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14.12.17 《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 - 나의 바다야
  2. 2011.07.27 [詩로 물드는 오후] 김춘성, 마음
  3. 2010.07.12 <드뷔시: 관현악곡 전집> - 드뷔시의 바다
  4. 2009.12.17 <나는 여기가 좋다> - 책 사이로 퍼져나오는 바다 냄새
  5. 2009.07.13 꿈의 파고로.. 바다를 꿈꾸다
  6. 2009.06.19 살구꽃이 돌아왔다 - 시와 자연과 나의 교감

《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 - 나의 바다야

 

 

한창훈 | 《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 | 문학동네 | 2014

 

바다에 가면 눈이 떠졌다. 어딜 둘러봐도 사방은 건물뿐인 도시에서는 눈이 쉴 곳이 없다. 바다에 서서 파란빛을 보고 있으면, 하늘이 바다 같기도 했고 바다가 하늘 같기도 했다. 구름에서 수영을 하는 것은 사람들의 오랜 상상이었다. 나는 구름에서 수영을 하면 바다가 하늘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란 그렇게 물구나무서기와 같은 모습이었다. 육지의 고기보다 나는 바다에서 나는 고기를 좋아한다. 생선은 제철에 꼭 먹어줘야 하는 의무감 비슷한 것도 있다. 특히 씹으면 바다 맛이 나는 굴이나 멍게를 즐긴다. 바다의 젖을 먹고 자란 생물은 바다를 온전히 품고 있다. 나는 바다의 맛을 보며, 바다에 대한 그리움을 대신했다. 하지만 스스로 바다에 살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문화의 혜택에 익숙해져 있고, 정 외로우면 집 앞 카페에 가서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 상대적으로 문화의 혜택이 적고, 황량함 속에서 파란빛의 풍요에만 만족할 수 있을지 자신은 없다. 바다는 그저, 가끔 찾아서 좋은 곳일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은 바다에서 태어나 쭉 자라고 바다에서 죽는다. 보통 그런 사람을 가리켜 어부라고 부르지만, 그건 너무 단순한 일반화의 오류다. 시인도 바다에서 태어나 바다에서 자라고 바다에서 죽을 수 있고, 소설가도 그렇고, 그냥 모두가 그럴 수 있다. 바다와 벗한 사람들은 외로움을 어떻게 견디고 사는 것일까. 어쩌면 그런 사람들은 외로움이 체질인 채 길러졌을 거라고, 나는 쉽게 추측한다.

 

쓸쓸함은 환경의 문제만은 아니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유쾌하고 즐거운, 흥분되고 기대되는, 어쩌다 생기는 짧은 그 시간을 제외하고는 늘 쓸쓸하고 외롭다는 것. 인류는 그것을 느끼고 자각하게끔 진화되어왔다. (68쪽)

 

제주에 가서 살고 싶은 바람을 넌지시 내비쳤을 때, 제주 생활 2년 차인 지인이 내게 말했다. 토박이나 다른 곳에서 온 이주자들이나 많은 사람이 술병을 얻는다. 토박이들은 오로지 술로 외로움을 달랠 줄을 알고, 이주자들은 이질감과 갑자기 마주한 고독의 파도를 달래려 술을 마신다. 정착한 지 일주일이 지나면 바다는 감동이 아니라 일상이 되고, 눈부시던 황혼도 일상적인 풍경이 된다. 매일 보는 것이 매일 감동적이라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그 말에 나는 제주를 향한 열병을 조금은 해소했다. 이방인이기에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을 생활의 지겨움으로 바꾸고 싶지는 않았다. 가진 것을 놓을 준비가 충분히 안 된 것이다. 그저, 좋은 것만 보고 부러움과 시기를 하는 것뿐이다.

 

그것이 무슨 얘기인지 쉽게 알 수 없다면, 한창훈 작가의 책이 도움된다. 바다에서 나고 자란 그는 다시 바다로 돌아가 외로움과 친구가 됐다. 가끔 배를 타고 아주 멀리 나가기도 한다. 자고 일어나도 바다다. 그 속에서 그는 고래와 북극곰과 말도 하면서 외로움을 달래본다. 다만, 그것은 달랠 길 없는 속병이다. 알면서도 자처하는 그야말로 외로움이 체질인 사람으로 길러진 작가다.

 

어쩌면 스며든 게 아니라 포획 당했을 수도 있다. 바닷가에서 볼품없이 홀로 이러고 있는 모습이 잡혀버린 고기와 크게 다를 게 없으니까. 그렇다면 이곳은 감옥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곳이다. 술도 마시게 해준다. 그래서 스스로 갇혀 있는지도 모르겠다. (73쪽)

 

알면서도 새삼 그의 삶이 질투가 나는 것은 해 보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일 뿐이다. 그렇게 외로울 수 있을까. 외로움이 그리워서 또다시 외로울 수 있는 건 그렇게 길러진 사람만이 선택할 수 있는 특권이다. 작가의 글로 그 특권을 조금이나마 짐작해 본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 해 평균 두 번 정도 바다를 찾는다고 한다. 애인과 헤어지고, 시험에 실패하고, 사업 망하고, 또는 그저 놀려고 온다. 뭐 그런 이유 아니라도 툭하면 바다로 간다. 왜 영화나 소설도 마무리가 어중간하면 바다가 보고 싶어, 운운하다가 찾아가는 것으로 끝나지 않던가. 바다로 간다고 하면 적당히 용서된다. 그렇게들 와서 뭔가를 슬그머니 내려놓고 간다. 원망이나 절망, 집착, 또는 지루함 같은 것들인데, 그런 것들은 살면서 또 쌓이기에 다시 오게 된다. 우리에게 던져진 숙명은 근심이니까. 버림받은 것들이 스며드는 게 바다이다. 수심 4천 미터 이곳 아래에도 숱한 사연들이 떠다닐 것이다. (113쪽)

 

그는 오늘도 바다에서 술을 마실 것이다. 안주는 제철에 잡힌 좋은 고기가 아니라 잡어로 만족하고. 조만간 얻게 될지도 모를 술병을 걱정하지만, 역시 술을 마실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만족할 것이다. 몸이 시리다. 아직 상처적 체질로 다져지지 않은 나는, 그냥 여기서 눈을 돌린다.

 

저 거대한 바다와 단둘이 있으면 사람이 상한다. 산은 품어주지만 바다는 그렇지 않는다. 그저 돌출시켜놓기만 한다. 견디는 것 외에는 아무런 방법이 없게 만든다. 견딘다는 것은 에너지를 허무하게 써버린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안 할 수 없다. 태어났으니 살 수밖에 없는 것처럼. (284쪽)

 

오늘의 책을 리뷰한 ’앨리스’님은?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살며 책을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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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물드는 오후] 김춘성, 마음


 


김춘성 | <서 있는 달> | 청어 | 2011

 

마음

 

바다에 와

끝을 보면

너무한 끝없음에

미어져오고

막막해진다

 

저 먼 끝

그 너머에까지

바다는 속절없고

 

까맣게 이어진 깊은 속

바닥 끝에는

무엇이 앉아 도사릴까

 

바다는

사는 것에서부터

죽는 것까지

모두를 안고 있다

 

마음이다 

 

- 김춘성, <서 있는 달>

 

수평으로도, 수직으로도 끝을 가늠할 수 없는 바다를 보면 그 무한한 넓이를, 부피를 채우고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살랑살랑 지느러미를 흔들며 그 속을 유영할 물고기들, 지상의 나무처럼 뿌리를 내리고 굳건히 자리를 지키는 산호초들, 그 사이를 떼지어 돌아다니는 미생물들. 온통 살아서 흔들리는 것들을 떠올렸었다. 그런데 '바다는 사는 것에서부터 죽는 것까지 모두를 안고 있다'고 한다. 땅 위에서 죽은 것들은 묻히거나, 태워진다. 바다 속의 생명들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여전히 바다에 있다. 바다에서의 삶이 다하면, 그들은 그때 바다의 끝을 알 수 있게 되는 걸까. 누구도 본 적이 없는 바다의 검은(혹은 검다고 짐작되는) 바닥을 보게 되는 걸까. 산 것들도, 죽은 것들도 모두 끌어 안고 사는 바다의 끝에는, 바다의 바닥에는 따뜻하고 말랑한 마음이 있을 것이다.

 

- 컨텐츠팀 에디터 료(fololy@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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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뷔시: 관현악곡 전집> - 드뷔시의 바다


뒤트와, 앙세르메, 샤이 등, <드뷔시: 관현악곡 전집>, DECCA COLLECTORS, 2004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어느덧 7월, 여름은 정말 여름이다. 장맛비 소식도 들려오고 찜통 같은 날씨는 사람들의 불쾌지수를 한껏 높인다. 이때쯤 되면 사람들은 저마다의 휴가를 꿈꾸며 바다나 계곡 같은 시원한 곳으로 도망칠(?) 생각을 하게 된다. 마음 같아선 ‘배째라’ 정신으로 6,7,8월 세 달 동안 모조리 휴가를 내고 싶지만, 자신의 30년 앞날을 위해서 참아야만 하는 분들을 위해, 이번에는 귀로 들을 수 있는 바다에 대해 써보려 한다. 프랑스의 작곡가 드뷔시(Achille Claude Debussy)가 1905년에 작곡한「관현악을 위한 3개의 교향적 소묘-바다」는 그 다채로운 관현악법을 통해, 듣는 이들에게 바다의 인상을 불러일으키는 멋진 작품이다. 4명의 지휘자가 각기 다른 스타일로 그려낸 바다는 어떤 느낌들일까?  

크레셴도와 데크레셴도, 사진과 그림
     
 

                  헤베르트 폰 카라얀                VS                  샤를 뒤투와

    


독일의 평론가이자 음악학자인 파울 베커는 프랑스 스타일의 오케스트라를 대략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
독일식의 힘찬 소리가 아닌 가늘고 기름기 없는 금관, 다소 뒤로 밀려난 바이올린군독일식 오케스트라의 크레셴도(점점 크게)와는 다른 데크레셴도(점점 여리게)의 오케스트라드뷔시의 절정은 소멸, 해체, 감소의 이미지이다…”

즉, 프랑스 레퍼토리에 맞는 오케스트라의 스타일은 크고 꽉 찬, 억센 소리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악기 각각의 색채를 충분히 살려 여운을 남기듯 아스라이 사라지는 스타일인 것이다.

너무나도 프랑스적인 이 곡을 두고 상반된 해석을 내놓은 두 지휘자가 있다. 독일-오스트리아 계통의 레퍼토리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연출력과 기본기에서 쉬 범접할 수 없는 압도적 위력을 보여주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과, 생존한 지휘자들 중에서 프랑스 레퍼토리에 있어서는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샤를 뒤투아가 그들이다.

어떤 곡을 연주하더라도 일정 수준 이상의 퀄리티를 보장하는 카라얀은 과연 ‘능력자’답게 이 까다로운 곡을 전혀 어렵지 않은 듯 요리해나간다. 하지만 카라얀과 베를린 필의 조합에서 느껴지는 체취는 매우 강렬해서 이 곡을 드뷔시의 작품이라기보다는, 거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거대한 교향시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타악기와 금관이 광활한 울림으로 공간을 만들어 놓으면, 압도적인 음색의 현악기들과 목관이 거대한 독일식의 소노리티로 ‘바다’를 -아마 드뷔시도 상상하지 못했을-그 위에 펼쳐낸다. 하지만 무게감 있는 음악에서 강세를 보이던 오케스트라의 한계인지, 순발력을 필요로 하는 제 2곡 ‘바다의 희롱’에서는 다른 연주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민첩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부분적으로 필요한 ‘치고 빠지는 센스’가 느껴지지 않기도 한다.

반면 뒤투아와 몬트리올 심포니 연주는 앞서 말한 ‘프랑스적 오케스트라’의 미덕을 충분히 살려낸다. 만약 카라얀의 연주를 먼저 듣고 난 뒤 뒤투아의 연주를 듣는다면 그의 포르티시모는 카라얀의 그것보다 싱거운, 불완전 연소에 가깝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뒤투아의 연주는 청각으로 느낄 수 있는 물결의 희롱과 색채감을 아낌없이 보여준다. 1곡의 피날레를 티슈 홑겹이 하늘하늘 떨어지듯이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데크레셴도로 마무리하는 뒤투아의 손길은 숱한 지휘자들 중에서 왜 그가 프랑스계 음악의 적자로 인정받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기도 하다. 음반 재킷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역동적이고 사실적인 사진으로 바다를 ‘보여주는’ 카라얀과 오묘한 터치의 유화로 바다를 ‘그려낸’ 뒤투아의 대결인 셈이다. 


뜨거운 바다와 에메랄드빛 바다
   

 

                          장 마르티농                  VS            클라우디오 아바도 

    

          
프랑스 레퍼토리 지휘의 계보는 앙세르메-마르티농에서 뒤투아, 아바도 등으로 이어지며, 최근에는 정명훈의 연주도 상당한 호평을 받고 있다. 프랑스의 지휘자 장 마르티농(Jean Martinon,1910~1976)은 작곡과 지휘를 겸했던 사람으로서, 수많은 프랑스 관현악곡들을 녹음으로 남겨 놓았다. 특히 프랑스 국립 방송교향악단(이하 ORTF)과의 연주들이 상당히 뛰어난데, EMI에서 2장의 CD에 드뷔시의 중요 관현악 작품을 모아놓은 '제미니 시리즈‘의 일환으로「바다」역시 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

르티농의 바다는 뜨겁고 격렬하다. 폭풍우가 몰아치며 뇌성이 울리는 바다를 보는 느낌인데, 뒤투아의 연주와 비교해 들어보면 좋은 비교가 될 듯싶다. 마르티농은 단순한 스코어의 재현에서 그치지 않고 매우 적극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오케스트라에 불어넣으려 노력하며, ORTF 오케스트라 역시 이에 적극적으로 반응한다. 습기 찬 여름날처럼 끈적거리는 현과 광폭하게 울리는 타악기의 어택이 상당히 인상적인 연주이다. 특기할 점은 마르티농이 이 녹음에서 사용한 1909년의 개정판 악보이다. 상당수 녹음에서 선택한 1905년판과는 달리 1909년판에서는 작곡가의 지시에 따라 마지막 3번째 곡의 코다 부분에서 트럼펫의 반음계 선율이 제거된 연주를 들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최근에 발매되었으며 이전 세대의 훌륭한 녹음들의 아성을 깰 수 있는 연주를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우리시대의 거장,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자신의 수족과도 같은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함께 2003년 루체른 페스티벌에서 연주한 실황음반이다. 세계각지의 정상급 연주자들을 파트별로 모아서 조직한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답게 출중한 기본기를 소유한 그들은, 다른 연주에서는 밋밋하게 처리된 솔로 패시지도 매우 아름답게 연주해낸다. 또한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에서 자칫하면 간과될 수 있는 앙상블의 밀도나 정교함 면에서도 매우 높은 수준에 올라서 있다. 이들을 이끌어가는 백전노장 아바도의 솜씨는 더욱 기막히다. 바닥이 보이는 태평양의 에메랄드빛 바다처럼 악기군의 특성이 속속들이 드러나는 투명한 사운드와 정교한 밸런스는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청각적 호사를 제공한다. 특히 타 녹음에서는 들리지 않던 목관악기의 소리가 상당히 선명하게 들리는 색다름도 만끽할 수 있으며, 이러한 디테일에서의 강점들을 발판삼아 마지막 3곡에서 피날레를 향해 큰 그림을 그리며 달려가는 긴장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준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박현준'님은? 
음악대학에서 작곡을 공부하고 있으며 지금은 공익근무요원으로서 어정쩡한 신분의 삶을 살고 있는 남자입니다. 남의 연주에 대해 끼적이는 걸 좋아하면서도 음악을 공부하며 생긴 어정쩡한 동업자 정신 탓에 나쁜 연주를 나쁜 연주라 쉽사리 말하지 못하는, 암튼 정체가 수상한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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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기가 좋다> - 책 사이로 퍼져나오는 바다 냄새

 

한창훈, <나는 여기가 좋다>, 문학동네, 2009


바다 냄새가 나는 사람이라 했다. 그 이름만 들어도 바다가 떠오르는 사람이라 했다, 한창훈 작가는. 늘 그리움으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바다의 이미지가 있고, 코끝에 스치는 바다 냄새를 좋아하는 나는 그래서 더욱 이 작가의 책을 만나보고 싶었다. 어떤 글을 쓰는 사람이기에 그 글에서 바다 냄새가 날까 궁금했다.

책 표지에서부터 바다를 선사해 준 이 책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가득 바다가 펼쳐져 있다. 이 책을 중간쯤 읽었을 때 강원도로 가족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우리의 목적지는 깊숙한 산 속이었지만 오가는 길에 바다에 들른다 했다. ‘바다’라는 말을 듣자마자 망설임 없이 이 책을 챙겨 들었다. 혼자 가는 여행도 아니고 가족 여행인데, 책 읽을 시간이 있을까 싶었지만 왠지 함께 가고 싶었다. 함께 바다를 보고 싶었다.(결국 여행지에서 책은 몇 장 읽지 못했다.) 그 여행길에서 두 군데의 바다에 들렀다. 그리고 바다를 바라보며 나는 이 책을 떠올렸다. 오합지졸로 밀려오는 파도와 저 멀리 떠있는 섬을 보며 이 책의 표지를 떠올렸고, 이 소설 속 사람들처럼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이 책에는 모두 여덟 편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다. ‘여덟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 한 편 한 편, 모든 글이 거센 해일이 되어 내 마음을 덮쳤다. 표제작인 ‘나는 여기가 좋다’의 첫 장부터 내 가슴은 콩닥콩닥 뛰기 시작하여, 몇 장 읽어나가기도 전에 나는 이미 이 ‘한창훈’이라는 ‘바다’에 풍덩 빠져버렸다.

한 평생 섬 사나이로 살아온 남자와 이제는 그 섬을 떠나려 하는 아내의 갈등을 어두운 밤바다를 배경으로 그려낸 ‘나는 여기가 좋다’, 식당집 여인네의 아련한 사랑 이야기를 엿들을 수 있는 ‘밤눈’, 사랑이 까딱하면 성매매가 될 뻔한 섬마을 다방 아가씨와 섬 총각의 ‘올 라인 네코’, 젊은 시절 바다에서 목숨을 잃은 친구의 제사에 일흔이 넘어서야 처음으로 찾아온 노인의 ‘바람이 전하는 말’….

그리고 오랫동안 가슴에 묻어두었던 이야기 털어내고 몸도 마음도 가벼워진 ‘가장 가벼운 생’, 자살을 하러 바다에 찾아온 여인과 그 죽음을 도와주기로 한 섬 사나이의 ‘섬에서 자전거 타기’, 말도 많고 탈도 많고 그만큼 재미도 많았던 ‘삼도노인회 제주 여행기’, 아들을 뭍으로 내보내고 싶은 아버지와 기어이 꾸역꾸역 섬으로 되돌아온 아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아버지와 아들’. 이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었음에 무척이나 감사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책에 가득한 사투리도 일품이다. 책을 읽고 나서 ‘후유증’이 하나 생겼다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사투리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 학창 시절에 10년 가까이 시골에 살면서도 사투리를 제대로 익히지(?) 못했던 나인데, 어째 이 책 한 권으로 그렇게 빨리 사투리를 습득할 수 있었는지! 마누라가 이삐믄 처갓집 말뚝에다 대고도 절을 한다 해싸트만, 책이 좋응께 사투리도 기양 지절로 익혀져뿌리네!(?)

유난히 인상적인 대사가 하나 있었는데(이미 이 책을 읽은 많은 이들이 이 대사를 마음에 담았을 듯!) 바로 이 한 마디.

“올 라인 네코!”


나를 얽어매는 모든 구속을 풀어주는 듯한 이 주문이 나도 모르게 불쑥불쑥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인자 배를 출발할 것잉께 줄을 다 걷어내라’. 이제 나라는 배도 내가 원하는 곳으로 출발할 것이니까 나를 묶고 있는 줄을 다 걷어내자! 올 라인 네코! (주의 : 애인 앞에서 사용하면 순식간에 므흣한 단어로 변하는 수가 있음)

여하튼 결론은,
나는 이 책이 좋다!!

 “난 전생에 뭔가 큰 죄를 졌어라우.”
그녀는 깊은 밤바다를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무슨 말인가.”
“섬에서 태어났응께.”
...

“내 평생 생각한 것이, 내가 왜 섬에서 태어났을까 하는 것이요. 죄를 지어 벌을 받았다는 것 말고는 해답이 안 나왔소.”
“그러면 여기서 죄갚음 한다고 생각하면 되잖어.”
“그 죄가 기억이 나믄 좋겄소. 기억에 없으니 억울하요.”

(‘나는 여기가 좋다’ 중에서.)

오늘의 책을 리뷰한 ‘원주님’은?
책이 좋아 책과 함께 하는 삶을 꿈꾸다가 번역의 길에 들어선 병아리 번역가입니다. 애석하게도 지금은 책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일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꼭 제 손으로 번역한 중국 문학을 국내에 소개하는 게 꿈입니다.

[<나는 여기가 좋다>는 굼실이님이 나감책으로 선정한 책입니다. 굼실이님 나감책 보기(클릭!)]
[<나는 여기가 좋다>는 원주님이 또 나감책으로 선정한 책입니다. 원주님 나감책 보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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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파고로.. 바다를 꿈꾸다



‘사진에 기대어 詩를 보다’ 세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주말 비가 참 많이도 왔지요. 내리고 내려도 멈출 줄 비를 바라보며, 인간의 무력함을 느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잠수교가 얼마 잠겼다’ ‘어디에 어떤 피해가 있다’ 등 물에 가득찬 세상을 숨 가쁘게 전달하는 게 다겠지요. 자연의 거대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거스르지 않고, 같은 방향으로 숨을 쉬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 함께 볼 시는 김인구 님의 ‘바다의 친구에게’입니다. 화자는 ‘바다가 되고 싶었다’고 고백을 합니다. 고통을 흘려보내고, 꿈의 파고로 출렁이고... 하지만 ‘싶었다’는 말 속에는 지금은 이루지 못한, 깊은 회한이 묻어납니다. 특히 친구(그대)의 바다가 되고 싶었다고 하는데, 그 친구는 바다가 되지 못한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요. 함께 감상하시죠. ‘사진에 기대어 詩를 보다’는 반디앤루니스 종로타워점에서 21일까지 펼쳐집니다. 

   


바다의 친구에게


친구야,

나는 바다가 되고 싶었다

그대의 진한 고통의 향

모두 흘려 버릴 수 있는

수심의 바다이고 싶었다

부질없는 죽음이란

얼마나 큰 일상의 기만인가

그냥 해초처럼 흔들리는 바다,

꿈의 파고로 출렁이는 바다이고 싶었다

그대의 축제 속에 웅크리고 숨어있는

슬픔의 비밀 모두 떨치어 내고 돌아앉은

그대만의 바다이고 싶었다

목숨의 유희란 얼마나 덧없이

우리를 조롱하며 지날때가 많은가

눈물 속에서도 한 획으로 치솟는

그대만의 축배이고 싶었다


<시: 김인구 / 사진 이종철>

[전시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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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꽃이 돌아왔다 - 시와 자연과 나의 교감

 

김선태, <살구꽃이 돌아왔다>, 창비, 2009


살구꽃이 돌아왔다. 꽃은 어디로 갔길래 다시 돌아왔을까.

“죽으면 살구나무 아래 묻어달라던 계집아이는 이내 파리한 얼굴로 병마를 따라갔다 살구꽃 이파리들이 혈담처럼 지던 봄날이었다 살구꽃 필 때 낳았다 하여 행화, 그래서인지 유독 살구꽃을 좋아했던 아이, 행화야 부르면 이름 대신 살구꽃을 내밀며 환히 웃던 아이는 결국 다시 살구나무 아래로 돌아갔다 (…) 해마다 어김없이 살구꽃이 필 때면 마을 사람들은 언덕을 바라보며 말했다. 행화가 돌아왔다고” (p. 19, ‘행화’)

김선태 시인의 <살구꽃이 돌아왔다>는 이렇듯 삶과 죽음, 정(靜)과 동(動)의 교차에서 시작된다. “삶과 죽음이 한통속”임을 목격한 티베트 여인의 장례식(‘조장’), 벌새의 움직임 속에서 발견한 “꽃과 새가 서로의 몸과 마음을 황홀하게 드나드는 저 눈부신 교감”(‘벌새’)은 세상 만물이 둘이 아닌 하나임을 알려준다. 이처럼 시인은 세상과 자연을 응시하며 이치(理致)를 하나둘 체득한다. 

시인의 눈은 다시 세상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눈은 먼 곳으로 달려가지 않는다. 시인이 바라본 것은 ‘굴곡진 해안선’, ‘가난한 선원들이 모여사는 목포 은금동’, ‘쌀 한톨 나지 않는 서해 어느 섬마을’이다. 물론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혹은 지인들과 소주 한 잔 비우기 위해 찾은 횟집도 시인의 말 놀이터다. “살이 귀하던 시절, 죽기 전 흰쌀밥 한 그릇 먹어보길 소원한 아비에게 대신 지어올려 효도했다는 쭈꾸미 쌀밥”(‘쭈꾸미 쌀밥’) “저 화사한 꽃잎 한점씩 따먹으면 / 입안 가득 싱싱한 맛 다디단 맛 / 그러나 뼈만 남은 꽃받침 보면 / 왠지 마음도 쓰린 // 숭어회꽃이다.”(‘숭어회꽃’)

시인과 말, 사유놀이를 하다 보면 ‘관능적인 저릿함’을 느낄 수 있다. ‘개불’, ‘조개 야담’ 시리즈, ‘관음’ 시리즈가 그 대표적인 예다. 

“삶을 때 우러나는 뽀얗고 시원한 국물과 담백하고도 쫄깃한 육질은 그만이지요. 게다가 벌어진 가랑이 사이로 그러나는 발그레한 명기(名器)와 예봉(銳鋒)에 터까지 수북하게 돋아 있으니 뭍 사내들이 군침을 흘릴 수밖에요.” (p. 67, ‘조개 야담 1-홍합’) 

“인적 드문 무더운 여름밤 / 홀딱 벗고 섬진강에서 낚시를 하다, 얕은 물속에 드러누워 꼿꼿하게 낚싯대를 세우고 유유자적하다, (…) 그때 마침 물고기까지 물고 늘어져선 낚싯대가 팽팽하게 휘어지며 끄덕, / 끄덕거리던 일이여” (p. 74, ‘관음3’)

어물전 한 편에서 벌어진 술판에서나 나올 법한 농이다. 하지만 지천명(知天命)의 사내가 이런 농 한 번 못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많은 ‘나’(독자) 앞에서 노래하고, 한 판 웃자는 시인은 순수하고, 건강하다. 또 ‘아마추어 낚시꾼 김씨’를 통해 들려주는 시인의 유머는 유쾌하다.

“감성돔 30쎈티미터였다 야호, 1등이다 감격에 겨운 김씨, / 은빛 감성돔을 두 손에 움켜쥐고 펄쩍펄쩍 뛰는데, / 이게 웬일, 아까부터 나뭇가지에 앉아 있던 물수리 한 마리가 / 쏜살같이 날아와 홱, 낚아채 사라지는 것 아닌가, 저런 // 1등을 도둑맞고 졸지에 꼴등이 된 김씨, / 한동안 우두커니 선 채로 허공만 바라보며 쓴 웃음을 짓더니 / “허허, 오늘 낚시도 허사로구만” / “오늘 1등은 허사도 물수리야” / 글쎄, 이렇게 투덜거리는 것이었다” (p. 86, ‘낚시 이야기1’)

시인은 서해 바다를 이리 저리 거닐며 생명의 경이로움을 노래하기도 하고, 짓궂은 상상력으로 농을 던지기도 한다. 그런데 시인과의 여행은 가볍지도, 그리 험하지 않다. 시인의 시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면 시인이 어디에 앉아(혹은 서) 무엇을 응시하고 있는지 대충 짐작이 간다. 시인의 시선과 ‘나’의 시선이 일치에서 오는 짜릿함은 시인이 ‘나’의 손목을 잡고 서해 바다 어딘가를 여행하는 기분이다. 언젠가 시인과 소주 한 잔 들이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이는 아마 시인과 세상, 자연이 교감하는 방식이 그런 터이다. 삶과 죽음을 관통한 시인이 주저할 게 무엇이랴. 세상, 자연 - 시인- ‘나’의 교감은 이렇게 완성된다.

달빛 쟁쟁한 밤
천관산 정상 너럭바위에
너를 눕히고
혼신을 다해
절정에 도달하는
순간,

달빛과 별빛
풀잎이며 나뭇잎
다도해 잔물결까지도
바르르
몸을 떤다

문득
삼라만상이
저토록 짜릿짜릿하다
(p. 76,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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