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에 해당되는 글 52건

  1. 2011.07.19 [요즘 뭐 읽니?] 김중혁, 미스터 모노레일
  2. 2011.06.14 <슬픈 짐승> - 우린 모두, 슬픈 짐승
  3. 2011.06.07 [요즘 뭐 읽니?] 신형철, 느낌의 공동체
  4. 2011.06.03 <필경사 바틀비> -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5. 2011.05.31 [요즘 뭐 읽니?] 낯익은 세상, 황석영
  6. 2011.05.24 <검은 설탕이 녹는 동안> - 스무 살의 정체
  7. 2011.05.19 <내가 가장 예뻤을 때> - 가장 아픈 시대에도 청춘은...
  8. 2011.05.12 <귀가도> -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9. 2011.03.11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씨> - 돈과 인간, 그 씁쓸함에 대하여
  10. 2011.03.04 <신의 축복이 있기를, 닥터 키보키언> - 죽어도 다시 한 번

[요즘 뭐 읽니?] 김중혁, 미스터 모노레일



샛노란 표지에 '나 여깄어'하는 모양으로 그려진 동그란 구멍 안의 사람들. 컬러풀하고 귀여운 표지만으로 눈길을 사로잡는 김중혁의 새 장편소설 '미스터 모노레일'을 읽고 있다. 소설집 '펭귄 뉴스'와 '악기들의 도서관', 첫 장편소설이었던 '좀비들'에 이르기까지 김중혁의 소설에는 일정한 온도와 특유의 유머 코드가 있다.

내가 느끼는 그 일정한 온도는 한겨울에 뜨뜻하게 데워진 전기장판에 누워 두터운 솜이불을 목끝까지 올려 덮고, 창문만 열어둔 상태의 온도 혹은 한여름에 추워지기 직전의 시원한 온도로 에어컨을 틀어두고 얇은 삼베 이불을 덮고 있는 정도의 온도다. 그러니까 조금 기묘하지만(혹은 바보스럽지만) 최적의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온도라는 거다. 특유의 유머 코드 역시 '빵'터지는 핵폭탄급의 웃음이나 입가가 미묘하게 움찔거리는 썩소의 그 사이, 의태어로 말하자면 히죽히죽이 될 듯하다. 어쩐지 썰렁한 듯 한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와버리는 거다. 

읽고 나면 슬며시 기분이 좋아지는 작품들과 '대책 없이 해피엔딩'에서 엿보아버린 입담 때문에 그의 새 소설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인공 모노는 어느 날 아침, 잠을 푹 자고 일어나 '헬로, 모노레일'이란 게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곧바로 게임의 룰을 만들기 시작한다. 모노는 지도를 펼친 다음 유럽의 모든 도시 위에다 가상의 모노레일을 하루 만에 건설하고, 친구 고우창과 함께 게임을 완성한다. '헬로, 모노레일'게임은 대성공을 거두고 전설의 게임이 된다. 그 후 모노는 삼개월간의 유럽 출장을 계획하는데...

여기까지가 현재 스코어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개시(?)한지라 진도가 매우 초반 부분에 머물러 있다. 그럼에도 다들 어디 한 군데가 부패한 얼굴로 서 있는 사람들 틈 사이에서 홀로 어깨를 들썩이며 웃은 부분이 있어 옮겨 본다. 모노의 친구 고우창의 엄마가 운영하는 오십대 주부들을 위한 동네 미용실 체인점, 엄마머리의 유머러스한 메뉴판이다.
 
-엄마머리 메뉴-

기본 커트                                  5,000원
학부형 모임 머리 세팅                 5,000원
                                               (학생회장 학부형 머리 2,000원 추가)
부부동반 모임 세팅                     5,000원
                                               (여고 동창 모임 머리 2,000원 추가)
계 모임 세팅                              5,000원
                                               (계주 머리 2,000원 추가)
집에만 있을 거예요, 펌               10,000원
다섯 달 이상 변치 않는 펌           10,000원
계란, 식초로 윤기 내기                5,000원


■ 엄마머리만의 서비스

1. 펌 하는 동안 자을 대신 봐드립니다.
2. 5세 미만 어린이와 함께 놀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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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컨텐츠팀 에디터 료(fololy@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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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짐승> - 우린 모두, 슬픈 짐승


 

 

모니카 마론 | <슬픈 짐승> | 문학동네 | 2010

 

열렬한 사랑은 구원일까, 저주일까. 아마도 사랑 안에 있을 때에는 찬란한 구원일 테고, 그 사랑에서 벗어났을 때는 끈덕진 저주로 남을 것이다. 사랑이 피었다 지는 광경은 마치 목련이 환하게 흐드러졌다 거무죽죽한 낯빛으로 바닥에 드러눕는 모습과 닮았다. 가끔 생각해본다. 나는 사랑을 위해, 혹은 사랑에 있어 어디까지 갈 수 있나, 사랑에 ‘끝’이 있다면 거기는 어디인가.

 

사랑의 시작과 끝에 모두 도달한 여자가 있다. 여자에게 유일한 사랑이 발아되던 때로 돌아가보자. 어느 날 발작을 일으켜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여자는 단 하나의 질문을 떠올린다. ‘저녁의 발작이 내 죽음을 가상실험한 것으로 끝나지 않고 정말로 그때 내가 죽었다면 내가 놓쳤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그녀는 답한다. ‘인생에서 놓쳐서 아쉬운 것은 사랑밖에 없다’고. 그리고 일 년이 지난 뒤 ‘찾지 않고, 기다리지도 않고’ 어느 날 아침 자신의 옆에 서 있던 그 남자를 만났다. 그녀는 사랑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징후와 그 순간들을 예민하게 포착해낸다.

 

우리가 원했던, 또는 심지어 우리 안에 묻혀 깨어나지 않은 채 숨어 있던 특성들이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순간 우리가 더불어 사는 데 익숙해 있던 다른 특성들을 몰아낸다. 우리는 스스로를 다시 인식하게 된다. 우리는 더 아름답고 더 부드럽고 더 현명하다. 우리는 우리의 소심함과 우리의 악의에서 구원된다. 우리는 가장 사악한 적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우리의 행복으로 모든 나무와 모든 거리와 모든 순간을 환하게 비추고 그때까지 발견하지 못했던 그것들의 아름다움에 대해 경탄한다. 우리는 하늘과 비와 바람과 우리 자신이 하나가 된 것처럼 느낀다. 우리는 마침내 이 세상에 속해 있고 또 마침내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다.

 

사랑은 내 안에 숨어 있던 여러 명의 나를 끄집어 낸다. 그로 인해 전혀 몰랐던 나를 새로이 발견하고 탐구하게 한다. 그러니까 사랑은 자아의 확장을 일어나게 하는 계기인 셈이다. 또 사랑은 우리를 ‘이 세상에 속해 있고 또 마침내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게’ 만든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한편, 우리 자체가 아름다움이 되는 것이다. 삶을 송두리째 황홀로 이끌었던 이 사랑이 끝에 달했을 때 그녀는 자신이 아흔 살인지, 백 살인지 모른다. 여자는 예금해둔 돈을 인출하고, 식료품을 살 때에만 외출을 한다. 사는 게 아닌, 살아지고 있는 거다.

 

나의 마지막 연인, 그 남자 때문에 나는 세상을 등졌다. 나를 떠났을 때 그는 안경을 잊고 내 집에 두고 갔다. 나는 몇 년 동안 그의 안경을 썼다. 건강하던 내 눈을 그의 근시와 뒤섞어 흐릿한 눈으로 만들었다. 그것이 그의 곁에 머물 수 있는 마지막 가능성이었다. (…) 점점 뜸해지고는 있지만 나는 가끔씩 안경을 써본다. 내 연인이 그 안경을 썼을 때 무엇을 느꼈을지 느껴보기 위해서다.

 

마지막 연인이 떠난 뒤 세상과 등지고 오로지 그와 함께 했던 시간을 되살려보는 것을 유일한 의무처럼 지니고 있는 여자는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의 그녀를 떠올리게 한다.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 아니 에르노, <단순한 열정>, 문학동네, 2006

 

떠나간 연인이 남긴 유품 같은 안경을 쓰고 지내는 여자를 그려본다.  그가 보았던 그 무엇을 보려 건강하던 눈까지 흐릿하게 만드는 여자의 모습에선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읽힌다.

 

“너처럼 될 수 없다는 것, 그게 내가 아쉬워하는 그 무엇이지.”

 

- 마르그리트 뒤라스, <이게 다예요>, 문학동네, 2009

 

사랑은 ‘어쩌면 우리가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가설에서 시작되어, ‘결국 우리는 하나가 아니다’라고 그 가설을 배반하는 이론을 정립하며 끝나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우린 모두, 슬픈 짐승이다. 사랑이 주는 환희의 순간은 너무도 짧고, 그것이 남긴 그림자의 길이는 너무도 길다. 하지만 그 짧았던 환희의 순간으로 기나긴 그림자의 날들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게 또 사랑이다. 그러니까, 나는 또 사랑하겠다. 제 몸이 타 들어 갈 것을 알면서도 불의 매혹을 떨칠 수 없는 나방처럼, 두려움도 절망도 없이.


 

 

-컨텐츠팀 에디터 료(fololy@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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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뭐 읽니?] 신형철, 느낌의 공동체


 

 

  

신형철 | <느낌의 공동체> | 문학동네 | 2011

 

 

가요계처럼 문학계에도 아이돌이 있다면 한 자리를 당당히 차지할 것 같은 사람, 평론가 신형철이다. 소설가도, 시인도 아니고 평론가라니 의아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그의 글을 읽어본 적 있는 이라면 분명 끄덕끄덕, 수긍할 이야기다. 아득해질 만큼 아름다우면서도 잘 벼려진 스케이트 날처럼 글자와 글자 사이를 누빈다. 그의 첫번째 평론집 '몰락의 에티카'는 평론집으로는 드물게 7쇄를 넘겼다고 하니, 이쯤되면 '아이돌' 운운하는 게 영 거짓은 아님이 입증되는 셈이다. 그런 그가 올 봄, 첫번째 '문학 산문'집 <느낌의 공동체>를 냈다.

 

 

2006년 봄부터 2009년 겨울까지 쓴 짧은 글들을 추렸다. 200자 원고지 10매는 적은 분량이 아니지만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그 지면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사랑할수록 문학과 더 많이 싸우게 된다. 사랑으로 일어나는 싸움에서 늘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는 이는 잘못을 저지른 쪽이 아니라 더 많이 그리워한 쪽이다. 견디지 못하고 먼저 말하고 마는 것이다. 그래야 다시 또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으니까.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은 상대방에게 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진다. 나는 계속 질 것이다.

 

 

누구에게도 상처주지 않는 사람이 되겠다는 미망을 오래전에 버린 것처럼, 누구도 실망시키지 않는 글을 쓰겠다는 허망도 이제는 내려놓고, 그저 나에게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기 위해 나 자신을 더 삼엄하게 학대하려고 한다. 자부도 체념도 없이 말하거니와, 읽고 쓰는 일은 내 삶의 거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 책머리에 | 나는 잠을 자고 싶은데 너는 춤을 춰야만 하네

 

 

씨네 21의 김혜리 기자는 신형철을 두고 '한국 문학의 사려 깊은 연인'이라 이름 지었다. '더 많이 그리워해서 늘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는, 그래서 자기 자신에게 지고도 계속 질 것'이라는 문학에 사로잡힌 연인. 읽고 쓰는 일이 삶의 거의 전부인 연인. 그래서 그의 글은 자신의 연인에 대한 애정이 진득하게 묻어 있다. 물론 '평론가'이니 연인에게 칭찬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매운 말도 더러 하지만, 연인에게 내뱉는 말이 모두 그러하듯 그 말의 바닥에는 근본적인 사랑이 있다.

 

사려 깊은 연인이 그의 사랑을 어떻게 고백하는지, 또 어떻게 미안하다고 말하는지 알고 싶다면 <느낌의 공동체> 안으로 한 발을 슬며시 들여놓길 권한다.

 

- 컨텐츠팀 에디터 료(fololy@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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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사 바틀비> -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허먼 멜빌, 하비에르 사발라 | <필경사 바틀비> | 문학동네 | 2011

 

 

 

빽빽한 건물들로 빈틈없이 채워진 월 스트리트. 그 수많은 건물 중 하나에 아주 작은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한 인간이 있다. “창백하리만치 말쑥하고, 가련하리만치 점잖고, 구제불능으로 쓸쓸한” (25쪽) 모습의 ‘필경사 바틀비’. 그는 우선, “젊어서부터 줄곧 평탄하게 사는 게 최고라는 깊은 확인을 갖고” “편안한 은신처가 주는 유유(悠悠)한 평화로움 속에서 부자들의 채권이나 저당권, 등기필증을 다루며 안락하게 살”고 있는 변호사에게 고용된 피고용인이다. (8-9쪽)

 

그 외에 특이할 만한 사항이라면 법률문서를 필사하는 일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 그는 그저 자기에게 주어진 공간에서 “묵묵히 창백하게, 기계적으로 필사”를 계속할 뿐, 말도 행동도 거의 하지 않은 채 하루를 보낸다. 그러니 그를 고용한 변호사의 입장에서는 바틀비의 그런 모습이 다소 답답하게 느껴지긴 하겠지만 누구보다 성실히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처리하고 있으므로 큰 문제될 것이 없다. 오히려 피고용인으로서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인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렇게 근면하게 일하던 바틀비가 필경사라면 반드시 해야 할 검증 업무를 거부하기 시작한다. 그것도 매우 상냥하면서 단호한 목소리로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고 선언한 것이다. 일을 지시한 변호사는 당연히 당황하게 된다. 그러나 일말의 동요도 보이지 않는 그의 태도, 즉 차분하고 태연하며 ‘정상적으로 인간다운 데’라곤 찾아볼 수 없는 바틀비를 보며 변호사 또한 정상적으로 행동을 취하지 못한다. 다시 말해, 파업을 선언한 피고용인에 대한 ‘정상적인 조치’를 취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저 “정말 이상한 일이야”라고 생각할 뿐.

 

하지만 바틀비가 ‘안 하는 편을 택’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다 나중에는 필사 일까지 거부하게 되자 이런 상황은 달라진다. 당혹과 연민 등의 수많은 감정을 오고가며 지시와 질문, 설득과 포기를 반복하던 변호사가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사무실을 ‘점거’하고 있는 그를 남겨두고 사무실을 이전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월 스트리트의 건물 속, 아주 작은 공간을 점유하며 다른 사람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고용 관계, 사적 소유 등을 거부하던 바틀비는 결국 구치소에 갇히게 되고 그곳에서조차 아무 것도 먹지 ‘않는 편을 택’하며 죽음에 이르게 된다.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이와 같은 바틀비의 거부 선언은 <필경사 바틀비>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반복된다. 그러나 이에 대해 작가는 그 어떠한 설명도 덧붙이지 ‘않는 편을 택’한 것 같다. 그러므로 이를 읽는 독자들은 당연히 그를 고용한 변호사처럼 당황하고, 연민을 느끼는가 하면 끊임없이 질문하고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이 작품이 지니고 있는 의미와 가치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독자들이 바틀비의 행동에 대해 가질 수밖에 없는 왜? 라는 질문은 다시 독자 자신으로 돌아와 ‘왜 바틀비의 행동이 불가해한 것인지, 당연한 것은 과연 무엇이며 우리는 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 에 대한 사유를 촉발시킨다는 것이다.

 

관례와 상식을 벗어난 바틀비를 통해, 관례와 상식에 갇혀 ‘하지 않음’의 가능성과 이에 대한 선택 모두를 인지하지 못했던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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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뭐 읽니?] 낯익은 세상, 황석영

 

 

황석영 | <낯익은 세상> | 문학동네 | 2011 

 

제가 요즘 읽고 있는 책은 황석영의 <낯익은 세상>입니다. 지금 서점에서 예약판매 중인 바로 그 책이죠. 아, 이래서 서점 직원이 좋은 거겠죠? 아침 댓바람부터 웬 자랑이냐고, 너무 나무라진 말아주세요. 제가 보고 있는 건 증정본이라, 작가의 '친필 사인'은 없거든요.

 

황석영, 그의 이름만으로 이 책을 선택하시는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지난 해 <강남몽>을 통해 진정한 이야기꾼의 면모를 보여줬던 그는, 이 책을 통해 ‘강남’으로 상징되는 현재 자본주의의 추악한 모습을 들추어냈는데요. 남한 자본주의의 출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 그 형성사를 살펴보는 한편, 숨가뿐 근대화의 여정을 따라가며 개발시대의 욕망과 치부, 상흔들로 얼룩진 근현대사의 단면들을 소설 속의 인물과 사건들에 녹여내며, 작가로서의 뛰어난 역량을 여실히 보여줬습니다.

 

‘낯익은 세상’, 무엇이 낯익다는 걸까요? 힌트를 찾기 위해, 책의 마지막 부분을 펼치고, ‘작가의 말’부터 읽어봅니다.

 

"이제 자본주의는 세계의 운명인 것처럼 보인다. (…) 파국의 여러 징조가 보이는데도 꼭 잡고 계속해서 달려야만 한다. 내가 도시 외곽의 쓰레기장에 주목한 것은  지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현재의 삶이 끝없이 만들어서 쓰고 버리는 욕망에 의하여 지탱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보다 더 많은 생산과 소비는 삶의 목적이 되었고 온 세계가 그것을 위하여 모든 역량과 끝까지도 탕진한다. 그러므로 이 작품에 드러나 있는 풍경은 세계의 어느 도시 외곽에서도 만날 수 있는 매우 낯익은 세상이다. (…) 그것은 우리가 여기까지 달려오면서 만들어낸 세계이기 때문이다.” (233-234쪽)

 

작가의 말에서 드러났듯이, 도시 외곽의 쓰레기장, 여기가 바로 소설의 배경이 되는 공간입니다. 각 구역에서 몰려오는 쓰레기들이 한 데 모이는 곳. 그렇게 <낯익은 세상>은 그곳으로 향하는 모자(母子)의 모습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자기의 이름 따위 절대로 아무에게도 가르쳐주지 않”는, “이제 열네 살이지만 동네 골목에서는 두 살을 올려서 열여섯이라고 말하”고 다니는 ‘딱부리’와 그의 엄마는 아빠 친구의 소개를 받고 ‘꽃섬’이라 불리는 쓰레기 매립장으로 향해갑니다. 온갖 쓰레기를 뒤지며 그 쓰레기로 삶을 연명하기 위해 말이죠.

 

소설은 딱부리의 시선으로, 쓰레기 더미 옆에서, 쓰레기로 지은 오두막에서, 쓰레기를 주워 먹으며, 그 쓰레기 중에서 쓸 만한 것들을 주워 모르며, 돈을 벌어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또 다른 부분은 그가 바로 옆 오두막에서 사는 아빠 친구의 아들, ‘땜통’과 함께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땜통’이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파란 불’을 본다고 하는데요.

 

안타깝게도 제가 읽은 부분은 여기까지. 앞으로 어떤 내용이 전개될지, 그 내용을 통해 작가 황석영은 어떤 말을 우리에게 던져줄지, 무척이나 궁금해집니다. 그럼, 글은 이만 마치고 전 다음 페이지 읽으러 가보겠습니다. 총총~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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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설탕이 녹는 동안> - 스무 살의 정체

 

 
전경린 | <검은 설탕이 녹는 동안> | 문학동네 | 2002

 

 

생의 시간을 분절하는 단위인 ‘나이’ 중에서도 유독 큰 의미를 갖는 숫자가 있다. 첫 번째가 스물, 그 다음이 서른이다. 스물과 서른은 ‘청춘’을 표상하는 나이임에 틀림없다. 서른이 농익은 청춘이라면 스물은 이제 막 망울을 터뜨린 청춘일 게다. <검은 설탕이 녹는 동안>은 그 시작되는 청춘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몰랐고, 이 다음에 무엇이 되고 싶은지도 몰랐던 스무 살 여자애였다. 세상은 텅 비어 있었고 무엇을 해도 심심했고 아무것도 긍정할 수 없었다. 다만 아주 막연히 어딘가로 가고 싶었다." (7쪽)

 

시작되는 청춘에는 으레 성장통이 따른다. 생이란 너무도 사소해서 이걸 하든, 저걸 하든, 뭔가를 하든, 아무것도 하지 않든 차이가 없다 깨닫게 되는 순간 성장통은 스무 살에게 존재를 알린다. 자다가 느닷없이 다리에 쥐가 나듯, 예상치 못한 통증을 겪게 되는 것이다. 스무 이전의 이들에게 스무 살은 유예시켰던 자유 되찾는 지점이며, 무엇이든 있는 가능성 약속이다. 한편 스무 이후의 이들에게는 영화의 흔적만 남은 성터 같은 혹은 되새기기도 끔찍한 어젯밤의 악몽이다. 정작 스무 살의 실제는 어떠한가. 준비 없이 주워진 방대한 자유 무위에 대한 초조, 선택항이 너무 많은 가능성 사실은 어떤 선택도 없는 막막함으로 바뀌어 버린다. 웃는 낯을 하고서는 매질을 하는 셈이다.

 

"스무 살이란 원래 막막하라고 있는 나이 같았다. 확실한 건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있는 나이……" (83쪽)

 

스무 살 여름을 맞은 수련은 방학 동안 무엇을 하든 집 바깥으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엄마의 고함 소리와 위협적인 아버지의 침묵, 법석을 떠는 어린 동생들, 자궁암으로 앓아 누운 할머니, 집 안 곳곳에 밴 악취로 대변되는 수련의 집은 누구든 기어이 수돗가로 달려가 구역질을 할 만한 곳이다. 수련은 우연한 기회로 연극을 시작하게 되고 그곳에서 스물과 서른 사이 어딘가에 걸쳐 있는 사람들을 만난다

 

"성장은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수 없는 고독이며 비밀이다." (31쪽)

 

수련과 함께 연극을 하는 이들은 모두 어딘가 비틀린 삶을 살고 있다. 어쩌면 비틀린 삶이란 말은 옳지 않은지도 모른다. 어디에도 온전한 삶은 없으므로. 그렇게 그들은 좁고 더운 소극장 안에서 고독하고 비밀스러운 성장을 하고 있다. ‘이 세계에 대해 가정하지 않고, 이유를 묻지도 않으며 그냥 묵묵하게 사는어른들과는 달리 성장하는 청춘들은 세상 모든 것에 가정과 의문을 품은 채 여기저기 부딪히고 까져가며 지금을 살아낸다.

 

"누가 스무 살을 그 자체로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머릿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자신조차 모르는 무정형의 존재를……" (35)

 

내게 스무 살은 그 숫자가 가진 상징을 감당해야 한다는 이상한 당위에 빠지기 쉬운 나이였다. 세상이 멋대로 부여한 빛나는 나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경험을 가져야 할 것 같았다. 그것을 갖지 못한 나는 때로 초조하고 울적해졌다. 밀어도 가지 않는 시간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스무 살인 나는 스무 살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역시나 그것의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이제는 어렴풋하게 말할 수 있다. 스무 살은 스무 살 일뿐이라고. 그러니까 그것에 어떠한 주석도 달 수 없다고.

 

- 컨텐츠팀 에디터 료(fololy@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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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예뻤을 때> - 가장 아픈 시대에도 청춘은...



 

공선옥 | 내가 가장 예뻤을 때 | 문학동네 | 2009

 

 

(……)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주위 사람들이 숱하게 죽었다
공장에서 바다에서 이름도 없는 섬에서
나는 멋을 부릴 기회를 잃어버렸다

 

(……)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너무나 불행했고
나는 너무나 안절부절
나는 더없이 외로웠다

 

_이바라기 노리코, 「내가 가장 예뻤을 때」중에서

 

1980년 5월 18일 광주. 뜨거운 열망이 차가운 주검으로 변하던 그때, 그 기억의 언저리엔 언제나 절망과 슬픔, 분노가 흥건하다. 그리고 지금, 2011년 5월 18일. 어제가 오늘이 되고, 오늘이 다시 어제가 되는 사이 3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역사는 수많은 죽음을 들쳐 업고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니 그때, 그 기억의 주인은 더 이상 내가 아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기억을 쫓아 그때를 생각한다. 아픈 시간을 몸으로 견뎌온 그들을 상상한다. 그리고 그것이 시대의 아픔, 그 이유를 다르게 갖는 우리가, 아직 그 죽음의 빚을 갚지 못한 오늘의 역사를 끈질기게 추긍하는 미약한 방식이 될 것이다.  

 

그 길에 <내가 가장 예뻤을 때>가 놓여 있다. “꽃향기만으로 가슴 설레는, 그 고운 청춘의 시절에, 그러나, 나는, 그리고 해금이는, 해금이의 친구들은 참 슬펐다. 속절없이, 속절없이, 꽃향기는 저 혼자 바람 속에 떠돌다가, 떠돌다가 사라지고 나는, 해금이는, 해금이 친구들인 우리는, 저희들이 얼마나 어여쁜지도 모르고, 꽃향기 때문에 가슴 설레면 그것이 무슨 죄나 되는 줄 알고, 그럼에도 또 꽃향기가 그리워서 몸을 떨어야 했다”고 말하는, 그때 그들의 이야기가 있다.

 

 

 

 

 

거기에 “주위 사람들이 숱하게 죽었”고, “멋을 부릴 기회를 잃어버렸”으며, “너무나 불안했고” “너무나 안절부절” “더없이 외로웠던” 그때도, ‘청춘’, 그 이름만으로 아름다울 수 있었던 그들이 있었다. 친구가 죽고, 또 다른 친구가 죽어도, 엄마를 잃은 친구가 아빠 없는 아이의 엄마가 되어도, 대학생이던 친구가 공장에 취직을 하고, 고문을 당해도, 가슴 설레는 사랑 앞에서 그 떨림으로 웃고 울었던 청춘의 날이 있었다.

 

그리고 그 날들에 좌절과 절망, 분노를 비집고 나온 희망이 있다. “빛은 어둠 속에서 나온다는 거, 아름다움은 슬픔에서 나온다는 거, 모든 행복은 고통 뒤에 온다는” 걸 깨달아, “야만의 시간을 인간의 시간으로 바꾸”는 청춘의 발걸음이 보인다. 가장 아픈 시대에도 청춘은... 더없이 아름다울 수 있었다.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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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도> -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윤영수 | 귀가도 | 문학동네 | 2011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생각한다. 정신없이 지나온 하루. 스쳐간 순간들, 말과 표정, 사람들을 되짚어본다. 구태여 기억을 헤집을 필요는 없다. 점이라도 미리 찍어놓은 양, 머리는 마음이 떠나지 못한, 그때 그 자리로 잘도 되돌아간다. 흐르지 않고 멈춰 선 마음의 웅덩이, 거기에 아물지 않는 상처가 그대로 남았다. 얄궂은 기억이 자꾸 뒤를 보는 걸 막을 길이 없다. 곱씹을수록 아파도 마주하는 것 외에 달리 방도가 없는 것이다. 몸은 집으로 돌아가지만 마음은 상처로 되돌아간다. 상처에 갇힌 내가 길 위에 있고, 집에 당도하지 못한 마음은 아직도 그 길을 걷는 중이다. 집은 멀고 돌아가는 길은 고되다. 사는 게 뭐 이러냐.

 

윤영수의 소설집, <귀가도>에는 그렇게 삶의 상처와 슬픔을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인간 군상의 모습이 담겨 있다. 어릴 시절 재벌집 도련님의 모습과는 달리 허름한 집에서 수조 속의 잉어 한 마리를 키우며 사는 ‘석형’. 그는 위선과 위악에 찬 이죽거림으로 “층층의 높이와 칸칸의 경계가 엄연한 이 사회”에 어울리지 못하고 밀려난 자신을 방어한다. 그리곤 사각의 틀 수조 속에 갇혀 사는 잉어를 빗대어 “산다는 게 원래, 누군가로부터 어떤 식으로든 속박받는 일”이고, 이 세상과 가족과 자신에 갇혀있는 거라고 말하며,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고 고립된 자신의 삶을 변명한다.

 

석형 뿐만이 아니다. 딸의 죽음으로 남편과의 관계가 소원해진 여자, 일찍 부모를 여의고 하나 있는 언니마저 요양원에 있는 여자, 학교 폭력과 돈만 아는 아버지에게 상처 입고 방안에 틀어박힌 남자, 그런 쌍둥이 남동생을 지켜만 봐야 하는 여자, 시도 때도 없이 바람 피는 남편도 모자라 거동도 못하는 시어머니 병수발까지 들어야 하는 여자 등. 상처 없고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언제부터 뒤틀렸는지 기억하기조차 힘든 해묵은 관계들과 거대한 자본주의의 그늘 아래서 오늘 하루도 마음속에 작은 생치기 하나 없이 온전히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되냔 말이다.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석형을 옆에서 지켜보며 그의 아픔을 알아봐주고, 그 대신 사각의 수조를 벗어나 유유히 황허를 헤엄치는 잉어의 꿈을 꾸는 친구, 푼수 없이 온종일 웃고 떠들어 간혹 주위사람들을 피곤하게 하지만 그렇게 밝은 모습으로 오히려 타인의 어두운 마음까지 달래주는 이웃, 버스 옆자리에 우연히 앉았을 뿐이지만 짧은 순간에 사람의 따뜻한 체온을 느끼게 해준 낯선 여자가 그들의 삶 속에 들어와 이야기를 채운다. 그리고 이들이 있고서야 <귀가도>는 제 모습을 갖출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동행이 되어준 그들이 있어 귀갓길의 무거운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워진 듯 보인다.

 

누구에게나 상처는 있고, 그 상처를 홀로 품어야 한다는 외로움도 있다. 그렇게 자신에게 갇히는 순간들이 있다. 하지만 각자가 지니고 있는 그 상처와 외로움이 있기에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자신의 상처를 마주하듯, 타인의 아픔을 함께 하는 것, 그 ‘공존의 윤리’가 쓸쓸하고 외로운 길 위의 시간을 견뎌 마침내 집으로 돌아가게 하는 힘이 돼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을 갖고 세상에 나설 때야 비로소 체념과 비관을 넘은 긍정과 이해의 언어로, “사는 게 다 그런 거지”라고 기쁘게 읊조릴 수 있을 터이다.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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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씨> - 돈과 인간, 그 씁쓸함에 대하여

 

커트 보네거트 |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씨> | 문학동네 | 2010 

 


“꿀벌 이야기에서 꿀이 빠질 수 없는 것처럼 사람 이야기에선 돈이 빠질 수 없는 노릇이다.” (11쪽)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씨>를 시작하는 첫 문장에 잠시 멍, 해졌다. 꿀벌이 본능적으로 꿀을 찾듯 돈을 찾아나서는 사람들이라니. 만화에서 보았던 귀여운 꿀벌 캐릭터에 머리 부분만 실사인 사람 얼굴을 붙이고 팔랑 팔랑 돈을 향해 날아가는 모습을 상상해보니, 너무 웃긴다. 그런데 이게 또 우리의 현실이라고 생각하니 무턱대고 웃을 수만도 없다. 저 꿀벌의 머리에 제 얼굴을 갖다 붙이고, 밀려드는 서글픔과 씁쓸함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도대체 몇이나 되냔 말이다. 소위 말하는 상위 1%로가 아니고서야.


엘리엇 로즈워터씨, 그가 바로 상위 1%이다. 얼마 전 유행했던 드라마의 대사대로라면, ‘삼신할머니 랜덤 덕에 부모 잘 만난’ 사회지도층인 거다. 그가 가지고 있는 돈에 대해서 말할 것 같으면, “그 액수는, 어느 하루를 잡아 산정하자면, 1964년 6월 1일에 87,472,033달러 62센트였다. […] 이 흥미로운 액수에서 나오는 수입이 일 년에 삼백오십만 달러, 하루에 약 만 달러였다. 일요일도 포함해서.” 그러니까 일단 로즈워터씨는 자신의 통장에 잔고가 얼마나 있는지 모르는, 알아야 할 현실적인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 사람이 좀 이상하다. 말하자면 상위 1%로서의 체면은 아랑곳 하지 않고, 허구한 날 술 퍼먹기 일쑤이고, 실언과 기인한 행동도 서슴지 않으며, 갑자기 종적을 감추기를 반복하더니, 어느 날인가는 쇠락한 도시로 내려가 ‘더이상 자신을 보살필 능력조차 없는 버림받는 미국인’을 돌보겠다고 나선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성인” “광신도” “세례 요한”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러니까 로즈워터씨를 이상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그가 우리가 알고 있는 상위 1%의 그럴 법한 모습으로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는 부자들이 으레 그렇듯, 조상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불로소득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그 재산을 지키기 위한 수단에 열과 성을 다하며, 호화로운 저택에 가만히 앉아 풍요를 누리는 익숙한 모습을 로즈워터씨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가진 자로서 로즈워터씨가 가지고 있는 돈에 대한 또 다른 씁쓸함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한 줌밖에 안 되는 탐욕스런 사람들이 이 나라에서 관리할 가치가 있는 모든 것을 거머쥐고 관리하게 되었다오. 이렇게 해서 야만적이고 어리석고 완전히 부적절하고 불필요하고 유머 없는 미국 계급제도가 창출되었소. 정직하고 부지런하고 평화적인 시민들은 최저임금만 요구해도 즉시 흡혈귀로 분류되곤 했소. 그 이후로 칭찬은 언제나 엉성한 법망을 피해 범죄를 저지르고 막대한 돈을 챙기는 방법을 고안하는 자들의 몫이 되었소.” (19쪽)

결국 이 소설 속에서 자본과 계급의 불평등을 알고 진정한 사회지도층으로서의 의식을 지니고 있는 로즈워터씨는 미치광이, 정신병자 취급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면서 가지지 못한 자가 더 서글프고 씁쓸해지는 건, 우리의 진짜 현실이 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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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축복이 있기를, 닥터 키보키언> - 죽어도 다시 한 번

 

 

커트 보네거트 | <신의 축복이 있기를, 닥터 키보키언> | 문학동네 | 2011 

 


하얀색 날개를 달고 서 있는 커트 보네거트 씨가 보입니다. 두 손은 재킷 주머니에 찔러 넣고, 내려 쓴 안경 위로 보이는 두 눈이 뭔가를 응시하고 있는 걸 보니, ‘역시 그답다’라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됩니다. 폐부를 찌르는 날카로움을 재기발랄함과 엉뚱함, 유머와 재치로 유쾌하게 녹여내는 보네거트 씨말입니다. 문득 “유머는 인생이 얼마나 끔찍한지를 한 발 물러서서 안전하게 바라보는 방법이다.”라는 그의 말이 떠오르네요. 그의 입에서 튀어 나온 듯, 말풍선 안에 적혀 있는 책 제목 또한 그의 이런 유머를 담고 있는 것이겠죠?

 

“신의 축복이 있기를, 닥터 키보키언”

이 책은 그 키보키언 박사의 도움을 받아 임사 체험을 하며 사후세계 취재 기자로 나선 커트 보네커트의 가상 인터뷰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푸른 터널의 끝에서 천국의 문을 볼 수 있고, 그곳에 도착해 그 유명한 셰익스피어, 아돌프 히틀러, 메리 셸리 등의 인사들을 인터뷰하게 됐다는데요. 황당하면서도 기발한 상황 설정이 그다운 상상력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합니다. 사실 보네거트 씨는 스스로, 자신이 내세나 천국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거든요.

그는 “사후의 보상이나 처벌을 기대하지 않고 항상 품위 있게 행동하고자 노력해왔”던 인도주의자입니다. 그리고 이 인도주의자들은 신이 아니라 “그들에게 어느 정도 친숙한 단 하나의 추상적 실체, 즉 그들의 지역사회를 위해 최선으로 봉사하는 것에 만족”하는 현세를 충실히 살아가는 사람들이고요. 그런 그가 내세로 건너갔다니, 뭔가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미 죽었지만 다시 한 번 만나야 할 사람, 기억해야 할 혹은 잊지 말아야 할 사람이 있거나 그들을 만나 들어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던 거라고요. 

죽느냐 사느냐

이미 죽은 사람을 만났다지만, 사실상 그들에게서 보네거트 씨가 듣고자 하는 이야기는 살아생전의 ‘삶’에 관한 것입니다. 먼저 그가 처음 인터뷰한 인물인 메리 D. 에인즈워스 박사는 ‘생후 첫 일 년 동안의 모아 결속 또는 결속의 부재가 장기적으로 미치는 영향’에 대해 활발하게 연구했던 발달심리학자였는데요. 이는 곧 생애 초기에 어머니 같은 존재와의 애착관계가 성장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현재 그렇지 못한 사회의 현실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은퇴한 건설노동자이자 동물애호가였던 비아지니와의 인터뷰에서는 그의 말을 빌어, 사랑하는 애견을 지키려다 심장 발작으로 사망한 것이 ‘베트남전쟁에서 개죽음을 당하는 것보다는 낫다.’라는 자신의 의중을 드러내며 전쟁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을 제기합니다. 게다가 이와 같이 국가나 체제에 의해 자행되는 잔인한 폭력과 대량 학살의 문제는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인 애버리지니, 테즈메이니아인, 아돌프 히틀러 등의 이야기로 이어지며 그 비판의 날을 더 날카롭게 세우기도 하는데요.

다른 한편 커트 보네거트 씨는 국가 내부적 차원에 있어서도 법과 질서라는 미명 아래, 개인의 삶을 억누르고 짓밟았던 역사를 불러들이며 ‘현세의 삶’을 위해 우리가 맞서 싸우고 지켜내야 할 게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합니다. 다시 말해, 노예폐지론을 주장해 미합중국에 대한 반역죄로 교수형을 당했던 ‘존 브라운’과 초기에 노동조합을 조직한 운동가들을 법정에서 변호하고, 인종차별과 사형제도에 강력하게 반대했던 변호사 ‘글래런스 대로’, 미국의 주요 산업인 철도 부분에서 처음으로 성공적인 파업을 조직하고 이끌었던 ’유진 빅터 데브스‘ 등에 대한 인터뷰들은 모두, 이와 같은 맥락에서 오늘의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들의 흔적을 다시금 상기시킵니다.

말하자면 보네거트 씨는 인터뷰이를 소개하는 과정에서 그의 죽음을 이야기하고 그렇게 죽은 사람과의 인터뷰를 통해 당시의 삶과 사회의 모습을 현재로 불러 오는 것인데요. 그중에는 누구나 알고 있듯, 히틀러처럼 수많은 목숨들을 끔찍한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결국에는 죽음으로 내동댕이쳤던 사람도 있고, 존 브라운, 마틴 루터 킹, 글래런스 대로, 유진 빅터 데브스처럼 좀 더 나은 그들의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했던 사람들도 있습니다. 결국 삶과 죽음 사이를 오고가는 인터뷰어 커트 보네거트의 상황처럼, 삶에서 죽음을 묻고, 죽음을 통해 삶을 이야기하는 세상살이의 모습을 만들어내는 것이죠.

더욱이 이와 같이 삶과 죽음의 사이에서 그 의미와 가치에 대한 고민을 극대화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이 책의 기본 설정인 닥터 잭 키보키언이라는 인물과 임사 체험이 이루어지는 장소인 독극물주자 사형실입니다. 다시 말해, 실제로 삶을 마감하고 싶어 하는 말기 환자들 130 여명에게 치사 약물을 투여해 죽음을 도와주며 적극적 안락사를 찬성했던 키보키언 박사는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있는가 하는 안락사 논쟁의 이슈를 던져주는가 하면, 그가 임사 체험 동안 누워 있었던 사형실의 침대와 그 공간의 존재 자체는 어떤 이유에서건 인간이 다른 인간을 죽이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하는 사형제 존폐에 대한 고민으로 우리를 이끈다는 것입니다.

역시 커트 보네거트 씨.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 고민해야 할, 죽음에 대한 민감한 이슈들을 잘도 한자리에 묶어 놓았죠? 아주 짧은 분량의 책으로 아주 무거운 고민거리를 안겨준 그대에게, “신의 축복이 있기를, 커트 보네거트 씨” 당신은 사후세계에서 제가 반드시 한 번은 인터뷰하고 싶은, 죽어도 다시 한 번은 만나보고 싶은 첫 번째 유명인사가 되셨습니다.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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