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디앤루니스오늘의책'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5.01.09 《포기의 순간》 - 먼저 이 추위에 맞서
  2. 2015.01.07 《사포》 - 아슬아슬하게 아찔하게
  3. 2015.01.02 《장서의 괴로움》 - 내 방엔 책이 너무도 많아
  4. 2014.11.21 《나를 보내지 마》 - 우리도 똑같이 사랑할 뿐이야

《포기의 순간》 - 먼저 이 추위에 맞서

 

 

 

필립 베송 | 《포기의 순간》 | 문학동네 | 2011

 

포기의 순간이 구원의 순간이 될 수 있을까. 필립 베송의 소설 《포기의 순간》은 가장 비극적인 사고에서부터 오히려 구원의 빛을 얻게 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영국 해안의 작은 마을 팰머스에 그가 돌아온다. 토머스 셰퍼드, 아들을 죽인 살인자. 그가 5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다. 5년 전 토머스 때문에 마을의 이미지를 훼손당하고 상처를 입었던 팰머스 사람들은 그의 귀향을 반기지 않는다. 대놓고 그를 무시하고 따돌린다. 하지만 토머스는 고향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 고향에서 누군가를 기다려야만 했다. 그는 묵묵히 하루하루를 견뎌낸다. 한편 마을에서 유일하게 토머스를 사람답게 대해주는 건 그와 마찬가지로 ‘이방인’ 취급을 당하는 파키스탄인 가게 주인과 어느 미혼모이다. 토머스는 그들을 신뢰하기로 하고 자신의 과거를 고백한다. 그리하여 5년 전에 일어났던 비극적 사건의 전말과 현재 토머스가 기다리고 있는 게 누구인지가 드러난다.

 

《포기의 순간》은 비극적인 상황에서 출발한다. 5년 전 토머스가 사람들에게 잡혀가는 순간부터 다시 돌아온 후의 상황이 어둡고 서늘한 해안 마을의 풍경과 맞물려 비장하면서도 비관적으로 그려진다. 독자들은 토머스가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지, 다시 사회에 녹아들 수 있을지를 궁금해한다. 하지만 소설은 독자들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끌고 간다. 사건의 전말과 함께 드러나는 건, 토머스가 이미 오래전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팰머스는 웅덩이에 고여 있는 물 같은 곳이다. 칙칙하고 냄새나며 어딘지 썩어 있는 모양이다. 팰머스의 남자들은 과묵하고 거칠다. 여자들 역시 매섭고 쌀쌀맞다. 팰머스는 한 번 태어나면 벗어날 수 없는 곳이다. 그곳 주민들은 거기서 평생 뱃사람으로, 평생 누군가의 아내로만 살아간다. 그것이 팰머스라는 마을을 이루는 중심이자 핵심이다. 하지만 토머스는 달랐다. 그는 늘 중심과 명확한 것을 경계했다. 토머스의 평생 연인이었다가 그와 결혼까지 한 메리앤은 사실 토머스 몰래 바람을 피웠다. 토머스는 자신의 아이인 줄 알았던 아들이 사실 메리앤이 바람을 피워 임신한 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미 기울기 시작했던 결혼 생활은 그 이후 최악의 상황을 달리기 시작한다. 토머스는 자신이 알게 된 사실을 메리앤에게 밝히지 않는다. 그들의 가정은 거짓말과 위선에 잠식당한다. 하지만 팰머스 사람들은 이혼하지 않는다. 아이가 있다면 더더욱. 어느 날 토머스는 이 모든 게 누군가 죽는다면 끝이 나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토머스는 절대 아이를 죽이지 않았다. 다만 그런 생각을 잠시 했었다. 그러나 아이를 보는 순간 토머스는 그런 생각을 접었다. 아이가 죽은 건 순전히 사고였다. 토머스는 과실치사로 5년형을 선고받았던 거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에게 토머스는 그저 아들을 죽인 살인자일 뿐이고, 토머스에게도 그 자신은 어찌되었든 마음의 죄를 지은 사람이다. 유죄이지만 사실은 유죄가 아니고, 무죄이지만 진짜 무죄는 아닌 것이다.

 

작가인 필립 베송은 다음처럼 말했다. "나는 비극적 사건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며 다루고 싶었다. 그리고 죽음이 인간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러니까 이것은 내 소설 중 가장 낙관적인 내용이 될 것이다." 토머스는 항상 아이를 마음에 안고 살아간다. 그러나 소설을 읽어갈수록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건, 토머스가 얼마나 불행하고 음울한 사람인가가 아니라 그가 얼마나 희망과 기대에 차 있는 사람인가, 이다. 필립 베송은 또한 이런 말도 했다. "틀에 박힌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쩌면 불의의 사건을 겪어야 하는 건 아닐까요?" 마음속으로만 경계를 좋아하던 토머스는 불의의 사건을 겪고 강제로 경계 밖에 내쳐진다. 하지만 그 경계 밖에 처하고서야 토머스는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깨닫고 그것을 받아들인다. 사람들은 중심 속에서 중심 밖에 있는 그를 욕하지만 그는 그 욕에 맞서 당당히 걸어가기로 마음먹는다. 그가 기다리는 사람은 감옥에서 만났던 루크라는 남자다. 토머스는 팰머스에 그가 찾아오리라는 확신 찬 기대를 가지고 하루하루를 기다린다.

 

국내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필립 베송은 프랑스에서 대중과 평단의 사랑을 고루 받고 있는 스타작가다. 그의 문체는 간결하면서 밀도는 높고 단단하다. "간결한 단어, 요동치는 문장, 그리고 폭풍주의보." (베르지옹 페미나)라는 말에 깊이 공감하는 바이다. 필립 베송의 가장 낙관적인 이 작품은 실로 사람들이 가장 비극적일 수밖에 없을 거라 생각하는 상황 속에서 낙관을 얘기하며 독자들에게 놀라움을 안긴다. 소설 속 토머스가 무죄이면서 무죄가 아니듯이, 그에게 어떤 동정을 표하기란 조금 어렵다. 하지만 그 낙관, 중심을 벗어나 경계로 당당히 걸어가겠다는 그 의지에는 마음을 뺏긴다. 《포기의 순간》은 구원과 낙관이라는 것이 단지 환상이나 상상은 아니라고 얘기한다.

 

감옥에서는 눈이 오건 바람이 불건 얼얼한 추위가 살을 에건, 그 모든 요소로부터 보호를 받았다. 그곳에서는 한쪽만 문이고 나머지는 벽이다. 나는 바깥세상에, 이 바깥세상의 공격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시련에 맞서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한다는 걸 새로운 교훈처럼 깨닫는다. 그래, 먼저 이 추위에 맞서자. (50쪽)                               

 

오늘의 책을 리뷰한 '파수꾼'님은?

호밀밭을 뛰놀고픈 자유로운 영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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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포》 - 아슬아슬하게 아찔하게

 

 

 

 

알퐁스 도데 | 《사포》 | 예문 | 2014

 

《사포》에는 사랑에 대한 풍부한 묘사와 그 앞에 웅크리고 발가벗겨진 인간의 모습이 있다. 장과 파니에게서 예상치 못했던 사랑의 숨은 그림자들을 발견한다.

‘연애’보다도 ‘사랑’은 그 깊이를 가늠하기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진다. 언제나 쉽게 달라져 버릴 것을 알고도, 늘 사랑에 대해 정의하고 싶어 하는 연유 또한 이 때문이 아닐까. 사랑이란 그것의 본질적 속성 위에 유연한 형체들을 지닌 모습으로 어딘가에 놓여 있을 것만 같다. 다양한 문학 작품 속의 새로운 주인공과 그들이 알려주는 모든 것을 통해, ‘사랑’의 정의를 하나씩 보태어 본다.

알퐁스 도데의 《사포》에 그려진, ‘파니’에 대한 ‘장’의 사랑 또한 그러하다. 사랑은 때때로 이유를 짚어낼 수 없는 따스한 분위기와 찰나에 다가와 환락 같은 안온함에 사뿐히 자리한다. 선택과 결정을 위한 움직임을 알아차잖기도 전, 순간의 얕은 변화에 자리를 쉽게 내어 주는 것이 사랑의 시작일 뿐일지도 모른다. 다만, 순수한 열병과 같은 감정의 휩쓸림만이, 경외심과 찬탄과 아름다움, 희생과 헌신, 그것들만이 ‘사랑’을 그리지는 않는다. 사랑이라는 슬하는 이리도 깊고 넓다. 알량한 허세 의식, 진흙탕 같은 질투, 우둔함, 나약함, 동정과 연민, 광포한 충동, 우유부단함 속에서도 사랑은 미약한 숨을 내뱉는다. ‘장’이 그것을 알려주었다.

프랑스 남부의 명망가 자제인 장은 외교관 시험 준비를 위해 파리에 있었다. 그는 무도회에서 15살 연상의 파니를 만난다. 고지식하고 엄격한 편이지만 순진하던 장은, 파니와의 관계가 집안과 자신의 미래보다 중하지 않고 마뜩잖음을 느끼면서도 파니의 지속적인 구애와 질긴 숙명과도 같은 끈에 의해 점차 그녀에게로 이끌린다. 장은 곧 파리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신경 쓰며 그녀와 동거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지금 난 사랑에 빠진 걸까? 아니야, 그렇지 않아. 그렇지만 어쨌든 이처럼 나를 따스하게 둘러싸고 있는 분위기는 사랑어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만 가능한 게 아닐까? 어떻게 그토록 오랫동안 이러한 행복을 접어 두고 살아올 수 있었지··· ··· 타락이라든가 구속당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일까? 하지만 그 얼마나 우스운 얘기야··· ··· 이 세상에서 무엇을 더 바랄 것인가?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이 여자 저 여자와 어울리며 방탕한 생활을 하는 것보다 한 여자의 사랑을 받으며 편안하게 지내는 지금의 생활을 더 불결하고 추하다고 할 수 없지··· ··· (본문 중에서)

그는 외무부의 연수 기간인 3년 동안만 그녀와의 관계를 유지하면 될 거라고, 스스로 불안을 자위했다. 황홀감에 도취되어 신혼 같은 생활을 보내던 그때 의도치 않은 일들이 발생한다. 무도회를 주최했던 디셸레트와 유명한 조각가 카우달을 만나, 파리 사교계의 꽃으로 많은 예술가와 사랑을 거쳐 온 파니의 과거에 대해 듣게 된 것이다. 사랑의 경외심을 찬양하던 라구르너리 시의 사포가 파니였다니, 카우달이 조각한 브론즈 빛의 아름다운 사포가 파니였다니. 파리의 유명 예술가들의 뮤즈, 그녀가 '사포'였다. 그는 역겨움과 더러움을 느끼며 파니를 향한 경멸스러운 감정에 비틀거리면서도, 속마음에 생경한 목소리가 울린다.

생각이 이쯤 미치자 장은 당대의 프랑스를 뒤흔드는 위대한 예술가들이 거쳐 간 여자를 자신도 한번 안아봤다는 우쭐함과 그 예술가들이 자기더러 미남이라고 불러 주었다는 데 대한 묘한 자부심이 어이없게도 마음 한구석을 차지해 가는 걸 느꼈다. 그의 나이 때에는 무엇이든 확실한 게 없으며 더군다나 세상에 대한 이해라든가 삶에 대해서 아직도 방황과 모색을 시도하는 때라 남들이 조금만 부추겨도 세상이 다 제 것인 양 믿는 법이다. (···) 장 역시 그랬다. 라구르너리가 아름다운 운율로 시를 적어 노래하고 카우달이 심혈을 기울여 대리석과 브론즈로 조각한 사포의 모습이 후광에 싸여 그의 머릿속에서 자꾸 커져만 갔다. (본문 중에서)

파니의 곳곳에 새겨졌을 지난 사랑의 방탕한 흔적들과 함께 파니의 출생과 집안에 관한 사실들이 연달아 베일을 벗는다. 감추어 둔 것이 드러나기 시작한 후, 파니는 이전의 고귀함과 조심스러움을 버리고 장 앞에서 거침없고 난잡한 모습으로 돌변했다. 그즈음 도착한 고향의 편지를 빌미로, 장은 파니와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끝낼 결심에 이른다.

혼란스러움과 질척거리는 사랑놀음에 진이 빠져버린 장은, 고향으로 돌아와 평온함과 순수함에 젖어든다. 결국 그는 파니에게 이별을 고한다. 얼마 가지 않아 전원생활의 고루함과 나른함에는 싫증이 났지만, 행간에 녹아나는 애정이 애무와도 같은 파니의 편지는 계속되었다. 궁금함과 기다림은 애틋한 마음과 그리움으로 색칠되어 가고. 장과 파니는 다시 만나게 된다. 그러나 떨어져 있던 여백만큼의 새로움에도―새로움이 늘 그렇듯― 아주 짧은 행복이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겨우 지켜보았을 따름이다. 짧았던 새로움이 퇴색되고 장은 다시 허물을 벗겨내 벗어나야 할 구실을 들먹였다.

남루해지던 생활이 이어지던 중 장은 급작스레 나타난 어린 소녀에게서 모든 것이 합당하고 정돈된 것만 같은 구원을 발견한다. 소녀는 좋은 집안의 자제였고 젊었으며 싱그러웠다. 그렇게 파니를 떨쳐 보냈음에도, 알 수 없는 잔영이 그의 온몸과 정신을 휘감았다.

모든 의욕을 잃어버린 채 혼자 사는 사람들 특유의 방향감각을 상실한 허전하고 괴로운 나날이었다. 그것은 끝나 버린 사랑에 대한 미련이라기보다는 갑자기 잃어버린 분신을 향한 그리움 때문이었다. 한솥밥을 먹고 잠자리를 같이하던 날들이 켜켜로 모여 보이지 않는 견고한 천이 한 올 한 올 짜지기 마련이며 그런 관계가 느닷없이 단절되었을 때 그 견고함은 고통으로 드러나는 법이다. (본문 중에서)

혼란과 방황의 시간을 꾸역꾸역 넘기며 새로운 소녀와의 그것이 사랑이자 행복이라고 다짐하던, 장은 그가 보냈던 편지들을 돌려받으러 파니를 찾아간다. 그러나 그곳에서 맞닥뜨린 파니의 옛사랑과 흐트러진 침대 시트에 장은 광포한 질투에 휩싸인다. 그날, 장은 파니를 떠나지 못했다. 그는 벗어나려고 발버둥 쳐도 곧 제자리로 돌아와 버리는, 늪에 머물기로 한다.

그러나 그녀는 영원히 장에게서 멀어지는 길을 택한다. 장은 저 멀리 사라지는 파니의 모습을 바라본다.

완전히 파멸해 버린 자신의 허망한 삶이 바위가 파도에 씻겨나가듯 그의 가슴속에서 천천히 빠져나가고 있었다. (본문 중에서)

아름다움과 경외심으로 점철된 열정만이 사랑은 아니다. ‘파니’를 향한 ‘장’의 사랑은 질척했고 갑갑했지만, 처절할 만큼 순수하고 원색적이기까지 했다. '사랑'의 또 하나의 정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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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의 괴로움》 - 내 방엔 책이 너무도 많아

 

오카자키 다케시 | 《장서의 괴로움》 | 정은문고 | 2014

 

네이버의 ‘지식인의 서재’를 보고, 언젠가 나 역시 저런 큰 서재를 가지고 싶었다. 서재가 있는 방을 가지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예전에 살던 방엔 책을 둘 공간이 없어 항상 이불 옆에 책이 몇 권씩이나 쌓여있었다. 서점에 들어가면 항상 기분이 좋았다. 책 냄새가 잔뜩 나는 곳. 내가 읽을 책이 많은 곳. 《장서의 괴로움》을 읽으면서 그 괴로움이 너무나 부러웠다. 삶을 위협할 정도로 많은 책을 가지고 인생을 꾸리고 있다니 놀랍고도 신기했다.

 

새 책은 계속 나오는데, 만약 책을 더 놓을 공간이 없을 정도로 도서관이 가득 차면 어떡하지? 이러다 도서관이 무너져버리는 것은 아닐까? 가끔 도서관에 올라갈 때면 그런 생각을 했다. 《장서의 괴로움》에는 실제로 그만큼 책을 많이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나온다. 집이 흔들리고, 집의 모양이 기울만큼 건물 가득 책을 가지고 있다.

 

나는 절대 《장서의 괴로움》에 시달리지 않을 것이다. 도서관에서 책을 주로 빌려보는데, 이상하게 내가 가진 책보다도 가지고 있지 않은 책에 더 흥미가 생긴다. 분명 같은 책이 집에 있더라도 어쩐지 안 읽고 있다가 결국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해 읽는다든가 하는 식이다.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하지만 읽기 위해서는 기한이 필요하다. 반드시 며칠 내에 읽어야 한다는 그 기한이 책에 더 집중하게 해 준다. 게다가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난 책과의 연이라는 것이 좋다. 내가 찾아 헤맨 것이 아니라 책이 나에게로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늘 어디에 살더라도 집 근처에 도서관이 있으면 좋겠다고 바란다.

 

헌책방에 책을 꽤 많이 팔아 보고, 중고책도 많이 사봤는데, 《장서의 괴로움》에 나오는 일화처럼 엄청나게 많은 양의 책을 판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책을 팔 땐 역시 마음이 쓰리다. 방이 좁아서 어쩔 수 없이 가진 책 중에서 더 읽지 않는 책을 모아 팔았다. 책들은 헐값에 팔려 나갔다. 한번은 1권과 2권을 같이 팔려고 헌책방에 갔다. 책의 상태 때문에 2권은 팔지 못하고, 1권만 팔았다. 남은 2권을 가지고 돌아오는데, 순간적으로 1권이 없어진 2권이라니, 안타까웠다. 헌책방에서 아주 낡은 책을 산 기억도 있다. 누군가 책에 낙서한 것을 발견하면 기분이 묘하다. 마치 같은 책을 읽고 있던 어떤 사람의 순간을 엿본 듯하다. 어떤 책에는 누군가에게 보낸 편지가 적혀 있었는데, 그것이 꽤 낭만적이라 책 자체에 대한 운치가 풍겼던 기억이 난다. 내가 판 책들도 어딘가를 헤매고 있겠지.

 

책만큼 시대가 지나도 그 가치가 여전히 고마운 것이 있을까. 책을 좋아하고, 자랑하면서도, 한편 고통스러운 저자의 모습이 재미있다. 비슷한 구성이 반복되는 바람에 굉장히 색다른 재미를 주는 책은 아니었지만, 한 번쯤 나도 이런 괴로움을 알아보고 싶다. 언젠가 산더미 같은 책들에 쌓여.

 


오늘의 책을 리뷰한 '라미'님은?

책에서 행복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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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내지 마》 - 우리도 똑같이 사랑할 뿐이야

 

 

가즈오 이시구로 | 《나를 보내지 마》 | 민음사 | 2009

 

《타임(TIME)》에서 선정한 최고의 영문소설 100선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린 영국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를 읽었다. 이런 찬사 때문에 많은 기대를 했다면, 어쩌면 《나를 보내지 마》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책을 읽기 전에 이미 영화를 보았다. 《나를 보내지 마》를 읽는 건 이미 본 영화에 대한 복기이자, 영화와 원작 소설의 차이점을 찾는 오디세이였다고나 할까. 영화 《아일랜드》와 같은 소재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정말 하늘과 땅 같은 차이를 보여주는 원작 소설의 깊이는 남달랐다. 어떻게 보면 밋밋할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작가가 인터뷰에서 언급한 대로 러브스토리와 우정에 관한 깊은 성찰을 엿볼 수 있는 수 작품이었다. 가즈오 이시구로와의 첫 만남은 대단히 만족스럽다.

 

주인공 캐시 H.는 클론 즉, 복제인간이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클론이 등장한 여느 SF 소설과 다른 변별점을 지향한다. 이해하기 어려운 과학용어라든가 근원을 알 수 없는 화려한 서술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캐시를 비롯한 루스와 토미가 엮어내는 관계에 더욱 집중한다. 그들은 영국 모처에 존재한 헤일셤이라는 기숙학교에서 ‘사육’되어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자신의 장기를 근원자에게 기증하고 죽어야 한다. 그들은 그 사실에 대해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 어느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그런 사실을 알려 주겠는가.

 

바로 이 지점에서 영화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도덕적, 윤리적 문제를 직면한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아무리 기술문명이 발전하고 무병장수 영생의 시기가 도래해서 인간이 인간답지 못한 삶을 살게 된다면, 그게 도대체 무슨 의미란 말인가. 최근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 경비원의 분신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에 물질만능주의의 폐해가 얼마나 만연한 지 다시 한 번 되새겼다. 나와 내 가족을 살리기 위해, 하나의 영혼이 희생된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되묻게 된다. 어쩌면 그렇기에 가즈오 이시구로는 기증자인 루스와 토미를 철저하게 타자로 분리한다. 인간은 클론의 운명을 몰라도 된다는 식의 사고야말로 끔찍하다.

 

그가 원한 것은 헤일셤이 어떤 곳이었는지를 단순히 듣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자기가 유년기를 그곳에서 보낸 것처럼 헤일셤을 '추억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기 삶이 곧 완결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나로 하여금 여러 가지 것들을 자세히 묘사하게 해서 그것들이 실제로 자기 머릿속에 서서히 자리를 잡아서는, 약 기운과 통증과 피로감으로 잠 못 이루는 그런 밤 동안 나의 기억과 자기 기억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기를 원했던 것이다. (17쪽)

 

헤일셤에서 유대감을 가지고 성장한 캐시와 루스, 토미는 여느 인간과 다르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16 세가 되어 헤일셤을 떠나 코티지에 정착한 그들은 비로소 세상과 접촉한다. 고립된 헤일셤 출신들은 다른 기증자들에게도 특별한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성인이 되기 전 이들 사이에 벌어지는 고민과 갈등 또한 치열한 양상을 띠기 시작한다. 어렴풋한 미래에 대한 고민이 증폭되고, 자신의 삶이 궁극적으로 특정한 목적을 지니고 설계되었다는 가혹한 운명을 그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나를 보내지 마》를 읽는 동안, 캐시와 루스, 토미는 왜 영화 < 아일랜드 >에 나오는 클론들처럼 자신의 운명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에 나서지 않는지 궁금했다. 그들을 옥죄는 운명을 피하려면 도망이라도 쳐야 하지 않나. 성장, 잠깐의 병간호 생활 그리고 기증과 종료(completion)로 이어지는 삶의 순환고리는 인간의 삶과 달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가운데 그들의 자유의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 바로 그들이 인간과 다른 결정적 차이다.

 

"어딘가에 있는 물살이 정말이지 빠른 강이 줄곧 떠올라. 그 물 속에서 두 사람은 온 힘을 다해 부둥켜안지만 결국은 어쩔 수가 없어. 물살이 너무 강하거든. 그들은 서로 잡았던 손을 놓고 뿔뿔이 흩어지게 되는 거야. 우리가 바로 그런 것 같아. 부끄러운 일이야, 캐시. 우린 평생 서로 사랑했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영원히 함께 있을 순 없어" (386쪽)

 

영화는 확실히 소설과 많은 차이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영화는 중요한 에피소드의 핵심 위주로 빠르게 진행된다. 노퍼크 여행에서 따로 남겨진 캐시와 토미가 절벽의 벤치로 뛰어가는 장면과 뭍 위에 올라온 배를 찾아가는 미장센은 탁월했다. 소설에서도 역시 중요한 모티프로 작용하는 노래, 주디 브릿지워터(judy bridgewater)의 ‘Never Let Me Go’의 애절함도 영화가 잘 담아냈다. 하지만 나는 역시 소설을 권하고 싶다. 독서에 가속도 붙을 뿐 아니라, 영화에서 미진하게 다룬 부분도 충분히 보충된다.

 

《나를 보내지 마》에서 SF 클론 소설의 전통적인 이야기 구조를 기대했다면, 독자는 분명 실망할 것이다. 모든 진실을 밝혀주는 결정적 한 방도 없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인터뷰에서도 밝혔듯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클론, 복제인간이라는 소재로 인간이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을 환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윤리적 이슈에 대해서도 그는 침묵한다. 그래서였을까, 에밀리 선생님이 소설의 끝자락에서 ‘사육’이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했을 때 나는 그 말이 너무 불편했다. 가끔 진실을 관통하는 직언은 그렇게 육중한 무게로 영혼을 타격하기 마련이다.

 

소설의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나는 다시 생각했다. 인간은 왜 존재하는 것일까. 소설에 나오지는 않지만, 영화에 나온 캐시의 말 또한 의미심장하다. 어떻게 근원자의 삶이 클론인 캐시의 삶보다 낫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오늘의 책을 리뷰한 '레삭매냐'님은?

책의 산에 도전하는 게으른 독서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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