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집'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2.01.31 [요즘 뭐 읽니?] 구본창, 《시선 1980》
  2. 2011.09.29 <골목안 풍경 전집 - 김기찬 사진집> - 불온한 '휴머니즘'
  3. 2009.12.01 <조세현의 얼굴> - 사진이란 이름의 기도 (4)

[요즘 뭐 읽니?] 구본창, 《시선 1980》


 

 

구본창 | 《시선 1980》 | WOW IMAGE | 2008

 

저는 백 년 전통을 자랑하는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재학 중에는 체감하지 못했으나 돌이켜보면 꽤 자랑할 만했지요. 담쟁이넝쿨이 뒤덮은 벽돌건물, 이삼 층에서 보일 만큼 커다랗게 뻗은 은행나무와 목련, 이들이 뿌리를 내린 야트막한 산등성이. 같은 재단의 중학교를 나왔으니 미성년의 반을 그곳에서 보낸 셈입니다. 하지만 같은 자리에 더 이상 모교는 없습니다. 지금은 신축한 건물로 이전했기 때문입니다. 말 그대로 ‘추억 속의 학교’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 추억이 사진의 형태로 남았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당시에는 필름카메라를 한 대 가지고 있었습니다. 'LOMO LC-A'라는 기종으로 크기가 작아서 휴대하기에 좋았습니다. 집과 학교만을 오가는 여고생에게 피사체는 한정되어 있었지만, 그럼에도 계속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매일 다니는 복도에서, 매일 보는 친구들 앞에서 셔터를 눌러댔습니다. 그것이 사라진 공간을 기록하는 일이 될 줄은 예상하지 못한 채로요.

 

 

보슬비 내리는 봄으로 기억된다.

 

양수리로 가던 길이었다.
한적한 도로변에 우산을 받쳐든
부부가 서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무심코 지나쳤으나 순간적으로
셔터를 눌렀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일어 차를 돌렸다.

 

잔칫집에라도 가는 길인지,
빌려 입은 듯 어깨 넓은 양복 차림의
아저씨와 날씨에 어울리지 않게
잘 다려진 한복을 입은 아주머니가
무척이나 다정해 보였다.
빗속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두 사람의
모습은 내 마음 속에
알 수 없는 그리움을 남겼다.

 

경기도, 양수리

 

그때의 친구들과 재회한 카페에서 《시선 1980》을 보았습니다. 1980년대 서울을 비롯한 몇몇 도시의 모습을 담은 사진집인데요. 구본창은 익숙한 풍경들의 사라짐을 예감했을까요. 카페를 나서는 길에 이 사진집을 구입했습니다. ‘추억 속의 1980년’을 조금 더 보고 싶어졌거든요. 저는 공통점을 발견한 것 같습니다. 학교라는 공간이든 1980년대라는 시간이든, 그 모습 그대로 붙들어 놓을 수 없다는 것을요. 어쩌면 사라짐을 예감했을지도 모를 구본창이라고 하더라도 말이지요. 오랜만에 'LOMO LC-A'를 꺼내 봅니다. 저는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습니다. 이 순간도 다 추억인 걸요.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hebong200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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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안 풍경 전집 - 김기찬 사진집> - 불온한 '휴머니즘'




 

김기찬 | <골목안 풍경 전집 - 김기찬 사진집> | 눈빛 | 2011

 

나는 사진을 잘 모른다. 훌륭한 사진도 훌륭한지 잘 모르고, 형편없는 사진도 형편없는지 잘 모르는 ‘막눈’을 지녔다. 그런 나도 좋아하는 사진작가가 있다. 바로 김기찬이다.

 

그를 처음 만난 곳은 학교 도서관이었다. 카메라에 관심을 가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디선가 ‘김기찬’이란 이름을 주워들은 난 도서관에서 그의 사진집을 찾아보고 한눈에 반했다. 그의 이름으로 나온 사진집이 대여섯 권쯤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나같이 ‘골목길’을 배경으로 한 그의 사진에는, 골목 안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삶 풍경’들이 오롯이 담겨 있었다.

 

아이를 업은 채 세수하는 아주머니, 웃통을 벗어던지고 등목하는 아이, 수다 삼매경에 빠진 아지매들, 눈 부라리면서 싸우는 아이들… 김기찬의 카메라는 골목길을 둘러싸고 펼쳐진 사람들의 삶 속에 깊숙이도 파고들었다.

 

그중에서도 단연 압권은 ‘성장 사진’이었다. 30년 넘는 긴 작업 기간 덕분에 그의 사진에는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는데, 수줍은 꼬맹이를 보여주는 빛바랜 흑백사진과, 십수년 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그 아이(이제는 여인)의 모습이 담긴 컬러사진이 나란히 한 페이지에 실린 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었다. 시간의 거룩함이 주는 감동이었달까. 사진으로 이루어진 한 편의 대하소설을 보는 것 같았다.

 

최근, 몇 권의 책에 흩어져 있던 김기찬의 사진들이 드디어 <골목안 풍경 전집>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왔다. 어떻게 그는 30년이라는 길고도 긴 시간을 골목이라는 한 주제에 매진할 수 있었을까. 김기찬은 자신이 골목에 그렇게 애착을 가졌던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어렸을 적 아름답게 채색되었던 기억을 더듬으며 내가 뛰어놀던 골목을 찾는다. 도심 한가운데, 빌딩 숲 그늘에 가려 보이지 않던 우리들의 고향의 모습이 떠오른다. 삶이 힘겹고, 딛는 땅이 비좁고 초라해도 골목안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서로를 아끼는 훈훈한 인정이 있고, 끈질긴 삶의 집착과 미래를 향한 꿈이 있다. 이들은 깊이 뿌리 박혀 있는 생활 전통을 골목안에 담으며 열심을 다한다. 나의 고향 서울, 아직도 빛바래지 않은 서울의 골목, 어린 시절 추억 속의 골목, 마음의 고향이다. 친근한 얼굴들, 그들이 엮는 온정과 사랑의 이야기를 영원히 남기고 싶다.”

 

그에게 골목은 고향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산업화 시기, 무작정 도시를 향하는 대열에 합류했던 부모를 둔 덕에 도시에서 나고 자라 고향이랄 게 없는, 그래서 언제나 뿌리 없이 부유하는, 거세된 존재라고 스스로 여기는 내게, 이 사진은 네게도 고향이 있다고, 돌아갈 곳이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그리고, 김기찬을 비롯한 누군가의 고향이자 동시에 내 고향이기도 한 그 골목들을 단지 사진 안에 박제해 두고 자위하듯 만족할 것이 아니라, 여전히 불고 있는 재개발의 광풍 속에서 온존할 수 있도록, 가면놀이 같은 도시 속 회색 삶에 지친 이들이 돌아갈 어미의 품으로 남아있을 수 있도록 지켜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끔 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사진은 어떤 사회과학 서적보다 ‘빨갛다’.

 

이 책의 서문을 쓴 사진가 한정식은 오히려 거꾸로 얘기한다. 김기찬은 “사회의 모순이나 부조리에 저항하고 이를 고발하는 비판적 다큐멘터리 작가가 아니었”으며 “어디까지나 따뜻한 마음과 정겨운 시선으로 이웃을 감싸 안는 휴머니스트였다”고. 또 “김기찬은 운동권 인물도 아니었고, 프롤레타리아 사상가도 아니었”으며 “그저 이웃집 아저씨처럼 평범한 소시민이었다”고. “그리고 온 마음을 다 기울여 골목안 사람들을 미소로 감싼, 따뜻한 사진가일 뿐이었다”고, 그를 계속 ‘비판적 다큐멘터리 작가’와 의식적으로 구분짓고 휴머니즘을 저항정신과 선 긋는다.

 

하지만 나는, 그의 사진을 처음 봤던 2005년에도, 다시 보고 있는 2011년의 지금에도, 여전히 같은 의문이 든다. 그의 사진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골목안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운 좋은 몇몇은 인근 재개발 아파트로 들어가기도 했겠지만, 다른 나머지 사람들은 막개발의 삽질에 밀리고 밀려 이제는 “서로를 아끼는 훈훈한 인정”도 없는 그늘에 숨겨져 “끈질긴 삶의 집착과 미래를 향한 꿈”도 없이 도시에 대한 원망과 증오만 가득 품은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물음표를 내게 던지는 것은 물론 그의 사진들이다.

 

그래서 나는 김기찬을 단지 ‘따뜻한 사진가’의 틀로 한정하려는 시각이 몹시 답답하고 불편하다. 이 시대와 이 사회가 지우려는 것, 가리려는 것, 시도 때도 없이 집어삼키려는 것, 갈아엎으려는 것, 그러기 위해 낡고 더럽고 가난하고 불행한 공간이라고 덧씌우고 끊임없이 부정하는 그 ‘골목’을 이토록 아름다운 곳으로, 따듯한 곳으로, 가고 싶은 곳으로 그려내는, 그래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곳을 결국 지켜내고 싶게 만드는 그의 사진이야말로 저항적인 이미지가 아닌가. 이보다 더 혁명적인 언어가 어디있단 말인가. 

 

물론이다, 김기찬은 휴머니스트다. 휴머니스트이기 때문에 인간가치가 매순간 소외당하는 이 체제 속에서 그는 혁명가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인간다움과 인간다운 삶을 이야기하기 위해 크레인 위에서 263일을 지새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가.

 

오늘의 책을 리뷰한 '도공'님은?
가진 거 없이 가난해서, 한없이 가벼워서,  메인 데 없이 자유로워서 굶어죽기 딱 좋게 생겼지만 그래도 간만의 백수질이 몸서리치게 즐겁기만 한 '개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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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현의 얼굴> - 사진이란 이름의 기도

 

조세현, <조세현의 얼굴>, 앨리스, 2009


“여기 보세요! 하나, 둘…. 기분 안 좋은 일 있으세요? 좀 웃으세요. 김치! 하나, 둘, 셋!” “찰칵” 누구나 이런 기억 하나쯤은 있습니다. 너무 오래 웃고 있어 경직된 입꼬리,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어색한 브이(V). 생각해 보면 한 없이 촌스러운 포즈지만, 우리는 오래된 사진 한 장덕에 웃고, 그 시절을 추억합니다. 만약 인간의 기억이 무한하거나, 세상을 그리는 솜씨가 빼어나다면 사진은 그 의미가 반감했을 겁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인간은 그렇지 못하기에, 사진은 소중한 기억을 담습니다.

<조세현의 얼굴>은 인물사진 잘 찍기로 소문난 조세현 사진작가가 2009년 중국 시안의 여름을 담은 책입니다. 시안에서 만난 사람들은 작가를 향해 한없이 맑은 웃음을 짓습니다. 그들의 웃음을 보면 “거짓 없는 그들의 얼굴이 이방인의 마음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는다. 낯선 사람이 들이미는 카메라에 성내지 않고 웃어주는 그 얼굴이 고맙다.”(45쪽)는 작가의 마음을 함께 느낄 수 있습니다. 작가는 그 웃음에 매료됐는지 길, 시장, 버스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담습니다. 남루한 차림을 하고도 해맑은 표정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합니다.
 


( ‘야채 장수’, 사진 제공 앨리스)


사진은 ‘발견’입니다. 작가가 입을 빌자면 ‘사람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가장 짧은 시간은 1/16초’입니다. ‘그보다 더 빠르게 지나가는 찰나의 순간은 오직 사진을 통해서만 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사진기는 우리의 한계로 인해 일상적으로 사라져가는 표정들을 사로잡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게 하는 것. 발견이지요. 작가는, 사진기는 무심히 스쳐가는 이들의 표정을, 그들이 사는 이야기를, 오랜 시간 진시황릉을 지켜온 병사들의 생기를 발견합니다. 사진 한 장으로 이야기는 무궁무진해집니다. 

문득 이런 의문이 듭니다. 작가를 순식간에 스쳐가는 사람들의 표정을 어떻게 잡을 수 있을까. 사진기가 초를 잘게 쪼개 몹시 짧은 순간을 잡는다 해도 그건 쉬운 일이 아닐 텐데요. 답은 ‘사진은 사진기가 아닌 마음으로 찍는다’는 작가의 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는 사진을 찍기 전 먼저 마음을 열고, 그들과 친해지려 노력합니다. 그 속에서 누구도 알지 못했던 무언가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마음과 마음 사이에 오가는 따뜻한 기운들. 그는 그것을 사진기에 담습니다. 그에게 있어 사진의 또 다른 이름은, ‘기도’입니다.
 


(‘친구’, 사진 제공 앨리스)


먼 훗날 자신의 어린 시절이 담긴 사진으로
스스로의 세월을 돌아보며 행복해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들을 향해 셔터를 눌렀다.
키가 자라고 몸집이 커지면
저들의 마음에도 이루고 싶은 꿈이 생길 것이다.
그 꿈이 무엇이든
포기하지 말고 이루어 가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189쪽)

작가가 소개한 얼굴들을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납니다. 또 더 오래 보고 있으면 코끝이 시큰해지기도 합니다. 그중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닿은 사진 한 장을 고르라면, 오랜 고민 끝에, 시안의 외곽 마을 화련에서 찍은 ‘빨간벽돌 앞에서’를 꼽겠습니다. 은은한 달빛 아래서 그림자 연극에 푹 빠져버린 마을사람들. 나이도, 성별도, 직업도 상관없이 그들은 한 곳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한 곳을 바라본다는 것, 상상만으로도 행복한 일입니다. 사람의 온기, 순박함, 하나 됨을 느끼게 한 작가에게 ‘고맙다’는 말이라도 해야겠습니다.
 


(‘빨간벽돌 앞에서’ , 사진 제공 앨리스)


                                                                                               -반디(ak2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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