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에 해당되는 글 32건

  1. 2015.01.22 《느릅나무 아래 욕망》 - 원하고 욕망하죠
  2. 2015.01.21 《친구사이》 - 아모스 오즈의 세계
  3. 2015.01.20 《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 - 시나브로 겨울이 지나간다
  4. 2015.01.13 《무진기행》 - 서울의 겨울
  5. 2014.12.18 《킹》 - 짖는 법을 잊었네
  6. 2014.12.02 《미생》 - 내가 아주 처음이었을 때
  7. 2014.11.12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 책 좀 읽는 독서가의 고백
  8. 2014.09.24 [반디앤루니스] 펜벗을 모집합니다!
  9. 2014.09.24 [반디앤루니스] 펜벗 관련 문의 사항을 정리했습니다
  10. 2014.08.19 《책방 주인》 - 찾는 책 없습니다

《느릅나무 아래 욕망》 - 원하고 욕망하죠

 

 



유진 오닐 | 《느릅나무 아래 욕망》 | 열린책들 | 2011


 

지하철을 탈 때마다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그늘이 져 있다. 처음에는 피곤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하루를 열심히 일했으니 퇴근길의 얼굴이 어두운 것이고 다음날 출근길 얼굴이 어두운 것도 피로가 덜 풀려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가만히 보니 낮에도 객실 안의 사람들 얼굴에는 그늘이 져 있었다. 안에서는 어두운 얼굴도 지하철 밖에서 봤을 때는 그늘이 없다. 낮에는 활기가 넘쳐야 하니 피로와는 상관없을 텐데 낮에도 얼굴이 어둡다는 것은 피로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전철을 벗어나 밝은 길거리에서 보면 얼굴이 어둡지 않다는 것도 피로가 원인은 아닐 것이다.

조명 때문이었다. 지하철 객차의 불빛은 사람 머리 뒤에서 아래로 내리쬔다. 빛이 닿지 않는 얼굴 면에는 그늘이 지는 것이다. 지하철에서 빛을 많이 사용해서 사방을 밝게 한다면 얼굴에 그늘이 지지 않겠지만, 천장 가운데에 매달린 형광등 하나로만 객차의 밝기를 결정하니 빛이 제대로 닿지 않는 곳이 생기고 얼굴에 그늘이 서린다.

지하철 창문을 바라보면 내 얼굴에는 그늘이 져 있다. 다른 사람들의 얼굴도 어둡다. 뭉크의 그림 속 얼굴처럼 얼굴은 늘어져 있고 우울한 기운이 가득하다. 그런 얼굴을 마주 보고 있으니 마누라의 뽀뽀를 받으며 출근한들 지하철만 타고 나면 기분이 찌뿌둥한 것이다. 지하철의 조명은 하루에 영향을 미친다.

사람은 머리 위에 있는 것에 영향을 받는다. 무엇이 되었든 힘이 세든 약하든, 좋든 나쁘든, 어둡든 밝든 힘 아래에 있기 시작한 때부터 힘의 영향을 받는다.

《느릅나무 아래 욕망》에서 등장인물 각자에게 영향을 준 것은 욕망과 어머니였다. 아버지인 이프리엄 캐벗은 탐욕 아래에서 무자비하게 재산을 넓혔고 아이들을 막 대했다. 둘째와 셋째 아들인 시미언과 피터는 욕망이 컸기에 아버지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늘 말하고 다녔다. 막내아들 에벤은 죽은 어머니를 사랑했다. 그는 어머니에게 복수한다며 아버지의 새 부인인 애비 퍼트넘과 관계를 맺었다. 둘 사이에서 아이를 낳았다. 아이를 낳는 것이 목적은 아니었다. 아버지를 욕보여서 어머니의 복수하려는 것이었기에 아이를 낳은 뒤에도 애비 퍼트넘에게 사랑한다 속삭였다. 그는 아버지의 침상을 끊임없이 더럽혔다. 애비 퍼트넘은 농장을 갖겠다는 욕망으로 결혼을 했다. 에벤에게 성적인 욕망을 느껴 에벤을 유혹했지만 에벤이 다가오지 않아 힘들어했다. 그러다 에벤이 자기에게 오지 않는 이유가 에벤에게 깊게 영향을 끼친 엄마의 그림자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그녀는 그림자를 걷어 내고 싶어 했다.

한 가족의 집에 애증으로 이글거리는 눈동자와 탐욕에 가득 찬 손아귀가 가득했다. 분노로 핏대 선 목에서는 쉬지 않고 고성이 뿜어져 나왔다. 근친상간이 끊이지 않았고 유아살해가 일어났다. 그 집 앞에는 느릅나무가 가지를 길게 뻗고 우뚝 서 있었다.

어쩌면 느릅나무를 찍어냈더라면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느릅나무 가지가 집 위에 길게 늘어져서 햇빛을 막았다면 지하실처럼 집은 퀘퀘했을 것이다. 항상 어둡고 습기 찬 집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을 테니 가족들의 성격도 음울해졌을 터. 느릅나무 주위에서 생긴 벌레가 사람들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는지도 모른다. 많은 벌레는 집 안까지 들어왔을 것이고 잠자리를 방해하고 일상을 괴롭혔을 것이다. 집이 안식의 공간이 되지 못하니 사랑의 말은 할 수 없고 증오의 말만 내뱉는 것이다.

책에는 느릅나무에 대한 언급이 두어 번 정도 나온다. 느릅나무가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실제 느릅나무는 높이가 20~30미터나 되는 큰 나무라고 한다. 그것을 생각해 보자면 아마 유진 오닐은 느릅나무가 있는 집을 통해 부를 이룬 미국인 가정을 상징하려고 했던 것 같다. 큰 나무가 흡사 큰 재산을 연상시키는 것이다.

실제로 느릅나무는 축축한 습기가 있는 산골짜기에서 잘 자란다. 유진 오닐은 큰 부를 이룬 가정이지만 그 가정은 따뜻하지 않고 축축하다는 것을 말하려고 수많은 나무 중에서도 느릅나무를 들었는지도 모른다. 큰 부를 이루어서 행복한 것 같지만 그 큰 부 아래에선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아들은 아버지를 떠났지만, 한편으로는 느릅나무를 떠난 것이다.

유진 오닐이 《느릅나무 아래 욕망》이라는 희곡을 썼을 때 느릅나무는 지극히 상징적이었을 것이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으며 옆에 서 있는 남자의 얼굴이 뭉크의 그림 속 절규하는 사람과 똑같은 것을 목도한 지금, 느릅나무는 상징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생각이 든다.

 

Trackback 0 Comment 0

《친구사이》 - 아모스 오즈의 세계



아모스 오즈 | 《친구사이》 | 문학동네 | 2013



이스라엘로 성지순례를 떠나는 일행에게, 서점에 들를 수 있다면 아모스 오즈 책을 구입해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저자의 이름을 스펠링으로 써주고 당부하면서 한 권이라도 나에게 오길 바랐다. 그러나 단체로 떠난 일정인지라 서점 근처에는 가보지도 못해 책을 사지 못했다는 대답만이 들려왔다. 내심 아쉬웠지만 언젠가 원서를 살 수 있는 날이 있겠지 싶어 열심히 번역서를 기다리게 되었다.

아모스 오즈는 애정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온라인 서점에서 출간 소식 문자가 오면 바로 구매할 정도다. 왜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똑 부러지게 설명을 할 순 없어도 잔잔한 삶의 흐름을 드러내는 섬세한 문장이 좋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의 작품 하나하나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완성도에서 오는 호감을 뛰어넘은 익숙함이다. 작가의 작품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할 정도로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럽다.

이스라엘 집단농장의 한 형태인 '키부츠'를 배경으로 한 8편의 단편 《친구 사이》를 읽는 동안, 온통 저자 생각뿐이었다. 30여 년간 키부츠에서 생활한 아모스 오즈이기에 무엇보다 그곳 생활을 잘 알 터. 작가가 작품 어딘가에 머무르고 있다고 생각하니 구석구석 허투루 읽히지가 않았다.

한데, 모든 것이 공동체로 이뤄지는 집단농장에서의 사람들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썩 행복하지 않았다. 공동체 생활이다 보니 개인의 자유와 소유욕을 드러낼 수는 없었고,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점점 자신이 무엇을 원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방향을 잃어간다. 사람들이 스스로 그곳에 머무르면서도 왜 스스로 욕망을 거세하지 못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끝내 독자의 몫으로 남는다.

남편이 이별을 통보하고 다른 여자의 숙소로 들어간 후 그 어떤 분노도 드러내지 않은 여자 오스낫. 키부츠란 공간을 답답해하면서도 삼촌이 모든 학비를 대주겠다며 이탈리아로 오라는 요청에도 머뭇거리는 요탐. 이들은 마치 자신의 색채를 잃어버린, 무채색으로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였다. 물론 키부츠의 바깥 세상에서도 또렷한 의지를 갖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은 많다. 그럼에도 이런 사람들을 지켜보자니, 규칙과 평등을 가장한 그곳에서의 불평등이 마냥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키부츠라는 거대한 공간에 담긴 8편의 이야기는 독립적이면서도 절묘히 이어진다. 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다른 이야기에서 배경 인물로 등장할 때에는 새로운 면모를 보이기도 하는데, 그래서일까. 그들의 등장만으로 반가움이 일었고 어떤 소식이 들려오는지 예의 주시하게 되었다.

한편, 병든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소년 모시의 이야기는 잔잔하면서도 뭉클함을 남긴다. 후에 에스페란토 어를 배우러 오는 모습만 봐도 그냥 듬직했다. 하지만 하나 남은 열 일곱살 딸이 자신의 친구와 동거하는 이야기며, 공동체 육아 규칙에 따라 부모와 함께 잠들지 못하는 아들이 탁아소에서 왕따를 당하자 가해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의 모습은 키부츠라는 공간을 더욱 음습하게 한다.

가난하고 헐벗은 자들에게 모든 것을 평등하게 배분하는 곳. 기회가 주어지는 그곳이 낙원처럼 느껴질지 모르겠으나, 늘 불평등에 시달리며 세상의 속도에 따라가지 못해 허덕이는 내게는 그곳이 갑갑하기만 하다. 무엇을 또렷이 잘할 필요 없이, 단지 자신에게 주어진 노동에 충실 하는 것만이 성실한 모습으로 인식되는 것 같기에 단일화되기 딱 좋은 곳으로 보여진다. 그럼에도 키부츠를 다른 세상 보듯 무관심 할 수 없었던 이유는 뭘까. 나 또한 사회에서 이미 알게 모르게 경험한 것들이 그곳에 녹아있었기 때문이다. 단체생활의 불편함, 차별, 불평등, 분출할 줄 모르는 열등감과 불합리 등을 이미 겪었다.

하지만 오직 공동체라는 공간에만 얽매야 책을 읽는다면 저자가 그려낸 다양한 '인간 군상'을 놓치기 쉽다. 어느 곳이나 사회가 아닌 곳이 없듯 그곳에 모인 사람들, 그곳에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사는 '현재'를 비추고 대변한다.

삶의 잔혹함을 못 본 척한다는 것은 어리석고도 죄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어요. 그러니까 최소한 알고라도 있어야죠. (15~16쪽)

리가 타인의 삶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문학을 통해 우리가 이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무척이나 소중한 일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안녕반짝'님은?

아이를 키우면서도 책을 읽을 수 있음에 기뻐하는 평범한 주부입니다. 깊은 밤에만 독서할 수 있지만, 그 고요한 시간이 오로지 나만의 것인 듯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어요.

Trackback 0 Comment 0

《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 - 시나브로 겨울이 지나간다

 



윤대녕 | 《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 | 푸르메 | 2010



겨울에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열심히 지내온 한 해를 돌아보는 일은 겨울에만, 그것도 12월이 다 지나간 시점에만 할 수 있다. 지금껏 읽어온 작가들의 산문집은 어딘가 겨울을 닮았다. 그들의 산문집은 아마도 겨울에 시작해서 다음 해 겨울 혹은 다다음 해 겨울에 끝냈으리라. 무덥고 뜨거운 여름에 이렇듯 느리게 음미하며 읽어야 하는 책들은 쉬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그럼에도 이 책이 ‘2011년 국립중앙도서관 사서가 추천하는 ‘휴가 중 읽기 좋은 책 80선’에 선정됐다. 휴가 중 읽기 좋아 여름에 이 책을 샀지만, 가슴 깊이 한기가 파고드는 겨울이 되어서야 이 책이 다시 떠올랐다.

산문집은 자기 고백적이다. 윤대녕 작가의 소설을 끝까지 읽어 본 적은 없었다. 어디서든 만나면 조금씩 읽어 볼 뿐이었다. 산문집으로 처음 만난 그는 인간미 넘치는 이웃 글쟁이 아저씨 같지만, 소설가로서 그는 짧고 담담한 문체 때문인지 우울한 분위기와 날이 선 차가운 얼음이 떠오른다. 작가의 성장배경과 생각의 변화, 작가로서 생활하는 모습 등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그만의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적어 내려가면서 보통사람들도 겨울에 느낄 법한 인생 돌아보기를 했는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산문집은 작가가 스스로 적는 자서전이라는 느낌이 든다. 한때, 소설보다 산문집을 더 좋아했던 시절이 있었다. 소설은 허구적이라 나에게는 읽어야 할 당위가 없었다. 진심과 사실이 가득 담겨있던 산문집이 좋았기에 더욱이 산문집 작가를 꿈꾸기도 했었다.

얼마 전 김연수 작가도 산문집으로 처음 만났다. 소설가인 그의 성향을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산문집 속 그는 본인이 잘생겼다고 생각하는 웃긴 탐정사무소 주인 같았다. 폴 오스터도 마찬가지다. 《겨울일기》를 읽은 후 다른 산문집 《빵 굽는 타자기》와 《선셋파크》를 읽어보았다. 요즘은 산문집만큼이나 소설을 마땅히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인간성을 들여다보는 재미만큼 작가의 능력과 노력이 마음껏 담긴 창작물을 읽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더러는 소설을 먼저 읽고 그 후에 작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면 산문집을 읽는다.

삶을 먼저 살아본 이가 해 주었던 이야기 중 가장 많이 공감했었고, 읽을 때마다 새롭게 다가왔던 이 책의 내용처럼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하여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여러 번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올겨울은 길었던 것일까, 혹은 짧았던 것일까. 그건 잘 모르겠으나 중요한 것은 누군가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이고 바야흐로 봄이 문밖에 당도했다는 것이리라. 곧 온 세상이 꽃과 함께 푸르러지리라. 이제는 더 이상 길을 잃지 말고 살아야지, 라고 생각하며 나는 밥을 먹고 있는 아내의 얼굴을 슬그머니 훔쳐 보았다. (197쪽)


/

좋은 책과 서평을 나누고자 반디앤루니스 '오늘의 책'을 펜벗과 함께 만들어 갑니다.
펜벗이란 서평을 쓰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를 의미합니다.
매주 월요일, 성실한 서평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1월의 펜벗 서평 주제는 '겨울'입니다.

| 펜벗 일문일답

● 매우 춥지만, 겨울은 ‘따뜻하다’는 감정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계절이에요. Thinkthings 님이 <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을 겨울마다 들추게 되는 이유도 ‘따뜻하려고’ 보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올겨울에 또 어떤 책을 읽으셨을지 궁금해져요.

춥고 시린 겨우내의 고민이 끝난 뒤 윤대녕 작가의 산문집을 읽으면, 봄을 웃으며 맞이할 수 있는 용기를 받습니다. 올겨울에는 특히 철학 서적을 동시다발적으로 읽고 있는데, 그중 피터 비에리의 《삶의 격》이라는 책이 기억에 남습니다. 현실의 존엄성에 대해 작가는 확신이 담긴 모범 답안을 이야기해 주지 않습니다. 독자들이 문제를 한 번쯤 생각해 보고 고민할 기회를 준다는 점이 고마웠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난 뒤, 인간의 존엄성을 편협하고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저의 생각과 입장을 다시금 돌아보고 재정립할 수 있었습니다.

● 펜벗 앨범을 읽고, 자기계발서와 교양서와 같은 직접적인 가르침을 주는 책보다 ‘문학’에서 삶의 지혜와 자세를 얻는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Thinkthings 님과 같은 고민을 겪고 있는 친구가 있다면, 어떤 문학작품을 추천해주고 싶으세요?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을 권하고 싶습니다. 《마음》은 강상중 작가의 《고민하는 힘》과 《살아야 하는 이유》에도 많이 등장하죠. 일차적으로는 작가에게 더불어 독자에게 의문과 해답을 적절히 던져줍니다. 주인공과 함께 선생님의 비밀을 궁금해하며 이야기를 읽다 보면, 어지러웠던 마음도 안정됩니다.
문학은 자신을 탐구해 가는 과정을 동행해 주는 친구 같습니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원하는 결론을 얻지 못했더라도, 결국엔 이야기를 읽어온 일련의 과정을 통해 피해왔던 본인의 고민을 마주할 힘을 얻기도 합니다.

● 펜벗 활동의 가장 두드러진 성격은 ‘추천받은 책’이 아니라 ‘추천하고 싶은 책’을 쓴다는 것입니다. 지금 ‘펜벗’은 Thinkthings님의 독서 습관에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나요?

읽었던 책을 다시 들추어보는 일은 좀처럼 드뭅니다. 읽어야 할 새로운 책들은 좀처럼 줄어들지 고요. 하지만 펜벗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있는 책들의 제목이 떠오릅니다. 책장 앞에서 즐거운 고민을 하며 서성이는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또한 혼자 하는 독서가 익숙한 저는 다른 펜벗의 책 안목과 훌륭한 서평을 보고 감탄합니다. 펜벗은 성실한 독서가가 되어야겠다는 바람을 되뇌도록 만듭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Thinkthings'님은?

철학하는 농부를 꿈꿉니다.

Trackback 0 Comment 0

《무진기행》 - 서울의 겨울

 

 



김승옥 | 《무진기행》 | 문학동네 | 2004



만약 소설이란 분야에도 신이 존재한다면, 작가가 정말로 접신한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책이 있다. 바로 김승옥의 단편 「서울, 1964년 겨울」이다. 해마다 여름이 오면 표제작인 「무진기행」을 꺼내 읽고, 겨울이 오면 그의 또 다른 단편인 「서울, 1964년 겨울」을 꺼내 읽는다. 두 편 모두 고등학생 때 어느 언어영역 문제집에서 처음 만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김승옥의 문학 지문을 읽고 나서 느꼈었던 그 오묘함이란 다른 때와는 뭐가 달라도 확실히 달랐다. 문제는 한참 전에 다 풀었지만, 잔상이 계속 머릿속에 남아 나의 남은 자습 시간을 뒤덮었다. 하굣길에 결국 모의고사 문제집을 사려고 챙겨둔 돈으로 나는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덜컥 사고 말았다. 평소 나다운 선택은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탁월한 선택이었다.

『무진기행』을 책꽂이에 둔 지 십 년, 그리고 「서울, 1964년 겨울」로부터 무려 오십 년이 지났다. 구청 병사계에서 일을 했던 '나'도 부잣집 아들내미이자 대학원생이었던 '안(安)'도, 지금쯤 살아있다면 벌써 춘추가 근 칠십오 세다. 그들이 따로 또 같이 보냈을 오십 번의 겨울은 그들의 정수리 위에 흰 눈을 뿌렸거나 아니면 검은 뿌리들을 몽땅 뽑아버렸거나 둘 중의 하나는 했을 것이다. 파리는 여전히 하늘을 날고, 손을 뻗어보면 손 안에 잡히기도 하지만, 포장마차에서는 이제 참새구이 대신 출처가 불분명한 닭꼬치를 판다. 젊은 청춘은 일을 마치고 홀로 선술집을 찾지 않고, 길가에 즐비한 프랜차이즈 카페에 들어가 아메리카노를 한 잔 시키거나, 조금 더 여유가 있다 싶으면 근처의 바를 찾는다. 가끔 한 모금씩 홀짝이며 주위 사람들을 눈으로 훑어 보지만, 불필요한 말 따위는 굳이 건네지 않는다. 괜한 오해도 싫고, 괜한 어색함도 싫다. 눈앞에 있는 낯선 누군가 보다 조그만 휴대폰 속 익명의 존재가 차라리 더 편하다. 언제라도 홈 버튼만 누르면 관계에서 안전하게 빠져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옛날 무진의 명산물이 모두를 휘감는 뿌연 안개였다면, 서울의 명산물은 개인을 더욱 또렷하게 분리하는 욕망이었다. 지금, 무진의 명산물은 『무진기행』이라는 소설이 되었고, 서울의 명산물은 여전히 욕망이다. 그러나 서울 밖을 벗어나도 아주 손쉽게 욕망과 마주할 수 있다. 1964년 당시 '나'와 '안(安)'의 청춘은 마치 발밑의 흙물처럼 기온에 따라 녹았다 얼기를 반복했다. 살얼음 같은 개인주의였다. 비정하나 끝까지 모질진 못했고, 모질지 못했지만, 끝까지 인간답지도 않았다. 그들의 인간성은 어는점 0℃를 기준으로 묘하게 꿈틀거렸다. 평온해 보였다. 반면 요즘의 청춘들은 요동의 폭이 남다르다. 이상하다. 평균치를 내어보면 이들이 수렴하는 곳도 분명 0℃가 맞는 듯한데, 움직임은 확연히 다르다. 퍽 격하다. 이러한 세태는 나만 알고 있는 사실도 아니기에 그다지 의미 있는 일도 아니다. 오히려 옆집 아저씨의 야구 동영상 취향이 무엇인지 복도 창문 너머로 확인하는 일 따위가 의미 있을 것이다. 그딴 건 아무도 알고 싶어 하지 않고, 또 실제로 나만 아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 물론 이 이야기마저 1964년의 '나'와 '안(安)'을 제외하면 인정해 줄 사람도 없다는 게 함정이다. SNS가 발달하고부터 나만 알고 있는 게 큰 의미가 없어졌다. 남도 알게 하는 것에 오히려 더 큰 의미가 부여된다.

오십 년이 지난 지금, 서울 한복판에서 그대로인 것은 오로지 ‘겨울’이다. 날씨가 춥다. 추위는 언제나 외로움을 동반한다. 도시의 청춘들은 여전히 외롭다. 타인의 죽음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서울, 1964년 겨울」의 마지막 장에서 두 청춘은 이렇게 말했었다.

"김형, 우리는 분명히 스물다섯 살짜리죠?"
"난 분명히 그렇습니다."
"나두 그건 분명합니다." 그는 고개를 한 번 갸웃했다.
"두려워집니다."
"뭐가요?" 내가 물었다.
"그 뭔가가, 그러니까...." 그가 한숨 같은 음성으로 말했다.
"우리가 너무 늙어버린 것 같지 않습니까?"
"우린 이제 겨우 스물다섯 살입니다." 나는 말했다.
"하여튼..." 하고, 그가 내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자, 여기서 헤어집시다. 재미 많이 보세요."하고, 나도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286~287쪽)

이 겨울이 지나가면 반드시 봄이 찾아오고 또 그다음 겨울이 찾아올 것이다. 칠십육 세를 바라보는 '나'와 '안(安)', 이십 대 후반을 달리는 나와 친구들, 이 두 무리 중 어느 쪽이 더 빨리 늙을까. 장담할 수 없다.

/

좋은 책과 서평을 나누고자 반디앤루니스 '오늘의 책'을 펜벗과 함께 만들어 갑니다.
펜벗이란 서평을 쓰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를 의미합니다.
매주 월요일, 성실한 서평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1월의 펜벗 서평 주제는 '겨울'입니다.

| 펜벗 일문일답

● 「서울, 1964년 겨울」로부터 오십 년이 지난 지금, “이 서울의 한복판에서 그대로인 것은 오로지 겨울이라는 사실이다.”고 서평에 쓰셨는데요, 서울의 어떤 점이 매해 겨울을 변함없게 만들까요?

사실 그 문장에 그렇게까지 깊은 의미는 없습니다. 요즘 날씨가 매우 춥잖아요. 말 그대로 절기상의 겨울이라는 뜻입니다. 그때 1월도 겨울이었을 테니까요. 덧붙여 서울의 어떤 점이 매해 겨울을 변함없이 만든다기보다는. 제가 생각하기에 서울과 겨울은 그냥 닮아있는 두 가지 형태인 것 같습니다. 읽었을 때 발음도 그렇고. 사람과 사람을 움츠러들게 하는 그 속성도 그렇고요. 오지랖이 넓어지는 것을 허용 안 하죠.

● 이십 대 후반을 나고 있는 사람으로서 “우리가 너무 늙어버린 것 같지 않습니까?”라는 김형의 말에 공감하시나요? 공감하신다면, 그때 왜 그렇게 느낄까요?

공감하는 편입니다. 저를 포함한 요즘 세대 중 다수는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 때, 최대한 손해 보지 않는 방향으로 움직이려 하니까요. 직접 경험에서 답을 찾기보다 간접 경험에서 답을 찾죠. 그게 더 안전해 보여서 그럴까요? 그러다 보니 문제에 대해 고를 수 있는 답도 자꾸만 줄어가고 있습니다. 가장 빠른 답이라고 해서 가장 젊은 답은 아닌데 말이죠.

● 펜벗 앨범에 쓰셨던 ‘기계화되지 않기 위해 책을 읽는다’는 말이 인상 깊었습니다. 최근엔 무슨 책에 관심을 두고 계세요?

기계화되지 않으려면 그때그때 호기심을 가지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그래야 뭐가 됐든 계속 생각을 하게 되니 말입니다. 요즘은 잠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보통 하루에 4, 5시간 정도 자는데, 어떻게 하면 잠으로부터 몸이 자유로워질지, 그럴 수 없다면 과연 어떻게, 얼마나 자야 건강에 이로운지 궁금합니다. 새해를 맞아 습관도 바꿔보고 싶고요. 최근에는 『24/7 잠의 종말』과 『잠의 사생활』이라는 두 권의 책을 읽고 있습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녹색양말'님은?

자질구레한 것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저도 그런가 봅니다.

Trackback 0 Comment 0

《킹》 - 짖는 법을 잊었네

 

 

존 버거 | 《킹》 | 열화당 | 2014

 

《킹》은 노숙인들에 대한 이야기다. 킹은 그들 중 어느 한 부부와 함께 사는 개의 이름이고, 소설은 개의 시선에서 쓰였다. 존 버거는 화자 킹이 '개'라는 것에 군데군데 균열을 놓았다. '인간'의 존재 자체를 묻고 싶었던 것이다. 앤디 메리필드가 쓴 《존 버거(John Berger)》에 따르면, 존 버거는 이 소설을 스페인 알리칸테 지방의 노숙인 거주 지역을 본 후 썼다고 한다. 소설에 묘사된 이들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인정받지 못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거처를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노숙인의 개념과는 다르다. 사실, 잘 모르겠다. ‘노숙인’의 정의를 한번 살펴보면,

 

"우리나라에는 노숙인에 대한 공식적인 개념정의가 없다. 노숙인은 1997년 IMF 경제위기 이후 부각된 용어로 부랑인과 유사하게 사용되어 왔다. 노숙인은 말 그대로 일정한 숙소가 없어 거리에서 잠을 자는 사람을 의미하지만 정의를 내리는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서 다양하게 정의된다. 국제연합(UN)은 노숙인을 ‘집이 없는 사람과 옥외나 단기보호시설 또는 여인숙 등에서 잠을 자는 사람’, ‘집이 있으나 UN의 기준에 충족되지 않는 집에서 사는 사람’, ‘안정된 거주권과 직업과 교육, 건강관리가 총족되지 않은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노숙인', homeless person)

 

이 자료의 다른 부분에서 특기할 만한 것은, 서울에 특히 노숙인들이 많은데 그 이유가 "생활하기 편하고,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이라는 문장이다.

 

얼마만큼 넘나들 수 있으며, 얼마만큼 당신을 체감하고 체화하면 당신이 될 수 있을까. 번역된 존 버거의 책을 대부분 읽은 입장으로서, 이 소설의 초점은 '노숙인'에 맞춰져 있지만, 그의 글쓰기가 행하는 시선은 세상의 모든 하위계층에 가 있다는 것을 알겠다. 자신을 보편적인 존재로 여기게끔 억압하고, 그것에 공모하게 만드는 오늘날의 사회가 얼마나 많은 목소리와 존재들을 은폐한 뒤에 세워진 삐뚤어진 세계인지. 그리고 온전히 낮은 곳의 그들이 된 존 버거가 얼마나 미려한 문장으로 그 목소리를 조용히 읊어주는지.

 

비코는 이야기한다. "우리는 저들의 실수야. 킹, 들어 봐! ... 실수는, 킹. 적보다 더 미움을 받는 거야. 실수는 적처럼 굴복하지 않으니까. 실수를 물리치는 일 같은 건 없는 거야. 실수는 있거나 없거나 둘 중 하나인데, 만약에 있다면 덮어야만 하지. 우리는 저들의 실수야, 킹. 그걸 잊으면 안 돼" (190쪽)

 

그들의 거주 지역인 생 발레리의 노부부 비코와 비카. 비코는 자신의 조상이며 위대한 근대인이라 일컫는 잠바티스타 비코(Giovanni Battista Vico, 1668~1744)를 여러 번 인용한다. 비코는 이렇게 말한다. "라틴어에 '후마니타스'라는 말이 있는데, 서로 도우려는 사람들의 성향을 일컫는 거야. 우리 조상님은 말이다. 킹, '후마니타스(humanitas)'라는 단어가 '후마레humare)'라는 동사에서 온 거라고 믿었다. '묻다'는 뜻이지. 죽은 사람을 묻어주는 거 말이야. 인간성이라는 건, 그분의 생각에 따르면, 죽은 사람들을 존중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거였어."(95쪽) 라틴어 '후마니타스'는 인간성, 인간애, 인류애를 뜻한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시작에 관한 최초의 철학자'라고 존경을 표했고 이성이 낳는 야만에 대해 경고했던 잠바티스타 비코, 그는 인간 역사의 발전 과정이 '신적 · 영웅적 · 인간적' 단계를 거친다고 설명했다. 존 버거의 비코는 잠바티스타 비코를 인용하면서도 하나의 단계를 더 추가한다. 신 · 영웅 · 인간의 시대, 다음에 개의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이 리르코시(I ricorsi, '짖다', '항의하다'라는 뜻의 이탈리아어-옮긴이)!" (164쪽) 비코의 말에 따르면 후마니타스, 인간의 시대는 끝난 것이다. "'후마레(humare)'는 킹, '묻다'라는 뜻의 라틴어인데 이제 사라져 버렸단다. 새 단어는 '박살내다'야. 박살내다. 박살, 완전히 보내는 것.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박살 내 버리는 거지." (191쪽)

 

죽은 사람을 묻어주는 존중이 살아있는 사람을 묻고 은폐하고 박살내어 버리는 것으로 바뀌는 시대. 인간의 시대는 끝났고, 개의 시대가 시작한 셈이다. "자유를 약속하고 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인간을 죽이고 모든 것을 앗아 가 버리는"(192쪽) 야만 사이에 역사가 있었고 진행 중이다. 이 시대의 야만은 감각뿐 아니라 생각 자체에까지 침투했기 때문에 더 사악하고 잔인하다.(192쪽) 그들은, 그들의 '실수'인 하위계층을 묻고 은폐하여 스스로 공모하게끔 했다. 인간을 존중하는 인간과 인간을 박살내는 인간 사이에서 고개를 돌리며 그들이 되어왔다. 야만의 무리는 무수히 발견되는 그들의 '실수'에 쉽게 고개를 돌린다. 앞서, 서울에 특히 노숙인들이 많은 이유가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이라는 문장을 다시 환기할 필요가 있다. 사실 나는 이미 그들이며, 오래지 않아 그들의 실수가 될 것이다.

 

개의 시대, 짖고 항의하는 시대. 다시, 얼마만큼 당신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은 얼마만한 의지로 가능한 것일까. 손쉬운 감정이입을 통한 어쭙잖은 이해와 공감의 폭력을 경계하며, 자신을 죄인이라고 어림잡는 무거움을 탈피하면서 얼마나 당신이 될 수 있을까. 모든 어려운 질문들. 옮긴이 김현우 선생께서 번역 인세 전부를 노숙인 복지시설에 기부하였다는 사실과, 존 버거의 이 문장을 빌릴 수밖에. "말의 이중성. 아니, 다시 말해야겠다. 모든 세 번째 말은 적어도 가슴에서 나온다." (207쪽)

 

"잠시 후 자신이 짖고 있다는 것도 잊고, 그제서야 다른 사람들의 소리가 들린다. 합창처럼 들리는 짖는 소리. 그 누구도 변하지 않았고, 제각각 또렷하게 들리지만, 너무나 또렷해서 가슴을 찢는 소리. 그 짖음은 이제 무언가 달라졌다고 말하다. 이렇게, 우리가 여기 있어! 라고. '우리 여기 있어!'라는 그 말이 거의 죽어 있던 기억을 깨우고, 그 기억이 밤바람에 다시 불꽃을 피우는 재처럼 살아나고, 함께 있었던 기억, 두려움, 숲, 음식에 대한 기억도 되살아난다. 그들이 거기 누워 짖고, 그 짖음에서 나는 그들의 이름을 듣는다. 사냥개 대니, 요아킴, 솔, 말락, 애나, 알폰소, 스피츠 리베르토, 보잉의 먼지 더미 속에 웅크리고 앉은 그들은 가진 게 아무것도 없다. 내가 가진 게 아무것도 없듯이. 우리는 모두 똑같았고, 모두 짖고 있었다." (204쪽)

 

오늘의 책을 리뷰한 ‘soumas’님은?

얼마나 당신이 될 수 있을지, 또 당신과 연결될 수 있을지 고민하며, 때로 시 씁니다.

 

Trackback 0 Comment 0

《미생》 - 내가 아주 처음이었을 때

 

 

 

윤태호 | 《미생》 | 위즈덤하우스 | 2013

 

'처음'이라는 말은 왠지 설렌다. '첫사랑'은 풋풋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감정을, '첫아이'라는 작은 생명의 탄생은 따뜻함을 전해준다. 나의 인생에도 '처음'이라 표현할 수 있는 무수한 상황이 존재한다. 모든 것이 생소한 유아기부터 점점 책임이 뒤따르는 현재까지. 수많은 '처음'을 생각하다가 문득 나의 첫 회사 생활이 떠올랐다. 10여 년 넘게 회사에 다니고 있다. 회사는 나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경제적인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나이가 들면서 회사 생활에 점점 익숙해졌고, 타성에 젖어 나의 하루에 너무나 미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던 중 《미생》을 읽었다.

 

누구든지 회사에 처음 다닐 땐 열심히 하려는 의욕으로 가득 찬다.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는 그러한 의욕과 더불어 비장함을 보여준다. 그에게 회사란 학교를 마치고 사회의 첫걸음을 내딛는 장소가 아니라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새로운 세계다. 그는 오로지 바둑에만 몰두해 왔기에 세상 물정을 모른다. 장그래에겐 신입사원의 길 자체가 바로 '미생'인 것이다. 그는 남보다 더욱 노력할 수밖에 없고, 어떠한 경우라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장그래의 모습은 내가 생각했던 신입의 모습보다 더욱 절박한 상황으로 묘사된다.

 

장그래를 보면 나도 모르게 응원을 보내게 된다. 그의 여정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이다. 장그래는 바둑을 두면서 배운 전략을 회사 생활에 적절히 활용하면서 성장한다. 상대의 꼼수에 정공법으로 대응하여 상대의 실수를 유도하거나, '환격(바둑에서, 상대편이 자신의 돌 하나를 잡게 놓아둔 뒤에 바로 그 자리에 다시 놓아서 상대편의 돌 여럿을 잡는 일.)'과 같은 바둑의 수를 회사 생활에서 발휘한다.

 

나는 장그래와 같이 절박한 상황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동기 장백기라는 인물에서 나의 회사 생활의 ‘처음’을 찾을 수 있었다. 계약직 사원인 장그래를 항상 의식하면서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라든지, 어느 정도 회사 생활에 익숙해져서 이 작품에서 말하는 '회사 생활의 사춘기'에 접어든 모습까지.

 

장그래와 같이 일하는 상사인 오 과장과 김 대리, 신입 동기들, 대형 비리를 저지르고 사욕만을 추구하는 박 과장, 육아와 회사 생활을 병행하는 선 차장. 이들의 모습은 내가 지향할 직장인의 모습이라든지 버려야 할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 이들도 결국 완생이 아닌 미생에 놓인 것 아닐까. 장그래의 회사 생활은 결국 미생과 미생의 만남이지, 완생 속에서 길을 찾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도 애환이 있다. 상사의 잘못된 지시에 갈등하고, 성과에 대한 빈약한 보상에 불만을 품는다. 회사 생활에 매진하기 어려워 육아와 가사에 부담을 가진다. 장그래가 새로운 세계에 들어서서 어려움을 겪는 것처럼 누구에게나 애로가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회사 생활에 익숙해져 가는 장그래의 모습은 오히려 불안해 보인다. 정직원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거의 없기에 의기소침해지는 것이다. 장그래는 이러한 불안함을 계속 표출하기 시작한다. 그를 바라보는 동료도 마음이 불편해진다. 나는 처음부터 정규직으로 시작했기에 그러한 불안함이 없었다. 그러나 장그래의 2년짜리 계약직이라는 상황을 확장해 보면,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나의 회사 생활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약 10년간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언제까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살아있는 상태가 아닌 '미생'의 장그래의 처음과 마지막은 곧 나의 직장 생활의 처음과 마지막과 일치한다.

 

《미생》에서는 장그래의 삶이 완생이라고 직접 말하지 않는다. 미생들이 모여서 완생을 이루는 바둑처럼 가능성을 내비칠 뿐이다. 나는 분명 이 책을 나의 회사 생활의 '처음'을 들여다보기 위해 선택했다. 그러나 곧 ‘끝’으로 순식간에 이어진 느낌을 받았다. '처음'은 어쩌면 '끝'에 이르기 위한 첫 단계라고 생각한다. '처음'이라는 단어가 주는 설렘과 기대를 어떻게 '끝'까지 이어갈 수 있는지 고심해볼 필요가 있다. 나도 여전히 '미생'으로 살아간다.

 

단 두 집만 이루어도 완생이 되는 바둑에서조차 승패가 갈린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완생의 길을 좇는 우리의 모습도 영원히 미생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완생이라고 생각한 삶이 덧없게 느껴질지 모른다.

좋은 책과 서평을 나누고자 반디앤루니스 '오늘의 책'을 펜벗과 함께 만들어 갑니다.

펜벗이란 서평을 쓰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를 의미합니다.

매주 월요일, 성실한 서평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12월의 서평 주제는 '처음'입니다. 셀 수 없이 많은 각자의 '처음'을 책과 함께 떠올려 보세요.

'오늘의 처음'으로 생생히 떠오르길 바랍니다.

 

| 펜벗 일문일답

 

● 서평을 읽으면서 ‘이제 10여 년이 지난 회사 생활'이라는 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회사 생활 '처음'에 품었던 마음가짐과 지금이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하세요?


네. 아무래도 직장인이라면 공감하실 분이 많을 것 같은데요. 입사 시점에는 일을 배우면서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의욕적으로 일했던 것 같습니다. 잦은 야근과 특근을 하더라도 힘들다는 생각보다 조금씩 성장해가는 저의 모습에 만족할 수 있었거든요. 그런데 11년 정도 같은 일을 하다 보니 거대한 벽에 부딪힌 것 같고 무언가가 제 발목을 잡는 느낌이 들었어요. 왠지 지치더군요. 입사 연수를 받던 시절, 동기들과 함께 타임캡슐에 보관하였던 저의 목표와 마음가짐이 이제 시야에서 가물가물 사라지는 듯합니다.

 

● 잊고 있던 목표가 무엇이었나요?


첫 번째 목표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 두 번째 목표는 바로 직장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평범한 목표인데도 시간이 흐를수록 목표로부터 점점 뒷걸음치는 것 같네요. 가정을 이루었지만, 회사 일을 핑계로 왠지 소홀히 한 건 아닐까, 의구심이 들어요. 회사에서는 나름 열심히 했다고 생각하지만, 그저 평범한 존재로 인식되는 것 같고요. 지금 생각하면 저 두 목표가 결코 평범한 게 아니었어요.

 

● '처음'이라는 단어가 주는 설렘과 기대를 어떻게 '끝'까지 이어갈 수 있는지 고심해 보겠다고 하셨는데, 어떤 답이 나오셨는지요.


《미생》을 읽으면서 정말 저의 과거 입사 시절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덕분에 회사 생활의 ‘처음’을 떠올리면서 마음을 다잡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더군요. 나름 의욕과 ‘처음’이 주는 열정을 갖고 새로 시작해 보려 했지만, 이미 저의 회사 생활은 짜인 틀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끝’까지 이어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2주 전에 회사에서 업무 개편이 있었습니다. 다시 ‘처음’의 순간을 맞이할 기회가 온 것입니다. 여기에 제가 뒤늦게 아빠가 됩니다. 2달 후에 아이가 태어날 예정이라 저에게는 좀 더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가 생겼어요.

 

부끄럽게도 저는 여전히 고심하는 중입니다. 업무의 변경, 아기의 탄생으로 ‘처음’이 주는 설렘과 기대를 다시 얻게 됐지만, ‘스스로’는 답을 아직 도출하지 못한 것입니다. 삶의 기본에 충실하면서 좀 더 고심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 요즘은 무슨 책을 읽으세요?


현재 읽고 있는 책은 《숨 막혀 죽겠거든, 철학하라》입니다.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잡기 위하여 고심하는 와중, 철학이라는 분야에서 해답을 찾고 싶어서 읽게 된 책인데요, 이 책의 저자는 아버지의 교통사고, 동생의 자살로 한순간에 인생의 나락까지 경험하고, 이후 철학에서 다시 길을 찾았다고 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도 모르게 인생의 지혜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철학자의 저서와 내용을 상황에 맞게 인용하여 철학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책입니다.
또 《이토록 철학적인 순간》이라는 책도 같이 읽고 있습니다. 이 책도 출생에서부터 죽음, 내세에 이르는 인생의 모든 상황을 철학에 비추어 이야기합니다. 딱딱하게 느껴지는 철학을 부드러운 시선으로 풀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책사랑!님은?

잃어버렸던 독서의 즐거움을 뒤늦게 깨닫고, 꾸준히 책을 읽으려고 노력중인 직장인입니다.

 

Trackback 0 Comment 0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 책 좀 읽는 독서가의 고백

 

 

 

다치바나 다카시 |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 청어람미디어 | 2001

 

이 책에서 다치바나 다카시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독서광의 일상을 그려 보인다. '한해 수천 권의 책을 읽는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그는 국내 언론에도 소개된 적이 있는 책으로 가득한 '고양이 빌딩'의 건물주이자 다채로운 주제로 수많은 책을 펴내는 저술가이기도 했다. 서평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그는 어린 시절부터 많은 책을 읽었고 중, 고교 시절에 세계문학과 일본 문학을 독파할 정도로 조숙했다. 대학 졸업 후 잡지사에 얼마간 근무한 것을 빼고 그는 프리랜서 독서가이자 서평가로 일생을 보내왔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어떻게 책을 읽어왔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이 책에 실린 '퇴사의 변'을 통해 상상해 볼 수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인간은 할 수만 있다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야 한다. 내 경우, 하고 싶은 일이란 읽고 싶은 책을 읽으면서 조용히 생각에 잠겨 보는 것뿐이다. "그 정도라면 회사를 그만두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좀 더 참아 봐. 다른 편집부로 옮기면 책은 얼마든지 읽을 수 있을 거야"라고 충고해 주는 사람도 몇 있었다.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 서재의 서가 앞에 앉으면 언제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초조함이 엄습해 왔다. (183쪽)

 

하여, 그는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 독서가이자 서평가 혹은 저술가의 길을 갈 것을 다짐한다. 밀린 책을 읽기 위해 본업을 포기한 사람이 바로 다치바나 다카시였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은 그가 '하고 싶은 일'이었으나 그걸위해 직장을 그만두는 일은 누구도 쉽게 하지 못한다. 작가의 열정을 따라 할 수 있을지언정 그가 걸어온 삶을 흉내 내기란 쉽지 않다. 일본은 잡지가 단행본 출판보다 더 발달된 나라다. 그가 이 책을 썼던 1980, 90년대는 일본 잡지의 전성기였기에 잡지사에 실릴 양질의 원고는 공급부족 상태였다. 그는 잡지사의 수요에 발맞춰 훌륭한 원고들을 생산하기 시작한다. 한편의 원고를 쓰기 전에는 100편 이상의 참고 자료를 읽는, 원칙을 정해놓고 작업하곤 했다. 많은 자료에 대한 독서가 좋은 원고를 만든다는 변치 않는 법칙을 발견할 수 있게 한다.

 

세계적인 독서가로서 그가 제시한 '14가지 독서법'도 흥미롭다. 그는 이것이 취미를 위한 독서법이 아니라 일반교양을 쌓기 위한 독서법이라 주장하는데, 주된 내용 몇 가지를 살펴보면 이렇다. 책을 사는데 돈을 아끼지 않는다. 책 한 권에 들어 있는 정보를 다른 방법으로 입수하려면 그 몇 배의 비용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그는 믿는다. 또한 하나의 주제를 공부하기 위해 몇 권의 입문서를 찾아 읽어야 한다. 책 선택의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수업료로 생각하며 자신의 수준에 맞지 않는 책을 억지로 읽는 것은 시간 낭비이니 읽다가 포기하는 것도 필요하고 말한다. 정독만 고집해서는 일생 만날 수 있는 책이 한정돼 있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독서 특징은 속독법으로 다양한 종류의 책을 빠르게 읽고 정독할 책과 통독할 책을 선별하는 것이었다. 책을 읽을 때에는 끊임없이 의심하며 읽어야 자기 발전에 도움이 된다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대학에서 얻은 지식은 대단한 것이 아니란 사실을 알아야 한다. 끝으로 다치바나 다카시는 젊은 시절에 다른 것은 몰라도 책 읽을 시간만은 꼭 만들어야 한다고 당부한다.

 

나는 책이란 만인의 대학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대학에 들어가건 사람이 대학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양적으로든 질적으로든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대학에서도,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무엇인가를 배우려고 한다면 인간은 결국 책을 읽지 않을 수 없다. 대학을 나왔건 나오지 않았건, 일생 동안 책이라는 대학을 계속 다니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책이라는 대학에 지속적으로 그 누구보다 열심히 다니고 있다. (286쪽)

 

다치바나 다카시는 일평생 모은 책으로 거대한 '지의 왕국'을 세웠다. 그가 기획하고 친구에게 설계를 맡긴 '고양이 빌딩' 안에는 수만 권의 장서가 보관돼 있다. 비좁은 공간을 훌륭한 개인 도서관이자 집필실로 꾸몄다. 누구든 뜻만 있다면 큰 비용 들이지 않고 이러한 건물을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정독만이 진정한 독서라고 고집해온 내게, 다카시의 속독과 통독법에 대한 유연한 사고가 인상적이다. 정독만으로는 1년에 50권 읽기도 벅찬 게 현실이다. 만약 다카시 같은 방법을 쓴다면 1년에 그 10배를 읽는 일도 가능할 것이고  보배 같은 책을 만날 확률도 더 늘어날 것이다. 한 편의 글을 쓰기 위해 100배에 달하는 자료를 읽는다는 다카시의 집필 방식. 게으른 서평가들에게 모범이 될 만 하지 않은가.

 

오늘의 책을 리뷰한 ' 개츠비현 '님은?

읽고 일하고 쓴다. 출판전문지 `기획회의’ 필자이자 네이버 책부문 파워블로그.

Trackback 0 Comment 0

[반디앤루니스] 펜벗을 모집합니다!

 

 

모집 기간
9월 22일(월) ~ 10월 20일(월) 24:00 까지


모집 인원
40명
모집 인원은 심사 과정에서 일부 조정될 수 있습니다.


활동 기간
2014년 10월 말 ~ 2015년 2월 말 (4개월)


활동 내용
매월 반디펜벗서재에 ‘오늘의 책 테마’가 공지됩니다. 펜벗은 테마와 어울리는 도서의 서평을 씁니다.
함께 참여해 주시는 분들께 매월 적립금 5만원을 드립니다.
여기서 펜벗과 함께 다양한 글을 나누어 봅니다.


신청 방법
이 페이지에서 신청서를 다운로드 한 후, 항목을 빠짐없이 적어서 이메일로 보내주세요.
hyewonjung@bnl.co.kr

 

발표        
10월 24일(금) 14:00
반디앤루니스 홈페이지 및 반디펜벗서재에 발표 / 개별 공지


문의
반디앤루니스 컨텐츠팀 (hyewonjung@bnl.co.kr)

 

Trackback 0 Comment 0

[반디앤루니스] 펜벗 관련 문의 사항을 정리했습니다

 

 

 

 

◆ 펜벗에 대하여 ◆

 

 

 

 

1. 오늘의 책 테마란

우선, 반디앤루니스에서 처음 서평단을 기획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다분히 신간에만 주목하지 않으려 했던 점입니다. 펜벗은 좋은 책과 서평을 나누고자 하는 [오늘의 책] 성격을 이어받았습니다. 거기에 기존 [오늘의 책]을 조금 더 재미있게 만들어 보고자 ‘테마’를 두게 된 것입니다.

 

펜벗이 출범되면, 펜벗 구성원에게 월간 [오늘의 책 테마]를 공지할 것입니다. 동시에 테마에 어울리는 책도 함께 소개하지만, 꼭 목록에서 책을 고르지 않으셔도 됩니다. 테마가 공지되면, 펜벗은 테마에 맞는 도서를 고르고 한 달 동안 적어도 2 편 이상의 서평을 쓰셔야 합니다. 그래야 기본 적립금 5만원이 지급되며, 펜벗이 유지됩니다.

 

한 달 동안 모인 펜벗의 서평 중 우수한 것은 반디앤루니스 [오늘의 책]으로 일주일에 한번씩 소개됩니다. 이 서평은 기존 [오늘의 책 서평]과 다른 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  우선 홈페이지 메인에 ‘펜벗 추천’ 서평이라는 표식이 붙습니다.

- [오늘의 책과 연관된 도서]를 추천할 때에도 왜 연관도서로 추천했는지 펜벗의 의견과 함께 소개합니다.

- [오늘의 책 페이지]에서는 펜벗의 인터뷰와 함께 펜벗이 쓴 다른 서평을 독자가 읽을 수 있도록 링크를 걸 것입니다.

- 오늘의 책 서평으로 선정되었을 때는 기본 적립금 외 기념 적립금 5천원이 추가로 지급되고요.

 

 

 

2. 책을 선택할 때

펜벗을 책의 ‘장르’를 구분해 모집하지 않습니다. 40명이 모두 같은 테마를 보고, 자유롭게 책을 선택하여 서평을 쓰시면 됩니다. 테마에만 맞는다면요.

 

예를 들어 펜벗 활동의 시작이 10월 말 즈음일 텐데, 처음 공지될 12월 [오늘의 책 테마]가 ‘크리스마스’라 하면, 크리스마스와 연관된 사건, 단어를 요모조모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서평할 책으로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의 악몽>을 선택해도 되고, 김애란의 단편 <성탄 특선>을 말 할 수도 있습니다. 도서 선택은 자유입니다. (여기서 ‘크리스마스’는 예시일 뿐이지 정해진 건 아닙니다.)

 

테마는 그때그때 다릅니다. 어쩌면, 테마 자체가 책의 장르가 될 수 있겠습니다만, 테마를 통해 여느 서평 전달 방식과는 다른 시도를 해볼까 합니다.

 

 

 

3. 적립금

기본 적립금 5만원과 기념 적립금 5천원을 앞서 말씀 드렸습니다. 그밖에 추가로 드릴 혜택 또한 있습니다. 펜벗의 활동 주기는 4개월입니다. 4개월 간 활동이 활발하고 특별했을 때에는 감사의 뜻을 담아 소정의 적립금을 드립니다. 또한, 펜벗 출범 이후 이곳 서재에서 책을 중심에 둔 몇 가지 글짓기 기획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 기획에서는 [오늘의 책 서평 형식]을 벗어난 글을 소개할 것입니다. 글짓기에 참여해 주신 펜벗에게도 적립금을 드립니다.

 

 

 

4. 타 매체에 서평을 등록했을 때

가장 궁금해하실 부분이며 반디앤루니스에서도 가장 주시하는 부분입니다.


반디앤루니스 서재에 쓰셨던 글을 개인 블로그에 올리셔도 괜찮습니다.
(타 서점, 혹은 서평이 소개되는 언론 매체 포함)


반대로,
개인 블로그에 올리셨던 서평을 반디앤루니스 서재에 등록하셔도 좋습니다.
(이 경우에도 타 서점, 혹은 서평이 소개되는 언론 매체 포함)


다만,
이전에 다른 곳에서 우수한 서평으로 선정돼 시상을 받은 서평,
혹은 그 서평으로 어떠한 혜택을 받으셨을 경우,
해당 서평을 다시 반디앤루니스 서재에 게시하는 것은 지양합니다.
반디앤루니스에서는 그 글에 대하여 똑같은 혜택을 드릴 수 없습니다.

 

올라오는 콘텐츠에 대해 위와 같은 여부를 모두 검토하기는 어려움이 따르므로
미리 이 점 인지해 주시고, 서평을 작성해 주시길 당부드립니다.

Trackback 0 Comment 0

《책방 주인》 - 찾는 책 없습니다

 

 

레지 드 사 모레이라 | 《책방 주인》 | 예담 | 2014 

 

반디앤루니스는 도시의 많고 많은 서점 중 하나다. 여기에는 누구나 좋아하는 어여쁜 책도 있고, 꼭 나만 좋아할 것 같은 책도 있다. 좋아해 보려 해도 도저히 안되는 책도 있다. 서점에서 파는 모든 책의 주인은 아니지만, 나는 왠지 책을 대할 때 책임감이 들어서 쓰레기 같은 책은 꼭꼭 숨기고 진흙 속의 진주 같은 책을 앞장세운다. 나 좋으라고 그런다. 책을 좋아해서 책과 가깝게 지내는 일을 하고 있다. 서점에는 속보 기사처럼 신간이 쏟아진다. 신간 목록 중에는 포장이 제법 잘 된 쓰레기도 있다. 쓰레기를 아주 잘도 만들어내는 거짓 생산자에게 진주 같은 책이 지지 않으려면 나는 쓰레기와 진주를 꼭 구별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좋은 책을 담백하게 권할 수 있을까 알고 싶었다. 그래서 이 책을 꺼내 들었다.

 

책방 주인은 쓰레기 같은 책은 절대 팔지 않았다.
 "쓰레기 같다는 건 누가 결정하죠?"
가끔 이렇게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었고 개중에는 대뜸 자신을 납득시켜보라고 고집을 부리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어찌 됐든 주인은 그였다.
책방 주인은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책방 주인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은 그 도시에 많고 많은 다른 서점으로 가든가, 직접 책방을 차려서 쓰레기 같은 책들을 실컷 사고팔면 될 터였다. 책방 주인은 왜 자신이 굳이 그런 일을 떠맡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쓰레기 같은 책이 싫었다.
그런 식으로 장사를 하니 책방에 손님들이 뜸하지, 라고 말하는 건 좀 입빠른 소리일 게다. (21쪽)
 
책방 주인은 쓰레기 같은 책은 팔지 않는다고 확실히 못을 박기 위해 읽어본 책만 팔았다. 좋은 책을 잘 권하기 위해서라도 스스로 읽는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책을 읽지 않을 때도 읽을 책을 찾았다. 그렇지만, 현실의 대형 서점에는 속도가 중요하다. 빨라야 손님을 만족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출판도 마찬가지다. 신간 도서 중에는 더러 나올 준비가 미처 되지 못한 것 같은 책도 있다. 책이야 말을 못하니 안쓰럽고 말지만, 문제는 빠른 속도에도 신속하게 응답하는 독자들의 서평이다. '반디앤루니스에는 리뷰가 많이 없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오늘의 책'을 통해 좋은 책을 나누려고 서평을 찾다 보면, 서평다운 서평을 찾기 힘들다. 서평은 신간의 홍보 수단으로 변질됐다. 서평단의 결론은 '사용해 보니 좋네요'다. 서평이 아니라 상품평이다. 심한 경우, 서평단에게는 깊이 독서할 시간도 없었던 것 같다.

 

책방 주인은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페이지를 뜯어내 봉투에 담아 그의 가족들에게 보냈다. 가족들이 어떤 일을 하고 있고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페이지는 각각 달랐다. 편지에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 이것이 책방 주인이 '좋은 책을 권하는 방법’일까?  그러고보니 좋은 책은 홍보에 많은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꾸준히 잘 팔린다. 자발적인 서평도 곁들여진다. 애초부터 책은 속도에 호응하지 못하는 사물이 아니었던가. 상품평이 많은 책은 홍보가 많이 된 책이지, 다 좋은 책은 아니다. 반디앤루니스에는 상품평이 많이 없다.

 

| 컨텐츠팀 에디터 정혜원

(hyewonjung@bnl.co.kr)

Trackback 0 Comment 0
prev 1 2 3 4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