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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12.22 《Mahler - Symphony No.9》 - 모두가 울먹였던 그날 저녁
  2. 2014.01.06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 세상을 깨우는 소리

《Mahler - Symphony No.9》 - 모두가 울먹였던 그날 저녁

 

 

정명훈, 서울시립교향악단 | 《Mahler - Symphony No.9》 | DG | 2014

 

2013년 8월, 말러 교향곡 9번의 연주를 준비하던 서울시향의 정명훈 예술감독(이하 정명훈)에게 비보가 전해진다. 문화교류 차 정명훈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은하수악단 단장인 바이올리니스트 문경진이 정치적인 이유(를 빙자한 숙청)로 총살을 당했다는 소식이었다. 문경진은 폐쇄적인 북한 사회의 특성상 훌륭한 실력을 갖췄음에도 크게 알려지지 못했던 예술가였다. 정명훈 역시 그를 매우 아꼈고, 특히 자신이 이끄는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이 은하수 오케스트라와 파리에서 합동 연주회를 했을 때를 비롯해 기회가 될 때마다 다양한 방법으로 세계무대에 그를 소개했다. 그렇게 아꼈던 후배 음악가를 허망하게 잃은 정명훈은 매우 큰 슬픔에 잠겼고, 하필 당시 서울시향과 준비했던 말러의 교향곡 9번은 그의 영혼을 위로하는 진혼곡처럼 되어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서울 시향 단원 중에는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과의 합동 연주 때 문경진과 함께 연주했던 사람들도 있었기에 그들 역시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몇몇 단원들은 합동 연주 당시 함께 맞춰 입었던 티셔츠를 연미복에 속옷처럼 덧입고 나왔다. 연주회 시작 전부터 단원들에게는 애통함과 비장함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말러의 교향곡 9번은 말러 자신이 작곡 당시 느꼈던 심리적, 육체적 고통과 죽음에 대한 공포, 지나온 인생에 대한 회한, 체념 그리고 미련이 전부 녹아있는 작품이다.
1악장을 지배하는 'F#-E'의 짧은 모티브는 이승을 떠도는 망령과도 같다. 그에서 파생된 모티브들은 절규하듯 울부짖거나 꺼져가는 목숨처럼 헐떡거리며 사라지기도 한다.   
2악장과 3악장은 곡의 전체적인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활발하거나 산만해서 냉소적인 웃음 혹은 파국을 향해 달려가는 폭주와 같이 느껴질 정도다.

 

흡사 '세상은 나를 위해서 술 한 잔 사주지 않았어!' 라고 소리를 지르다 갑자기 껄껄 웃는 말러가 거기에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끝에 모든 것을 체념하기라도 한 듯 길고 긴 한숨과도 같은 4악장이 기다리고 있다. 힘들었던 삶이 비로소 끝나가는 것을 직감한 작곡가가 자신의 마지막 남은 한 방울의 힘을 쥐어짜듯 써내려간 악상으로 가득 차있는 부분이다. 그러다보니 연주하는 지휘자와 단원들에게는 더욱 높은 수준의 몰입과 집중력을 요구한다. 어설프게 연주하려거든 아예 연주하지 않는 편이 차라리 나을 수도 있다.

 

2013년 8월, 정명훈과 서울시향 단원들은 연주 직전에 그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곡을 연주하는 평범한 일상과 죽음의 공포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몇 발자국 차이로 늘 곁에 있고 언제든 우리를 덮칠 수 있다는 생각 말이다.
어찌 됐든 이날의 연주는 대성공을 거두었고 이렇게 음반으로도 제작되어 세상에 나올 수 있게 되었다.

 

앞서 말러의 9번 교향곡에 대해 설명하면서 '죽음의 공포'라는 단어를 썼지만, 거의 울음에 가까운 감정으로 흐느끼며 연주에 참여했던 지휘자, 단원, 스태프들 그리고 거대한 '음악적 현상'에 기꺼이 동참한 관객들은 그 공포를 넘어 새로운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인간으로서 어찌할 수 없는 공포에 정면으로, 그것도 매우 치열하게 맞선 뒤 생겨나는 의지와 감사함을.

 

그리스인이 비극을 사랑했던 이유가 비극의 정화(淨化) 효과 때문이라고 들었던 것 같다. 이 음반은 2013년 8월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느낀 그 감동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그동안 DG가 작업한 서울시향 음반에 대해 공통으로 제기되었던 답답한 음질, 음색의 블렌딩 문제도 상당히 해소되었고, 섹션마다 강조되어야 할 부분이 충실하게 강조되어있다. 음색의 변화 또한 민감하게 잡아내 상당히 만족스럽다. 한국 관현악 연주사에 한 획을 그었던 그날의 기록이 한층 정성스레 담겨있는 이 음반을 꼭 들어보길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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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없이 음악을 듣고 편견없이 생각하고 싶어하는 음대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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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 세상을 깨우는 소리

 

정명훈, 서울시립교향악단 |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 DG

 

모든 사람들은 형제가 되리라

 

사실 베토벤 교향곡 9번「합창」이 꼭 연말에만 연주되어야 하는 곡은 아니다. 음악 연주의 역사에  어느 정도의 조예가 있는 애호가들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만 이제 막 고전음악을 듣기 시작한 사람들에게는 "아, 그래?"와 같은 반응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전통적으로 일본 음악·공연계의 영향을 많이 받은 한국에서는 각 오케스트라들이 12월의 정기연주회에서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을 연주하는 게 일종의 관습처럼 내려져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곡이 초연된 것은 연말이나 겨울의 분위기와는 상관없는 5월이었으며 하다못해 가사에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모든 사람이 형제가 되어 얼싸안고 자유를 위한 노래를 부르며 성역에 발을 들여놓는다는 가슴 벅찬 가사가 한 해를 정리하고 반성하는 연말과 새로운 시작을 위해 희망을 갖고 준비하는 연시에 적합했던 게 아닐까.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행사는 역시 거창하게 해줘야 제격이며 자고로 축제에는 명분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지구상에서 영원히 변하지 않을 축제일을 하나만 정해야 한다면 큰 이변이 없는 한, 아마 새해를 맞이하는 날이 되리라 확신한다. 그리고 종교·정치·인종을 막론하고 인류 전체의 유산으로 자리 잡은 악성의 이 위대한 음악도 그 축제를 기념하는 자리에 당당히 올라와 있을 것이다.

 

올 12월에 서울시향과 정명훈은 또 하나의 음반을 발매해 자신들만의 축제를 즐겼다. 바로 앞서 말한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순수한 국내 합창단과 독창자들과 함께  발매한 것이다. 도이치 그라모폰이라는 메이저 레이블에서 대작을 녹음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념할 만한 일인데 음반의 질 또한 매우 우수하다. 속된말로 '최소한의 선' 정도를 넘어서 더 높은 수준까지 욕심을 낼 수 있는 음반이 탄생한 것이다. 

             

달려라, 형제들이여! 그대들의 길을!

 

정명훈과 서울시향의 새 음반을 소개하기에 앞서 일단 그동안 이어져 내려온 9번 교향곡의 중요한 녹음들에 대해서 간략히 정리해봐야 할듯하다. 먼저 이 곡과 관련해 '최고의 명반' 지위를 상당히 오랜 시간 지켜온 음반이 있다. 국내 모 원로 평론가의 책에도 실려 유명해진 푸르트벵글러와 바이로이트축제 관현악단의 1951년 녹음이 그것이다. 그러나 필자의 귀로 듣기에 이 음반은 '명반이라기보다는 그저 오래된 녹음 중에 가장 유명한 음반' 정도로 분류하는 게 나을 듯하다. 최근의 조사결과 이 녹음은 라디오 방송, 리허설 음원, 실황음원 등이 짜깁기되어있는 음반임이 밝혀졌고(물론 이처럼 여러 개의 음원 중 가장 좋은 것들을 재조합하는 방식은 적지 않게 쓰이는 방법이다. 하지만 문제는 푸르트벵글러의 이 음반이 마치 하나의 테이크로 녹음된 실황처럼 알려졌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러한 논란을 감안하고 듣더라도 음질, 연주의 일관성 면에서 큰 점수를 주긴 힘들듯 싶다. 아마 구하기는 힘들겠지만 푸르트벵글러가 사망하기 몇 달 전인 1954년 8월에 루체른에서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녹음한 음반이 훨씬 뛰어나다 볼 수 있다.

 

푸르트벵글러의 사후로는 헝가리의 지휘자 페렌츠 프리차이가 1957년에 베를린 필과 녹음한 음반을 첫 번째로 꼽고 싶다. 칼같이 맞아 떨어지는 앙상블과 카라얀에 의해 변화되기 이전의 베를린 필의 카랑카랑한 음색이 어우러진 매력적인 연주이며 1악장부터 4악장까지 지치지 않고 밀어붙이는 추진력과 큼지막한 스케일이 듣는 이를 압도한다. 카라얀과 베를린 필의 음반은 1962년도의 CD녹음과 1977년의 영상이 담긴 DVD가 가장 훌륭하며 특히 77년의 영상물은 카라얀 특유의 영상연출법과 맞물려 음악 역사상 또 하나의 금자탑을 세웠다. 뉴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조지 셀의 1968년 녹음(BBC)은 활화산처럼 뜨겁게 타오르는 격정이 인상적이며, 아바도와 베를린 필의 2000년도 영상물은 실황연주 특유의 열기와 깔끔하게 닦여진 오케스트라의 음색이 매우 훌륭하다.

 

정명훈과 서울시향의 이번 음반은 전체적인 레코딩 역사의 큰 틀에서 봤을 때 사실 뚜렷한 특징이나 이정표를 제시하진 못한다. 그보다는 거의 새롭게 태어나 몇 년간의 단련을 거친 후 아시아 최고 수준으로 재탄생한 오케스트라의 준수한 녹음기록 정도로 받아들이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얼핏 평가 절하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서구음악(서양인들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연주하는 그 서양 고전음악이다!)을 연주하는 아시아의 오케스트라로서 보여줘야 할 것은 충분히, 그리고 멋지게 보여주고 있다는 얘기다. 자신이 태어난 곳, 자란 곳에서 체득하지 못한 걸 자연스럽게 표현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남들이야 말은 쉽게 할지 모른다. 하지만 서구인이 아무리 한국민요를 구성지게 부른다고 해도 한국 사람이 직접 흥얼거리는 그 자연스러움에 비할 수 없듯이, '원조' 혹은 오리지널의 거대한 벽 앞에 겁 없이 도전장을 내미는 그들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 쇼비니즘에 입각한 칭찬이 아닌, 진정한 노력과 투자로 최선의 결과물을 위해 달려가고 있는 그들이기에.

 

오늘의 음반을 리뷰한 '박현준'님은?
편견없이 음악을 듣고 편견없이 생각하고 싶어하는 음대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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