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14.12.30 《50일 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 - 미술을 알면 즐겁지 아니한가
  2. 2013.05.06 [사이언스 북 카페] 이소영, 《실험실의 명화》
  3. 2012.08.06 [사이언스 북 카페] 김해심·존 K. 그란데, 《자연의 미술가》
  4. 2011.09.28 <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 - 화가의 꿈, 인간의 욕망
  5. 2011.09.01 <샤넬, 미술관에 가다> - 작품을 한올한올 뜯어보다
  6. 2009.09.15 고흐의 구두 내발에 맞을까? - <나는 오늘 고흐의 구두를 신는다>

《50일 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 - 미술을 알면 즐겁지 아니한가

 

 

 

이주헌 | 《50일 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 》 | 학고재 | 2010

 

그러니까 이 책이 출간된 해는 1995년이다. 잘 만들어진 책 한 권이 20여 년이라는 시간 동안 여러 세대에 걸쳐 끊임없이 사랑받고 있다니 정말이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내가 이 책을 친구에게 처음 선물 받은 1998년의 책 표지가 이제는 좀 더 세련되게 변했지만 말이다. 고리타분한 이야기지만 이 책이 나온 후 20년 동안 미술계는 정말이지 많은 것들이 변했다.

그간 서울은 아시아에서 가장 '핫' 하다는 예술 도시로 자리 잡았다. 조용히 전시 관람만 하던 미술관 또한 많은 변화를 꾀했는데,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관람객을 적극적으로 맞이하는가 하면 몇몇 전시는 엄청나게 긴 줄을 서지 않으면 들어가지 못하는 진풍경을 자아내기도 한다. 그 어느 때보다 청소년과 대학생 관람객이 부쩍 많아진 것도 주목할 만한 변화 중 하나다.

이제 미술관의 모든 정보는 스마트 폰을 이용해 국내외 가리지 않고 빠르고 쉽게 얻을 수 있다.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도서관에서나 빌릴 수 있던 화보집, 잡지나 달력에 실린 이미지만으로 미술 작품을 감상해왔는데…. 그때 내게 처음으로 예술 작품을 직접 마주하게 하고 '미술관에서 온전히 하루를 보내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행복한 상상을 심어준 책이 바로 이주헌 씨가 쓴《50일 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이다.

지금이야 특별할 것 없는 배낭여행이지만《먼 나라 이웃 나라》를 읽고 자란 나는, 막연하게나마 유럽 문화를 동경하곤 했었다. 그러던 내게 50일 동안 기차를 타고 국경을 넘으며 지도 한 장 들고 찾아 나선 서른 개의 미술관 체험기는 큰 설렘을 안겨 주기 충분했다. 당시 미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이십 대 초반의 내게 번역체로 쓰인 예술 서적이 아닌 기행문 형식의 이 책은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유럽의 역사적인 배경 설명부터 작품의 숨은 뒷이야기, 기존에 볼 수 없던 작가의 위트가 담긴 설명과 세상에 없는 작가들과의 인터뷰 등 예술사조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는 작품을 쉽게, 그리고 더 깊게 알고 싶다는 열정을 갖게 하였다. 더불어 작가가 유스호스텔이나 현지 민박을 이용하면서 겪은 재미있는 문화 체험은 또 하나의 읽는 즐거움을 더해 주었다.

이후 나는 처음으로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을 찾아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보며 하염없이 서 있을 때, 유럽에서 미술학도가 되어 여러 미술관을 방문할 때에도 늘 이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우리에게 익숙한 고흐나 로댕, 피카소의 작품들은 책을 통해 또 다른 아름다움과 친근함 그리고 행복한 기억으로 내게 다가온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세월이 변한 만큼 현재 미술의 흐름도 많이 변했다. 책 속에 나와 있는 런던 테이트 갤러리는 테이트 브리튼으로 명칭을 바꾸었고, 테이트 모던, 테이트 리버풀 등 덩치가 엄청나게 커졌다. 런던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 시장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미술관 큐레이터로 일하면서 항상 동시대 미술의 변화에 촉각을 맞춘다. 그러다 보니 매번 새로운 경향과 작가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즐기기보다 어쩔 수 없이 분석적으로 접근하곤 한다. 그럴 때면 가끔 그림 한 점이 나에게 주었던 감동, 위로, 행복한 감정들을 잊을 때가 많다.

그때마다 이 책을 꺼내어 보곤 한다. 10년의 유학 생활을 함께하고, 또 몇 번의 이사를 거쳤음에도 나의 서재에 여전히 그대로 꽂혀있는 이 책은 내게 처음으로 예술작품이 전하는 설렘을 느끼게 해주었고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길에 길잡이였음을, '처음'을 빌어 많은 이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다.


좋은 책과 서평을 나누고자 반디앤루니스 '오늘의 책'을 펜벗과 함께 만들어 갑니다.

펜벗이란 서평을 쓰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를 의미합니다.

매주 월요일, 성실한 서평으로 찾아뵙겠습니다.

12월의 서평 주제는 '처음'입니다. 셀 수 없이 많은 각자의 '처음'을 책과 함께 떠올려 보세요.

'오늘의 처음'으로 생생히 떠오르길 바랍니다.

│ 명예 펜벗 일문일답

대림 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권정민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소개 한마디.


저는 대림미술관 수석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어요. 현재 폴 매카트니의 아내이자 모든 뮤지션들의 뮤즈였던 사진가 린다 매카트니(Linda McCartney)의 회고전 ‘생애 가장 따뜻한 날들의 기록’을 선보이고 있죠. 내년 여름에 선보이게 될 덴마크 패션 디자이너 헨릭 빕스코브(Henrik Vibskov)의 전시를 준비 중이기도 해요.

《50일 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을 읽으며 특별히 기억 남는 부분은?

작가가 대영 박물관에 가서 전시물을 소개한 부분이 기억 남아요. 이집트 장지 예술의 대가, 임헤티프와 앗시리아 파르테논 신전의 미술감독 페이디아스가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고대 예술품들을 설명한 부분인데 자칫 따분할 수 있는 고대 예술을 생생하고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 있게 했죠.

하고 있는 일과 책과의 관계. 책을 통해 어떤 도움을 받는지.


대개 전공 서적 위주로 많은 연구가 이뤄지지만, 제가 일하는 대림미술관의 모토 ‘일상이 예술이 되는 미술관’이라는 비전에 맞춰 폭넓은 전시 연구를 위해,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있어요. 책에서 만나는 내가 알지 못했던 정보들을 통해, 생각지 못했던 전시 콘텐츠를 찾기도 하고 또 전시 구성을 하는 데 도움을 받기도 해요.

기고 활동이 활발한데, 책 읽기뿐 아니라 글쓰기 자체에도 관심이 많은지.


현재는 예술과 디자인에 관련한 글이나 큐레이터의 경험을 소개하는 종류의 원고를 청탁받아 글을 써요. 사실 공부 하던 시절에는 한 달에 짧게나마 전시 평론을 10개 정도 쓰던 때도 있었죠. 물론 지금은 그 정도 양의 글을 쓸 수 있는 시간도 없지만, 시간이 허락하는 한 열심히 글을 쓰려고 노력 중이에요.

요즘 읽고 있는 책은?


일하지 않는 시간에는 보통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요. 주로 소설을 읽죠. 다양한 문화권에서 어떠한 신간들이 소개되는지 눈여겨보는 편이고, 틈틈이 서점을 다니면서 소설 구역을 어떻게 구성하는지 자세히 살펴보는 편이에요. 현재는 영국 드라마 ‘셜록’을 재미있게 시청한 후, 아서 코난 도일의 책《셜록홈즈》를 작가의 목소리로 다시 읽고 있어요.

추천 도서로《창조의 제국》《미학 오디세이》《영혼의 미술관》《사진 이상한 예술》을 선정한 이유가 있다면.


제게 처음으로 예술에 관심과 열정을 불러준 책이 이주헌의 《50일 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이었다면 선정한 책들은 현대미술을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던 책이에요. 학생 때 가장 중요하게 꼽히는 영국미술을 이해하고 다양한 각도로 현대 미술을 즐길 수 있게 발판을 마련해 준 책들이죠. 때문에 현대 미술과 가까이하고 싶으신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어요.

Trackback 0 Comment 0

[사이언스 북 카페] 이소영, 《실험실의 명화》

 

 

이소영 | 《실험실의 명화》 | 모요사 | 2012

 

■ 오늘은 어떤 책을 소개해주실 건가요?  

 

과학의 눈으로 그림을 보고, 화가의 눈으로 과학을 만나게 하는 책, 《실험실의 명화》입니다.

 

 

■ 과학과 예술은 이성과 감성이라는 서로 다른 인식 능력을 주로 활용하기 때문에 서로 관련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데요.

 

네. 하지만 과학과 예술 모두, 관찰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떠올려본다면, 두 영역 사이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어렵지 않게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 그 말씀을 듣고 보니 면밀한 관찰에 따라 인체의 정확한 비례를 그렸던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생각나네요.

 

다들 아시다시피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저명한 화가인 동시에 과학자였습니다. 이처럼 《실험실의 명화》는 과학적 정밀함에 근거해 그림을 그렸던 화가들 뿐 아니라 미술에 조예가 깊었던 과학자들, 그리고 명화에서 찾아낸 과학적 상식 등 미술과 과학을 오가며 그 각각의 이야기가 보다 흥미롭게 느껴질 수 있도록 해주고 있고요.

 

■ 책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볼까요?

 

책의 첫 장은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다’는 소제목을 달고 있는데요. 여기에서 말하는 ‘보이지 않는 것’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 현실에 존재하긴 하지만 인간의 시?지각으로 단번에 파악하긴 어려운 대상 혹은 상태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라든가, 움직임, 신경세포 등이 그에 해당하고요.

 

■ 어떻게 시대를 그린다는 건가요?

 

저자는 디지털 시대를 이미지로 표현한 영화 <매트릭스>를 시작으로 19세기 산업혁명의 풍경을 누구보다 잘 묘사한 영국의 화가 터너를 예로 듭니다. 특히 그의 그림, <비, 증기, 그리고 속도: 그레이트철도>은 눈앞이 흐려져 사물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아찔하게 달려오는 증기기관차의 ‘속도’과 함께 그 속도를 가능케 했던 ‘산업혁명’ 자체를 그려냈다고 평하고 있고요.

 

■ 그 외에 또 어떤 그림을 소개하고 있나요?

 

다들 고흐라는 화가 잘 아실 텐데요. 고흐의 불안한 심리와 광기를 표현한 것으로 생각돼온 <별이 빛나는 밤>과 관련해, 하버드 대학 천체물리학과의 찰스 휘트니 교수는 실은 이 그림이 실은 고흐가 면밀하게 관측한 밤하늘에 근거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별이 빛나는 밤>은 고흐가 1889년 생레미 정신병원에서 지내던 시절에 그린 것인데, 당시 생레미 부근의 별자리 데이터를 근거해 그림에 등장하는 별이 실제로 어떤 별인지 추정해볼 수 있고 이에 따라 1889년 5월 25일 새벽 4시경 달은 그림에서처럼 20퍼센트 가량의 초승달이었으며 금성은 동쪽 지평선에 살짝 걸쳐 있었다는 거죠. 

 

■ 과학의 눈이 이전과는 다른 <별이 빛나는 밤>을 만나게 해주는 게 흥미롭네요.

 

 




Trackback 0 Comment 0

[사이언스 북 카페] 김해심·존 K. 그란데, 《자연의 미술가》

 

 

김해심·존 K. 그란데 | 《자연의 미술가》 | 보림 | 2012

 

■ 오늘은 어떤 책을 소개해주실 건가요?  

 

현대 미술의 한 흐름으로 자리 잡은 ‘자연미술’을, 9명의 작가와 그들의 대표 작품을 중심으로 살펴보는 《자연의 미술가》라는 책입니다.

 

 

■ ‘자연미술’이라는 개념이 생소합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죠.    

 

말 그래도 자연과 미술이 합쳐진 예술 활동이라고 보시면 되는데요. 1970년 이후 본격적으로 산업화가 진행됨에 따라 자연훼손과 환경오염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잖아요. ‘자연미술’은 이와 같은 시대적 배경에 근거해 자연환경을 생태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예술가들의 자성과 모더니즘이 인간에게서 환경을 박탈하고 예술 활동을 자연에서 분리했다는 의식의 증가와 함께 형성되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연미술'은 ‘자연 속 예술’을 의미하는 것으로,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작업하는 방식을 추구합니다. 예술가는 자연의 변화와 그 과정을 탐구하며, 자연과 자연 요소의 촉매 역할을 해, 현장의 다양한 요소가 시각적·물리적·촉각적으로 상호작용하고 융합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나아가 사회와 문명 그리고 개인의 삶에 관련된 자연의 장소를 부각하여 우리가 자연 과정을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기도 하고요.

 

그래서 ‘자연 속 예술’은 단순히 조각 작품이나 오브제처럼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의 유동적인 현장과 예술가 사이에 교류가 이루어지며 ‘행해지는’ 가운데 존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작품은 시간의 흐름과 자연의 변화에 따라, 영구히 지속되지 않을 수도 있고 일정 시간 동안만 유지될 수도 있고요.

 

■ 예를 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작가 중 영국의 조각가 ‘데이비드 내시’가 있는데요. 그의 작품  <나무 바위 Wooden Boulder>는 거대한 떡갈나무를 여러 개의 덩어리로 만들어 작업실로 옮기는 과정 중, 덩어리 하나가 하천으로 굴러 떨어지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말하자면 그가 하천의 중간에 걸려 있는 나무 덩어리를 그대로 두기로 결정한 후, 이 나무가 바람과 비와 눈을 맞으며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 이동해 가는 과정 자체가 <나무 바위 Wooden Boulder>라는 작품이 되었다는 것이죠.

 

그렇게 나무 덩어리가 얕은 강으로 떠내려가는가 하면 태풍에 의해 모래언덕으로 밀려가는 등, 아홉 차례나 장소를 옮겨 다니며 머무는 장소마다 독특한 풍경을 연출해냈다고 하고요. 게다가 특이할 만 한 점은 1978년에 시작된 이 작품이 현재도 진행 중에 있다는 겁니다. 지금도 나무 덩어리가 어딘가로 이동해가고 있을 테니까요.

 

■ 자연미술’은 그 작품이 자리하고 있는 자연의 현장성을 통해 그 의미를 완성해간다고 볼 수 있겠네요.

 

네. 그렇습니다. 자연미술은 자연이 곧 인간 존재의 기원이고 조건이며 결과라는 인식을 바탕에 두고, 자연의 변화와 그 과정을 탐구하며 인간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니까요.

 

 

[YTN 사이언스 북 카페 《자연의 미술가》 방송 다시보기]




Trackback 0 Comment 0

<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 - 화가의 꿈, 인간의 욕망




 

볼프강 카이저 | <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 | 아모르문디 | 2011

 

현대의 다양한 예술분야를 접하다 보면 '그로테스크(grotesque)'라는 용어와 심심치 않게 마주치게 된다. 그런데 그로테스크하다는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어느 정도 특성을 파악할 수 있어도 막상 느낀 것을 한 마디로 표현할라치면 조금 난감해지는 게 사실이다. 비록 사전은 '그로테스크'에 대해 '터무니 없는', '기괴한'이라 정의하고 있지만 그로테스크한 작품들을 감상한 사람들이라면 이러한 정의 역시 충분치 못함을 감지할 수 있다. 그러나 반갑게도 <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는 그로테스크의 발생에서부터 현대적 의미로의 정착까지 수세기에 걸친 성장 과정을 미술과 문학 작품 속에서 추적하고, 이를 통해 그로테스크가 내포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포착해 그 의미를 구체화해 나가고 있다.

 

이 책의 목적은 다소 어렴풋하게나마 이어져 온 용어의 역사에 기대어 그로테스크가 과연 무엇인지 정의를 내리는 것이다. (26쪽)

 

그로테스크는 15세기말 이탈리아 곳곳에서 발굴된 고대 장식미술을 지칭하던 용어로 이탈리아어 '그로타(grotta, 동굴)'에서 유래했다. 당시 바사리(Vasari)를 위시한 여러 비평가들은 자연의 원리에 어긋난 이 장식물들에 대해 혹평을 했지만 예술가들의 새로움을 향한 의지를 제어할 수 없었으며 이후에도 혹평과 예찬의 대결구조를 유지하면서 어엿한 예술 양식의 하나로 자리매김해 왔다. 그로테스크의 기원에서 한가지 놀라운 사실은 이것이 아름답고 화려한 아라베스크와 뚜렷이 구분되지 않았던 시기가 있었다는 점이다. 이들은 각자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때로는 모호하게 동일한 양식인 것처럼 간주되다가 18세기에 이르러서야 독립된 양식으로 정착되었는데 이즈음 그로테스크를 미학의 범주로 포함시키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이처럼 역사 속에서의 그로테스크는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그것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으며 과격한 것은 아니지만 지속적으로 변화의 과정을 거치며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다듬어졌다.

 

그로테스크가 미학적 대상으로 탐색되었다고는 하지만 이것이 고급 예술로 여겨졌던 것은 아니다. 자연을 닮은 것을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15~18세기 사람들, 이후 19세기 헤겔에게는 반인반수나 동물에서 식물로 변이되는 기이한 이미지들이 저급한 예술적 유희로 비춰졌을 법도 하다. 더욱이 그로테스크는 한때 섬뜩함 보다는 '우스꽝스러운'의 뉘앙스를 주는 의미로 사용된 적도 있으며 미학의 범주로 고려된 배경에도 캐리커처의 활성화에 힘입은 바 있어 호응도와 위상에는 큰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그로테스크가 유럽 각국으로 전파되면서 발생한 미세한 사전적 의미와 연극(특히 질풍노도 드라마라 불리는 것)이나 기타 예술영역을 통해 대중과 친숙했던 그로테스크의 일면을 상세히 언급해 나간다. 뿐만 아니라 여기서는 저자의 견해와 더불어 다른 학자들의 견해도 함께 들을 수 있어 그로테스크에 대한 지식의 기본을 갖추는 데는 더없이 훌륭한 저술이다.

 

그로테스크는 미술분야의 라파엘로를 필두로 악마숭배주의의 보스, 보스에게서 영향을 받은 브뤼헐 등의 화가들을 거쳐 현대의 데 키리코, 달리 등에 이르기까지 이어져왔고, 문학에서는 괴테, 위고, 포우, 호프만, 뷔히너, 카프카, 토마스 만 등 이른바 대 문호들을 통해 그 맥을 이어왔다. 이렇게 예술의 거장들이 그로테스크와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데에는 인간의 힘(상상력)만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려는 욕망이 담겨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16세기 그로테스크를 지칭하던 또 다른 이름이 '화가의 꿈(sogni dei pitton)'인 것을 보면 신이 창조한 자연의 질서를 벗어나 기괴한 이종교배를 시도하고 꿈같은 비현실적 공간을 추구하는 주체가 '화가', 더 나아가서는 인간임이 뚜렷이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저자인 볼프강 카이저는 그로테스크의 창작이 "현세에 깃들어 있는 악마적인 무언가를 불러내어 그것을 정복하는 일"(309쪽)이라고 정의하고 그로테스크가 공포와 동시에 은밀한 해방감을 맛보게 해준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악마적인 것을 극복하겠다는 용기는 가상하지만 인간의 창조가 삶의 공포에서도 비롯될 수 있다는 서글픈 측면도 발견된다.

 

공포로 가득한 인간 내면의 모습은 볼프강 카이저가 설명하는 다양한 문학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의 제목에는 '미술과 문학에 나타난'이라고 되어 있지만 실상 미술분야는 그로테스크의 태동기와 개념의 확장 부분에 집중적으로 언급되며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낭만주의 시대부터는 문학 및 연극 작품들, 그리고 미학이론들을 위주로 하고 미술은 간헐적으로 등장한다. 또한 저자가 문학비평가인 덕에 각 문학작품은 그로테스크의 측면에서 상세히 분석되는데, 이를 통해 그로테스크 개념의 구체화뿐만 아니라 작품 속에 담긴 인간 본성에 대해서도 심도있는 해설을 들을 수 있어 유익하다. 여기서 특히 주목할만한 작품은 모든 종류의 그로테스크를 작품세계에 담았다는 그로테스크의 대가 호프만의 작품과 뷔히너의 <보이첵>이다. 그 중 뷔히너의 <보이첵>은 그로테스크의 전성기인 낭만주의 시대의 작품으로 현대문학(희곡)과 비교해 손색이 없는 세련미와 비상함을 갖췄는데, 단순히 그로테스크한 모습을 문학적으로 (외양)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구조, 인물의 성격과 심리에 활용하고 있어 조금은 난해하겠지만(작품 '전체'를 읽으면 난해하다) 저자의 발췌부분만 읽는다면 크게 어려움이 없을 것이며 그로테스크 문학의 백미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그로테스크는 그 안에 내포된 다양한 요소들이 역사 속에서 축소 또는 확장되는 가운데 유동적으로 존재해 왔지만 이 용어를 하나의 단어로 귀결시키는 것은 합당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현재 대중문화에까지 파고든 그로테스크의 위세를 보면 이것이 또 어떤 의미로 변형되어 다가올지 모르겠지만 이 책을 통해 그로테스크의 근원과 본질을 이해하고 여기에 반영된 인간의 본성을 파악한다면 향후 미적 체험이 더 깊어지는 것을 느끼리라 확신한다.

 

그로테스크에 관한 한 매우 밀도 있는 책이었고, 예술가들에게 지적 호기심과 영감을 불러일으킬만한 소중한 자료들이었다.

 

 

- 종교적 색채가 보이는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천년왕국>, 창백하고 영혼이 마취된듯한 느낌이다(좌)
- 그로테스크가 장식미술로 태동할 시기의 작품, 성당의 벽화이다, 루카 시뇨렐리의 <엠페도 클레스>(중상좌)
- 장식미술에서 좀 더 발달한 일명 만곡 그로테스크(중상우)
- 인상파풍으로 그려진 제임스 앙소르의 <음모>, 색채는 밝고 화려하만 우스꽝스러움과 사악함이 결합해 묘연하다(중하)
- 마리오네뜨(꼭둑각시)를 연상시키는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 <불타는 기린>(우)

 

* 상기 이미지는 본 도서에서 전체 혹은 부분 발췌하여 재조합 하였으므로 원본과는 구성과 사이즈 면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이향*'님은?
일흔살까지 1만 권의 책을 읽고 1백 권의 책만 소장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로 출발했지만 아직은 5천 권을 읽고 1천 권을 추려내기에도 벅찬 평범한 햇병아리 독서가

Trackback 0 Comment 0

<샤넬, 미술관에 가다> - 작품을 한올한올 뜯어보다




 

김홍기 | <샤넬, 미술관에 가다> | 미술문화 | 2008

 

하나의 작품에서 세세한 요소를 꺼내어 들춰보는 일은 무척 재미있는 일이다. 그것이 음악이든 미술이든 사진이든, 어떤 매개체를 통해 우리가 자각하지 못했던 구성을 깨닫는 것은 신선하고 새로운 느낌으로 작품을 다시 볼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반대로 하나의 작품에는 수많은 의미적 요소가 함축되어 있다. 그것은 작품을 만들어 낸 작자가 의도하였든 그렇지 않든 간에 자신의 생각, 사상, 취향, 시각 등이 작품에 녹아들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동시에 역사성이 함축된 시대상과 은밀한 욕망과 고발이 담기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서경식씨는 미술작품을 통해 인간의 폭력과 잔인성을 고발하고 설명한다. 동시에 그런 인간의 역사적 실체와 만행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려 노력한다. 말하자면 그는 작품 속에서 시대의 폭력을 읽어내며 되살아날 수 있는 폭력을 경계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김홍기씨는 작품 속에서 복식의 모양, 즉 패션을 읽어낸다. 역사속의 패션을 읽어냄으로써 삶의 역사적 변천을 설명하고 현재의 삶을 투영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작품 속 패션의 역사를 읽어내는 데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한 단계 더 깊이 들어가 패션 속에 들어있는 시대적 취향, 인간의 욕망, 말로 표현되지 않는 언어의 교류, 정치사회상 등을 읽어낸다. 시대적 사건과 정치적 흐름을 읽어내는 역사서와는 또 다른 인간상의 역사서와도 같은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시대적으로 인간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 그 표현은 옷을 통해 어떻게 나타났는지, 그 시대 사회의 정치사회 경제는 어떠했는지를 시간적 흐름을 통해 이해할 수 있는 역사서 말이다. 그래서 읽는 내내 이 책은 미술을 매개로 한 패션의 역사책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했는지를 알 수 있는 삶의 역사책이라는 생각을 자주 할 수 있었다.

 

결국 인간의 모든 행위는 거미줄처럼 얽히고 얽혀있다. 누군가의 음악, 미술, 패션, 글, 행동 등이 마냥 하나의 분야로만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는 것이다. 음악 속에는 미술적 영감이 작용했을 것이고, 패션에는 입는 사람의 사상과 사회성에 바탕을 둔 취향이 존재할 것이며, 글 속에는 음악과 미술과 사회적 영감과 사상이 함축되어 있을 것이고, 행동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미적, 사회적 판단을 바탕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것을 역으로 하나하나 뽑아내는 것은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나의 섬세한 면모를 돌이켜보는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인데 이 책이 조금 새롭고 흥미로웠던 건 그래서였지 않을까 싶다.

 

지금의 패션은 어떤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을까?  경기가 안 좋으면 치마가 짧아진다는 식의 유행은 실제하는 경제사회상의 반영일까? 물론 시대마다의 패션에는 계급성과 자본이 많이 느껴지긴 하는데, 점점 자본의 영향력이 거품처럼 커지는 시대의 패션은 혹여 거품처럼 불거져버린 자본의 모습을 좀 더 많이 담아가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리고, 언제나 편함과 단순함만을 추구하며 옷을 입는 나의 패션에는 어떤 현시대의 모습을 담겨져 있는지 문득 돌아보게 된다. 흥미로우면서도 두려운 일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민욱아빠’님은?
현직 외과의사입니다. 서울에서 수련생활을 마치고 정리하자마자 지방 어딘가에서 살고 싶어 이곳저곳을 알아보다가 제주로 내려와 생활한 지 1년 6개월이 되어가는 '제주이민자'입니다. 의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산다는 것의 많은 의미를 생각해보려 노력하고, 계급적인 견지에서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고 행동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의사로서 본연의 업에 원칙적으로 충실하려 함과 동시에 개인으로서 또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어떤 고민과 행동을 해야 하는가, 고민을 하고 사는 '조금 시선이 다른 의사'라고 하면 이해가 될까요?

  

Trackback 0 Comment 0

고흐의 구두 내발에 맞을까? - <나는 오늘 고흐의 구두를 신는다>


 

이명옥, <나는 오늘 고흐의 구두를 신는다>, 21세기북스, 2009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떤 방법으로 자신의 내면을 들려다보는 성찰의 시간을 가질까? 요즘 들어 자기성찰을 통해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고 내가 나로서 존재하는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여러 가지 문화 활동의 과정에 직접 참여하며 문화적 소양과 편안한 쉼의 시간을 누리고 있다. 그것들 중 하나가 예술작품과의 만남일 것이다.

한때 유행하는 문화 트렌드라고 할지라도 예술작품으로 사람들을 안내하는 책의 출간이 많아지고 어떤 책은 베스트셀러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기도 한다. 지극히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선두에 선 사람 중 한 분이 <그림 읽는 CEO> <팜므 파탈>의 저자 이명옥이라는 분이다. 예술이란 ‘자연의 아름다움을 스캔하고 인간의 본성을 발굴하며, 세상만물과 소통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 그리고 우리 스스로가 소외시킨 진정한 자신과 만나게 해주는 메신저’라고 말하고 있다.

저자는 <나는 오늘 고흐의 구두를 신는다>에서 희망, 가난, 떠남, 행복, 눈물, 아름다움, 사랑, 죽음, 용서 등 사람이 살아가가며 떨치지 못하는 스물한 가지, 인생을 통찰하는 문제를 예술작품을 통해 만나게 한다. 또한 예술가들이 인생을 어떻게 바라보고 느끼고 생각했는지를 보여준다. 고흐, 샤갈, 렘브란트 등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그림이나 화가도 있고 새롭게 등장하는 화가의 작품도 있다. 어떤 예술작품이든 작가가 살아온 시대를 반영하기에 작가의 눈으로 투영되어 재해석 되어진 작품을 통해 작가의 삶과 그가 살아온 시대를 알 수 있다.

미국 최초 흑인 대통령 오바마를 통해 알려진 조지 프레드릭 왓츠의 희망, 밀레의 이삭줍기, 폴 고갱의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 이영희의 삶의 길, 빈센트 반 고흐의 구두 한 켤레, 피카소의 우는 여자, 에드워드 호퍼의 아침태양, 김성룡의 목단꽃, 에드가 드가의 욕조 속의 미인 등 이 책에 실린 많은 예술작품을 살펴보는 동안 작품 하나하나에 담긴 작가의 속내를 모두 알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란 생각을 해 본다.

살아온 시대를 외면하지 않는 작가의 깊은 고뇌의 결과물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작품을 보는 사람에 따라 온갖 상상력을 동원하기에 작가의 의도와는 무관한 느낌을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의 의도가 무엇이든 바라보는 내가 느끼는 감정이 중요하지 않을까?

저자의 말처럼 예술작품이 스스로가 소외시킨 진정한 자신과 만나게 해주는 메신저라면 작품을 통해 무엇을 느끼던지 오롯이 관람자인 내 몫이라 생각한다.

이 책에서 이야기 되어지는 모든 작품에서 보이듯 생로병사 등 스물한 가지 인간의 근본적인 고뇌는 예술작품으로 말하는 작가의 삶이나 그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이나 누구든 자유로울 수 없는 문제다. 아마도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사람들이 그러한 문제에 직면하게 될 때 삶을 대하는 태도가 어떤가에 따라 자신에게 다가오는 결과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작은 부분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한가? 라는 말에서 얻는 행복은 카미유 피사로만이 느끼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날마다 보는 거리의 익숙한 풍경이지만 그 속에서 문득 낯선 모습을 찾아내고 따스한 미소 지을 수 있는 여유를 갖는다면 누구나 예술작품을 창조하는 내 삶의 창조자인 것이다. 또한 우연한 기회에 만난 예술작품 하나가 바쁜 일상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쉬어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면 자신의 내면에 담긴 이야기를 화폭에 담아 내 보이는 예술가들과의 소통으로 잃어버린 자신을 발견 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간서치’님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좌우명처럼 생각하며 청장관 이덕무를 좋아하고 옛글의 향기 속에서 사람의 따스한 가슴을 확인하고 선비들이 세상과 사람을 대하는 마음을 배워가고 싶습니다.

Trackback 0 Comment 0
prev 1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