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디앤루니스'에 해당되는 글 212건

  1. 2015.02.13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 위화의 위로하는 마음
  2. 2015.02.12 『내 심장을 쏴라』 - 내 심장을 쏴 봐
  3. 2015.02.11 『잃어버린 젊음의 카페에서』 - 젊은이의 음지
  4. 2015.02.10 나유리, 미셸 램블린 『핀란드 슬로우 라이프』
  5. 2015.02.10 엄마옷 내옷
  6. 2015.02.10 『아내의 빈방』 - 당신은 우리와 함께 있는 거요
  7. 2015.02.09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전집』 - 겨울의 그림자
  8. 2015.02.06 『우리가 사랑한 헤.세. 헤세가 사랑한 책.들.』 - 헤르만 헤세의 독후감
  9. 2015.02.06 우리는 동물원을 사지 않았다
  10. 2015.02.05 테마에 어울리는 책을 살펴 보세요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 위화의 위로하는 마음

 



위화 |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 문학동네 | 2012


오늘날 중국은 놀라울 정도로 급성장했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이후 발전을 거듭하면서 이제는 미국과 나란히 힘을 겨루는 나라가 되었다. 전 세계의 명품들은 중국으로 쏟아져 들어가고 그들은 세계로 여행을 다닌다. 당장 우리나라만 해도 관광객이 줄어들면 큰 타격을 입을 정도로 중국의 영향력은 커졌다.

하지만 억만장자와 백만장자가 넘쳐도 중국의 다른 한쪽에서는 빈민 인구가 1억 명에 달한다. 대외적 이미지에 빠진 중국은 힘든 가난 속에서 생활하는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지 않는다. 위화는 중국인의 진정한 비극이 여기에 있다고 말한다. 빈곤과 기아의 존재를 무시하는 것이 빈곤과 기아보다 더 무서운 것이다.

이 책은 중국에서는 금지되어 대만에서 출판되었다. 중국 지식인들이 보편적으로 침묵하고 있는 문제에 관하여 작가가 거론했기 때문이다. 1989년 베이징 대학생들은 천안문 광장에 모여 민주와 자유를 요구하는 동시에 관료의 부패와 전횡에 반대했다. 하지만 곧 중국 정부는 무력으로 진압했고 그 후 어느 매체에서도 이 사건은 사라졌다. 인터넷에서도 6월 4일은 금지된 날짜가 되었다.

위화는 유년시절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을 거쳐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그리고 천안문 사태를 겪으면서 오늘날의 중국이 되기까지, 그의 경험을 토대로 10가지 단어를 선택해서 이야기한다. 즉 10개의 방향으로 나아가며 중국을 입체적으로 그려보는 것이다. 나에게는 이 책이 몰랐던 중국의 과거와 현재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놀라운 책이었다.

문화대혁명이 진행되던 때에는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반혁명분자가 되었다. 가정은 파탄이 나고 모든 가정에서 책이 사라졌다. 사람들은 책을 찾아 헤매고, 거리에는 대자보가 붙고, 수많은 사형수가 총살되는 장면을 목격해야 했다. 하지만 30여 년이 지난 지금, 책이 넘쳐나고 개발 명문으로 불도저가 강제로 집을 무너트린다. 사람들은 돈만 쫓아다닌다. 물질이 결핍된 시대에서 낭비가 넘치는 시대로, 정치 지상의 시대에서 금전 제일의 시대로, 본능이 억압된 시대에서 욕망이 넘쳐나는 시대로. 극과 극으로 바뀌었다.

위화는 이렇게 10개의 단어로 중국을 살피고 무조건 개발과 돈만 보고 달리는 지금, 환상의 이면에 진정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말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어디 이것이 중국뿐이겠는가? 우리나라 현실과도 겹치는, 지금 세상의 모습이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다.

이 책은 특히 후기에서 여운이 길게 남는다. 직업을 국가에서 배정할 때 위화는 1978년 치과의사가 되었다. 치아를 뽑는 일 외에도 매년 여름이면 노동자들과 아이에게 예방주사를 놓았다. 당시에 물자가 부족하다 보니 주삿바늘을 재사용했다. 매번 주사기를 사용해서 바늘 끝이 구부러져 팔뚝에 바늘을 꽂는 것도 힘이 들었다. 주사기를 뺄 때는 작은 살점이 바늘에 딸려 올라오기도 했다. 노동자들은 극심한 고통을 참느라 이를 악물었지만 위화에게 그들의 고통은 와 닿지 않았다.

하지만 유치원에 가서 예방주사를 놓을 때는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졌다. 살이 연한 아이들은 바늘에 달려 나오는 살점의 크기가 컸고 피도 많이 났다. 유치원이 온통 아이들의 고통으로 울음바다가 되었다. 그 뒤 달리 손을 쓸 수 없었던 위화는 일과가 끝나면 숫돌에 구부러진 주삿바늘을 뾰족하게 갈기 시작했다.

그는 왜 울부짖던 아이들의 모습을 보기 전에 노동자의 고통을 생각하지 못했는지 회상할 때면 마음이 괴로웠다. 주사를 놓기 전에 먼저 구부러진 주삿바늘을 자신의 팔에 찔러보았더라면 노동자들이 극심한 통증을 못 이기고 신음하는 그 고통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느낌이 내 뼛속 깊이 새겨졌고, 그 뒤로 내 글쓰기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타인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되었을 때, 나는 진정으로 인생이 무엇인지, 글쓰기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이 세상에 고통만큼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쉽게 소통하도록 해주는 것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고통이 소통을 향해 나아가는 길은 사람들의 마음속 아주 깊은 곳에서 뻗어 나오기 때문이다. (353쪽)

‘이 책에서 나는 중국의 고통을 쓰는 동시에 나 자신의 고통을 함께 썼다. 중국의 고통은 나 개인의 고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위화의 말이다. 이 말처럼 타인의 고통이 자신의 고통이 되어 글쓰기를 한다는 위화의 글이야말로 진정 빛보다 멀리 간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자두줄기'님은?

꿈, 희망, 행복이라는 단어를 좋아합니다. 이 세 가지를 가지기 위해서 오늘도 책을 읽고, 글을 끄적거리고, 그리고, 웃습니다.

Trackback 0 Comment 0

『내 심장을 쏴라』 - 내 심장을 쏴 봐

 

 

 



정유정 | 『내 심장을 쏴라』 | 은행나무 | 2009



세계문학상 수상작은 1회부터 꾸준히 읽어오고 있다. 세계문학상은 다른 문학상과는 다른 뚜렷한 개별성이 있다. 텍스트의 가독성과 재미를 중시한다. 한국판 나오키상(直木賞)이라 할 수 있다. 세계문학상은 읽기 쉽고 몰입도가 높은 대중적인 소설이 꾸준히 선정됐다. 도발적인 소재와 개성 있는 문체, 빠른 속도감과 흡입력 있는 서사를 갖춘 작품이 세계문학상의 표적이 된다.

1회 수상작인 김별아의 『미실』은 여태까지 생각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여성상을 만들어냈다.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는 보수적인 한국사회에 '비독점적 다자연애'를 질문함으로써 꽤 충격적인 도발을 시도했다. 신경진의 『슬롯』은 도박을 소재로 자본주의의 바다를 헤엄치는 인간의 정체성을 흥미롭게 그려냈다. 백영옥의 『스타일』은 신세대 한국여성의 진화된 원형을 익살스럽게 담아냈다. 잘 읽히면서 도발적이고 신선한 점이 세계문학상 수상작의 공통적 분모다.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인 『내 심장을 쏴라』는 제1회 세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로 대중에게 자리매김한 소설가 정유정의 장편소설이다. 『내 심장을 쏴라』는 이전 작품과 마찬가지로 굉장히 재미있지만 보다 '문학적'이다. 요컨대 재미와 무게를 함께 지녔다. 최근에는 영화로 제작되어 『내 심장을 쏴라』가 다시 조명되고 있다.

이 소설은 폐쇄된 정신병원에서 만난 두 남자의 이야기다. 둘은 서로를 알아가며 각자의 삶에서 열정을 얻는다. 가위만 보면 공황장애를 일으키는 1인칭 화자 이수명, 그와 같은 날 정신병원에 입원한 시력장애인 유승민. 둘의 첫 만남에서 소설은 시작된다. 첫 만남의 데면데면함부터 친밀한 우정으로 변하기까지의 과정이 생기 있게 담겼다.

수명과 승민은 각자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수명이 내면으로 자신을 축소한다면, 승민은 외면을 향한 방향에 집착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자 한다. 수명과 승민은 모두 과거의 비밀을 가슴에 품고 지낸다. 정유정 작가는 두 인물의 트라우마와 그것에 함몰되어 일상이 뭉개지는 현실의 긴장감을 잘 그려냈다. 소설의 뒷부분으로 가면서 과거에 봉착되어 있던 수명과 승민의 내밀한 비밀이 밝혀진다. 타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 고백으로 깨달아졌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내 심장을 쏴라』의 서사는 느리다. 몰입하기엔 미지근하다. 하지만 중반을 넘어 후반에 이르게 되면 여태까지 소급되어 응축된 이야기가 한꺼번에 터지면서 독자의 가독력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소설의 말미, 주인공 수명이 오랫동안 가슴 깊숙한 곳에 봉인해 두었던 삶의 참된 진실을 인식하고 용기를 표출하는 장면, 그 순간은, 이 소설이 선사하는 가장 강렬한 울림이자 카타르시스다.

『내 심장을 쏴라』의 핵심 키워드는 두 가지로 정리된다. 그것은 바로 '자아'와 '자유'다. 폐쇄된 정신병동이라는 외면의 벽을 탈출하려는 몸부림은 자아를 제대로 인식하기를 원하는 내면의 열정에 닿아있다. 두 인물의 과거의 아픔과 이에 구속된 일그러진 현재상은 자신의 인생에서 자아의 지정학적 위치를 잘못 두었을 때를 그대로 은유한다. 자아의 본질에 대한 성찰은 빠진 채 비본질에 대한 집념과 고집만이 반복될 뿐이다. 자유를 간절히 소망하지만 정작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행동 방식은 자아의 역동과는 거리가 먼 외적 환경의 파괴, 또는 내적 울림과의 단절에 불과하다.

두 인물의 자유 성취와 자아 성찰에 대한 공전(空轉) 행태는 승민이 병원을 탈출하여 글라이더를 타고 하늘을 활공하는 바로 그 순간, 앎과 행복의 실현으로 반전된다. 승민은 끝내 죽는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소설의 마지막 수명이 정신병원을 퇴원하는 장면과 연결된다. 죽은 승민은 수명에게 질문한다. 너는 누구냐고. '새' 아니면 '비행기'냐고. 이에 대한 수명의 답은 단호하고 명확하다. 내 인생을 상대하러 나선 놈. 바로 '나'라는 것.

한 사람의 자유는 타자의 간섭이나 외부의 구속으로 조정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인생 또한 타자가 아닌 자아의 추동, 즉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생(生)의 강렬한 욕망은 항시 자유의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내 인생을 '나'로서 사는 것은 분명한 진리다. 이 타협할 수 없는 절대 명제 앞에서 삶은 때때로 외부를 의식하고 타자에 주눅들며 방황한다. 진정한 자유의 가치는 내가 내 삶의 주어로서 존재하며 약동할 때 빛을 낸다. 내 실존은 누구도 욕망하지 못한다. 이 말이 진리라면, 외부를 향해 가슴을 열고 자신 있게 외칠 수 있을 것이다. 내 심장을 쏴 봐.

굉장히 잘 쓴 소설이다. 서사를 풀어가는 능숙함과 재치있는 입담이 돋보인다. 순간순간에 감동과 재미가 녹아 있다. 정교하고 정제된 묘사와 독자의 호흡을 쥐었다 놨다 하는 작가의 내공이 훌륭하다. 이런 소설에 박수를 보낼 수 있어야 한다. 내적 자유와 자아의 고찰에 번민하는 이들에게 이 한 권의 소설이 위로가 되길 바란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다윗의서재'님은?

순수한 책 읽기와 건강한 지적 소통을 목적으로 블로그를 운영합니다.

Trackback 0 Comment 0

『잃어버린 젊음의 카페에서』 - 젊은이의 음지

 

 



파트릭 모디아노 | 『잃어버린 젊음의 카페에서』 | 문학동네 | 2014


파리에 두 번 갔다. 여느 여행자처럼 두 번 모두 수박 겉핥기 식의 여행이었다. 두 번째 파리에 갔을 때는 한 번 가본 곳이라고 기시감이 들어 더 편안했다. 작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파트릭 모디아노의 책을 읽으면서 파리 여행을 다녀왔다는 생각에 작가가 들려주는 파리의 이모저모를 떠올려 보려고 노력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내게는 오데옹 사거리, 브레트빌 대로 그리고 뇌이 시청 같은 낯선 지명보다 여전히 홍대의 미로 같은 골목길이 그리고 종로의 피맛골이 더 친근한 걸 보면 말이다.

먼저 이 책이 내가 읽은 파트릭 모디아노의 첫 번째 책이라는 점을 고백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보니 재작년 수상자였던 앨리스 먼로의 책도 서너 권 사두고는 아예 읽어볼 궁리도 하지 않았다. 모옌의 책도 마찬가지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책은 왠지 어려울 것 같다는 편견과 아집에 거부감이 들지 않았나 생각한다. 또 한편으로는 읽지는 않았지만,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이런저런 책을 가지고 있다고 자위하는 심정이라고나 할까. 최근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를 다 읽고 나서, 바로 옆에 있던 『잃어버린 젊음의 카페에서』가 눈에 띄어 아무 생각 없이 집어 들었다. 놀랍게도 단박에 다 읽어 버렸다. 게다가 재미있기까지 하다. 모쪼록 이참에 노벨문학상은 어렵고 재미있지 않다는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게 됐다. 아, 그리고 160쪽가량의 짧은 분량이었다는 점도 속독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작가가 ‘잃어버린 젊음의 카페’라고 명명한 카페 ‘르 콩데’는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다. 르 콩데에서는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한담을 나누며 우정을 쌓는다. 바로 그곳에서 첫 번째 화자로 등장하는 ‘나’는 조금은 이질적 존재로 다가온다. 문득 르 콩데가 그들의 만남의 장소가 되어야만 했을까라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화자 나는 그런 곳이야말로 정의할 수 없는 자력이 있는 장소라고 설명한다. 한편 치기 어린 젊은이들은 폭음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들은 통과의례를 거쳐야만 패거리에 낄 수 있다는 암묵적 동의에 합의하고 있었다.

‘나’가 소개하는 인물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인물은 바로 본명을 알 수 없는 ‘루키’라는 여자다. 이 이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선장’은 자신의 노트에다가 카페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시간, 인물을 사진사가 카메라로 작업 하듯 정교하게 적어 놓는다. 마치 영화 ‘스모크’에서 담뱃가게 주인 하비 케이틀이 매일 같이 똑같은 사진을 찍듯, 일상에 대한 기록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첫 번째 이야기 말미에 자신은 고등광산학교 학생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운 듯 밝히며 다음 화자에게 배턴을 넘긴다.

이야기의 다음 화자는 좀 더 흥미롭다. 자신을 예술편집자라고 소개하는 사립탐정 피에르 케슬레. 그가 누군가를 추적하는 과정이 소설에 가미된 미스터리 효모를 들뛰게 만든다. 그가 찾는 사람은 바로 르 콩데 카페의 단골손님 루키다. 그녀의 처녀적 이름은 자클린 들랑크, 그리고 지금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장 피에르 슈로의 집 나온 부인이라는 사실에까지 도달하게 된다. 그런데 이 탐정은 의뢰받은 일에는 도통 관심이 없고, 오히려 자클린의 도피 혹은 방황에 열중한다.

이제 드디어 이 소설의 실제적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자클린 들랑크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 볼 차례다. 그녀는 물랭루주에서 일하는 어머니 슬하에서 자라면서, 어린 시절을 어쩔 수 없이 홀로 보내야 했다. 성격이 예민해지고 가슴이 들끓을 청소년기에 그녀는 집에만 있을 수 없었다. 그녀는 야심한 시간에 돌아다니다 경찰의 보호를 받는 등 도피 행각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다 해골이란 별명을 가진 자네트 골이라는 여자와 만나 ‘눈’을 맞는 경험도 하게 된다. 도피 중 그녀가 자주 들렀던 서점의 주인이 그녀에게 건넨 상냥한 질문은 그녀를 매료시킨다. “그래, 당신의 행복을 찾으셨나요?” 우리에게도 그렇게 말해주는 서점 주인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문득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마지막 화자는 자클린의 친구 롤랑이다. 소설의 어디에선가 그는 자신이 전생에서부터 그녀를 알았던 것 같다고 고백한다. 롤랑은 위대한 철학자의 ‘영원한 회귀’ 사상을 도입해 가며 고대 철학자가 줄기차게 주장한 고통의 경감과 쾌락의 증진이야말로 삶의 진정한 가치라는 결론에 방점을 찍는다.

뒤표지에 실린 ‘도망치는 순간’을 읽고 나는 미미여사의 ‘화차’가 떠올랐다. 놀랍다, 그저 바람나서 도망간 아내를 추적하는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한 나의 지레짐작을 정통으로 박살 낸다. 파트릭 모디아노가 장기로 삼은 ‘시간을 통한 기억의 탐색’이라는 주제와 더불어, 등장인물을 어렴풋이 엮은 개연성의 설계가 마음에 들었다.

영화 ‘라쇼몽’처럼 직접적인 교차 서술이 등장하는 건 아니지만, ‘잃어버린 젊음’의 카페를 무대로 활동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매력적이다. 삶 속에서 도피와 방황을 반복하던 자클린이 특정한 시간에 좌초되어 잃어버린 젊음의 카페에 도착했을지도 모른다는 고등광산학교 학생의 추측도 흥미롭다. 자클린을 찾아 나선 사립탐정 케슬레는 그녀를 진심으로 이해하는 수준까지 도달한다. 어쩌면 소설에 등장하는 ‘잃어버린 젊음’은 삶에서 규정할 수 없는 이유로 단절되었거나, 방황 혹은 도피하는 이들만 알아볼 수 있는 비밀코드가 아니었을까.

지금까지 출간된 파트릭 모디아노의 책들을 많이도 모아 두었다. 올해 을미년을 모디아노의 해로 삼아 천천히 읽어도 될 정도다. 바로 『팔월의 일요일들』도 읽기 시작했는데, 역시 이 소설에도 그의 유창한 구사 방식이 등장해서 반가웠다. 어느 작가가 자신의 작품세계를 통해 꾸준하게 구사하는 주제에 익숙해진다는 건 좋은 일이지 않은가.

 

오늘의 책을 리뷰한 '레삭매냐'님은?

책의 산에 도전하는 게으른 독서가입니다.

Trackback 0 Comment 0

나유리, 미셸 램블린 『핀란드 슬로우 라이프』

 

 

Trackback 0 Comment 0

엄마옷 내옷

 

'그림방 > 그리는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시 시작해!  (0) 2015.02.23
제철 빵  (0) 2015.02.16
엄마옷 내옷  (0) 2015.02.10
내가 돌아왔다!  (0) 2015.02.02
작가 각자  (0) 2015.01.26
오늘은 느린 그린 일기  (0) 2015.01.20
Trackback 0 Comment 0

『아내의 빈방』 - 당신은 우리와 함께 있는 거요

 

 


버거, 이브 버거 | 『아내의 빈방』 | 열화당 | 2014


나를 대신할 수 있는 존재는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다. 오직 나다. 나는 당신이 될 수 없고 당신도 내가 될 수 없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도 죽음이라는 이별 앞에서는 무기력해진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누군가 사라지면 그 자리는 영원히 빈 공간이 된다는 것을. 그럼에도 그곳을 떠날 수 없다. 그곳에서라도 그를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혼자 말하고 가만히 귀를 기울이게 된다. 어떤 이는 그런 시간을 오래도록 지속한다. 누구도 그 시간을 방해할 수 없다. 충분한 애도는 어디에도 없으니까.

당신은 사 주 전에 죽었지. 어젯밤 처음으로 당신이 돌아왔다오. 혹은, 다른 말로 하면 당신이 없어진 자리에 당신의 존재감이 돌아왔다고나 할까. 베토벤의 「피아노를 위한 론도」 2번(작품번호 51)을 듣고 있던 중이었소. 구 분 남짓한 동안 당신은 그 ‘론도’였고, 그 ‘론도’가 당신이었지. 거기에는 당신의 밝음, 당신의 고집, 당신의 치켜 올라간 눈썹, 당신의 부드러움이 들어 있었다오. (10쪽)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는 존 버거의 글은 부드러운 햇살처럼 쏟아진다. 마치 그 햇살로 아내를 안아주는 것처럼 말이다. 그는 사십 년을 같이 산 아내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분명 아내는 죽었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곁에 존재한다. 눈을 뜨고 아침을 맞을 때, 어떤 음악을 들을 때, 어떤 장소에 도착했을 때 함께 있다. 만질 수 없는 형체로, 볼 수 없는 형상으로, 대답이 없는 메아리로.

당신을 유심히 보면, 길을 찾는 일에 익숙한 사람에게 볼 수 있는 섬세한 분위기가 느껴진다오. 모자를 쓰거나 코트를 입은 모습, 머리를 만지는 모습, 문을 여는 모습, 돌아서서 나가는 모습. 당신은 길을 찾는 사람이오. (13쪽)

우리는 종종 잊는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위대한가에 대해 잊는다. 사랑이 시작되었을 때 생생했던 세포는 긴 연애와 결혼으로 이어져 꺼내지 않는 옛 이불처럼 변해버리고 만다. 단 하나의 사랑이었던 당신을 기억하는 일이 새삼 힘들다. 무엇을 좋아했으며 무엇을 꿈꾸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예정된 이별을 알면서도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는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존 버거는 그의 아내에 대한 이야기로 사랑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계속 뒤돌아보고 있소. 그리고 당신이 그런 우리와 함께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당신은 시간을 벗어난 곳에, 되돌아보거나 내다보는 일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 있으니 말이 안 되겠지만, 그래도 당신은 우리와 함께 있는 거요. (31쪽)

존 버거와 그의 아내 베벌리 버거가 서로를 얼마나 존중하며 사랑했는지 알 것 같다. 아내의 물건에 담긴 아내의 숨결을 고스란히 담고자 노력했을 존 버거. 점점 사라지는 아내를 향한 눈빛은 얼마나 애틋했을까. 화수분 같았던 두 사람의 사랑은 잊힐 수 없다. 아들 이브 버거에게 전해졌을 사랑은 감히 그 크기를 잴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사랑은 지속된다. 어쩌면 나를 대신할 수 있는 존재가 나밖에 없다는 말은 틀렸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사라진 자리에 당신이 살고 있다면 말이다.

엄마가 어디 계신지 모르기 때문에, 엄마의 몸이 누워 있는 곳으로 가요. 잠시 후면 저희가 고른 돌멩이가 엄마 무덤 위에 놓이겠죠. 흙과 풀 사이에 놓은 텐데, 그러면 아름다울 거라고 믿고, 또 그러기를 바라요. (35쪽)

애도의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사랑하는 방법이 그렇듯이. 아내의 빈방은 존 버거의 사랑으로 채워진다. 이 얇은 책에는 사랑이 전부 담기지 않는다. 부재 속에 존재하는 ‘당신’이라는 사랑을 살 뿐이다.


좋은 책과 서평을 나누고자 반디앤루니스 '오늘의 책'을 펜벗과 함께 만들어 갑니다.
펜벗이란 서평을 쓰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를 의미합니다.
매주 월요일, 성실한 서평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2월의 펜벗 서평 주제는 '그 남자, 그 여자'입니다.


| 펜벗 일문일답

● 『아내의 빈방』은 어떻게 읽게 되셨어요?

존 버거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었는데 때마침 『아내의 빈방』을 만났어요. 개인적으로 제게도 2014년은 죽음과 상실을 벗어날 수 없는 해였기에 더욱 마음이 닿았습니다.

● 오랫동안 서평을 써 온 선인장님에게 ‘서평’은 특정한 활동이 아니라 이미 일상의 일부 같아 보입니다. 서평은 처음에 어떤 계기로 쓰게 되셨어요?

그저 독후감으로 시작된 메모였습니다. 분명 읽었지만 모든 책을 소장할 수 없기에 나중에 다시 떠올릴 수 있는 무언가 필요하기도 했고요. 책에 대한 애정의 작은 표현이랄까요. 정작 지금은 좋은 책에 대해 쓰지 못하고 있네요.

● 평소 한국문학을 즐겨 읽으시죠. 『아내의 빈방』과 함께 읽으면 좋을 한국문학 작품도 추천해주시겠어요?

같은 주제라 할 수 없지만 이런 책들이 떠오릅니다. 김선우의 『물의 연인들』, 한강의 『검은 사슴』, 윤대녕의 『누가 걸어간다』, 서영은의 『꽃들은 어디로 갔나』, 박범신의 『외등』이요.

● 요즘은 무슨 책을 읽고 계세요?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잡았는데 감기 때문에 쉽지 않네요.

오늘의 책을 리뷰한 '선인장'님은?

그저 폭넓은 책읽기를 꿈꾸며 책과의 진정한 소통을 원하는 사람이며, 그것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글쓰기를 꿈꾸는 사람입니다.

Trackback 0 Comment 0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전집』 - 겨울의 그림자

 




에브게니 스베틀라노프 |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전집』 | Aulos Media | 2010

 

 


차이콥스키의 교향곡으로 음반 녹음 역사에 길이 남게 될 러시아의 지휘자를 꼽으라면 대략 네 명으로 압축할 수 있다. 예프게니 므라빈스키(1903~1988), 겐나지 로제스트벤스키(1931~), 블라디미르 페도세예프(1932~), 그리고 예프게니 스베틀라노프(1928~2002)가 그들이다. 각자 서로 다른 오케스트라를 맡았고, 국제적으로도 조금씩 다른 장소-본국인 러시아는 기본이었고-를 배경으로 활동했다. 므라빈스키는 레닌그라드(현재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로제스트벤스키는 빈과 런던을 비롯한 서유럽, 스베틀라노프는 유럽은 물론이고 일본에서 굉장한 인기를 끌었었다.

이들 중에서 가장 확고한 위치를 점한 쪽은 므라빈스키일 것이다. 그와 레닌그라드 필하모닉의 차이콥스키 교향곡 4, 5&6번 음반(DG)은 두말할 나위 없는 위치에 올라있으며, 네 명 중 나이도 가장 많다. 로제스트벤스키는 냉전 시절부터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를 비롯해 꾸준히 서방세계의 미디어에 얼굴을 비춰왔고, 페도세예프는 80년대 후반의 내한공연과 백건우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전곡 녹음의 반주를 맡은 덕분에 국내 애호가들에게도 매우 친숙한 인물이다. 하지만 스베틀라노프의 경우는 국내에서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조금은 밀린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이었는데, 그가 국내에서 제대로 알려지게 된 것은 아마도 일본의 포니 캐년에서 발매된 차이콥스키 교향곡(1990년도 녹음)이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이 그 시발점이었을 것이다. 서유럽, 미국은 물론이고 아시아의 오케스트라들은 흉내조차 내기 힘든 위력적인 포르티시모와 숨 막힐 듯 내달리는 템포를 자랑하는 이 녹음은 ‘러시아적인 힘’을 동경하던 한국과 일본의 애호가들을 단숨에 열광시켰고, 일본 제작반 특유의 훌륭한 음질까지 등에 업고 단숨에 므라빈스키의 그것과 어깨를 나란히 견줄 수 있는 아이템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90년대에 녹음된 이 음반들(4~6번이 낱장으로 담겨 있는 형태도 있고, 함께 묶어 발매된 형태도 있다)이 매우 훌륭한 음반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음반이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국내 음반사인 아울로스 뮤직에서 기획한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여섯 곡 전곡을 리마스터링한 네 장짜리 음반이다. 약 10년 전쯤 발매된 음반이기는 하지만 깔끔한 구성의 패키지에 담긴 훌륭한 연주를 매우 합리적인 가격에 장만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한 메리트를 가진 음반임에 틀림없다. 특히 마지막 세 개의 교향곡에 밀려 디스코그래피에서 소외당하기 쉬운 1, 2, 3번 교향곡들의 연주가 상당히 좋은 편이어서, 별생각 없이 ‘한번 들어나 볼까?’ 하는 마음으로 걸어놓으면 평소에는 잘 몰랐던 이 작품들의 매력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이 음반에서 가장 주목해야 하는 곡은 교향곡 4번이다. 스베틀라노프의 녹음은 앞서 언급한 므라빈스키의 DG녹음 보다 훨씬 강렬한 파괴력을 뽐내고 있으며, 1악장부터 귀를 찌르는 호른의 자극적인 포르티시모가 압도적이다. 또한 4악장의 종결부에서 들려주는 충격적인 아첼레란도(점점 빠르게)는 이 음악은 오로지 러시아인들에 의해서만 온전하게 구현될 수 있다는 것을 소리 높여 강조하고 있다. 5번 교향곡은 음질의 탓인지 파괴력은 다른 연주들보다 덜하게 들리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곡 전체를 뒤덮고 있는 쓸쓸함과 허무함이 더 잘 드러나고 있다.

차이콥스키의 교향곡은 눈이 펑펑 내리는 한겨울에 들어도 좋지만, 겨울이 끝나가는 시점에 듣는 것도 나름 잘 어울린다. 그의 어둡고 쓸쓸했던 내면을 가렸던 현악과 금관의 두텁고 쩌렁쩌렁한 소리가 유독 공허하게 느껴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그의 교향곡을 박력과 웅장함이라는 한정된 키워드로 기억하고 있지만, 그 가면이 벗겨지고 민낯이 드러나는 순간이야말로 진정한 차이콥스키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그리고 스베틀라노프의 이 음반은 작품의 이면으로 숨어버린 그를 찾는 이들에게 큰 도움을 주게 될지도 모른다.

 

 

오늘의 음반을 리뷰한 '박현준'님은?

편견없이 음악을 듣고 편견없이 생각하고 싶어하는 음대생입니다.

Trackback 0 Comment 0

『우리가 사랑한 헤.세. 헤세가 사랑한 책.들.』 - 헤르만 헤세의 독후감


 



헤르만 헤세 | 『우리가 사랑한 헤.세. 헤세가 사랑한 책.들.』 | 김영사 | 2015


서평 또는 평론을 쓰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이 두 가지 있다고 한다. 작품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과 무엇보다도 그 책을 읽고 싶게 만들기. 나는 둘 다 안 되기에 항상 내가 유의하는 부분이지만 쉽지 않다. 다작만이 글쓰기 실력을 높여주는 것은 아니다. 글을 어떻게 읽고, 어떻게 쓰느냐가 관건인데, 때마침 이 책 서문에 인용된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답이 될 듯싶다.

글로 쓰인 모든 것 중에서 나는 오로지 글쓴이가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 피로 글을 써라. 그러면 너는 피가 정신임을 알 것이다. 타인의 피를 이해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글을 읽으며 게으름 부리는 자들을 미워한다. (9쪽)

‘피로 쓰고, 피로 읽어라.’ 글을 쓰는 자라면 신조처럼 여겨질 것이다. 헤르만 헤세도 그랬다. 헤세의 이야기를 꺼내기에 앞서 잠깐 글쓰기의 방식인 비평, 평론, 서평에 대한 단상을 꺼내보고자 한다. 오늘날에는 비평가와 평론가의 펜을 통해 독자들이 따라간다. 평론가의 필력은 독창적인 해석에 도움을 준다. 문단에 대한 철저한 비판도 결국 비평을 통해 이뤄진다. 그러나 여기서는 평론이나 비평이 아니라 서평에 가까운 주제를 얘기할 것이다. 서평가로 알려진 ‘로쟈’는 독자에게 지적 유희를 보여준다. 그에게 가장 높이 평가할 부분은 성실함이다. 그가 매일같이 읽은 책에 대한 서평은 독자에게 책을 고르는 좋은 정보가 된다. 이러한 성실함의 원조는 사실 따로 있다. 바로 오늘 말할 헤르만 헤세다.

그는 살면서 삼 천여 편의 서평을 썼다. 이 책은 73편의 글을 담고 있다. 직업으로서 평론, 비평, 서평을 쓴 사람은 있지만, 문학가 즉 작가가 서평을 쓰는 경우는 드물다. 이러한 작업은 보통 철학자들이 유희적으로 자신의 지적 발산을 위해서나 이론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담을 때 행해지는데, 헤르만 헤세는 소설가로서 소설가를 소개한 것이니 재미있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니체가 문학적 글을 쓰기 위해 빨간 피를 뿜었다면, 그는 이번 작업을 쓰기 위해 파란 펜을 들었다. (이 부분은 책 전체가 파란색으로 인쇄된 것에서 찾아낸 것이지만) 내가 본 헤세의 글쓰기는 『데미안』에 대한 일화에서 알 수 있듯 독자를 위한 성실함이었다고 본다. 가명으로 출간한 의도가 이 책에서 좀 더 자세히 다뤄지고 있는데, 그가 지속해서 서평을 쓴 이유 또한 세상의 젊은이들을 위한 안내자 역할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헤르만 헤세가 마치 살아있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만큼 헤세의 주관적인 생각을 알아볼 수 있다. 한 편 한 편 마다 자신의 영향을 받은 작가나 그가 비판하는 것이 무엇인지, 당시 시대적 상황이나, 그 소설이 나왔던 이유가 적혀 있었다. 이 책이 제법 가볍게 읽히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서문에서도 헤세의 성실함을 두고 ‘읽지 않은 책들의 더미’에 쌓여 있다고 묘사하고 있다. 그의 생각이 모인 이 책이 나에겐 또 하나의 소설로 다가왔다. 내가 알던 헤세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책이기도 했다. 그의 흥분과 숨소리를 듣고 싶은 독자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해안'님은?

세상을 읽고, 세상을 쓰고, 세상을 그리고 싶은 사람입니다.

Trackback 0 Comment 0

우리는 동물원을 사지 않았다


 



우리는 동물원을 사지 않았다

자신의 블로그에 야생동물과 반려동물에 대한 정보를 기록하는 학생 최혁준은 올해 2015 대학입시를 치렀으나, 지원했던 수의예과, 생물학과, 동물자원과학과 등에서 전부 탈락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누구도 그를 진짜 전문가라고 공인해 주지 않았지만, 최혁준은 자신의 전문을 신중히 기술하여 『고등학생의 국내 동물원 평가 보고서』를 세상에 올렸습니다. 그는 애호하는 대상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심사숙고한 끝에 어리숙한 말이나 감상적인 태도는 애써 제외합니다. ‘직무유기 동물원’과 ‘우매한 관람객’에게 동물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정중히 제시하죠.

나는 동물원에 갈 때 동행이 있으면 일반적으로 놓치기 쉬운 부분들을 알려준다. 혼자 방사장에서 몸을 흔들고 있는 코끼리를 보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열에 아홉은 재미있어한다. 그러면 나는 이런 코끼리의 행동이 어떤 요소가 결여된 사육 상태에서 보이는 정형 행동이고, 더하여 코끼리가 홀로 사육되고 있는 것에서 이끌어 낼 수 있는 문제점을 알려준다. 그러면 좀 전까지는 재미있어하던 그 사람들은 대부분 표정도 눈빛도 달라진다. (…) 애써 재미있게 보려고 해도 반드시 어딘지 모르게 불편함이 느껴질 것이다. 그런 불편함이 결국에는 피드백을 형성하고 변화를 이끌어 내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최혁준 『고등학생의 국내 동물원 평가 보고서』, 책공장더불어, 2014)

얼마 전, 외신을 통해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 있는 칸 유니스 동물원의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세계 최악의 동물원이라 불리는 이곳 상황은 상상 이상으로 참혹합니다.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파괴된 동물원에서 인간은 탈출했고, 동물들은 머무릅니다. 동물들의 처참한 몰골에선 비통한 분노마저 느껴졌습니다.

‘독일어의 교황’이라 불리는 독일의 대표 언론인 볼프 슈나이더는 『인간 이력서』에서 망가진 지구를 만들어 놓은 인류를 가리켜 ‘우리가 문제’라고 과감하게 고백합니다. 덧붙여 ‘우리가 해법일 수도 있을까?’라고 고민합니다.

우리에게는 인류를 해치지 않는 동물과 식물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 다른 생물들이 인간에 의해 위협받고 멸종당하는 것은 어찌 보면 불가피한 일이다. 이 과정에서 최대한 생태계의 연관 관계를 생각한다면 그건 인간 자신에게도 유익한 일이 될 것이다. (볼프 슈나이더, 『인간 이력서』, 2013, 을유문화사)

‘보호’라는 말을 매일 보는 신호처럼 무심코 지나치지만 않는다면, 인류는 해법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최혁준은 ‘문제’가 왜 문제가 됐는지 제시했습니다. 누군가는 이 학생의 분석을 해법의 실마리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볼프 슈나이더는 ‘자연 보호’가 인간 자신에게도 유익한 일이 될 거라 말하지만, 적어도 누굴 위해서든 보호는 필요합니다. 온갖 물질적 혜택을 누리면서 지구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는 존재인 인간이 ‘동물에 대해’, ‘식물에 대해’ 고민해 보는 것은 가치가 있으니까요.

연관 도서


|Editor_정혜원

hyewonjung@bnl.co.kr

Trackback 0 Comment 0

테마에 어울리는 책을 살펴 보세요

 

 

◆ '펜벗 큐레이션 Vol.3'를 만나보세요! ◆ 

 

 

안녕하세요.

반디앤루니스 에디터입니다.

 

반디앤루니스의 서평단 펜벗은

하나의 주제를 정해 책을 읽고, 글을 나눕니다.

이야기하고 싶어 근질거린다는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이달에는 '그 남자 그 여자'라는 주제로

책을 고르고 서평을 작성해 보았습니다.


각기 다른 색채로 채워진

'펜벗 큐레이션 Vol.3, 그 남자 그 여자'를  만나보세요.


겨울의 끝자락 달달한 사랑 이야기, 잊히지 않는 그 남자, 혹은 그 여자에 대한 단상까지.

정성스레 고른 책과 여러 색깔의 서평을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 '펜벗 큐레이션 Vol.3' 페이지 바로보기

 

 

- 반디 에디터 드림

Trackback 0 Comment 0
prev 1 2 3 4 5 ··· 22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