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4.12.01 《글쓰기를 말하다》 - 왜 쓰는지 나도 몰라
  2. 2011.08.18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마음껏 말하기

《글쓰기를 말하다》 - 왜 쓰는지 나도 몰라

 

 

오스터 | 《글쓰기를 말하다》 | 인간사랑 | 2014

 

“왜 글을 쓰는가?”라는 질문은 내게 “왜 사는가?”라는 질문과 같다. 자신이 왜 태어났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 내게 글이 그렇다. 왜 쓰는지 알 수 없을 때부터 나는 어설픈 동시를 끄적였고, 독서감상문 쓰기는 내겐 놀이와 같았다. 폴 오스터 또한 마찬가지였던 듯하다.

 

그는 《빵굽는 타자기》에서 말한다. 글쓰기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 ‘받는’것이라고. 우리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 선택 받았고, 숨이 끊어지기 전까지 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돈이나 나이, 생김새 따위는 상관없다. 그저 쓰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쓰는 것뿐이다. 아니라면, 쓰고 싶지 않은데 쓰고 있다고 곰곰이 생각해보길 바란다. 글을 쓸 때 두 가지 이상의 동의어를 놓고 고민한 적이 있는지, 한 문장을 잘 쓰기 위해 하루 이상 고민한 적이 있는지, 잘 썼다는 생각이 들면 누군가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스스로 자랑스러운 마음이 드는지. 이 중 하나라도 해당된다면 당신이 글쟁이로 지어진 것은 아닌지 고민 해봐도 좋겠다.

 

물론 위 세 가지 경우에 해당하더라도 누구나 노후가 보장된 유명한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얻는 거라곤 마음의 평화 정도인데, 그 평화마저도 글을 쓰기 시작하면 망가질지 모른다. 제목에 가장 부합하는 장은 단연코 5장 ‘손으로 쓴 원고’다. (책 내용이 길어서 일부분만 읽고 싶은 사람에게 5장을 추천한다) 글쓰기에 대한 그의 생각을 알 수 있으며, 여러 가지 참고할 만한 방법도 얻을 수 있다. 그렇지만 《글쓰기를 말하다 ? 폴 오스터와의 대화》의 전체 내용이 여기에 강조점을 찍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재미있게도 이 책의 꽤 많은 분량이 ‘폴 오스터의 영화’를 얘기 하는데 할애된다. 시나리오는 당연히 폴 오스터의 몫이고, 그가 감독 또는 투자까지 겸하는 영화도 있다. 그가 투자하는 영화에서 그의 활약은 대단하다.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카메라 감독과 동선을 체크하고, 역에 적합한 배우들을 캐스팅하며, 미술감독과 소품을 사러 다니기도 한다. 그 작업을 즐거워하면서도 영화의 한계를 지적하고, 결국 글이 더 오래 갈 것이라 예언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카메라 렌즈가 인간의 눈을 뛰어넘을 수 없는 것처럼, 영화 산업도 상상력보다 높이뛰기는 힘들다.

 

혹자는 “오독의 권리를 남용했다.”고 말할지 모르나, 책을 읽는 동안 글쓰기야말로 문화산업의 ‘원천’이라고 생각했다. (할리우드는 작가들이 파업하면 마비될 정도라지 않은가!) 소설이나 시 등은 물론, 영화, 연극, 뮤지컬로 각광받는 문화 산업도 결국 ‘글’에서 출발한다. 폴 오스터의 작품이 그렇듯 모든 이야기는 영화와 연극, 뮤지컬로 변신할 수 있다. 글쓰기는 ‘마술봉’이다. 언제 어디로든 갈 수 있고 누구라도 될 수 있다. 앞으로의 세상은 지식산업사회, 문화산업사회라 하니 나에겐 마술봉을 제대로 휘두를 일만 남았다. 휘두를 능력이 없다는 게 함정이지만!

 

오늘의 책을 리뷰한 'YAMUYAMUBOOKS'님은?

감동도 잘 받고 상처도 잘 받고, 칭찬도 잘 하고 욕은 더 잘 한다. 창조적 언어체계 형성에 일조하고 싶으나 언제나 마음뿐이다. 소설창작에 관심이 많고, 시나 칼럼 쓰기도 좋아한다. 언젠가 ‘작가’라는 꼬리표를 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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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마음껏 말하기




 

피에르 바야르 |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 여름언덕 | 2008

 

이 책을 읽기 전에 당신은 우선 '비독서'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비독서에는 네 가지 형태가 있다. 첫째는 '책을 전혀 읽지 않은 경우'다. 너무 당연한 얘기여서 심심할 정도다. 둘째는 '책을 대충 훑어보는 경우'다. 제대로 읽지 않은 책은 읽지 않은 것과 같다는 생각. 역시 충분히 납득할 만한 얘기다. 이어지는 세 번째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책 얘기를 귀동냥한 경우'다. 이는 직접적으로 책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이 오로지 그 책에 대해 주워들은 경우를 말한다. 책 대신 서평을 읽거나 광고, 소개글 등을 접하는 것이 여기에 속한다. 마지막은 '분명 읽었지만 책의 내용을 잊어 버린 경우'다. 비독서의 네 가지 형태 중에서도 가장 모호하고 억울하다. 그러나 책의 내용을, 심지어 그것을 읽었다는 사실조차 잊은 경우라면 그것을 읽지 않은 책과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이 책에 따르면 전혀 구분할 필요가 없다. 이것은 명백히 비독서에 해당된다.

 

 

 

책의 저자 피에르 바야르가 이렇게 비독서를 구분해 놓은 이유는 역설적이지만 이것들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물론 '차이가 없다'라는 말은 결코 그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것들이 책에 대한 담론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두고 하는 말이다. 말이 어려우니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두 남자가 길을 가고 있는데 하늘에서 갑자기 자동차가 떨어진다. 한 남자는 재빨리 몸을 굴려 그것을 '피했다'. 한편 다른 남자는 그 순간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떨어지는 자동차를 '피할 수 있었다'. 어떤가? 두 사람은 전혀 다른 행위를 했지만 그 결과는 완전히 일치하지 않은가? 이 경우 두 행위는 결과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말한 '차이가 없다'라는 것도 이처럼 결과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경우를 의미한다.

 

자, 여기까지 봐서는 도통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 이 따위 책 읽고 싶지 않아라고 소리치기 일보직전이라는 걸 알지만 당신이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라는 간지나는 제목에 '혹'한 순간 이미 무슨 얘긴지 확인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배길 수 없는 마음의 상태가 됐음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니 계속해서 얘기를 이어가 보자.

 

책을 읽지 않았건, 대충 읽었건, 혹은 누군가로부터 들었든 심지어 전혀 책을 읽지 않았든 우리가 어떤 책에 대한 얘기를 들었을 때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일련의 인상을 떠올리게 된다. 그건 저자와 관련된 개인적 경험일 수도 있고 책 제목에 대한 단순한 느낌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하루키의 1Q84에 대해 얘기한다고 할 때 실제로 나는 1Q84를 읽어본 적도 서평을 본 적도 그 내용을 누군가로부터 들은것도 아니지만 1Q84를 보는 순간 조지 오웰의 1984를 떠올릴 것이고 당연히 그 책과 어떤 관계가 있느냐고 물을 수 있다. 덧붙여 '하루키는 해변의 카프카를 시작으로 완전히 망가졌으며 그의 소설에는 잡다한 판타지와 야릇한 에로티시즘만이 남아 있을 뿐, 1Q84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전혀 기대할 만한 소설이 아니다'라고 신나게 씹을 수도 있다.

 

물론 누군가는 나의 생각이 아주 심각한 편견이라는 사실을 지적할 것이며 보지도 않은 책을 싸구려로 매도해버리는 것을 비윤리적이라고 비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내가 1Q84를 자세히 읽고, 이 책에 대한 글들을 찾아본 뒤 결국 당신의 비평에 동의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겠는가? 아마도 논쟁은 직장을 잃고 토론은 땅 속에 묻혀 평화롭고 조용한 세상이 도래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걸로 만족하는가? 텍스트는 갑론을박, 끝없는 논쟁을 통해 새로운 해석과 창작의 가능성을 낳는 원천이다. 그런데 당신과 내가 어설픈 합의를 보는 순간 이글이글 타오르며 폭발을 준비하던 해석의 다양성이 순식간에 사그라 들었다. 좀 더 올바른 행동을 한답시고 들인 노력이 오히려 텍스트의 무한한 잠재력을 말살시킨 셈이다.

 

물론 조금이라도 주의가 깊은 독자라면 분명 내 주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나는 책을 자세히 읽으면 모든 사람이 동일한 비평에 다다를 것이라는 전제를 내세우고 있지만 이 전제는 조금만 생각해봐도 수 십 가지의 반론이 떠오르는 근거 없는 주장이다. 하지만 나는 이 이야기가 완전히 쓸모 없는 얘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여기엔 우리가 두고두고 되새겨볼 만한 의미심장한 얘기가 남아있다. 그것은 바로, 비평의 획일화를 지양하자는 것이다.

 

책을 읽든 읽지 않든, 주워 듣고 하는 얘기든 아니면 내용을 잊어버려 횡설수설하든 이 모든 것들이 다양한 해석을 만들어내고 그로 인해 비평의 세계가 더더욱 시끄러워질 수 있다면, 그것을 그대로 긍정하는 것보다 그 수단의 정당성을 따져 줄을 세우는 일이 정말 더 가치 있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마도 ‘정당성 가리기’에 찬성하는 많은 사람들이 ‘나는 가수다’나 ‘한국 국가대표 축구 전술’에 대해선 부담 없이 비평할 것이다. 그리고 그 논평의 얕음을 깔보는 사람들을 향해 모든 의견은 나름대로 타당하기 때문에 그 내용을 막론하고 충분히 존중 받을 자격이 있다고 핏대를 올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책을 자세히 읽는 것만이 비평의 무대로 들어가는 유일한 입장권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비평은 고도로 단련된 분석행위이며 그것은 단 하나의 진실을 찾아 떠나는 고행이기 때문에 책을 읽지 않은 자, 대충 읽은 자 따위는 그 여행에 참가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을 말해 주면, 비평이란(=책에 대해 말하는 것) 결코 선생님이 불러주는 정답을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받아쓰기 시험이 아니라는 거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것의 진위를 따지고 점수를 매기는 일이 아니다. 비평의 세계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은, 수 많은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담론들을 비집고 그 사이에 오직 나만의 이야기를 끼워 넣는 것이다. 이것은 이 세상의 모든 이야기가 보관되어 있다는 바벨의 도서관에, 영원히 반짝반짝 빛날 당신의 책 한 권을 꽂아 두는 일과 같다.

 

이 책은 '읽지 않은 책'에 대해 '아는 척'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책이 아니라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마음껏 '말해도 되는 이유'를 가르쳐 주는 책이다. 제목만 보고 끌린 사람들은 채 5분이 지나지 않아 책장을 덮을 테지만, 피에르 바야르의 관점에선 당신의 그런 행동 또한 비난 받을 일이 아니라는 걸 명심하라. 심지어 이 책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당신이 다른 곳에 가서 이 책을 신나게 씹을지라도, 저자는 결코 당신을 원망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WiredHusky’님은?
전자회사에서 휴대폰 단말의 Interface를 Design하고 있는, 나름 최첨단 회사원입니다. 책 읽기를 좋아해 언제나 책을 끼고 사는데, 읽기만 하고 쓰지 않는 일이 먹기만 하고 싸지 않는 일처럼 느껴져 2년 전부터 글쓰기를 꾸준히 해오고 있습니다. 글쓰기도 직장생활도 사실은 사회적 영향력을 키우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며, 언젠가 이렇게 획득한 영향력을 발휘해 '배우려는 마음만 있으면 돈 걱정 없이 마음껏 배울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게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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