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1.12.16 <지금은 없는 이야기> - 지금껏 이야기되지 않은 이야기
  2. 2011.03.10 <떡갈나무 바라보기> - 관점이 다르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3. 2010.12.08 <리영희 프리즘> - 지식인의 빛

<지금은 없는 이야기> - 지금껏 이야기되지 않은 이야기

 

최규석 | <지금은 없는 이야기> | 사계절 | 2011

 

 

모든 이야기는 삶으로부터 나와, 다시 삶으로 흘러간다. 그러므로 이야기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그들이 지나온 흔적, 즉 오랜 시간 축적되어 온 삶의 지혜와 깨달음, 교훈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중에는 시간이 흘러 세상이 변해도 변하지 않고 다시 살아나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가 어릴 적부터 익히 들어온, 바르고 성실하고 긍정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착한’ 이야기들 말이다. 

 

“세상은, 불평불만 하지 말고 알아서 살아남으라고 말하는 이야기들로 차고 넘친다. (…) 요새 떠도는 이야기들에 따르면 고통조차 웃으며 견뎌야 한다. (…) 그리고 성공과 실패에 대한 모든 책임은 오직 개인에게 있다. (…) 사실 수천 년을 반복해 온 이야기들이다. 그리고 당시에는 맞는 얘기였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반은 맞다. (…) 긍정적인 태도를 권유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문제는 그런 얘기들이 너무 많다는 거다. 너무 많아서 당연하게 생각되고, 당연한 것이 되다 보니 다르게 생각해야 할 나머지 절반의 상황에서도 같은 관점으로만 사태를 바라보게 된다.”

 

최규석은 <지금은 없는 이야기>를 통해 그 ‘나머지 절반의 상황’에 대해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관점을 제시해주고자 한다. 그러므로 그의 손에서 탄생한 새로운 우화들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착한 이야기의 틀을 한참이나 벗어나 있다. 오히려 그 틀을 비틀어 착하게만 살아갈 수 없는 오늘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참고 용서하라’는 천사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다간, 평생 가난하고 불행한 삶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게 우리의 진짜 현실이라는 것이다. (‘불행한 소년’)

 

이러한 맥락에서 그의 우화 속에는 그간 당연하게 여겨왔던 많은 것들이 의심의 대상으로 변모해 등장한다. ‘만인이 법 앞에 평등하다.’, ‘경쟁은 서로를 발전시킨다.’ 등, 현재 우리 삶의 근간이 되는 생각들이 물음표를 달고 다시 나타나는 것이다. 가위바위보로 모든 것을 정하는 마을에서 손을 다쳐 주먹밖에 낼 수 없던 사람은 억울함에 대한 항변과 이의제기조차 결국 가위바위보를 통해 묵살될 운명에 놓이게 되고(‘가위바위보’), 더 많은 먹이를 얻기 위해 열심히 일한 원숭이는 끝내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원숭이 두 마리’).

 

지치고 병든 검정이는 어느 날 나무를 놓쳤고, 떨어져 죽고 말았습니다. (…) 주인은 “게으르고 성격이 비뚤어져서 벌을 받은 거야. 하지만 나에게 너처럼 훌륭한 일꾼이 있으니 얼마나 든든하지 모르겠구나” 하고 말해 주자 (빨강이는) 금방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혼자가 된 빨강이는 일이 두 배나 많아지긴 했지만 즐겁게 일했습니다. 농장 전체를 책임지는 솜씨 좋은 일꾼이라는 자부심과 사명감이 있었으니까요. 물론 주인은 훨씬 더 즐거웠습니다.

 

이야기의 온도가 차갑고, 뒷맛이 씁쓸하다. 그 이야기들이 결코 나를 비켜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는 어쩔 수 없이 ‘원숭이 두 마리’ 속의 주인이 아닌 원숭이인 거다. 잘 돼서 빨강이가 된다 할지라도 즐겁게 일하는 사이 착취당하는 처지를 벗어날 수 없는 원숭이 말이다. 그렇게 성실하고 긍정적으로 살아야겠다는 오래된 다짐이 철퇴를 맞아 허물어진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지금은 없는 이야기>가 우리의 ‘지금’을 이야기하는 방식이다.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


Trackback 0 Comment 0

<떡갈나무 바라보기> - 관점이 다르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주디스 콜 외 | <떡갈나무 바라보기> | 사계절 | 2002

 


매일 아침 창을 열고 날씨를 확인한다. 아파트 단지 내의 나무들을 보며 계절의 변화를 느낀다. 초록이 짙던 나뭇잎 대신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는 겨울이 시작되었음을 알려준다.봄의 시작도 우리는 그들에게서 발견할 것이다. 이처럼 자연은 언제나 인간에게 말을 건다. 인간은 모든 것을 인간 중심으로 생각한다. 새의 날개짓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쩌다 거미줄에 걸리면 짜증부터 낸다. 어찌보면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려 하지 않는게 당연한지 모른다. 문득, 인간과 자연은 서로 공존하며 살다는 걸 느낀다.  <떡갈나무 바라보기>란 다소 생소한 제목의 책은 개미, 개, 벌, 나무, 물고기 등 자연의 시선으로 말한다. 내가 아닌 다른 동물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과연 어떨까. 

인간은 오감을 모두 활용하며 산다. 어떤 사람은 남들보다 소리를 잘 듣고, 어떤 사람은 맛을 잘 본다. 그러나 동물들은 발달된 하나의 감각으로 생활하며 소통을 한다. 책에서 다룬 벌은 흥미롭다. 벌은 꽃이 있는 곳을 어떻게 알아내는 걸까. 꽃의 향기를 맡고 꽃에게 날아간다고 한다. 또 하나 놀라운 점은 벌의 눈이다.

"활짝 핀 꽃이 아닌 꽃봉오리는 벌의 세계에서 어두운 원의 형태로 보인다. 그렇지만 벌은 활짝 핀 꽃과 봉오리의 차이를 어렵지 않게 구별해 낸다. 벌의 세계에서 들판은 무수한 원이나 온갖 꽃의 형태로 가득해 보인다. 그 세계는 활짝 핀 꽃의 세계이거나 꽃봉오리의 세계이다." (22-23쪽)

무수한 원이 아니면 꽃의 형태로 보이다니, 정말 놀랍고 신기하지 않은가. 어떻게 생각하면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게 아닐까 싶다. 이처럼 모두 자신만의 세계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동물들의 세계는 어떤 공간이며 어떻게 경험할까.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문제다. 공간을 어떻게 감지하는지 알 수 없다. 인간은 걷고 뛰고 손을 들어 공간을 확인하며, 때로 넘어지고 다친다. 그럴 때마다 인간의 몸은 위험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일을 한다. 평형감각을 담당하는 반고리관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동물들은 어떻게 위험을 감지하며 자신의 안전을 지킬까.

"개미는 모든 마디, 즉 다리 위뿐만 아니라 몸통과 머리 마디에 짧은 털이 있다. 개미가 몸을 쭉 뻗고 쉬는 자세로 다리를 내려놓더라도, 이 짧은 털들은 어떤 마디에 스치거나 놀라지 않는다. 그러나 개미가 다리를 들어 올리는 순간 털을 건드리게 되어 다리와 땅 사이게 어떤 관련이 있는지 알게 된다. 또 배를 옆으로 돌리면, 개미는 새로운 방향으로 가야 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다가 조약돌 같은 장애물을 만나면 개미는 더듬이를 낮춰 더듬이의 털로 조약돌의 높이를 알아낸다." (36-37쪽)

개미에겐 그 역할을 하는 털이 있고 방울뱀에겐 주둥이 위쪽의 구멍 두 개가 그러하다. 이번엔 시간 개념을 생각해 보자. 인간에게 하루는 당연히 24시간이며 일주일은 7일이다. 그건 인간의 생각일 뿐 그 하루가 어떤 생물에게는 평생의 시간이 될 수 있다는 생각 해본 적이 있는가.

"우리와는 다르게 보고 다르게 느끼고 움직이는 동물들의 삶 안에 존재하는 시간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려면, 우리는 사람의 사고에서 휠씬 더 멀리 벗어나야 한다. 밤과 낮을 잊고, 일주일과 일 년을 생각하지 않고, 또한 시침과 분침에 의존하지 않고 시간을 생각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시간은 규칙적으로 일정하게 흐른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86쪽)

삶의 전부가 단 하루뿐인 하루살이, 한 계절을 잠으로 보내는 곰, 그들에게 시간은 어떤 개념일까. 진드기의 삶을 보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어디서나 활동하는 듯하나 진드기는 열기를 찾아서 활동한다고 한다. 때로는 죽은 듯 움직임이 없고 때로는 미친듯이 움직이는 것이다. 동물들의 삶을 이해하려면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이제 떡갈나무를 좀 더 다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눈에 한 그루의 떡갈나무에 불과하다. 그러나 나무뿌리에 구멍을 파고 사는 여우에겐 집이 되고, 나뭇가지는 까마귀의 둥지가 된다. 떡갈나무엔 다양한 세계가 존재함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인간이 모르는 거대한 자연엔 무수한 생물들의 세계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책은 지극히 감각적인 책이다. 오감을 죄다 동원하여 책을 읽게 만든다. 그리고 우리의 손목을 잡고 쉼 없이 동물들의 세계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마치 거울 속 나라에 들어가 붉은 여왕에게 손목을 붙들린 앨리스처럼. 그러다 보면 우린 모두 어느새 철학자가 된다. 우리 인간의 삶 속에만 안주하는 속 좁은 철학자가 아니라 다른 모든 생명체의 삶들을 모두 아우르는 폭넓은 사상가가 된다.  책을 덮고 나면 세상이 달리 보이고 내 삶이 달라 보일 것이다." (7쪽, 추천의 말)

무척 재미있고 신선한 책이다. 최재천 교수의 말처럼 나를 둘러싼 모든 세계를 돌아보게 되고 모든 생명체의 경이로움에 감탄한다. 더불어 거대한 자연을 보호할 인간의 의무를 생각한다. 더불어 사는 세상, 모든 생명체를 존중해야 하며 내가 아닌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게 된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자목련'님은?
그저 폭넓은 책읽기를 꿈꾸며 책과의 진정한 소통을 원하는 사람이며, 그것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글쓰기를 꿈꾸는 사람입니다.  


Trackback 0 Comment 0

<리영희 프리즘> - 지식인의 빛

 

고병권 외, <리영희 프리즘>, 사계절, 2010

 


아침에 리영희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했다. 돌아가셨구나. 얼마 전 터키 앙카라에 위치한 아나톨리아 박물관에서 본 유물이 떠올랐다. 사람의 해골인데 눈과 귀, 입 모두 금으로 막혀 있었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는 건가. 리 선생님은 오래 전 절필을 선언하고, 사회적 발언을 하지 않았다. 그를 지식인, 사상의 은사로 여기는 많은 이들은 그가 다시 발언하길 바랐지만, 기대에 부흥하지 않았다. 하지만 빛이 가는 틈 사이로 퍼지는 것처럼 지식인의 빛 또한 퍼져갔다. <리영희 프리즘>이 그것이다.

<리영희 프리즘>은 리영희 선생님이 직접 쓴 책은 물론 아니다. 또 한 저자가 그의 사상을 기리기 위해 쓴 책도 아니다. 이 책은 다양한 사람들이 지식인의 빛이 현재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 쓴 책이다. 연구원, 대학교 교수, 신문 논설위원 등 총 10명의 후배 지식인들이 각각 하나의 주제를 잡고 리 선생님의 사상을 비춰 2010년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을 바라본다. 전쟁, 종교 등 구체적인 문제에서 사상, 책 읽기, 자유 등 추상적인 주제까지, 하나에서 출발한 빛은 프리즘을 거쳐 다양하게 전개된다.

안타까운 건, 각 장의 제목에 쓰인 단어들 중 지금 세상에 버림받은 것들이 많다는 것이다. 생각, 책 읽기, 자유, 지식인 등. 돈 버느라 바쁜데 생각할 시간은 언제 있으며, 과외에 학원에 바쁘기만 한데 책은 언제 읽겠는가. 또 대학 졸업 전부터 취업공부에 매진해 취업전선에 뛰어든 청년들은 자유를 만끽할 시간이 없다. 생각해 보면 지식인이라는 말, 그렇게 낭만적이면서도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 없다.

‘지식인’이라는 말이 낭만적으로 보이는 건 우리가 야만의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각기 모양대로 인정받아 마땅한 존재인데, 우리의 사고는 강한 자는 약한 자를 마음대로 주무르고, 돈 있는 자들은 돈 없는 자들을 마음껏 무시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마치 인간이 사슴의 숨통을 끊는 사자라도 된 것처럼 말이다. 만약 인간이 곰과 사자와 같이 투쟁을 해도 좋다고 모두가 동의한다면, 우리는 본격적인 약육강식의 세계로 들어가도 좋다. 하지만 인간은 동물과 달라, 라고 말하고 싶다면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다시 지식인의 책무를 물을 수밖에 없다. 경향신문 이대근 논설위원은 말한다. “한국에서 지식인이 선지자, 민중의 수호자, 선각자가 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진정 시민들에게 자유를 선물하고 싶다면, 다른 삶, 다른 가치, 다른 세상의 존재를 깨달을 수 있게 해야 한다. 다른 선택이 가능한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새로운 삶을 조직활 능력을 가져야 한다. 그렇게 하자면 한국의 지식 사회, 지식인이 바뀌어야 한다. 지식인의 책무가 여전히 무겁다는 사실을 직시하도록 말이다.”(145쪽) 리영희 선생님이 절필하고 말을 아낀 이유는 이것이다. 지금은 이 물음에 우리 스스로 답할 때다. 스스로 빛이 될 때다.

양으로 태어난 내 자식이 늑대에게 물려 죽지 않았으면 한다. 지식인이 되면 그런 세상이 오지 않는 데, 아니 적어도 시기를 조금 늦추는 데 도움이 되겠지? 어떻게 하면 지식인이 될 수 있을까. 에세이스트 김현진과 나눈 리영희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지식인이라는 것은 대학을 나와서 되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하면 지식인이다, 하는 면허를 따는 면허의 문제도 아니고 어떤 기능을 말하는 것도 아니네요. 기술적인 지식, 습득할 수 있는 어떤 기술도 아니고, 개인적 진실에 충실하고 사회적ㆍ보편적 선을 숭상하는, 이런 사람을 인텔리겐치아라고 할 수 있겠지요. 사회와 국가와 인간 더 나아가 인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고 거기에 대해서 깊은 책임감이 수반되는 사색을 하는 이를 나는 인텔리겐치아라고 생각해요. (…) 생존경쟁에서 승자가 되기 위한 그런 지식은 인텔리겐치아의 그것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215쪽)

노력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늘(ak20@bandinlunis.com)


 

리영희프리즘우리시대의교양 상세보기


Trackback 0 Comment 0
prev 1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