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디앤루니스'에 해당되는 글 212건

  1. 2015.01.27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달리기가 가르쳐준 삶의 의미에 대해
  2. 2015.01.26 작가 각자
  3. 2015.01.26 《Paint It Rock》 - 만화라고 우습게 보지 마라
  4. 2015.01.23 《소비를 그만두다》 - 왜 사는데
  5. 2015.01.22 《느릅나무 아래 욕망》 - 원하고 욕망하죠
  6. 2015.01.21 《친구사이》 - 아모스 오즈의 세계
  7. 2015.01.19 겨울에 어디서 책을 읽고 있나요
  8. 2015.01.16 [서점에서 만난 사람] 젊음의 뒤안길에서 - 손아람
  9. 2014.12.09 《픽션들》 - 처음에서 영원으로
  10. 2014.12.05 다시, 소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달리기가 가르쳐준 삶의 의미에 대해

 


무라카미 하루키 |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문학사상 | 2009


책을 추천하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독서를 워낙 즐기는 탓에 한꺼번에 여러 책이 아우성쳐서 골치가 아프다라고 말한다면 뻔한 거짓말이겠지만. 암튼 누군가가 공개적으로 추천한 책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내 경우엔 추천한 사람이 더 궁금해진다. 그래서 책을 추천한다는 건 어딘가 약간은 부끄럽고 겸연쩍은 일이 되어 버렸다. 이럴 때면 가급적 내가 하는 일과는 전혀 상관없는 보편적 성격의 책을 고른다. 아무래도 그런 편이 남 얘기 하듯 책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고 솔직하고 편하게 독자 입장에서 책에 대한 인상을 펼쳐놓을 수 있어서 좋다. 내겐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란 그런 책이다.

 

‘적어도 끝까지 걷지 않았다’라고 무라카미 하루키가 책 말미에 써놓은 자신의 묘비명을 나도 달리기할 때마다 곱씹곤 한다. 그 말을 생각하며 달리면 희한하게도 어떡하든 계속 달리게 되고 지친 와중에도 기분이 상쾌해진다. 이 책을 읽고 이미 수많은 사람이 달리기를 즐기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아니, 사실 들은 바는 없지만 그럴 것이라고 충분히 확신하게 된다. 책을 읽다가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가 달리도록 만드니까. 스무 살 이후 동네 운동장 몇 바퀴도 뛰어본 적 없는 게으른 나 역시 달리고 싶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2009년 1월이었다. 무척 추웠던 휴일 아침, 아무도 없는 천변을 달리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알 턱이 없던 나는, 달리기를 하면서 스스로 감격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 느낌은 거창하게 말하면 어떤 내면적 ‘만남’ 같은 것이었다. 그날 이후 달리기를 시작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갑자기 긴 거리를 달리게 된 것은 아니었다. 틈나는 대로 달리면서 점차 거리를 늘려나갔다. 몇 달이 지난 후엔 10킬로미터를 편하게 달리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 해엔 하프코스를 완주하게 되었다.

 

내가 하는 일은 건축설계다. 이 일로 말하자면 알려진 만큼 멋있거나 폼 잡는 일이 분명히 아니다. 대신 알려진 것 이상으로 고되고 에너지를 많이 필요로 하는 일임엔 틀림없다. 하루키가 달리기를 자신의 고된 글쓰기 인생을 지속하게 해주는 숭고한 정신적 ‘의식’으로 삼은 걸 보며 나 역시 달리기를 내 고된 직업을 계속 이어나가게 해주는 ‘의식’으로 삼고 싶었다. 그리고 그처럼 달리기를 하며 글을 쓰고 싶었다. 그렇게 흉내내다보니 일을 하면서 달리고 글도 조금씩 쓰는 삶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6년이 흘렀다. 여전히 건축설계를 하고 틈나면 달리기를 한다. 글을 쓰다 보니 책도 몇 권 펴냈다. 지금의 삶을 모두 달리기를 시작한 탓으로 전제 할 수는 없겠지만 서른아홉이었던 그 해 1월, 이 책을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조금 궁금하긴 하다.

 

특별한 다짐을 위해 며칠간 하루 20킬로미터 이상을 걸었던 2010년 12월 겨울 지리산에서도 이 책은 나와 함께 있었다. 아테네의 폭염을 이기고 마라톤 풀코스를 처음 완주했던 대목을 읽으며 살을 에는 눈보라를 뚫고 산길을 걷는 내 상황이 재밌어 혼자 웃었던 기억이 난다. 트래킹을 마치고 민박집에 몸을 뉘여 책 몇 꼭지를 읽다보면 기다리고 있는 다음날 행군이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았다. 외려 마음이 훈훈해지면서 금새 잠이 들었다. 어디선가 훈풍이 불어오는 듯한 그의 후끈한 이야기가 지쳐있는 심신에 무척이나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하루키의 언어는 종종 소재로 삼는 이야기를 훌쩍 넘어서서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을 이야기 하곤 한다. 하루키의 그런 면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적잖은 공감과 위로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리드미컬하게 팔과 다리가 움직이고 중력을 이기며 땅을 밀어내어 몸이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정신을 집중해서 알아간단 건 어떤 삶의 비밀 하나를 이해하는 것과도 같다. 5킬로미터든 10킬로미터든 21킬로미터든 한 발자국씩 달리고 나면 소진된 육체와 정확하게 반비례되는 정신적 충만함이 채워지는 것이다. 긴 거리를 천천히 달려간다는 행위가 신체단련의 차원을 넘어 자기수양의 도구가 된다. 책을 읽으면 누구라도 그런 도구가 하나쯤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지금, 겨울의 한복판에서 다가오는 봄을 기다리며 책을 다시 펼친다. 봄을 기다리는 시점에서 새로운 내면의 다짐과 사색이 필요할 때 아주 제격이다. 엊그제도 호수 공원을 달렸다. 어느덧 이렇게 달린 지 6년이 되어가는구나 생각하면서. ‘젊은 날의 믹재거는 마흔다섯이 된 자신을 상상할 수 없었다’라는 책의 구절을 되뇐다. ‘누구든 나이를 먹으며 상상할 수 없었던 세계 속에 몸을 두고 살아가고 있다. 그 세계에 있는 것들을 받아들이면서 일단 살아가야 한다’고 하루키는 말했다. 그러고 보니 어느덧 나도 마흔다섯이다. 강물을 생각하며, 구름을 생각하며 그저 소박하고 아담한 공백 속을, 정겨운 침묵 속을 계속 달려온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은 여간 멋진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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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과 서평을 나누고자 반디앤루니스 '오늘의 책'을 펜벗과 함께 만들어 갑니다.
펜벗이란 서평을 쓰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를 의미합니다.
매주 월요일, 성실한 서평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 명예 펜벗 일문일답


 


최준석 | 건축가. 건축사사무소나우대표
건축사. 건축사사무소 NAAU를 운영하면서 주택, 어린이집, 기숙사, 기업사옥 등 다양한 건축설계를 진행 중. 서른여덟 살 때 집이나 글이나 ‘짓는’ 건 매한가지라는 소소한 깨달음을 얻은 후, 본업인 건축설계 틈틈이 글짓기에도 즐겁게 공을 들이고 있다. 건축은 ‘삶을 담는 그릇’이라는 정의를 여전히 신뢰하기에 겉모양이 현란한 외향적 건축보다는 삶을 위해 소소한 배경으로 존재하는 내성적 건축을 좋은 건축이라 믿는다.

첫 책 《어떤 건축》이 2010년, 두 번째 책 《서울의 건축》이 2012년, 그리고 작년에 《서울 건축 만담》이 나왔다. 주기상으로 보면 2년에 한 번 책을 내는 셈이다. 우연한 작업 결과인가. 모종의 ‘자신과의 약속’인가.


자신과의 약속까진 아니지만 첫 책을 내고 대략 2년마다 한 권씩 책을 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 했었다. 하지만 사무소 운영하면서 책을 쓴다는 게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고 그렇게 하고 싶다고 될 일도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2년 주기로 책이 나오고 있는데 특별히 지키려고 애를 쓴 적은 없다. 우연히 그렇게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취미 이상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정신적인 소모가 많은 일이다. 좋은 글에 대한 욕구가 클 때면 더 할 테다. 밥벌이를 위한 노동 이후, 시간을 쪼개 글을 쓰고 있다. 당신은 왜 글을 쓰려 하는가.


처음엔 글쓰기를 노동과 다른 종류의 일로 생각했다. 그렇다고 취미로 여기지도 않았다. 글쓰기를 통해 건축실무에서 미처 표현하지 못했던 생각들을 표현하면서 스스로 위로받고 싶었던 것 같다. 쉽게 말하면 일종의 대리배설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글쓰기 자체를 통한 자기정화의 의미가 좀 더 큰 것 같다. 글을 쓰고 돈을 받는 일이 많아지면서 글쓰기가 점점 노동으로 느껴지고 있다는 게 조금 유감이다.

프로필 중, 집이나 글이나 ‘짓는’ 건 매한가지라는 표현을 했다. 좋다.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매칭이다. 지금껏 지은 3권의 책에 대한 리뷰를 한다면. 글이 원하는 설계대로 잘 지어졌는가.


‘짓는다’는 표현이 좋다. ‘만든다’는 그 자체로 완결의 의미가 있고 만드는 사람이 더 중요한 느낌이지만 ‘짓는다’의 의미는 밥이든 집이든 글이든 짓고 나서 그것을 먹고살고 읽는 사람까지를 포괄한다고 생각한다. 책들이 잘 지어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건 독자들의 몫이 아닐까.

과거 어떤 책을 읽었고, 현재 어떤 책을 읽고 있는가. 분야든 상세한 제목이든 관계없다.

건축 관련 책부터 소설, 실용서 가리지 않고 보는 편이다. 한꺼번에 여러 권을 보는 스타일이라 일이 바빠지면 마무리가 잘 안 되는 문제가 있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은 《세상물정의 사회학》과 《논어》다.

 

추천 책에 대한 한마디.

행동하게 하는 책들이다. 《빵굽는 타자기》를 읽고 무슨 글이든 써야겠다고 마음먹었고, 《여행의 기술》을 읽고서 생각만 하던 먼 여행을 실행했다. 《집을 생각한다》를 읽으면 내 가족을 위한 집을 짓고 싶어진다. 최근에 읽은 《건축과 감각》은 건축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해주었다.

일반적인 서평이라기 보다, 주제를 정해 책을 고르고 글을 쓰는 작업이었다. 어땠는가. 독자들이 ‘겨울’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작성한 서평을 둘러보았다면,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개인적으로 겨울이라는 계절의 다면성을 좋아한다. 겉으론 추워서 움츠려있는 듯 보이지만 속에는 곧 다가올 봄을 기다리는 열망이 있다. 겨울은 다른 계절보다 사람마다 다양한 느낌으로 기억되고 표현되는 것 같다. 서평을 몇 개 읽으며 겨울이 새삼 참 복잡한 계절이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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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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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int It Rock》 - 만화라고 우습게 보지 마라

 

 


 

남무성 | 《Paint It Rock》 | 북폴리오 | 2014


한국 어른들은 만화책을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고 다른 책을 많이 읽는 것도 아니면서 만화책은 그저 아이들이 심심풀이로 보는 ‘유치한 것’으로 꾸짖기 일쑤다. 정치적으로 유독 피곤한 시대를 살아 그런지 우리 부모 세대는 상대적으로 정상적인 문화생활을 누리지 못했고, 문화를 받아들이는 태도와 사고가 경직된 탓도 있다. 문제는 그다음 세대가 어른이 되어서도 자신의 부모 세대 가치관을 그대로 물려받아 만화를 깎아내린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무지의 슬픈 대물림이다. 8년 전, 붐비기로 악명 높은 도쿄 지하철 안에서 전과 크기만 한 소년챔프를 정독하는 정장 차림의 일본인 회사원을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만화 보는 사람들을 한심하게 여기는 한국 어른들은 나를 더 한심하게 만든다. 그 어렵다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이나 칸트의 《비판》 시리즈, 《논어》와 《맹자》를 만화로 풀어내면 얼마나 이해하기가 쉬워지는지 모르는 것일까. 알면서도 천시하고 무시하는 건 알량한 지적 허영이자, 경험하지 않고 단정 짓는 편견과 선입견 이상 이하도 아닐 것이다.

북 치고 장구 치다

남무성의 《Paint It Rock》도 한국 ‘어른들’은 그저 코흘리개들이 좋아하고 환호하는 일개 만화책으로 여겼을지 모른다. 하지만 척 베리(Chuck Berry)부터 콜드플레이(Coldplay)까지 록의 60년 역사를 되돌아보는 이 책의 첫 권을 읽었거나 작가의 지난 작품 《Jazz It Up》을 읽어본 사람들은 그 비웃음들이 얼마만큼 어설프고 쓸데없는 것인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만화여서 쉽다는 게 얼마나 큰 장점이고 읽는 사람들에게 축복인지 저들은 아직 잘 모른다. 단지 그 만화를 그려낼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만 남을 뿐이다.

《Paint It Rock》이 좋은 건 글과 그림을 모두 음악평론가인 작가가 직접 쓰고 그렸기 때문이다. 이는 언뜻 가벼운 우연처럼 보여도 매우 중요한 사실인데, 한 장르의 통사를 살피는 과정에서 개인 사유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집필을 위한 자료 찾기와 정리는 누군가 도와줄 수 있겠지만, 생각은 온전히 개인의 몫이고 능력이므로 남이 해줄 수 없다. 생각한 이가 스스로 표현했을 때 더 논리적이고 설득력을 띠게 되는 건 당연한 일. 그런 면에서 남무성은 남들은 하나도 갖기 힘든 글과 그림이라는 두 재능을 모두 가졌고, 록 역사에 그것을 아주 잘 발휘해 내었다.

웃기니까 만화다?

이 책은 일단 웃기다. 무릇 역사란 어느 장르건 진지한 법인데 이 책은 진지함을 유머로 부드럽게 만든다. 다루는 내용은 의도한 과장과 개그 코드를 빼면 모두 사실(Fact)이어서 웃으면서 록의 지식을 하나하나 자신의 머릿속에 쟁여나갈 수 있다. 바로 여기에 만화책의 힘이 있는 것이다. 물론 《Paint It Rock》은 어쩌면 만화책을 가장한 ‘진짜’ 록 역사책일지도 모른다. 작가도 충분히 의식한 듯 “만화책에 글이 왜 이렇게 많으냐”며 “해골 아픈 이야기들”을 원망하는 독자들을 가정한 걸 볼 수 있는데 실제로 이 책은 만화책이라고 쉽게 덤벼들었다가 낭패를 볼 만큼 ‘글’이 많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수많은 밴드와 뮤지션들이 얽힌 관계, 각종 상황을 한 자리에서 풀어내야 하니 어찌 그림으로만 가능했겠는가. 쥘 베른의 책에서 독자의 숨돌림을 도운 게 삽화라면, 남무성의 책에선 글이 그 역할을 했다.

듣기의 미덕

그림도 많고 글도 많아서 이 3부작을 읽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독자의 시간을 위협할 요소가 바로 음악이다. 작가도 책 속에 언급해두었듯 이 책은 록에 관한 이야기다. 당연히 음악이 먼저고, 이야기는 그 배경이 될 수밖에 없다. 이 책의 유일한 약점이랄까. 그것은 “자우지장, 두다다다”의 의성어로만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책이라는 매체의 한계와도 직결된다. 책이 다룬 뮤지션들의 대표곡이 담긴 컴필레이션 CD를 한 장씩 부록으로 붙여도 될 법했건만, 역시나 저작권 문제라는 큰 장벽 때문에 포기해야 했으리라. 이 난관은 독자 스스로 헤쳐나가야 한다. 방법은 하나, 책에서 언급한 앨범과 곡들을 직접 찾아 듣는 것이다. 요즘 같이 좋은 세상은 이럴 때 활용하라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CD를 구하기 힘들면 음원 사이트로 가면 되고 거기에도 없으면 유튜브라는 괴물에게 도움을 청하면 된다. 필자도 해봤는데 웬만한 앨범과 곡은 다 찾아 들을 수 있다. 작가가 이 책을 집필한 취지도 좋은 록 음악들을 함께 듣자는 데 있는 만큼 듣기는 《Paint It Rock》을 완전히 소화하기 위한, 어쩌면 읽기보다 더 본질적인 행위일지 모른다.

입문자용이 아니다

에필로그에서 남무성은 이 책이 “어린 음악 팬들에게는 정보를 주고 나와 동시대를 살았던 중년들에게는 향수를 드리고 싶었다.”고 했다. 이 책이 입문자용이면서 입문자용이 아닐 수도 있지만 말이다. 꾸준히 록 음악을 찾아 들어온 사람들에게는 이 책이 좀 가벼울 수 있는 반면, 록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겐 매우 버거운 내용일 수도 있겠다. 우선 등장하는 뮤지션들 수가 엄청나고 그에 따른 앨범과 곡 수도 셀 수 없이 많다. 그래서 처음에 겨냥했던 독자층(=록 입문자)이 이 책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선 록에 관해 좀 더 아는 사람보다 몇 배는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할 것이다. 뮤지션 이름도 외워야 하고 그들의 관계도 파악해야 하고 앨범도 찾아야 하고 곡도 찾아야 한다. 찾으면 또 들어야 한다. 그나마 얼터너티브 록은 짧고 명쾌하지만 프로그레시브와 아트록 쪽으로 가면 듣는 것 자체가 보통 일이 아니다. 브릿팝은 감미롭지만 헤비메탈이 만만치 않은 것 역시 기나긴 아트록 러닝타임의 압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책은 단순한 입문자용이 아니다. 록에 관심이 있고 록을 사랑하는 사람 또는 앞으로 그럴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 자기가 아는 만큼 섭취하고 즐길 수 있는, 굳이 따지자면 ‘중급’ 정도 수준의 서양 록 통사라면 맞겠다. 뉴메탈이 빠진 것에 일부 사람들이 아쉬움을 느끼는데, 저자의 주관이다. 주관이 배제된 저작은 있을 수 없다. 매체가 가진 오래된 특징, 관행을 본다면 그리 큰 오점이라고는 볼 수 없다. 물론 콘과 시스템 오브 어 다운까지 나왔다면 더 재미있었겠지만 그에 비길 만한 재미와 감동이 《Paint It Rock》에 있으므로 더 이상 트집거리는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린 시절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삼국지》를 다시 읽는 기분이었다. 요코야마는 따분한 이문열의 《삼국지》를 내 기억에서 밀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다. 남무성도 마찬가지다. 록에 취하고 싶은 자들은 이 책을 집어라.

 

오늘의 책을 리뷰한 '돗포'님은?

버트란드 러셀을 좋아하고 도스토예프스키에 빠져 있으며, 록앤롤/ 재즈/ 블루스를 닥치는대로 섭취중인 30대 '음악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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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를 그만두다》 - 왜 사는데


 

 


히라카와 가쓰미 | 《소비를 그만두다》 | 더숲 | 2015

 


현대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는 참으로 많고 첨예하다. 2015년 1월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는 갑과 을의 논쟁, 그리고 폭력이다. 어린이집 아이를 학대한 보육교사, 땅콩회항으로 불붙은 을을 향한 갑의 횡포. 물론 이 말고도 한둘이 아니지만 거의 모든 현안이 덮일 만큼 크게 동요하고 있다. 이 문제들을 살펴보면 단순한 폭력의 문제는 아니다. 유아 학대를 보면 맞벌이 때문에 아이를 맞길 수밖에 없는 가정, 보육교사의 과도한 노동환경, 어린이집 운영에 관한 비리가 얽혀있고 갑, 을 문제 또한 노동과 돈에 대한 문제가 얽혀있다. 이는 비단 어린이집에 CCTV 하나 설치한다고, 가진 자들이 친절함을 장착한다고 해서 해결될 간단한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돌아가 보면 '돈', 자본으로 귀결된다. 그럼 돈 문제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돈이 신앙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살게 되었는가. 왜 가진 자는 더 가지게 되고 자신들을 위한 법률을 만들고 해석하는 동안 그렇지 못한 자는 늘 박탈감에 시달리고 일자리를 걱정해야 하는가. 많이 '소비'하는 것을 미덕이라 여기며, 더 많이 소비할 능력이 있는 자들을 칭송하고 동경하며 떠받드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는가. 저자는 이런 우리와 다르지 않은 금전 만능주의의 사회, 자국 일본의 문제점을 살펴보고 있다. 물론 이 책이 이러한 거대한 담론을 이야기하는 책은 아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이제 더는 생산의 주체가 아닌 '소비'의 주체가 되어버린 '개인'의 모습을 돌아보며, 소비를 위해 살아가는 일본 사회에 그 대안을 제시하는 책이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도 참 비슷하게 변하고 있다. 가족중심의 사회에서 서구사회처럼 '개인'을 중시하는 사회로 바뀌었고, 기업들은 '시장창조'라는 이름으로 지역과 가정을 잘게 쪼개 개인을 만들고 개인의 욕망을 환기해 '소비자'를 만들었다. (89쪽)


 

이를 미개 시장으로 확대한 것이 바로 '세계화'다. 우리는 '소비'의 주체가 되어 기업들이 환기한 욕망을 따라 '소비'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대형 상점이 들어서 지역 경제 기반이 흔들리고 이를 따라 형성된 시민들의 긴밀한 관계 역시 파괴된다. 우리는 철저하게 노동과 생산이 분리되어 그들을 위해 일하고, 또 소비한다.

 

이를 해결할 방법으로 저자는 소비자에서 생산자가 되자고 말한다. 창업이 아닌 '소 상업', 돈벌이가 아닌 '살아가기'가 중심이 된 '탈소비자'를 생각하자고 한다. 싸게 사는 것이 아닌 비싸도 가치 있는 소비를 하는 것, 적게 벌되 잘 순환시키는 것, 상품 경제 속에 '증여'와 '교환'을 제시한다. 이를 통해 '경제성장을 하지 않는 사회'로 재설계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 말한다.

이 책은 오로지 소비 그 자체에만 초점이 맞춰있는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닌 누군가에 의해 강요된 욕망만을 좇아 사는 우리 모습에 좋은 충고를 들려준다. 그러나 아쉬운 부분은 이 모든 것들을 조금 두루 뭉실하게 제시한다는 것이다. 책의 3분의 1 정도는 일반적인 자기계발서에서 보이는 경험담이 대부분이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우리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수필이나 새로운 대안을 제안한 입문서 정도로 본다면 꽤 괜찮을 책이고, 만일 그전에 이와 관련된 책을 읽었거나 자주 접해 보았던 사람이라면 조금 아쉬울지도 모르겠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락아프리카'님은?

밴드 아프리카의 보컬리스트입니다. 역사(고대사)와 미스터리, 추리, 스릴러 소설 분야의 책을 좋아합니다. 우리 부부를 선택하여 함께 살게 된 사연 많은 길고양이 4마리와 정도사라 불리는 드러머 남편과 유유자적, 대책 없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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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릅나무 아래 욕망》 - 원하고 욕망하죠

 

 



유진 오닐 | 《느릅나무 아래 욕망》 | 열린책들 | 2011


 

지하철을 탈 때마다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그늘이 져 있다. 처음에는 피곤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하루를 열심히 일했으니 퇴근길의 얼굴이 어두운 것이고 다음날 출근길 얼굴이 어두운 것도 피로가 덜 풀려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가만히 보니 낮에도 객실 안의 사람들 얼굴에는 그늘이 져 있었다. 안에서는 어두운 얼굴도 지하철 밖에서 봤을 때는 그늘이 없다. 낮에는 활기가 넘쳐야 하니 피로와는 상관없을 텐데 낮에도 얼굴이 어둡다는 것은 피로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전철을 벗어나 밝은 길거리에서 보면 얼굴이 어둡지 않다는 것도 피로가 원인은 아닐 것이다.

조명 때문이었다. 지하철 객차의 불빛은 사람 머리 뒤에서 아래로 내리쬔다. 빛이 닿지 않는 얼굴 면에는 그늘이 지는 것이다. 지하철에서 빛을 많이 사용해서 사방을 밝게 한다면 얼굴에 그늘이 지지 않겠지만, 천장 가운데에 매달린 형광등 하나로만 객차의 밝기를 결정하니 빛이 제대로 닿지 않는 곳이 생기고 얼굴에 그늘이 서린다.

지하철 창문을 바라보면 내 얼굴에는 그늘이 져 있다. 다른 사람들의 얼굴도 어둡다. 뭉크의 그림 속 얼굴처럼 얼굴은 늘어져 있고 우울한 기운이 가득하다. 그런 얼굴을 마주 보고 있으니 마누라의 뽀뽀를 받으며 출근한들 지하철만 타고 나면 기분이 찌뿌둥한 것이다. 지하철의 조명은 하루에 영향을 미친다.

사람은 머리 위에 있는 것에 영향을 받는다. 무엇이 되었든 힘이 세든 약하든, 좋든 나쁘든, 어둡든 밝든 힘 아래에 있기 시작한 때부터 힘의 영향을 받는다.

《느릅나무 아래 욕망》에서 등장인물 각자에게 영향을 준 것은 욕망과 어머니였다. 아버지인 이프리엄 캐벗은 탐욕 아래에서 무자비하게 재산을 넓혔고 아이들을 막 대했다. 둘째와 셋째 아들인 시미언과 피터는 욕망이 컸기에 아버지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늘 말하고 다녔다. 막내아들 에벤은 죽은 어머니를 사랑했다. 그는 어머니에게 복수한다며 아버지의 새 부인인 애비 퍼트넘과 관계를 맺었다. 둘 사이에서 아이를 낳았다. 아이를 낳는 것이 목적은 아니었다. 아버지를 욕보여서 어머니의 복수하려는 것이었기에 아이를 낳은 뒤에도 애비 퍼트넘에게 사랑한다 속삭였다. 그는 아버지의 침상을 끊임없이 더럽혔다. 애비 퍼트넘은 농장을 갖겠다는 욕망으로 결혼을 했다. 에벤에게 성적인 욕망을 느껴 에벤을 유혹했지만 에벤이 다가오지 않아 힘들어했다. 그러다 에벤이 자기에게 오지 않는 이유가 에벤에게 깊게 영향을 끼친 엄마의 그림자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그녀는 그림자를 걷어 내고 싶어 했다.

한 가족의 집에 애증으로 이글거리는 눈동자와 탐욕에 가득 찬 손아귀가 가득했다. 분노로 핏대 선 목에서는 쉬지 않고 고성이 뿜어져 나왔다. 근친상간이 끊이지 않았고 유아살해가 일어났다. 그 집 앞에는 느릅나무가 가지를 길게 뻗고 우뚝 서 있었다.

어쩌면 느릅나무를 찍어냈더라면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느릅나무 가지가 집 위에 길게 늘어져서 햇빛을 막았다면 지하실처럼 집은 퀘퀘했을 것이다. 항상 어둡고 습기 찬 집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을 테니 가족들의 성격도 음울해졌을 터. 느릅나무 주위에서 생긴 벌레가 사람들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는지도 모른다. 많은 벌레는 집 안까지 들어왔을 것이고 잠자리를 방해하고 일상을 괴롭혔을 것이다. 집이 안식의 공간이 되지 못하니 사랑의 말은 할 수 없고 증오의 말만 내뱉는 것이다.

책에는 느릅나무에 대한 언급이 두어 번 정도 나온다. 느릅나무가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실제 느릅나무는 높이가 20~30미터나 되는 큰 나무라고 한다. 그것을 생각해 보자면 아마 유진 오닐은 느릅나무가 있는 집을 통해 부를 이룬 미국인 가정을 상징하려고 했던 것 같다. 큰 나무가 흡사 큰 재산을 연상시키는 것이다.

실제로 느릅나무는 축축한 습기가 있는 산골짜기에서 잘 자란다. 유진 오닐은 큰 부를 이룬 가정이지만 그 가정은 따뜻하지 않고 축축하다는 것을 말하려고 수많은 나무 중에서도 느릅나무를 들었는지도 모른다. 큰 부를 이루어서 행복한 것 같지만 그 큰 부 아래에선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아들은 아버지를 떠났지만, 한편으로는 느릅나무를 떠난 것이다.

유진 오닐이 《느릅나무 아래 욕망》이라는 희곡을 썼을 때 느릅나무는 지극히 상징적이었을 것이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으며 옆에 서 있는 남자의 얼굴이 뭉크의 그림 속 절규하는 사람과 똑같은 것을 목도한 지금, 느릅나무는 상징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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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사이》 - 아모스 오즈의 세계



아모스 오즈 | 《친구사이》 | 문학동네 | 2013



이스라엘로 성지순례를 떠나는 일행에게, 서점에 들를 수 있다면 아모스 오즈 책을 구입해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저자의 이름을 스펠링으로 써주고 당부하면서 한 권이라도 나에게 오길 바랐다. 그러나 단체로 떠난 일정인지라 서점 근처에는 가보지도 못해 책을 사지 못했다는 대답만이 들려왔다. 내심 아쉬웠지만 언젠가 원서를 살 수 있는 날이 있겠지 싶어 열심히 번역서를 기다리게 되었다.

아모스 오즈는 애정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온라인 서점에서 출간 소식 문자가 오면 바로 구매할 정도다. 왜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똑 부러지게 설명을 할 순 없어도 잔잔한 삶의 흐름을 드러내는 섬세한 문장이 좋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의 작품 하나하나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완성도에서 오는 호감을 뛰어넘은 익숙함이다. 작가의 작품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할 정도로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럽다.

이스라엘 집단농장의 한 형태인 '키부츠'를 배경으로 한 8편의 단편 《친구 사이》를 읽는 동안, 온통 저자 생각뿐이었다. 30여 년간 키부츠에서 생활한 아모스 오즈이기에 무엇보다 그곳 생활을 잘 알 터. 작가가 작품 어딘가에 머무르고 있다고 생각하니 구석구석 허투루 읽히지가 않았다.

한데, 모든 것이 공동체로 이뤄지는 집단농장에서의 사람들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썩 행복하지 않았다. 공동체 생활이다 보니 개인의 자유와 소유욕을 드러낼 수는 없었고,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점점 자신이 무엇을 원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방향을 잃어간다. 사람들이 스스로 그곳에 머무르면서도 왜 스스로 욕망을 거세하지 못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끝내 독자의 몫으로 남는다.

남편이 이별을 통보하고 다른 여자의 숙소로 들어간 후 그 어떤 분노도 드러내지 않은 여자 오스낫. 키부츠란 공간을 답답해하면서도 삼촌이 모든 학비를 대주겠다며 이탈리아로 오라는 요청에도 머뭇거리는 요탐. 이들은 마치 자신의 색채를 잃어버린, 무채색으로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였다. 물론 키부츠의 바깥 세상에서도 또렷한 의지를 갖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은 많다. 그럼에도 이런 사람들을 지켜보자니, 규칙과 평등을 가장한 그곳에서의 불평등이 마냥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키부츠라는 거대한 공간에 담긴 8편의 이야기는 독립적이면서도 절묘히 이어진다. 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다른 이야기에서 배경 인물로 등장할 때에는 새로운 면모를 보이기도 하는데, 그래서일까. 그들의 등장만으로 반가움이 일었고 어떤 소식이 들려오는지 예의 주시하게 되었다.

한편, 병든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소년 모시의 이야기는 잔잔하면서도 뭉클함을 남긴다. 후에 에스페란토 어를 배우러 오는 모습만 봐도 그냥 듬직했다. 하지만 하나 남은 열 일곱살 딸이 자신의 친구와 동거하는 이야기며, 공동체 육아 규칙에 따라 부모와 함께 잠들지 못하는 아들이 탁아소에서 왕따를 당하자 가해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의 모습은 키부츠라는 공간을 더욱 음습하게 한다.

가난하고 헐벗은 자들에게 모든 것을 평등하게 배분하는 곳. 기회가 주어지는 그곳이 낙원처럼 느껴질지 모르겠으나, 늘 불평등에 시달리며 세상의 속도에 따라가지 못해 허덕이는 내게는 그곳이 갑갑하기만 하다. 무엇을 또렷이 잘할 필요 없이, 단지 자신에게 주어진 노동에 충실 하는 것만이 성실한 모습으로 인식되는 것 같기에 단일화되기 딱 좋은 곳으로 보여진다. 그럼에도 키부츠를 다른 세상 보듯 무관심 할 수 없었던 이유는 뭘까. 나 또한 사회에서 이미 알게 모르게 경험한 것들이 그곳에 녹아있었기 때문이다. 단체생활의 불편함, 차별, 불평등, 분출할 줄 모르는 열등감과 불합리 등을 이미 겪었다.

하지만 오직 공동체라는 공간에만 얽매야 책을 읽는다면 저자가 그려낸 다양한 '인간 군상'을 놓치기 쉽다. 어느 곳이나 사회가 아닌 곳이 없듯 그곳에 모인 사람들, 그곳에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사는 '현재'를 비추고 대변한다.

삶의 잔혹함을 못 본 척한다는 것은 어리석고도 죄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어요. 그러니까 최소한 알고라도 있어야죠. (15~16쪽)

리가 타인의 삶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문학을 통해 우리가 이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무척이나 소중한 일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안녕반짝'님은?

아이를 키우면서도 책을 읽을 수 있음에 기뻐하는 평범한 주부입니다. 깊은 밤에만 독서할 수 있지만, 그 고요한 시간이 오로지 나만의 것인 듯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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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어디서 책을 읽고 있나요

 

 


겨울에 어디서 책을 읽고 있나요


제야의 종소리를 듣고 떡국 먹은 지가 얼마 되지 않은 듯한데 벌써 새해가 보름이나 지났습니다. 일기예보에서는 강추위를 경고하기도 하고 '평년보다 조금 포근'이라는 귀가 솔깃한 정보를 반복해서 보내줍니다. 기상학에서는 12월~2월을 겨울이라고 합니다. 1월이니 이제 겨울도 중반에 다다른 셈입니다.

 

휴일이면 밖에 나가 추위와 싸우느니 따뜻한 온돌방에 누워 온종일을 보내는 것도 이 계절 아니면 누릴 수 없는 기쁨 중 하나일 테죠. 옴짝달싹하지 않고 바닥에 찰싹 붙어 소설이니 만화책이니 들춰보는 재미. 제아무리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라 할지라도 겨울이 주는 독서의 묘미도 만만찮아 보입니다.

 

어느 날 휴일에는 책 한 권을 챙겨 들고 '책이 잘 읽힐 만한' 카페를 찾아 나서는 건 어떨까요. 추천할 만한 곳으로는 남산 북쪽 기슭에 자리 잡은 문학의 집입니다. 좁은 골목 사이 들어선 건축물이 꽤 멋스러운 곳이죠. 문학관을 둘러본 뒤 입구에 자리한 카페도 들러볼만 하고요.

 

한적한 주중이라면 삼청공원 한가운데 자리한 숲속도서관도 책 읽기에 제격입니다. 사방의 벽면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 자연의 모습을 한눈에 담을 수 있죠. 어린이 도서뿐 아니라 인문, 예술, 과학도서도 풍족히 갖췄습니다. 한겨울 어디서 책을 읽고 계신가요. 어떤 장소든 책과 함께 남은 겨울을 풍족하게 보내길 바라봅니다.

 

연관 도서

 

 

Editor_김민경

(mins@bn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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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만난 사람] 젊음의 뒤안길에서 - 손아람



아름다움이란 대체 무엇인가? 우리는 왜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는 아름다움을 좇는가? 나는 오래도록 생각했고, 내 나름의 결론에 도달했다. 우주는 질적 대칭과 양적 비대칭으로 유지되는 곳이다. 빛과 어둠. 질서와 무질서. 의미와 무의미. 아름다움과 추함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아름다움을 선호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선호하는 것들이 아름다워졌다. 하지만 이 논리에는 구멍이 있다. 우리가 왜 무언가를 선호하게 되는지를 다시 설명해야만 한다. 그냥 이렇게 반대로 말하는 쪽이 훨씬 편하다. (《디 마이너스》, 500쪽)



1997년과 2007년 사이에도 한국에 학생운동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때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잘 알지 못한다. 《디 마이너스》의 저자 손아람은 1997년 12월부터 2007년 12월까지를 ‘잃어버린 10년’이라 부른다. 이 책에는 당시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간절하게 바라고 맹렬하게 달려들었던 ‘잃어버린 10년’이 담겨있다. 《디 마이너스》는 소설이다. 그리고 후대의 역사애호가가 반드시 지켜봐야 할 ‘현재사’이기도 하다.


Editor_정혜원 | Photo_Goro


프로필_손아람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했다. 지은 책으로는 용산참사의 법정 내용을 다룬 소설 《소수의견》,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 《너는 나다: 우리 시대 전태일을 응원한다》(공저) 가 있다. 한겨레 월간지 《나들》의 인터뷰어로도 활동했다.



 



Q. ‘디 마이너스’는 수업에서 낙제를 모면할 수 있는 마지노선의 점수예요. 제목이 왜 F가 아니라 D-일까 생각했어요. 겨우 빌어서 얻어낸 최악의 점수이자 최후의 방어선이죠. 꼭 2000년대 당시 사회에 불만을 품은 누군가가 세상에 매긴 점수 같다고나 할까요.

사실 F와 D-는 성취도로 봤을 땐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 F는 너무 명백한 멸종이에요. 도태에 가까운 점수죠. D-는 명목상 살아 붙어 있는 점수이고요. 이 소설 속 운동권 인물들이 세상을 바꾸려고 싸우는 영역도 그렇죠. F와 D-의 경계. 2000년대 당시 많은 노동자의 삶도 이미 바닥까지 쳤는데, 자기들은 살아있고, 희망이 있는 싸움을 한다고 믿고 싶어 하죠.



Q. 소설에선 그 당시 있었던 사건들이 자세히 언급돼요.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 내용 또한 사소하지만 매우 구체적이고요. 《디 마이너스》를 쓰면서 친구와 지인의 경험을 많이 참고했다고 들었어요.

소설에 쓰인 인물들도 대부분 실제 모델이 있어요. 저는 운동권은 아니었지만, 활동 반경의 변두리에 있는 사람보다 가까이서 많은 것을 보고 겪었어요. 운동권이냐, 운동권이 아니냐는 사실 조직 논리로 결정되는 것이죠.



Q. 책에 담긴 여러 사건, 친구들이 나누는 대화가 사소하지만 매우 구체적이에요.

소설에 고유명사를 많이 쓰는 편이에요. 세계와의 거리를 최소화해 놓으려고.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뒤섞어 놓는 것은 제가 고집하고 있는 전략 중 하나고요. 소설에 쓰인 인물들도 대부분 실제 모델이 있어요. 저는 운동권은 아니었지만, 활동 반경의 변두리에 있는 사람보다 가까이서 많은 것을 보고 겪었어요. 운동권이냐, 운동권이 아니냐는 사실 조직 논리로 결정되는 것이죠.



Q. 오래전부터 그때의 광경을 글로 쓰겠다고 생각하셨어요?

네. 다른 작가들이 쉽게 쓸 수 없는 제 자산 같은 것을 하나 쓰고 싶었어요. 전 그걸 쓸 수 있는 위치에서 목격하고 경험했어요. 어렴풋이 다들 학생운동에 대해 알고 있지만, 내부를 들여다볼 기회가 없단 말이에요. 단지 유희적인 차원에서 쓰기에는 중요한 것들을 담고 있고. 그래서 고민하다 이것저것 다른 경험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시기가 왔던 것 같아요. 저번 장편 소설을 쓰고 나서 소설보다 언론 쪽 일을 많이 했는데, 다른 쪽에서 몸담았던 사람들을 만나면서 세계관이 확장되는 경험을 했어요. 이제는 부끄럽지 않게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전에는 학생운동 이야기만을 가지고 소설을 한다 했을 때 굉장한 치기라든가 편향된 글이 나올 가능성이 높았어요. 한 세계를 온전하게 그려낼 수 있을지에 대한 자신이 별로 없었고요.



Q. 자신 있게 쓴 이 소설에는 세계를 고스란히 담았다고 생각하세요?

다 담겼다고 말할 순 없죠. 그런데 가치 있는 것들을 구체적으로 담은 부분에 대해선 만족해요. 학생운동에 직접 몸담았거나 관심이 컸던 사람들이 대부분 현재 좌파라고 불리는 분들이에요. 그들 개개인에게 어떤 역사가 있는지 보여주는 소설은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그 지점에선 뜻있는 시도를 하지 않았나 생각해요.



Q. 《디 마이너스》에서도 인물들은 각각 다른 정파를 이루어요. 같은 좌파여도 방법과 방향이 달라서 갈리죠. 하지만,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가까운 친구가 어떻게 했는지, 이러한 관계에 따라 결정적으로 움직여요.

당사자들에게 물으면 모욕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정파라는 것도 제가 느끼기에는 인간적인 부분에 많이 좌우돼요. 물론 그들 스스로는 끊임없이 논리적인 사고, 정치적인 사고를 하지만, 사실 인간적인 중력 같은데 끌려가는 것들이 굉장히 무시하기 어렵거든요.



Q. 《디 마이너스》에 나오는 인물 중 자신은 누구와 가장 가까워요? 주어진 형편은 소설에서도 미학을 전공한 주인공 태의와 가장 가까워 보이지만, 각각의 인물들에게 조금씩 걸쳐 있는 것 같아요. 취하면 랩인지 노래인지 시를 읊는 고학번 현승 선배, 세상의 삐딱한 현상을 절대 못 참고 책임지려 하는 미주. 작가인 당신의 모습이 조금씩 보여요.

태의에 가깝긴 하죠. 스스로 매우 흔들리는 인물이잖아요. 확신도 없고. 저도 그래요. 친구들이 대부분 학생 운동 진영에 속해 있었지만, 저는 그 조직논리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거든요. 지금 작가로서도 마찬가지예요. 깊숙이 들어가면 사고를 칠 가능성이 높아요. 큰 틀의 운동을 위해 양보하는 것도 필요한데, 그게 안 되는 사람들이 있어요.



Q. 저울질하다가 스스로 합리적이지 못하게 될까 봐 불안한가요?

그렇다기보다 전 예술가와 자유주의자에 가까운 성향인 것 같아요. 그런 사람들이 조직논리로 움직이는 운동에 이따금 합리해도 지속적으로 그 조직과 함께하는 경우가 많지 않아요. 지금도 작가로서 굉장히 정치적인 글을 쓰는 편이지만, 특정한 진영 안에 들어가 있진 않죠.



Q. 《디 마이너스》에는 《소수의견》에 연속성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해요.

이후에도 한 작품 정도는 매우 정치적인 작품을 쓰고 싶어요. 《디 마이너스》를 통해서 젊은 시절 성장했던 사람들이 《소수의견》이라는 커다란 변곡점을 맞고 그 이후, 또 다른 대목의 어떤 지점에서 어떤 식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결말을 한번 내고 싶어요.



Q. “너희가 만들고자 꿈꿨던 세상에서 살게 되기를.” 이 말이 많이 나와요.

이 책은 제 친구들, 제 젊음을 함께한 사람들에게 헌정하는 의미가 있었어요. 그래서 그들이 꿈꿨던 세계와 그들의 꿈에 바친다는 느낌으로 썼고요. 재미있는 게 이 소설은 같은 장소에서 시작과 끝이 났어요. 우연히 어떤 술집에서 진우의 모델이 된 친구를 만나서 옛날 이야기도 나누고, 옛날 사진도 보고 그랬는데요, ‘아, 이들과 이러던 시절이 있었지.’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나, 오늘부터 우리 이야기를 써 보겠어.’하고 시작했어요. 그들 대부분이 상처를 간직했지만, 지금은 평범하게 살고 있어요. 그런데 80년대 영광된 싸움처럼 아무도 알아주지 않죠. 운동권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이들의 이야기를 기억해서 이들이 어떤 꿈을 꾸고, 싸웠고, 어떻게 세상에 스며들어 갔는지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어요. 내 젊음이기도 하고요. 소설을 끝낸 날,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그 친구를 다시 만났어요. 이야기하다 보니까 이 술집이 그 술집인 거예요.



Q. 작가로서 세상에 책임을 느끼세요?

글을 쓰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꼭 해야만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왜 난 작가가 됐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여전히 뚜렷하게 보이진 않아도 제가 무언가 강렬한 책을 읽었을 때 당장 내가 혁명적으로 바뀌진 않지만, 그 세계에 대한 시각이 매우 강하게 흔들리는 듯한 느낌을 받아요. 그렇게 수많은 책을 통해 경험이 쌓였을 때 한 인간이 달라지고, 그런 인간들이 모여서 곧 사회가 달라지는 거 아닐까요? 전 그 일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항상 잘 쓴 글 이상을 쓰고 싶어요. 위험한 글에 가까운 느낌.



Q. 글로 세상을 흔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앞섰지, 소설가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은 별로 없었던 것처럼 보이네요.

첫 번째 소설을 쓸 때는 작가가 되겠다는 꿈이 없었던 만큼 세계에 대단한 영향력을 끼칠 무언가를 내야겠다는 욕심도 없었어요. 아까 얘기했던 고민은 작가가 된 이후부터 시작했죠. 이게 직업이 됐단 말이에요. 학생 시절에는 시험공부를 하거나 놀다가도 가끔 재미있는 글 하나를 쓰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했는데, 직업이 된 순간부터 거기서 더 이상 만족이 되지 않는 거예요. 나는 좀 더 큰 걸 바라고 있고, 내가 할 수 있는 더 큰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이 일을 택했을 거야, 생각하게 됐죠.



Q. 언젠가 페이스북에 이런 말을 쓰셨어요. “나는 세계가 지성적인 곳이기를 열렬하게 희망한다. 지성적인 윤리와 지성적인 사악함과 지성적인 구조논리와 지성적인 저항.” 지성이란 게 구체적으로 뭘까요? 배워야 얻는 건 아니잖아요.

성찰에 가까운 느낌인 것 같아요. 스스로를 바라볼 때도 공정하게 보려고 하는 노력들. 그런 것들을 저는 굉장히 중요하게 보는데 늘 누구에게나 어려운 부분인 것 같아요. 늘 정교하게 입바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사람도 어느 지점에서 자기가 얽혀 있을 때는 매우 비겁해지는 모습을 많이 봐요.



Q. 존경하는 인물상이 있어요?

네. 인물이라고 하기엔 뭣하지만, 전 영화 ‘포레스트 검프 (Forrest Gump, 1994)’의 주인공 포레스트 검프. 너무나 똑똑하면서 유약한 종(種)의 사람들은 제 주변에 아주 많아요. 그런 사람들의 한계를 많이 봐 오면서 실망도 컸고. 포레스트 검프는 강인하지만 바보예요. (소설 속) 진우도 어떻게 보면 포레스트 검프 같은 인물이라고 할 수 있어요. 바보 같지만, 초월적인 힘이 있어서 주변을 감동시켜요. 세계가 바뀔 여지를 만들어가는 인물. 그게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인간적으로 매우 존경하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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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들》 - 처음에서 영원으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 《픽션들》 | 민음사 | 2011

 

거울, 백과사전, 미로, 도서관, 무한, 알렙, 삐에르 메나르, 푸네스, 그리고 나침반. 이 정도면 짐작하셨으리라 봅니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혹자는 말하지요. 그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고 20세기 현대문학을 이야기할 수 없다고. 보르헤스는 그처럼 많은 이들에게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친 ‘작가들의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알랭 로브그리예(lain Robbe-Grillet)부터 토머스 핀천(Thomas Ruggles Pynchon, Jr), 존 바스, 주제 사라마구(Jos? de Sousa Saramago), 살만 루시디(Ahmed Salman Rushdie)를 비롯해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와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 모리스 블랑쇼(Maurice Blanchot), 제라르 주네트(G?rard Genette) 또한 보르헤스라는 이름에 특별한 관심과 애정을 표했지요.

 

물론 저 같은 한낱 독자에게도 보르헤스라는 이름은 각별하고 소중합니다. ‘바벨의 도서관’이라는 저의 닉네임 역시 보르헤스의 단편소설 < 바벨의 도서관 〉에서 따온 것인데요. 도서관 사서 출신이라 그런지 보르헤스 하면, 저는 이 단편소설이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바벨의 도서관, 거기에는 무한한 육각형의 방이 있고 각 방에는 두 면을 제외한 네 면마다 다섯 개씩, 모두 스무 개의 책장이 들어서 있다고 하지요. 이 방과 방 사이에는 거대한 통풍 구멍이 나 있는데, 덕분에 어떤 방에서든 끝없이 뻗어 있는 위층과 아래층을 훤히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상상해 보세요. 낭하와 층계, 육각형 모양을 한 방들이 무한하게, 영원히, 고귀한 책으로 가득 찬 채, 그러나 매우 비밀스러운 모습으로 감춰져 있는 세계를. 거기에는 쓸 수 있었으나 쓰지 않았던 책, 소실된 책이 보관돼 있습니다. 그리고 그 책들은 서로를 거울처럼 비추지요. 상대의 갈피에서 어느 한 줄을 인용하고, 참조하는 동시에 반론하고 지시하는 겁니다. 그 속에서 하나의 문장은 이전의 다른 문장을 기반으로 생산됩니다. 문장의 해석은 읽는 자에 따라 저마다 다른 의미로 개방됩니다. 문학비평가 헤럴드 블룸(Harold Bloom)은 보르헤스를 단적으로 이렇게 표현했지요. “체호프에게 셰익스피어는 《햄릿》의 저자이지만 보르헤스에게 셰익스피어는 모든 사람인 동시에 아무도 아니다.”

 

만약 우리가 그곳에 간다면 서가와 서가 사이를 거니는 것만으로 인생의 시간을 잘 탕진하고 낭비할 수 있을 겁니다. 이 책에서 저 책으로, 그 책에서 다시 다른 책으로. 완결되지 않은 여행을 할 수도 있겠지요. 궁극의 해답을 기록한 단 한 권의 책을 발견하기 위해서든 그저 영원한 순례 그 자체를 위해서든.

 

저는 민음사에서 나온 다섯 권짜리 보르헤스 소설 전집을 지니고 있습니다. 월급으로 산 첫 전집이었지요. 누군가에게 종속되어 한 달을 바친 대가를 보르헤스로 풀었던 셈입니다. 요즘 나오는 밀란 쿤데라나 로베르토 볼라뇨 전집, 이탈로 칼비노 전집에 비하면 보르헤스 소설 전집의 분량은 상당히 소박한 편에 속합니다. 압축과 함축을 중요시했던 보르헤스에게는 이마저도 많게 여겨질지 모르겠습니다. 보르헤스가 단편소설 〈 알렙 〉 첫머리에 햄릿의 대사를 옮겨놓은 까닭도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천만에, 나는 호두껍질 안에 웅크리고 들어가 있으면서도 나 자신을 무한하기 그지없는 어떤 공간의 ‘주인’으로 여길 수 있네. (207쪽, 보르헤스 소설 선집 제3권 < 알렙 > 중)

 

지름 2, 3cm의 작은 구체에 모든 각도에서 본 지구의 모든 지점이 존재한다는 '알렙'처럼 보르헤스는 동시적인 것에서 영원을 발견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은 영국 포병대 위치를 베를린에 교신하기 위해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을, 그 미로들의 미로를 헤매던 ‘유춘’과 같이 어스름 짙은 들판에 서서 “무한한 이야기들, 무한히 가지가 갈라지는 이야기들”(본문 중에서)을 흥미로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분명한 것은 그에게 글쓰기란 고통에 자신을 투신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거울과 백과사전으로 ‘우크바르’라는 상상의 지역을 발견해내는 일이란 매우 즐거운 유희일 수밖에요. 보르헤스는 환상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현실을 제게 처음 알려준 소설가였습니다. ‘텍스트’에 참여하고 그것을 만지며 또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기쁨을 말입니다.

 

 

 

좋은 책과 서평을 나누고자 반디앤루니스 '오늘의 책'을 펜벗과 함께 만들어 갑니다.

펜벗이란 서평을 쓰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를 의미합니다.

매주 월요일, 성실한 서평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12월의 서평 주제는 '처음'입니다. 셀 수 없이 많은 각자의 '처음'을 책과 함께 떠올려 보세요.

'오늘의 처음'으로 생생히 떠오르길 바랍니다.

 

| 펜벗 일문일답

 

● 월급으로 산 첫 전집이 민음사에서 출간한 보르헤스 전집이라고 하셨죠. 첫 월급으로 샀던 책은 무엇이었는지 기억하세요?


이것저것 꽤 많이 구매했던 것 같은데 한강의 《내 여자의 열매》가 기억나요. 보르헤스 전집의 검은 표지 위에 한강 소설집의 오렌지빛 표지가 겹쳐 있던 장면이 인상적이었던 걸까요. 《내 여자의 열매》에 나오는 “겨울에는 견뎠고 봄에는 기쁘다.”라는 문장이 좋아서 그걸 제목 삼아 짧은 리뷰 한 편을 썼던 기억도 납니다.

 

● 생각하고 계신 꿈의 도서관은 어떤 모습인가요? 이를테면, 도서관의 위치, 서재의 구성에 관한 구체적인 모습이랄까요?


만약 제 마음대로 장서 구성을 할 수 있는 도서관이 생긴다면, 십진법에 따른 분류 외에도 책 한 권 한 권마다 ‘보라 참조(see ~ )’나 ‘~도 보라 참조(see also ~)’ 목록을 표로 붙여 두고 싶습니다. 본래 ‘보라 참조’나 ‘~도 보라 참조’는 도서관에서 키워드를 통일하고 연관어를 안내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인데요. 이걸 이용해서 한 권의 책이 또 다른 책으로 이어지도록 설계하는 거죠. 그러면 특정 작가의 책을 파고드는 전작주의 외에도 다양한 방식의 독서가 가능하지 않을까 상상합니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막막한 독자라도 일단 그 도서관의 책 한 권을 집어 드는 순간,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간 책 지도를 발견하는 셈이 될 테고요.

 

● 프로필의 구절이 인상 깊습니다. '오랫동안 찾던 책을 발견하기를.' 아직 발견하지 못한, 마음속에 늘 품고 다니는 책은 무엇인가요?


오랫동안 찾던 책을 발견하고 싶다는 말은 그 책을 읽는 첫 번째 독자가 되겠다는 뜻입니다. 정말로 그 책을 찾아내 읽는 첫 독자가 될 수도 있고, 염치없게도 그 책을 씀으로써 제일 처음 그 글을 읽어나가는 이가 될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오랫동안 찾던 책을 발견한다는 건, 그 책을 만나는 순간 저절로 알게 될 것 같아요. 무수한 책들을 거쳐 이제 여기에 이르렀구나 하면서.

 

● 요즘은 무슨 책을 읽으세요?


피터 비에리의 철학 에세이 《삶의 격》과 여러 사상가의 에세이를 수록한 《우리는 매일 슬픔 한 조각을 삼킨다》를 최근 다 읽었고요. 지금은 돈 드릴로의 《마오 2》 초반부를 읽고 있습니다. 《리브라》를 읽다가 덮은 적이 있어서 이번에는 기필코 성공해 보려고요. 12월 중으로는 버지니아 울프와 플래너리 오코너의 몇몇 작품을 찬찬히 읽을 계획입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바벨의 도서관님은?

오랫동안 찾던 책을 발견하기를, 그 일로 주어진 인생의 시간을 잘 탕진하고 낭비할 수 있기를 바라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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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소설

 

 


 

다시, 소설 

 

지난 2일이었습니다. 서울 동숭동에서 특별한 기획을 알린 행사가 있었습니다. 내용인 즉 이렇습니다. 한국 문학 100년을 재조명하고자 시대를 대표하는 100인의 배우가 소설을 낭독한다는 것이죠. 소설은 근대문학의 태동기인 1910년부터 제5공화국 시기까지 발표한 것 중 문학적 가치를 엄선하여 100편을 선정한답니다.

 

모처럼 반가운 소식입니다. ‘우리 문학’을 재조명하기 위한 이런 소소한 시도가 얼마 만인지요. 금번 반디앤루니스에서도 우리 문학, 그중에서도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서평을 나누며 책 이야기 하는 친구, 펜벗’과 함께 한국 소설의 첫 문장을 곱씹어 보았죠. 잠자고 있던 어느 소설이 이번 기회에 한 번 더 들추어지는 장면을 상상해 봅니다.

 

펜벗과 함께 며칠 동안 모아본 한국 소설의 첫 문장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소리 내 읽어 보고 싶어집니다. 첫 문장만 추리니 단어가 더 도드라져 보임은 물론이고요. 문장의 힘이 느껴집니다. 한자씩 읊조리며 문장을 씹는 재미도 느낄 수 있습니다.

 

왕들의 상여는 능선 위로 올라가다. 김훈,『현의 노래』
초록빛으로 가득한 들녘끝은 아슴하게 멀었다. 조정래,『아리랑』
열차는 눈먼 물고기처럼 인천을 빠져나와 북쪽으로 달려갔다. 김애란,「자오선을 지나갈 때」(『침이 고인다』)

 

이참에 다 같이 소설 얘기하며 ‘소설이 왜 좋은지.’ 저마다의 이유도 되짚어보았는데요. 각자의 이유가 소설의 존재, 소설의 필요성을 역설적으로 말해줍니다.

 

“제가 살아보지 못하고 겪어보지 못한 세상을 경험합니다.” -한량의 독서 님

“소설을 덮은 직후 잠깐 동안 내가 익숙하게 알던 세상이 조금 다르게 보이는 순간을 좋아합니다.” -syongg 님
"소설은 픽션이지만 현실을 압축적으로 반영하고 있고, 철학적인 질문도 갖추고 있습니다. 작가가 글로 만든 장치를 파악하면서 동시에 행간을 저의 상상력으로 채워가며 읽는 행위 자체에도 흥미를 느낍니다.” -북찬희 님

“이해라는 말 앞에서 한없이 무력해지는 우리들에게 소설이란 것이 희망이 되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Rootbeer 님

“한국 문학에 대한 애정이 큽니다. 우리네 삶과 가장 많이 닮은 분야가 아닐까 싶어요. 소설을 통해 함께 아파하고, 위로받을 수 있어 좋아합니다.” -선인장 님

 

다시, 소설. 어쩌면 지금 이때 개인에게 가장 적절한 ‘매체’는 소설인지 모르겠습니다. 소설 같은 현실 말고 진짜 소설 말이죠. 걸출한 작가들이 날을 세웁니다. 한국 문학이 들려줄 이야기가 기대됩니다. 소소한 행사를 빌어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이 소설(小雪)에 분다는 ‘손돌바람’만큼 무지막지한 위력은 아니어도 잔잔한 바람이 되어, 지금. 계속. 소설을 쓰고 있을 누군가에게 ‘애정’이 전해졌으면 합니다. 첫 문장을 읽으며 생각해봅니다.

 

“느리게 쓴다는 것은 문장을 공들여 쓰고 플롯을 좀더 흥미진진하게 구성한다는 것,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거기에는 소설이란 인간이 겪는 고통의 의미와 구원의 본질에 대해서 오랫동안 숙고하는 서사예술이라는 인식이 숨어 있다.” (김연수, 《소설가의 일》, 문학동네, 2014)


한국 소설의 첫 문장을 만나 보세요.

 

연관도서

 

      

 

|Editor_김민경

mins@bn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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