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해당되는 글 37건

  1. 2013.05.09 [詩로 물드는 오후] 최승자,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2. 2012.10.29 [서점에서 만난 사람] '사랑'으로 향하는 길 위의 안내자 - 정신과 의사 하지현
  3. 2011.03.14 [그리는 일기] 사랑이란? (2)
  4. 2011.02.01 <톨스토이 베스트 단편 걸작선>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5. 2011.01.10 [오지은과 늑대들] - 사랑과 연애
  6. 2010.12.15 <여자, 길을 걷다> - 사랑, 그것은 정말 불가항력인가?
  7. 2010.07.13 <아직도 가야할 길> - 길이란 이름의 축복 (4)
  8. 2009.12.16 <영원한 것은 없기에> - 단지 두 사람만으로, 사랑은 완성
  9. 2009.12.08 <좋은 이별> - 사랑의 다른 이름
  10. 2009.11.19 기억하고 싶은 건 사랑일 텐데 (2)

[詩로 물드는 오후] 최승자,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최승자 |《즐거운 일기》| 문학과지성사 | 1984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한 숟갈의 밥, 한 방울의 눈물로
무엇을 채울 것인가.
밥을 눈물에 말아먹는다 한들.

 

그대가 아무리 나를 사랑한다 해도
혹은 내가 아무리 그대를 사랑한다 해도
나는 오늘의 닭고기를 씹어야 하고
나는 오늘의 눈물을 삼켜야 한다.
그러므로 이젠 비유로써 말하지 말자
모든 것은 콘크리트처럼 구체적이고
모든 것은 콘크리트 벽이다
비유가 아니라 주먹이며
주먹의 바스라짐이 있을 뿐.

 

이제 이룰 수 없는 것을 또한 이루려 하지 말며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죽는 게 아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살아,
기다리는 것이다
다만 무참히 꺾여지기 위하여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내 몸을 분질러다오
내 팔과 다리를 꺾어

 

 



 




오.


이 절망을 어쩔까요. 원한 적 없이, 냅다 주어진 목숨이 아닙니까. 나는 말이죠. 오늘도 어김없이 살아요. 어제는……, 말하고 싶지가 않아요. 잘 말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요. 하지만 무엇이든 무엇으로든 말하긴 해야겠어요. 한 숟갈의 밥을 목구멍으로 또, 집어넣으며 나 홀로, 최초부터 이미 홀로인 그대로, 끼니때마다 이 몸을 배경으로 재상연 중인, 생(生)이라는 사태의 이 가혹한 몰골을. 그러니까 사랑은, 아무것도 아니었고 아무의 것도 될 수 없는 비유인 것으로, 그것은 그저 원초적인 결핍을 연거푸 들추고 착각과 망상에 근거한 상실에 젖게 할 뿐, 나  대신 밥을 먹어주지도 눈물을 삼키지도 못하는 무능력의 초능력자임을, 내 진작 알아 언제적부터 “이룰 수 없는 것을 또한 이루려 하지 말”아야 했던 것을 “이제”서야 “이제”라고 마음먹게 하는 무책임으로 말미암아, 그래도 살아, 이것이 지속하는 생이 장착한 고도의 트릭이었던고로, “다만 무참히 꺾여지기 위하여”만 나는 기다리고.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내 몸을 분질러다오” 마침내, 내 몸피에 갇힌 이 절망을 말하지 않고도 말할 수 있는 말로써, 팔과 다리가 꺾여 네 꽃병에 꽂힌 채로, 죽지 않고 살고 사랑함으로, 이 몸으로 절절히 절망을 체현해내도록. 그 정도는 나에게.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 (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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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만난 사람] '사랑'으로 향하는 길 위의 안내자 - 정신과 의사 하지현

 

편집·정리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희진
협조 | 푸른숲

 

But I could swear by your expression
That the pain down in your soul
Was the same as the one down in mine
That's the pain
Cuts a straight line
Down through the heart;
We called it love

 

너와 나의 영혼에는 상처가 있고, 그것이 서로 같다고 느낄 때, 그 상처를 우리는 사랑이라고 부른다…… 공감하시나요? 위 구절은 영화 ‘헤드윅’의 사운드 트랙인 ‘The origin of love’의 가사 일부입니다. 아마 이렇게, 혹은 어떤 식으로든 사랑을 시작하는 우리가 있습니다. 그 위에 덧입혀지는 시간과 기다림이 있고, 어긋남, 한 번 더 시간, 착각과 오해가 있습니다. 이러한 ‘있음’들은 점점 마음을 없게 합니다. 우리를 변하게 합니다. 그리고는 처음처럼 너와 나로 갈라지는 우리들. 사랑은 이대로 끝나는 걸까요?

 

《심야 치유 식당》을 쓴 하지현 선생님이라면 말할 겁니다. 그래도 다시 사랑하기에 결코 늦지 않았다고요. 새로운 책의 제목이기도 한데요. 《사랑하기에 결코 늦지 않았다》를 읽고, 하지현 선생님과 이야기 나눠 보았습니다. 대개의 사랑이 상처를 말하지만, 그 많은 상처를 다시 사랑이라고 부르자면 조언을 구해도 좋겠지요. 특히 이번에는 여러 독자 분들이 함께해주셨는데요. 너덜너덜한 마음들이 조금이나마 달래지기를 바랍니다.

 

에디터가 묻다!

 

반디 | 심리 에세이라고 하셨는데요. 그보다는 전직 정신과 의사 ‘철주’와 다른 등장인물의 이야기가 한데 얽혀 있는 소설에 가까워 보입니다. 그래서 부담 없이 읽게 되기도 했는데요. 이런 형식을 취하신 의도가 궁금합니다.

 

하지현 | 픽션이라는 형식이 얘기하고자 하는 주제에 몰입하게 하는 데 더 손쉬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을 쓰면서 소설가들을 존경하기로 했습니다. 소설의 형식적 완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너무나 허술한 면이 많으니까요. 소설가들이 이야기를 풀어갈 때 얼마나 힘이 들까 하는 생각이 쓰는 내내 들더군요.

 

반디 | 타인의 문제를 상담하고 해결의 실마리까지 제공하는 ‘철주’라도 정작 자신의 문제 앞에서는 서툴러 보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한계이기도 할 것 같은데요. 마지막에 ‘철주’는 옛사랑 ‘경은’을 만나러 갑니다. 이 대목에 숨은 뜻을 살짝 말씀해주신다면요?

 

하지현 | ‘심야치유식당’ 시리즈는 매 권에 특정한 주제가 있습니다. 첫 권이 ‘일과 열심히 사는 것’에 대해서 썼고, 둘째 권은 ‘사랑’에 대한 얘기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를 관통하는 전제는은 철주라는 한 정신과 의사의 성장과 변화입니다. 철주와 부모와의 관계, 그리고 철주의 사랑 등을 함께 읽어가는 것은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한 에피소드가 해결되지만, 그러면서 동시에 굵은 주제의 큰 호흡도 함께 가는 두 개의 트랙으로 움직인다고 이해하시면 좋겠습니다. 일종의 시즌제 드라마를 보는 것과 유사하다고 보시면 좋겠습니다.

 

반디 | ‘철주’의 취향을 보면 선생님도 문화예술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실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평소 어떤 책, 어떤 음악을 즐겨 찾으시는지 궁금한데요. 특히 사랑에 관한 한 ‘이 책만은 꼭!’ 혹은 ‘이 음반만은 꼭!’ 하고 추천 및 소개해주신다면요?

 

하지현 | 사랑에 관한 책이라면 켄 그림우드의 《다시 한 번 리플레이》라는 소설을 권하고 싶습니다. 시간 여행이라는 축을 가지고 한 사랑이야기는 여럿이 있는데요. 《시간 여행자의 아내》도 비슷한 소재의 소설입니다. 그 중에서도 이 책은 매우 박진감 넘치며 사랑과 인생의 유한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음악은 ‘Hedwig and Angryinch’의 ‘The origin of love’를 추천합니다. 원래 하나였던 인간이 둘로 쪼개졌기 때문에 결국 나머지 반쪽을 찾기를 간절히 원하게 되는데, 그게 사랑의 기원이라는 내용입니다. 영화에서 감명 깊게 본 장면인데 (유튜브에서 찾으면 영화의 한 장면과 애니메이션이 나옵니다), 알고 보니 플라톤이 한 이야기더군요.

 

 

 

반디 | ‘심야 치유 식당 2’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데요. 앞으로도 『사랑하기에 결코 늦지 않았다』 와 같은 책을 또 볼 수 있을까요? ‘심야 치유 식당’과 같은 집필 작업이 계속될지, 어떤 방식으로 독자들과 소통해나가실지, 차후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하지현 | 이 이야기는 철주의 변화, 그리고 성장과 함께 해 나갈 것입니다. 일단 다음 권까지는 기획이 되어 있고요. 아마 관계의 문제를 한 번 더 다루거나, 지나온 날을 돌아보면 후회를 하고 미련을 갖게 되는 내용을 주요한 주제로 다루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 철주의 첫사랑인 경은과 관계나 부모와의 갈등도 새로운 전개를 맞이하게 되겠지요.

 

반디 | 사랑에 관해, 책에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에필로그에서 “어른이 되려면 사랑을 해야 한다고.”(307쪽)라고 쓰고 계신데요. 많은 이들이 완전한 어른이라기보다는 어른이 되어가는 길목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는데요. 그런 사람들에게 한 마디 전해주세요.

 

하지현 | 내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가족이 아닌 남과 얼마나 가까이 지낼 수 있는지 실험해보는 것이며 동시에 너무 가까워지고 하나가 되고 싶은 욕망을 참고 나의 의존성을 인정하며 타인의 삶의 영역도 인정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 남과 님은 한 끗 차이지만 둘을 잘 구별할 줄 아는 것이 어른이 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자가 묻다!

 

독자 | ‘밀당’은 ‘밀고 당긴다’라는 말에서 생겨났는데요. 연인 관계에서 흔히 상대를 더 안달하게 만드는 쪽을 가리켜 ‘밀당하고 있네’ 혹은 ‘밀당하지 마’라고 말할 때 쓰이는 식입니다. 이런 ‘밀당’이 연애에 도움이 될까요? 선생님 생각이 궁금합니다.

 

하지현 | 제게 ‘밀당’은 ‘적절한 최적의 관계의 거리’를 알아보기 위한 노력으로 보입니다. 나와 상대 사이에 견딜 수 있는 최적의 거리라는 것이 있을 텐데 ‘밀당’은 서로에게 내가 원하는 거리란 이런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고, 또 그것에 대해 이해시키는 과정이라고 보면 어떨까요. 그런 면에서는 도움이 되는 과정입니다.

 

독자 |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장점이 많지만, 때때로 흠이 보이면 내 기준에서 지적을 하게 되고, 서로 마음이 상하곤 합니다. 이럴 땐 제 자신까지 싫어집니다. 상대방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하지현 | 지적질을 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너는 이래야 한다’가 아니라 ‘나는 이게 싫다’는 말은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 지적은 좋은 지적이지요. 내가 싫다고 말하는 것과 ‘너는 이래야 한다’라고 얘기하는 것은 다릅니다. 전자의 경우, 정말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을 해야겠지요. 아니면 최소한 하려는 노력은 보여야 하겠지요. 그러나 후자의 경우는 자존심이 상할 수 있습니다. 그 내용이 얼마나 옳든지 간에요. 그런 면에서 슬기롭고 지혜로운 지적이 필요한 것이지요.

 

독자 | 친구가 혼란에 빠졌습니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여자가 있는데 요즘 들어 자꾸 보고 싶다는 겁니다. 친구는 이 감정이 그저 착각 아닌가 싶어 고백을 주저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저까지 헷갈리는데요. 사랑과 우정, 어떻게 다른가요?

 

하지현 | 우정은 ‘섹스 없는 연애’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냥 좋은 관계에서 가슴이 콩콩 뛰고, 만나고 싶고, 어른거리고, 스킨십도 하고 싶은 그런 사람으로 상대가 보이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사랑에 가까운 감정으로 양질 전환된 게 아닐까요.

 

독자 | 얼마 전에 지인들과 언쟁을 벌였습니다. ‘사랑 없이도 연애를 할 수 있다’와 ‘사랑을 해야 연애도 가능하다’는 주장을 놓고 의견이 분분했는데요. 저는 이쪽도 맞고 저쪽도 맞는 것 같습니다. 이 문제에도 정답이 있을까요? 선생님은 어느 쪽이세요?

 

하지현 | 연애라는 말의 어휘의 정의를 볼 때 사랑 없는 연애라는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질문하신 분이 ‘사랑 없는 섹스’를 얘기하시는 것 아니었나 싶기는 합니다.

 

독자 | 연애 삼 년차입니다. 안정적인 관계에 나름 만족감을 느끼고 있는데요. 그 사람은 아니었나 봅니다. 권태기 같다는 말을 종종 꺼내네요. 농담이라도 어느 정도 속내가 담겨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철렁합니다. 권태기, 극복할 수 있을까요?

 

하지현 | 서로에게 너무 익숙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싫은 것도 참고, 적절한 거리를 두고, 좋은 게 좋은 것이 된 관계지요. 나쁜 것은 아닙니다. 된장찌개도 매일 먹다 보면 질릴 때가 있으니까요. 권태기 같다는 말을 한다는 것은 그 좋은 익숙한 면이 보이는 게 아니라, 익숙한 것인데 종종 참기 싫은 나쁜 면도 함께 관찰된다는 것을 말하거든요. 그러니 서로의 권태기를 극복하기 위해 최근 ‘마음에 안 들었던 것들’을 서로 말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지요. 그걸 통해서 몰랐던 상대의 솔직한 마음을 알 수 있게 될 것이고, 그 다음 변화의 과정을 가지면서 더 나은 각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상대가 내가 원하는 존재가 되지 못했다고 분노해서는 안 됩니다. 사실 나 자신도 내가 원하는 존재가 되기 어렵지 않나요. 사랑하는 그가 아니라 지금 사랑을 하고 있는 내가 좋기 때문에 사랑을 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지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건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심야 치유 식당》, 《하지현 박사의 소통 & 공감》, 《도시 심리학》, 《소통의 기술》, 《관계의 재구성》, 《당신의 속마음》, 《전래동화 속의 비밀 코드》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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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는 일기] 사랑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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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 베스트 단편 걸작선>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 | <톨스토이 베스트 단편 걸작선> | 동해출판 | 2008

 


애들한테는 수능이니 일제고사니 많은 시험을 보게 하면서 정작 어른들은 시험 보기를 매우 싫어한다. 어른들은 먹고 살기도 힘든 판에 시험은 무슨 시험이냐고 항변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반대로 시험을 보지 않기 때문에 먹고 살기가 힘들다고 하면 어떨까. 기꺼이 시험을 볼 것인가. 오늘 질문은 이것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많은 사람들은 돈을 떠올릴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 아니 돈 없으면 사람 대접 못 받는 사회에서 돈이 있어야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답이다. 돈이 있어야 생활을 유지할 수 있으니 맞는 말이지만, ‘산다’는 의미를 좀 더 깊게 생각하면 그건 틀린 말이다. 돈을 벌기 위해 나 아닌 나로 살고, 꿈꾸던 나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사는 것을 과연 산다고 할 수 있을까.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란 소설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사랑’이라고 답한다. 내용은 이렇다. 한 생명을 데려오라는 신의 명령을 거부한 천사는 지상 세계로 추락한다. 그 생명은 쌍둥이 자매의 어머니로 아비 없이 방금 출산을 마쳤다. 그녀는 아기들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만 살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신의 벌을 받은 천사는 지상에 머물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답을 찾으라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구두를 만드는 사람 집에 머물고 있던 그는 6년이 지난 어느 날 신의 질문에 답을 찾는다. 그것은 사랑. 곧 죽을 것 같았던 아기들이 소녀가 되어 구두를 맞추러 온 모습을 보면서 그들을 살린 마을 사람들의 따뜻한 사랑을 느낀다. 이것이 바로 사람을 사람으로 살게 하는 것이다.

사랑이 없는 삶은 어떨까. 단지 사랑이 없는 삶과 증오가 가득한 삶,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사랑이 없는 삶은 외롭다. ‘사랑이 있는 곳에는 신이 있다’는 한 늙은 구두직공의 이야기다. 그는 창문 하나 있는 지하방에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발만 보면서 산다. 아내도, 자식도 먼저 세상을 떠난 그는 그 어떤 희망도 갖고 있지 않다. 그저 지금껏 굴러 온  바닥 깊은 곳의 삶이 오늘도 빛없이 반복될 뿐이다. 자신이 맞을 시간도 그의 편이 되어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남은 것은 오로지 외로움이다. 살고 싶은 마음이 없기에 그는 신께 빨기 죽기를 기도한다. 죽음을 기도하는 사람의 심정은 과연 어떨까. 노인은 순례자의 충고대로 성경을 읽고 사랑을 실천하고 그들의 얼굴에서 빛을 봄으로써 새로운 날을 맞는다.

증오가 가득한 삶은 더욱 심각하다. ‘불을 소홀히 하면 - 끄지 못하게 된다’에는 평범한 두 이웃집이 나온다. 어느 날 이 두 집은 싸움을 하게 되는데 그 기세가 만만치 않다. 욕과 폭언은 기본이고 주먹다짐도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또 상대방 집에 위해를 가하며 결국엔 법정 공방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종국에는 돌이킬 수 없는, 불을 끄지 못하는 상황까지 가고 만다. 대체 무슨 일이 이들을 못 살게 만들었을까. 그 처음은 매우 작은 일이었다. 이웃집에서 키우는 닭이 옆집에 가서 계란을 낳았는데 그게 사라지면서 갈등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돌이켜 보면 웃기는 일이다. 그깟 계란 하나가 뭐라고 이웃을 잃고 집을 잃고 자신도 잃는다는 말인가. 사랑은 없고 증오만 가득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내 마음 속에 품는 증오는 그만큼 무섭고 끔찍하다.

반대로 사랑의 힘은 위대하다. ‘촛불(혹은 선량한 농부가 나쁜 관리에게 어떻게 이겼는가 하는 이야기)’은 작고 약한 듯하나 강하고 단단한 사람의 마음을 무너뜨리는 이야기다. 한 관리인은 성격이 개떡 같아 농민들을 무척이나 괴롭혔다. 일은 일대로 많이 시켰으며 농민은 사람취급도 하지 않았다. 분노한 농민들은 뒤에서 욕을 하고 관리인을 죽여버릴까 모의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에 끼지 않고 그 관리인의 말에 순종하며 사랑으로 대한 한 농민이 있다. 다른 농민들의 반응에 콧방귀도 뀌지 않던 관리인은 결국 그 순박한 농민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 자신의 모든 추함이 그 앞에서 거울처럼 비춰졌기 때문이다. 사랑은 추함을 드러낸다. 사랑이 퍼지면 그 아무리 강해보이는 사람도 자신의 추함에 무릎을 꿇게 된다.

이 모든 게 ‘비현실적이고 낭만적인 소리’라고 불만을 제기할 수도 있다. 또 톨스토이를 추운 동네에 사는 구시대적 인물이라고 그냥 지나갈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사랑이 단지 좋아서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기 때문이라면 어떨까. 애들이 부모의 사랑보다 영어를 먼저 알고, 학교에 들어가는 순간 경쟁을 시작하고, 청년이 돼서는 한없는 자괴감에 빠져야 하는 이 세상에서 이 사랑마저 없으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살 수 있을까. 달콤한 고백이 아닌 절박한 심정으로 선택한 ‘생계형 사랑’이다. 톨스토이는 ‘왜?’ ‘신의 나라 인간의 나라’에서 처참한 러시아, 폴란드 인의 삶을 묘사한다. 인물들은 ‘왜’란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지만 답을 찾지 못하고, 결국 신의 사랑을 찾아 영혼의 평안을 맞게 된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랑. 톨스토이가 말하지 않아도,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 답을 이미 알고 있다. 굳이 성경을 얘기하지 않더라도 주위를 둘러봐도 그렇고, 책, 영화, 드라마 등 그 동안 셀 수 없이 봐 왔다. 다만 세상이 야박해지고, 누군가 서로 비교하고 경쟁하라고 부추겨 사랑을 나누기가 어려워질 뿐이다. 톨스토이는 이 단편집에서 끊임없이 사랑을 얘기한다. 노인네가 단기기억상실증이 있어서 그럴까. 아니다. 사랑이란 것이 꾸준히 말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어둠에 갇히기 쉬워 그런 것이다. 그렇다면 그 사랑을 언제부터 실천하면 좋을까. 따뜻한 봄이 오면? 이번 프로젝트가 끝나면? 애인이 생기면? 사랑에는 때가 없다. 때가 없다면 지금도 좋지 않을까. 톨스토이는 ‘두 노인’에서 한 노인의 입을 빌어 말한다.

“내 생각에는 말이지, 더 이상 뒤로 밀어서는 안 될 것 같아. 지금 당장 나서는 게 좋을 것 같아. 가장 좋을 때가 아닌가. 봄이.”

당장 나서는 지금이, 가장 좋은 때가, 봄이다.

 

-안늘(ak2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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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은과 늑대들] - 사랑과 연애

 

오지은과 늑대들, [오지은과 늑대들], HAPPY ROBOT RECORDS, 2010

 

 

사랑과 연애. 두 단어의 접합에 이상한 점은 없다. 서로 사랑에 빠지면 연애로 이어지게 마련이니까. 하지만 이 자연스러운 흐름을 일부러 단절시키며 얘기를 풀어가 보자. 오지은은 분명 앞선 두 앨범을 통해 사랑의 강자로 등극했다. 「華」의 “널 보고 있으면 널 갈아 먹고 싶어”와 「진공의 밤」의 “원할 때마다 자빠트리면 니가 버텨내질 못하고”는 여성 싱어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가장 강렬한 사랑의 언사였다. 이런 노래들이 음악 씬에서 오지은의 자리를 확고하게 해주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는 이런 노래들 덕에 얻은 홍대 마녀라는 별명이 자기 모습의 전부가 아니라고 말해왔다. 문득 두 번째 앨범에 들어있는 「웨딩송」이 이러한 증거로 채택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럼 이동해보자. 「웨딩송」을 전초 삼아 사랑에서 연애로 초점이 이동한다. 두 솔로 앨범에서 ‘오지은과 늑대들’로 이동한다. 자연스럽게 『오지은과 늑대들』 전반부를 채운 발랄한 연애담을 「웨딩송」의 확장판으로 볼 수 있을 터이다. 그런데 「웨딩송」의 막바지에 등장하는 “우리 둘이서 나일 먹으면 너무 예쁜 노부부가 될 거야.”에서 결정적으로 멈칫한다. 요상하게도 필자는 여기서 젊은 커플의 그렇고 그런 닭살 멘트를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끝장을 한 번 보자’는 살벌한 내면을 보고야 만다. 「華」와 「진공의 밤」과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와 「푸름」으로 둘러싸였던 두 번째 앨범까지는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다. 그녀가 두 앨범 곳곳에서 부른 아기자기한 포크송과 발랄한 팝송은 결코 일상을 시각적으로 순간포착해낸 것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사랑이 동반하는 거대한 등고선, 때로는 위협적으로 고양시키고 때로는 잔잔히 평정을 주기도 하는 전체적인 물결의 어느 특정 부분을 잠시 지목하고 있을 뿐이었다. 사랑을 하면 마녀가 되기도 하고 요정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사랑은 존재의 지배자였다.

그래서 『오지은과 늑대들』로의 이동은 단절을 일으킨다. 적어도 「사실은 뭐」까지의 경쾌한 록 넘버들 속에서 존재의 온갖 모습을 결정짓는 사랑의 거대한 포스는 잘 감지되지 않는다. “내게 비싼 선물을 사준대도 나는 너와 절대로 사귀지 않을래”라고 말하는 「사귀지 않을래」는 그냥 앞뒤 잴 것 없는 연애질의 시시콜콜한 단면 아닌가. 사랑은 연애를 포함하지만 연애는 사랑을 포함하지 않는다. 연애를 하면서 상대방을 죽일 수 있을까? 말도 안 된다. 돈이 많이 든다고 만날 푸념이나 늘어놓을 따름이다. 그러나 사랑은, 사랑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이 사랑의 전능하심을 옆으로 살짝 치워놓은 것이 바로 ‘오지은과 늑대들’이다. 물론 「Outdated Love Song」과「만약에 내가 혹시나」는 솔로 앨범 때의 묵직함으로 회귀한다. 갈등과 혼돈이 있고 절절한 내면의 폭풍이 있다. 그렇지만 대세는 역시 앞부분의 노래들이다. ‘오지은과 늑대들’이 돋보이는 건 이 앞부분의 노래들 때문이고, 이를 위해 늑대들을 대동한 게 사실이며, 오지은은 정말로 이런 걸 하고 싶었던 것일 게다. 그 결과 「마음맞이 대청소」 같은 겉과 속이 모두 담담하여 밋밋하게 들리는 이별 노래가 수록되기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오지은과 늑대들』은 매력적이다. 연애질을 묘사해내는 일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닌 까닭이다. 사랑의 마에스트로 오지은은 척척 해낸다. 4명의 남자와 4개의 악기로 만들어낸 사운드에 삐거덕거리는 순간은 없다. 오지은과 남자들이 골고루 나눠 쓴 곡들 중에 버릴 곡은 없다. 「뜨거운 마음」에서 “나중에 커다란 의자가 되고 나중에 커다란 소파가 되고 그 나중엔……”이라 에두르는 대목은 꽤 재치 있고 인상적이다. 김윤아의 안 좋은 모습을 답습한 듯 보였던 전작의 「푸름」보다 이런 생기발랄한 노래들이 더 괜찮을 수 있겠단 생각도 든다. 비음이 절묘하게 섞인 그녀의 맛있는 목소리는 연애담에 진실성을 부여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의 육체성이 여전히 중요하게 다뤄진다는 점에서 『오지은과 늑대들』로의 이동과 단절은 부분적이다. 그녀는 머리카락과 두 볼을 쓰다듬고 싶고, 목소리와 보조개를 기억하고, 장밋빛 입술을 갖고 싶어 몸이 달아오른다. 육체적인 것을 흠향하지 않는다면 그건 오지은이 아닐 것이다. 다시 홀로 있는 오지은으로 돌아오든 늑대들 시즌 2를 하든 GMF(Grand Mint Festival이라 쓰고는 BGMF: Background Music Festival이라 읽는다)의 관객들이(해피로봇 소속이니 올해에도 어김없이 무대에 설 것이다) 오지은표 사랑의 마성(魔性)에 조금이라도 습격받기를 바란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호떡바보님은?
흥미로운 직장과 알바와 각종 잡일을 하며 보낸 최근 10년 동안 음악에 관한 글도 꾸준히 써 온 두 딸내미의 아빠. 어려운 책과 졸린 영화와 재미있는 만화 보기를 좋아하는 정신연령 20대의 청년. 음악취향Y(http://cafe.naver.com.musicy)를 본거지 삼아 오늘도 여기저기 쏘다니고 있음.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이며 친구들과 '한국힙합-열정의 발자취'를 썼으며, 놀랍게도 철학책 3권에 관여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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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길을 걷다> - 사랑, 그것은 정말 불가항력인가?

 

야마모토 후미오, <여자, 길을 걷다>, 창해, 2008

 


여자에게 있어 아이는 자신과 불과분의 관계라는 것을 대부분의 엄마들은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한번쯤 아이만 없었다면 하고 가슴을 쓸어내리는 경우를 만나기도 한다. 그것이 사랑때문이었다면 책을 읽는 독자는 아이와 사랑 중 무엇을 선택할까, 자신의 사랑을 찾아 떠난 여자들은 행복했을까?

작가 야마모토 후미오는 여성에 관한 이야기를 써온 작가이다. 단편집 <슈거리스 러브>에서는 질병과 사랑을 대비시켜 내밀한 여성의 심리를 표현했다면 <여자, 길을 걷다>는 혈연으로 엮인 세 여자의 인생을 써내려 간 장편소설이다.  원제로 쓰인 낙화유수(落花流水)떨어지는 꽃은 물이 흐르는 대로 흐르기를 바라고 물은 떨어지는 꽃을 띄워 흐르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남녀가 서로 그리워함을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아름다운 자연에 비유한 사랑의 표현, 그러나 이 책은 결코 낙화유수의 아름다움이라 할 수 없다.

소설은 1967년을 시작으로 10년을 주기로 2027년까지 달라진 세 여자의 일상을 담아내고 있다. 각 장마다 화자가 달라진다. 그 일상은 일반 독자가 이해하기에 너무 큰 벽이 있다. 그 시간의 흐름따라 자연스럽게 달라지는 사랑과 삶의 풍속도가 그려진다. 아먀모투 후미오 특유의 독소와 부드러움을 만나는 것은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즐거운 일이다. 갑갑하고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탈구로 사랑을 선택한 과거의 여자가 있었다면 미래의 어느 날엔 그 일상의 일탈을 꿈꾸는 자리에는 남자도 등장한다.

첫 번째 여자

“흐음, 원래 업(業)은 돌고 도는 법이지.” (287쪽)

업의 첫 매듭을 만든 리쓰코는 그렇게 매듭을 풀려고 한다.  어린 나이에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았지만 불완전한 사랑은 또 다른 업을 만들고 만다. 리쓰코가 낳은 데마리는 외할머니 손에서 자라 7살 어린 나이에 자신의 언니가 자신의 생모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결혼에 목숨 거는 리쓰코는 새로운 결혼으로 안정을 찾고 시간이 흘러 데마리가 임신을 한 채 결혼하려는 날, 모두를 버리고 자신의 사랑을 찾아 집을 나선다.

두 번째 여자

리스코가 떠나고 남은 양부와 이복동생과 남편 그리고 자신의 딸 히메노, 데마리는 그렇게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가슴 속 첫사랑인 마틸을 만나기 전까지 모든게 평화로와 보인다. 자신을 잊지못하고 함께 떠나자는 마틸에 말에 주저한다."사랑이라는 말을 들으면 내 머리속의 회로는 항상 엄마를 떠올린다. 나는 지금까지 사랑은 엄마 같은 사람이나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사랑을 위해서라면 무엇을 희생해도, 누구에게 상처를 입혀도 상관없다고 여기는 사람. 그리고 나는 그런 사람들을 끔찍하게 싫어한다." (156쪽) 그러나 데마리 역시 또 다른 업을 만들고 만다. 엄마가 그랬던 것 처럼 모두를 버리고 마틸를 따라 떠난다.

세 번째 여자

데마리가 모두를 버리고 떠나고 남겨진 히메노는 독을 안고 살아간다. 엄마의 배신으로 자살을 한 아빠로 인해 모든 것이 부서지고 히메노는 낯선 삶을 받아들여야 했다. 어린 7살의 엄마가 그랬던 것 처럼. 그녀가 생각하는 여자의 삶은 기존이 삶과는 다른 것이 된다. 누구의 아내도 누구의 엄마도 아닌 그녀가 된다.

돌고 도는 업은 대를 이은 모녀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은다. 그것이 인생인지 모른다. 치매환자로 등장한 엄마, 데마리. 멋쟁이 할머니로 젊은 남자와 함께 한 리스코, 성공한 사업가로 사랑을 믿지 않는 히메노. 치매에 걸린 엄마를 돌보며 살아가야 하며 서로가 만들어놓은 매듭을 풀게 될지는 책을 읽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미래의 어느 날에도 사랑을 찾아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는 여자가 있을 것이고, 그리고 그 자리에 남겨져 새로운 삶을 살아내는 여자도 있을 것이다. 자신의 궤도를 벗아나고픈 욕망에 따라 길을 떠나는 이가 있고 그 궤도를 따라 순행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이 책, 많은 말을 남길 것이다. 사랑, 그것은 정말 불가항력인가? 

 

오늘의 책을 리뷰한 '자목련'님은?
그저 폭넓은 책읽기를 꿈꾸며 책과의 진정한 소통을 원하는 사람이며, 그것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글쓰기를 꿈꾸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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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가야할 길> - 길이란 이름의 축복

M. 스캇펙, <아직도 가야할 길>, 열음사, 2007

 

오래 달리기를 할 때 남은 코스를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지금껏 달린 것만으로도 충분히 구토가 나오는데, 아직도 저만큼 더 뛰어야 하다니.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현재 삶을 즐기고 있다면 남은 삶은 그리 부담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삶이 고단하다면 남은 시간들은 야속하고 멀게만 느껴진다. ‘나에게 봄날은 있을까’란 낮은 푸념과 함께. 모두가 힘들다고 하는 이때 눈에 쏙 들어오는 제목의 책이 있다. <아직도 가야할 길>. 누굴 놀리나!

<아직도 가야할 길>은 정신과 전문의 스캇 펙 박사의 저작으로, 1978년 미국에서 처음 출간된 조금 숙성된 책이다. 저자는 정신과 치료 중 만난 수많은 사람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데 고민해봐야 하는 몇 가지 문제들에 대해 진지한 고찰을 시도한다. 스캇 펙 박사는 자신이 만난 사람들의 구체적인 이야기를 책에 넣음으로써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구성, 보는 재미가 쏠쏠하게 만들었다. 책은 ‘훈련’ ‘사랑’ ‘성장과 종교’ ‘은총’ 등 총 4부로 구성돼 있다.

1부 ‘훈련’이 시작되자마자 저자는 ‘삶은 고해(苦海)’라는 큼직한 화두를 던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이 어렵다는 이 쉬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살아간다. 삶이란 대수롭지 않으며 쉬운 것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살아가면서 부딪치게 되는 무제와 어려움이 가혹하다고 불평을 하게 된다.” 어차피 삶은 힘든 것이니 징징대기보다 한 번 살아보자는 거다. 물론 이렇게 마음먹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문제는 시간이다. 마음을 다잡아도 고통이 반복된다면 그걸 참아내기는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삶을 자신의 것으로 온전히 받아들이고 고통스런 시간을 견딜 때, 그리고 그 결과에 책임질 수 있을 때 우리 영혼은 자유로워질 수 있다.

스캇 펙 박사의 진가는 2부 ‘사랑’에서 발휘된다. 그는 사랑에 대해 ‘자기 자신이나 혹은 타인의 정신적 성장을 도와줄 목적으로 자기 자신을 확대시켜 나가려는 의지’라 정의한다. 이 얼마나 볼 품 없는 정의란 말인가. 한 눈에 사랑에 빠지고, 사랑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로맨틱한 이야기가 세상에 얼마나 많은데! 이에 대해 저자는, 매우 쿨하게, “연애의 꽃은 피었다가는 항시 시들해지게 마련”이라고 말한다. 그럼 사랑을 해서 좋은 게 뭐란 말인가!

“여러 해 동안 사랑, 정신 집중, 그리고 자기의 한계 확장은 결국 (…) 외부세계와 자기 내부세계의 통합, 이에 따른 자아 영역의 성장과 확장을 연쇄적으로 가져다준다. 이렇게 우리가 자신을 더욱더 많이 그리고 더욱 오랫동안 꾸준히 자아를 확장해 나가면 나갈수록 우리의 사랑은 더욱 깊어지고, 자아와 세계와의 거리는 좁혀진다. 우리는 ‘사랑에 빠질’ 때 가졌던 것과 같은 종류의 황홀감을 체험하게 된다. (…) 이 느낌은 더 안정되고 지속적이며 매우 만족스러운 포만감을 우리에게 안겨 줄 것이다.”
(132~133쪽)

사랑은 빠지면 다 되는 게 아니다. 노력 끝에 얻은 열매가 더 달콤하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의존성’이다. 인간은 나약하여 사랑할 때 습관적으로 상대방을 구속하거나, 상대방에게 의존하기 쉽다. ‘나’와 ‘너’의 경계가 불분명할 경우 자신이 걸어야 할 길을 혼동하는 경우가 생긴다. 스캇 펙 박사는 말한다. ‘사랑은 분리됨에 있다’고. 심지어 진정한 사랑은 “다른 사람의 개별성을 존중할 뿐만 아니라 서로 분리 또는 상실의 위험에 직면하면서까지 독립성을 길러 주려고 애쓰는 것”이라고 한다. 예언자 칼릴 지브란의 표현을 빌자면 “서로의 그늘 속에서는 자랄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랑에 이어 저자의 관심은 세계관, 종교, 은총 등에까지 뻗친다. 그런데 스캇 펙 박사가 말하는 은총이 흥미롭다. “증후군은 병이 아니라 치료의 단서이다. 원하지 않아도 증후군이 나타난다는 사실은 그것이 은총의 한 양상임을 말해준다-이것은 하느님의 선물이며 무의식이 전해주는 메시지다.” 이것을 좀 더 확대 해석해 보면, 일상에서 만나는 문제들이 우리에게 은총이다. 우리가 문제라 인식하고 있는 것들은 해결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우리는 해결 과정에서 살아있음을, 그 이후에는 좀 더 나은 미래를 만날 수 있다. 문제가 발견됐을 때 도움을 요청해 보자. 세상에 문제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아직도 가야할 길>을 처음 만난 것 20대 초중반 때였다. 한 선배가 ‘이 책 읽어봐’라며 툭 던져줬다. 당시에는 몇 장 읽다가 말았다. 그냥 끌리지 않았었다. 그때 처음 펼쳤던 책을 덮은 건 수년의 시간이 지난 30대 초반이다. 책을 읽으며 사랑, 시간을 견뎌내는 힘, 은총 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이 책을 진작 읽었다면 다른 삶을 살았을까?’하는 의문도 들었다. 답 대신 웃음이 난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런 고민은 썩 유익하지 않다는 것이다. 내겐 ‘아직도 가야 할 길(The Road Less Travelled)’이 있으니까.


-반디(ak2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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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것은 없기에> - 단지 두 사람만으로, 사랑은 완성

 

로랑스 타르디외, <영원한 것은 없기에>, 문학동네, 2008


사람에게 과거란 어떤 의미일까? 그저 지나간 시간일 수도 있고, 죽는 순간 떠오르는 한 장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잊지 못할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안다. 과거란 아무리 떼어버리고 싶어도 끈덕지게 어딘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랑스런 결과물인 아이가 어느 날 실종된다. 이 일은 두 사람을 돌아 올 수 없는 강 저편으로 갈라놓는다. 소설의 주인공인 주느비에브와 뱅상의 이야기다. 딸 클라라가 어느 날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 힘든 삼 개월을 보내며 결국 딸의 부재를 받아들이는 주느비에브.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채 딸의 흔적을 기다리는 뱅상. 결국 사랑해 마지않던 두 사람은 각자의 길을 간다.

그렇게 십오 년이 흐르고 이야기가 시작된다. 뱅상 앞으로 주느비에브가 보낸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하면서. “난 죽어가고 있어 뱅상 난 죽어가 보고 싶어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보고 싶어 당신을 보고 만지고 당신 목소릴 듣고 싶어 보고 싶어 뱅상 난 죽어가.” 과거를 지우고, 그녀도 잊었다고 생각하며 지낸 뱅상이지만, 편지를 다 읽기가 무섭게 옷도 제대로 챙기지 않은 채 차를 몬다. 주느비에브가 있는 그 곳으로.

책의 내용은 간단하다. 그녀가 아프다. 그가 간다. 둘은 마지막 시간을 함께 보낸다. (그 사이에 그녀와 그의 과거가 밝혀진다.) 등장인물은 과거를 묻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았던 두 남녀이다. 그러나 곱씹을수록 이 책은 진한 맛이 난다. 읽을 때는 문장이, 읽은 후에는 잔영이 남아 마음을 붙잡는다.

세 개의 키워드. 과거, 글, 사랑.  

“몸과 뇌에서 과거가 모조리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 그래서 현재만 남았으면, 오로지 현재 속에 존재했으면.” 과거가 사랑하는 여인들을 잃은 고통의 시간으로만 남아있는 뱅상은 기억과 화해하고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그럼에도 과거는 끈덕지게 기억 속을 헤집고 다닌다. 이어지는 주느비에브와의 만남. 이를 통해 뱅상은 바뀐다. 참혹했던 과거는 여전히 슬픔으로 가득하지만, 이제는 과거를 과거로서 인정한다. 그녀의 마지막 유품인 노트 세 권도 고이 받아들인다.

글에는 치유의 효과가 있다. 주느비에브가 힘든 시기를 이겨낸 방법 또한 글쓰기다. 매일 밤 그녀는 글을 쓴다. 그녀는 고백한다. 쓰기를 통해서 난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글쓰기를 멈춘다면 죽고 말 것이다. 오직 글만이 내가 살아 있도록 지탱해준다.” 글쓰기는 그녀 곁에 아무도 없던 15년간 그녀 삶을 지탱해 준 친구이자 연인, 가족과도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사랑. 클라라를 향한 뱅상과 주느비에브의 끝없는 기다림의 사랑. 함께 살아가진 못했지만 삶의 마지막에서 서로를 찾은 뱅상과 주느비에브의 오랜 사랑. 사랑은 언제나 고통을 동반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을 갈구한다. 왜? “기억에 새겨둘 것. 우리에게 기쁨이 존재했음을. 의심하지 말 것.” 고통보다 큰 기쁨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녀와의 짧은 재회에서야 뱅상은 깨닫는다. 사랑, 행복은 그렇게 거창한 게 아니란 사실을. “그러니까 행복은 다름 아닌 그녀와 나, 두 사람이었다. 그렇게 단순한 것이었다.” 단지 두 사람만으로 사랑은 완성된다. 죽음, 이별 같은 일에 깨질 만큼 약하기도 하지만, 그 앞에서 다시 되찾을 용기를 낼 만큼 강하기도 하다.

뱅상은 바뀐다. 모든 일을 체념했던 그가 새로운 기운으로 시작할 힘을 얻는다. 과거를 슬픔이 아닌 즐거움으로 느낀다. 죽음을 앞에 두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힘을 전해준 주느비에브가 보여준 사랑의 강함에 놀랐다. 책의 제목은 <영원한 것은 없기에>였지만, 글쎄. 그녀의 사랑은 죽음을 넘어서 그의 마음에 다시 살아났으니 ‘영원한 것은 있을지도’ 라며 희망을 가져 봐도 좋지 않을까.

오늘의 책을 리뷰한 ‘굼실이’님은?
어쩌다 보니 하루라도 책과 만나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치는 불치병에 걸려버린, 북홀릭 청춘. 책 속에서 사랑도, 지혜도 찾고픈 그런 사람.

<영원한 것은 없기에>는 굼실이님이 선정한 나감책입니다. 굼실이님의 나감책 보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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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이별> - 사랑의 다른 이름

 

김형경, <좋은 이별>, 푸른숲, 2009


사랑하는 이와의 만남은, 즐겁다. 주위 사람들에게 소리쳐 자랑한다. 행복하다. 이별은  혼자서 견뎌내며, 힘들어한다. 행복했던 시간이 길었던 만큼, 아파하고 힘겨운 시간도 오래간다. 사랑을 이야기하는 많은 책들은 서점에서 흔하다. 이별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이별 후의 시간을 잘 떠나보내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은 찾기 어렵다. 이별이란 단어만 떠올려도, 마음이 아프다. 종기가 생겼을 때, 바로 치료하지 않으면, 큰 병으로 커진다. 이별 후의 감정을 외면하거나 방치하면, 몸과 마음이 더 힘들어진다. 몸에 대한 치료는 쉽게 묻고, 병원에 찾아가지만, 마음을 치료하는 병원을 가는 일은 다른 이에게 묻거나 알리기가 쉽지 않은 사회에 살고 있다. 저자는 <사람풍경>과 <천개의 공감>이라는 심리치유 에세이 두 권을 출간했다. 정신분석과 심리학을 대하는 일반인이 가진 편견의 벽 너머의 세계를 이야기한 책들이다. 돌아온 작가는 상실 이후, 애도에 주목한다.

# 참 좋은 사람, 당신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요?

사랑의 다른 이름, 좋은 이별이라는 말이 처음엔 어색했다. 이별은 아픈 건데, 좋은 이별이 가능할까? 좋은 이별은 서로 원만하게 이별을 통보하고 끝내는 쿨한 이별이 아니라, 그와 이별한 후에 생기는 마음의 응어리, 감정들을 애도작업을 통해 치유하고, 떠나보냄으로써, 자신의 내면을 키우는 과정이라 저자는 말한다. 

이별 직후, 생기게 되는 마비, 부정, 분노, 그리움, 환상, 미화까지 다양한 감정들이 나쁘지 않다 이야기한다. 다시 돌아오기 위해 치러야 할 과정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놓친 열차는 아름답다', '나는 님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등의 이별 후의 감정을 잘 포착한 가려 뽑은 시구절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이별을 만날 때의 감정들이 가슴에 전해진다. 저자는 감정에 빠진 상황을 극복하는 하나의 길만을 제시하지 않는다. 지금 느끼는 상실의 감정을 인정하고, 밝은 쪽으로 변화하는 다양한 방법들이 ‘recipe’라는 글에 담겨있다. 글의 처음은 저자의 경험으로 시작한다. 솔직한 글을 읽다보면, 힘든 이별의 순간이, 나만 겪는 게 아니란 생각이 든다. 마음이 든든해졌다.

#  마음은 거두어 들었지만, 갈 곳이 없네.

돌아오지 못한 마음이 주는 부정과 그리움, 환상 등의 감정의 시간이 지나면, 마음은 거두어 들었지만, 둘 곳이 없어 방황하는 시간이 찾아온다. 자기애와 조증, 떠돌기, 대체대상 사랑하기 등 어찌할지 모르는 시간과 감정들은 혼란스럽다. 저자는 상실을 극복하는 애도의 시기를 지나는 자연스런 과정이라 이야기한다. 소중한 사람을 잃었을 때, 몸의 증상, 특히, 식습관과 관련된 현상이 나타난다는 설명에 공감했다. 어떤 이는 “그가 떠나갔는데 밥이 넘어가느냐”며 거식증에 걸리고, 다른 이는 꾸역꾸역 먹다가 폭식증에 빠진다는 글에 고개를 끄덕였다. 심리학과 정신분석에서 바라보는, 유아기 때 겪은 상실에 대한 다양한 감정들을, 말로 표현하지 못해, 몸의 감각으로 느끼고, 몸의 반응으로 표출한다. 기억하기 어려운 유년기부터 쌓였던 경험들은, 의식에서는 기억나지 않는다. 무의식의 내면에 여전히 남아있다. 내면의 감정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음을 확인 하였다.

# 애도 작업의 핵심은 슬퍼하기이다.

몸이 도무지 말을 듣지 않는 우울증과 붕괴의 감정에 빠져있을 때, 극복과 치유가 시작된다는 글이 마음에 와 닿았다. 모든 감정이 다 사라져버린, 울음도 나오지 않는 절망의 지점이, 다시 희망을 안고 시작하는 출발점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울 수만 있다면, 마음의 병이 걸리지 않는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여성보다 남성은 울 수 있는 기회가 적다. 작은 일에도 분노하고, 마음에 담아두거나 괴로워하지 않기를 바란다. 슬픈 노래나, 실컷 울 수 있는 공간에서, 마음을 달래주면, 감정에 빠져 무기력한 마음이 달라진다. 저자는 독서와 글쓰기, 노래 부르기, 술자리에서 이야기하기 등, 자신의 생각을 표출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라는 기형도 시인의 절창을 다시 만나 좋았다.

울지 못하는 마음에 병이 생기고, 무기력해지며, 살아가려는 의욕이 사라진다. 애도 작업의 핵심은 슬퍼하기이다. 유대인들이 통곡의 벽에서 상실한 이를 배려하는 관습과 우리 문화에 남아있는 굿과 삼우제, 49제, 3년상 등을 소개한다. 잘 이별하기 위한, 오랜 지혜의 결과인 이별의 의식들이 현대사회에서 빠져있다. 개인의 감당해야 할 우울의 깊이가 큰 이유를 이해했다. 애도의 관점으로 바라본, 다양한 문학작품을 만났다. <이방인>과 <수레바퀴 아래서> 등 다양한 작품을 새로운 시선으로 만났다. 흥미로웠다. 작품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배웠다.

#  정신분석과 심리학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습니다.

종교에 대한 신화도 사라졌고, 과학에 대한 엄밀함도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 21세기에 산다. 정신분석과 심리학은 자신의 감정상태를 알고 싶어 하는 이에게,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의 이유를 알려주는 괜찮은 도구라 생각한다. 저자는 정신분석과 심리학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도 않는다 말한다. 애도작업을 보내고, 더 나은 자신이 된 시기 역시, 1-2년이 아닌, 오랜 시간에 걸쳐, 꾸준히 자신을 관철하고, 분석하는 일을 지속했기에 가능했다 이야기한다.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는 희망과 꿈을 파는 책들이 많이 출간된다. 쉽게 찾는 해답을 바라는 대중이 많은 시대에, 한계를 인정하는, 진솔한 책이라 생각한다. 그 분야의 전문가라면 하나의 입장에서 이야기하겠지만, 비전공자인 작가의 글이기에, 다양한 이론들이 소개되었다. 저자의 글로 만나는 심리학과 정신분석의 세계는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다.

책을 읽었지만, 이별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허전한 마음을 채웠던 충만한 느낌이 사라진다는 생각은, 가능하다면 피하고 싶다. 소중한 누군가를 만났기에, 이별의 시간도 따르는 법이라고, 행복했던 그 시간들이 나를 살게 만들었던 소중한 시간임을 기억한다. 떠나간 그에게 집착하는 것보다, 그를 잘 떠나보내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 그와 나, 모두를 행복하게 만든다고 믿는다. 감정의 노예가 아닌, 감정의 주인이 되도록 돕는 책이다. 좋은 이별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라는 말을, 소리 내 말해본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비이’님은?
문학이 주는 삶의 감동의 숲과 인문학이 주는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의 산, 과학이 주는 정확한 사실과 호기심의 바다를 여행하기를 좋아하는 초보 독서인.

[<좋은 이별>은 비이님이 선정하신 나감책입니다. 비이님의 나감책 보러가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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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싶은 건 사랑일 텐데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의 책과 음악 이야기 No.13 - 기억하고 싶은 건 사랑일 텐데

「희재」

그대 떠나가는 그 순간에도 나를 걱정했었나요
무엇도 해줄 수 없는 내 맘 앞에서
그댄 나를 떠나간다 해도 난 그댈 보낸 적 없죠
기다림으로 다시 시작일 테니

얼마나 사랑했는지 얼마나 더욱 사랑했는지
그대여 한순간조차 잊지 말아요
거기 떠나간 그곳에서 날 기억하며 기다려요
날 기억해줘요

한없이 그대에게 다가가는 나일 테니

*Album from 성시경, 영화 <국화꽃 향기 O.S.T.>「희재」중

죽음은 삶 속에 잠재해 있다

죽음은 삶의 대극(對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 잠재해 있는 것이다. 죽음이라는 단어를 되뇔 때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상실의 시대>에서 쓴 문장을 떠올리게 된다. 최근 몇 년 나이를 실감한 것 중 하나는 ‘삶 속에 잠재해 있는’ 죽음으로 침잠해가는 이들이 포위망을 좁혀 내게로 다가올 때였다. 멀지 않은 시간 나의 어머니 혹은 아버지가, 그리고 내가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먼 시간인지, 얼마나 가까운 시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유진 케네디가 지은 <당신도 유능한 카운슬러가 될 수 있다>에서는 홈스(Holmes)와 라헤(Rahe) 박사가 제시한 생활 속 스트레스 수치를 소개한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배우자의 사망. 평균치 100, 즉 누구에게나 가장 큰 스트레스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 뒤를 잇는 것이 이혼(73), 부부간의 별거(65), 가족의 사망(63)이며 이는 자신의 부상 또는 질환(53)보다 높은 수치다. 15가지 항목 중 가족 문제가 10개, 그 중 죽음이나 질병은 5가지에 이른다. 죽음이 이토록 고통스러운 것은 자신의 문제인 동시에 그들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 죽음을 맞이하지만 그 과정에는 누군가가 함께 하고 있다. 죽음이 ‘삶 속에 잠재해 있는’ 진리를 사실로 받아들인다는 건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인 것이다.  

댄과 카르멘은 좋은 직장을 갖고 예쁜 아이와 살아갈 것을 의심해 본 적이 없는 평범한 부부다. 그러던 중 카르멘에게 유방암 선고가 내려진다. 가슴절제 수술까지 받아가며 유방암과 맞서는 이는 카르멘이지만 낫을 든 사자(死者)에 쫓기는 것은 댄과 카르멘 두 사람이다. 레이 클룬은 자전적인 소설 <사랑이 떠나가면>을 통해 ‘죽어가는 카르멘’보다 ‘죽음을 지켜보는 댄’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댄은 고독공포증을 가진 쾌락주의자다. 아내의 죽음 앞에서도 여자에 빠져든다. 여느 소설이나 영화가 ‘죽음=순결’이라는 등식을 만들어내는 것에 비해 댄은 아내 앞에서 눈물을 참아내고 심지어 아내에 대한 사랑을 의심하기도 한다. 그리고 아내에게서 전이되는 죽음의 공포를 연인 로즈에게 매달리며 해소한다. 

그런가 하면 정작 죽음을 앞둔 카르멘은 남편의 외도를 이해하고 아이에게 죽음을 설명하고, 자신의 죽음을 선택한다. 죽음 앞에서 댄이 나약함의 상징이라면 카르멘은 강인함의 상징이다. 하지만 댄이 살아가야 하는 이의 상징이라면 카르멘은 죽어가는 이의 상징이다. 그렇게 댄과 카르멘은 이분법으로 나눌 수 없는 존재다. 인간은 나약함과 강인함, 삶과 죽음을 모두 감당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기억하고 싶은 건 음악이 아니라 사랑일 텐데

헤어지고 난 뒤에는 모든 이별 노래가 내 이야기인 것만 같다. 세상 모든 이들이 이별한 것만 같고, 모든 이들이 이별 노래만 부르는 것 같은 기분이다 ‘우리 함께 듣던 이 노래에 나는 왜 또 눈물이 흐르는지’(「Goodbye Day」, 김장훈) 흐느끼고 ‘시간이 흐르고 내 마음이 흘러서 그렇게 당신도 함께 흘러가야 하는데 정말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네요’(「마음을 잃다」, 넬) 한탄해도 커다란 비어버린 마음에는 노래만 가득 채워진다. 

레이 클룬은 <사랑이 떠나가면>을 쓰면서 수없이 많은 노래를 듣지 않았을까. 마치 <상실의 시대>에서 레이코와 와타나베가 나오코를 위한 음악 장례식을 열어주었던 것처럼. 소설의 시작은 비틀즈의 「Yesterday」다. ‘어제는 모든 고뇌가 저 멀리 있는 듯 했건만’ 굳이 그가 음악을 찾으려고 하지 않았어도 일상의 음악이 그의 귀에 내려앉았는지도 모른다. 수많은 노래가 흐른 뒤 라디오헤드의 「No Surprises」를 들으며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 ‘경고도 없이, 놀라움도 없이. 침묵.’ 각 장마다 흐르는 음악들만 모아도 한편의 소설이 될 정도로 <사랑이 떠나가면>에서 음악의 의미는 크다. 바로 그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가 기억하고 싶었던 건 음악이 아니라 사랑이었을 것이다. 음악으로나마 그 사랑을 기억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음악이 흐르는 동안은 영원히 잊히지 않기를, 혹시라도 잊혔을 때는 음악을 듣고 기억해낼 수 있기를, 그만큼 사랑하고 있음을 먼 곳에서라도 기억해주기를 바라며.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 [<재즈피플> 보러 가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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