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학상'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5.02.12 『내 심장을 쏴라』 - 내 심장을 쏴 봐
  2. 2012.03.29 [서점에서 만난 사람] 패배자라는 낙인, 그래도 삶이다 - 소설가 전민식

『내 심장을 쏴라』 - 내 심장을 쏴 봐

 

 

 



정유정 | 『내 심장을 쏴라』 | 은행나무 | 2009



세계문학상 수상작은 1회부터 꾸준히 읽어오고 있다. 세계문학상은 다른 문학상과는 다른 뚜렷한 개별성이 있다. 텍스트의 가독성과 재미를 중시한다. 한국판 나오키상(直木賞)이라 할 수 있다. 세계문학상은 읽기 쉽고 몰입도가 높은 대중적인 소설이 꾸준히 선정됐다. 도발적인 소재와 개성 있는 문체, 빠른 속도감과 흡입력 있는 서사를 갖춘 작품이 세계문학상의 표적이 된다.

1회 수상작인 김별아의 『미실』은 여태까지 생각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여성상을 만들어냈다.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는 보수적인 한국사회에 '비독점적 다자연애'를 질문함으로써 꽤 충격적인 도발을 시도했다. 신경진의 『슬롯』은 도박을 소재로 자본주의의 바다를 헤엄치는 인간의 정체성을 흥미롭게 그려냈다. 백영옥의 『스타일』은 신세대 한국여성의 진화된 원형을 익살스럽게 담아냈다. 잘 읽히면서 도발적이고 신선한 점이 세계문학상 수상작의 공통적 분모다.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인 『내 심장을 쏴라』는 제1회 세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로 대중에게 자리매김한 소설가 정유정의 장편소설이다. 『내 심장을 쏴라』는 이전 작품과 마찬가지로 굉장히 재미있지만 보다 '문학적'이다. 요컨대 재미와 무게를 함께 지녔다. 최근에는 영화로 제작되어 『내 심장을 쏴라』가 다시 조명되고 있다.

이 소설은 폐쇄된 정신병원에서 만난 두 남자의 이야기다. 둘은 서로를 알아가며 각자의 삶에서 열정을 얻는다. 가위만 보면 공황장애를 일으키는 1인칭 화자 이수명, 그와 같은 날 정신병원에 입원한 시력장애인 유승민. 둘의 첫 만남에서 소설은 시작된다. 첫 만남의 데면데면함부터 친밀한 우정으로 변하기까지의 과정이 생기 있게 담겼다.

수명과 승민은 각자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수명이 내면으로 자신을 축소한다면, 승민은 외면을 향한 방향에 집착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자 한다. 수명과 승민은 모두 과거의 비밀을 가슴에 품고 지낸다. 정유정 작가는 두 인물의 트라우마와 그것에 함몰되어 일상이 뭉개지는 현실의 긴장감을 잘 그려냈다. 소설의 뒷부분으로 가면서 과거에 봉착되어 있던 수명과 승민의 내밀한 비밀이 밝혀진다. 타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 고백으로 깨달아졌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내 심장을 쏴라』의 서사는 느리다. 몰입하기엔 미지근하다. 하지만 중반을 넘어 후반에 이르게 되면 여태까지 소급되어 응축된 이야기가 한꺼번에 터지면서 독자의 가독력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소설의 말미, 주인공 수명이 오랫동안 가슴 깊숙한 곳에 봉인해 두었던 삶의 참된 진실을 인식하고 용기를 표출하는 장면, 그 순간은, 이 소설이 선사하는 가장 강렬한 울림이자 카타르시스다.

『내 심장을 쏴라』의 핵심 키워드는 두 가지로 정리된다. 그것은 바로 '자아'와 '자유'다. 폐쇄된 정신병동이라는 외면의 벽을 탈출하려는 몸부림은 자아를 제대로 인식하기를 원하는 내면의 열정에 닿아있다. 두 인물의 과거의 아픔과 이에 구속된 일그러진 현재상은 자신의 인생에서 자아의 지정학적 위치를 잘못 두었을 때를 그대로 은유한다. 자아의 본질에 대한 성찰은 빠진 채 비본질에 대한 집념과 고집만이 반복될 뿐이다. 자유를 간절히 소망하지만 정작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행동 방식은 자아의 역동과는 거리가 먼 외적 환경의 파괴, 또는 내적 울림과의 단절에 불과하다.

두 인물의 자유 성취와 자아 성찰에 대한 공전(空轉) 행태는 승민이 병원을 탈출하여 글라이더를 타고 하늘을 활공하는 바로 그 순간, 앎과 행복의 실현으로 반전된다. 승민은 끝내 죽는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소설의 마지막 수명이 정신병원을 퇴원하는 장면과 연결된다. 죽은 승민은 수명에게 질문한다. 너는 누구냐고. '새' 아니면 '비행기'냐고. 이에 대한 수명의 답은 단호하고 명확하다. 내 인생을 상대하러 나선 놈. 바로 '나'라는 것.

한 사람의 자유는 타자의 간섭이나 외부의 구속으로 조정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인생 또한 타자가 아닌 자아의 추동, 즉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생(生)의 강렬한 욕망은 항시 자유의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내 인생을 '나'로서 사는 것은 분명한 진리다. 이 타협할 수 없는 절대 명제 앞에서 삶은 때때로 외부를 의식하고 타자에 주눅들며 방황한다. 진정한 자유의 가치는 내가 내 삶의 주어로서 존재하며 약동할 때 빛을 낸다. 내 실존은 누구도 욕망하지 못한다. 이 말이 진리라면, 외부를 향해 가슴을 열고 자신 있게 외칠 수 있을 것이다. 내 심장을 쏴 봐.

굉장히 잘 쓴 소설이다. 서사를 풀어가는 능숙함과 재치있는 입담이 돋보인다. 순간순간에 감동과 재미가 녹아 있다. 정교하고 정제된 묘사와 독자의 호흡을 쥐었다 놨다 하는 작가의 내공이 훌륭하다. 이런 소설에 박수를 보낼 수 있어야 한다. 내적 자유와 자아의 고찰에 번민하는 이들에게 이 한 권의 소설이 위로가 되길 바란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다윗의서재'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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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만난 사람] 패배자라는 낙인, 그래도 삶이다 - 소설가 전민식

 

 

글과 정리: 컨텐츠팀 현선, 희진/ 사진: 희진

 

해마다 각종 문학상을 통해 새로운 작가와 작품이 세상에 등장합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자신이 이제껏 가져본 적 없는 또 하나의 시선을 갖게 되는 것이고요. 그러니까 작가란 결국 지나온 삶으로부터 얻어진 마음과 생각, 이 모든 걸 아우르는 시선에 그 사람만의 고유한 이름을 새겨넣은 존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존경하고 좋아하는 작가의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그이가 바라보는 세계를 머릿속에 그리며 그 세계의 온도를 느껴볼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여기, 2012년 제8회 세계문학상을 통해 우리에게  새롭게 주어진 시선 하나가 있습니다. 그 시선의 이름은 '전민식'. 삶이 남기고 간 상실의 아픔과 상처를 살아 숨쉬는 사람의 온기로 은~근하게 데워주는, 그래서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의 세계를 펼쳐보여주는 작가이시죠. 시종일관 사람 좋은 얼굴로 웃음을 보이며 편안하게 자신의 시선을 빌려주신, 패배자라는 낙인을 낙관할 수 있을 때까지 그래도 답은 죽음이 아닌 삶이다!라고 말하는 그를, 출판사 '은행나무'의 포근한 공간에서 만나뵙고 왔습니다.      

 

 

1965년 겨울에 태어났다. 부산서 났지만 어려서 평택에 있는 캠프 험프리라는 미군 기지촌에서 자랐다. 그래서 고향은 미국과 한국 문화가 범벅이 되어 있던 캠프 험프리라고 생각한다. 그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그 후 추계예대를 입학할 때까지 유랑의 세월을 보냈다. 별별 아르바이트를 다하며 살았다. 서른을 앞둔 마지막 해에 추계예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했고 생활고로 다니다 쉬기를 반복하며 6년 만에 졸업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오로지 글만 쓰기 위해 취직은 꿈도 꾸지 않았다. 하지만 입에 풀칠은 하고 살아야겠기에 온갖 종류의 대필을 했다. 우연한 기회에 두 군데 스포츠신문에 3년 정도 연재소설을 썼다. 기획된 연재물을 쓸 때에도 대필을 할 때에도 자투리로 남는 시간엔 소설을 썼다. 많이도 썼다. 이번 세계문학상에 당선되기까지 장편소설로 아홉 번쯤 최종심에서 고배를 마셨다. 단편에서도 수차례 마지막 문턱을 넘지 못했다. 유령작가이자 통속작가였고, 한 아이의 아버지이자 한 여자의 지아비다. 

 

 

 

허투루 흘러가는 시간은 없다 

 

세계문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일상에 많은 변화가 생겼을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크게 달라진 건 없습니다. 수상하기 전부터 대필 작업을 해왔는데요. 한꺼번에 밀려든 업무를 처리하느라 더 바빠졌습니다. (당선을 축하하는) 술자리나 인터뷰 자리도 늘었습니다. 무엇보다 올곧게 내 이름 석 자가 들어간 책을 냈다는 기쁨이 큽니다. 가족들도 좋아하고요. 앞으로 대필 작업은 접고 소설 쓰기에 전념할 생각입니다.

 

소설을 쓸 때, 대필 경험에서 도움을 받기도 했나요?

 

당연히 있습니다. 그 경험을 감추려고 하지는 않아요. 밥벌이를 원해서 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대필 또한 나에게 노동의 일환입니다. 일반적인 직장생활처럼 얻는 것들이 있어요. 대필을 하기 위해서는 취재 작업을 선행합니다. 그 과정 속에서 한 사람의 인생을 내밀하게 볼 수 있어요. 누군가의 인생관이나 경험은 시간이 지나면 내 안에서 잘 삭아요. 그것이 곧 이야기가 됩니다. 자서전 외에 전문적인 분야를 대필하기도 하는데요. 예를 들어 의학이라면 문외한이니까 의뢰한 쪽에서 책을 받아 먼저 읽습니다. 전문 서적이니까 관심을 안 두면 평생 읽을 수 없는 책이지요. 그런 소소한 소득이 있습니다. 관련 현장을 견학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발전소에 관해서 쓸 때였죠. 내부 설비를 두 눈으로 직접 봤습니다. 규모가 어마어마해요. 인간의 문명을 유지하는 기본적인 요소를 생산하는 곳입니다. 전기를 만들어내는 힘이 여기에 있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스스로 체험하기는 어려운 세계잖습니까. 이런 점을 생각하면 득이 더 많았습니다.

 

그런 경험이 소설에 직접적으로 반영이 되었나요?

 

물론입니다. 당선되지 못한 아홉 편에도 녹아 있습니다. 내부의 경험과 외부의 경험, 반반이지요.

 

 

 

절망 그리고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다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를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구 년 전, 동생이 사고로 죽었습니다. 그게 출발이었어요. 장남으로서 나는 가족을 책임지지 못했어요. 소설을 쓰겠다고 고집 부리는 장남의 집안은 결코 평화롭지 않거든요. 자연히 동생들이 내 역할을 분담했고, 나는 부채의식 같은 것이 있었어요. 그러던 중에 사고가 난 겁니다. 그 일이 정점이었죠. 동생에게 뭔가를 갚고 싶었어요. 그동안 삶에 누적된 것들도 있었고, 그래서 이 소설을 썼습니다.

 

‘임도랑’은 남다른 가족사를 가지고 있지만, 그런 면에서 감정적이지 않습니다. 죽음 혹은 상처의 여파가 전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는데요. 어떤 의도가 있나요?

 

앞서 말했던 아홉 편 중에는 젊은 친구들이 동반 자살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세상을 견딜 수 없는데 왜 억지로 살아가느냐. 죽음도 삶의 한 방편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었지요. 지금은 조금 다릅니다. 어려서 죽으면 그때까지의 경험이 전부에요. 나이가 들수록 그만큼의 경험이 쌓인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임도랑’은 인생의 모든 기반이 허물어진 인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갔으면 했습니다. 궁지에 몰리더라도 죽음이나 상처에 도달하기보다,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삼손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모임의 성격은 이러한 상실의 아픔을 적극적으로 드러내 서로를 위로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임도랑'이라는 인물과 대비되며, 상처에 대처하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고요. 특히 그 모임의 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세계관, 즉 윤회랄지,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 작가님께서 부여하고 싶었던 의미가 있으실 것 같은데요. 

 

그렇습니다. 책에서는 피타고라스 이야기를 끌어왔습니다. 동생의 죽음을 생각하면, 그게 끝이라고 여기면, 삶이 허무해요. 사후에도 다른 우주에 존재할 수 있다고 믿으면 극복할 수 있습니다. 삶에서 실제로 마주치는 죽음들을.

 

죽음을 대하는 자세가 의연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평소 참고하는 사상이 있나요?

 

어려서부터 불교 철학에 심취했습니다. 동서양은 죽음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릅니다. 동양은 삶의 여정, 서양은 삶의 단절로 봅니다. 후자를 바라보면 긍정적으로 살기는 힘듭니다. 그래서 동양적 사고방식이 내면화된 같아요. 소멸하더라도 새로운 물질로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죽음은 극복의 대상입니다. 그렇다면 자살도 일종의 방법이 아니냐. 누군가 묻는다면 그건 아니에요. 받아들이는 것과 행하는 것의 차이라고 할까요.

 

 

 

 

개만도 못한 인생과 사람보다 나은 개팔자 사이 

 

개를 산책시키는 일이 실제로 있나요?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보편화된 직업입니다. 한국에는 많이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에서 개가 사람을 물거나 동종을 죽이거나 교미하는 모습이 묘사됩니다. 이것이 인간 사회의 축소판처럼 느껴졌는데요. 개에게 특별히 어떤 의미를 부여하셨나요?

 

개를 산책시키는 일이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보편화된 직업입니다. 그만큼 개에 대한 인식이 다릅니다. 외국의 경우와 다르게 우리나라의 많은 욕설에는 개가 들어갑니다. 대부분 인간보다 못한 인생이나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대상을 가리키는 말이지요. 그런 맥락에서 끌어왔습니다.

 

그렇다면 라마는 어떻게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요?

 

불가에서 개는 수도를 하면 인간이 되는 유일한 동물입니다. 그러나 현대 문명에서 사람보다 훨씬 잘 사는 개도 많지요. 라마는 그런 개를 대표합니다. 앞서 언급한 개들과는 다른 삶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개를 산책시키는 걸 밥벌이로 삼고 있는 '임도랑'의 처지가 더 부각되는 것이기도 하고요.

 

라마와의 관계가 ‘임도랑’에게는 어떤 의미로 남았나요?

 

‘임도랑’은 모든 걸 다 잃은 인물입니다. 그런 ‘임도랑’에게 라마를 비롯한 인물들이 각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임도랑'이 라마를 산책시키며 받은 돈은 일반 대기업 직원들의 월급을 상회합니다. 그래서 '임도랑'은 라마를 통해 재기하려는 욕망을 갖게 되고요. 그런데 라마의 실종으로 인해 이와 같은 기대가 허물어지고요. 차후에 라마가 ‘임도랑’에게 돌아와 안기는 것은 욕망과 구별되는 관계에 대한 믿음의 확인입니다. 자신의 욕망으로만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삶을 버티게 하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지요.

 

 

 

사랑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

 

‘임도랑’이 파산하는 계기로 ‘진주’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두 사람의 애정관계를 통해 무엇을 보여주고자 했나요?

 

연인의 결별, 그 갈등을 통해 ‘임도랑’을 더 궁지로 몰아넣고 싶었습니다. 그래도 ‘임도랑’은 ‘진주’를 사랑합니다. ‘진주’의 배신보다 그 사랑에 주목해 주었으면 해요. 사랑의 목적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입니다. 단지 남녀뿐만 모든 관계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삶의 흐름 속에서 사랑에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사랑하는 사람이 자살하는 사람보다 더 많습니다. 살아가는 사람들, 그러니까 사랑하는 사람은 결국 뭔가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임도랑’에게 진주에 대한 사랑은 회한의 복원입니다. 그것이 곧 ‘임도랑’의 믿음이겠지요. 다른 인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음보다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살아가는 것은 개개인이 믿는 것들 때문입니다. 그 모습을 그리고 싶었어요.

 

사랑을 주기보다 받을 때 의미를 느끼는 삶도 있습니다. 말씀하신 바를 대입하면 주고받음은 연쇄 작용을 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사랑을 받으면 내가 낼 수 있는 에너지가 열 개, 반대의 경우에는 백 개입니다. 사랑을 줄 때 삶에 대한 욕망은 더 강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 소설가의 인생법

 

: 책으로부터 받은 위안을 세상으로 돌려주다

 

임도랑’의 독서 행위, 그리고 작가님에게 독서란 무엇인가요?

 

소설 속에서 독서는 특별하게 볼 수 있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집 근처에 도서관이 있어요. 보통은 그곳에서 작업을 합니다. 대학 도서관 못지않고 신간은 또 얼마나 빨리 들어오는지 몰라요. (웃음) 책은 나에게 위안이자 도피처입니다. 도서관이라는 공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책은 가장 값싼 가격으로 자기 자신에게 몰입할 수 있는 매체입니다. 일방적으로 쏟아지는 컨텐츠와 달리 상호작용이 가능합니다. 거리를 둘 수도 있고, 다시 가까이 할 수도 있어요. 책에 소요하는 시간, 그 과정을 거치며 인간이 성숙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책의 맛을 아는 사람은 책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임도랑’도 그 맛을 아는 인물이지요.

 

한 편의 소설을 마무리하셨습니다. 여전히 못다 한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아요.

 

책으로 내고 싶은 이야기가 두 개쯤 있어요. 국가 혹은 거대권력에 감시당하는 현대인에 관한 겁니다. 사회생활을 하면 사적 정보가 나도 모르게 정부나 기업에 들어갑니다. 그걸 인식했던 적이 있는데요. 자동차가 고장 나서 보험회사에 전화를 한 적이 있습니다. 위치 확인에 동의하느냐고 묻더군요. 그 메시지를 확인했더니 바로 전화가 와서 ‘지금 어디어디에 계시죠?’라고 하는 겁니다. 놀라웠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국가 차원에서 출생부터 관리하는 쌍둥이가 있고, 그들을 감시하는 관찰자가 있다. 그런 이야기죠. 더 말해드릴까요? (웃음) 이건 대필 경험에서 비롯된 겁니다. 앞서 발전소 이야기를 했는데요. 양수저수지라는 게 있습니다. 상부에서 하부의 물을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전기를 생산합니다. 실상 생산량보다 그 과정에서 전기가 더 많이 들어갑니다. 효율적이지 않기 때문에 평소에는 가동하지 않습니다. 화력이나 원자력 가동이 불가한 상황을 대비한 긴급용이죠. 그래도 늘 상주하는 직원들이 있습니다. 할 일이 없어도 출근해서 자리를 지켜야죠. 그런 사람들의 삶을 다루고 싶습니다.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미국 월가 점령 시위’를 언급하셨습니다. 그만큼 현 사회상에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근래 주목하고 있는 이슈가 있다면요?

 

요즘에는 당연히 선거입니다. (웃음) 투표를 잘못해서 벌어지는 일이 많아요. 정권이 바뀌면서 이상한 일이 많았습니다. 예술계만 봐도 그렇습니다. 한예종 원장을 이유 없이 교체한다거나 문예진흥원에서 예술인에게 지원금을 주는 정책에도 문제가 있어요. 서류를 보면 정부 정책에 반하면 지원금을 지급하지 않겠다고 하거든요. 무엇이 됐든 그런 식으로 인간의 존엄성이 짓밟히고 억압 받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래서 투표를 잘해야 합니다. 또한 그런 임무를 띠고 글을 써야겠지요.

 

무명 시절이 길었습니다. 긴 터널과도 같았을 그 시간을 견디게 해준 작품 혹은 작가, 롤모델이 있을 것 같습니다.


좋아하는 작가는 많습니다. 그 중에서 소설을 이렇게 써야겠다고 느낀 작가는 ‘최서혜’입니다. 일제강점기에 활동했고 대표작으로는 ‘홍염’이 있어요. 어느 정도였냐 하면 대학 때 일제강점기 작가를 조사하는 과제가 있었는데, 나는 ‘최서혜’를 주인공으로 전기소설을 썼습니다. 관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그렸어요. 이후에도 그만한 인물은 없었던 것 같아요. ‘최서혜’라는 작가, 좋아합니다.

 

글 쓸 때는 자기 확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은데요. 준비하는 동안 어떤 마음으로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나요?

 

당선 후에 모교인 추계예대에서 강연을 부탁 받았습니다. 그런 건 처음이라서 그저 내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기 자신을 믿어야 한다. 졸업할 때까지도 자신을 아직 믿지 못하겠다면 취직하지 마라.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다. 그랬더니 누가 질문을 합니다. 너무 막연하다. 얼마나 노력을 해야 하나. 나는 말했습니다. 당선되기 전에 내가 쓴 아홉 편의 소설이 전부 장편이었다. 편당 이 년이 걸렸으니 도합 십팔 년이다. 그 정도는 노력하는 것이 좋지 않나. 재능이 있다면 나보다 준비 기간도 짧아질 테고. (웃음) 물론 힘든 시간입니다. 하지만 보상 받는 날이 옵니다.

 

소설만이 가지고 있는 힘이 있다면요?

 

소설과 대치되는 매체가 영화입니다. 영화랑 소설이 싸우면 소설이 질 것입니다. 그러나 영화가 한방이라면 소설은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파이터에요. 영화가 장치적으로 풍부한 매체라면 소설은 영화 몇 편은 담을 수 있는 그릇입니다. 또한 소설은 인간의 삶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휘어질 수 있도록 합니다. 그 감동이 굵고 강하고 오래간다.

 

건전지 광고가 생각나는데요. (웃음)

 

비슷합니다. 소설은 오래 가는 건전지!

 

이제는 본인의 이름 석 자를 앞세우고 세상에 나오셨습니다. 작가님의 작업에 기대가 많은데요. 앞으로 만나게 될 독자 분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조금 있으면 내 나이 오십입니다. 아직도 철이 덜 들었단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래도 살아가지요. 삶은 살아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특권이에요.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아뭅니다. 불평등하고 부조리한 세상에서 대항하지 않으면 인간으로서의 의미가 상실됩니다. 맞서야만 사는 것입니다. 그때 덜 꺾이려면 주변에 있는 좋은 책을 읽으면 됩니다.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도 많이 읽어 주시고. (웃음) 인터넷에서 인생의 답을 구하지 말고, 책 속에서 찾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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