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디앤루니스 뉴스레터'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5.01.09 당신과 나와 그들로서
  2. 2014.12.15 2014 미결산 도서
  3. 2014.11.17 지지 않고 계속
  4. 2014.10.06 당신이 연휴에 TV를 보는 동안

당신과 나와 그들로서

 

 

 

 

당신과 나와 그들로서


정초에 김훈 작가가 한 신문에 기고한 글을 읽었습니다. 새해를 맞기 전 잊지 말아야 할 세월호의 슬픔이 담긴 글이었습니다. 김훈 작가는 지난 한 해를 보내며 세상이 그동안 저지른 일을 크게 통한했습니다.

1월 6일, 국회에서는 여야가 합의한 ‘4•16세월호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의 내용을 알렸습니다. 참사 265일만입니다. 법안을 받아들인 유가족의 대부분은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것에 비해 특별법은 구체적이지 않았고, 이미 나왔던 얘기를 한 번 더 해석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265일 동안 너무나 많은 관점이 이 사안으로 발을 붙였습니다. 슬픔은 정치적으로 번져가는 과정에서 싸움으로 변하였고, 세상의 바람은 이미 기울어진 배처럼 허물어졌습니다. 물 밑으로 꺼진 세월호는 한 편의 슬픔을 아우르는 물체가 아니라 이편과 저편이 가늠해 보는 중심으로 들어갔습니다.

한 편의 글을 쓰면서도 입장과 관점에 따라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중대한 법안을 만들 때만큼이나 이야기를 만들 때도 관점을 고르기 쉽지 않다는 것은 《소설가의 일》에도 잘 나와 있습니다.

“이야기를 만드는 건 쉽지 않다. 인생을 사는 게 쉽지 않듯이. 나만의 시야만으로, 일인칭 시점만으로 바라보기에 이 인생에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관점이 얽혀 있다. 문제는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의 시선이다. 그것마저도 무시할 수는 없다. 누구에게나 이런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인생의 일들은 어떤 것도 절대적으로 옳거나 절대적으로 틀리는 일이 없이 중층적이고 복합적으로 재해석된다. 전체 이야기로 보자면 해피엔딩이지만, 관계 이야기로 보자면 불행한 결말이 실제 삶에서는 얼마나 많은가! 그렇다면 소설도 마찬가지다. 일인칭 시점에 이인칭 시점이 포함돼 있어야만 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김연수, 《소설가의 일》, 문학동네, 2014)

오랫동안 준비해서 만든 특별법 사항을 들고 여야가 일인칭 시점에만 머무르지 않길 바랍니다. 어느 날 갑자기 터진 이 뜻밖의 사건을 훗날 이인칭 시점과 삼인칭 시점이 어떻게 기억할지 알아 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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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ditor_ 정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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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미결산 도서


 

 

2014 미결산 도서

 

곳곳에서 시상식으로 분주한 걸 보니 역시 연말입니다. 다수의 매체가 올해 ‘최고의 책’을 가르고 있습니다. 덮어놓고, 지금 잠깐 여기에 있는 네 권의 책을 되짚어 주시기 바랍니다. 올해 출간되었고, 최고로 잘 팔리진 않았지만, 오늘날 분명 필요했던 책입니다. 다시금 보시고, 내년을 헤아리는 건 어떨지요.

《그의 슬픔과 기쁨》은 올해의 온도를 어느 정도 높였습니다. CBS 라디오 PD 정혜윤은 ‘선도투’라 불리는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26인의 시간을 기록했습니다. 그들의 삶에서 가장 뜨거웠던 순간 곁으로 바짝 다가서서요. 해고된 노동자들은 슬픔을 기쁨으로 치환했습니다. 그들은 절망의 밑바닥에서 다시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삶으로 몸소 올라왔습니다. 나 외에 다른 인간에 대해 치열하게 생각해 보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그들을 보고 궁금해졌습니다.

《킹》은 한 도시에서 부조화를 이룬 노숙인의 삶을 섬세히 그려낸 작품입니다. 존 버거는 스페인 알리칸테 지방에 있는 노숙인을 관찰한 후 1999년에 이 소설을 썼다고 합니다. ‘킹’이라는 개는 노숙인의 삶을 지긋이 바라보고는 끊임없이 울부짖었습니다. 킹은 “파괴를 견디고 살아남은 자, 혹은 견디고 살아남은 물건만이 다음 생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고 말합니다. 무기력하고, 참을 수 없었고,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무참했던 한 해, 절실한 마음으로 거듭 펼쳐 읽을 책이었습니다.

《나를 고백한다》에서 피에르 바야르는 자신을 극한 상황으로 모질게 몰고 갑니다. 충격적인 상황, 전쟁, 대학살, 삶의 갈림길에서 확연히 변할 ‘나’, 잘 모르고 있던 자신의 일부를 자세히 살피고 고백합니다. “나에게는 자기의 핵심에 있다는 그 비밀스러운 씨앗이 없는 걸까? 분노를 구체적인 행동으로 탈바꿈시켜줄 에너지를 끌어낼 수 있는 선택 받은 소수만이 가진 그 씨앗이?” 올 한 해, 다른 존재도 아닌 하필 인간이어서 무력했던 것 같습니다. 인간의 고통만이 유난히 가여워 보였습니다. 바라는 대로 되지 않는 비정상화된 세상에 내가 생각하는 내 모습으로 살길 바라며, 다시 꺼내 볼 책입니다.

《노인으로 산다는 것》에서 노인 장 루이 세르방 슈레베르가 말합니다. “노인은 다른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 수밖에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의 미래를 보여주니까요. 부당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불평은 그만두고 다른 사람들이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됩시다.“ 2014년은 어른이 그르쳤기에 더없이 불쾌했고, 어른의 잘못을 감내해야 할 아이들이 처량했던 한 해로 기억될 것입니다. 어른다운 어른, 사회가 받아들여야 마땅한 노인을 그리며 읽을 책입니다.

2014년,
부디 안녕히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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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않고 계속

 

 

 

지지 않고 계속

 

단 하루에 성패가 결정된다는 건 사실 억울한 일입니다. 단 한 번이기에 내가 아는 것을 최대한 써먹어야 한다고, 또 그럴 수 있겠다고 하지만, 최선은 아무리 다해도 부족하고, 가차 없이 잘 못한 상태로 끝날 수 있습니다. 수능만이 아닙니다. 삶에는 ‘단 한 번’만으로 평가에 놓이는 일들이 많습니다. 인생의 중요한 시도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정답인지 오답인지에 따라 가름 나는 등급처럼, 사실 인생은 그렇게 깨끗이 변별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데 말이죠.

 

오직 한 번뿐인 일을 겪어야 한다는 건 번번이 쉽지 않습니다. 오늘의 성과가 다음을 똑같이 기약하지 않으니까요. 중요한 건 틀려도 꺾이지 않고 계속해보겠다는 마음가짐입니다. 어쩌면, 틀릴지도 모를 혼돈과 이미 틀어진 복잡함 속에서 삶의 숱한 ‘단 한 번들’이 흘러가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사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운 일이므로 고통스러운 일이 있더라도 특별히 더 고통스럽게 여길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는 특별히 더 달콤하다. 고통스럽더라도 고통스럽지 않다. 본래 공허하니 사는 일 중엔 애쓸 일도 없다. 세계는 아무래도 좋을 일과 아무래도 좋을 것으로 가득해진다. (…) 그 하찮음으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으니까. 즐거워하거나 슬퍼하거나 하며, 버텨가고 있으니까. (…) 오래지 않아 날이 밝을 것입니다. 계속해보겠습니다. (황정은, 《계속해보겠습니다》, 창비,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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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연휴에 TV를 보는 동안

 

당신이 연휴에 TV를 보는 동안

 

우리는 책을 베개 삼을 수도 있다. 우리는 전자책 단말기를 쟁반으로 쓸 수도 있다. 그러나 책과 스크린은 여전히 그 무엇인가를 읽고, 정신적 우주를 건설하게 하는 위대한 진입로이다. 종이의 부드러운 입자성이냐 아니면 스크린의 저항력 있는 매끄러움이냐, 책장을 넘기느냐 아니면 리더기를 터치하느냐의 동적 활동들, 기대어 앉느냐 똑바로 앉느냐의 자세 차이, 머리를 아래로 기울이느냐 앞쪽으로 기울이느냐, 양손으로 움켜쥐느냐 손을 얹혀놓느냐, 종이를 접어놓은 모양이냐 배회하거나 확대?축소하거나 클릭할 수 있는 전자 스크린의 표면이냐 등등, 이 모든 특징들(과 더 많은 특징들)은 독서와 다양한 관계를 맺게 한다. (앤드루 파이퍼, 《그곳에 책이 있었다》, 책읽는수요일, 2014)

 

《그곳에 책이 있었다》에서 앤드루 파이퍼가 말하는 것처럼, 독서 방식은 제각각입니다. 계절을 붙여 말해도 마찬가지겠죠.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데, 저는 창 바깥 풍경을 보면, 책 생각이 금세 사라집니다.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책은 무슨 책이냐며, 애꿎은 책만 내팽개쳐 놓게 됩니다. 가을은 참 책 읽기 힘든 계절입니다. 같은 말이지만, 가을이라 읽지 않은 책이 풍족하게 쌓이고 있고요.

 

책들도 가을을 맞으러 거리로 나왔습니다. 10월 1일부터 5일까지 ‘와우북페스티벌'이 열립니다. 어느새 10년입니다. ‘와우북페스티벌’은 책도 축제가 될 수 있다는 걸 흥겹게 보여주었습니다. 거리를 거닐다가 일을 크게 벌여 보는 건 어떨지요. “책 읽기는 혁명”이라고 말했던 젊은 철학자 사사키 아타루를 ‘와우북페스티벌’에서 만나면 많은 것들이 달라져 있을 지도요. 홍대 주차장 거리를 가득 메운 책 더미 속에서 한없이 헤매시기 바랍니다.

 

장소를 옮겨 볼까요. 10월 3일부터 12일까지 파주출판도시에서 열리는 ‘파주북소리' 또한 알차게 준비돼 있습니다. *‘아직도 책을 즐기고 있다고? 오늘은 일요일이 아니잖아. 알면서 왜 그래.’ 아니까 이럽니다. 그러니까 아는 사람끼리만 일요일 오후에 책 읽기의 즐거움을 공유해 보세요. 10월 5일 일요일 ‘파주북소리’에서 문학평론가 황현산 선생의 ‘독(讀)한 습관' 얘기를 들으면서요.

 

‘와우북페스티벌’, ‘파주북소리’ 이외에도 시월에는 책 행사가 많습니다. 다 똑같은 말만 하고 있는 대중매체가 지겹다면, 매체 또한 책 안 읽는 당신을 지겨워할지 모르죠. 거리로 나가 책을 만나 보세요. 정성스러운 책이라면, 대중매체가 하지 않는 일을 하고 있을 겁니다.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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