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디앤루니스 오늘의 책'에 해당되는 글 25건

  1. 2015.01.16 《사랑에 대한 모든 것》 - 당신은 사랑 알기 위해 태어난 사람
  2. 2015.01.14 《풀무질》 - 책방 아저씨
  3. 2015.01.12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 느지막한 사랑
  4. 2015.01.08 《米洲의印象》 - 1909년, 뉴욕의 김동성을 기리며
  5. 2014.12.31 《폴링 인 폴》 -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6. 2014.12.29 《길 위의 철학자》 - 누구든 혼자 힘으로
  7. 2014.12.26 《빨간 집》 - 우리 가족을 소개합니다
  8. 2014.12.24 《악의》 - 뒤틀린 인간
  9. 2014.12.19 《유리감옥》 - 길들이려다 물들었네
  10. 2014.12.18 《킹》 - 짖는 법을 잊었네

《사랑에 대한 모든 것》 - 당신은 사랑 알기 위해 태어난 사람

 



레오 보만스 | 《사랑에 대한 모든 것》 | 흐름출판 | 2014



최근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와 《국제시장》 이 두 영화의 인기는 정말 놀라울 정도다. 《국제시장》은 정치 쪽에서 벌어진 여러 논란이 더 흥행을 부추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평범한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주인공인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누적 관객 수 400만 명을 돌파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와 《국제시장》은 주변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 평범함이 바로 많은 사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야기 안에 '순수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노부부의 사랑이기도 했고, 연민을 품은 사랑이기도 했고, 한 아버지의 부성애이기도 했다.

오늘날에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단순히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수치로 계산된다. 정말 끔찍한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선택하는 것도 인맥, 재산을 따지고, 결혼 전문 회사는 그런 수치를 계산한다. 진짜 사랑이 그리운 사람들이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와 《국제시장》을 찾는 것이 아닐까 싶다. 두 영화에 나타난 사랑은 남몰래 계산기를 두드리는 사랑이 아니라 그저 본연의 있는 모습을 사랑하는 순정이다. 한 세대의 굵은 땀방울이었기 때문이다.

사랑에는 단순히 사람에 대한 사랑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문화와 음악을 즐기는 것도 사랑이다. 《무한도전》의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는 대단한 인기를 보여주었다. '토토가'는 단순히 추억과 그리움만이 아니라 어린 시절의 순수한 사랑을 볼 수 있었다. 순수하게 문화를 즐겼던 어린 시절을 사랑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무슨 수식어를 붙일 수 있을까? 추억이라는 단어도 분명히 그런 모습을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 추억에 빠지는 건 그 시절을 사랑한 기억이 있어서다. 사랑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사람들은 ‘토토가’에 열광했다. 여전한 사랑에 감동한 가수는 자신이 사랑했던 과거를 떠올렸다. 사랑은 한쪽이 일방적으로 주거나 받는 게 아니다.

'사랑'은 세상에서 가장 많이 쓰이면서도 가장 많이 오해받는 단어다. 사랑에 관한 셀 수 없이 많은 해석이 있지만 사랑은 대체로 긍정적인 에너지이자 힘이라고 알려져 있다. 사랑은 객관적이라기보다 주관적이며, 따라서 느끼는 것이다. 내게 사랑은 최고의 행복이다. 사랑은 행복을 가져오고, 행복은 사랑을 깊게 만든다. (102쪽)

이 책은 상당히 두껍다. 그러나 책을 읽는 동안은 그 두께를 체감하지 못했다. 내가 잘 모르는 감정인 '사랑'에 관한 다양한 해석을 읽었기 때문이다.

나보다 겨우 두 살 많은 형이 벌써 결혼을 한다고 들었을 때 '도대체 사랑은 어떻게 하는 것이기에, 도대체 사랑이 무엇이길래 결혼을 하는 걸까?' 생각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품은 건 책과 애니메이션, 라이트 노벨 같은 문화적인 사랑밖에 없었다.

이성을 사랑한다는 건 아직도 모르겠다. 대학 시절에는 늘 내 옆자리만 앉는 여학생에게 신경이 쓰인 적도 있었고, 그저 나와 작은 이야기를 나누어주는 여학생에게 신경이 쓰인 적도 있었다. 내 경우에는 '호감'이 아니라 '호기심'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런 게 궁금해 말을 걸어보기도 했고, 어떤 때는 불편했고, 어떤 때는 바보 같은 짓을 하기도 했다.

나는 아직도 '나는 절대 사랑받을 수 없는 존재'라고 뼛속 깊숙이 생각한다. 뭐, 피해의식일지도 모른다. 앞에서 수치로 계산하는 사랑은 끔찍한 사랑이라고 했지만, 솔직히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움직이는 게 아닐까 싶다. 드라마와 종교는 '조건 없는 사랑'을 말하지만, 어디 그게 가능한 일일까?

현대 사회에서 빠르게 증가하는 이혼율과 높아지는 결혼 연령, 점점 낮아지는 출산율, 일회적 성관계의 증가에서 알 수 있듯이, 오래도록 지속되는 낭만적?성적 사랑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동서양을 불문하고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 중요한 원인으로 사랑과 성에 관한 진지하고 실질적인 공식 교육의 부재를 들 수 있다. 학교에서 성교육을 제대로 하는 나라가 거의 없고, 사랑에 대한 교육은 그보다 더 심각하다. 그 이유는 사랑이 교육하기 어렵고 아이들의 장래 직업 훈련이라는 더 중요한 과업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사랑에 관한 문제가 성관계로 인한 질병이나 낙태, 성범죄만큼 당장 위험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사랑과 성에 대한 교육은 대부분 비공식적인 교육이다. 대중매체와 동화, 전해오는 이야기, 지어낸 이야기들로 인해 사랑과 성에 관한 근거 없는 통념과 잘못된 생각이 퍼진다. 일례로, 거의 모든 동화와 사랑 이야기가 결혼식 같은 행복한 결말로 끝나며 더는 노력하지 않아도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잘못된 인상을 준다. 이런 사랑 이야기들은 질투, 증오, 소유욕, 자살 등을 포함한 사랑의 모든 것을 아름답게 꾸미고 미화한다. 그러나 실제 삶에서는 이런 요인들 때문에 사랑하는 관계가 완전히 파괴된다. (46쪽)

사랑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하는 이야기처럼 그렇게 아름답지 않다. 사랑의 감정을 잘못 생각해 사람을 죽인 일이 언론에 보도되고, 잘못된 욕구로 사랑을 선택하면서 서로가 앙숙이 되어버리는 일도 있다.

과연 사랑이라는 감정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나는 그래서 그 감정이 무섭다. 사람들은 '사랑을 하면 사람이 바뀌게 된다.'고 말하는데, 과연 그 사랑이 사람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을까? 열의 아홉은 '그렇다'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아직 그런 경험이 없는 나는 잘 모른다. 그렇기에 나는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을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사랑을 알고 싶은 사람', '사랑을 하고 싶은 사람', '지금 하는 사랑을 강하게 만들고 싶은 사람', '지금 하는 사랑을 바른 방향으로 고치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제목 그대로 다양한 전문가들이 사랑에 관하여 다양한 해설을 하고, '사랑'이라는 정체불명의 감정이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다만, 책으로 '사랑'을 배우더라도 실제 사랑은 알 수 없다. 머리는 알지만, 행동이 따라와 주지 않는 것처럼.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은 사랑의 감정을 여러 방향으로 얘기한다. 좀 더 객관적으로 '사랑'을 읽어볼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갑자기 생겨난 내 감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는 사람에게 그 감정을 좀 더 바로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제목처럼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이 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노지'님은?

블로그 <노지의 소박한 이야기>를 운영, 책과 사는 이야기를 전하는 소박한 블로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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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무질》 - 책방 아저씨

 



은종복 | 《풀무질》 | 이후 | 2010

성균관대로 가는 길목에 풀무질이라는 서점이 있다. 나는 한때 그 근처를 매일 지나다녔지만, 실제로 풀무질에서 책을 산 일은 거의 없었다. 신입생 때는 놀기 바빴기 때문에 책을 멀리했었고, 복학 이후로는 주로 인터넷 서점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별 인연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풀무질에 대해 긍정적인 인상을 받고 있다. 선배들은 이왕 책을 사려면 풀무질에 가서 사라는 말을 많이 했었다. 그런 얘기에는 분명히 '풀무질 주인이 학교 선배이기 때문에' 혹은 '중소서점을 살려야 해서' 라는 뻔한 이유 이상의 것이 담겨 있으리라 짐작했었다. (물론 짐작만 했을 뿐 선배들이 풀무질 얘기를 많이 한 이유는 정확히 몰랐다.)

나는 어떤 가게든지 주인의 냄새가 밴다고 생각한다. 거창하게 말하면 주인의 세계관, 가치관이 가게에 담기는 것이고, 그것이 가게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또 가게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믿는다. 풀무질은 전국에 얼마 남지 않은 사회과학 전문서점이다. 그러니까, 이 시대에 도저히 돈이 안되는 학술적인 책을 파는 곳이다. 망하기 딱 좋은 형상이지만, 무려 20년 넘게 성균관대 곁을 지키고 있다. 끈질긴 생명력은 서점 주인의 삶과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풀무질의 주인인 은종복 씨는 학생 시절에 친구들과 사회과학 공부를 하며 민주화 운동 시위를 밥 먹듯이 나갔었다. 엄혹한 시대를 살았고, 그 시대에는 취업이나 돈보다 세상을 바꾸는 일이 더 중요했다. 그렇게 그 시대의 부름에 응했던 사람 중 상당수는 지금 기득권이 되었고, 자신의 과거를 깨끗이 지우고 현실과 타협했다. 하지만 은종복 씨는 20대 시절의 자신으로 그대로 남아있다. 이 시대의 불온서적이라고 부르는 것들을 팔며, '반자본주의', '평화', '환경'과 같은 가치를 위해 아직까지 고루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서점을 찾은 손님에게 자신이 쓴 쪽글을 나눠주기도 한다. 이 책에는 그 쪽글이 많이 실려있다.)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나는 선배들이 왜 그렇게 풀무질 얘기를 많이 했는지 깨달았다. 요즘 누가 타국의 전쟁에 관심을 기울이며, 또한 전쟁의 무고한 희생자를 보며 마음 아파하는가? 요즘 누가 돈에 눈먼 세상을 욕하며, 돈보다 인간이 위에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가? 하지만 그런 옛스러운 이야기가 끊임없이 새어나오는 곳이 풀무질이다. 풀무질은 단순히 책을 파는 곳을 아니라 같이 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정신을 공유하는 곳이다. (실제로 풀무질은 책 판매뿐만 아니라 책 읽기 모임을 주최하기도 한다.) 참 고맙게도 나의 선배들은 풀무질의 가치와 정신을 귀하게 여겼고, 그 마음을 나에게 전해주었다. 물론 나는 그것을 너무나 뒤늦게 깨달았지만,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다. 부디 풀무질이 이 냉혹한 시대의 파도에 부서지지 않았으면 한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Lost and Found'님은?

한강과 도서관을 좋아하는 청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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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 느지막한 사랑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 민음사 | 2005

 

"아흔 살이 되는 날, 나는 풋풋한 처녀와 함께하는 뜨거운 사랑의 밤을 나 자신에게 선사하고 싶었다."

 

첫문장이다. 어쩌면 불쾌할지 모를 이런 말들을, 옳고 그름의 잣대로 해석하진 말아 주길. 소설의 미덕은 소설 안에서 확인해주길. 주인공은 평생 돈을 지불하지 않는 사랑은 해 본 적 없는 90세 노인. 그는 90세 생일 선물로 14세 어린 소녀를 만나게 된다. 그날 밤, 그는 소녀가 잠든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불현듯 첫사랑을 시작하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사랑은, 근 1세기 동안 홀로 견뎌온 사람을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꿀 수 있는 유일한 힘이었다. 사랑은, 반세기 넘게 지켜온 문체를 버리게 만들었고, 열정에 대한 들뜬 칼럼을 쓸 수 있게 만들었고, 욕망과 부끄러움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일이 가능하게 해주었다. 죽음을 코앞에 둔 90세에, 그는 비로소 삶을 예찬하는 사람이 되었다. 삶이여, 영원하여라.


"마침내 현실이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건강한 심장으로 백 살을 산 다음, 어느 날이건 행복한 고통 속에서 훌륭한 사랑을 느끼며 죽도록 선고 받았던 것이다."


삶은 90세라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노화와 죽음이 우리 삶에 주어진 절대적인 결말일지라도, 반드시 허무를 담보해야 하는 것은 아닌 것처럼. 마르케스 특유의 낙천적인 힘은, 이제는 낡아 버린 말들 -사랑, 열정, 삶 등- 을 찬란하게 복귀시킨다. 그는 사랑을 믿고, 열정을 간직하고, 삶을 예찬한다.

이미 공언된 사실이지만, 마르케스는 믿을 만한 작가다. 이 책이 《백 년 동안의 고독》만큼 '내 인생의 책'이 돼주진 못 했지만 사랑에 관한 소설로 충분히 아름답고 충실하고 생생한 소설이었다.


설정 자체가 파격적인 만큼 이런저런 생각을 해봤다. 이 사랑이 90세 '여성'과 14세 '소년'의 사랑이라면, 어떨까. 젊은 여성의 육체를 생명력의 상징으로 삼는 것은 문학에서 무척 흔한 일이지만 남녀를 역전시키면 여지없이 낯설어진다. 의도치 않아도 사회적, 문화적 맥락이 전복된다.


혹은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어떨까. 미성년자와 성인의 사랑이 세상에 드러난다면, 90세 노인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가 살아온 삶이 어떠했든 간에, 그는 주책 맞고 망령든 노인네가 될 수밖에 없다) 몇 살 차이뿐일 지라도 범죄가 성립된다. 그들 사이에 자연스러운 흐름과 유려한 결이 존재했다 할지라도, 원래 사랑은 나이와 몸에서 분리될 수 없다는 걸 우리 모두 알지라도.

반드시 법이 없어야 인간의 자유가 실현된다고 생각진 않는다. 미성년자를 보호하는 법의 취지 역시 공감하고 동의한다. 다만, 그것이 전부라고 말해버린다면 삶의 많은 부분이 증발될 것이라는 불안감. 삶의 근거로 법을 내밀기는 싫은. 소설의 미덕은 이런 지점에 있다.


또 하나. 사랑에는 나이가 소용 없다고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사랑은 상대방의 나이와 무관할 순 있되, 나의 나이와는 무관할 수 없다. 우리는 각자 삶의 맥락 속에서 사랑을 한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사하라'님은?

끝없는 잡념의 화수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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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米洲의印象》 - 1909년, 뉴욕의 김동성을 기리며

 

김동성 | 《米洲의印象》 | 현실문화 | 2015

 

김동성 선생이 쓴 ‘미주의 인상 (米洲의 印象)’ 을 읽었습니다. 선생은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넘은 그 당시, 약관의 나이에 미국이라는 나라를 여행하였습니다. 동양의 이방인으로서 서양문명을 겪었고, 영리한 양키들의 생활 모습을 정확한 판단과 안목으로 그려냈습니다.

 

선생이 살았던 당시 이 땅의 사정을 고려해보면, 심히 엄청난 일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수없이 봉우리 진 뉴욕의 시가지에서 선생은 자신을 ‘관청에 잡혀 온 촌닭’이라 하였으나, 선생의 글은 오히려 당당하고 냉철합니다. 나라 잃은 청년이 정상적으로 여행권을 구할 수 없어 밀항을 통해 영국을 지나 미국 동부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까다로운 입국심사 절차도 당당하게 거쳤습니다. 기지 넘치게 처리한 선생의 행동은 위기에 처한 조선 청년의 멋진 출발이었습니다. 중국인의 쥐 고기를 서양인의 개구리 다리 요리로 되받아치는 통쾌함이라든지, 자동차 산업의 눈부신 성장 이면에 담긴 난폭운전과 대형사고 등을 지적한 면은 훗날 언론인과 외교관, 정치가로서 선생의 활약상을 예견할 수 있었습니다.

 

불가능하리라 믿었던 4년마다 나라 책임자 선출하는 일은 이미 오래전 선생께서 이 나라에 그 토양을 다듬었습니다. 경기장을 나서기 전에 벌써 경기 결과를 전해준다던 신문도 선생이 이 땅에 돌아와 창간하셨지요. 100여 년 전 깊은 인상을 받았던 그 야구장의 다이아몬드에는 이제 선생의 후손들이 던지고, 치고, 달리며 다이아몬드 대접을 받고 있소이다.

 

선생은 이 책에서 ‘성공한 신문명의 좋은 공기를 호흡한다.’ 하였습니다. 100년이 지난 지금 선생의 글을 읽고 ‘온고지신(溫故知新)’을 느낍니다. 선생의 새로운 이해와 인식을 돌이켜 보면서 21세기 오늘을 살피고, 내일을 예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고 선생의 선각자적 삶과 민족정신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고등학생 또래인 16세 소년의 나이로 오늘날 고등학교라 할 수 있는 서원을 설립한 일이라든지, 일본인 고리대금업자에 크게 실망한 이후 일본 쪽으론 아예 등 돌리고, 중국과 미국의 새로운 문명을 받아들인 면, 그리고 1921년 세계신문기자대회에 조선 대표로 참석하여 부의장에 선출된 당당함은 나라 잃은 동포들에게 커다란 용기와 희망을 전해주었으리라 생각되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 책의 원본이 1916년에 출판된 한국인 최초의 영문 단행본이라는 사실, 그리고 한국인 최초로 한영사전을 편찬한 일 등 선생의 뛰어난 업적을 알게 되면서 진작에 선생을 알지 못한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OH, East is East, and West is West, and never the twain shall meet” - Rudyard Kipling(러디어드 키플링)
: "오, 동양은 동양이고, 서양은 서양일지니 이 둘은 결코 만나지 못하리라"

 

“오, 동양과 동양, 서양과 서양 이 둘은 언제고 만나리라” - 김동성

선생이 키플링의 시 구절을 빌려 쓴 것처럼 나 역시 존경하는 마음으로 선생의 문장을 다시 모방해 봅니다.

 

오, 동양과 서양, 이 둘은 결코 떨어지지 않으며 거미줄처럼 엮여 있으리라.


 

오늘의 책을 리뷰한 '9'님은?

백 년 전에는 아마도 '허드슨 강변의 소란스러운 마을 (Noiseville-On-Hudson)'에서 살았을지 모르는, 서울시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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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링 인 폴》 -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백수린 | 《폴링 인 폴》 | 문학동네 | 2014

 

‘자신의 글이 소설이라 명명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아 괴로웠다’는 백수린 작가의 소설집 《폴링 인 폴》을 읽었다. 남의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인물들의 감정과 심리가 세밀하게 묘사돼 있었다. 특별히 걸리는 부분은 없었다. 오히려 쉽게 읽혔다. 그게 잘못이었을까. 나는 빠르게 읽기에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정확하게 읽는 데는 분명 실패했다. 아홉 편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하나의 메시지를 발견해내기까지 너무도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것이 불가능의 영역이었다 할지라도, 나는 찾고 싶었고, 나름의 방식으로 명명하고 싶었다.

‘감자의 실종’으로 시작돼 ‘꽃피는 봄이 오면’으로 끝나는 9편의 소설에는 각기 다른 인물이 등장한다. 소설에는 저마다의 시간과 계절이 있고, 갈등과 고민이 존재한다.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한국이 주 무대이기는 하나, 때로 미국과 독일 또는 프랑스에서도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리고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각각의 삶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상상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지극히 평범한, 그래서 상투적이지만 동시에 보편적이기도 한, 개별적인 삶의 이야기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내뱉는 문장들은 어쩌면 그렇게 상투적이었을까. 한두 문장으로 요약된 타인의 삶이 얼마나 진부해질 수 있는가를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그와 나 사이에 있었던 무수한 시간들이, 기억들이, 몸짓들이, 지극히 통속적인 한 문장으로 완결되었다. 나는 소음 속에서 입을 굳게 닫았다. (‘거짓말 연습’, 190쪽)

‘거짓말 연습’은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남편의 외도로 평온했던 결혼생활의 단꿈이 깨져버린 주인공 ‘나’는 예정에 없단 프랑스 유학을 떠난다. 남들의 시선으로부터 해방돼 고요함이 절실했던 ‘나’에게 어찌 보면 유학은 당연한 선택이었다. 떠나왔지만, 그렇다고 그곳에 제대로 정착한 생활을 이어가는 것도 아니다. ‘나는 내가 한 달 후 어디에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어떤 주소를 적어 내야 하는지 망설여졌다.’

잠시 머무는 거처인데다, 언제 다시 만날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기에 ‘나’는 어학원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솔직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이 묻는 말에 대한 대답의 목적은 진실보다는 스킬에 있었기 때문이다. 도리어 다채로운 거짓 상상이 언어적 소통에는 득이 됐다.

이곳에 온 지 몇 달 만에 깨닫게 된 사실은 떠나기로 예정되어 있는 사람들은 상대에게 모든 것을 드러낼 필요가 없다는 점이었다. 떠날 사람들은 보여줄 수 있는 만큼, 아니 보여줘도 되는 만큼, 아니 보여주고 싶은 만큼만을 드러낸 채로 제한된 삶을 살았다. 그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곳에 온 이래 나에게는 거짓말을 하는 버릇이 생겼다. (‘거짓말 연습’, 182쪽)

한국에서 온 ‘내’가 어떤 사람이었고, 어떻게 살아왔으며,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지는 결코 중요치 않았다. 어차피 잠시 머무르다 곧 떠날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래서 거짓말을 하기 시작한다. ‘이곳에 진실한 것이 하나라도 존재했다면 그것은 다만 우리가 끊임없이 서로에게 말을 건네고 있는 행위, 그것뿐이었을 것이다.’ 물론 절대 이해하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엄마를 이해하게 되는 지점도 주인공 ‘나’가 거짓말을 하게 되면서부터다.

엄마는 이 세계가 그럴듯한 거짓말들에 의해서 견고히 다져질 수 있다는 것을 나에게 알려주려 했던 것이었는지도 몰랐다. 처음으로 엄마를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어쩌면 거짓말이야말로 엄마가 나에게 가르쳐주려 했던 가장 건전한 소통방식이었는지도. (‘거짓말 연습’, 196쪽)

경계에서 ‘거짓말’로 삶을 지탱한 반면, ‘밤의 수족관’의 주인공 ‘나’는 어느 누구도 믿어주지 않는 자신만의 진실을 지켜내려다 그만 삶을 잃어버린다. 스타와의 사랑, 그것은 사랑을 사랑이라 말할 수 없는, 너무도 비현실적인 진실이었다. 그것을 선택하고, 지키기 위해서 ‘나’는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고, 포기하고, 단념하고, 당연하게 감수해야 했다.

당신이라는 사람의 사랑을 홀로 독차지한다는 것은 날카로운 칼날을 몰래 삼키는 것과도 같지. 아무와도 공유할 수 없는 섬뜩한 고통이 가끔씩 내 안을 찢기라도 하듯, 훑으며 지나가. 당신을 내 사람이라 말할 수 없고, 내가 당신의 사랑이라 밝힐 수 없다는 데서 기인한 고통. 당신이 우리의 결혼 사실조차 비밀로 하고 싶다 했을 때, 나는 그것마저도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했어. 스타의 뒤에서 사는 그림자 같은 삶. 역사 속 유명한 스타를 사랑한 여자들은 모두들 숙명처럼 그런 삶을 짊어지고 살아갔잖아. 당신은 언제나 때가 되면 우리의 결혼의 결혼사실을 밝히겠다고 약속했지. 그런데, 당신. 그때는 대체 언제 오는 거야? (‘밤의 수족관’, 132쪽)

세상에 감출 수 없는 것 중의 하나가 ‘사랑’이라는데, 그리고 가끔은 그 ‘사랑’이란 것이 누군가에게 말하면서 더욱 선명해지고, 커지기도 하는 법인데. 아무리 ‘사랑’이 둘만의 은밀한 감정이라 하더라도 말할 수 없는 그것이 정말 ‘사랑’일 수 있을까. 만인의 스타이면서 나만의 유일한 남자인 그의 아이를 잃어버리고, 확신했던 자신의 사랑마저도 잃어버리는 주인공 ‘나’를 보면서, 어쩌면 이 모든 상황이 그녀의 삐뚤어진 집착과 오해가 만들어낸 허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림자 같은 삶을 살면서도 ‘사랑’을 지켜내기 위해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되묻는 그녀가 애처롭고 가여웠다. 앞뒤 맥락과 자초지종을 알 수도, 알 필요도 없지만 어쨌든 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지나가는 다람쥐에게조차도 들켜서는 안 되는 것이 자신의 사랑이었다.”고 말한 여배우가 떠올랐다. 삶에서 사랑이 전부인 사람에게, 그 사랑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면, 그 말할 수 없는 상황 자체를 철저하게 지켜내야만 했을 것이다. 그래야 자기 존재도 증명될 수 있으니까. 더욱 철저하게 고립되어야만 존재할 수 있는 주인공 ‘나’가 아이를 놓아버린 건지, 정신을 놓아버린 건지 스스로 모를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것은 너무도 예견돼 있었다.

나는 정말 묻고 싶었어. 도대체, 실체란 것은 무엇이야? A라는 사람과 B라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봐. 그때, A라는 사람은 오로지 B라는 사람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B라는 사람이 A라는 사람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듯이. 그것은 당연한 거지. 그러니까 만약, 누군가가…… 그래, 어떤 영화에서처럼, B에 대한 A의 기억을 다 지워버리면, 그러면 B는 A에게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눈을 감으면 눈앞의 모든 것이 사라지듯이 말이야. ('밤의 수족관‘, 136쪽)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건 ‘폴링 인 폴’의 주인공 ‘나’ 또한 마찬가지다. 자신보다 한참 어린 남자아이를 짝사랑하게 되는 그녀는 그것이 애초에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앞서는 마음을 붙잡지 못한다. ‘그렇지, 넌 미국을 선택하지 않았지. 나를 선택하지도 않았고. 무슨 이야기를 들어도 생각은 자꾸만 한쪽으로 흘렀다.’

폴의 부족한 어휘력과 부정확한 발음으로 인한 커뮤니케이션의 오해를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은 그녀 자신뿐이라고 생각해보아도, 그것으로 폴의 마음을 붙잡을 수 없다는 것 또한 그녀는 안다. 폴이 한국에 온 목적은 한국인 누군가와, 혹은 아버지와 대화를 하기 위해서가 아닌 까닭이다.

나는 결코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해 한국에 온 것이 아니었어요. 내가 한국말을 배우려고 결심한 것도 아버지와 communicate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어요. 나는 나를 이해하고 싶었어요. 내가 벗어던지려 해도 절대, 절대 벗을 수 없는 내 피부색의 역사를 말이에요. (‘폴링인폴’, 80쪽)

그 순간, 그녀는 폴을 잃고 있다고 실감했다.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가장 절실한 사연이 타인 앞에서는 한없이 진부해지는’ 것이 삶이고, 또한 ‘삶이란 신파와 진부, 통속과 전형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말해질 수밖에 없는 것들에 지속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녀 자신이 폴의 정체성과 존재에 대한 고민을 들은 유일한 상대였다는 것에서 위안을 얻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수많은 문장들에 밑줄 긋던 나는 ‘자전거 도둑’과 ‘감자의 실종’을 다시 읽으면서 어렴풋하게나마 아홉 편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나름의 단어를 찾을 수 있었다. 다양한 에피소드에서 공통적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결국 ‘존재’와 ‘이해’라고 보았다. 진부하고, 평범한 개인적 삶이지만, 그럼에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나의 존재를, 나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이해받고 싶어 하는 이야기. 언어에 의해 삶이 규정되는 한, 이해받기 위해서는 일단 오해하더라도 말해야만 한다는 것. 그러고 보니 작가는 소설마다 끊임없이 존재와 이해를 언급하고 있었다.

당신도 들었지? 물고기들은 기억력이 삼 초밖에 안 된다잖아. 아닌가? 금붕어만 그런 거던가? 갑자기 헷갈리네. 어쨌든 기억력이 단 삼 초뿐인 생명체의 삶이란 어떤 것일까. 불현듯 궁금해져. 삼 초 후면 소멸될 것이 자명한 불안과 두려움이라면 삶은 훨씬 수월해질까. 아니, 어쩌면 지금의 행복과 짜릿함이 삼 초 후면 또다시 흔적도 없이 사라질 거라는 불안에 삶은 고통의 연속이 되어버릴지도. 분명한 것은 기억이 오직 삼 초밖에 지속되지 않는다면 그 생명에게 역사 같은 것은 존재할 수 없으리라는 거야. 그렇지? 결국에는 사랑도, 슬픔도, 아니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확신마저도. 그것들은 모두 기억에 의해 지속될 수 있는 것일 테니까. (‘밤의 수족관’, 121쪽)

그녀는 술에 취해 하천으로 뛰어드는 사람의 마음을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었다. 그러나 비단, 이해할 수 없는 것이 그것 하나뿐일까. (‘부드럽고 그윽하게 그이가 웃음짓네’, 114쪽)

우리는 서로의 처지를 너무 잘 알았다. 잘 나가는 친구들에게 손 벌리기 민망할 때, 우리는 서로의 주머니를 털었다. 세상으로부터 미끄러진다는 느낌을 더 이상 받지 않기 위해 서로에게 뿌리를 내렸다. 어둠을 움켜쥐고 자라는 음지식물처럼. ‘우리’라는 견고한 껍질 안에서 우리는 그 누구보다 안전했다. 우리에게는 비밀이 없었고 모든 것은 공유되었다. 가족보다도 가깝고 서로를 분신처럼 아꼈던 우리. 우리의 공동생활은 삼 년 팔 개월 동안 아무 탈 없이 지속되었다. ('자전거 도둑‘, 36쪽)

문득, 아무에게도 호명되지 않는 내 이름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아아, 안나. 너는 왜 이렇게 빛나는 것일까. 나는 너를 미워하고 싶지 않은데. 불현듯, 이 모든 것이 그놈의 자전거 때문이라는 데 생각이 다시 미쳤다. 자전거. 자전거만 안나에게서 빼앗아버린다면. 그렇게만 하면 원인을 알 수 없는 이 부당한 억울함도 사라지고 말 것만 같았다. 한번 떠오른 생각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자전거 도둑’, 53쪽)

언어가 사고의 집이듯 이해받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결국 언어로 파악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동시에 언어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비언어, 즉 태도와 행동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쉽게 잊었던 그것을, 나는 너무도 직접적으로 박힌 한 문장 덕분에 오래도록 상기시킬 수 있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곰자'님은?

사람들의 사소한 일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알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이 제 안에 내재돼 있는 것인지 보고, 듣는 것을 좋아하고요. 언젠가 제가 마음으로 전해들은 무수한 이야기를 잘 엮어,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과 세상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 있기를 꿈꾸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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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철학자》 - 누구든 혼자 힘으로

 

 

에릭 호퍼 | 《길 위의 철학자》 | 이다미디어 | 2014

 

뒤늦게 에릭 호퍼라는 매력적인 인물을 알게 되었다. 지금 이 세상엔 그가 없지만, 그가 남긴 글들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국가, 인종, 문화의 차이를 뛰어넘어 사람들에게 감동과 통찰을 선사한다. 그는 평생 장사 생활과 식당 보조 웨이터, 야적장 인부, 사금채취공, 부두노동자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그가 남긴 삶과 세계에 대한 이야기는 풍미가 가득하다. 어렸을 때 시력을 잃었다가 다시 회복된 것이 계기가 되어 시작된 광적인 독서 습관은 에릭 호퍼의 사상이 형성되는 데 크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의 글에서 생생한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이와 같은 에릭 호퍼의 인생과 독서 습관 덕택이라 생각한다. 《길 위의 철학자》는 에릭 호퍼가 남긴 자서전으로 그가 썼던 다른 책들에서보다 떠돌이 철학자로서의 모습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그가 경험했던 가난과 굶주림은 그의 생을 빚어가는 양분이 되었다. 젊은 시절 노동과 삶의 의미를 생각해 보다가 이른 결론은 자살이었다. 그는 수산염을 사서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가 자살을 시도했다. 삶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길이라는 생각이 떠오르며 자살이라는 결론은 방랑하는 삶으로 변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에릭 호퍼는 방랑자로 살게 되었다. 그는 샌디에이고 엘센트로 임시수용소에서의 경험이 자신의 모든 사상을 세워나가는 데 기초가 되었고, 그곳에서 한 달여간 낯선 사람들과 지내며 인간의 속성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 책에서 인상적인 사건은 스틸턴 박사와의 만남이다. 독학으로 지식을 쌓았던 에릭 호퍼는 토마토 모종의 성장을 관찰하다가 식물학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리고 웨이터로 일하던 식당에서 그는 독일어로 된 책을 어렵게 읽고 있던 스틸턴 교수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만남은 계속 이어졌고, 에릭 호퍼는 스틸턴 교수가 고민하고 있던 문제를 같이 고민하기도 했다. 스틸턴 교수의 연구소에서 일할 수 있는 제안까지 받았지만, 그는 다시 떠돌이 노동자의 삶을 택했다. 스스로 이러한 지식의 경지에까지 이를 수 있는 사람이 어째서 궁핍하고 비참해 보이는 삶을 산 것인지 나는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다독으로 철학적, 사상적 토대를 마련했던 에릭 호퍼에게 인생의 책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그의 대답은 몽테뉴의 수상록일 것 같다. 그는 이 두꺼운 책에서 자신과 마주쳤다고 표현했다. 몽테뉴가 마치 자신의 내면에 깊숙이 잠재된 생각에 관해 쓴 것 같다고 한다. 나 또한 마치 읽은 느낌이 드는 몽테뉴의 수상록을 읽어보고 싶었다. 수상록에 어떠한 내용이 실려 있기에 에릭 호퍼라는 한 인간을 이렇게 감동시킬 수 있는 것인지 무척 흥미로워졌다.

 

이리저리 떠돌며 일하고 책만 읽었을 것 같은 에릭 호퍼에게도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다. 그는 캘리포니아 버클리의 한 식당에서 일하던 중 만났던 헬렌이라는 여인에게 한눈에 반했다. 50년이 지나 그는 자서전에 그녀와의 추억을 쓰는 순간에도 손을 뻗어 그녀를 만져 보고 싶을 정도로 생생하다고 말한다. 헬렌과 진정으로 즐겁고 행복한 그였지만, 그녀의 기대를 정당화하는 데 자신의 여생을 소비하는 것이 불행하다고 느껴 그는 다시 떠돌이 노동자로 살아갔다. 어째서 그는 그녀와 함께 정착하지 않았을까? 한때의 감정이라 생각했던 것일까? 그는 그녀와 함께 살면 한순간의 평화도 얻지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자격지심은 아니었을까.

 

젊은 시절 떠돌이 노동자로 살아가던 에릭 호퍼는 2차 세계대전 중 샌프란시스코로 이동해 부두노동자로 여생을 보낸다. 하지만 에릭 호퍼는 길 위에서의 삶과 부두에서의 삶이 극적인 변화는 아니라고 했다. 그 불안정성은 독특하게 비슷했다고 말한다. 그는 이곳에서 노동자와 노동조합에 관하여 경험하고, 그것이 운영되는 독특한 구조에 대해서도 깊은 인상을 받은 듯하다. 시대와 성격이 다르지만, 내가 노동의 현장과 노동조합에서 받았던 충격이 에릭 호퍼가 경험했던 것과 유사하다. ‘보통 사람들이 교육받은 사람보다 나눔에 더 여유가 있다는 생각은 감상적’이라는 에릭 호퍼의 표현이 마음에 와 닿는다.

 

에릭 호퍼의 아주 짧은 생의 순간들을 마주하니 ‘길 위의 철학자’라는 제목이 그의 삶과 아주 잘 어울린다. 떠돌이, 방랑자라는 에릭 호퍼의 자기 인식은 삶에 대한 정직한 대면에서 온 것이리라. 수년 전부터 안정적인 삶을 살아온 나는 그의 삶, 그가 남긴 글들에 힘찬 자극을 받는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초원위의양'님은?

어쿠스틱 기타 선율과 책 읽기를 좋아하는 연구원입니다. 파란 하늘 아래, 푸른 들판에서 뛰어놀던 어릴 적 기억을 우리 아이들에게도 선물해 주고 싶어서 환경 관련 기술에 관심이 많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가 점점 더 깨끗해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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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집》 - 우리 가족을 소개합니다

 

 

 

 

마크 해던 |《빨간 집》 | 비채 | 2014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내 편을 꼽으라면 대부분의 사람이 가족을 말하지 않을까. 내게도 가족은 내가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의미로 자리한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가족을 떠올린다. 하지만 가족이란 울타리가 짐이 되는 사람들도 있다. 위로받고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부터 오히려 더 많은 상처와 고통을 안겨 주는 가족…. 분명 어떤 이는 도망치고 싶어질 것이다. 마크 해던의 《빨간 집》이 곧 폭발할지 모르는 불안정한 가족의 모습을 담고 있진 않을까. 책 제목부터 내게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서로의 존재를 외면하고 싶었던 남매가 어머니 장례식을 통해 너무나 오랜만에 재회한다. 서로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금전적, 육체적으로 나누어 돌보았다고 생각하는 두 사람. 하지만 그들 서로의 속내는 달랐다. 한편 서로 엇갈린 기억을 공유할 수밖에 없는 남매와 그들의 가족은 불현듯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가족여행을 떠나는데….

 

여행이란 게 그렇다. 마음이 잘 통하는 친구와 함께한다 해도 꼭 한 번은 싸우기 마련이다. 그만큼 쉽지가 않다. 하물며 남보다 못한 가족인 누나 안젤라와 남동생 리처드, 그들의 배우자와 여행 자체를 내켜 하지 않는 아이들이 함께한 여행은 어떨까. 이들의 가족여행은 처음부터 삐거덕거렸으며 위험천만하다.

 

안젤라와 리처드는 서로 부모님에 대한 기억 자체가 다를 정도로 거리가 있다. 리처드는 가족 곁을 떠나 당당히 의사로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졌지만 동생을 바라보는 안젤라의 마음은 꽤 복잡하다.

 

옆 좌석의 안젤라를 곁눈질했다. 그 옛날, 대학 술집에 앉아 있던, 어깨가 드러난 푸른색 원피스를 입은 소녀는 이제 온데간데없었다. 뚱뚱해지고 살갗도 처지고 장딴지에 정맥이 불거져 나와서 할머니가 다 된 모습에 그는 넌더리가 났다. (13쪽)

 

안젤라의 남편 도미니크는 아내가 불의의 사고로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이다. 이들의 부부생활은 엉망이다. 그들에겐 자식들이 있다. 알렉스, 데이지, 벤지…. 첫째아들 알렉스는 리처드의 딸(아내의 딸) 멜리사의 아름다운 외모에 반하게 되고 그녀를 향한 마음을 서슴지 않고 드러낸다. 데이지는 종교에 심취한 소녀로, 멜리사와 친해지면서 자신의 종교에 대한 믿음이 시험대에 처하는 상황에 놓인다. 막내 벤지는 나이 차이가 있는 형과 누나, 여기에 부모님까지 저마다 자신들이 가진 문제와 생각들이 벅차기에 가족들의 제대로 된 보살핌에서 살짝 벗어나 있다.

 

리처드의 가족 문제 역시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현재 리처드를 괴롭히는 것은 법정까지 갈지 모를 의료사고다. 그의 잘못이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분명 연관은 되어 있다. 리처드는 수시로 환자를 떠올리며 찾아가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이러한 상황에서 리처드는 아내 루이자를 통해 안정을 얻으며 좋은 관계를 이어 나간다.

 

한데 여행을 하면서 생각지도 못한 위기가 리처드와 루이자 앞에 나타난다. 그녀의 딸 멜리사는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아름다움과 매력을 지녔는데 다른 사람의 약점이나 아픈 곳을 본능적으로 잘 알아챈다. 교묘하게도 자신이 유리한 방향으로 상황을 이끌기도 한다. 솔직히 멜리사가 내 딸이라면 무서울 거 같기도 하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죄책감 없이 행하는 멜레사의 모습은 선뜻 예뻐하기 어려우니까. 멜리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장 두려운 문제를 데이지에게 털어놓지만 데이지의 반응에 마음이 상하고 만다. 데이지 역시 무엇인가 이끌리듯,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하며 양쪽 부모 모두를 긴장시키고 만다.

 

엄마도 사람이었구나. 이 당연한 사실을 어째서 그토록 모르고 지냈던 걸까. 당장이라도 손을 내밀어 엄마를 붙잡고 다 잘될 거라고 말해주고 싶어졌다. 그런데 불현듯 지난 세월이 백일몽처럼 밀려오면서 데이지는 시내로 장 보러 가는 엄마를 따라온 다섯 살짜리 어린애로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129쪽)

 

딸과 엄마 사이는 특별하다. 이 특별한 사이에도 서로에 대한 벽을 치는 일이 흔하디 흔하다. 사춘기 딸이 갑자기 심취해 버린 종교와 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은 편치가 않다. 자신이 가진 고통스러운 기억이 더 크기에 사춘기 딸의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볼 마음의 여유가, 엄마 안젤라에게는 없는 것일지 모른다.

 

이러한 가족끼리의 여행이 애초부터 순탄할 리 없었다. 수시로 삐거덕거리는 일이 생겼고, 그들은 나름의 해결 방식을 찾으며 또 서로에게 접근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부딪히고 마음이 상해 더 깊은 골이 생기기도 했지만 위로를 경험하기도 한다.

 

책을 읽으며 가장 아픈 이야기는 기형아를 사산한 안젤라가 수시로 아기를 떠올리며 힘든 상황에 놓인 부분이다. 사산아로 인해 그녀 스스로 더 고립되고 가족들과 멀어진 것은 아닌지. 안젤라는 자신의 아픔을 껄끄러운 올케 루이자에게 털어놓으며 루이자는 안젤라의 아픔과 고통, 상실 등의 복잡한 감정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깔끔하게 정리되는 해결책을 얻어야만 여행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여행이 끝난 후에도 그들은 각자의 생각과 고통 속에 놓여 있다. 하지만 처음에 만날 때와는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에 변화가 생겼다. 현실 속 우리 가족의 모습도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까. 우리 역시 큰 문제가 아니더라도 가족과 소소하게 갈등을 겪을 수 있기에 충분히 이해된다.

 

여덟 명의 가족이 8일간의 여행을 통해 만들어가는 이야기는 어느 한 사람의 시선이 아닌 각자의 눈에서 바라보기에 어쩌면 더 냉철하고 비판적이다. 그럼에도 서서히 변화가 일어난다. 다음에 그들이 다시 만난다면, 지금과는 조금 더 다른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 작가의 작품은 처음인데 가족을 바라보는 저자의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어 좋았으며 이야기를 통해 내 가족, 그리고 내 마음을 들여다보게 한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라떼12'님은?

책을 좋아하는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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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 뒤틀린 인간

 

 

히가시노 게이고 | 《악의》 | 현대문학 | 2008

 

신간이 나왔다 하면 또다시 신간 혹은 재출간이 쏟아져 나오는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 그의 책들을 보고, 또 그런 다수의 작품에도 시들지 않는 인기를 보면서 '도대체 그 많은 작품이 전부 다 재미를 보장할 수 있는가?'라는 뜬금없는 궁금증이 생겼더랬다. 정말 많은 작품을 내다보면 뻔하거나 구성이 반복되진 않을까 하지만 많은 사람이 그의 책을 '믿고 보는' 것을 보니 이 걱정은 기우인 듯했다. 그의 작품 중 첫 번째로 만난 《용의자 x의 헌신》의 충격은 지금까지 기억에 남을 정도로 컸는데, 이 책도 '그 정도만 됐으면 좋겠다.' 하면서 작가와의 새로운 만남에 또다시 도전하게 되었다.

 

요즘은 왠지 모르게 추리소설 끝까지, 긴장감을 안고 마지막에 범인의 정체를 아는 것보다 일단 사건이 공개된 후 범행 동기를 거꾸로 파악하는 방식이 흥미롭게 여겨진다. 《악의》는 그런 점에서 마음에 들었던 작품이다. 용의자를 어느 정도 짐작하게 만든 후 사건에 대해 한 꺼풀씩 벗겨나가는 방식이 말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가가 형사'의 기록과 사건에 대해 엄청난 함정이 기록된 주인공의 수기를 통해 능수능란한 전개를 펼친다. 범죄를 고백하는 듯하면서 무엇인가 숨기고 있는 묘한 기운을 뿜는 범인의 기록과 이를 치밀하게 살펴보려는 형사의 기록이 번갈아 등장하기에 소설은 갈수록 더 복잡해지고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작품 제목이 '악의'인 걸 보면 범인의 범행 동기가 엄청난 '악의'에 의한 것이라 예측할 수도 있는데, 끝 부분에 등장하는 비밀에 뒤통수를 얻어 맞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범인의 '악의'는 겉으로 보기에는 '설마'할 정도로 깊지 않았다. 심지어 '사소하다' 말할 정도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살인을 저지르는 것을 보며, 원인 모를 그것에 '악의'적인 생각이 점점 덮어 씌워져 얼마나 큰 덩어리가 되는지…. 그 생각에 잠식되어 한 인간이 얼마나 무모하게 변해갈 수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범인의 마음속에 존재하던 과거의 악의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사건이 일어난 현재까지도 치밀하게 속임수를 만들어 내고 사실을 왜곡하는 그의 모습에 소름이 끼친다. 우발적 범행도 때로는 이렇듯 사소해 보이는 악의를 품고 있을까.

 

현직 작가가 살해되고 그와 죽마고우인 친구가 용의자로 지목되는 상황. 가가 형사가 한때 동료였던 주인공을 취조하는 상황들을 보면, 작가가 참 재밌게도 그들을 얽히고설키게 해놓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절대 답이 나오지 않을 것만 같은 사건에 대해 아주 침착하게 접근하는 '가가 형사'의 모습도 마음에 든다. 이상한 사건과 함께 사회적인 문제까지 거론하며 범인과 형사의 수기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긴장감 넘치는 소설 《악의》. 단연 근래 읽어 본 추리 소설 중 가장 재미있게 본 책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리니링'님은?

책을 유랑하며, 책장 한 칸 한 칸 좋은 책들을 꽂아 넣는 재미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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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감옥》 - 길들이려다 물들었네

 

 

니콜라스 카 | 《유리감옥》 | 한국경제신문 | 2014

 

예전에 ‘UX(User Experience, 사용자 경험)’에 대한 수업을 들었었다. 처음으로 한 일은 제품을 사용할 때 느끼는 불편한 점이 무엇인지 찾는 것이었다. “어떻게 더 편리하게 만들 수 있는가?” 이 질문은 현재 다뤄지는 UX의 시작이고, 끝이다. 《유리감옥》을 읽고 나는 무서운 미래를 담은 판도라의 상자를 힐끔 엿본 것 같았다. 내가, 그리고 세상이 열망하던 편리한 미래가 곧 날카로운 화살이 되어 돌아온다는 사실을 얘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시작했더라도 사람들이 무조건 편하게만 살도록 하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인간 요인(human factors-인간의 지각, 주의, 기억, 학습, 스트레스, 생리,신체 등이 산업 현장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하는 분야)전문가인 마크 영(mark young)과 네빌 스텐던(neville stanton)은 사람의 "정신적 업무 부담이 줄어들면 그만큼 인간의 집중력도 쪼그라든다"라는 걸 보여주는 증거를 찾아냈다. 두 사람은 자동화된 시스템이 작동할 때 저부하는 과부하보다 감지하기가 더 어렵기 때문에 어쩌면 훨씬 더 큰 걱정거리가 될 수 있다 라고 주장했다. (140쪽)

 

네이버의 자동완성 단어 서비스는 검색창에 내가 찾고자 하는 단어의 첫 글자만 쳐도 완성된 단어를 미리 보여 준다. 내가 그 단어를 미처 다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선택할 수 있다. 모든 단어를 완벽하게 외우고 있지 않더라도 인터넷에서는 내용을 수월하게 검색할 수 있다.

 

가장 주목할 만한 것들 중에 하나가 가장 간과하기 쉬운 것이기도 하다. (…) 도전을 해결하려고 애쓸 때 그런 노동이 끝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기 때문에 노력하겠다는 동기도 생기는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프로스트도 알았듯이 우리를 지금의 우리로 만드는 것은 일(수단)이다. (…) 자동화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더 쉽게 얻을 수 있게 해주지만,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알아가는 일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스스로 스크린의 피조물로 전락해버릴 우리는 슈쉬왑 부족처럼 존재론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우리의 본질이 여전히 우리가 알고 있는 것에 놓여 있는가, 아니면 우리는 지금 우리가 원하는 것에 의해 정의되는데 만족해하는가?” 라는 질문이다. (341쪽)

 

눈부신 속도로 발전하는 과학기술은 생활을 편하게 해 주었지만, 그에 못지 않은 문제점도 동반했다. 1995년, 원양 여객선 로열 머제스터호는 경로를 이탈해 좌초했다. 사고의 원인은 자동화에 기댄 ‘안심’이었다. 선원은 GPS에서 이탈한 배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고, 컴퓨터의 신호에 지나치게 의존했다.

 

현명하게 사용할 경우 자동화는 우리가 힘들고 단조로운 일에서 벗어나 보다 도전적이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일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해준다. 문제는 우리가 자동화에 대해서 합리적으로 생각하거나 자동화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아주 능숙하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충분하다 내지는 심지어 잠시만 멈춰라고 말해야 할 시기를 모른다. 경제적, 감정적으로 자동화의 장점에만 흠뻑 빠져 있을 뿐이다. (41쪽)

 

혹자는 이 순간에도 경쟁 상대가 새로운 아이디어로 시장을 선도하지 않을까 걱정할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반드시 주춤하고 생각해야 한다. 답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저자 니콜라스 카는 여러 가지 문제와 예시를 제시하지만, 이에 대해 뚜렷한 해답을 구하고 있진 않다.

 

자동화는 이미 시대의 흐름이 되었다.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제삼자의 눈으로 가까운 미래를 방관한다면, 흐르는 시간에 미끄러지고 말 것이다.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삶, 기계의 부품으로 전락한 인간의 모습. 이토록 끔찍하고 우울한 미래를 맞고 싶지 않다.

 

필름으로 사진을 찍고 현상하는 데 필요한 본질적인 제한들(가격, 노동, 불확실성)때문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심사숙고하고 촬영대상에 진가를 깊이 음미하며 사진을 찍어야 했다. (…) 물론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하면 더 빨리 일할 수는 있었다. 그는 여러 장을 연속 촬영한 다음에 컴퓨터를 사용해서 그들 중에서 가장 멋있는 것 같은 사진들을 찾아내서 수정하면 됐다. (…) 처음에 이런 변화에 도취됐던 그였지만 결과를 보고 실망하고 말았다. 사진들은 정감이 가지 않았다. 그는 필름이 지각, 즉 보는 원칙을 부여해줬고, 그 원칙은 더 풍부하고, 더 예술적이고, 더 감동적인 사진들을 탄생시켰다는 것을 깨달았다. 필름은 그에게 더 많은 노력을 요구했지만 결과는 더 만족스러웠다. 그래서 그는 예전 기술로 되돌아갔다. (338-339쪽)


 

오늘의 책을 리뷰한 ‘멜로니’님은?

정이 많은 디자인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양갱과 쭈꾸미를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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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 - 짖는 법을 잊었네

 

 

존 버거 | 《킹》 | 열화당 | 2014

 

《킹》은 노숙인들에 대한 이야기다. 킹은 그들 중 어느 한 부부와 함께 사는 개의 이름이고, 소설은 개의 시선에서 쓰였다. 존 버거는 화자 킹이 '개'라는 것에 군데군데 균열을 놓았다. '인간'의 존재 자체를 묻고 싶었던 것이다. 앤디 메리필드가 쓴 《존 버거(John Berger)》에 따르면, 존 버거는 이 소설을 스페인 알리칸테 지방의 노숙인 거주 지역을 본 후 썼다고 한다. 소설에 묘사된 이들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인정받지 못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거처를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노숙인의 개념과는 다르다. 사실, 잘 모르겠다. ‘노숙인’의 정의를 한번 살펴보면,

 

"우리나라에는 노숙인에 대한 공식적인 개념정의가 없다. 노숙인은 1997년 IMF 경제위기 이후 부각된 용어로 부랑인과 유사하게 사용되어 왔다. 노숙인은 말 그대로 일정한 숙소가 없어 거리에서 잠을 자는 사람을 의미하지만 정의를 내리는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서 다양하게 정의된다. 국제연합(UN)은 노숙인을 ‘집이 없는 사람과 옥외나 단기보호시설 또는 여인숙 등에서 잠을 자는 사람’, ‘집이 있으나 UN의 기준에 충족되지 않는 집에서 사는 사람’, ‘안정된 거주권과 직업과 교육, 건강관리가 총족되지 않은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노숙인', homeless person)

 

이 자료의 다른 부분에서 특기할 만한 것은, 서울에 특히 노숙인들이 많은데 그 이유가 "생활하기 편하고,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이라는 문장이다.

 

얼마만큼 넘나들 수 있으며, 얼마만큼 당신을 체감하고 체화하면 당신이 될 수 있을까. 번역된 존 버거의 책을 대부분 읽은 입장으로서, 이 소설의 초점은 '노숙인'에 맞춰져 있지만, 그의 글쓰기가 행하는 시선은 세상의 모든 하위계층에 가 있다는 것을 알겠다. 자신을 보편적인 존재로 여기게끔 억압하고, 그것에 공모하게 만드는 오늘날의 사회가 얼마나 많은 목소리와 존재들을 은폐한 뒤에 세워진 삐뚤어진 세계인지. 그리고 온전히 낮은 곳의 그들이 된 존 버거가 얼마나 미려한 문장으로 그 목소리를 조용히 읊어주는지.

 

비코는 이야기한다. "우리는 저들의 실수야. 킹, 들어 봐! ... 실수는, 킹. 적보다 더 미움을 받는 거야. 실수는 적처럼 굴복하지 않으니까. 실수를 물리치는 일 같은 건 없는 거야. 실수는 있거나 없거나 둘 중 하나인데, 만약에 있다면 덮어야만 하지. 우리는 저들의 실수야, 킹. 그걸 잊으면 안 돼" (190쪽)

 

그들의 거주 지역인 생 발레리의 노부부 비코와 비카. 비코는 자신의 조상이며 위대한 근대인이라 일컫는 잠바티스타 비코(Giovanni Battista Vico, 1668~1744)를 여러 번 인용한다. 비코는 이렇게 말한다. "라틴어에 '후마니타스'라는 말이 있는데, 서로 도우려는 사람들의 성향을 일컫는 거야. 우리 조상님은 말이다. 킹, '후마니타스(humanitas)'라는 단어가 '후마레humare)'라는 동사에서 온 거라고 믿었다. '묻다'는 뜻이지. 죽은 사람을 묻어주는 거 말이야. 인간성이라는 건, 그분의 생각에 따르면, 죽은 사람들을 존중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거였어."(95쪽) 라틴어 '후마니타스'는 인간성, 인간애, 인류애를 뜻한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시작에 관한 최초의 철학자'라고 존경을 표했고 이성이 낳는 야만에 대해 경고했던 잠바티스타 비코, 그는 인간 역사의 발전 과정이 '신적 · 영웅적 · 인간적' 단계를 거친다고 설명했다. 존 버거의 비코는 잠바티스타 비코를 인용하면서도 하나의 단계를 더 추가한다. 신 · 영웅 · 인간의 시대, 다음에 개의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이 리르코시(I ricorsi, '짖다', '항의하다'라는 뜻의 이탈리아어-옮긴이)!" (164쪽) 비코의 말에 따르면 후마니타스, 인간의 시대는 끝난 것이다. "'후마레(humare)'는 킹, '묻다'라는 뜻의 라틴어인데 이제 사라져 버렸단다. 새 단어는 '박살내다'야. 박살내다. 박살, 완전히 보내는 것.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박살 내 버리는 거지." (191쪽)

 

죽은 사람을 묻어주는 존중이 살아있는 사람을 묻고 은폐하고 박살내어 버리는 것으로 바뀌는 시대. 인간의 시대는 끝났고, 개의 시대가 시작한 셈이다. "자유를 약속하고 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인간을 죽이고 모든 것을 앗아 가 버리는"(192쪽) 야만 사이에 역사가 있었고 진행 중이다. 이 시대의 야만은 감각뿐 아니라 생각 자체에까지 침투했기 때문에 더 사악하고 잔인하다.(192쪽) 그들은, 그들의 '실수'인 하위계층을 묻고 은폐하여 스스로 공모하게끔 했다. 인간을 존중하는 인간과 인간을 박살내는 인간 사이에서 고개를 돌리며 그들이 되어왔다. 야만의 무리는 무수히 발견되는 그들의 '실수'에 쉽게 고개를 돌린다. 앞서, 서울에 특히 노숙인들이 많은 이유가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이라는 문장을 다시 환기할 필요가 있다. 사실 나는 이미 그들이며, 오래지 않아 그들의 실수가 될 것이다.

 

개의 시대, 짖고 항의하는 시대. 다시, 얼마만큼 당신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은 얼마만한 의지로 가능한 것일까. 손쉬운 감정이입을 통한 어쭙잖은 이해와 공감의 폭력을 경계하며, 자신을 죄인이라고 어림잡는 무거움을 탈피하면서 얼마나 당신이 될 수 있을까. 모든 어려운 질문들. 옮긴이 김현우 선생께서 번역 인세 전부를 노숙인 복지시설에 기부하였다는 사실과, 존 버거의 이 문장을 빌릴 수밖에. "말의 이중성. 아니, 다시 말해야겠다. 모든 세 번째 말은 적어도 가슴에서 나온다." (207쪽)

 

"잠시 후 자신이 짖고 있다는 것도 잊고, 그제서야 다른 사람들의 소리가 들린다. 합창처럼 들리는 짖는 소리. 그 누구도 변하지 않았고, 제각각 또렷하게 들리지만, 너무나 또렷해서 가슴을 찢는 소리. 그 짖음은 이제 무언가 달라졌다고 말하다. 이렇게, 우리가 여기 있어! 라고. '우리 여기 있어!'라는 그 말이 거의 죽어 있던 기억을 깨우고, 그 기억이 밤바람에 다시 불꽃을 피우는 재처럼 살아나고, 함께 있었던 기억, 두려움, 숲, 음식에 대한 기억도 되살아난다. 그들이 거기 누워 짖고, 그 짖음에서 나는 그들의 이름을 듣는다. 사냥개 대니, 요아킴, 솔, 말락, 애나, 알폰소, 스피츠 리베르토, 보잉의 먼지 더미 속에 웅크리고 앉은 그들은 가진 게 아무것도 없다. 내가 가진 게 아무것도 없듯이. 우리는 모두 똑같았고, 모두 짖고 있었다." (204쪽)

 

오늘의 책을 리뷰한 ‘soumas’님은?

얼마나 당신이 될 수 있을지, 또 당신과 연결될 수 있을지 고민하며, 때로 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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