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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8.13 들어가도 된다고, 말해줘 - <렛미인 1, 2>
  2. 2009.08.11 치명적인 유혹, 전혀 다른 뱀파이어 이야기 - <스트레인 1, 2>

들어가도 된다고, 말해줘 - <렛미인 1, 2>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 <렛미인>, 문학동네, 2009

 

뱀파이어 소녀의 헌신적 추종자인 남자가 피를 얻기 위해 죄 없는 소년을 나무에 거꾸로 매달아 목을 베고 피를 받는다는 살인 장면이 초입에 나오기에, <렛미인>의 첫인상은 극도로 혐오스러웠다. 아이를 키우는 아빠로서 장르를 불문하고 힘없는 아이가 학대받고 상처받는 장면이 나오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하기에 <렛미인>의 도입부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설정이었다. 그런 이유로 얼마 읽지도 않은 채 책을 권해준 이에게 책에 대한 혹평을 퍼부었다. 이게 뭐냐고, 뱀파이어 소녀 엘리를 사랑하는 늙은 남자 호칸은 결국 비겁한 변태 살인마와 다를 게 뭐냐고 말이다.

차라리 혈액은행을 습격하든 자기의 피를 뽑든 다른 방법을 찾았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엘리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해 봐야 비겁한 변명이라고 말이다. 책을 넘어 책을 권한 이에게도 싫은 소리를 했는데, 너는 너무 로맨티스트라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허용되는 게 어디까지일 거라고 생각하느냐고, 조폭영화가 의리니 뭐니 아무리 당의정마냥 감싸고 포장해도 결국 깡패새끼들 얘기 아니냐고, 희생된 아이의 부모는 마음이 찢어지는데 사랑 타령이 나오느냐고 윽박질렀다. 심히, 흥분했다. 그리고 흥분한 내 앞에서, 책을 권한 이는 조용히 답했다.

“이 이야기는 어쩔 수 없어요. 정말 괴롭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말하고 있어요. 전 이야기에 설득이 됐어요. 그리고 소녀와 소년의 사랑을 응원해요.” 라고.

두 권짜리 결코 만만치 않은 분량을 끝까지 참고 읽었다. 과연 네가 날 설득하는지 두고 보겠다, 하는 심정으로. 그리고 정말 인정하긴 싫지만, 나는 이 이야기를 인정했다. 나 역시, 우정이든 사랑이든 소녀 엘리와 소년 오스카르의 인연을 응원한다.
 


인정 안 할 수가 없다. 인정하기 싫었으나.

동화 <빨간 모자>를 보면
빨간 모자를 쓴 소녀는 어머니의 말씀을 안 듣고 늑대 출몰지역인 숲속으로 들어간다. 지극히 계몽적인 목적을 위해 쓰인 이 이야기는, 한 마디로 ‘남자를 조심하라!’는 내용이다. 가서는 안 될 길을 가서 늑대-남자-를 만나, 결국 순결을 잃는다고나 할까? 처녀의 흔적인 빨간 피는, 빨간 모자와 연결되어 섬뜩한 구석이 있다. 어떤 면에서는 뱀파이어 역시 조심해야할 늑대나 남자일지 모르겠다. 불로불사의 몸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희생자를 습격하기 위해선 별 수 없이 창밖에 매달려 ‘나 좀 들여보내 줘!’라 말해야만 하는 뱀파이어.

상대가 ‘들어와, 널 초대할게’라 말해야 겨우 상대의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다. 내가 줄리엣이고 상대가 로미오가 아닌 이상 남자, 또는 뱀파이어를 함부로 들였다가는 쪽쪽 빨린 후 내쳐지는 신세가 될 수 있다. 그러니 조심해라, 쯤 될까? 해서 전형적인 뱀파이어는 에로틱한 면모가 많다. 순진한 처녀가 냉큼 자기 방에 들일 정도로 미끈한 남자 내지는 키스마크 남길 엉큼한 눈빛으로 목덜미를 탐닉하는 뱀파이어라. 피가 모자라 헐떡이지만 왠지 끈적이는 신음소리가 새어나올 것만 같다.

그런데 <렛미인>은 전형적인 뱀파이어 이야기를 부정하고 나선다. <렛미인>에 어울리는 건 <빨간 모자>가 아니라 오히려 자전거 레이서 김훈의 <밥벌이의 지겨움>이다. 결국 뱀파이어도 ‘먹고 살자고’ 흡혈을 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어찌 보면 김훈의 <남한산성>일지도. 뱀파이어 소녀 엘리는 ‘너 같은 애들이 많니?’란 오스카르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아무리 배고파도, 사람이 사람을 물어뜯을 수는 없다는 일말의 양심 때문에 대부분의 뱀파이어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고 말이다. 살아서 죽을 것인가, 죽어서 살 것인가, 뱀파이어에게 에로티시즘과 관음이 빠진 대신 실존이 들어찼다.

그리고 일견 어울리지 않을 듯한 뱀파이어의 실존에 대한 고민은, 그저 거리에 나앉아도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 사회보장제도가 훌륭한 이야기의 배경, 스웨덴의 그림자 드리워진 상황과 기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알코올 중독자, 약물 중독자, 왕따 소년, 흔한 이혼과 고양이에게 둘러싸인 악취 풍기는 사람. 사람들은 뱀파이어처럼 그렇게 절실하게 삶을 구걸할 필요가 없지만, 절실함을 버린 대신 비루한 삶과 소외를 선물 받았다. <렛미인>은 기존 뱀파이어 소설에서 에로티시즘만 빼고 끝난 게 아니라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과 관찰까지 덤으로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백미는, 뱀파이어 소녀 엘리와 왕따 소년 오스카르의 우정, 또는 사랑이다.
작가의 데뷔작이라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탄탄한 이 작품은, 뱀파이어의 삶에 대해서도 다큐멘터리처럼 밀착 취재하여 디테일을 살렸지만, 두 소년소녀의 우정과 감정을 바늘귀에 꿴 명주실로 거미줄을 자아내듯 연약한 듯, 위태로운 듯, 안타까운 듯, 하지만 사랑스럽게 풀어냈다. 먹잇감인 인간의 종에 속한 ‘친구’를 지키고자 하는 엘리와, 자기보다 훨씬 강한 소녀 엘리를 지켜주고자 하는 달팽이집 속의 오스카르. 오스카르는 엘리를 구하고, 엘리는 오스카르를 구한다. 엘리의 정체를 알게 된 오스카르는 <렛미인>에 대해 선입견을 지녔던 나처럼 엘리를 혐오스런 눈길로 바라보지만, 마음이 움직이는 건 어찌할 수 없다.

초대받지 않았는데도 상대의 공간에 들어간 뱀파이어는 어찌되느냐는 오스카르의 짓궂은 질문에 엘리는 바로, 그 즉시, 초대가 없었음에도 문턱을 넘는다. 온몸으로 피를 쏟으며 힘이 빠져가는 엘리. 다급한 오스카르는 어서 오라고, 환영한다고, 자신의 공간으로 들어오라고 애타게 부르짖는다. 소년이 소녀의 절실함을 이해 못하고 살인귀, 괴물 취급을 했음에도, 소녀는 소년에게 들어가고 싶었던 것이다. 바다의 깊이를 알기 위해 바다로 걸어 들어간 소금인형처럼 엘리는 오스카르에게 들어가고자 했고, 그를 알고자 했고, 그의 위로와 사랑이 간절했던 것이다.
 


렛미인. 들어가도 되겠니? 쯤 이다만, 나는 이렇게 읽었다.

내가, 너에게, 다가가도 되겠니? 너의 삶으로, 내가, 들어가도 되겠니?


뱀파이어보다도 더 끔찍한 인간이라는 괴물이 인간의 탈을 쓰고 판치는 세상에서, 존엄이나  인권과는 거리가 먼 지점에서 비루한 삶을 좀먹듯 연명해가는 비겁한 삶 속에서, 살기 위한 본능과 흔들리는 양심 사이에서 갈등하는 진짜 괴물이 있다. 하지만 인간들 틈에 끼어있는 그 ‘괴물’은 오히려 더 ‘인간적’이기에 아련하다. 뻣뻣한 종이 책장에 여린 손가락을 베인 듯  엘리를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쓰리고 안타깝다. 오스카르와 엘리가 우정인지, 사랑인지 애매하게 만드는 엘리의 정체성, 상처 역시 쓰리고 안타깝다. 위선과 거짓으로 상대의 삶에 발을 걸친 듯하지만 이기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온몸으로 피를 쏟아낼 지라도 너에게 다가가겠다는 소녀가, 너무 안타깝고 애틋하다.

혐오와 선입견으로 시작했지만 괴물에게서 인간을 배웠다. 외로움 속에서, 거절당함의 두려움을 안고서 창밖에서 떨고 있는 소녀, 또는 뱀파이어에게서.

나는, 그녀만큼 절실한가? 삶이, 사랑이, 세상이, 그녀만큼 절실한가?

렛미인.

내가, 당신에게로, 들어가도, 될까요?

오늘의 책을 리뷰한 ‘짜가록키’님은?
외국어는 한 줄도 못하지만 한국어 듣기, 말하기, 쓰기를 좋아합니다. 이야기 배틀 형식의 교양 프로그램 ‘KBS 스토리텔링클럽 이야기 발전소’에 7회 출연, 5승을 거두었습니다. 블로그에 ‘찬이 아빠의 육아일기’를 연재하던 중 ‘EBS 라디오 멘토 - 부모’의 ‘고수 아빠 따라잡기’에 등장하기도 했지요. 여성조선에 ‘프렌디 아빠가 들려주는 그림책 세상’을, 유아독서신문 책둥이에 ‘책으로 만나는 아빠의 육아일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그 외 전적은 서울시 아마추어 복싱 선수권 대회 2전 1승 1패, 하지만 현재는 다이어트를 목표로 격투기를 수련하고 있습니다. 네 살 찬이의 아빠이자 동갑처럼 보이는 다섯 살 연상의 아내와 살고 있으며, 생김과는 다르게 판화를 전공했습니다. 글과 그림과 가족, 약간의 알코올만 있으면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행복할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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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인 유혹, 전혀 다른 뱀파이어 이야기 - <스트레인 1, 2>

 

기예르모 델 토로, 척 호건, <스트레인 1, 2>, 문학동네, 2009


에드워드의 달콤함에 빠져 있던 독자들은 꿈에서 깰지어다. 여기 색다르고 기괴한 뱀파이어 소설이 있다. <트와일라잇>은 물론이고 지금까지 나온 어떤 뱀파이어 이야기와도 다르다. <스트레인>의 뱀파이어는 아름다운 여자에게 끌리지 않고 유혹하지도 않는다. 또 몇 분 만에 2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의 피를 흡수할 수 있고 굳이 이빨을 사용하지 않고도 손쉽게 인간의 피를 얻을 수 있다. 그의 존재는 인간들에게 있어 질병이자 재앙이며 이야기는 이 순수한 포식자로부터 인간의 멸종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자네는 지금 검은 공단을 걸친 우울증 환자나 어금니를 숨긴 꽃미남정도를 생각하고 있겠지. 아니면, 바깥세계를 향한 저주에 갈등하는 실존적 존재라든가, <벨라 루고시, 애봇과 코스텔로를 만나다> 정도쯤 되는 영화를 떠올리고 있을 거야.”(<스트레인> 2권, p 26)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을 알게 된 건 그의 영화 <판의 미로>에서였다. 개봉 첫 날, <해리포터>나 <나니아 연대기>를 연상시키는 극장 홍보용 포스터를 본 친구와 나는 주저 없이 <판의 미로>를 선택했고, 우는 아이들의 소음과 극장을 뛰쳐나가는 아이와 엄마들 속에서 영화 관람을 마쳐야 했다. 홍보로 인한 실패였다지만 누구도 그 영화의 매력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물론 아이가 볼 영화는 아니었지만) 시종일관 어두운 영화 분위기와 소름끼치는 형상의 요정, 괴물들은 우리가 가진 판타지 정석의 틀을 부숴버릴 정도로 강렬했고 또 인상적이었다. 그런 그가 뱀파이어 소설을 들고 돌아왔다. 전 세계에 밀어닥친 뱀파이어 열풍에 편승한 소설이라는 생각을 한 독자들도 있겠지만 난 전적으로 기예르모 델 토로란 이름에 의지했다. 그의 이름을 달고 나올 책은 그 이상의 뭔가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어떤 뱀파이어를 창조했을 지 궁금하기도 했고.

깊은 밤, JFK 공항에 한 비행기가 착륙했다. 그러나 비행기는 착륙한지 몇 분 만에 여객기 불이 모두 꺼진 채 움직이질 않는다. 기계결함을 의심하는 관제탑 직원들. 하지만 이어 들어간 특공장교들에 의해 승객들이 모두 죽었음을 알아낸다. 착륙한 지 불과 6분 만에 일어난 일이라 관계자들은 테러로 인한 바이러스를 의심하게 된다.

연락을 받고 온 질병관리센터의 에프와 노라는 그 속에서 생존자 4명을 발견하고 격리한다. 그리고 화물칸에서 흙으로 속을 채운 커다란 직육면체 나무상자 또한 발견하는데, 화물목록에 기록이 없는 이 나무상자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리고 집으로 돌아간 생존자들의 변화와 함께 시체 보관실에서 시체들이 전부 없어지는, 설명할 수 없는 사건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나는 곧 엄폐이자 일식이다. 나는 인간을 마시기 위해 왔노라.

책에서 ‘마스터’의 존재감은 엄청나다. 큰 키에 말라비틀어진 검은 피부, 날카로운 노란 이빨에 속이 들여다보일 정도의 투명한 피부로 묘사되는 그의 모습은 세상에 이치에 맞지 않을 뿐더러 누구보다도 막강한 존재감을 자랑한다. 또 그와 마주치는 살아있는 존재들은 어떤 이는 경외감으로, 어떤 이는 절대적 공포심으로 무릎을 꿇게 된다. 이와는 달리 다소 실망스러웠던 인물은 질병관리센터의 에프였다. 비행기의 이변을 빨리 알아채고 ‘마스터’에게 대항하는 인물이지만 여느 할리우드 재난영화의 주인공처럼 전형적인 인물이다. 할리우드 재난영화를 보면 대부분의 주인공이 각 분야의 전문가인 과학자나, 교수, 의사 등인데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 상황을 헤쳐 나간다는 공통점이 있다. <스트레인>의 에프도 다르지 않았다. 아들 ‘잭’을 위해 헌신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감동적이지만 진부했다. 아마도 나중에 할리우드에서 영화로 제작되는 게 아닌가 생각 되는데 그걸 의식한  듯한 에프의 캐릭터가 아쉬웠다.

<스트레인>에서는 과거 스페인 독감에서부터 최근의 SARS나 신종플루까지 요즘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바이러스에 대해 말한다. 또 책 곳곳에 9.11에 대한 공포의 잔재가 깔려 있는데 비행기의 이상에 제일 먼저 테러 의심을 한 것도 이와 상통한다. 결국 뱀파이어라는 소재를 빌려 현대 사람들의 근원적 공포심을 자극한다고 말할 수 있다.

제일 무서운 건 공황상태라고 했던가. 믿을 수 없는 사실에 사람들은 대항할 힘조차 잃고 마는데 바로 조금 전까지 친절한 이웃이었고 주말이면 교회에서 만나던 친구들이 피를 얻기 위해 자신의 몸을 찢는 다는 걸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거대한 재앙 앞에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가족조차 지킬 수 없는 인간의 무력함을 나타낸다. 뱀파이어에게 피를 빨리고 점점 변화하는 인간들이 피를 빨기 위해 귀소본능처럼 집부터 찾아간다니 이 아이러니한 상황을 말해 무엇 하겠는가. 이 모든 상황과 기존의 뱀파이어의 틀을 깬 자잘한 설정까지 창조해 낸 기예르모 델 토로에겐 역시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척 호건과 공동작이지만) 

2권의 끝에 ‘마스터’와 같은 고대의 존재들이 더 나온다. 이어지는 얘기에서 뱀파이어와 인간의 전쟁이 될지 협정을 깬 뱀파이어와 그렇지 않은 뱀파이어와의 전쟁이 될지 궁금하다. 전쟁은 누구의 승리가 될 것인가. 이미 경고의 등은 켜졌다. 일주일이면 맨해튼이, 석 달이면 미국이, 반년이면 전 세계가 그들의 손아귀에 떨어 질 위기에서 인간들은 다음 세대를 맞이할 수 있을까? 이야기는 아직 1부만을 보여줬을 뿐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삶의 향기’님은?
여러 해 책을 멀리한 시절을 후회하며 열심히 책을 읽고 있습니다. 지금가지 읽은 책보다 앞으로 읽을 책이 훨씬 많다는 것에 감사함과 즐거움을 느끼며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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