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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8.11 책과 노니는 집 - 책의 향기를 품은 곳 (2)
  2. 2009.07.23 키스하듯 읽어야 할 사랑 -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2)

책과 노니는 집 - 책의 향기를 품은 곳


 이영서, <책과 노니는 집>, 문학동네, 2009

책의 향기를 품은 곳

“장아, 책방 어른이 지금 나타났다가는 아비처럼 매질당하는 걸 면치 못해. 그분은 우리한테 고마운 분이다. 서운한 마음 가지면 못써”(p11)


아비의 갑작스러운 죽음. 아비는 이 한 마디를 남기고 세상을 뜬다. 소년 장이는 아비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 아비는 죄가 없다. 죄가 있다면 그가 ‘필사쟁이’라는 것. 아비는 그저 최 서쾌(책을 파는 사람)의 청탁을 받고, 천주학 책을 옮겨 썼을 뿐이다. 아비가 관아에 끌려가 모질게 매를 맞았는데도 보름 동안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다. 더욱 서럽다. 누군가 “어서 쾌차하게, 미안하고 부끄럽네.-서西”라는 쪽지와 돈을 남기고 가도, 늦은 밤 최 서쾌가 아비를 찾아와도 서러운 마음은 끝없다. 아비는 지독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그 누구의 이름도 대지 않았는데.

어느덧 3년이 흘러 장이는 최 서쾌의 책방에서 책 배달 심부름을 한다. 그는 도리원(‘복숭아꽃 오얏꽃 핀 동산’이란 뜻의 기생집)과 홍 교리의 집을 드나들며 책 속 가득한 이야기를 전달한다. 또래 아이들에게 ‘아비 없는 자식’이라 놀림 받지만, 책이 있어 행복하다. 그러던 어느 날, 장이는 건달 허궁제비를 만나 상아찌(코끼리 어금니로 만든 책갈피)를 빼앗긴다. 상아찌를 찾기 위해서는 5전을 마련하기 위해 장이는 오 씨네 지물포에서 밤에 일하고, 도리원의 어린 몸종 낙심이에게 돈을 빌린다. 남이 시킨 일이 아닌 스스로 무언가를 해야 하는 장이. 그는 점점 어른이 되어간다. 언제나 곁에 있는 책과 함께.

책이 지천으로 깔려 있는 지금, 책을 이처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은 오히려 낯설다. 한 자 한 자 정성스레 옮겨 적어 책을 만들고, 행여 들킬까 가슴 졸이며 책을 읽는 사람들의 모습에선 애틋함이 느껴진다. 문학동네어린이 문학상 대상 수상작 <책과 노니는 집>에서는 책에 대한 애정이 듬뿍 묻어나는 동화이다. 책을 사랑하고, 그 책이 소년을 어른으로 만들어가는 성장동화. 장이는 틈틈이 읽은 책을 통해 세상을 알아가고, 지체 높기가 하늘과 같은 홍 교리와 대화를 나누며 나이와 신분을 뛰어넘는 책의 마력을 느낀다. 또 도리원에서 양반, 기생, 장사꾼, 부엌데기 등 모두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흥부전>을 들을 때에는 유토피아의 모습을 상상하기도 한다.



책의 즐거움으로 가득한 이 공간은 지금과 그리 멀지 않은 조선 후기이다. 당시 우리 아비, 어미들도 책을 읽으며, 시름을 잊었을 터이다. 동화 속에서 사람들을 한 데 묶은 서양에서 들어온 천주학이다. 지금은 ‘평등사상’을 입에 물고 태어나지만, 당시는 양반을 똑바로 쳐다보기 어려운 사회였다. 반상의 신분이 엄연히 존재하던 시절, 천주학은 혁명이었다. 덕분에 <책과 노니는 집>의 사람들, 즉 홍 교리, 최 서쾌, 도리원의 기생 미적 등은 하늘 아래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었고, 서로 ‘사람’으로 대하게 된다.

사람과 사람으로 만나는 이들. 어찌 인간에 대한 애정 없겠는가. 이러한 애정은 책 곳곳에 나타난다. 장이가 허궁제비의 괴롭힘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최 서쾌는,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라. 네가 감당할 수 없거든 도움을 청하란 얘기다. …… 휴우”라고 말한다. 아비 대신 장이를 키우는 최 서쾌의 의무감 보다는 장이와 그의 아비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또 낙심이에게 잘해주라는 최 서쾌나, 장이에게 잘해주라는 미적의 말에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가득하다. 이처럼 장이는 책이 묶어준 인연 속에서 성장하고, 또 성장한다.

흐뭇한 광경을 연출하던 동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속도가 빨라진다. ‘천주학쟁이’를 죄인으로 낙인찍고 관아의 탄압이 들어오는 순간,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한다. 장이가 책을 배달하러 가는 도중에 마주친 관원들, 장이는 순간 홍 교리와 도리원의 낙심이를 떠올린다. 관원에게 잡히면 죽음을 면치 못하는 것은 장이도 마찬가지. 하지만 장이는 자신의 일신을 돌보지 않는다. 장이의 머릿속에는 온통 그동안 자신을 따뜻하게 받아주고,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던 소중한 이들이 떠오른다. “그분은 우리한테 고마운 분이다. 서운한 마음 가지면 못써”라는 아버지의 말이 몸으로 체험되는 순간이다. 아비와 같이 필사쟁이가 되고, 아비가 생각했던 사람됨을 그대로 느끼는 장이. 아마도 그의 아비는 하늘 높은 곳에서 장이를 보고 흐뭇한 미소, 아니면 감사의 눈물을 지었을 것이다.

책의 마지막장을 덮고 주위를 둘러본다. 문명이 만들어 놓은 많은 이미지들이 순식간에 눈에 들어온다. 요즘 우리는 즐길 것이 너무 많다. TV, 컴퓨터, 게임기 등 수많은 자극들은 우리의 오감을 쉴 새 없이 가득 채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가 ‘사람’을 기계들에게 빼앗기는 건 아닌가 싶다. 내가 가족, 친구,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즐기고, 대화하는 것은 무엇인가. 문득 100여 년 전 장이가 살았던 ‘책과 노니는 집’이 그립다. 거기에는 수많은 책과, 향수가 필요 없는, 책과 사람 냄새가 가득하지는 않을까. <책과 노니는 집>. 가벼운 마음으로 펼친 동화지만, 그 감동은 결코 가볍지 않은, 고마운 책이다.

“책을 읽는 재미도 좋지만, 모아 두고 아껴 두는 재미도 그만이다. 재미있다, 유익하다 주변에서 권해 주는 책을 한 권, 두 권 사 모아서 서가에 꽂아 놓으면 드나들 때마다 그 책들이 안부라도 건네는 양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지. 어느 책을 먼저 읽을까 고민하는 것도 설레고, 이 책을 읽으면서도 저 책이 궁금해 자꾸 마음이 그리 가는 것도 난 좋다. 다람쥐가 겨우내 먹을 도토리를 가을부터 준비하듯 나도 책을 차곡차곡 모아 놓으면 당장 다 읽을 수는 없어도 겨울 양식이라도 마련해 놓은 양 뿌듯하고 행복하다”(p78, 장이와 대화를 나누는 홍 교리의 말 중에서)

반디
(ak2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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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하듯 읽어야 할 사랑 -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다니엘 글라타우어,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문학동네, 2008

 

3분 뒤
Aw:
잘 자요.

2분 뒤
Re:
굿나잇.

1분 뒤
Aw:
굿나잇.

50초 뒤
Re:
굿나잇.

10초 뒤
Aw:
굿나잇.

20초 뒤
Re:
굿나잇.

2분 뒤
Aw:
세벽 세시예요. 북풍이 부나요? 굿나잇

15분 뒤
Re:
세시 십칠분이네요. 서풍이에요. 쌀쌀하고요. 굿나잇.

(p 264~265)

“당신의 기억 속에도 있나요? 어느 밤, 먼저 전화 끊기가 아쉬워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던 일. ‘잘자요, 굿나잇, 당신도요, 좋은 꿈 꿔요.’ 를 반복해 문자로 찍어 보내던 일. 아니면 이들처럼 메일함 앞에서 딩동 소리를 기다리며 초 단위로 메일을 보낸 일 말이에요.”

사랑의 시작은 다 그렇지 않을까. 말 한마디 더 듣고 싶고, 얼굴 한 번 더 보고 싶고. 두근거리는 안타까움. 그 마음을 잘 표현해낸 책이 있다. 제목부터 알싸한 사랑의 내음이 맡아지는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책의 주인공은 가정주부인 에미 로트너와 언어심리학자인 레오 라이케. 잘못 보내진 메일 한 통으로 이어진 이 두 사람. 메일을 주고받는 어느새 사랑에 빠져버린다. 어떻게 메일만으로 사랑에 빠져? 라고 묻는 당신. 사랑엔 정답이 없다는 말은 들어보셨는지. 어쩌면 실제로 목소리를 듣고, 얼굴을 보지 못했기에 그들은 더 열정적으로, 아련하게 서로를 그리워하는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말했던가.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들이 주고받은 메일로만 이루어져있다. 아니! 전후 사정 설명도 없이 메일로만? 그러나 때론 말보다 행동. 구구절절 늘어놓는 설명보다 메일 한 통 한 통은 더 격정적으로 그들의 감정을 내보여준다. 마치 사랑이란 이렇게 하는 거라고 알려주듯.

그래서 감히 이 책을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지금 사랑에 빠져드는 사람에겐 ‘마치 내 이야기를 읽는 것 같아!’ 란 달콤함을. 지나간 사랑을 추억하는 사람에겐 ‘아, 나에게도 저런 날이 있었지. 이제 나도 새로운 사랑을 찾아야겠어!’ 란 의지를. 사랑이 고픈 사람에겐 ‘나도 얼른 사랑에 빠져들어야겠어. 에미와 레오처럼 말야.’ 라는 기대감을. (더해서 로맨틱이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남정네들에게도 추천 꾹. 그대로 옮겨만 적어도 연인의 가슴을 떨리게 할 명구가 많다.)

어느 메일에선가 에미는 당차게 외친다. ‘저는 당신과 사랑에 빠지지 않아요!!! 로맨스든 불륜이든 외도든, 그런 건 생기지 않을 거예요! 그냥 만남이 있을 뿐이에요.’ 그러나 사랑이란 게 그렇게 자기 마음대로 되는 거면 얼마나 좋을까. (혹은 얼마나 세상이 각박해질까.) 자기도 모르는 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에미, 마지막 이메일에서 그녀는 말한다. ‘레오, 무슨 일인가가 일어났어요. 제 감정이 모니터를 벗어난 거예요. 전 당신을 사랑해요. ... 이제 우리 어떡하죠?’ 라고. 아, 지독히도 아픈 사랑!

여기서 그들은 어떻게 되었습니다, 라고 떠벌려 그들의 사랑을 한낱 이야깃거리로 만들 수는 없기에 그 몫은 다음 독자에게 남겨두고. 책에 대해 마지막 평을 하자면. 한쪽 가슴이 아련해지는 소설, 뇌의 1퍼센트가 사랑에 중독되는 소설, 입술이 촉촉해지는 소설, 잠시 이성적인 머리는 침대 구석에 내려놓게 만드는 소설, 그 정도일까.

레오의 말을 빌리자면 ‘키스하듯’ 읽어야 할 책.

 
오늘의 책을 리뷰한 ‘굼실이’님은?
어쩌다 보니 하루라도 책과 만나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치는 불치병에 걸려버린, 북홀릭 청춘. 책 속에서 사랑도, 지혜도 찾고픈 그런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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