굴곡이 커져버린 젊은이, 지나친 기대와 관심으로 인터넷 공간 속으로 침전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아이들. ‘나’는 ‘너’를 얼마나 알려고 했을까. 아니, 알고 싶기는 한 걸까.

1월 4일, 폭설이 내려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던 날, 뉴스를 보는데 <너는 모른다>가 떠올랐다. 예상치 못했던 상황 속에서 우왕좌왕하며 갈 길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유지를 잃은 가족의 모습과 같았다. 정이현 작가는 쉽게 벌어지지는 않지만 분명 세상에 존재하는 하나의 사건을 시작으로 불안 가득한 세상을 솜씨 좋게 재구성한다. 사건의 원인을 찾아가는 미스터리 형식 때문인지, 그들의 이야기가 감추고 싶은 우리네 삶을 보여줘서인지, 가슴이 아프면서도 책장은 잘도 넘어간다.

                                                                                                     - 반디(ak20@bandinlunis.com)

Trackback 0 Comment 8

<소울 아프리카> - 영혼이 살아 숨 쉬는 대륙

 

조세프 케셀, <소울 아프리카>, 서교출판사, 2009


영혼을 울리는 음악 ‘소울’, 태양과 가장 가까운 땅 ‘아프리카’. 프랑스 작가 조세프 케셀의 소설 <소울 아프리카>는 뜨거운 두 단어로 이뤄졌다. 이 책을 처음 손에 쥔 것은 지난 여름. 하지만 겨울을 기다렸다. 책을 열면 뻗쳐 나오는 열기에 휩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고이 숨겨뒀다가 추운 겨울이 오면 열어야지. 책 속의 아프리카 대초원을 달리며 추위를 달래자. 그렇게 해서 2009년 가장 추운 날 다시 만난 <소울 아프리카>. 기대대로 충분히 뜨거웠다.

<소울 아프리카>는 킬리만자로가 멀리 보이는 케냐의 ‘암보셀리 보호구역’이 배경이다. 세계 여행을 하다 이곳에 들른 ‘나’(화자)는 이른 새벽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원숭이 니콜라와 너무나 작아 오히려 생명의 경이로움이 느껴지는 영양 챔벌린을 만난다. 이제 막 눈 뜨는 새벽녘의 신비로운 기운과 이들과의 만남은 그를 알 수 없는 황홀경으로 밀어 넣는다. 대지의 부름에 이끌려 밖으로 나간 그는 동물들이 모여 있는 곳에 도착하고, 거기서 소녀 파트리샤를 만난다. 그리고 ‘이 새벽에 소녀가!’라고 놀라기도 전에 그는 소녀의 묘한 매력에 끌린다.

파트리샤를 다시 만난 건 그날 저녁, 보호구역 책임자 불리트의 집에서다. 초대를 받고 간 저녁식사에서 본 불리트의 가족은 어딘가 모르게 어색하다. 그의 아내 시빌은 지나치게 격식을 차리다가도 딸에게 신경질적인 태도를 취한다. 또 딸 파트리샤는 새벽에 봤던 모습과 달리 얼음장처럼 차갑다. ‘사자의 아이’라 불리는 소녀 파트리샤와 그의 가족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다음 날 아침 떠날 예정이었던 그는 숙소로 돌아와 마음을 바꿔 더 머물기로 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상치도 못했던 아프리카 대륙의 모습을 만난다.

소설의 통해 생명의 신비 가득한 자연과 태양보다 뜨거운 대륙 아프리카를 여러 번 만났다. 이른 새벽 생명의 신비로움을 체험케 한 니콜라, 챔벌린과의 만남, 파트리샤가 그녀가 어릴 적부터 키운 사자 킹과 교감을 나누는 장면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처럼 생생하다. 또 블리트와 차를 타고 아프리카 초원을 질주할 때는 길의 경계는 무의미하며, 아찔한 경사로를 타고 올라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과 마주한다. 그리고 불리트, 파트리샤, 킹이 펼치는 가슴 벅찬 달리기까지….

그때 나는 초원 저 멀리서 갑자기 튀어나와 우리를 향해 달려오는 하나의 점, 하나의 덩어리, 한 마리 맹수를 발견했다.
“킹! 오! 아빠, 정말 킹이야.”
(…)
“아빠, 킹을 좀 더 달리게 해줘요. 가능한 한 가장 빠르게 달려보게 해요. 킹, 너무 멋지게 생겼죠? 아빠 어서 달려요!”
불리트가 거칠게 운전대를 돌려 이제 사자와 정면이 아닌 옆으로 볼 수 있게끔 180도로 돌아섰다. 그는 킹과의 거리가 많이 벌어지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차를 몰았다. 하지만 킹이 있는 힘을 다해, 숨이 가쁠 정도로 달리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충분히 빠른 속도였다. 이렇게 해서 킹은 전속으로 달려 우리를 따라왔다. (…) 킹을 달려오면서 계속 포효했다. (209~211쪽)

그렇다고 대지가 누군가의 발길을 쉽게 허락하는 것은 아니다. 위에 펼쳐졌던 광경은 보호구역을 찾았던 대부분의 사람이 볼 수 없었던 광경이다. 대자연의 기운을 받기보다 자랑거리 하나 추가하려고 했던 이들은 그들이 기대한 만큼만 얻고 떠났다. 중요한 것은 선택이다. ‘나’는 다음 여행지를 포기하고 남았기 때문에, 파트리샤와 불리트, 그리고 대자연에 몸을 맡겼기 때문에 체험할 수 있는 감동이다.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버리지 않고서야, 가슴 전체를 뒤덮을 거대한 감동을 온전히 끌어 않을 수 없다.

책에 등장하는 마사이족 이야기는 선택의 대가와 결과가 무엇인지 깊게 생각하게 만든다. 그들은 자유롭다. 쇠똥을 이용해 집을 짓고 살기 때문에 어디에도 구속받지 않고 여행 같은 삶을 산다. 그들은 용맹하다. 창과 방패를 손에 쥔 그들은 사자를 향해 달려가는데 주저함이 없다. 사자와 싸움을 벌일 때 솟구치는 그 뜨거운 피. 이것은 그의 사지가 잘려 나갈 때만 가능하다. 여행 중에 만난 마사이족은 우리에게 이런 말을 하는 듯하다. “그대 가진 것만 욕망하고, 두려움 뒤에 숨는다면 그대는 자유로울 수도, 용맹스러울 수도 없다.” 하나를 버려야만 열리는 새로운 세상 <소울 아프리카>, 살을 베는 아픔이 있기에 더 뜨겁다. 반디(ak20@bandinlunis.com)

Trackback 0 Comment 0

<나는 여기가 좋다> - 책 사이로 퍼져나오는 바다 냄새

 

한창훈, <나는 여기가 좋다>, 문학동네, 2009


바다 냄새가 나는 사람이라 했다. 그 이름만 들어도 바다가 떠오르는 사람이라 했다, 한창훈 작가는. 늘 그리움으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바다의 이미지가 있고, 코끝에 스치는 바다 냄새를 좋아하는 나는 그래서 더욱 이 작가의 책을 만나보고 싶었다. 어떤 글을 쓰는 사람이기에 그 글에서 바다 냄새가 날까 궁금했다.

책 표지에서부터 바다를 선사해 준 이 책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가득 바다가 펼쳐져 있다. 이 책을 중간쯤 읽었을 때 강원도로 가족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우리의 목적지는 깊숙한 산 속이었지만 오가는 길에 바다에 들른다 했다. ‘바다’라는 말을 듣자마자 망설임 없이 이 책을 챙겨 들었다. 혼자 가는 여행도 아니고 가족 여행인데, 책 읽을 시간이 있을까 싶었지만 왠지 함께 가고 싶었다. 함께 바다를 보고 싶었다.(결국 여행지에서 책은 몇 장 읽지 못했다.) 그 여행길에서 두 군데의 바다에 들렀다. 그리고 바다를 바라보며 나는 이 책을 떠올렸다. 오합지졸로 밀려오는 파도와 저 멀리 떠있는 섬을 보며 이 책의 표지를 떠올렸고, 이 소설 속 사람들처럼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이 책에는 모두 여덟 편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다. ‘여덟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 한 편 한 편, 모든 글이 거센 해일이 되어 내 마음을 덮쳤다. 표제작인 ‘나는 여기가 좋다’의 첫 장부터 내 가슴은 콩닥콩닥 뛰기 시작하여, 몇 장 읽어나가기도 전에 나는 이미 이 ‘한창훈’이라는 ‘바다’에 풍덩 빠져버렸다.

한 평생 섬 사나이로 살아온 남자와 이제는 그 섬을 떠나려 하는 아내의 갈등을 어두운 밤바다를 배경으로 그려낸 ‘나는 여기가 좋다’, 식당집 여인네의 아련한 사랑 이야기를 엿들을 수 있는 ‘밤눈’, 사랑이 까딱하면 성매매가 될 뻔한 섬마을 다방 아가씨와 섬 총각의 ‘올 라인 네코’, 젊은 시절 바다에서 목숨을 잃은 친구의 제사에 일흔이 넘어서야 처음으로 찾아온 노인의 ‘바람이 전하는 말’….

그리고 오랫동안 가슴에 묻어두었던 이야기 털어내고 몸도 마음도 가벼워진 ‘가장 가벼운 생’, 자살을 하러 바다에 찾아온 여인과 그 죽음을 도와주기로 한 섬 사나이의 ‘섬에서 자전거 타기’, 말도 많고 탈도 많고 그만큼 재미도 많았던 ‘삼도노인회 제주 여행기’, 아들을 뭍으로 내보내고 싶은 아버지와 기어이 꾸역꾸역 섬으로 되돌아온 아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아버지와 아들’. 이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었음에 무척이나 감사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책에 가득한 사투리도 일품이다. 책을 읽고 나서 ‘후유증’이 하나 생겼다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사투리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 학창 시절에 10년 가까이 시골에 살면서도 사투리를 제대로 익히지(?) 못했던 나인데, 어째 이 책 한 권으로 그렇게 빨리 사투리를 습득할 수 있었는지! 마누라가 이삐믄 처갓집 말뚝에다 대고도 절을 한다 해싸트만, 책이 좋응께 사투리도 기양 지절로 익혀져뿌리네!(?)

유난히 인상적인 대사가 하나 있었는데(이미 이 책을 읽은 많은 이들이 이 대사를 마음에 담았을 듯!) 바로 이 한 마디.

“올 라인 네코!”


나를 얽어매는 모든 구속을 풀어주는 듯한 이 주문이 나도 모르게 불쑥불쑥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인자 배를 출발할 것잉께 줄을 다 걷어내라’. 이제 나라는 배도 내가 원하는 곳으로 출발할 것이니까 나를 묶고 있는 줄을 다 걷어내자! 올 라인 네코! (주의 : 애인 앞에서 사용하면 순식간에 므흣한 단어로 변하는 수가 있음)

여하튼 결론은,
나는 이 책이 좋다!!

 “난 전생에 뭔가 큰 죄를 졌어라우.”
그녀는 깊은 밤바다를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무슨 말인가.”
“섬에서 태어났응께.”
...

“내 평생 생각한 것이, 내가 왜 섬에서 태어났을까 하는 것이요. 죄를 지어 벌을 받았다는 것 말고는 해답이 안 나왔소.”
“그러면 여기서 죄갚음 한다고 생각하면 되잖어.”
“그 죄가 기억이 나믄 좋겄소. 기억에 없으니 억울하요.”

(‘나는 여기가 좋다’ 중에서.)

오늘의 책을 리뷰한 ‘원주님’은?
책이 좋아 책과 함께 하는 삶을 꿈꾸다가 번역의 길에 들어선 병아리 번역가입니다. 애석하게도 지금은 책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일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꼭 제 손으로 번역한 중국 문학을 국내에 소개하는 게 꿈입니다.

[<나는 여기가 좋다>는 굼실이님이 나감책으로 선정한 책입니다. 굼실이님 나감책 보기(클릭!)]
[<나는 여기가 좋다>는 원주님이 또 나감책으로 선정한 책입니다. 원주님 나감책 보기(클릭!)]

Trackback 0 Comment 0

<영원한 것은 없기에> - 단지 두 사람만으로, 사랑은 완성

 

로랑스 타르디외, <영원한 것은 없기에>, 문학동네, 2008


사람에게 과거란 어떤 의미일까? 그저 지나간 시간일 수도 있고, 죽는 순간 떠오르는 한 장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잊지 못할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안다. 과거란 아무리 떼어버리고 싶어도 끈덕지게 어딘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랑스런 결과물인 아이가 어느 날 실종된다. 이 일은 두 사람을 돌아 올 수 없는 강 저편으로 갈라놓는다. 소설의 주인공인 주느비에브와 뱅상의 이야기다. 딸 클라라가 어느 날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 힘든 삼 개월을 보내며 결국 딸의 부재를 받아들이는 주느비에브.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채 딸의 흔적을 기다리는 뱅상. 결국 사랑해 마지않던 두 사람은 각자의 길을 간다.

그렇게 십오 년이 흐르고 이야기가 시작된다. 뱅상 앞으로 주느비에브가 보낸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하면서. “난 죽어가고 있어 뱅상 난 죽어가 보고 싶어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보고 싶어 당신을 보고 만지고 당신 목소릴 듣고 싶어 보고 싶어 뱅상 난 죽어가.” 과거를 지우고, 그녀도 잊었다고 생각하며 지낸 뱅상이지만, 편지를 다 읽기가 무섭게 옷도 제대로 챙기지 않은 채 차를 몬다. 주느비에브가 있는 그 곳으로.

책의 내용은 간단하다. 그녀가 아프다. 그가 간다. 둘은 마지막 시간을 함께 보낸다. (그 사이에 그녀와 그의 과거가 밝혀진다.) 등장인물은 과거를 묻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았던 두 남녀이다. 그러나 곱씹을수록 이 책은 진한 맛이 난다. 읽을 때는 문장이, 읽은 후에는 잔영이 남아 마음을 붙잡는다.

세 개의 키워드. 과거, 글, 사랑.  

“몸과 뇌에서 과거가 모조리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 그래서 현재만 남았으면, 오로지 현재 속에 존재했으면.” 과거가 사랑하는 여인들을 잃은 고통의 시간으로만 남아있는 뱅상은 기억과 화해하고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그럼에도 과거는 끈덕지게 기억 속을 헤집고 다닌다. 이어지는 주느비에브와의 만남. 이를 통해 뱅상은 바뀐다. 참혹했던 과거는 여전히 슬픔으로 가득하지만, 이제는 과거를 과거로서 인정한다. 그녀의 마지막 유품인 노트 세 권도 고이 받아들인다.

글에는 치유의 효과가 있다. 주느비에브가 힘든 시기를 이겨낸 방법 또한 글쓰기다. 매일 밤 그녀는 글을 쓴다. 그녀는 고백한다. 쓰기를 통해서 난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글쓰기를 멈춘다면 죽고 말 것이다. 오직 글만이 내가 살아 있도록 지탱해준다.” 글쓰기는 그녀 곁에 아무도 없던 15년간 그녀 삶을 지탱해 준 친구이자 연인, 가족과도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사랑. 클라라를 향한 뱅상과 주느비에브의 끝없는 기다림의 사랑. 함께 살아가진 못했지만 삶의 마지막에서 서로를 찾은 뱅상과 주느비에브의 오랜 사랑. 사랑은 언제나 고통을 동반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을 갈구한다. 왜? “기억에 새겨둘 것. 우리에게 기쁨이 존재했음을. 의심하지 말 것.” 고통보다 큰 기쁨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녀와의 짧은 재회에서야 뱅상은 깨닫는다. 사랑, 행복은 그렇게 거창한 게 아니란 사실을. “그러니까 행복은 다름 아닌 그녀와 나, 두 사람이었다. 그렇게 단순한 것이었다.” 단지 두 사람만으로 사랑은 완성된다. 죽음, 이별 같은 일에 깨질 만큼 약하기도 하지만, 그 앞에서 다시 되찾을 용기를 낼 만큼 강하기도 하다.

뱅상은 바뀐다. 모든 일을 체념했던 그가 새로운 기운으로 시작할 힘을 얻는다. 과거를 슬픔이 아닌 즐거움으로 느낀다. 죽음을 앞에 두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힘을 전해준 주느비에브가 보여준 사랑의 강함에 놀랐다. 책의 제목은 <영원한 것은 없기에>였지만, 글쎄. 그녀의 사랑은 죽음을 넘어서 그의 마음에 다시 살아났으니 ‘영원한 것은 있을지도’ 라며 희망을 가져 봐도 좋지 않을까.

오늘의 책을 리뷰한 ‘굼실이’님은?
어쩌다 보니 하루라도 책과 만나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치는 불치병에 걸려버린, 북홀릭 청춘. 책 속에서 사랑도, 지혜도 찾고픈 그런 사람.

<영원한 것은 없기에>는 굼실이님이 선정한 나감책입니다. 굼실이님의 나감책 보기(클릭!)

Trackback 0 Comment 0

<나이브? 슈퍼!> -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에를렌 루, <나이브? 슈퍼!>, 문학동네, 2009


당신은 누구인가요? 무엇을 위해 지금 그 일을 하고 계신가요? 오늘 하루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요? 행복한가요? 당신을 기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언제 화가 나나요? 화가 나면 어떻게 푸시나요? 아무 걱정 없이 웃어본 적은 언제인가요?

가끔 질문이 끝도 없이 쏟아질 때가 있다. 나에 대한 질문인 건 분명한데 마땅한 해답을 찾을 수 없다. 막상 어제 무슨 일을 했는지조차 기억이 나질 않는다. 마치 시간의 일부를 날카로운 가위로 싹둑 잘라낸 것처럼 지나온 삶이 가물거린다. 뭔가에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멍하다. 답답하고 먹먹한 느낌. 혼란스럽다. 내가, 이 사회가, 온 우주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느 날 문득 세상의 모든 것들이 무의미하게 다가올 때. 누군가는 여행을 계획하고, 누군가는 잘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던진다. 또 누군가는 홀로 칩거에 들어가기도 한다. 삶이란 그저 그렇게 하룻밤 고민하고 끝낼 문제가 아닌데 이것만큼 깊숙이 파고들어가기 힘든 것도 없다. 삶의 본질적인 문제에 늘 정면승부를 피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사는 대로, 살아왔던 대로, 살아지는 대로 살아가기에 이미 익숙해져 있으므로.

<나이브? 슈퍼!>는 평범한 청년의 자아(본질) 찾기 과정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주인공 ‘나’는 스물다섯 생일날 아침, 문득 그동안 썩 잘 살아오지 못했음을 깨닫게 된다. 갑자기 모든 것이 무의미하며 엉망인 듯 혼란스럽다. 뭔가 달라져야 할 시기, 앞으로의 인생에 대해 심사숙고하기 위해 지나온 삶의 흔적들을 하나씩 지워나간다. 마침 출장을 떠난 형의 집에 한 달 동안 틀어박힌 채 앞으로의 인생을 계획해 나갈 생각이다.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소설! 이 책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등장인물도 좋은 친구 킴, 나쁜 친구 켄트, 그리 착하지 않은 형, 이웃집 꼬마 뵈레, 어쩌다 생긴 여자 친구 리세 정도다. 부모와 조부모도 잠깐 등장한다. 주인공이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는 것들은 어떻게 보면 무덤덤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키득키득 웃으며 읽게 된다.

지극히 일상적이어서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 무심히 방치해 두었던(어쩌면 잊고 있었던) 감정들을 톡톡 건드려 주기 때문이다. 진지한 가운데 가끔 엉뚱한 재치를 선보이기도 한다. 책을 읽고 있으면 온 몸의 웃음 세포가 되살아나는 기분이다.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관심만 기울인다면 충분히 특별할 수 있는 것이 인생이다. 고맙게도 이 책은 평범하지만 위대한 이 진리를 깨닫게 해준다.

‘나’의 목록 만들기

‘나’는 지나온 인생을 정리해 보기 위해 목록을 만들어 나간다. 갖고 있는 것들, 갖고 있지 않은 것들을 시작으로 자신과 일상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수많은 목록을 작성한다. 기분 전환과 생각을 단순하게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는 물건도 마련한다. 공과 망치 놀이 판자가 그것이다. 종종 자전거를 탄다. 가끔은 고층 호텔의 엘리베이터도 탄다. 오르고 내리기를 쉼 없이 반복하며 사람들에게 말 걸기를 시도한다. 공원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하며 질문을 건네기도 한다. 마침내, 모든 일은, 제자리를 찾아, 잘 돌아갈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여행을 통해 삶에 대한 통찰력을 얻은 셈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은 ‘나’는 틈새시장을 노린 사업도 구상해 놓는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사람들은 인생이라는 또 다른 의미의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떠나기 전과 같을 수도 있지만 여행에서 돌아오면 이미 많은 것들이 달라져 있음을 알게 된다. 마음이 상황까지 바꾸어 놓는 것이다. 여전히 수많은 의문과 숙제를 품고 살아가겠지만 받아들이는 마음과 해결하는 방법에서는 분명 차이가 생겨난다.

이 책의 주인공 ‘나’처럼 언제 갑자기 인생이 무의미하게 다가올지 모른다. 삶의 방향을 잃고 헤매는 것은 청소년만의 문제가 아니다. 젊은 세대들, 중장년층, 노인이 되어서도 ‘인생’은 언제나 의문투성이일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 얼마나 정확하게 현실을 직시하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 한 번쯤은 자신의 내면을 순수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들 중 어떤 것에 반응을 하며 살아가는지 알게 되면 삶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책을 읽는 동안 무척이나 행복했다. 많이 웃었고, 진지하게 생각도 해봤다. 아무리 많은 시간이 주어진다 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발견하지 못할 자잘한 일상의 풍경들. 그 일상들이 모여 한 사람의 역사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니 소홀히 보아 넘길 것이 없다. 그렇다고 심각해질 이유는 없다. 그저 무심하게 대했던 것들에 관심을 기울여 볼 것. 그것만으로도 남은 인생이 충분하게 차오르는 느낌이다.

주인공처럼 나도 목록 만들기를 시작해봐야겠다. 그 중에서도 매일 빼먹지 않고 해보고 싶은 것은 ‘오늘 본 광경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들’이다. 이 세상에 똑같은 것은 없다. 매일 지루한 일상이 반복되는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단지 미묘한 차이를 발견하지 못할 뿐이다. 목록을 작성하다 보면 자연스레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된다. 방향을 잃고 살아가는 것 같다면 수시로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나아가야할 방향과 통찰력은 그렇게 생겨나는 것이니까.

오늘의 책을 리뷰한 ‘soulnote’님은?
다독보다는 정독의 묘미를 즐기는 슬로 리더(slow reader). '소울노트'라는 닉네임처럼 영혼의 진실한 언어로 인생의 페이지들을 차곡차곡 채워나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나이브? 슈퍼!>는 soulnote님이 선정한 나감책입니다. soulnote의 나감책 보기(클릭!)

Trackback 0 Comment 0

<나쁜 피> - 돌이킬 수 없는

 

김이설, <나쁜 피>, 민음사, 2009


보통의 경우, 책을 다 읽고 나면 리뷰를 어떻게 쓸지 밑그림이 나온다. 그 밑그림을 바탕으로 며칠 더 씨름하고 채색을 하면 리뷰는 완성된다. 그런데 <나쁜 피>는 책을 덮는 순간은 물론, 일주일이 지나도 밑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밑그림은커녕 ‘아프다’는 막연한 생각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등장인물 화숙과 수연을 생각하면 아픔은 여지없이 찾아왔고, 그들의 현실을 상상하면 답답한 마음만 커졌다.

화숙은 낡은 버스 터미널에서 오락실을 하는 30대 중반의 여인이다. 20대 시절 악을 쓰고 돈을 벌어 가게를 열었지만, ‘유동인구가 많아 장사가 잘 된다’는 부동산 중개인의 말이 거짓인 걸 알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손님도 없이 어지러이 반짝이는 오락기만 보다 천변의 집에 돌아가면 할머니는 방구석에 아무렇지 않게 쓰러져있다. “죽었어?”라며 할머니의 옆구리를 차는 화숙. 할머니는 화숙의 행동이 아무렇지 않은 듯 컵에 소주를 따라 마신다. 이 지긋지긋한 삶은 언제 끝날까.

외삼촌은 딸 수연이 집을 나가자 동갑내기 친척인 화숙에게 수연의 딸 혜주를 맡긴다. 어쩌라고. 내 한 몸 간수하기도 힘든데, 고주망태 할머니에 사촌의 딸까지. 다행이 앞집 진순이 혜주를 맡아줘 벌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돈벌이를 나간다. 수연, 그녀는 화숙에게 한 번도 도움이 된 적이 없다. 외삼촌은 자신의 어미를 매일 두들겨 팼으며, 학창시절 남학생들은 수연에게만 관심을 보였다. 그런 수연이 도박중독에 빠진 남편을 만나 고생하는 건 걱정할 거리조차 안 된다. 그런데 이년은 어디 있는 거야?

화숙은 아버지가 누군지 모른다. 동네 남자들은 정신지체자인 어머니를 쉼 없이 강간했고, 그중에 태어난 게 화숙이다. 이 더러운 운명! 나쁜 피를 타고난 그녀가 행복할 여지는 없다. 세상은 그녀에게 미소 짓지 않는다. 남자들에게 능욕당하는 어미의 모습을 바라봐야만 했던 화숙, 그들의 더러운 농이 그녀에게 닿았을 때 화숙은 그저 살아남는 게 최선의 목표였다. 그런 그녀에게 수연은 유일한 출구였다. 외삼촌이 어미를 때리면 화숙은 수연을 팼다. 화숙은 아무 저항도 하지 않는 수연을 마주할 때마다 증오와 연민을 동시에 느낀다. 병신 같은 년, 나한테만 맞지 남자한테는 왜 맞아.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집안사람들의 비밀이 밝혀지고, 갈등의 근원을 향해 올라간다. 그런데 이들의 문제가 어디서부터 시작했는지 알 수 없다. 과거의 어느 순간으로 돌아가 피폐해진 삶을 돌이키고 싶어도 그들은 돌아갈 곳을 모른다. 또 개발을 거듭해 바뀌어버린 세상은 이미 그들이 손을 뻗쳐도 닿을 수 없는 곳에 가 있다. 한 때 천변의 상징이던 외삼촌의 고물상도 힘을 잃은 지 오래고, 화숙은 오락실을 처분하고 삶의 방향을 잃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고된 일상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지저분한 일상이라도 돌지 않으면 죽고 마는 나쁜 피니까. 세상아, 이젠 지겹지도 않다.

<나쁜 피>는 180쪽 분량의 경장편 소설이다. 비밀이 밝혀지는 이야기 전개나 김이설 작가의 말솜씨 덕에 책 읽기는 수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다 읽는 순간 가슴이 저려오는 건 변하지 않는 인물들 탓이다. 화숙, 수연은 물론이고 외삼촌, 할머니, 진순, 상가 사람들 등은 작품 속에서 성격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 빠르게 뜀박질 하는 세상 속에서 변하지 않는 인물들이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이들을 외면할 수도, 욕할 수도 없다. 이들의 이야기는 지금 누군가의 이야기이며, 고통은 온전히 그들의 것이다. 동정할 거  없어. 우린 오래 전부터 그렇게 살았어!

한 해의 끝자락에서 만난 <나쁜 피>. 새해 희망을 한껏 부풀리려고 할 찰나, 막연한 희망으로 세상의 어둠을 덮으려는(모르는 척 하는) 것이 얼마나 무책임한 행위인지 소름끼치게 알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쁜 피>와 김이설 작가에게 조심스런 감사의 말을 전한다. 그들의 이야기가 만든 내 가슴 구멍으로 인해 감정의 폭이 5mm는 넓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반디(ak20@bandinlunis.com)

[<나쁜 피>는 자목련님이 선정하신 나감책입니다. 자목련님의 나감책 보러가기(클릭)]

Trackback 0 Comment 2

<죽음의 중지> - 죽음과 국가의 뫼비우스 띠

 

주제 사라마구, <죽음의 중지>, 해냄, 2009


<눈뜬 자들의 도시>라는 제목에서 최근 국내에 많이 소개되고 있는, 흥미 위주의 소설이겠거니 했다. 더욱이 영화까지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런 심증을 굳혔다. 하지만 책 제목이 몇 달째 눈앞에 보이자 어떤 책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알량한 타협점(?)을 찾아 <눈 먼 자들의 도시>를 구입했지만 내용상 <눈뜬 자들의 도시>가 선행되어야 했고, <눈뜬 자들의 도시>를 읽으면서 주제 사라마구와 만나게 되었다. 

“기발한 상상력, 역동적인 문체, 그리고 그 안에서 불쑥불쑥 등장하는 풍자와 해학.”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을 한 줄로 표현하라면 위와 같다. 최근작인 <죽음의 중지>는 첫 머리를 장식하는 “다음 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에서부터 주제 사라마구 특유의 상상력이 발휘된다. 죽음은 그 자체로 아이러니하다. 비현실적인 것 같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또한 영원할 수 없지만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굴레다. 사라마구는 아무도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통해 죽음의 굴레에서 사람들을 해방시킨다. 그렇지만 그건 함정이다.

‘죽음의 중지’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영원한 삶이 아니라 죽어가는 것의 영원한 지속(가령 죽을병에 걸린 상태로 죽지 못한다든가 하는)이라면 그건 공포에 가깝지 않을까? 더욱이 죽음이 실체를 드러내고 그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순간부터 소설은 ‘빠져나갈 수 없는 궤도’에 접어든다. 그리하여 소설은 “다음 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고 끝을 맺고 다시 “다음 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고 시작하는 뫼비우스의 띠에 갇히게 된다. 

주제 사라마구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

주제 사라마구는 이 작품을 통해 삶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그 역시 아니다. <죽음의 중지>는 인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삶과 죽음에 대한 교훈이나 의도, 작가의 생각 등은 읽히지 않는다. 오히려 이 소설은 ‘중지된 죽음’이라는 메타포로 포장된 현대 국가에 대한 냉소를 드러낸다. 

국내에 소개된 몇 권의 주제 사라마구 소설에는 몇 가지 패턴이 존재한다. 어딘가에 존재할 수도 있고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국가에서, 거짓말 같은 일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 사건은 진실 여하를 떠나, 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개인과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마하려는 장관(국가)의 대립으로 치닫는다. 결국 장관(국가)은 개인을 짓밟음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듯 보인다. 그렇지만 <죽음의 중지>에서 장관(국가)과 대립하는 것은 개인이 아닌 죽음이라는 더 근본적인 존재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처럼 ‘문제적 개인’을 사살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했다고 자만할 수 없는 것이다. 대신 <죽음의 중지>에서는 체계적이고 구조적인 ‘국가 시스템’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물론 해결될 수 없다는 걸 작가도, 우리도 안다. 앞선 작품들이 표면적으로 드러난 문제적 개인에게만 집착했던 국가에 대한 냉소적인 시각이었다면, 이번 작품은 문제의 근원은 알지 못한 채 호들갑스러운 시스템만을 가동하는 현대 국가에게 보내는 노골적인 냉소다. 물론, 시스템 안에 갇힌 우리는 죽음의 뫼비우스 띠에서 벗어날 수 없듯 국가의 뫼비우스 띠에서 벗어날 수 없겠지만.

<죽음의 중지>는 ‘잘 쓴 이야기’라기보다 주제 사라마구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그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무엇일까를 생각하며, 나 역시 거침없는 상상력을 동원해봤다. 그리고 책을 덮으면서 <죽음의 중지>도 영화로 제작된다면 어떨까 싶었다. 음침하면서도 시니컬하고, 그러면서도 기발한 상상과 풍자를 냉소로 표현할 수 있는 감독은? 팀 버튼 정도일까.

오늘의 책을 리뷰한 ‘재즈하루’님은?
책과 음악을 좋아하는 월간 <재즈피플> 기자. 지난 7년간 소속과 이름을 숨기며 지내왔지만 반디앤루니스 블로그에 ‘민용 in 재즈피플’을 쓰면서 둘 다 드러나(?) 버렸다. 요즘은 메인 울렁증(내 글이 메인 페이지에 뜬 걸 보면 깜짝 놀람)도 많이 적응되어, 열심히 책과 음악에 대한 리뷰를 써보자고 생각한다.

Trackback 1 Comment 2

<가스미초 이야기> - 사진첩의 세피아색 사진들


 

아사다 지로, <가스미초 이야기>, 바움, 2009


어린 시절에는 동네마다 사진관이 하나씩 있었다. 지금도 동네에 사진관이 있기는 하지만 예전의 그런 느낌의 가게는 아니다. 지금이야 주로 증명사진을 찍는 곳이지만 예전에는 필름을 사기도 하고 사진을 찍으면 사진관에 가서 필름을 맡겼었다. 그러고 나면 하루 정도 뒤에 사진을 찾으러 가는데 그럴 때마다 불안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아주 어릴 때야 사진에 찍히는 대상이 된지도 몰랐고 그저 엄마를 따라 간 곳에 불과했었다. 그 와중에 개한테 쫓긴 일도 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약간 크고 나서 익숙하지 않은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도 하는 나이가 되어서는 돈이 아깝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한 공간이 되었다. 사진을 뽑고 나면 손가락이 찍혀 있거나 빛이 들어가 있기도 하고 사진이 엉망진창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핸드폰에까지 카메라 기능이 있어 누구나 쉽게 카메라를 들어 사진을 찍는다. 쉽게 찍은 사진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쉽게 지워진다. 예전의 사진과는 다른 느낌이 든다. 찰나를 기록한 것은 마찬가지인데도 말이다. 그와 함께 사진관도 점차 사라지고 어린 시절에 자주 갔던 사진관은 이제 약국으로 바뀌어 버렸다.

이 책 <가스미초 이야기>는 가을 한 때 아름답게 모습을 드러내지만 스러지고 마는 단풍 같은 단편집이다. 일본의 귀족에 해당하는 화족의 사진을 맡아서 찍기도 하고 ‘사진의 명인’이라고 불리었던 할아버지와 사는 소년 이노의 추억을 단편 하나하나에 담고 있다. 할아버지가 놀랍도록 아름다운 순간을 기록했던 사진처럼 이노의 추억은 단편 하나하나에 머물고 소년은 성장해간다. 그와 함께 사진관은 몰락의 길을 걷지만 말이다. 전차가 아직 거리를 달리던 시절 이노의 집은 사진관을 하고 있었다.

아름답고 여장부였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할아버지는 점차 초라해져 갔고 끝내는 노인성 치매로 인해서 자랑하던 사진기술에서도 도태되고 있던 입장이었다. 더구나 가업으로 생각했던 사진관도 점차 사양 산업이 되어 이노 무에이라는 이름은 손자에게까지는 갈 일이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아버지는 이제라도 이사를 하고 다른 일을 찾아보자 했지만 할아버지는 이사를 할 생각도 사진관을 포기할 생각도 없었다. 목에 건 라이카 카메라와 함께 할아버지는 끝까지 사진사로써의 인생을 고집한다.

덕분에 가족들은 흥청망청 돈을 쓰는 자포자기의 공백의 시간을 갖는다. 어떤 의미로는 스러질 잎이 가장 아름답게 모습을 빛내는 단풍의 시간이었다. 아버지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풍경을 찍고 다녔고 어머니는 가부키에 열을 올렸다. 소년 이노는 낮에는 학교 밤에는 향락의 거리를 돌아다니는 방탕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가족은 누구하나 혼내는 일이 없었고 이노 역시 섣부른 반항기도 없이 노는 것을 좋아했을 뿐이었다. 그 시간동안 소년은 동급생 소녀와의 사랑을 경험하기도 하고 친구를 잃기도 한다.

할아버지와 사진관에 얽힌 이야기, 데릴사위이기 이전에 스승과 제자인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관계, 할머니에 대한 추억들이 스러져가는 것에 대한 서글픔과 함께 전해진다. 그 단편들은 담백하면서도 초라하지 않은 흑백 사진 같은 맛이 있어서 서글프지만 아름다워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 할아버지가 남긴 졸업사진과 함께 소년의 어린 시절이 끝난다. 단 한 순간을 기록하고 기억을 제외하면 추억을 증명할 단 하나의 존재인 사진에 영혼을 건 사진사인 할아버지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는 따스함 그 이상의 감동을 선사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에이안’님은?
머리가 지끈거릴 때까지 책을 내리 읽는 것을 즐기는 독서가입니다. 책을 읽는 것도 읽을 책을 고르는 일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구요. 최근에는 서평으로 생각을 다듬고 블로그로 알리는 즐거움마저 발견하고 만 20대 후반 블로거이기도 합니다. ‘에이안과 미스터리’라는 블로그를 운영 중입니다.

Trackback 0 Comment 4

<신비의 섬> - 개척정신으로 무인도에서 살아가기


 

쥘 베른, <신비의 섬>, 열림원, 2006


당신은 만약 무인도에 가게 된다면 무엇을 가지고 가겠습니까. 예전에 이런 질문을 받아 본 적이 있다. 재미삼아 한 질문이지만 나는 꽤 심각하게 생각했었다. 지금까지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못 내고 있었는데, 난 <신비의 섬>을 읽음으로써 그 해답을 찾았다. 바로 이 책이 무인도에서는 아주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없고 가진 것이라고는 입은 옷밖에 없는 다섯 남자가 무인도에서 잘 살아가는 방법을 이 책에서는 이야기해주고 있다. 대충 사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잘 사는 방법을. 지리적으로 풍부한 광물질을 가지고 있고 동물들도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고 언제나 도와주는 수호자가 있으면 무인도는 더는 두려움의 공간이 아닐 수 있다. 그렇다고 무인도로 무작정 이 책 세 권을 들고 갈 필요는 없지만.

<신비의 섬>이라는 제목으로 미루어 봤을 때 난 이 소설을 영화 <비치>와 같은 낙원을 상상했었다. 여유로운 오후 태국의 한 관광지 같은 섬을 상상했던 것이다. 그래서 제목에 더 끌렸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 책은 정말 아무것도 없는 무인도이다. 물론 아름다운 숲과 아름다운 해변이 있어서 그곳 자체가 관광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못지않게 위험도 있다. 이 섬은 북반구에 있기 때문에 계절도 우리와는 반대이며 추위와 더위가 더하다. 그리고 위험한 동물들도 나타난다. 밤에는 앞에도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안전에 크게 신경을 써야 한다. 그런 여러 위험요소가 있음에도 그들은 서로 협력하고 자신의 지도자를 믿음으로서 섬에서의 행복함을 서서히 맛본다.

미국의 남북전쟁 중 남군의 포로로 있던 5명. 그들은 탈출을 결심한다. 남군의 필요로 만들어진 기구가 그들의 탈출수단이다. 날씨가 궂은 날 기회는 이때뿐이라고 생각한 다섯 명은 기구를 타고 출발하지만, 그들에게는 곧 위험이 따른다. 태풍에 의해 섬에 떨어졌던 것이다. 게다가 기구가 바다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무인도에서 필요한 모든 것들을 바다에 던져버렸다. 심지어 기구 위의 날개만 빼고 기구 몸체도 버렸던 것이다. 목숨은 건졌지만, 앞날이 깜깜하다. 그렇지만 그들은 쉽게 주저앉지 않았다. 그들에겐 만물박사인 사이러스 스미스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협력했고 불평 없이 리더를 따랐다.

흥미진진 살아남기!

달랑 입은 옷만 있던 그들은 사이러스의 지시에 따라 하나씩 만들어가게 된다. 새와 짐승을 잡고 요리를 위해 요리도구와 그릇을 만들고, 그것들을 보관하기 위해 안전한 집도 만든다. 물과 바람을 이용해 전기도 만든다. 그렇게 섬에서의 그들의 생활은 풍요로웠다. 그 풍요로움도 잠시 바다에 해적이 나타났고 그 해적은 섬을 노리고 있었다. 섬은 그들이 지켜야 할 마지막 삶이지만 도리가 없었다. 마침 그때 신기하게도 그 해적선은 파괴되어버리고 남아있던 해적들도 죽어버린다. 이 섬에는 뭔가 신기한 기운이 있다. 그들이 위험에 처할 때나, 뭔가가 급하게 필요할 때 언제나 도움을 주는 뭔가가 있었다. 그렇지만 그 뭔가가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도움을 주는 뭔가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수호신이라고 불렀다.(난 처음에 귀신이라고 생각했었다.) 그 수호신은 누구이며 그들은 섬에서 어떻게 될 것인가, 아주 흥미진진하게 진행된다.

이 이야기는 특이하게 쥘 베른의 다른 소설의 캐릭터를 2, 3권에 넣어두었다. <그렌트선장의 아이들>의 에어턴이라는 해적과 <해저 2만리>의 네모 선장이 바로 그들이다. 그렇기에 이 세 개의 소설을 번갈아 보는 것도 재미있을 거 같다. 물론 아직 언급한 두 권은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앞으로 또 쥘 베른의 소설을 접한다면 이 소설의 내용이 도움이 될 것이다.

사람이 싫어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도 잠시일 거란 생각이 든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간다고 해도 잠깐만의 자유가 보장되고 나머지 시간은 고독함이 나를 짓눌러 버릴 것이다. 그래서 고독함으로 인해 야수로 변해버릴지도 모른다. 소설 속 에어턴처럼. 또 스스로 인간관계를 떠났던 네모 선장처럼. 인간이란 인간이 싫다고 하면서도 결국에는 서로 어울리고 서로 도와주며 살아야 하는 그런 필연의 관계라는 것을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이 소설에는 없는 것이 두 개 있다. 화장실과 여자다. 쥘 베른의 소설은 여자는 거의 안 나온다. 모험의 주체는 늘 남자다. 그런 점은 조금 아쉽다. 나도 모험을 즐기고 싶은데 말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연향’님은?
소설속 누군가의 삶에서 인생과 철학과 지혜를 배우고 있는 여자, 연향.

Trackback 0 Comment 0
prev 1 2 3 4 5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