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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4.30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1권] - 나 아직 살아 있어요!
  2. 2010.11.15 <굴다가 연주하는 바흐> - 바흐라는 이름의 고독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1권] - 나 아직 살아 있어요!

 

 

마우리치오 폴리니 (Maurizio Pollini) |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1권] | DG | 2010  

 

월척이다!

 

얼마 전, 트위터를 비롯한 SNS상에서 활동하는 클래식 애호가들을 들썩거리게 만들었던 루머가 있었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 중 한 사람인 마우리치오 폴리니(Maurizio Pollini, 1942~)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이 그것이다. 그 발단은 폴리니의 조카로 추정되는 사람이 폴리니의 명복을 빈다는 취지의 글을 남긴 것으로 보이는데, ‘음악가의 사망‘ 뉴스는 좀처럼 틀리는 법이 없는 편인지라 많은 사람들이 폴리니의 타계소식을 듣고 영면을 기도하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어지간히 지나도 이탈리아 언론의 공식 발표가 나오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애호가와 기자들이 추적한 결과, 폴리니의 사망설은 사실 무근이었고, 그냥 ‘관심종자’가 일으킨 분란정도로 밝혀지며 일이 마무리 되었다. 만약 폴리니가 한국의 음악팬들이 그토록 바라던 내한공연 한번 하지 않고 세상을 떴다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슬퍼했을까. 불행 중 다행인 것 같다.   

 

우리가 쉬 느끼지 못할 때가 많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세계적인 음악가들의 연주를 실제로 공연장에서 듣고, 그들과 같은 시대정신과 예술계의 흐름을 공유하며  음악을 즐기는 상황은 그 자체만으로도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 아닐까 싶다. 물론 과거세대의 음악가들이 남긴 유산을 곱씹는 것도 매우 가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왜 우리에겐 푸르트뱅글러 같은 지휘자가 없는 거지?’ ‘카라얀이 다시 살아 돌아왔으면 좋겠어’ ‘글렌 굴드처럼 바흐의 평균율을 잘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는 다시는 없을 거야’ 같은 한탄을 하는 것은 정말이지 바보 같은 일이다. 우리는 그들을 추억하고 지금까지 그들의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과거세대의 거장들에게 충분히 경의를 표하고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음악가들과 그들의 음악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며, 행여 조카를 사칭해서 애먼 사람을 저승길로 보내버리는 짓 따위는 농담으로라도 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물론 프리드리히 굴다처럼 멀쩡히 살아 있으면서 자기가 죽었다며 신문에 부고를 내놓고, 찾아온 문상객들 놀래키는 짓은…… 하긴, 암만 자기가 한 짓이지만 그것도 철딱서니 없어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내 마음의 양식

 

폴리니의 오보가 전해졌을 때 사람들이 가장 아쉬워했던 것 중 하나가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2권」의 음반을 만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폴리니는 2009년에 이미 평균율 1권의 녹음을 끝내 음반으로 출시한 상태였고 많은 사람들이 그 청명한 울림에 반해 2권의 발매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레코딩을 할 때 주로 쇼팽, 슈만, 베토벤을 위주로 다루던 폴리니였지만 그의 바흐는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시대의 명반‘이라는 칭호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리히테르, 굴드, 쉬프 등의 기존 명반들과 충분히 어깨를 나란히 해도 좋은 수준이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일찍이 바흐의 평균율은 '피아노문헌의 신약성서‘라 불리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와 짝지어져 ’구약성서‘라 일컬어져왔다. 전통음악에서 사용가능한 총 24개의 조성(장조 12개, 단조12개)별로 프렐류드와 푸가가 들어있는 이 작품은 화성, 대위, 악식 등 음악의 거의 모든 요소가 바흐의 손길로 모범적이고도 담백하게, 때로는 깜짝 놀랄 정도로 웅대하게 구축되어 있어 숱한 음악가들에게 연구의 대상이 되어 왔다. 슈만은 바흐의 평균율을 평생 동안 깊이 연구했으며 후학들에게 ’일용할 양식처럼 늘 곁에 둘 것‘을 당부했다. 우리시대 바흐의 스페셜리스트 중 한 사람인 피아니스트 안스라스 쉬프는 “매일 아침 평균율로 하루를 시작한다. 마치 깨끗한 물로 샤워를 하듯이.”라며 평균율이 지닌 음악성과 생명력을 찬양했다.

 

폴리니의 평균율은 바흐 음악을 연주할 때 필수적으로 가져야 할 성부 구분능력은 물론이며 유리알을 깎아낸 듯 섬세하게 다듬어진 음색과 프레이징으로 감상자의 귀를 즐겁게 해준다. 폴리니는 모던피아노로 바흐의 건반음악을 연주하면서도 페달의 사용을 극도로 자제하고 울림의 길이에 각별한 신경을 쓰는 안드라스 쉬프나, 다소 투박한 듯 하면서도 모던피아노임을 숨기지 않고 직선적이고 두텁게 연주하는 리히테르의 중간층에 있다. 바흐시대의 건반악기보다 울림이 더 깊은 현대 피아노의 장점을 십분 이용하되 특유의 음색과 손가락 놀림으로 프레이징의 명확성과 성부의 논리적인 분리 그리고 악보의 탐구-이 부분이 가장 인상 깊다- 끝에 얻어낸 단계적인 다이내믹의 상승감은 매우 만족스럽다.

 

이 평균율 음반은 먼 훗날 시간이 흐르고 흘러 폴리니가 정말로 이 세상과 작별하게 될 때에, 그가 우리에게 남겨준 가장 큰 선물로 꼽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 전에 영감님, 부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길 기원해본다.

 

오늘의 음반을 리뷰한 '박현준'님은?
편견없이 음악을 듣고 편견없이 생각하고 싶어하는 음대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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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다가 연주하는 바흐> - 바흐라는 이름의 고독

 

프리드리히 굴다, <굴다가 연주하는 바흐>, DG, 2010


잘 알지도 못하면서

  우리가 바흐의 음악에서 얻어갈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종교적인 엄숙함? 고도로 논리 정연한 음악에서 느껴지는 지적 희열? 낭만주의 작곡가들에게서는 들을 수 없는 차분함? 어떤 것이라도 좋다.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바흐의 음악에 대해 ‘좀 따분하고 어쩐지 인간적인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오해를 가지고 있는 감상자들이 생각보다 많다고 느껴져서다. 이는 비단 애호가들의 생각만은 아닌 것 같다. 몇 해 전, 모 출판사에서 펴낸 바흐가 작곡한 ‘인벤션과 신포니아’ 악보의 서문을 본 적이 있다. 그곳에는 “…바흐의 음악은 정서에 호소하는 곡이 아니므로 리듬을 명확하게 치지 않으면 안 된다…” 라고 씌어있었다. 바흐의 음악은 정서에 호소하는 음악이 아니다? 글쎄, 물론 그 이유에 대해서는 ‘리듬을 명확하게 치기 위해’라는 전제가 깔려 있겠지만, 그동안 우리가 바흐 음악의 금욕적인 측면-특히 몇몇 교육자들에게 있어서는 가히 청교도적인-에만 포커스를 맞추고, 조금이라도 ‘즐거워’지는 기색을 보이는 바흐에 대해서는 ‘이단’취급을 내려온 것이 아닌지, 한 번쯤은 생각해 볼 일이다. 평생을 음악으로서 신을 찬미하려던 바흐지만, 그의 모든 음악이 종교음악인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나는 고발한다

 오스트리아의 피아니스트 프리드리히 굴다(Friedrich Gulda, 1930~2000)는 ‘괴짜’였다. 모든 피아니스트들이 턱시도를 입고 연주를 할 때, 그는 캐주얼한 옷에 모자를 쓰고 나타났고, 40세 때는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빈 음악 아카데미의 교육정책에 항의하는 뜻에서 자신에게 수여된 ‘베토벤 링(Beethoven Ring)'을 반납해버렸다. 1999년에는 자신이 사망했다는 부고를 신문에 내 지인들이 찾아오게 만든 뒤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나 조문객(?)들을 황당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사회적인 면에서  남다른 모습을 보인 굴다의 음악적 행보 역시 남달랐다. 젊은 시절부터 빌헬름 박하우스와 빌헬름 켐프 같은 독일-오스트리아 피아니즘의 후계자로 지목되었던 그였지만 오히려 칙 코리아, 조 자비눌 같은 재즈 아티스트들과의 연주를 즐기며 자신에 대한 기대를 일거에 날려 버렸고, 베토벤이나 바흐 같은 근엄한 레퍼토리를 연주한 뒤에는 지극히 자유분방한 자작곡의 재즈를 들려주기도 했다. 

그런 굴다가 연주하는 바흐인 만큼 자유롭다. 무게감과 이성에 초점을 두고 연주했던 다른 피아니스트들의 바흐와는 다르게 속도감이 느껴지는 선율과 명랑함이 돋보이는 리듬감이 훌륭하다. 바흐보다는 모차르트를 연상케 하는 생동감은 흡사 ‘여태껏 당신들이 연주한 바흐는 위선!’이라고 고발하듯 외치는 굴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굴다의 바흐는 초상화 속에 그려진 가발을 쓰고 답답한 옷을 입은 바흐가 아닌, 기쁠 땐 거침없이 웃고, 외로울 땐 그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울어버리는, 인간적인 모습이다. 바흐의 음악은 진지하고 담백하게 연주되어야 한다는 통념은 일생을 역발상과 반전으로 살았던 굴다 앞에서 무너지고, 그것이 우리에게는 더욱 신선한 모습의 바흐로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나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이건 내 생각인데, 바흐의 음악이 가장 잘 어울리는 시간은 하루를 시작하는 이른 아침, 그리고 노곤한 몸을 이끌고 잠자리에 들 때다. 특히 야밤에 듣는 바흐의 건반음악들은 정말로 독특한 매력을 자아낸다. 베토벤을 비롯한 고전-낭만시대의 작곡가들과 달리 바흐의 음악은 선(線)적인 매력들로 가득한데, 흡사 복잡하게 엉켜있는 여러 가닥의 실타래를 풀어가는 기분이다. 베토벤이나 쇼팽처럼 왼손의 화음이 음악의 표정을 결정짓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 바흐의 건반음악은, 따로 노는 것 같은 두 개 이상의 선율들이 합쳐졌다 떨어졌다 하면서 주제의 단편적인 반복과 변주들이 만들어내는 아기자기함, 세련미가 일품이다. 특히 바로크 시대에 단조(minor)로 작곡된 곡들이 풍기는 멜랑콜리는 다른 시대의 곡들에서 들을 수 없는 단아하고 고풍스러운 매력이 있다. 

 그 매력은 뭐랄까,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도시의 야경을 생각나게 한다. 건물과 다리가 뿜어내는 휘황찬란한 불빛들과 명멸하는 네온사인들, 퇴근길 교통체증에 빼곡히 서있는 자동차들의 헤드라이트와 오렌지빛 가로등불…. 그 어떤 낮의 풍경보다 환해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고 지쳐 보이는 도시의 밤은 바흐의 음악을 닮아있다. 겉으로는 화려한 대위법들의 향연이겠지만 따로 떼어놓으면 무소의 뿔처럼 홀로 남아 종지를 향해 달려가야  하는 외로운 선율들이라 그런 것일까. 300년 전의 바흐의 음악은 그렇게 군중속의 고독을 느끼는 현대인을 감싸주고 있었다.
 

 

굴다가 연주하는 Doors, <Light My Fire> 보러가기

오늘의 책을 리뷰한 '박현준'님은? 
음악대학에서 작곡을 공부하고 있으며 지금은 공익근무요원으로서 어정쩡한 신분의 삶을 살고 있는 남자입니다. 남의 연주에 대해 끼적이는 걸 좋아하면서도 음악을 공부하며 생긴 어정쩡한 동업자 정신 탓에 나쁜 연주를 나쁜 연주라 쉽사리 말하지 못하는, 암튼 정체가 수상한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트위터 http://twitter.com/brahms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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