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해당되는 글 37건

  1. 2009.06.05 오지은, 그녀의 두 번째 이야기
  2. 2009.06.01 [들블] 사랑, 이별, 노력, 그리고 다시 이별
  3. 2009.05.22 천국보다 아름다운 - 사랑
  4. 2009.05.20 빨강머리 앤 - 빨강머리 앤 100주년 공식 기념판 (2)
  5. 2009.05.13 물과 돌의 기억들 - 사랑으로 복원한 오만년의 기억들
  6. 2009.05.07 어루만지다: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
  7. 2009.04.17 고양이는 과학적으로 사랑을 한다-사랑과 과학의 신비한 조합

오지은, 그녀의 두 번째 이야기

 

오지은, "지은[2집]", Mnet Media, 2009

오지은에게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고백적 가사다. 자기 고백을 음악적 수단으로 사용할 때 그것이 단순한 감정적 배설이나 의미 없는 혼잣말을 넘어 음악으로 담을 수 있을 만큼의 공유의 가치를 가지려면 자기 것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평소에는 의식하지도 못 했던 생각이나 감정들을 똑바로 바라보는 용기와 섬세함, 그리고 거기서 노래로 엮어낼 만한 내용을 골라내는 냉정한 자기 인식과 똑똑함이 필요하다. 그가 지금 이만큼의 지지를 받는 이유는 인디를 찾는 미디어의 요구와 그의 만화 같은 데뷔 과정,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유행이라는 흐름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큰 원인은 당연히 그가 건져낸 자신의 얘기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에 대한 애정과 그것을 채워줄 사랑에 대한 제어하지 못 할 만큼의 강렬한 욕구는 젊음, 혹은 미성숙의 상징이다. 그의 사랑 노래가 유난히 저릿하게 닿는 이유는 그 감정에 대한 섬세한 탐색을 통해 사랑에 관한 욕망과 고통을 깊게 훑고 있어서다. 그는 자신 안에서 누구나 경험하지만 부정되고 묻히는 어두운 사랑을 꺼냈다. “너를 갈아먹고” 싶고 “자빠뜨리고” 싶을 정도로 강렬해서 사랑의 대상을 파괴할 정도의 욕망에는 섬짓한 광기가 서려있지만 사랑에 빠져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렴풋이나마 느꼈을 감정이다. 전에 없던 과격한 사랑의 표현은 단순히 나에게 상처를 줬으니 너를 차버리겠다는 식의 수동적이고 반사적으로 대상에 의존해 반응한 감정이 아니라 관계의 주도권을 스스로 쥐고 상대를 욕망의 대상으로 삼는 이전까지 한국 대중음악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여성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오지은에 대한 지지는 그가 내보이는 욕망이 그만의 것이 아님을 증명한다. 물론 이 욕망은 남성에게도 유효하며 그래서 그의 욕망은 좀 더 넓은 공감대를 만든다.
 
관계의 가장 격렬한 부딪힘인 사랑에 대한 탐색은 곧 자아에 대한 탐색이다. 적극적 태도는 단순히 타인과의 관계인 사랑에 그치지 않는다. 그가 사랑의 욕망을 주도적으로 만들 수 있는 이유는 ‘인생론’에서 드러나는 것 같은 담백하고 긍정적인 인생관이다. 앨범 안에서 그는 이 태도를 통해 자신의 어두운 면을 감싸 스스로를 치유하는 감정의 드라마를 구성한다. 다양한 감정으로 꽉 짜인 그의 드라마는 곧 듣는 이의 드라마가 되고 감상자는 그와 함께 자아 탐색의 감정적 카타르시스를 공유한다.
 
2집은 영역을 넓히기보다 눌렀던 음악적 욕구를 터뜨리는 앨범이다. 담아내는 정서는 1집과 같지만 제작 여건상 불가피했던 소박한 구성은 많은 게스트를 동원하는 화려함으로 바뀌었다. 한편 사랑의 파괴적 욕망과 집착으로 인한 불안, 일상에서의 갑작스런 고독과 같은 정서는 유지되지만 말랑하고 따뜻한 정서를 추가하거나 좀 더 감정 그 자체로 집중하는 내용의 변화를 보이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전작의 특장점이었던 간결함을 통한 감정의 날은 좀 다른 방식이 되었는데 이언과 전자양의 편곡이나 용린의 기타 사운드 같은 게스트 뮤지션의 활용이 이 표현의 확장을 담당한다.
 
2집의 내용은 전작의 성향과 지명도 있는 레이블과의 결합을 고려했을 때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지금처럼 화려한 주목을 받는 이유는 모두가 예상한 그 범위를 뛰어넘어 생각 이상의 노련한 음악을 들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그만의 강렬한 감정의 표현과 그 감정의 극과 극을 오가는 다양성, 자의식과 대중적 소통 사이의 적절한 균형 감각이 있다. 같은 맥락 안에서 표현의 범위를 넓히고 완성도를 다듬은 새 앨범은 전작과의 연관 관계 속에서 감춰진 본색을 드러냈다는 인상을 만든다. 그리고 예상을 뛰어넘는 구성 능력은 그에게 좀 더 후한 점수를 받도록 했다. 가능성 있는 신인의 성공적인 두 번째 앨범은 앞으로의 행보를 주목하게 하는 법이다. 새 앨범을 통해 오지은은 화려한 주목을 받으며 대중과 비평 양쪽에서 자신의 영역을 확실히 굳히고 있다.

오늘의 음반을 리뷰한 '이고' 님은?
한때 풍운의 꿈을 안고 음악 업계에 도전했으나 좌절 후 낙향하여 칩거생활 중. 좌절 때문에 그런 건 아니지만, 그냥, 어쩌다보니. 생활인으로서의 예술가보다는 그들을 숭배와 질투의 대상으로 여기며 살며, 글이 쿨하게 써져 있지 못한 것은 그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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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블] 사랑, 이별, 노력, 그리고 다시 이별

안녕하세요. DJ 반디입니다. 화창한 6월 첫날입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 새로운 달을 알리는 것 같은 오늘, 여러분은 어떤 아침을 맞으셨는지요. 참 힘든 5월이었습니다. 잊을 것은 잊고, 기억할 것은 가슴에 영원히 담아 밝은 미래를 준비하는 6월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들으실 곡은 김광진 3집 "It's me"에 있는 ‘편지’입니다. 새로운 달의 첫날, 화창한 날씨에 어울리는 밝은 노래를 고르려고 했으나, 마음속에 잊지 못한 것이 아직 남아 있나봅니다. 주말 내내 이 노래를 흥얼거리다 결국 여러분과 함께 듣고 싶어 올립니다. 김광진이야 워낙 유명한 뮤지션으로 따로 설명을 드리지는 않겠습니다. 유능한 펀드 매니저라고 하는데, 저는 그가 노래할 때가 가장 멋집니다.

‘편지’
또한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시는 곡입니다. 아름다운 바이올린과 피아노 연주, 부드러운 선율. 그리고 듣는 이의 마음을 훤히 보는 듯한 애절한 가사가 인상적입니다. “여기까지가 끝인가보오 / 이제 나는 돌아서겠소.. / 억지 노력으로 인연을 거슬러 / 괴롭히지는 않겠소..” 누구나 뜨거운 사랑을 한 사람이라면 이 가사에 가슴을 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잊지 못한 이에 대한 그리움은 남아있으나 더 그릴 수 없는 슬픔. 참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잊겠습니다. 그래야 그 사람과 함께 보낸 시간, 잊으려고 노력한 시간이 보람 있지 않겠습니까.

 아래 '음악 들으러 가기'를 클릭하시면 들리는 곡이 ‘편지’입니다. 아침부터 너무 감상에 젖게 만든 건 아닌지 걱정이 좀 되네요. 하지만 생애 가장 아름다웠던 기억을 떠올리며 하루, 달을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네요. ‘편지’는 반디앤루니스 네이버 블로그(http://blog.naver.com/bandinbook)에 올립니다. 오늘,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음악 들으러 가기]

*음악 신청은 반디앤루니스 네이버 블로그((http://blog.naver.com/bandinbook) -> 메모 -> 들리는 블로그에서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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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보다 아름다운 - 사랑


 리처드 매드슨, <천국보다 아름다운>, 노블마인, 2009

오래 전에 보았던 아름다운 그림 같았던 영화 한편을 기억한다. 로빈 윌리엄스 주연의 영화 <천국보다 아름다운>이 바로 그 작품이다. 유채화로 화폭을 그려 놓은 듯 수놓아진 천국의 화려한 모습과 환상적인 영상들이 감동적인 러브스토리와 더불어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이 작품을 아직까지도 기억한다. '아 저곳이 천국이구나! 천국보다 아름다운 사랑이 바로 저런 것이구나' 하고 가슴속 깊이 느낄 수 있었던... 아카데미 시각효과상을 받기도 했던 그 아름다웠던 영화의 원작을 이제서 만나게 된다. 그때는 미처 몰랐던 이름 리처드 매드슨이라는 이름과 함께...

지금에서야 리처드 매드슨이라는 이름이 낯설지가 않다. 개인적으로 스티븐 킹의 작품으로 잘못알고 있었던 <나는 전설이다>라는 작품을 통해서 그 이름을 처음 만났고, 지난 가을 즈음 <시간 여행자의 사랑>이라는 독특한 설정을 소재로 한 작품을 통해서 그 이름을 가슴속에 선명히 새겨놓았다. 사실 로빈 윌리엄스의 저 영화 원작이 이 작품이었다는 사실을 책을 집어 들고서야 알 수 있었다. 영화를 만났던 당시의 정말 화려하고 환상적인 영상과 감동적인 스토리에 마음을 빼앗겼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한데 원작자가 누구였을까 하고 왜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을까? 어찌됐건 <천국보다 아름다운>은 활자를 통해 그 화려한 영상까지 떠올릴 수 있어 더욱 매력적인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앤, 상관없어. 당신이 없는 천국은 천국도 아니야.' '이 지옥을 우리의 천국으로 만들면 돼.'

삶과 사랑, 천국보다 아름다운 이야기 

<천국보다 아름다운>은 그 제목부터 너무 예쁘다. 사랑이 바로 그렇다는 말이다. 로버트 닐슨은 어느 날 자신이 영매라고 소개하는 한 사람에게 원고 꾸러미는 받게 된다. 그 원고 속에는 1년 전 죽은 자신의 동생, 크리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방송작가인 크리스는 어느 날 교통사고로 갑작스런 죽음을 맞게 된다.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가족들 주변을 떠돌지만 결국 서머랜드로 떠나게 된다. 그곳에서 사촌형인 앨버트를 만나고 차츰 그곳에 적응해나가지만 예기치 못한 소식을 듣게 된다. 그의 아내 앤이 그의 죽음을 비관해 자살을 했고 지옥에 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크리스는 그녀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기꺼이 버리면서도 험난하고 거친 여정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결국에는 여러가지 난관을 뚫고 그녀는 만나게 되지만...

불륜과 이혼이라는 말이 일상생활 용어가 되어버린 듯한 요즘 같은 시대에 크리스와 앤이 보여주는 이런 숭고하고 순수한 사랑은 너무나 커다란 감동으로 다가온다. 사랑만큼 흔한 말도 없지만 사랑이란 말처럼 가슴을 따스하게 만들고 감동적인 말 또한 없다. 크리스가 보여준 죽음도 갈라놓지 못한 사랑과 희생은 어둠속에 반작이는 별빛처럼 그렇게 밝게 빛나고 있다. 지옥도 갈라놓을 수 없는 사랑, 사랑하는 이가 없다면 그곳이 천국이라도 천국일 수 없다는 크리스의 말이 가슴을 찡하게 울린다.

'죽는 것은 잠드는 것. 잠이 들면 꿈을 꾸겠지. 육체의 짐을 벗었을 때 이 죽음의 잠 속에서 어떤 꿈을 꾸게 될까 두렵구나.' (<햄릿> 3막 1장)



<천국보다 아름다운>은 죽음의 세계가 어떤 모습인지 우리에게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영화 <사랑과 죽음>이 우리 삶 근처에 있는 사후세계를 보여주었다면 그 세계를 넘어 지옥의 하위세계와 서머랜드와 같은 천상의 세계를 자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리처드 매드슨이 그려낸 죽음의 세계, 천당과 지옥을 통해서 죽음에 대한 대비가 아닌 지금의 삶에 충실한 현세의 삶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느끼게 된다. '영원히 살 것처럼 꿈꾸고,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 사랑하라' 라는 말처럼 오늘을 꿈꾸고 오늘을 사랑하라고 그는 말하고 있는 듯 보인다.

'진정한 삶은 무엇이 되어가는 과정이야. 죽음은 이 과정에서 하나의 단계에 불과해. 삶을 뒤따르는 건 끝이 아니야. 존재의 영속성만 있을 뿐이야' 라고 말하는 크리스의 마지막 말이 가슴속에 남는다. 이 말속에서 삶이 가지는 의미를 새롭게 음미하게 된다. 죽음이 끝이 아니며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마음이 아닌 '오늘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해 일하고 사랑하고 행복하라'라는 가르침이 이 말속에 녹아있다. 영화 속에서 느꼈던 감동과 책이 전해주는 더 환상적이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가 가슴을 설레게 한다. 죽음도 갈라놓지 못한 감동적이고 고귀한 사랑이야기에 저절로 고개가 숙연해진다. 죽음이 아닌 삶을 이야기하는 '천국보다 아름다운' 사랑이라는 색다른 감동과 마주하게 된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반토막’님은

들고 있으면 팔이 아프고 내려놓으면 마음이 아팠던 시절, 그렇게 전 반토막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삶을 사랑을 한토막으로 채워가기 위해 노력하는 '한토막 바라기' 랍니다. 한토막으로 채워가기 위해 끊임없이 책을 사랑합니다. 책은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힘들고 지친 삶을 이끌어가는 지지대가 되어줍니다. 더불어 즐거운 재미와 행복을 선물해주죠. 어린 시절의 '세발자전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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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머리 앤 - 빨강머리 앤 100주년 공식 기념판

루시M.몽고메리, <빨강머리 앤>, 세종서적, 2008


얼마 만에 앤을 다시 만난 것일까? 언제 앤을 만나기는 했었던가?


어린 시절, 내 기억과 추억의 일정부분은 앤과 함께한 시간들로 채워져 있다. 그 당시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어떤 공상을 나누었는지 이제는 기억조차 가물거리지만 앤을 떠올리면 언제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생각만 해도 기분 좋은 친구, 알고 지내는 것만으로도 마음 든든해지는 앤은 그런 친구다.

지난 해 10월, 앤이 다시 우리들 곁으로 돌아왔다.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빨강머리 앤>이 재출간된 것이다. 이 책은 앤 시리즈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로 앤이 커스버트 남매를 만나는 순간부터 교사가 되기까지의 성장 기록을 담고 있다. 묵직한 책의 두께와는 상관없이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경쾌한 운율이 살아난다. 그 옛날처럼 앤의 발랄함에 두 눈과 손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난 앤은 여전히 나를 설레게 한다.

행복을 전하는 특별한 소녀

때로는 원치 않는 인연도 받아들여야 할 때가 있다. 삭막한 고아원에서 벗어나 초록색 지붕 집으로 앤의 삶이 옮겨지던 날. 매슈 커스버트와 마릴라 커스버트 남매가 입양을 원한 건 앤과 같은 ‘여자 아이’가 아니라 일을 도와 줄 ‘남자 아이’였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열한 살, 그리 길지 않은 인생을 살아오는 동안 쉬운 게 하나도 없었던 앤 셜리. 온 몸에 실수를 장전하고 과도하게 감정을 남발한다. 때로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상상의 세계에 빠져 허우적대기도 한다. 이런 앤에게도 타인을 사로잡을 만한 특별한 매력이 있다. 정교하게 닫혀있던 마릴라의 마음을 열게 만든 이 필살기는 차차 소개하기로 하겠다. 원치 않는 인연도 ‘인연’인 법. 다소 불편한 이들의 동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앤이 이렇게 수다스러웠었나? 분명 책을 읽고 있는데도 바로 옆에서 조잘대는 것처럼 귀가 윙윙 거린다. 잠시 고개를 갸웃하다 이내 마음을 놓는다. 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무던하던 마음이 싱숭생숭 설레기 시작한다. 조금 더 파릇하고, 조금 더 경쾌하고, 조금 더 자연스러운 세상을 볼 줄 아는 앤. 쉽게 눈에 띄지 않는 미세한 부분에도 앤의 눈이 가닿으면 어김없이 생동감이 흘러넘친다. 모난 구석이라곤 없다. 두려움도 없고, 상상에도 끝이 없다. 앤에게 이 세상은, 오늘은, 환희 그 자체인 것이다. 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어느 순간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가 있다. 그래도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된다면 당신도 이미 ‘앤의 폐인’ 일지 모른다.

빼빼 마른 몸에 도드라진 주근깨, 무엇보다 눈에 띄는 빨강머리는 ‘앤’을 무심코 지나칠 수 없게 만든다. 여기에 타고난 이야기꾼 기질까지 선보이는 앤. 한 번 이야기를 시작하면 끝이 없다. 앤의 풍부한 상상력은 과연 어디에서 생겨난 것일까. 이미 서너 살 때부터 힘든 일을 겪어왔던 앤은 공상을 통해 모진 상황들을 이겨내곤 했다. 아무리 고되고 힘들어도 상상 속에서라면 행복한 아이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준 것은 초록색 지붕 집을 둘러싼 캐번디시의 수려한 자연 경관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치 그림 속 풍경처럼 아름답게 자리한 고즈넉한 시골 마을. 앤은 숲 속 작은 동물들을 바라보며 꽃과 나무 사이를 거닐곤 했다. 그러는 동안 마음가득 상상이 차올라 감수성은 한없이 풍부해졌으리라. 앤은 보이는 모든 것에 가장 어울릴만한 이름을 새롭게 지어주기도 한다. 이것 역시 뛰어난 상상력의 산물인 셈이다.

대책 없는 긍정, 맑고 밝은 기운

앤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가끔 대책 없을 정도로 ‘긍정’적이라는 데 있다. 원망과 고통이 생길 법한 자리를 앤은 온통 긍정으로 무장한다. 그 맑고 밝은 기운 때문일까. 누구라도 앤을 만나면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가녀린 몸의 작은 아이 한 명이 어른의 마음까지 다독여주다니 그 재주 한 번 놀랍다! 앤의 하루는 진실하고, 절실하며, 축복으로 가득하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앤 스스로가 그런 날들로 만들어 버린다. 그녀가 발산하는 해피 바이러스를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냈을지, 앞으로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꿈을 간직하며 살아가게 될 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수줍음 많지만 극진한 사랑을 보여준 매슈 커스버트, 앤이 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늘 노심초사하며 감정을 절제했던 마릴라 커스버트에게 ‘앤’을 사랑스런 아이로 키워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다이애나와의 추억, 길버트와의 아련한 기억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 중 하나다.

누구나 저마다의 마음 어디쯤 품고 있을 고향, 영원히 변치 않기를 바라는 그 낙원 같은 고향이 <빨강머리 앤>을 펼치면 어김없이 나타난다. 지치고 힘들 때 어디서든 어깨를 내어주는 단짝 친구처럼 앤도 한결같은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누구보다 희망차게 삶을 살아내는 경쾌하고 명민한 작은 아이 한 명이 늘 우리를 반겨주는 책. <빨강머리 앤>이 100년이 넘도록 사랑 받아온 비결은 루시M. 몽고메리가 그리고자 했던 세상이 앤을 통해 많은 이들의 마음에 가닿았기 때문일 것이다. 꿈 사랑 희망을 노래하며 상처를 치유해주는 <빨강머리 앤>은 앞으로도 영원히 기억에 남을 명작중의 명작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soulnote'님은?

다독보다는 정독의 묘미를 즐길 줄 아는 진정한 슬로 리더(slow reader). 문예창작학을 전공하고 카피라이터로 활동하다, 전업독서가로 전향 후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soulnote라는 닉네임처럼 영혼의 진실한 언어로 인생의 페이지들을 차곡차곡 채워나가는 것이 목표. 현재, 생활의 일부이자 전부인 독서와 서평쓰기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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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돌의 기억들 - 사랑으로 복원한 오만년의 기억들


현고진, <물과 돌의 기억들>, 포럼, 2009


사랑으로 복원한 오만년의 기억들


성경 <전도서>의 저자는 ‘해 아래 새것이 없다’고 말한다. 이 말은 무슨 뜻일까? 문명은 역사 속에서 새로운 제도를 만들었고, 새로운 기계를 발명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인간은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고, 그 끝은 상상할 수 없다. 멀게는 우주로 가깝게는 인간의 육체로, 거시와 미시를 넘나드는 인간의 능력은 화려하고 그 자체로 경이로울 뿐이다.

그럼에도 ‘해 아래 새것이 없다’라는 성경의 선언은 곱씹어 볼수록 의미롭다. 길가에 놓인 흔하디 흔한 돌 하나, 소리 없이 강폭을 따라 흐르는 물줄기는 소위 인간의 역사나 인간 자신보다는 오래되었음이 분명하다. 발길에 채이는 돌은 너무나 흔하여 아무도 관심 갖지 않고, 무시해 버릴만한 존재이지만 그 존재가 갖고 있는 시간의 역사와 무게란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을 것인가? 저 돌은 모진 시간들을 인고하여, 오늘 저 길에 놓여 있다. 그 존재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시간의 폭과 영역을 훨씬 넘었고, 넘어설 것이다.

인간이 자랑 삼아왔던 문명이란 저 돌과 물로 이루어진 지구라는 터전이 없었다면 감히 존재나 할 수나 있었을까?  만물의 영장이란 화려한 자화자찬으로 이 행성을 지배하여 왔다고 생각한 인간은 오직 개발과 발전만이 유일한 선이란 착각으로 물과 돌의 겸손함은 알지도 못한 체, 무지한 삽질만 계속하려 한다. 21세기, 대한민국 이 땅에서 벌어지는 4대강 정비사업, 대운하 프로젝트 등이 자연의 엄숙함과 겸손함을 잊은 오만한 삽질의 대표주자다. 

그들의 리드미컬한 삶

현고진 장편 <물과 돌의 기억들>은 5만년 전 원시 구석기인들의 삶을 리드미컬하게 복원하고 있는 소설이다. 이 소설의 기록은 그대로 인류가 걸었던 발자국이고, 유전자가 저장하고 있는 원형질의 기억이다. 인류는 오랜 시간 무수한 발견을 이룩해냈다. 진보는 발견 속에서 나왔고, 그걸 통해 인류는 보다 나은 삶을 향해 전진 할 수 있었다. 사랑의 발견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라는 감정이야말로 5만년 전 구석기인과 현대인이 함께 공유하고 있는 공통된 생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 소설 속 등장 인물들은 그 사랑의 원시적인 형태를 여러 갈래로 보여주고 있다. ‘주름살’은 실연을 당한다. 그가 집단에서 종적을 감춘 것은 곧 실연의 고통이 죽음을 앞선다는 것을 의미한다. 좋아했던 ‘여우비’란 당사자에게 직접적으로 거부의 응답을 받은 그는 더 이상 살아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던 것. 집단을 벗어난다는 것은 곧 죽음과 같다. ‘여우비’의 ‘독뱀’에 대한 사랑은 권력지향적인 사랑이다. 잔인한 성정의 독뱀을 사랑하고, 그의 자식을 낳고자 하는 여우비의 욕망은 권력욕을 교묘하게 사랑으로 포장시킨다. 문명의 역사에서 여우비에 비견될만한 권력욕을 지닌 여인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서사의 중심축은 물보라를 사이에 둔 ‘하늘바람’과 ‘푸른지네’의 관계다. 이미 하늘바람의 아내가 되어서 그의 아이까지 두고 있는 물보라를 사랑하고 있는 푸른지네는 복합적인 사랑의 형태를 보여준다. 집단과 집단의 리더인 하늘바람과 푸른지네의 대립은 곧 연인 물보라에 대한 소유, 곧 사랑의 궁극적 쟁취를 목적으로 한다. 푸른지네는 지고지순한 사랑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연인이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갖고 있음에도 자신의 사랑을 포기하지 않고, 연인을 손에 넣으려는 그는 정적의 아이까지 보듬는 괴이한 형태를 보여준다. 푸른지네는 연인을 위해 목숨을 건 종족간의 싸움을 피하지 않는다.  

푸른지네였다. 그는 나뭇가지에 올가미를 매달아놓고 그 위에 걸터앉아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물보라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는 애원했다.
‘나를 하늘바람에게 보내 줘’
푸른지네는 올가미를 끌어올려 그의 목에 걸며 쓸쓸하게 말했다.
“나는 영혼이 없다. 네게 다 줘 버렸기 때문에, 네가 가면 나는 죽는다”
( p.144,  현고진 장편 <물과 돌의 기억들>)


그러나 지고지순함은 맹목성의 다른 이름이며 그 열정의 이면에 냉혹한 양날의 칼을 품고 있다. 그것은 사랑으로 미화된 폭력성이기도 하다. 집단의 리더가 한 여자를 위해 전쟁을 일으킨다면, 그것은 원시나 현대에서나 옳은 일은 아니다. 집단의 리더는 대의를 갖고 행동하고, 판단해야 한다. 푸른지네는 잘생겼고, 용맹하며, 건강하고, 남성미가 물씬 풍기지만 사랑하는 여인을 소유하지 못하는 한 그 모든 능력에도 불구하고 절름발이에 지나지 않은 삶을 살 것이다. 물보라를 소유하고 나서야 그가 아버지 독뱀으로부터 물려받은 잔혹성을 희석시키고, 종족의 지도자로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을 주지해야 한다. 푸른지네의 사랑은 목적지향적이고, 이기적이며, 맹목적인 야만성 때문에 결코 아름답지 않다. 

세상의 북쪽 끝을 꿈꾸는 하늘바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하늘바람’이다. 하늘바람은 이 소설의 주인공이지만, 개성이 특별하지 않은 인간이다. 그는 그다지 용맹하지도, 싸움을 잘하지도, 영특하지도, 잘 생기지도 않았다. 그는 스페셜리스트가 아니라 제너럴리스트 같은 인물이다. 어느 특정한 능력을 품고 있진 않지만, 다양한 영역에서 지도력을 발휘하고 인간적인 매력을 발산한다. 그는 사랑을 위해 목숨을 걸지만, 종족의 어른인 ‘구름호수’의 불호령에 대의를 살필 줄 아는 자기통제가 가능한 인물이다. 그는 ‘느린소’로 대표되는 원로의 지혜를 존중할 줄도 아는 인물이다. 그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탐험가의 기질이 있다. 그는 누구도 찾질 않는 ‘세상의 북쪽 끝’을 항상 궁금해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그가 작품 속에서 사랑의 완전한 한 형태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아내와 아이를 뺏긴 남자가 보여줄 행동이란 어느 시대건 몹시 단순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늘바람은 푸른지네와 행복하게 아이까지 낳고 살고 있는 물보라를 빼앗기 위한 술수를 부리지 않는다. 푸른지네와 피를 부를 수도 있는 싸움도 포기한다. 여기서 하늘바람의 포기는 겁쟁이의 비겁함이 아니다. 그것은 푸른지네의 맹목적인 목적지향적 사랑과 비교된다. 물보라에 대한 사랑, 자신의 아이에 대한 그리움, 푸른지네에 대한 증오, 이 모든 감정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고, 한발 물러서 한번 더 생각하고, 그들의 평화를 깨려 하지 않고, 뒤돌아 자신의 길을 떠날 줄 알았던 하늘바람의 사랑은 뭔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한 차원 더 높은 사랑의 모습이다. 이 사랑을 작가는 외롭고, 비참하지만 아름답다라고 썼다.

 하늘바람은 땅을 보고 걷는 주름살을 돌아보며 뜬금없는 물음을 툭 던졌다.
‘사랑이 뭔지 아나?’
주름살은 그를 힐끗 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늘바람도 더는 묻지 않았다. 그는 묵묵히 걸으며 자신의 물음을 곱씹고 있었다. 사랑은 외로울 수 있다. 사랑은 비참할 수 있다. 그러나 아름답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다. (p.235, 현고진 장편 <물과 돌의 기억들>)


소설 <물과 돌의 기억들>은 서사의 단순성이 보이며, 내용적인 측면의 흥미로운 요소가 산재해 있진 않다. 그러나 이 소설이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은 의미심장하다. 왜 사랑이 아름다워야 하는가? 왜 아름답지 않으면 사랑이 아닌가? 남녀간의 사랑이란 그렇게 아름답지 않은 경우가 허다한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 모두를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의, 당신의, 기억 속 사랑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 진정 그것은 아름다운 모습이었는가? 독자는 어떤 답을 하게 될까?

그러나 하늘바람이 보여주는 행동에는 남녀간의 사랑이란 단순한 감정을 훨씬 뛰어넘는 요소가 숨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의 사랑은 개인의 욕망을 뛰어넘고, 과거에 연연하지 않으며, 미래까지를 내다보고 있다. 그의 사랑이 아름다운 이유는 사랑을 단순히 한 인간의 욕망의 범주 내에 가둬두려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욕망이란 본능에 가깝지만 얼마나 많은 폐해를 불러오는가?

아름답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어야 한다

사랑이란 욕망의 또 다른 이름이다. 욕망이란 더 나쁜 의미의 탐욕으로 흐를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죄악은 탐욕에서 나온다. 브레이크가 없는 탐욕 때문에 개인이나 사회, 그리고 국가 모두 곤경에 처하기도 한다. 경제의 계급적 폭력성에 매몰된 신자유주의를 주도하던 미국의 몰락이나 前대통령 측근과 가족의 패가망신은 그 좋은 예이다. 탐욕에 물든 정치인, 경제인들이 넘쳐난다. 모든 것이 경제 제일주의로 흐르는 지금 이 땅의 자연은 훼손의 삽질을 기다리고 있다. 탐욕은 자기중심적인 욕망이다.

자기중심적인 욕망이란 인간의 본능을 극복할 수 있음으로써, 하늘바람은 덜 진화된 ‘오스트랄로 피테쿠스’라는 원숭이가 아니라, 진정한 인간인 ‘호모 사피엔스’였음을 스스로 증명해 보인다. 5만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 주위엔 ‘오스트랄로 피테쿠스’나 ‘크로마뇽인’의 마인드를 가진 이들이 널려 있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자신이 덜 진화된 원숭이에 가깝다는 사실을 모른다. ‘하늘바람’처럼, 현재와 미래 그리고 자아와 타자의 관계까지를 고려할 수 있는 그 넓은 성정을 우리는 사랑이라 부르자. 사랑을 단순히 자기 욕망의 충족행위로 해석하는 이들은 명심할 일이다. “아름답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어야 한다. 사랑은 호모 사피엔스가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개츠비'님은?

잡식성 책 읽기를 즐기는 30대중반의 직장인입니다. 좋은 책을 고르고, 좋은 책을 읽고, 좋은 리뷰를 쓰는 것은 제 삶에서 가장 중요한 소일거리 입니다. 그러나 그 소일거리 때문에 삶이 정말 행복합니다. 한 권의 양서는 바이러스와 같은 감염성이 있습니다. 단, 행복하고 기쁜 생각들을 사람에게 전파합니다. 책 읽기를 멈출 수 없는 것은 그것이 제 인생의 면역력을 높이고, 생의 다양성을 통해 인생의 아름다움을 선물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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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루만지다: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

 

 

고종석, <어루만지다>, 마음산책, 2009

살풋이 어루만지는 말들의 향연

살풋이(살포시의 북한말) 연인의 품에 안겨 거리를 걷던 시절이, 아직도 문득문득 피어오른다. 신촌과 혜화동의 밤거리를 우리는 뚜렷한 목적도 없이 쏘다녔다. 분식집에서 대충 허기를 채우고 아는 친구가 일한다는 칵테일 바에서 근사하게 술 한 잔 한 후, 초가을의 밤거리를 걸었다. 서로를 꼭 껴안고서. 안에서 차오르던 뜨거운 멍울은 온 몸을 휘젓고 다녔고, 이내 곧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술 때문이었는지, 다른 이유 때문이었는지. 주위 눈치 보지 않으며 스스럼도 없이 키스하고 서로의 몸을 어루만졌다. 방통대에 몰래 들어가 불 켜진 강의실을 뒤로 한 채 어둑한 벤치에 앉아 나누던 입술과 입술, 홍대 안으로 들어가 길을 걷고 계단을 오르며 느끼던 서로의 다정스럽던 눈짓 그리고 손짓. 짧은 사랑은 어처구니없게도 아직까지 내 머릿속에 또렷하게 각인되어 있다.

내 사랑은 실패한 혁명이었고, 되돌릴 수 없는 발걸음이었다. 일말의 오해와 소통 불가능 속에서 우리는 열정만으로 결실을 맺지 못한 채 짧은 사랑을 끝냈다. 한 번 떠나간 옷자락을 다시 잡을 수는 없었다. 차갑게 식어버린 열정은 내 주위를 청승맞게 떠돌아 다녔다. 그가 부르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아니, 부러 듣지 않으려고 애썼는지도 모른다. 나 자신에 대해 실망하고, 연인에 대해 실망하고, 실은 내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것이 허망하다고 느꼈다. 되돌아오지 않는 답장을 기다리다 끝내 길가에 주저앉아 버렸다. 말라버린 눈물을 닦지도 못한 채로 그냥 그렇게 굳어버린 사람 마냥. 그렇게 나는 첫사랑을 매조지었다.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휘감아 도는 별빛 같은 속삭임

고종석의 글은 스멀스멀 읽는 이에게 다가온다. 그러고는 몸과 마음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가열하게 휘감는다. 최근에 나온 고종석의 산문집 <어루만지다>를 두고 하는 얘기다. 마지막 쪽까지 정성들여 읽고 나니 내 몸과 마음은 이미 그의 글은 점령당한 후였다. 풍부한 언어학적 깊이와 남다른 감성 그리고 차분하고 은밀한 속삭임까지. 이 책은 읽는 이를 현실로부터 한 발짝 떨어뜨려 놓은 뒤, 온전하고 또렷하게 사랑의 밀어를 들려준다. 고종석은 역시 다르다. 그의 글은 일반적인 논설위원, 에세이스트와는 차원이 다르다. 언어, 말의 고수가 들려주는 사랑 이야기는 시종일관 읽는 이를 감싸 안는다. 로맨스와 에로스의 경계에서 맺어진 이 텍스트의 안감이 더 없이 포근하고 아늑하다면, 당신은 이미 그의 글에 감염된 것이다.

책은 사랑을 할 때 다가오는 거의 모든 것에 대해 다룬다. 사랑의 기슭인 입술, 은밀한 감추기, 교감의 메아리, 자유와 사랑을 오가는 그네, 꽃으로서 오롯이 빛나는 꽃값, 시샘하는 손톱, 꼼지락거리는 발가락, 애달픈 가냘픔, 온전함을 향한 켤레 그리고 사랑의 유토피아인 거품에 이르기까지. 이 책에서 다루는 글의 표제어는 모두 토박이말로 이루어졌다. 그래서일까. 우리 고유의 말들이 유난히도 착착 감긴다. 장을 넘기는 손가락에도, 글자를 따라가는 눈에도, 따라 불러보는 입술에도, 그 소리를 듣는 귓가에도. 때론 섹시하고, 때로는 순수하며 때로는 애달픈 사랑의 수없이 많은 느낌이 모국어 고수인 고종석에 의해 재해석된다. 얄팍한 연애서나 너무 진지하고 난해한 철학서에서는 좀처럼 느낄 수 없는 지성과 감성의 조화로운 교감. 그런 걸 완성할 수 있는 글이, 책이 있다면 아마 이 책 <어루만지다>가 일말의 해답이 될 수도 있겠다.

네 앞에는 무지개가 있어

고종석의 글은 끊임없이 상상력을 자극시킨다. 닫혀있던 머리와 가슴은 겨우내 잠들었다 막 깨어난 곰처럼 어기적거리다가 그네에 올라탄다. 발을 허공에 차면, 고운 선 따라 움직이며 또 다른 세계와 접속한다. 너머의 이룰 수 없는 희망과 몽상. 언제고 우리 앞에 다가올 것만 같은 무지개까지. 이룰 수 없어 슬프다고? 걱정하지 마시라. 그런 떠밀림이 있었기에 우리는 좀 더 한 발 나아갈 수 있었다. 작가도 말하고 있지 않은가.

무지개나 무지개 너머가 상징하는 이 희망들은, 흔히, 이룰 수 없는 희망들이다. 무지개 추적자는 몽상가다. 그러나 희망의 그 어기찬 추구에 떠밀려 세상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본문 104쪽, <무지개>중에서)

누구나 살면서 사랑한다. 보듬고 아끼고, 그 때문에 울고 웃는다. 한동안 굳게 닫혀있던 싸늘한 마음이 이 책을 읽고 나서 조금은 열렸다. 주위를 둘러보면 내가 어루만져야 할, 또 날 어루만질 인연은 너무나 많았다. 왜 그토록 타인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무심하게 굴었을까. 내 손은, 내 입술은 왜 그토록 묵묵부답이었던가.

길어봐야 백 년 안에 썩어문드러질 제 손을, 제 볼과 입술을, 그런 멋진 일에 써보자. 한 시인의 표현을 훔쳐오자면,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본문 236쪽, <어루만지다> 중에서)

사그라지는 별빛을 맞으며 주름진 피부의 신사가 어둑한 새벽길을 노닌다. 벼락같은 비 무덤의 습격으로 흠뻑 젖은 몸을 이끌어 가면서. 소리 질러도 메아리는 돌아오지 않는다. 아스팔트와 빌딩, 가로등, 희뿌연 공간은 대답하지 않는다. 가녀린 육체는 짝 잃은 신발처럼 슬프고 애잔하다. 그 때, 실바람이 그의 귓가를 간질인다. 그 속삭임이 한 잔 술처럼 그를 녹인다. 길고 하얗게 뿜어내는 긴 한숨처럼 이 외로움과 서러움 가실 날이 오겠지만. 바람이 말한다, 그의 주름진 살결에다 대고. “네 앞에는 무지개가 있어. 굳이 천둥 번개를 헤치며 나아갈 필요는 없어.” 그건 위로이고 배려였으며 열정 그 자체였다. 그가 바람을 어루만진다. 무지개 너머로 해는 떠오른다. 그의 사랑은 다시 시작될 수 있을까. 

서럽고 또 서러워 정처 없이 우니 주위는 어느새 바다가 되어 있었다. 이제 그는 차갑게 식은 열정을 다시 꺼내들어 차분하게 한 발 한 발 다시 내딛는다. 고종석의 <어루만지다>는 살갑게 건네는 주름진 사랑의 말들이다. 기꺼이 받아들어 눈을 다시 감으면, 누군가가 어루만지는 살결의 떨림이 느껴진다. 다시, 사랑의 시작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자크'님은?

책을 한 꺼풀 한 꺼풀, 벗겨낼 때마다 어두운 방안의 스탠드는 더 환하게 빛납니다. 이 작은 직사각형의 종이뭉치들이 있어 밤이 외롭지 않습니다. 마지막 장까지 다 읽고 나면 차오르는 환희는 두서없이 머릿속을 맴돌다, 몽클 문자라는 기호로 아주 살짝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글의 보드라운 안감이 파르르 떨리는 손끝에서 느껴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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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과학적으로 사랑을 한다-사랑과 과학의 신비한 조합

다케우치가오루외 , <고양이는 과학적으로 사랑을 한다>, 살림, 2008

 하나의 책이 두 가지 요소를 잘 믹스할 수 있을까? 가령 ‘사랑’과 ‘과학’ 같은. 왠지 안 어울릴 것 같은 조합이다. 사랑이라 하면 달달한 이야기가 펼쳐져야 할 것 같고, 과학이라 하면 왠지 딱딱한 이론서의 느낌이 든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두 가지를 제대로 믹스한 책이 나왔다. <고양이는 과학적으로 사랑을 한다>, 제목부터 심상찮다.

한 쪽 눈은 금색, 다른 쪽 눈은 진한 파란색을 띤 민트빛 고양이 한 마리가 책 위에 사뿐히 앉아 있는 표지도 인상적이다. 두 눈은 보는 이를 가만히 응시한다. 마치 어딘가로 읽는 이를 데려갈 심산인 듯 보인다. 뭐, 이렇게 매력적인 고양이가 안내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가보고 싶은 맘이 들기도 하는데…

어느 날 강가에서 찾은 한 여자 ‘샨린’과 사귀고 있는 물리학 전공자 ‘도오로’. 모든 문을 잠갔다고 생각한 어느 날 밤, 한 마리 고양이가 난데없이 그의 삶에 등장한다. 유일하게 열려 있던 것은 슈뢰딩거의 고양이 일러스트가 있던 책. 그리고 있어야 할 그림 속엔 고양이가 없다. 결국 그는 책 속에서 고양이가 나왔다고 받아들이게 된다.

슈뢰딩거 고양이. 양자론에 있어 절대적 수식인 슈뢰딩거 방정식을 고안한 슈뢰딩거가 했던 사고 실험에 등장하는 고양이다. 상자에 두 칸을 만들어놓고 한 쪽에는 고양이를, 한 쪽에는 분열하는 방사성 물질을 넣어둔다. 이 물질이 방사선에 의해 붕괴되면 독가스가 나와 고양이는 죽게 된다. 이 때 붕괴 확률은 50%. 즉, 상자를 열어 확인하지 않는 이상 고양이는 반은 살고, 반은 죽은 상태이다. 즉, 양자에 있어서도 이론만을 강조하는 것은 반 쪽짜리 사고방식일 뿐임을 설명한 이론이다.

어쨌거나. 마치 양자와도 같이 그들을 과거의 세계로 이끄는-그것도 현재의 시간 변화 없이-고양이와 함께 도오루와 샨린은 역사 속의 위대한 과학 장면과 마주치게 된다. 그렇다면 이 책은 과학사의 중요한 부분을 통해 그 이론을 설명하고자 한 책일까?

아니다. 단지 과학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뿐.

위대한 발명품 안티키테라의 기계 설계도, 위대한 일본 수학자의 봉납될 산액, 아인슈타인의 사라진 특수상대성이론의 자필 초고를 그들이 가져온다는 설정은 어디서 본 듯하지만 참신하다. 그 물건들이 지금 남아있지 않은 이유를 소설 속에 녹여내면서 ‘그럼 실제로는?’에 이르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것. 과거로 이끄는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이 책은 우리를 지식의 세계로 이끈다.

한편으론 과학 역사 속 유명한 인물들의 일화를 통해 호기심을 일으키기도 한다. 동물과 의사소통을 했다는 콘라드의 깃발 일화, 퀴리 부인의 스캔들, 갈릴레이와의 만남을 위한 모험까지. 이야기는 때로 과대망상적이고 허황돼 보이지만 그만큼 쉽고 재미있다.

무엇보다 술술 읽힌다. 누군가는 이 책을 인문서로 분류할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달콤하고 애틋한 사랑 이야기였다. 소설의 한 장면을 훔쳐온 듯한 결말과 소소하지만 현실적으로 가까워지는 두 사람의 일상. 이런 지루하지 않은 이야기 덕분에 그 안에 숨겨진 과학 이야기도 쉽게 내 마음을 건드렸던 게 아닐까 싶다.

흔히 과학이라고 하면 손부터 설레설레 내젓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을 그런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그저 샨린과 도오루의 일상에 빠져들다 보면 저도 모르게 그들을 따라 인터넷을 켜고 상대성 이론을 검색하는 스스로를 발견할지 모를 일이다. 아니, 굳이 그럴 필요까지도 없다. 이 책만으로도 어디 가서 과학에 대해 센스 있게 말할 한 마디쯤은 준비할 수 있을 테니까.

왠지 오늘 밤에는 똑똑한 고양이가 나오는 책 한 권쯤 베개 옆에 슬쩍 놓아두고 잠들어야 할 것 같다. 슈뢰딩거 고양이가 나오는 책이면 더 좋지 않을까.

오늘의 책을 리뷰한 '굼실이'님은?

항상 책을 끼고 사는 못 말리는 북홀릭 청춘.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책 읽고 글을 썼으면 하는 소원을 매년 빌고 있다. 글로 먹고사는 것을 최고 행복으로 치는 꿈 많은 책바보. 네이버 카페 '책을 좋아하는 사람' 외 활동 중. 2008 네이버 파워블로그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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