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규'에 해당되는 글 12건

  1. 2014.12.03 《눈먼 자들의 국가》 - 2014년 4월 16일
  2. 2014.11.18 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3. 2014.11.07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 텅 빈 야구장에서
  4. 2014.01.24 [서점에서 만난 사람] 함께 살고싶은 한국문학의 새로운 집 -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 출간 기념 간담회
  5. 2013.12.18 《지구 영웅전설》 - 사실은 누추한 국가의 자화상
  6. 2012.11.27 [요즘 뭐 읽니?] 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7. 2011.11.02 [서점에서 만난 사람] 아름답게 살고 싶어요 - alterego 님
  8. 2011.09.07 [서점에서 만난 사람] 백수생활백서 실천가 - 도공 님
  9. 2011.09.06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 부끄러워하지도, 부러워하지도 말고
  10. 2011.07.22 [접어놓은 구절들] 박민규, 카스테라

《눈먼 자들의 국가》 - 2014년 4월 16일

 

 

김애란, 박민규, 황정은 외 | 《눈먼 자들의 국가》 | 문학동네 | 2014

 

"인간의 인간다운 세상을 위해 인간에게 기여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숭고하고 보람스러운 일이 어디 있을까. 진정한 문학, 참된 문학은 역사를 변혁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 길을 따라 남은 인생을 살고자 노력하는 작가 조정래 작가의 말씀입니다.

 

역사상 유례없는 해양 참사가 일어난 지 여러 날이 지났건만, 아직도 그 슬픔과 상처의 흔적은 몸속 깊이 만연해 있습니다. 잘못과 죄는 일어났는데, 책임을 지려고 하는 이 없는 이 사회에 문인들이 슬픔과 진실을 외칩니다. 이 책은 계간 문학동네 여름호와 가을호에 게재된 김애란, 김연수, 황정은 등 12명의 글을 묶은 것입니다. 김훈 작가가 팽목항에 내려갔을 때 유가족들 모두에게 준 책이 있는데, 바로 이 작품이었습니다. 저는 바로 그때 이 책을 알게 되었습니다.

 

선박이 침몰한 ‘사고’이자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다, 라고 쓴 박민규 작가의 표제작 ‘눈먼 자들의 국가’는 읽는 내내 심장을 두들깁니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눈을 떠야 한다.’는 말이 크게 울립니다. 책의 판매 수익금은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자 하는 다양한 움직임’에 기부될 예정이라니 더 눈길이 갑니다.

 

재일 학자 강상중은 ‘문학의 힘’에 관하여 여러 번 말했습니다. 그는 2010년에 갑작스럽게 아들을 잃었고,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목격했습니다. 그가 느낀 삶과 죽음의 의미를 담은 소설이 《마음》입니다. 그는 한국에서 문인들이 해야 할 일이 많다고도 재차 강조했습니다.

 

“마음의 상처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는 것, 그리고 상처받은 이들을 치유하는 일이 문학이 해야 할 일”

 

앞으로 ‘바다’를 볼 때 이제 우리 눈에는 바다 외에 다른 것도 담길 것이다. ‘가만히 있어라’는 말 속엔 영원히 그늘이 질 거다. 특정 단어를 쓸 때마다 그 말 아래 깔리는 어둠을 의식하게 될 거다.”라는 김애란의 글에서 세월호가 남긴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알겠습니다. 소설가 황정은은 이렇게 말합니다. “얼마나 쉬운지 모르겠다.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세상은 원래 이렇게 생겨먹었으니 더는 기대도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은. 내가 이미 이 세계를 향한 신뢰를 잃었다고 말하는 것은.” 그녀는 우리의 무기력을 고백하는데, 정말 가슴속 깊은 곳을 뜨겁게 찌릅니다.

 

세월호는 고도성장과 눈부신 발전 이면에 숨은 거품과 안개의 단상을 여과 없이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누군가는 지겹다고, 잊고 싶다고 말합니다. 한쪽에서 진상 규명을 외치면, 다른 쪽에서 그만하자고 외치죠. 처칠은 ‘역사는 반복된다. 다만 비극으로….’라고’라고 말했습니다. 같은 사건이 다시는 반복되어선 안 된다며 문인들이 한마음으로 만든 이 책은 곁에 두고 항상 봐야 할 우리의 현주소입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이쁜뚜영이님은?

좋은 책을 읽고 추천합니다.

 

Trackback 0 Comment 0

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Trackback 0 Comment 0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 텅 빈 야구장에서

 

 

박민규 |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 한겨레신문사 | 2003

 

새나라의 어린이는 밤 9시가 되면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TV가 알려주던 시절이 있었다. 아버지는 밤낮으로 일하셨고, 어머니는 하자 많은 집과 아픈 자신의 몸을 어떻게든 관리하고 건사하시며 차곡차곡 빚을 갚아나가셨다. ‘국민학교’ 운동장에서 메뚜기, 사마귀를 잡고 놀다가 집에 들어가면 그리 멀지 않은 시내에서 이따금 최루탄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마당을 함께 쓰던 옆집 할머니도 눈물, 콧물을 흘리면서 “이놈의 최루탄냄새” 하며 불평하셨지만, 작은 마루 자리를 보존하며 놀러 온 할머니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하셨다.

 

밤 9시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계산해가며 어머니와 TV를 보다 보면, 결국 시간을 넘겼다. 그럼 난 새나라의 어린이가 아닌가 보다, 하며 9시 뉴스까지 봤다. 9시 뉴스엔 어김없이 '땡전뉴스'와 그래프가 들어간 경제 기사가 빠지지 않았던 것 같다. 정확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종종 들렸던 어머니의 탄식 때문에 우리나라 경제가 그리 좋지 않나, 어린 마음에도 걱정스러웠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버지는 안정된 직장 생활을 하시며, 자녀들의 학비 대부분을 지원받았다. 아버지의 노고와 어머니의 알뜰함 덕에 우리 집은 빚을 다 갚았다. 동네에서 거의 처음으로 비디오테이프 플레이어를 장만했고, 이어 아버지 생애 처음으로 자가용을 장만하던 시절이었다.

 

이후에 겪은 모두의 고난을 다시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든 시대를 견뎌내야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분주했다. 노동 속도를 줄이거나 멈추면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기분으로 모두 살아갔을 것이다. 책이 덮인 후 이어진 시간을 따라 현재로 와 봐도, 분주함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낭떠러지까지 굴러가야 했던 사람들은 더욱 늘어났다. 가속도를 감내하고 달린 사람들이 행복해지거나 달리 여유가 늘어난 것도 아닌 것 같다. 그저 변해가는 환경에 무언가가 많이 늘었지만, 여전히 어수선하다. 대체 어느 지점에서 지침을 말해야 하는지, 지쳐서 이제 그만 좀 천천히 가도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해야 하는지 알 수도 없다.

 

이제 좀 천천히 가볼 수 없을까? 관성 때문인지 속도를 늦추는 것이 조금 두렵다. 낭떠러지의 실체 또한 분명치 않다. 달려봤자 나아질 게 없다는 걸 아는데, 왜 실체 없는 두려움에 시달리는 것일까? 사실 책을 다 읽었다는 이유로 이런 독후감이나 쓰고 있는 나 역시 두렵다. 나는 여전히 두려워 속도를 늦추지 못한다. 삼미슈퍼스타즈의 팬클럽 야구단이 '복원야구'에서 깔끔하게 지고, 텅 빈 야구장을 차지했을 때, '마치 재구성된 지구의 대륙처럼 그 봄의 텅 빈 홈그라운드'에서는 무얼 해도 좋을 것 같은 기분. 발걸음을 가다듬고 속도를 줄인다면, 현실 속 인생도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을까? 이미 오래된 의문 앞에서 답은커녕 두려움만 커질 뿐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민욱아빠'님은?

현직 외과의사입니다. 서울에서 수련생활을 마치고 제주로 내려와 생활한 지 5년이 되어가는 '제주이민자'입니다. 의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산다는 것의 많은 의미를 생각해보려 합니다. 계급적인 견지에서 일상에 떠오르는 수많은 생각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게, 그 고민들이 삶에 녹아들도록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Trackback 0 Comment 0

[서점에서 만난 사람] 함께 살고싶은 한국문학의 새로운 집 -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 출간 기념 간담회

 

편집·정리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혜원
사진 제공 | 문학동네

 

같은 책이라도 전집(全集) 안에 들어가면, 새로워 보입니다. 책의 새로운 터전 같다고나 할까요? 위대한 문학전집이 세상에 나오면, 이 땅에 훌륭한 집 한 채가 지어진 것 마냥 우두커니 바라보는 일부터 시작합니다. 자꾸 보면 살고 싶어지는 것이 집입니다. 책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훌륭한 전집일수록 전부 다 모으고 싶죠. 그래서 전집은 ‘샀다’는 말보다 ‘장만했다’는 말이 더 어울립니다.

 

 

세계문학전집과 한국고전문학전집을 출판한 문학동네에도 새집이 들어섰습니다. 하얗고 튼튼한 스무 권의 책들입니다. 김승옥의 단편 10편이 수록된 1권부터 2009년에 나온 박민규의 <카스테라>까지. 스무 권을 아우르고 있는 시대는 사실 모호합니다. 문학동네의 신형철 편집위원은 한국문학전집의 발간을 기념하며, 선정 기준을 밝혔습니다.

 

 

 

 “’문학성’입니다. 문학동네가 소설을 출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신뢰하는 기준은 ‘서사의 힘’입니다. ‘인간과 세계의 진실을 이야기가 밝혀서 보여줄 수 있는가.” 그리고 작품이 어느 정도 독자들과 소통했는지, 한 시대의 사회적 징후를 대표적으로 보여줬는지 하는 ‘문제성’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모두가 박완서를 읽고 자랐고, 모두가 박완서를 읽으며 세월을 났다.” (400쪽)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의 세 번째 책, 박완서의 대표 중단편선 <대범한 밥상>에 쓰인 문학평론가 차미령의 해설입니다. 세월을 함께한 책을 전집으로 다시 보는 기분은 어떨까요?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은 2014년에 나온 ‘새 책’이기도 합니다. 이 전집을 계기로 누군가는 한국문학 입문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을 통해 ‘한국문학이 이런 거구나.’라고 처음 경험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새로운 세대의 한국문학 독자, 한국문학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우리 사회 속에 정착되도록 하는 게 문학 출판사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황종연 편집위원의 바람이 문학동네가 한국문학전집을 출간하는 중요한 목적이기도 합니다.

 

우선으로 발표된 스무 권 외에 앞으로 전집에 입주 예정인 이웃도 궁금해집니다.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의 문은 언제나 열려있습니다. 문학동네 편집위원들은 자신감 있게 입을 모았습니다. “전집을 만든다는 것이 기존에는 정서를 확정 짓는 대단히 권위적인 작업이었습니다. 문학동네는 좀 더 동시대 독자들과 호흡할 여지를 많이 남기고자 합니다. 조금 더 유연하게. 어떤 작품은 전집으로 묶기엔 조금 낯설 수 있어요. 하지만 동시대의 작품 중 앞으로 어떤 것이 한국문학전집에 포함될 것인지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상태에서 누군가는 맨 처음 기준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모한 일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만, 문학동네의 자신감 표현이라고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어요.”

 

한국문학전집을 장식하는 표지에는 한강 사진이 있습니다. 낯선 풍경의 한강을 아름답게 찍는 이대원의 사진입니다. 문학동네가 기록할 한국문학전집의 역사가 한강의 물결을 따라 굳세게 흘러가길 바라봅니다.

 

 

 

 

 



Trackback 0 Comment 0

《지구 영웅전설》 - 사실은 누추한 국가의 자화상

 

 

박민규 | 《지구 영웅전설》 | 문학동네 | 2003

 

안녕 바나나맨!

 

누추한 나라엔 누추한 국민이 산다. 누추함은 숨길 수가 없어, 본인이 보기에도 한심하고 답답하니 그들은 으레 슈퍼한 것을 꿈꾸고 나아가 그 슈퍼한 것에 스스로 복종하려는 마음을 갖기도 한다. 이 소설은 누추한 국민 중에서도 가장 누추했던 한 소년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소년은 어느 날 자살을 결심한다. 자신의 누추한 실존을 비관해서가 아니다. 펜트하우스를 보다 담임에게 걸렸다. 젠장.

 

더럽고 질퍽한 추문이 자신의 인생을 파멸시키기 전에 소년은 자기 삶을 스스로 파괴하기로 마음 먹었다. 하지만 그냥 자살을 했다간 '글쎄 펜트하우스를 보다 걸려서...', '천박하고 더러운 꼬마 녀석. 죽어도 싸지' 같은 뒷말이 나올 우려가 있어, 그러니 완벽한 자살을 꾸며야지. 음욕은 충만했지만 결코 멍청하지 않았던 소년은 자신의 자살을 그 시절 종종 일어나곤 했던 해프닝으로 꾸미고자 빨간 망토를 두르고 가슴팍에 S를 새긴 뒤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린다.

 

바람이 분다.
망토가 휘날린다.
떨어진다.

 

죽음이 얼굴을 강타하기 직전, 그러나 부웅 몸이 떠오르는 게 느껴진다. 눈을 뜨니 나를 안고 있는 건 무려 슈퍼맨. 누추한 국민은 스스로 죽을 권리도 없단 말인가? 슈퍼맨의 슈퍼한 배려로 정의의 홀에 도착한 소년은 각종 훈련을 거친 뒤 '슈퍼 히어로'로 재탄생한다. 슈퍼맨, 슈퍼한 건 백인만 될 수 있는 게 아닌가요? 맞아. 하지만 너는 더 이상 옐로몽키가 아니야. 너의 영혼은 이미 새하얗게 탈색됐어. 중요한 건 마음이잖아. 육체를 지배하는 건 정신이니까. 그러니까 너는 오늘부터 슈퍼 히어로,

 

바나나맨 이야.

 

나는 지구의 왕이 될 거야

 

미국은 뭘 먹고 미친 걸까? 세계의 경찰, 군대, 은행, 기업을 넘어 지구의 왕이 되려 하니 말이다. 박민규는 누추한 국가의 국민이지만 정신은 고고한 소설가다. 폭로를 꿈꿀 수 밖에. 소재는 뭐가 좋을까? 만화, 슈퍼 히어로! 그래 그런 만화는 접근이 좋고 파급력이 강해. 특히 이데올로기를 감추기에 적격이지. 애들이 보는 만화에 그런 게 있을 거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사실은 은밀하고 더 철저하게 파고드는 데도. 그러니 알려줘야겠다. 거기에 어떤 의도가 숨어 있는지를.

 

《지구 영웅 전설》은 DC코믹스의(전통적으로 공화당(보수)을 지지한다) 슈퍼 히어로들이 사실은 지구를 포식하려는 미국의 의도를 반영하고 있음을 유쾌하게 드러내는 소설이다. 이를테면, 슈퍼맨의 슈퍼함은 미국의 힘, 즉 U.S. Army를, 배트맨의 재력은 IMF, 바다의 왕자 아쿠아맨은 WTO, 그리고 원더우먼의 섹슈얼리티는 미국의 사악한 의도를 숨긴 각종 문화 산업을 뜻한다는 거지. 그럼 바나나맨은 뭐야? 바나나맨의 첫 임무는 원더우먼의 탐폰을 사오는 것이었다. 이름부터가 삼류야. 어딜 봐도 슈퍼 히어로는 아니지. 그럼 뭘까? 뭐긴,

 

한국이지.

 

겉은 노랗지만 속은 하얀 바나나는 복지에서 문화, 경제, 정치, 의료까지 미국을 모방하려 애쓰는 한국의 모습을 상징한다. 미국이라는 슈퍼 히어로 옆에서 어색하게 포즈를 따라 하는 삼류 히어로. 삼류 히어로는 최선을 다해 시장을 개방하고, 불리한 협약에 사인하고, 군대를 파견해 슈퍼 히어로의 환심을 산다. 동아시아 최우방국 이라는 지위를 놓고 일본과 피 터지는 외교전을 벌이기까지 해. 결정적인 순간엔 결국 '까지 말고 꺼져 있어' 밖에 안되면서 말이다.

 

선생님들, 당황하지 마세요

 

'까지 말고 꺼져 있을 수 밖에 없는 나라'의 소설가 박민규는 이 소설로 제8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이라는 꽤 큰 상을 받는다. 그러나 상을 수여한 심사위원들의 표정은 석연치 않다. 이 소설은 진지한 고민과 모색의 흔적이 보이지 않고 이류 정치 평론가의 도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나 참, 그런데 그렇게 많은 소설과 정치 평론이 동일한 도식을 답습하고 있는데도 이 세계는 왜 변하지 않을까요?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라 구요? 제 생각은 다릅니다. 우리는 모르고 있어요. 아마 앞으로도 모를 겁니다. 그걸 아는 국민들이 뼛속까지 미국적인 정치인을 대통령으로 뽑을 리는 없으니까요. 모르니까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 끊임 없이 답습해야죠. 그들이 알 때까지. 아는 사람들끼리만 알아선 곤란합니다. 대중이 알아야 되요.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정말 최고 아닌가요? 무엇보다 재미있으니까요. 재미있으니까 통할 수 있습니다. 어렵고 진지한 글들은 그 위에 계속 그렇게 계십시요. 사람들은 죽었다 깨놔도 한 방에 그 곳으로 갈 수는 없습니다. '지구 영웅 전설' 같은 소설을 잡고 천천히 올라가야 해요. 그러니 선생님들, 탓하려면 재미없음을 탓하셔야 합니다. 다른 건 볼 필요도 없어요.

 

오히려 저는 이 소설의 에피소드 늘어놓기 식 구성이 중반 이후 축 쳐진 뱃살처럼 긴장감을 잃어 지루했다는 지적을 하고 싶네요. 160쪽이 갓 넘는 소설이었기에 망정이지 300쪽이 넘었다면, 아! 생각만해도 아찔합니다. 그러니 박민규 씨라고 불러야 할지 선생님이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소설가님, 재미있게 써 주십시요. 도스토옙스키 운운하는 말에 신경 쓰지 마세요. 누가 무슨 말을 한다 해도 당신은 계속 이렇게 써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다면,

 

저는 끝까지 읽을 겁니다.

글 쓰는 사람에게 이것보다 중요한 것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겁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WiredHusky’님은?
야근하고 지하철을 타고 월급 명세서에 분노하는, 당신과 같은 보통 사람

 

Trackback 0 Comment 0

[요즘 뭐 읽니?] 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 예담 | 2012

 

“다만 어린아이와 같은 그녀... 어릴 때부터의... 그녀, 태어나기도 전의 그녀... 앞으로 늙어갈 그녀... 그런 그녀의 존재 하나하나가 갑자기 내린 눈처럼 그 자리에 쌓여 있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혹은 그녀들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실제로 그녀는 울지 않았고, 잠시 울음을 참았을 뿐이었다. (…) 주변의 나무처럼 차가운 그녀의 몸을 나는 힘껏 껴안았다. 그녀를... 아니... 그 속의 그녀와, 그 속의 그녀... 또 그 속의 나이테처럼 굳어 있는 모든 그녀들을 나는 안아주고 싶었다. 몹시도 뜨거운 무언가가 밀착된 가슴을 통해 흘러가고 흘러드는 느낌이었다.” (30-31쪽)

 

누군가는 ‘상처받은 사람은 상대를 상처내면서 치유된다’고 말했다. 그는 상처받은 동시에 상처 낸 사람이었고, 당시의 나는 상처받았다 생각했으므로, 나를 상처 낸 이를 이해하는 데 그 말을 떠올렸다.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모든 상처는 곪고 썩다 결국엔 딱딱하게 굳어 닫혀버린 세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세계로 진입을 시도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대한 대답처럼, ‘어쩔 수 없는 없다, 그게 바로 세상이고, 인생이다’ 류의 실망과 절망을 통과한 체념과 단념의 말을 들어야 할 거라고. 그리고 이 말이 문 앞에 선 이에게 상처가 되는 거라고. 들어가고 싶으나 열리지 않는, 그래서 거부당하는 이가 느껴야 할 좌절감이 있으므로.

 

그러므로 사랑이란, 그저 그런 데다 어쩔 수 없는 거 투성인 세상이 저마다 할퀴고 간 상처들이 만나, 그 세상 안에서 바로 그 세상 밖의 존재를 얼핏 보게 되는 게 아닐까. 치유는 서로로 인해 가능했던 세상에 대한 기억, 그 안에 그 혹은 그녀가, 그들의 시간, 그들을 만든 시간들이 존재했고, 바로 그 있음들로부터 오는 게 아닐까. 존재‘들’이 존재하는 대로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라면, 닫힌 문을 굳이 두드리지 않고도 그 안에 웅크리고 있는 그 혹은 그녀를 품 안에 들일 수 있을 테니까. 라고, 박민규를 읽으며.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 (anejsgkrp@bandinlunis.com)




Trackback 0 Comment 0

[서점에서 만난 사람] 아름답게 살고 싶어요 - alterego 님

 

요 며칠 정말 가을 답다, 말하고 싶은 날들입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에,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과 따땃한 햇살이 더해지니, 딱 요즘만 같았으면 좋겠단 생각도 들고요. 게다가 이런 날, 누군가와 마음까지 주고 받을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겠죠? 오늘 소개해드릴 이분은 어떤 마음을 여러분께 전해주실지, 이번주 [서점에서 만난 사람] 시작해볼까요?

 

 

alterego 님이 궁금합니다!

 

아름답게 살고 싶은 사람입니다. 아이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어요.

 

* 프로필 이미지는 alterego 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오지호의 '남향집'입니다.

 

반디 서재와의 인연을 말씀해주세요.

 

대학 시절부터 ‘반디북’ 사이트를 자주 이용했었지요. 그때보다 지금은 웹사이트가 많이 세련되어진 것 같아요. 읽을거리도 많아지구요. 저는 지금 전주에 살지만, 이따금 서울에 올라가서 약속을 잡을 때면 종로 반디앤루니스 앞 계단에서 친구를 만나곤 한답니다. 기다리는 시간 동안 새 책을 둘러보러 반디앤루니스에 들어가 있으면 시간이 훌쩍 지나가요. 인터넷 반디 서재에는 최근에 관심을 갖고 종종 책을 읽고 느낀 점들을 올리고 있어요.

 

반디 서재에서 활동하시는 동안 가장 의미 있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아직 활동 기간이 길지 않아서 다양한 에피소드들은 없는데요, 제 글이 베스트리뷰로 많은 분들에게 읽힐 때면 기분이 뿌듯해요. 이따금 댓글을 달아주시는 분들에게도 감사하고요.

 

‘책 읽는 설렘’에 대해서 한 말씀해주신다면?

 

책을 사면 일단 책 안쪽 표지에 언제, 어디에서 샀다는 것을, 혹은 누군가에게 어느 날에 받았다는 것을 꼭 기록해두곤 해요. 그때 날짜를 적는 그 순간이 왠지 떨리고 설레는 순간 같아요. 일단 읽기 시작하면 굉장히 지저분하게 읽어요. 밑줄이나 낙서도 막 하고. 결국 날짜가 적히는 순간, 책에게는 수난이 시작되는 거죠. ^^

 

책을 고르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제목부터 끌리는 책들이 있어요. 목차를 넘기다보면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낄 때도 있구요. 대부분은 제가 관심을 갖게 된 저자를 따라가며 그가 지은 책들을 다 사모으는 식으로 읽을 때가 많지요.

 

이런 책은 무조건 산다! 라고 할 만한 기준이 있으신가요?

 

미술 관련 책을 굉장히 좋아해요. 미술 작품이나 화가의 생애에 얽힌 이야기들이 담긴 책들을 자주 산답니다. 심리학 쪽에도 관심이 많은데요, 진지한 심리학 책도 많이 보지만, 연애와 관련한 심리학 책도 자주 찾아 읽어요. 솔직하고 자세한 연애 심리서가 많이 나왔으면 하는데, 사실 배우는 건 그때 뿐이더라구요. 역시 연애는 실전인 거죠.ㅎㅎ 그런 게 아니라면 대부분 저의 전공인 한문학과 관련된 책이나 한국 문학 작품들을 많이 읽지요. 요즘에는 시가 좋아져서 문지 시인선에 부쩍 관심이 많아요.

 

현재 많은 출판사들이 세계문학전집을 출간하고 있는데요. 그중 특별히 선호하거나 신뢰하는 시리즈가 있으신가요?

 

 

 

문학전집은 아니지만 책세상의 카뮈 전집에 관심이 많이 가요. 같은 출판사에서 펴낸 니체전집도 사고 싶었지만 너무 비싸서 엄두를 못내고 있지요.

 

요즘 읽고 있는 책에는 어떤 게 있나요?

 

박형준 시인의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예요. 동명의 시가 실려 있는데, 읽으면서 지나간 연인 생각에 눈물이 나더군요. 상대를 향한 순수한 마음, 그러나 이미 엇갈려 있는 상대의 시선. 사랑이 고달프고 애처롭게 느껴지는 순간은 그럴 때인 것 같아요. 청년의 눈부신 설렘과 냉담해진 여인의 눈길이 대비를 이루면서, 지나온 사랑의 풍경을 되짚어보게 되는 시였어요.

 

요즘 눈독(?) 들이고 있는 책에는 어떤 게 있나요?

 

한길그레이트북스 시리즈는 항상 만족스러운 수준이에요. 출판사에 대해 기본적으로 안정감이랄까, 믿음이 가는 것 같아요. 새 책이 나올 때마다 찜해놓는답니다. ^^

 

평소 즐겨 있는 분야와 그간 읽어온 책 중에 ‘이 책만은 반드시!’라고 추천할 만한 도서도 소개해주세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일단 직업상^^; 우리 문학 작품을 가장 많이 읽는답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너무 외국 작가에 편중된 독서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저는 <백석 시전집>을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답니다. 우리의 말과 우리의 전통에, 얼마나 신비하고 아름답고 고운 힘이 서려있는지를 느끼게 해주는 시들이구요, 우리가 평소에 느끼는 서러움이나 쓸쓸함 등이 묻어나는 시들도 참 많아요. 기본적으로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이 참 따뜻해서 좋아요.

 

좋아하는 작가가 있으신가요?

 

 

 

박민규 작가는 정말 최고라고 생각한답니다. 슬픈 걸 슬프게, 웃기는 것을 웃기게 표현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겠죠. 웃음 속에 삶의 초라함을 담고, 삶의 고난 속에서 인생의 위트를 찾아내는 작가의 시선이 참 놀라워요.

 

늘 마음에 두고 있거나, 몇 번이고 다시 보며 감동을 느끼는 책이 있으신가요?

 

하하~ 네, 여러 책을 언급하게 되네요. 음.. 이 질문을 받고 가장 먼저 떠오르는 책은 <모모>예요. 저는 지지(혹은 기기)라는 캐릭터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는데요, 지지가 모모를 위해  다른 사람에게는 들려주지 않았던 이야기를 들려주는 대목이 있어요. ‘모든 사람을 위한 이야기와 한 사람을 위한 이야기’라고... 저는 지지를 보면서 (성격은 조금 다르긴 하지만) 소설을 쓰던 예전의 연인이 떠오르더군요. 마치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모모는 저 같다고 착각에 빠지면서 읽었답니다.

 

최근 3개월 동안 인상 깊게 읽으신 책은 어떤 게 있나요?

 

최인호 선생님의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였어요. 원로 선생님답게 공력이 대단한 작품이었죠. 그러나 이야기하는 방식이나 내용은 또 가장 참신했던 작품이었죠. 원로다우시면서도 새내기작가 같은 파격을 지니신 선생님이 참 존경스러웠어요.

 

책을 읽지 않을 땐, 보통 무엇을 하면서 지내시나요?

 

홈페이지 관리를 자주 한답니다. ^^; 관리라기보다는 혼자 자기 생각을 궁시렁궁시렁 써내려가는데요, 그러다보면 하룻동안 쌓인 스트레스도 풀리고, 나름대로 해결책을 찾게 되기도 하더라구요. 제자들과 좀더 개별적이고 인간적인 모습으로 만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답니다. 

 

독서하면서 생긴 특별한 습관이 있으신가요?

 

밑줄을 많이 긋고 거기에 메모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왠지 책은 지저분하게 보아야 열심히 공부한 듯한 느낌이 들어서...^^; 그래서 빌려읽는 책은 불편하고요, 대부분은 제 책으로 보아야 제 것이 된다는 생각 하에 사 모으고, 열심히 밑줄 긋고, 쌓아두고 있답니다. ^^

 

그간 읽으신 소설 속 캐릭터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이 있으신가요?

 

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 중에서 원미동 시인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사실 제 이상형이기도 하구요. 저는 어쩐지 그런 어수룩한 사람에게 참 매력을 느껴요. 대부분 세상에서 그런 사람들은 이용되고 버려지기 쉽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마음에 강한 힘을 지닌 사람은 그 시인 같은 존재가 아닐까요? 그 시인은 몰라서 속고 당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알면서도 당해줄 수 있다는 거... 이거 웬만한 내공으로는 힘들걸요? ^^

 

단 한 권의 책으로 자신을 설명해야 한다면, 어떤 책을 꼽으시겠어요?

 

  

 

백석이나 기형도의 시집을 조용히 건네줄 것 같아요. 저의 내면과 닮은(혹은 닮고 싶은^^) 사람들인 것 같아서요.

 

가장 좋아하는 분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은 어떤 건가요?

 

역시나 위에서 말한 시집을 선물하거나... 아니면 고운 그림이 그려진 화집을 선물하고 싶어요.

 

세상 모든 책이 불탈 때 단 몇 권의 책을 구할 수 있다면 어떤 책을 구하실 건가요?

 

하하하~ 어려운 질문이네요. 지금 막 떠오르는 것은 성서나 노자, 장자, 논어 같은 책들이에요. ^^ 

 

앞으로의 독서 계획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길을 따라가는 읽기. 어느 작가든, 어떤 생각의 흐름이든... 길을 찾아 따라가며 읽는 독서를 하고 싶어요. 그 길은 아마도 저의 인생을 닮아 있겠죠?

 

 

말씀만 듣고 왠지 소녀 같은 분이 아닐까, 상상해봅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라고 하시니, 그 아이들도 선생님을 닮아 촉촉한 감수성을 지닌 어른으로 성장하지 않을까, 도 생각해보고요. 문득 제 학창시절의 국어 선생님이 떠오르는데, 그분이 어떠셨는지에 대해서는, 노코멘트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는 판단이...^^;;

 

★ alterego 님이 어떤 길을 따라 독서를 해오셨는지 [여기]로 가서 함께 걸어가볼까요?


Trackback 0 Comment 0

[서점에서 만난 사람] 백수생활백서 실천가 - 도공 님

 

추석 연휴가 눈앞으로 다가왔네요. 연휴 동안, 그동안 못만났던 가족들도 만나고, 이야기도 나누고 할일이 참 많으실 텐데요. 그래도 남은 2011년을 살아내기 위한 몸과 마음의 휴식 또한 놓치지 말고 챙기시기 바랍니다.

 

자, 그럼 오늘도 [서점에서 만난 사람] 시작하겠습니다!

 

도공 님이 궁금합니다!

 

구직과 실직을 벌써 두 번째 반복하고 있는 백수. ‘실업’은 구조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내가 느끼는 불안과 초조가 줄어들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곤 잠시 혼란스러워하기도 했음. 지금은 ‘불안하면 지는 거다’라는 모토 하에 김상봉 선생이 말씀하신 ‘낙오자 되기’를 실천하고 있지만 여전히 ‘낙오자 취급 당하기’에는 익숙하지 않은 모순덩어리 세속인.

 

반디 서재와의 인연을 말씀해주세요.

 

별 생각 없이 쓴 리뷰가 '오늘의 책'에 선정되면서 서재를 잠시 꾸며볼까, 했었죠.

 

반디 서재에서 활동하시는 동안 가장 의미 있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바로 저(위) 순간.

 

‘책 읽는 설렘’에 대해서 한 말씀해주신다면?

 

책을 안 좋아하는 건지 몰라도, 전 책을 읽는 ‘설렘’ 같은 건 잘 모르겠다는. 저한테 책은 그냥 밥 같은 거라서. 뭐, 가끔 외식하면서 메뉴를 신중히 고르기도 하고, 오늘은 뭐 해 먹을까 고민하기도 하지만, 그러다 엄청 맛있는 음식이 얻어걸리면 ‘앗싸~!’ 하고 쾌재를 부르고 ‘너무 맛있다’고 호들갑을 떨기도 하지만, 그 만남 자체는 워낙 일상적이고 당연한 거라 미처 ‘설렘’이 끼어들 자리가 없달까. 달리 말해 책은 가슴 떨리는 연인이라기보다, 없으면 안 되는 내 일부인 듯.

 

책을 고르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그때그때, 제 상태에 따라 다른데, 몸이 편할 땐 머리가 불편해지는 책들-사회과학, 경제, 생태, 인문 등-을 많이 골라 읽고요, 반대로 머리가 불편할 땐 소설을 많이 찾는 것 같아요. 물론 특정한 문제의식이나 관심 있는 주제가 생기면 그에 답을 줄만한 책들을 골라 읽고요.

 

이런 책은 무조건 산다! 라고 할 만한 기준이 있으신가요?

 

박민규 소설. (내) 눈에 띄는 신간.

 

요즘 읽고 있는 책에는 어떤 게 있나요?

 

  

 

앙드레 고르의 <프롤레타리아여 안녕>을 펴놓고 박주영의 <종이달>, 장강명의 <표백> 같은 소설을 읽었네요.

 

요즘 눈독(?) 들이고 있는 책에는 어떤 게 있나요?

 

사고 싶은 책은 대부분 사버리는 스딸이라 책에 ‘눈독을 들이’거나 ‘마음에 담아두’거나 하진 않아요.

 

좋아하는 작가가 있으신가요?

 

 

 

 

 

 

 

 

 

 

 

지금 딱 떠오르는 사람은 박민규와 강신주인데.. 박민규는 제가 굳이 말을 보탤 필요가 없을 것 같고, 강신주는 인문이라는 칼로 이 사회 단면을 베어내 날카롭게 진단할 줄 알아요. 그의 무기도, 관점도, 시선도 마음에 들어요. <상처받지 않을 권리>가 특히 그랬고,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에서조차 그는 이 사회를 잊지 않아요. 한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인문학자의 면모죠.

 

늘 마음에 두고 있거나, 몇 번이고 다시 보며 감동을 느끼는 책이 있으신가요?

 

<오래된 미래>. 몇 번이고 다시 읽진 않았지만, 늘 마음에 두고 있는 책이에요. 자본주의가 모든 것을 ‘숫자’로 환원하면서 인간 사고와 삶을 얼마나 황폐하게 만드는지 말해주거든요.

 

최근 3개월 동안 인상 깊게 읽으신 책은 어떤 게 있나요?

 

갈수록 인상 깊은 책이 적어지는 것 같아 걱정이네요.

 

책을 읽지 않을 땐, 보통 무엇을 하면서 지내시나요?

 

해찰

 

독서하면서 생긴 특별한 습관이 있으신가요?

 

한 번 잡은 책이 아주~ 재미있지 않은 이상 이 책 읽다, 저 책 꺼내 읽다, 해서 항상 베개 맡에 책 대여섯 권은 기본 널려 있어요.

 

그간 읽으신 소설 속 캐릭터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이 있으신가요?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주인공. 

 

단 한 권의 책으로 자신을 설명해야 한다면, 어떤 책을 꼽으시겠어요?

 

박주영의 <백수생활백서>.

 

가장 좋아하는 분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은 어떤 건가요?

 

내 책장에서 고른 책이라면 무엇이든.

 

세상 모든 책이 불탈 때 단 몇 권의 책을 구할 수 있다면 어떤 책을 구하실 건가요?

 

흠...... 타오이스트로서 <노자>라도 구해야 할까요. 

 

앞으로의 독서 계획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읽은 책에 대해 일일이 리뷰를 다 쓰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힘든 관계로다가 되도록 책 읽고 짧게나마 기록을 남기려고 해요. 나한테 인상 깊었던 구절, 혹은 이 책 한권을 대변해줄 수 있는 대표 구절을 옮겨 적는 것도 방법이고요. 그게, 내 저질 기억력이 읽었던 책들에 대해 취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인 것 같네요.

 

'책 읽는 설렘'에 대한 도공 님의 답변이 참 인상적입니다. "그 만남 자체는 워낙 일상적이고 당연한 거라 미처 ‘설렘’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고 하셨죠. 왜 박주영의 <백수생활백서>로 자신을 표현하셨는지 알겠네요. 앞으로는 자발적 '낙오자 되기' 실천에서도 '불안과 초조'가 끼어들 자리가 없길 바라봅니다. 혹은 바라는 때에 바라는 일로 바라는 책은 모조리 구할 수 있게 되길 기원해드릴게요~


Trackback 0 Comment 0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 부끄러워하지도, 부러워하지도 말고


 

 

박민규 |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 예담 | 2009

 

며칠 전 한 잡지에서 어느 뷰티디렉터가 쓴 이런 글을 보았다.

 

저에게는 사람을 두 가지 부류로 나누는 명확한 기준이 존재합니다. 잘생긴 남자와 못생긴 남자, 그리고 예쁜 여자와 못생긴 여자! 이 무슨 얄팍한 소리냐고 탓해도 변명의 여지는 없습니다. (…) 물론 내실의 중요성을 모르는 건 아닙니다. 훈훈한 심장과 지적인 뇌는 언제든 충동적 시각의 즐거움을 초월할 만한 필요충분조건이 되어주니까요. 하지만 그건 이성이 작용을 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시작되는 글의 제목은 심지어 ‘억울하면 예뻐지세요!’였다. 그래, 예쁘지 않아서 이 글을 보고 억울하고 원통했다. 이 글의 바탕에 깔려 있는 예쁘고 잘생긴 건 좋은 것, 못생긴 건 나쁜 것이란 뉘앙스가 불쾌했다. 내가 원해서 달고 태어난 얼굴도 아닌데, 후천적 노력(물론 성형수술이 만연한 시대에 이런 변명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으로 바꿀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 가치를 논하는 이런 글을 마주해야 한다는 게 몹시 분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나 역시 저 말을 거스를 수 없는, 예쁜 여자와 잘생긴 남자에 쉽게 경도되는 보통 사람이라는 점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양가감정 사이에서 불쑥 그녀가 떠올랐다.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속 못생긴 여자인 그녀가.

 

벨라스케스의 그림 ‘라스메니나스’를 떠올려보자. 그림의 한가운데에 당당하다 못해 사뭇 도도해 보이기까지 하는 예쁘장한 꼬마 공주가 환한 빛을 받으며 서 있다. 그 오른쪽으로 빛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퉁퉁하고 못생긴 여자가 있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의 표지는 그 주목 받지 못한 여자에게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춘 듯한 모습이다. 그림 속 그 여자는 소설 속 그녀를 태어나게 했다.

 

스무 살의 나는 백화점 주차장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아무도 어울려주지 않는, 존재조차 희미한 못생긴 그녀를 만난다. 말하자면, 그때까지도 꽤 많은 못생긴 여자들을 봐왔지만 나는 그녀처럼 못생긴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세기를 대표하는 미녀를 볼 때와 하나 차이 없이, 세기를 대표하는 추녀에게도 남자를 얼어붙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82쪽) 그녀를 처음 본 나의 소감이다. 자꾸 그녀가 신경이 쓰이던 나는 그녀에게 친구가 되자고 청하고 두 사람은 서로에게 잊을 수 없는 사람이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거대한 권력은 돈 그리고 미모가 되었다. 어딜 가든 잘생기고 예쁜 사람은 득을 본다.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그들은 언제나 더 돋보인다. 취업은 물론이고 하다 못해 음식점에서 서비스라도 더 받는다. 반면 못생긴 이들에 대한 대접과 태도는 어떠한가. 그리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연예인들에 대한 무수한 댓글을 생각해보자. 미모가 뛰어난 연예인에게는 우월한 유전자라느니, 여신이라느니 온갖 찬사가 달려들지만 그렇지 않은 연예인에게는 과연 사람이 사람에게 저런 말을 해도 되나 싶을 정도의 험한 말들이 달라붙는다.

 

우리가 모두 주지하고 있다시피 세상은 못생긴 남자보다 못생긴 여자에게 더 가혹하다. 못생긴 남자가 성공을 하면 대단하다는 말을 듣는 반면 못생긴 여자가 성공을 하면 독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못생긴 여자가 겪어야만 했던 삶의 어두운 시간들을 적어 내려간 그녀의 기나긴 편지는 절통하다.

 

인정받지 못하고 인정하고 싶지도 않지만… 저는 분명 세상이 만들어낸 장애인입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68쪽)

 

여중생이 되고, 또 학년을 올라가면서 그나마 점점 놀림을 받는 일은 사라져 갔습니다. 말씀 드렸듯 친구를 사귀기도, 또 스스로를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습니다. 네, 책을 많이 읽고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되고자 저는 노력했습니다. 예전보다 나아진 건 분명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저는 격리된 느낌이었습니다. 경쟁에서 이겼을 때나 혹 작은 말다툼 뒤에는 마치 감춰둔 칼과 같은 ‘흥, 얼굴도 못생긴 게’를 들어야 했던 것입니다. (271쪽)

 

저는 오래전에… 마음속에서 스스로의 얼굴을 도려낸 여자입니다. 이젠 어쩔 수가 없구나… 마음의 단두대에 올라 스스로를 절단한 것입니다. (…) 발밑을 뒹구는 저 얼굴을 이제 누가 찌르고 찬다 해도 아프지 않을 거야… 그렇게 봉합을 끝내고 몸통만 남은 마음으로 살아온 것입니다. (273쪽)

 

스스로를 ‘어둠이 집인 인간’이라고 칭하는 그녀의 사정없이 찢긴 마음을 우리가 과연 짐작이나 해볼 수 있을까. 사람들이 별 뜻 없이 던진 말이 어떻게 비수가 되어 꽂히는지, 한 사람의 인생에 어떤 어둠을 드리우게 되는지 안다면 그때에도 그런 말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내뱉을 수 있을까. 사람들이 추함을 그토록이나 멸시하고 아름다움만을 쫓는 이유를 박민규는 이렇게 말한다.

 

부와 아름다움에 강력한 힘을 부여해 준 것은 바로 그렇지 못한 절대다수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는 끝없이 욕망하고 부러워해왔습니다. 이유는 그것이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416쪽)

 

절대다수인 우리가, 그러니까 아름답지 못한 우리가 아름답기를 욕망하고 우리의 아름답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름다운 이를 볼 때면 그처럼 닮기를 원하고, 그와 같지 않은 내가 원망스러웠던 건 절대다수의 공통적인 경험이다. 이 유쾌하지 않은 경험을 벗어나는 방법도 그는 함께 일러준다. 물론 그것은 <좋은 것>이지만, 그것만으론 <시시해>. 그것만으로도 좋았다니 그야말로 시시한 걸 하고, 눈에만 보이는 아름다움의 시시함을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더는 부끄러워하지 않고 부러워하지 않는 ‘자신의 얼굴’을 가지라는 것. 그런 자신의 얼굴이야 말로 ‘아름다운’ 얼굴일 테니. 

 

- 컨텐츠팀 에디터 료(fololy@bandinlunis.com)


 



Trackback 0 Comment 0

[접어놓은 구절들] 박민규, 카스테라



박민규 | <카스테라> | 문학동네 | 2005

 

처음 열차가 들어오던 그 순간을 나는 잊을 수 없다. 그러니까 열차라기보다는, 공포스러울 정도의 거대한 동물이 파아, 하아, 플랫폼에 기어와 마치 구토물을 쏟아내듯 옆구리를 찢고 사람들을 토해냈다. 아아, 절로 신음이 새어나왔다. 뭔가 댐 같은 것이 무너지는 광경이었고, 눈과 귀와 코를 통해 머리 속 가득 구토물이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야! 코치 형이 고함을 질러주지 않았으면, 나는 아마도 놈의 먹이가 되었을테지. 정신이 들고 보니, 놈의 옆구리가 흥건히 고여 있던 구토물을 다시금 빨아들이고 있었다. 발전이라도 일어날 기세였다. 힘! 그때 코치 형이 고함을 질렀다. 해서, 엉겁결에―영차, 영차 무언가 물컹하거나 무언가 딱딱한 것들을 마구마구 밀어넣긴 했지만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지금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어찌 내 입으로 그것이 인류였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 박민규,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카스테라>

 

오전 7시 59분 열차가 플랫폼에 들어선다. 각 칸의 화살표 앞에 일렬로 늘어선 사람들이 열차 가까이로 다가선다. 서로들 대놓고 내색은 않지만 눈에 결기가 가득하다. 재빨리 열차에 탑승해, 곧 내릴 것 같은 이 앞에 내가 먼저 비집고 들어서고야 말겠다는 결기. 나 역시 이 대열에서 열외되지 않으려 가방끈을 꼬옥 그러쥔다. 열차가 멈춰서고, '파아, 하아'하는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린다. 이미 열차 안에는 두 정거장 전인 종착역에서부터 실려온 인파로 가득하다. 내 의지가 아니라, 뒤에 선 사람들의 우악스런 떠밀림으로 열차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정신을 차려보니 간신히 두 발을 디딜 만큼의 공간을 차지했다. 책이나 신문을 폈다가는 뜨거운 눈총을 받을 정도로 서로가 서로에게 밀착되어 있다. 날도 더운데,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싶게. 인간은 서로 최소 30센티 정도의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라고 생각해 봤자다. 30센티는 커녕 -5센티의 간격이라고 봐야 할 정도니까.

 

열차는 다음 정거장에 도착하고, 또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밀려 들어온다. '무언가 물컹하거나 무언가 딱딱한 것들'이 만져지고 느껴진다. 발 하나 다른 곳으로 옮길 수도 없으리만치 복잡한 와중에, 다른 칸으로 옮겨가겠다고 한 덩어리가 되어 열차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덜컹거리는 사람들을 뚫고 가는 이도 있다. 곱게 지나갈 리가 없다. 이 사람의 가방을, 저 사람의 등을, 저 여자의 어깨를, 저 남의 팔을 무신경하게 밀치고 간다. 사람들의 얼굴에서 웃음은 사라진 지 오래고, 미간 사이에 깊은 주름이 새겨진다. 짜증을 한숨으로 무마해보려는 시도도 불가능하다. 호흡하는 것조차도 남에게 폐가 될 마당이니까. 쓰레기 압착기 속에 들어앉은 것마냥 몸의 부피를 최소한으로 찌그러트리고, 타인과 닿는 표면적을 어떻게든 줄여보려 애를 쓰다보면 이미 출근해 열심히 일을 하겠다는 의지는 상실된다. 잘 떠지지도 않는 눈으로 공들여 한 화장은 무너져내리고, 빳빳했던 옷은 너덜너덜해졌다. 더불어 마음도 나달나달해진다.

 

그러니까 이런 출근길 지옥철의 풍경을 목도하고, 또 우리의 출근을 돕는 푸쉬맨이 '어찌 내 입으로 그것이 인류였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닌 것이다.

- 컨텐츠팀 에디터 료(fololy@bandinlunis.com)

Trackback 0 Comment 0
prev 1 2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