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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6.26 존 라베 난징의 굿맨: 전쟁에 영웅은 없다

존 라베 난징의 굿맨: 전쟁에 영웅은 없다

 

존 라베, <존 라베 난징의 굿맨>, 이룸, 2009

언젠가 전쟁영화에 대한 글을 쓸 때 다음과 같이 쓴 적이 있다. “수없이 반복된 전쟁을 지켜보면,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학습 능력이 떨어지는지 알 수 있다. 전쟁을 통해 무고한 사람이 고통 받고, 죽어감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멈출 줄 모른다. 부와 권력이 인간의 눈을 멀게 한 탓일까. 아니면 전쟁을 일으키는 이와 전쟁을 통해 고통 받는 이가 다르기 때문일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전쟁은 신이 준 최고의 저주라는 것이다.” <존 라베 난징의 굿맨>을 읽으면서 이 문장이 다시 떠올랐다.

<존 라베 난징의 굿맨>은 존 라베라는 독일인이 1937년 일본이 중국 난징을 침공할 때 그곳에서 쓴 일기를 엮은 책이다. 그는 당시 ‘난징 안전구 국제위원회’를 결성해 무고한 중국인들의 안녕을 위해 힘썼다. 독일 기업 지멘스 중국지사에서 일하던 ‘함부르크 상인’인 존 라베가 피로 물든 난징에 머문 이유는 무엇일까. 다른 외국인들은 일본의 침공이 시작되자 서둘러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중국은 존 라베라는 이방인에게 30년 동안 잘해줬고, 그는 도망칠 수조차 없는 가난한 이들을 두고 떠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937년 9월 22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존 라베의 일기에는 일본군의 침공, 난징 안전구 국제위원회의 활동, 중국인이 겪은 전쟁의 참혹함 등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피난을 가지 못한 중국인들은 그의 집과 안전구로 들어와 ‘생’(生)을 찾는다. 존 라베는 당시 독일의 상징인 나치 깃발을 안전구 곳곳에 세우고 일본군의 공습을 막고자 한다. 그는 500 평방미터인 자신의 집에 650명의 중국인들 피신시켰다. 상상해 보라! 더구나 식량은 떨어지고, 수도와 전기는 끊겼으며, 일본군의 위협은 끊이지 않는다. 그렇게 25만 명의 중국인이 난징 안전구로 모여들었다.

전쟁 속에서 존재할 수 없는 ‘안전구’

이성이 마비된 전쟁이란 시공에서 ‘안전구’는 존재할 수 없다. 일본군은 안전구에 들어와 중국인들을 데려가고, 강간과 폭력을 일삼는다. 또 길거리에 즐비한 시체들은 학살의 잔혹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존 라베, 미국인 선교사 등 외국인들이 폭력의 현장에 당도해 일본군의 폭력을 막고자 하지만, 몇 안 되는 이방인이 모든 현장에 존재할 수 없다.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폭력, 또 외국인이라고 해서 그 폭력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중국 정부는 별 도움이 되지 않으며, 외국 각국의 구원의 손길을 내밀지만 그 또한 녹록치 않다.

상황이 이쯤 되면 존 라베의 일기는 울분과 한 맺힌 절규로 가득할 법도 하다. 하지만 그는 난징의 현실을 차곡차곡 기록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 깊은 고민을 토로하지는 않는다.

“최근의 환자는 어제 왔다. 한 여성은 목이 반쯤이나 잘려서 윌슨 박사 스스로도 이 불행한 여성이 아직 살아있다는 데 놀랄 정도였다. 어느 임신부는 총검창상을 입어 태아를 잃었다. 같은 병원에는 많은 소녀들이 성폭행 당해 들어오고 있다. 한 소녀는 연이어 스무 번이나 성폭행을 당했다.” (p. 207)

상상할 수 없는 참혹한 현장, 현실이지만 그는 자신의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영화에 비유하자면 클로즈업과 장중한 음악으로 감정을 자극하는 영화가 아닌 극사실주의 영화나 다큐멘터리에 비교할 만하다. 어떻게 그는 그토록 침착(?)할 수 있었을까. 책을 보면 답을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만약 그가 매순간 벌어지는 납득할 수 없는 일들에 분노했다면 그는 그곳에 남아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미 감정이 모두 소진돼 난징을 떠났거나, 아니면 남아있었더라도 자신의 존재 의미를 상실할 수밖에 없다. 존 라베는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고자 하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깊은 슬픔은 사치다.
 

 

(사진 상하이로. 안전구의 중심 교통로. 이룸 출판사 제공)


존 라베, 독일 속의 또 다른 난징 시민

1938년 2월 23일 존 라베는 난징 안전구를 떠났다. 일본군과 중국 자치위원회는 이방인이 난징에 머무는 것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았다. 그가 떠나기 얼마 전 난민들은 절을 하며 그에게 “당신은 수십만 사람에게 살아 있는 부처입니다”라며 인사를 했다. 또 독일로 돌아갔을 때 신문과 통신사들은 그를 영웅으로 찬양했다. 물론 그는 이를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했지만…. 그럼 이 살아있는 부처, 영웅은 이후 어떤 삶을 살았을까.

애석하게도 그는 더 이상 영웅이 될 수 없었다.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고, 독일이 패망의 길로 접어들면서 나치에 가입했던 전력은 그를 ‘전쟁의 가해자’로 만들었다. 25만의 생명을 구한 영웅이 졸지에 살인자가 된 셈이다. 또 난징에서의 비참한 삶이 이제 그의 고향에서 벌어진다. 독일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는 러시아군은 난징에서의 일본군과 다름없으며,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닌 존 라베 또한 무력한 피해자일 뿐이다. 살아있는 부처 존 라베도 이제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존 라베가 중국에서 독일로 건너온 다음의 일기는 많은 것을 의미한다. 애초 영웅도, 살아있는 부처도 없다. 그저 전쟁이란 극한 상황에서 영웅, 부처로 비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면 영웅은 사라진다. 또 가해자와 피해자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 비단 일본-중국, 러시아-독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서구 선진국은 물론 우리도 가해자다.  ‘정의를 위해’, ‘문명을 발전시키기 위해’, ‘살기 위해’란 변명은 이제 유통기한이 지났다.

존 라베는 굿맨(좋은 사람)이다. 그 또한 영웅이 되고자 하지는 않았다. 영웅을 꿈꾸는가? 아니. ‘굿맨’이 그저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전쟁 없는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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