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채'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4.12.26 《빨간 집》 - 우리 가족을 소개합니다
  2. 2010.10.12 <미국의 송어낚시> -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
  3. 2010.03.29 <쾅! 지구에서 7만 광년> 북테스터 20분 모집! (2)
  4. 2010.01.19 <책이 되어버린 남자> - '그 책(Das Buch)'의 환상적이고 잔인한 여정 (2)

《빨간 집》 - 우리 가족을 소개합니다

 

 

 

 

마크 해던 |《빨간 집》 | 비채 | 2014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내 편을 꼽으라면 대부분의 사람이 가족을 말하지 않을까. 내게도 가족은 내가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의미로 자리한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가족을 떠올린다. 하지만 가족이란 울타리가 짐이 되는 사람들도 있다. 위로받고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부터 오히려 더 많은 상처와 고통을 안겨 주는 가족…. 분명 어떤 이는 도망치고 싶어질 것이다. 마크 해던의 《빨간 집》이 곧 폭발할지 모르는 불안정한 가족의 모습을 담고 있진 않을까. 책 제목부터 내게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서로의 존재를 외면하고 싶었던 남매가 어머니 장례식을 통해 너무나 오랜만에 재회한다. 서로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금전적, 육체적으로 나누어 돌보았다고 생각하는 두 사람. 하지만 그들 서로의 속내는 달랐다. 한편 서로 엇갈린 기억을 공유할 수밖에 없는 남매와 그들의 가족은 불현듯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가족여행을 떠나는데….

 

여행이란 게 그렇다. 마음이 잘 통하는 친구와 함께한다 해도 꼭 한 번은 싸우기 마련이다. 그만큼 쉽지가 않다. 하물며 남보다 못한 가족인 누나 안젤라와 남동생 리처드, 그들의 배우자와 여행 자체를 내켜 하지 않는 아이들이 함께한 여행은 어떨까. 이들의 가족여행은 처음부터 삐거덕거렸으며 위험천만하다.

 

안젤라와 리처드는 서로 부모님에 대한 기억 자체가 다를 정도로 거리가 있다. 리처드는 가족 곁을 떠나 당당히 의사로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졌지만 동생을 바라보는 안젤라의 마음은 꽤 복잡하다.

 

옆 좌석의 안젤라를 곁눈질했다. 그 옛날, 대학 술집에 앉아 있던, 어깨가 드러난 푸른색 원피스를 입은 소녀는 이제 온데간데없었다. 뚱뚱해지고 살갗도 처지고 장딴지에 정맥이 불거져 나와서 할머니가 다 된 모습에 그는 넌더리가 났다. (13쪽)

 

안젤라의 남편 도미니크는 아내가 불의의 사고로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이다. 이들의 부부생활은 엉망이다. 그들에겐 자식들이 있다. 알렉스, 데이지, 벤지…. 첫째아들 알렉스는 리처드의 딸(아내의 딸) 멜리사의 아름다운 외모에 반하게 되고 그녀를 향한 마음을 서슴지 않고 드러낸다. 데이지는 종교에 심취한 소녀로, 멜리사와 친해지면서 자신의 종교에 대한 믿음이 시험대에 처하는 상황에 놓인다. 막내 벤지는 나이 차이가 있는 형과 누나, 여기에 부모님까지 저마다 자신들이 가진 문제와 생각들이 벅차기에 가족들의 제대로 된 보살핌에서 살짝 벗어나 있다.

 

리처드의 가족 문제 역시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현재 리처드를 괴롭히는 것은 법정까지 갈지 모를 의료사고다. 그의 잘못이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분명 연관은 되어 있다. 리처드는 수시로 환자를 떠올리며 찾아가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이러한 상황에서 리처드는 아내 루이자를 통해 안정을 얻으며 좋은 관계를 이어 나간다.

 

한데 여행을 하면서 생각지도 못한 위기가 리처드와 루이자 앞에 나타난다. 그녀의 딸 멜리사는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아름다움과 매력을 지녔는데 다른 사람의 약점이나 아픈 곳을 본능적으로 잘 알아챈다. 교묘하게도 자신이 유리한 방향으로 상황을 이끌기도 한다. 솔직히 멜리사가 내 딸이라면 무서울 거 같기도 하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죄책감 없이 행하는 멜레사의 모습은 선뜻 예뻐하기 어려우니까. 멜리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장 두려운 문제를 데이지에게 털어놓지만 데이지의 반응에 마음이 상하고 만다. 데이지 역시 무엇인가 이끌리듯,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하며 양쪽 부모 모두를 긴장시키고 만다.

 

엄마도 사람이었구나. 이 당연한 사실을 어째서 그토록 모르고 지냈던 걸까. 당장이라도 손을 내밀어 엄마를 붙잡고 다 잘될 거라고 말해주고 싶어졌다. 그런데 불현듯 지난 세월이 백일몽처럼 밀려오면서 데이지는 시내로 장 보러 가는 엄마를 따라온 다섯 살짜리 어린애로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129쪽)

 

딸과 엄마 사이는 특별하다. 이 특별한 사이에도 서로에 대한 벽을 치는 일이 흔하디 흔하다. 사춘기 딸이 갑자기 심취해 버린 종교와 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은 편치가 않다. 자신이 가진 고통스러운 기억이 더 크기에 사춘기 딸의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볼 마음의 여유가, 엄마 안젤라에게는 없는 것일지 모른다.

 

이러한 가족끼리의 여행이 애초부터 순탄할 리 없었다. 수시로 삐거덕거리는 일이 생겼고, 그들은 나름의 해결 방식을 찾으며 또 서로에게 접근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부딪히고 마음이 상해 더 깊은 골이 생기기도 했지만 위로를 경험하기도 한다.

 

책을 읽으며 가장 아픈 이야기는 기형아를 사산한 안젤라가 수시로 아기를 떠올리며 힘든 상황에 놓인 부분이다. 사산아로 인해 그녀 스스로 더 고립되고 가족들과 멀어진 것은 아닌지. 안젤라는 자신의 아픔을 껄끄러운 올케 루이자에게 털어놓으며 루이자는 안젤라의 아픔과 고통, 상실 등의 복잡한 감정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깔끔하게 정리되는 해결책을 얻어야만 여행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여행이 끝난 후에도 그들은 각자의 생각과 고통 속에 놓여 있다. 하지만 처음에 만날 때와는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에 변화가 생겼다. 현실 속 우리 가족의 모습도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까. 우리 역시 큰 문제가 아니더라도 가족과 소소하게 갈등을 겪을 수 있기에 충분히 이해된다.

 

여덟 명의 가족이 8일간의 여행을 통해 만들어가는 이야기는 어느 한 사람의 시선이 아닌 각자의 눈에서 바라보기에 어쩌면 더 냉철하고 비판적이다. 그럼에도 서서히 변화가 일어난다. 다음에 그들이 다시 만난다면, 지금과는 조금 더 다른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 작가의 작품은 처음인데 가족을 바라보는 저자의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어 좋았으며 이야기를 통해 내 가족, 그리고 내 마음을 들여다보게 한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라떼12'님은?

책을 좋아하는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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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송어낚시> -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

 

리처드 브라우티건, <미국의 송어낚시>, 비채, 2006 

 


21세기의 초반인 지금, 지난 세기 동안 세계를 지배했던 미국의 위치가 상당히 흔들리고 있다. 가깝게는 미국 발 금융위기와 중동에서의 전쟁, 교토의정서 불이행 선언 같은 것이 ‘세계의 경찰’ 미국의 권위를 실추시키고 있다. -물론 그들이 자처한 것이나 다름없다. 

미국은 국가체제의 시작에서부터 필연적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말하게 됐다. 종교적 박해를 피해 신대륙으로 건너온 청교도 인들에 의해 건설된 나라이니 당연하다. 이후 미국은 ‘아메리칸 드림’을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시대별로 재가공하여 판매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골드러시, -1,2차 세계대전과 냉전시대와 최근 중동에서의 전쟁에서 미국이 반드시 수호 하겠다 나섰던- 자유주의, 정원 있는 저택과 행복한 중산층 백인 가정-개도 한 마리 있어야 한다- 등은 미국에서 성공적인 판매고를 올린 ‘아메리칸 드림’ 상품들이다. 

그러나 겉보기에만 좋은 미국사회의 병폐가 20세기에 들어 하나씩 터지기 시작했다. 1950년대 맥카시즘은 자유주의를 수호한다던 미국의, 미국적 정신에 큰 흠집을 냈다. 그리고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인종주의, 소수자차별에서 비롯된 혐오범죄, 가정폭력 등-오프라 윈프리 쇼의 주된 내용들이다-도 청교도정신을 가지고 세워진 미국이라는 나라, 꿈을 찾아 대서양을 건너온 이들의 나라에서 일상적인 일이다.
  리차드 브라우티건은 소설 <미국의 송어낚시>를 통해 화려하게 포장된 ‘아메리칸 드림’ 상품의 실체를 고발하고 진정한 미국의 꿈을 제시한다.

<미국의 송어낚시>의 문체는 장난스러운 동시에 진지하다. 유쾌한 동시에 우울하다. 난해하며 부조리하다. 이 소설 속 캐릭터들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고 -소설의 제멋대로인 플롯보다도- 무정형하다. 브라우티건의 소설은 전통적인 소설기법과 상이하다. 때문에 매우 정의하기 힘들다. 얼핏 초현실주의풍의 코미디로도 느껴진다. 그러나 이 소설은 짓밟힌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슬픔과 분노를 기반으로 한다. 소설을 통해 브라우티건은 잃어버린 아메리칸 에덴, 아메리칸 드림을 말한다. 

브라우티건은 이 소설 속에 몇 개의 대조적인 이미지를 내세운다. 희망찬 과거와 비통한 현재, 전원의 아름다움과 도시의 너저분함, 자연천국(natural paradise)과 사회연옥(social purgatory) 경쾌한 상상과 육중한 현실. 과거의, 진정한 아메리칸 드림의 모습과 현재 변질된 아메리칸 드림의 모습이다. 이것은 소설 속에서 ‘미국의 송어낚시 쇼티’라는 캐릭터로 형상화되기도 한다. 

소설에는 의사, 교장, 심지어 유명한 오페라 가수 마리아 칼라스도 불현듯 등장한다. 현실에서는 성공하고 존경할만한 인물들이지만 소설 속에서는 매우 이질적으로 보여진다. 브라우티건의 소설은 실패자들, 평판이 좋지 않은 빈민들, 먼지투성이 농부들, 포주와 창녀, 술주정뱅이 등 미국의 가난하고 피로하고 배고픈 자들이 모인 곳이다. 이 소외된 집단들의 거주지인 소설 속에서 위의 ‘성공하고 존경 받을만한 인물’들은 가해자가 된다. 소설 속 배경 역시 매우 폭력적인 장소이다. 포트와인으로 송어를 독살하고 유령이 출몰하고 착한 아돌프 히틀러가 양떼를 몰고 스탈린그라드로 향하고 살인마 젝더리퍼가 20세기의 시장이 된다. 폭력은 정치적 불신이 된다. 의사는 사회주의적 의료제도를 반대하고 간디의 비폭력 트로이 목마의 붉은 그림자가 내리고 쿠바의 송어낚시가 어떤가, 하는 질문에 “죽어버려 공산주의자 놈아”라는 대답을 듣는다. “이곳에서 낚시하면 머리를 부수겠다”고 말하는 간판, 송어강을 감시하는 FBI. 정치적 불신은 다시 또 폭력이 되어 돌아온다. 

소설의 마지막 챕터인 마요네즈는 죽은 송어를 위한 소스이다. 미국의 송어낚시, 진정한 아메리칸 드림은 죽었다. 조작된 아메리칸 드림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것이다. 조작된 아메리칸 드림은 원래의 그것이 있던 자리에 들어가 진짜 행세를 하고 있다. 브라우티건은 은유로써 그것을 소설에 투영했다. 쉽고 발랄하고 유쾌하지만 또한 서글프고 우울한 문체로 현대를 사는 미국인들의 절망을, 잃어버린 미국의 꿈을 이야기한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eins'님은?
록음악과 축구, 영화와 문학을 닥치는 대로 소비하는 대중문화 정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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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지구에서 7만 광년> 북테스터 20분 모집!


 -‘비채’에서 나온 신간 <쾅! 지구에서 7만 광년>를 읽고 리뷰를 써주실 북테스터 20분을 모집합니다. 예측불허, 상상초월! 지구를 지키고 싶은 구제불능 악동들의 우주 전쟁, 그 귀엽고도 위대한 모험담이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의 작가 마크 해던에 의해 펼쳐집니다.

- 도서명: <쾅! 지구에서 7만 광년>
- 도서 상세정보 : http://www.bandinlunis.com/front/product/detailProduct.do?prodId=3114474

모집 기간: 3월 29일(월) ~ 4월 4(일) 7일간
- 모집 인원: 20명(신청 댓글의 내용과 반디지수를 참고하여 선정합니다.) 

- 발표: 4월 5일 (책과 사람 -> 북테스터 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배송지 확인 : 2010. 4. 5(월) ~ 2010. 4. 6(화)
- 도서 발송: 4월 7일(수)
- 서평 완료: 5월 2일(일)까지 

- 신청 방법: 아래 질문에 대한 답을 해당 게시물 아래쪽(반디앤루니스 북테스터 공지 페이지)에 댓글로 달아주세요.
- 참여 방법: 정성껏 쓰신 리뷰를 반디앤루니스 서재에 올려 주시면 됩니다.

<질문>
누구나 학창시절을 떠올리면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한 분쯤 있으실 텐데요.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 혹은 대학교까지, 오래 기간 여러 선생님을 만나온 여러분에게 혹시 ‘사실 그 선생님의 정체는 ’외계 악당‘이었을 거야’라는 생각을 들게 했던 선생님이 있으신가요? (^^ㅋ) 그 선생님의 어떤 면이 ‘지구 선생님(?)’과 달랐는지 자유롭게 말씀해주세요~ ㅇ(^^ㅇ)(ㅇ^^)ㅇ

<책 속에서>
"그거 좀 위험하지 않아?" 나는 초조하게 말했다. 이미 상황은 충분히 나빴다. 만약 선생님들이 내가 자기들의 사적 대화를 엿들었다는 사실을 눈치챈다면, 나는 강제로 교문 밖으로 끌려나가 오후 간식 시간이 되기도 전에 펜햄에 처박힐 것이다. 찰리가 어깨를 으쓱했다. "물론 위험하지. 위험하지 않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어?"

[북테스터 신청하러 반디앤루니스 바로가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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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빨간來福 2010.03.29 22:41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가까이 하기엔....ㅎㅎㅎ

    아마존에 찾아보니 Boom이라는 작품인것 같네요. 에구, 전 그냥 영어로...

    • 반디앤루니스 2010.03.30 10:59 신고 address edit & del

      그러게 말이에요..빨간내복님이 한국에 계셨다면 쏭~~ 하고 보내드렸을 텐데요,,^^

      -현선 씀

<책이 되어버린 남자> - '그 책(Das Buch)'의 환상적이고 잔인한 여정

 

알폰스 슈바이거르트, <책이 되어버린 남자>, 비채, 2009


<책이 되어버린 남자>는 사람이 책이 되어버리고, 책이 된 사람이 편집자를 강간하고, 책 수집가, 비평가를 살인하는 기괴한 이야기다. 바로 '그 책(Das Buch)'은 책이 된 사람이며, 이는 곧 그 사람의 생각을 보여준다. 소설은 벼룩시장에 나온 임자 없는 기이한 책을 손에 쥔 한 남자, 수많은 책을 사 모으고 책 세계에 빠져들어 고립되어버린 그 사람의 환상적 여정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책은 사람에게 무엇인가? 책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책의 운명은 어떻게 결정되고 있는가? 왜 우리는 책을 읽고 있는가? 책을 소유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라는 질문들을 만들어내는 책의 세계에 대한 잔인한 항해를 하게 된다. 그래서 <책이 되어버린 남자> 속에는 소유하고 싶은 책을 손에 넣기 위해 골동품상과 목사를 살해하기도 한 ‘돈 빈센트’란 사람이나, 계단, 마당, 헛간에 이르기까지 집 전체가 온통 책으로 채워진 피렌체의 유명한 사서 ‘마글리아베치’, 사후에 무덤 주위를 책으로 에워싸 장식했던 출판업자 ‘알더스 마누티우스’의 일화가 소개되기도 하며,  ‘프란츠 카프카’에서 ‘얀그레스호프’, ‘에라스무스 폰 로테르담’에 이르는 작가들의 책에 대한 멋진 담론과 인용문들이 즐비하게 배열되기도 한다.

이 삶의 한 축이 되어버린 사람들이라면 책이 되어버린 남자, ’비블리’의 변신이 엄숙하게 느껴질지도 모를 일이다. “독서라는 세균이 요 몇 년 사이에 그의 피와 살 속에 침투해, 이제는 꼼짝없이 감염된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라는 구절은 사실 책벌레, 독서광, 간서치(看書癡)들에게는 공감할 수 있는 인식인 것처럼, 소설 속에서 ‘그 책’의 여정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결코 낯설지 않다.

무지하고 편협한 독자로부터 내동댕이쳐지는 ‘그 책’, 그리고 자신에게 필요한 부분을 오려대는 도서관장의 몰염치함(볼테르의 사후 이렇게 책을 오려내 만든 자료가 6천여 장이나 발견되었단다), 경제적 편익에 경도된 출판사 편집자의 외곬, 음침한 서고에 가치물로서 책을 수장시키는 수집광, 그리고 편견과 독선으로 책의 운명을 마구 떠들어대는 무책임한 비평가에 이르기까지, ‘그 책’이 벌이는 잔인한 복수극은 책의 본성을 방해하고 훼손하는 편협한 세상을 향한 자성의 촉구이기도 하다.

새 책을 구입해 펼쳐들 때 종이와 제본, 인쇄 잉크가 어우러져 뿜어내는 그 고유한 냄새가 얼마나 뇌를 흐뭇하게 자극해대는지, 그리고 벽들을 따라 죽 늘어선 책장에 빼곡히 꽂혀있는 책들이 주는 위안, 책을 읽고 있는 순간만큼의 평온과 세상으로부터의 안전한 격리가 주는 행복감은 책을 진정 사랑하는 사람의 느낌을 확인시켜준다. “판타지의 왕국으로 통하는 하늘을 나는 양탄자, 그것이 바로 책이다!”라는 문장은 바로 이 소설인 ‘그 책(Das Buch)’을 표현하는 한 마디가 될 것이다.

‘카프카’의 말처럼 “집 밖으로 굳이 나갈 필요가 없다”고 할 정도의 책 예찬은 아닐지라도, 책은 우리의 정신을 담는 유형의 그릇이며, 위대한 세계의 기적 중 하나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의인화 된 ‘그 책’의 재치 있는 적절한 행위가 상상력 넘치는 발상, 양념처럼 처진 약간의 인문학적 지식과 결합하여 책세상의 모두를 기막히게 표현해내고 있는 이 작품은 현명한 독서가 무엇인지, 책이 우리에게 무엇인지를 새삼 환기시켜준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 책을 싫어하는 사람들, 혹은 책을 잊고 사는 사람들 모두에게 저마다 독특한 느낌으로 다가설 환상의 소설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필리아님'은?
세상의 위협이나 추함에서 격리되어 책에 몰입하는 순간을 커다란 위안인 동시에 평온의 시간으로 여기며, 자기격려와 스스로를 고무하는데 독서만큼 유익한 수단이 없다는 것이 이젠 거의 꺾을 수 없는 신념이 되어버린, 그러나 관계의 매혹을 저버리지 못하는 그런 남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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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몬스터 2010.01.21 10:35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이 책은 예전에도 한번 들었던 책인데,
    그때나 지금이나 제목이 좀 섬뜩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ㅎㅎ

    • 반디앤루니스 2010.01.22 12:07 신고 address edit & del

      저도 저렇게 되면 무서울 거 같아요..^^;;
      물론 아직 멀었지만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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