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에 해당되는 글 52건

  1. 2012.05.31 [접어놓은 구절들] 아니 에르노, 《칼 같은 글쓰기》
  2. 2012.05.21 [에디터의 북카트] 현선의 5월 21일 북카트
  3. 2012.05.11 [단편소설의 맛] 이영훈, <모두가 소녀시대를 좋아해>
  4. 2012.04.10 [요즘 뭐 읽니?] 박범신, ≪은교≫
  5. 2012.04.02 [단편소설의 맛] 백수린, <밤의 수족관>
  6. 2012.03.22 [접어놓은 구절들] 파올로 조르다노, ≪소수의 고독≫
  7. 2012.02.03 [단편소설의 맛] 김유진, <나뭇잎 아래, 물고기의 뼈>
  8. 2011.12.28 [단편소설의 맛] 손보미, <폭우>
  9. 2011.12.06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 흩어진 기억들을 더듬어 나를 찾아가는 길
  10. 2011.11.24 <희랍어 시간> - 내가 당신에게로 가도 괜찮겠습니까

[접어놓은 구절들] 아니 에르노, 《칼 같은 글쓰기》

 

 

아니 에르노 | 《칼 같은 글쓰기》 | 문학동네 | 2005

 

“나는 글을 씀으로써 내 모든 지식뿐 아니라 교양, 기억 등이 모두 연루된 어떤 작업을 통해, 외양을 넘어서 나 자신을 세상에 투사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련의 작업은 하나의 텍스트로, 따라서 타인들에게로 귀착되지요. 그들의 수가 얼마나 되느냐 하는 것은 내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작업’과는 완전히 반대됩니다. 내가 어떤 것에서 치유되어야 한다면, 내게 그 치유는 오직 언어에 대한 작업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전달하는 작업, 즉 하나의 텍스트를 타인에게 증여하는 작업을 의미합니다. 타인이 그것을 받아들이든 거부하든 상관없습니다.” (79쪽)

 

글을 씁니다. 지금도 쓰고 있습니다. 쓰면서 생각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 그러나 그 모든 생각의 기저에, ‘나’가 있습니다. 글을 쓰고 있는 ‘나’, 쓰면서 생각하는 ‘나’, 그 이전의 ‘나’. 나는 ‘나’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나’에 대해서만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또, 글을 쓰다 정작, 그 ‘나’가 드러나기 시작하면 멈칫 하며 뒤로 물러서게 됩니다. 내가 ‘나’이기 때문에 알고 있는 ‘나’를 남들에게 있는 그대로 보일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니 에르노의 글을 읽으면서, 덧대고 포장되지 않은 채 맨몸으로 언어화되어 있는 ‘아니 에르노’를 보게 됩니다. 자신이 부끄러워하는 것과 그것을 부끄러워하는 자신 모두를 드러냄으로써, 부끄러움이라는 주관적 감정의 바깥에서 객관적으로 존재하게 된 한 사람으로서의 그녀를 발견하게 됩니다. 어떤 시·공간이라는 조건 하에서만 현실일 수 있는 ‘아니 에르노’가 모두의 ‘그녀’가 되고, 또 내가 되어갑니다. 그렇게 자신을 세상에 투사해 스스로가 하나의 텍스트가 된 ‘한 사람’이 타인인 ‘나’에게로 귀착되어 옵니다.

 

‘나’는 아니 에르노의 글에 대해 글을 쓰면서 글을 쓰고 있는 ‘나’, 글을 쓰고 있을 ‘나’에 대해, 다시, 생각합니다.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 (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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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북카트] 현선의 5월 21일 북카트

 

 

언제부턴가 만사에 심드렁해졌다는 느낌입니다. 그러니까 요즘의 저는 이래도 흥, 저래도 흥 아니면 이래도 쳇, 저래도 쳇입니다. 뭔가, 열정이 부족하달까요. 원인은 아무래도 극과 극을 오갈 뿐 중도를 모르는 제 성격 탓인 것 같은데요. 극으로 치닿는 열정이 힘들어 놓아버리고선 막상 불끈불끈 하는 감정이 줄어들고 나니 그 삶이 또한 권태롭게 느껴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번에 고른 책이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이고요.

 

 

아니 에르노 | 《단순한 열정》 | 문학동네 | 2006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작가 자신이 연하의 외국인 유부남과 사랑에 빠졌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 소설인데요. 매순간이 오로지 한 남자의 생각으로만 가득 찬 여자의 내면 서술을 통해 이제는 사라져버린 열정과 욕망의 흔적을 기억으로 증언하고 이를 질문하며 끝내는 이별해 화해에 이르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책입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빠지는 것만큼 열정을 필요로 하는 일도 없으니, 아니 에르노의 시간을 경유하며 제 삶의 어디쯤에 있었던(있을) ‘단순한 열정’ 또한 꺼내볼 수 있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다음으로 담은 책은 《단순한 열정》의 짝꿍이라고 할 수 있는 필립 빌랭의 《포옹》입니다. 아니 에르노의 실제 연인이기도 했던 필립 빌랭은 《단순한 열정》의 방식을 차용해 그녀와 나누었던 5년간의 사랑을 이 소설에 기록했는데요.

 

 

필립 빌랭 | 《포옹》 | 문학동네 | 2001

 

아버지가 읽고 있던 《단순한 열정》이 계기가 되어 독자와 작가로 만났고 이후 연인 사이가 되고나서는 필립 빌랭 자신이 《단순한 열정》에서의 아니 에르노의 입장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를 깨닫고 이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한 거고요. 그러니 두 작품을 함께 읽으며, 기다리는 사람에서 기다리게 하는 사람으로 자리를 옮겨간 아니 에르노의 모습을 보는 색다른 재미도 느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고른 책은 최정례의 시집, 《레바논 감정》입니다. 이건 제 짝꿍 희진씨가 “언니가 좋아할 것 같은 시집이에요.”라고 추천해준 책인데요. 책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다들 아시겠지만 다른 사람에게 그이가 좋아할 만한 책을 추천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게 아주 미세한 감각과 감정과 기억의 차이로 수만 갈래의 감상을 낳는 ‘시’인 경우라면 더더욱 그렇고요.

 

 

최정례 | 《레바논 감정》 | 문학과지성사 | 2006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의 추천만으로, 그것도 시집을 덥석 골라 집은 이유는 그 사이 우리가 나누었던 대화에서 서로에 대한 이해가 살포시(?) 드러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요. 일하는 도중에 희진씨가 종종 네이트온을 통해 전해주던 시 선물이 죄다 좋았던 지라 일단 일말의 의심은 버려두고 과감하게 선택해볼까 합니다. 물론 한편으론, '어디, 희진씨가 나를 얼마나 알고 있는지 두고 보자' 하는 심리도 없진 않습니다. 헤헷, 농담입니다, 희진씨!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 (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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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의 맛] 이영훈, <모두가 소녀시대를 좋아해>

손보미, 김미월, 황정은, 김이설, 정소현, 김성중, 이영훈. 이게 다 무슨 이름일까요? 문학동네에서 주관하는 제3회 젊은작가상 수상자들입니다. ‘내가 우리나라 소설 좀 보지’라고 생각하는 분들이라면 김미월, 황정은, 김이설은 익숙할 겁니다. 본인 이름으로 적어도 세 권쯤은 발표한 작가들이니까요. 김성중까지 안다면 당신은 신인의 등장을 꽤나 두루 살피는 분이겠네요. 이 작가는 작년에 첫 단편집을 발표했습니다. 이제 세 사람 남았나요? 손보미, 정소현, 이영훈. 이들을 안다면 셋 중 하나겠습니다. 친인척 및 지인이거나, 문예지를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문예창작과 학생 혹은 관계자이거나, 지난 4월 말에 출간된 《2012 제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발 빠르게 읽은 소수정예 독자이거나.

 

국내 문학을 향유하는 층이 그만큼 좁습니다. 세계문학 깨나 섭렵한다는 독서가들도 ‘한국 소설은 재미없어.’라며 외면하는데요. 그 이유가 물론 내부에도 있겠지만 이미 그렇게 굳어진 외부의 분위기 또한 높은 벽입니다. 이른바 베스트 작가가 아니면 갓 등단한 신인들에게는 가혹한 환경이지요. 그런데요. 모르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재밌는 소설이 많은데! 제가 이 더운 날에 자판을 두드려가며 열을 올릴 정도로 말이죠. 기왕 열 받은(?) 김에 셋 중 한 사람을 소개합니다. 대상 수상자이자 [단편소설의 맛]에서도 소개한 바 있는 손보미는 열외. 정소현과 이영훈이 남았는데요. 후자로 하겠습니다. <모두가 소녀시대를 좋아해>라는 제목에 호기심이 생겼거든요. (정소현은 다음 순서가 되겠네요.) 어떤 이야기인지 맛을 한 번 보죠.

 

집요하게 비를 뿌리는 11월의 하늘을 향해 일곱 개의 다리가 뻗쳐 있었다. (251쪽)

 

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엉덩이의 힘을 풀었다.

신분증이 달콤하게 몸 밖으로 흘러나왔다. (279쪽)

 

《2012 제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중에서

 

때는 G20 세계정상회의를 개최한 11월, 장소는 “그녀 회사에서 가까운 삼성역”입니다. 남자는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소개 받은 그녀에게 “정식으로 교제 신청을 할 생각”으로 역 근처 아케이드의 식당을 예약합니다. 남자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결혼 상대로서 소녀시대의 혜영처럼 만만한 것이 마음에 들 뿐이지요. (이 소설에서 소녀시대는 우리가 익히 아는 S모 회사의 걸그룹과 유사하지만 멤버들의 이름이 다릅니다. 혜영은 그 중 가장 평범한 외모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헌데 문제는 그녀가 아닙니다. 바로 변의(便意)죠. 한 시간 늦는다는 그녀를 기다리는 동안 복통이 시작된 겁니다. 하지만 아케이드 내의 화장실은 보안상의 이유로 G20 세계정상회의 개최 기간 동안 폐쇄된 상태. 남자는 소녀시대의 입간판 앞에서 마주친 경찰관과 함께 필사적으로 화장실을 찾아 나섭니다. 저 마지막 문장을 보면 아시겠지만 결국 똥을 싸긴 쌌어요. 과연 어디에?

 

일견 우스꽝스러운 이 소동극에는 칼날이 숨어 있습니다. G20 세계정상회의가 자아내는 도시의 분위기가 그렇고, 서로의 조건을 조율하는 관계가 그렇고, 자신의 변의조차 제때 해결할 수 없는 부자유가 그렇죠. 어쩌면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현실이기도 합니다. 작가는 경찰관(을 자처하는 인물)의 입을 빌려 “그렇잖아요? 여기 어디서 대충 똥 싸도 되고, 굳이 만만한 사람에게 청혼하지 않아도 되고. 원래는 그런 거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못 하잖아요? 그래서 소녀시대 좋아하는 거 아니에요? 모두가 아무것도 만만하지 않으니까. 이것저것 못 하는 게 너무 많으니까. 그렇지만, 좋아하는 건 공짜니까. 그래서, 그렇게 소녀시대가 좋은 거 아니에요?”라고 일침을 가합니다. 모두가 소녀시대를 좋아하는 지금, 우리는 사실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 걸까요. 작가노트에 “소설의 배경이 되는 곳을 다시 한번 찾아갔다. 아케이드를 걷는 사람들은 모두 즐거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런 게 요즘 사람들의 표정이란 걸 생각하니 어쩐지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라고 적고 있는 작가에게 그 답을 구해도 좋겠습니다.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hebong2000@bandinlunis.com)

 

 

 

* 이영훈

1978년 서울 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2008년 문학동네 신인상에 단편 <거대한 기계>가 당선되어 등단.

 

* 현재까지 발표 작품

<거대한 기계> | 《문학동네 2008년 가을호》

<모두가 소녀시대를 좋아해> | 《문학동네 2011년 봄호》

《2012 제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 문학동네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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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뭐 읽니?] 박범신, ≪은교≫

 

박범신 | ≪은교≫ | 문학동네 | 2010

 

소설은 이적요 시인이 죽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노트에서 시작한다.

 

“아, 나는 한은교를 사랑했다.”
“서지우를 내가 죽였다.”

 

삶의 끝자락에 깊이 박힌 두 개의 사건, 사랑과 살인. ≪은교≫는 이 두 가지에 관한 고백 혹은 자백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순아홉 살의 늙은 노인이 이제 겨우 열일곱 살이 된 소녀를 사랑했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자신의 노년을 살뜰하게 보살펴준 젊은 제자를 살해하기까지? 독자는 당황한다. 소설 속에서 그의 노트를 대신 읽어주는 변호사 Q가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그 누구보다 당황했던 건 다름 아닌 이적요 시인 당사자. 노년에 다다른 생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은 욕망은 강렬했고, 그 덕에 그가 살아온 긴 세월의 날들은 그저 헛수고에 지나지 않게 돼버렸으니. 그러니까 이적요 시인의 사랑과 살인 앞에 놓인 왜?와 어떻게?라는 물음은, 독자 이전에 이적요 시인 스스로에게 주어진 것이다. ‘은교를 만나고 세상이 무너져버린’ 노시인이 죽음 직전에 삶을 정리하며 남길 수 있는 마지막 언어란 결국, 그렇게 자신조차 이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스스로를 스스로에게 먼저 설명해주는 것이었을 테니.   

 

“한 소녀가 데크의 의자에 앉은 채 잠들어 있었다.

 

(…) 등나무로 엮어 만든 내 흔들의자에 소녀가 아무렇지 않게 놓여져 있다. ‘놓여져’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 열대엿 살이나 됐을까. 명털이 뽀시시한 소녀였다. 턱 언저리부터 허리께까지, 하오의 햇빛을 받고 있는 상반신은 하?다.

 

쇠꽃별처럼.

 

(…) 눈썹은 소복했고 이마는 희고 맨들맨들, 튀어나와 있었다. 소녀가 아니라 혹 소년인가. 짧게 커트한 머리칼은 윤이 났다. 갸름한 목선을 타고 흘러내린 정맥이 푸르스름했다. (…) 팔걸이에 걸쳐진 양손과 팔은 어린아이의 그것만큼 가늘었다. 콧날엔 담방울이 송골, 맺혀 있었다. (…) 애처로워 보이는 체형에 비해 가슴은 사뭇 불끈했다. 한쪽 가슴은 오그린 팔에 접혀 있고, 한쪽 가슴은 오히려 솟아올라 셔츠 위로 기웃, 융기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라고 나는 말하지 않을 작정이다. 가능한 대로 나는 ‘사실적’으로 고백하고 싶다. 보고 만질 수 있는 말들의 조합을 사실적 문장이라고 한다는 것은 너도 알 테지. 네가 순결하고 착하고 싶고 빛난다고 나는 늘 생각해왔지만, 그렇게 모호한 어휘들로 내 사랑을 설명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내가 왜 네게 빠지게 됐는가를 종일 생각하다가 먼저 떠오른 것은, 너의 손이다.

 

 내가 처음 보았던 너의 손은,

 

 우리 집 데크의 내 흔들의자 팔걸이에 자연스럽게 놓여져 있었다. 네가 산책하던 중 내 집에 들어왔다가 무심히 그 의자에 앉아 잠든 날 보았던 손이다. ‘놓여져’ 있었다는 내 표현에 주목해다오. 그것은 네 의지로 네가 내려놓은 손이 아니었다. 우연히, 그곳에 놓여져 있었다. 소나무 잔가지 흰 그늘이 정물 같은 너의 손등 위에서 고요히 그네를 타고 있었지. 상앗빛 손가락들은 아주 가늘었고 손등엔 수맥처럼 연푸른 핏줄이 가로질러 흘렀다. 너의 팔목은 겨우 손가락보다 조금 굵은 것 같았어. 나는 한참이나 그것을 세세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팔목으로부터 장지와 약손가락 사이로 흘러가는 핏줄은 도드라져 보였지. 지금이라도 네 손등 위의 그 핏줄을 살펴보렴. 그 핏줄 가운데쯤, 작은 매듭 같은 부분이 있을 게야. 마치 어린 새싹처럼 살짝 솟아오른 피돌기 부분. 내 가슴이 갑자기 두근거리기 시작한 것은 핏줄의 그 매듭이 뛰고 있다고 알아차렸을 때였다. 나는, 환호했다. 그 손등 위의 맥박은,

 

 울근불근,

 

 아주 고요하면서도 힘차게 뛰고 있었다. 네 심장이 뛰고 있는 것 같았지. 아니, 쌔근쌔근 바람 부는 네 코의 피리, 푸르스름하고 가지런한 네 속눈썹 그늘의 떨림, 맑은 물 고인 네 쇄골 속 우물, 오르락내리락 시소를 타고 있는 네 가슴의 힘찬 동력, 휘어져서 비상하는 네 허리의 고혹을 나는 보고 느꼈다. 내가 평생 갈망했으나 이루지 못했던 로망이 거기 있었고, 머물러 있으나 우주를 드나드는 숨결의 영원성이 거기 있었다. 네가 ‘소녀’의 이미지에서 ‘처녀’의 이미지로 둔갑하는 순간이었다.”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 (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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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의 맛] 백수린, <밤의 수족관>

저는 소설을 씁니다. [단편소설의 맛]에서 말하자니 커밍아웃을 하는 기분인데요. 정확히는 지망생입니다. 그래서 쓰는 사람의 눈으로도 소설을 읽게 됩니다. 이야기의 얼개를 머릿속에 그려 본다거나, 탐나는 문장을 필사한다거나, 묘사나 서사의 문제를 생각합니다. ‘탐난다’라는 표현을 썼는데요. 훔쳐서라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을 정도의 소설이 있다면, 소설에 가 닿지 못해 자괴감에 빠지는 내가 있습니다. ‘탐난다’는 그런 상태에 대한 은유라고 할까요. 말 한 번 참 어렵게 하죠잉? 무언가를 설명하는 일이란 게 그렇습니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대상이라도 어디부터 말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하물며 공백은 어떨까요. 이를테면 텅 빈 공간, 부재하는 마음, 타인의 무표정 같은 것들.

 

백수린은 그러한 공백의 풍경을 자신만의 언어로 형상화했습니다. <밤의 수족관>에서요. 이 소설에는 톱스타와 비밀결혼을 한 ‘나’가 등장합니다. 그들 사이에는 ‘아이’가 있습니다. ‘나’는 톱스타와 식사 약속을 한 레스토랑 건너편 아쿠아리움에서 ‘아이’를 잃어버립니다. 그리고 소설이 끝날 때까지 ‘아이’를 찾아 헤매지요. 혹시 아침드라마 같은 줄거리라고 생각하시나요? 하지만 이 소설은 그것과는 종류가 다릅니다.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을 읽어 보시죠.

 

우리는 아쿠아리움의 수족관 사이를 거닐며 시간을 때우고 있어. (311쪽)

 

내 아이는 도대체 지금 어디에 있다는 말입니까. (330쪽)

 

《문학동네 2011 겨울》

 

<밤의 수족관>은 ‘아이’를 잃은 슬픔에 빠진 엄마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였던 주어가 ‘나’와 ‘아이’로 분리되기까지, 배경의 대부분은 아쿠아리움입니다. 그 공간에서 ‘나’가 느끼는 혼란은 꼭 사랑(처럼 유일무이한 존재)을 상실한 이와 닮아 있습니다. “나는 곧이라도 물고기들을 움켜쥘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허공으로 손을 뻗어봐. 그렇지만 막상 손에 닿는 것은 차가운 유리벽이지. (…) 나는 허망한 마음으로 발걸음을 멈춰. 박제된 심해어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어.”와 같은 독백은 그런 상태를 대변합니다. ‘나는 ‘아이’는 인물이 아니라 은유적인 장치에 가깝습니다. 그러니까 ‘아이’의 엄마가 되어 본 적 없는 저도 ‘나’와 모종의 동질감을 느끼는 것이겠지요.

 

백수린은 신춘문예 당선 인터뷰에서 “소설을 통해 거대 서사에 가려진 개인들을 호출해내고, 개인사를 복원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됐다. 소설이란 것이 개인이 느끼는 세밀한 감각, 생각, 기억 같은 것들을 통해 우리가 어쩌면 끝내 포착할 수 없을 ‘인간’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해줄 무엇인 것처럼 느껴졌다. 경계에 놓인 이름 없는 존재들에 관심이 많다. 그런 존재들에게 이름을 찾아주고 싶고, 인간에 대해 잘 이야기할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다”라는 포부를 밝혔는데요. 작년에 갓 등단한 신인이고, 아직은 문예지에서만 그 이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만, 저는 쉽게 잊지 않을 것 같습니다. 포부대로 나아가고 있는 이 소설이 탐나니까요!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hebong2000@bandinlunis.com)

 

 

* 백수린

1982년 인천 출생. 201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되어 등단.

 

* 현재까지 발표 작품

<거짓말 연습> | 《2011 신춘문예 당선소설집》 게재

<기도> | 《2011 신춘문예 당선자 새소설》 게재

<감자의 실종> | 《현대문학 2011.04》 게재

<밤의 수족관> | 《문학동네 2011 겨울》 게재

<폴링 인 폴> | 《창작과비평 2011 겨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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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어놓은 구절들] 파올로 조르다노, ≪소수의 고독≫

 

파올로 조르다노 | ≪소수의 고독≫ | 문학동네 | 2012

 

"결과의 무게는 낯선 존재가 곁에서 자고 있는 것처럼 늘 거기 있었다. 점점 더 중독에 가까워지는 잠 속에, 꿈으로 점철된 무거운 잠 속에 빠져 있을 때조차 그것은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338쪽)


어떤 행위의 결과들이 나를 짓눌러 올 때가 있다. ‘또, 저질러버렸다. 혹은 결국 이렇게 돼버렸다.’ 생각될 때, 이제는 주워 담을 수 없는 것들에 대한 회한의 감정이 속으로부터 차올라 목구멍을 조여 오는 듯하다. 분명 내가 한 일인데, 그 결과가 나에게 부과하는 무게는 피하고만 싶어지는 것이다. 그럴 때, 그 모든 것으로부터 도피하고자 가장 쉽게 선택할 수 있는 게, 잠이다. 인과의 관계를 곱씹으며, 그러나 되돌릴 수 없음을 반복적으로 자각하게 하는 의식을 내려놓는 것이다.

 

하지만 잠은, 그리고 꿈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결과는 늘 거기 그 자리에만 있고, 그것은 ‘점점 더 중독에 가까워지는 잠 속에, 꿈으로 점철된 무거운 잠 속에 빠져 있을 때조차’ 나를 지켜보고 있다. 태어남과 동시에 죽어버린 부동(不動)의 존재가 바로 결과인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깨어나 마주해야만 한다. 중독과 같은 잠을 버리고, 점점 더 공기가 희박해지는 이 곳, 결과의 지옥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그 길은 단 하나. 결과를 다시 원인화하는 것, 그 결과로부터 또 다른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

 

아, 이런. 결국 생(生)이란 결과라는 톱니를 달고 죽음이라는 최후의 결과를 향해 끈질기게 굴러가야만 하는 바퀴인 건가.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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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의 맛] 김유진, <나뭇잎 아래, 물고기의 뼈>




특정 상황이 읽고 있는 책을 규정하기도 합니다. 나의 감정을 너(책)에게 투사하기 때문입니다. 바꿔 말하면, 너의 감정이 나에게도 전해온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연애 중인 이들이 ‘사랑 노래를 들으니 다 내 얘기’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지요. 작년 여름, 저는 그런 책을 읽었는데요. 오랜 투병 생활 끝에 숨을 거둔 할아버지의 장례식, 발인 이후 집에 머물었던 며칠 동안이었습니다. 김유진의 《숨은 밤》이라는 소설. 표지에 이끌려 아무런 정보 없이 구입한 책이었습니다. 《숨은 밤》은 서점을 나선 후 부고를 듣자마자 고속터미널로 내달렸던 저를 뜻하지 않게 따라왔습니다. 그날부터 긴 독서가 시작되었습니다. 술술 읽히지는 않았습니다. 공교롭게도 삶과 죽음의 형상을 말하는 소설이었고, 저는 가족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중이었으니까요. 무엇보다도 쉽지 않았던 것은 김유진의 방식이었습니다. 이야기의 근간이 서사라면 독자는 그것을 곧이곧대로 따라갑니다. 보통은 그런 소설에 익숙해져 있지요. 김유진은 달랐습니다. 삶의 모호함을 있는 그대로 풀어 놓습니다. 순간을 늘이거나 대화를 압축하지 않습니다. 플롯 같은 것도 빌려오지 않습니다. 어떤 장면은 앞선 과거 같기도 한낱 꿈같기도 합니다. 이들에 대해 굳이 설명하지 않습니다. 손쉬운 외피를 입지 않은 날것의 감정은 고스란히 직격탄이 되었고, 저는 그만큼의 마음을 투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오랫동안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347쪽)

 

언니는 곧 육교를 향해 가볍게 뒤돌아서 갔다. (358쪽)

 

《문학동네 2011 여름 (67호)》중에서

 

힘들어, 힘들어 죽겠다고! 《숨은 밤》으로 몇 권 분량의 감정을 소모하자 다른 소설을 읽어 볼 엄두를 못 내겠더군요. 하지만 독서는 순환의 궤를 그립니다. 저는 돌고 돌아, 한 문예지에서 김유진의 자전소설을 접했습니다. 《숨은 밤이 날카롭고 뾰족한 것들만 모아 둔 봉지라면 <나뭇잎 아래, 물고기의 뼈>는 모서리가 마모된 조각들 같습니다. 그럼에도 무심코 가져간 손끝에 피가 묻어나는 것은 왜일까요. ‘한 사람의 죽음’을 ‘가볍게 뒤돌아서 갔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 아닐까요. 첫 문장의 사유와 마지막 문장의 회상 사이에는 두서없고 나른하며 무심하기까지 한 감정이 흐릅니다. 화자는 도통 자신의 심정을 꺼내 보이지 않지만 이 조각들을 만지고 있자니 조금은 알겠습니다. 김유진이 느꼈을 슬픔, 말하고 싶은 죽음의 모호함을요. 삶과 죽음의 문제는 결국 선명하게 만져지지 않습니다. 다만 이것이 ‘모두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서서히 받아들였다.’(358쪽)고 말할 수는 있겠지요.

 

글쓰기 방식은…… 일단은 첫 문장과 끝 문장을. 근데 제가 구상이라고 하는데 뼈대를 적어 놓는 거라면, 저는 포인트로 찍고 싶은 문장들을 적어 놓는다거나, 그러니까 흐름을 따라간다는 것이 이야기의 흐름을 따른다는 것보다는 그런 쪽을 따라가는 경우가 많았어요. 저는 제 안의 논리가 있죠. 이미지의 논리라거나 문장의 논리 같은 것들을 따라가기 마련이죠. (…) 서사를 따라가는 구조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 근데 이 책을 너무 쉽게 읽는 사람들이 있어요. 자신이 갖고 있던 (고정관념을 잠시 버려두고) 편안하게 읽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것을 약간 버린다면 다른 재미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출처 : 문장웹진 11월호)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hebong2000@bandinlunis.com)

 

* 김유진
1981년 서울 출생. 명지대 문예창작과 졸업. 2004년 문학동네신인상에 단편 <늑대의 문장>이 당선되어 등단. 소설집 《늑대의 문장》, 장편소설 《숨은 밤》이 있다.

 

* 현재까지 발표 작품
《늑대의 문장》 | 문학동네 | 2009
《숨은 밤》 | 문학동네 | 2011

<눈 위의 발자국> |《사랑해 눈》 게재

<희미한 빛> | 《제1회 웹진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 게재

<여름> | 《제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게재

<나뭇잎 아래, 물고기의 뼈> | 《문학동네 2011 여름 (67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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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의 맛] 손보미, <폭우>


책을 읽고 나면 머릿속에 박히는 것이 있습니다. 김훈의 <칼의 노래>에서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와 같은 첫 문장이 그렇습니다. 이야기의 시작인 동시에 폐허가 된 땅을 암시하지요. 마음 깊이 가라앉는 것도 있습니다. 황정은의 <百의 그림자>에서 ‘노래할까요.’와 같은 마지막 문장이 그렇습니다. 이야기의 끝인 동시에 동시대의 연인에게 보내는 작은 기원 같습니다. 이렇듯 문장이 남긴 인상을, 저는 ‘맛’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비단 장편소설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앞으로 문예지와 기타 매체에 갓 게재된 단편소설을 함께 읽어 보려고 합니다. 문장의 ‘맛’과, 그것을 요리한 작가들을 소개하겠습니다.

첫 번째로 소개할 작품은 손보미의 폭우입니다. 먼저 ‘맛’을 잠깐 볼까요?

그녀의 남편은 전자제품 상점의 판매원이었는데, 어느 날 손님이 없는 매장을 어슬렁거리다가 갑자기 넘어졌다. (324쪽)

미스터 장은 인스턴트커피를 한 모금 마셨고, 자신이 누리고 있는 이 평안한 삶에 감사했다. (344쪽)


폭우
의 처음과 마지막 문장입니다. ‘그녀’와 ‘남편’의 이야기에서 시작해 ‘미스터 장’의 이야기로 끝나는 대목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폭우에서는 각기 다른 인물의 이야기들이 동시에 전개됩니다. 일견 관계없는 그들이지만 결핍된 데가 있다는 점에서 맞닿아 있기도 합니다. 폭우에 시야가 가려진 듯 곁에 있는 이들과 소통하지 못하는 인물들이지요.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손보미의 문장은 이들에게 거리를 둡니다. 호흡이 길고, 사이사이에 쉼표가 등장합니다. 어찌 보면 감정이 제거된 듯도 보입니다. 하지만 오히려 저는 감정을 비워둔 그 자리에 스스로를 이입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야 해.’라기보다는 ‘그냥 이런 게 있어.’라며, 결핍의 단면을 덤덤하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손보미는 미국 소설을 통해 문학을 접했고, 평소 전기문을 즐겨 읽는다고 합니다. 살아온 이야기들을 접하는 것이 흥미롭고, 누군가가 자신의 소설을 읽어주었을 때 그런 느낌을 받았으면 한다고요. 소설을 쓸 때는 등장인물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답니다. 등장인물이 되기보다는 주변을 맴돌며 찬찬히 지켜본다는 뜻이겠지요. 폭우를 이루는 문장의 기원을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해를 위한 거리 두기. 일상 속에서도 때때로 필요한 태도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hebong200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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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 흩어진 기억들을 더듬어 나를 찾아가는 길

 

 

파트릭 모디아노 |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 문학동네 | 2010

 

 

‘나’는 기억 상실자다. 지난 8년간 ‘C. M. 위트 흥신소’에서 ‘기 롤랑’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았다. 몇 시간 전 그 흥신소가 묻을 닫았다. 함께 일하던 ‘위트’, ‘나’에게 기 롤랑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그는 고향으로 떠났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기 롤랑’이 아닌 나를 알지 못한다. 진짜 내 이름이 뭔지, 어떤 이름으로 어떻게 살아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소멸한 과거, 잃어버린 삶의 흔적”, 그 안에서 ‘나’는, 도대체 나는 누구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날 저녁 어느 카페의 테라스에서 나는 한낱 환한 실루엣에 지나지 않았다.” (9쪽)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는 기억 상실자인 한 남자가 자신의 과거를 추적해 가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는 그가 어떤 사람을 찾아가 그의 기억을 묻고, 그 기억으로 다시 또 다른 사람을 찾아가는 과정의 반복이다. 한 사람의 삶에는 또 다른 사람의 삶의 일부가 겹쳐져 있고, 그 삶들은 기억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렇게 한 사람의 삶이 그가 과거에 맺어온 관계들 안에서 조각난 기억으로 흩어져 존재한다.  

 

그런데 그 기억이란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끝내는 그 사람의 죽음과 함께 영원히 사라져버리고 만다. 어딘가에 남겨져 있을 과거의 주소와 전화번호, 사진 등의 기록은 단지 그 사람의 한때를 증명할 뿐, 인생 전체를 드러내 보여주진 못한다. 그러므로 모든 삶의 흔적은 결국 무(無)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기억이, 과거가, 그러므로 삶이 도처에서 지워져가고 있다. 

 

“기이한 사람들. 지나가면서 기껏해야 쉬 지워져버리는 연기밖에 남기지 못하는 그 사람들. 위트와 나는 종종 흔적마저 사라져버린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서로 나누곤 했다. 그들은 어느 날 무(無)로부터 문득 나타났다가 반짝 빛을 발한 다음 다시 무로 돌아가버린다. 미(美)의 여왕들, 멋쟁이 바람둥이들, 나비들. 그들 대부분은 심지어 살아 있는 동안에도 결코 단단해지지 못할 수증기만큼의 밀도조차 지니지 못했다.” (75쪽)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그곳은 잃어버린 과거를 찾는 ‘나’의 마지막 목적지다. 하지만 그가 그곳에 제대로 당도할지라도 원하는 과거는 결국 찾아지지 않을 것이다. 이는 기억 상실자인 그가 아닌 그 누구라도 마찬가지다. 온전한 과거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으며, 매순간 스러져가는 과거를 붙잡아둘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실패가 예정된 이 소설의 서사는 그 추적의 과정을 통해 모든 삶의 흔적은 그저 문득 나타났다가 사라져버리는 찰나에 지나지 않음을 드러낸다.

 

“한 어린 소녀가 황혼녘에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해변에서 돌아온다. 그 아이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계속해서 더 놀고 싶었기 때문에 울고 있다. 그 소녀는 멀어져간다. 그녀는 벌써 길모퉁이를 돌아갔다. 그런데 우리들의 삶 또한 그 어린아이의 슬픔과 마찬가지로 저녁 속으로 빨리 지워져버리는 것은 아닐까?” (262쪽)

 

시간 안에 사는 모든 존재의 슬픔, 고독 그러나 아름다움이 그곳,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에 있다는 사실을 찾아내고 소설의 이야기는 끝이 난다. 마치 그걸 찾기 위해 지금껏 달려온 것처럼.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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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랍어 시간> - 내가 당신에게로 가도 괜찮겠습니까

 

 

한강 | <희랍어 시간> | 문학동네 | 2011

 

 

난 늘 보이지 않게 흔들렸다. 시간을 죽이는 일이 어렵다는 걸 모르지 않았고 새처럼 날기 위해 그보다 몇 배 갈고 닦으며 움츠려야 한다는 사실이 낯설지 않았다. 모든 것을 알았다, 모든 것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에 대해서, 사랑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희랍어 시간>에 일어난 두 남녀의 부딪침, 상처와 트라우마, 그리고 사랑. 이런 것들에 이르기까지의 지난한 자기탐색. 시간 속에 뭉뚱그려 새롭게 피워내는 티끌만한 무엇.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오래도록 소설의 틈바구니에서 길을 잃었다. 언젠가 말간 손으로 바흐와 슈베르트를 연주하던, 나와 콩쿨에 나갔을 때 객석 대신 옥상에서 한 송이 꽃을 들고 기다려주던 오빠. 가장 예쁘지 않았지만 가장 예쁜 줄 알았던 아홉 살에 세상에서 제일 잘 보이고 싶었던 이는 그 뿐이었음을, 그가 아직 남자이기 이전에. 

 

언제 헤어졌었지. 잠시 살던 다세대 주택에서 잘 지어진 새 아파트로 이사오면서? 이사온 후 오빠를 만났던가, 그렇지 않았던가. 동네 아이들 모두 모아놓고 생일파티를 할 때면 생일선물로 문구세트를 사주던, 좋아하지만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은 채 잘보이려 애썼던 사람. 그러니까 내가 열한 살, 그가 열두 살 즈음 본 게 우리의 마지막이었다. 소식은 간혹 들었어도, 대면할 일은 없어서 내가 그런 것처럼, 그도 간혹 나를 생각하는지, 정확히 말하면 내 아홉 살 즈음과 피아노 콩쿨 후에 장미꽃 한 송이를 내밀던 작은 손의 자신을 기억하는지 묻고 싶었다. 시간 속에 흩어진 추억, 그 안에서 내가 붙잡고 싶은 건 시간일까. 그랬을 지도 모른다. 그와 그녀의 희랍어 시간처럼, 그와 그녀의 버티듯 흘러내려간 삶처럼, 그와 그녀의 하룻밤처럼, 그와 그녀가 서로를 향해 한걸음 내딪던 순간처럼.

 

나는 아직 행간 사이에 묻어나던 그 또는 그녀의 사연을 되새기고 있다. 사랑이란 것은, 그렇게 부르는 것이 맞다면, 어쩌면 내 모든 것을 까뒤집어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과거의 경험, 아픔, 시간, 실수, 기쁨, 슬픔, 어려움, 오만, 편견, 시기, 질투를 포함한, 포개지는 모든 것들을 공유하는 것은 아닐까. 현재의 남자에게 과거의 남자에 대해 말하지 말라는 명언 아닌 명언은 인간의 나태함을 부분적으로 잘 알고 공감한 사람들의 입에서 공통된 언어로 나온 말이다. 서글픔 만큼 울림도 큰 소리. 과거에 어떤 사랑을 얼만큼 했든, 미래에 만나는 남자는 내 모든 과거를 끌어안아 추억으로 공유해주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내내 품었다. 나는 나일 뿐, 누군가의 나였다고 해서 그게 내가 아닌 것은 아니기 때문에. 나도 그를 그렇게 보듬을 것이고, 그것을 사랑이라 부를 것이므로. 

 

사랑의 시간. 사랑을 시간이라고 정의내리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 <희랍어 시간> 속 남녀의 희랍어 시간을 사랑으로 뭉개버릴 수가 없어서, 사랑은 단지 시간이 아니라 앞뒤 문맥, 상황, 추억까지를 포함하기 때문에. 여자는 말을 하지 않고 남자는 지독히도 시력이 나쁘다. 둘이 영영, 어쩌면 아무 것으로도 서로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릴 수도 있다, 세속적으로는. 침묵과 빛이 만나는 이야기라고 작가는 썼다. 서로가 서로를 알지 못하는 두 존재가 영공 속에서 부딪치는 이야기로 나는 읽는다. 나를 털어놓고 너를 듣는다는 것은, 너를 털어놓고 나를 듣는 것만큼 중요한 얘기. 남자와 여자의 개인적인 것이 만나는 지점보다, 혼자서 자신의 것을 터지기 직전까지 안고 가는 순간이, 바로 그 순간이 미칠 듯 만져졌다. 잡히지 않는 것에 안달내지 않는 그들의 많은 것이 편안했다. 

 

팔랑거리며 당신에게 다가가지 않더라도, 사랑해달라고 매달리지 않더라도, 존재가 존재를 알아본다면 그것은 기척이 아니라 기적이 아니겠는가. 꽃씨처럼 훌훌 날아가 앉고 싶은 곳에 살포시 내려앉아 뿌리내리면 그것이 탄생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끝없이 추락하는 <희랍어 시간>의 남자와 여자를 구해준 것은 불행히도 내가 아니다. 지독히 침잠하는, 어둠 속으로 떠밀리는, 당신의 이유가 무엇이냐고 끝내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은 행간과 행간, 문장과 문장 사이로 비집고 밀려들어오는 추억 때문이다. 내 추억. 궁극적으로는 내 기억. 모든 기억을 추억이라 부르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행복해지기도, 아쉬워지기도, 아련해지기도 하는 삶. 

 

나의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날이 오면 나도 그때에 소리 없이, 빛 없이, 언어 없이, 몸짓도 없이, 사랑을. 허락없이 사랑을 가르쳐도 괜찮겠습니까. 내 마음대로 당신을 기억해도 괜찮겠습니까. 그때는 시간을 드릴게요. 나의 모든 시간을 내어 드릴게요. 우리, 온전한 만남을 기약할 수도 있을 거예요. 아직은 미안합니다. 나는 나입니다. 여전히 나일 것입니다. 그러나 내 속에 당신이 있을 거예요. 내가 온전히 당신이 될 수는 없지만, 사랑의 시간은 내가 당신이 되는 것이나 당신이 내가 되는 것에 놓이지는 않을 거예요. 나는 언제나 당신 속에, 당신은 언제나 내 속에, 우린 그렇게 어느 한 순간도 빼놓지 않고 서로에게 얽혀있을 테니까요.

 

두려웠어요.

두렵지 않았어요.

 

울음을 터뜨리고 싶었어요.

울음을 터뜨리고 싶지 않았어요.

 

내 몸에서 완전히 떨어져나가기 전에,

당신은 나에게 천천히 입맞추었지요.

 

이마에.

눈썹에.

두 눈꺼풀에.

 

마치 시간이 나에게 입맞추는 것 같았어요.

입술과 입술이 만날 때마다 막막한 어둠이 고였어요.

영원히 흔적을 지우는 눈처럼 정적이 쌓였어요.

무릎까지, 허리까지, 얼굴까지 묵묵히 차올랐어요. (189-190쪽)

 

다시 기다려 달라고 한다. 언어로 심장을 느끼게 할 수가 없어서. 당신은 기다리겠다고 말한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에게 희랍어를 가르치고 배우듯, 각자 살아가던 그들이 희랍어 시간에 하나로 만나듯, 우리 또한 어느 순간은 하나가 될 거라고 안주하고 있었다. 마모된 감정은 남자의 두 세계로 쪼개어져버린 정체의 자아와 미쳐서 아이를 키울 수 없다는 판결을 받아든 여자의 자아와 만나 더 너덜너덜해졌지만 새로운 세상으로 날아올랐다. 혼자서는 아무 것도 아닌 것. '이해'라는 하나만으로도 빛날 정도로 반짝이는 삶. 

 

또르르 흐르는 눈물 방울 하나를 억지로 나뭇잎 위에 올려놓는다. 똑, 하고 소리나며 떨어질 때까지. 적어도 물방울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마르는 것이 아니라 떨어질 것이다. 내 것들이 또는 내가 당신에게 그러하듯이. 당신도 나에게 그러길 바라지만, 어렵다면 반드시 나를 거쳐가라고, 당신의 아픔도. 왜 배우는지 모르는 희랍어를 붙잡고 씨름하던 여자와 어째서 가르치는지 알지 못하던 남자의 앞으로의 만남이 자꾸만 나를 덮치는 듯 해서 얼른 책을 치워버렸다. 어렵다, 닿는 것. 어쩌면 한 번도 그러질 못했을 거란 생각 때문에 고통스럽다. 언어로는 아무 것도 전달하지 못한다던 말은 맞았다. 아, 그렇다면 지금 내가 당신에게 전달하려는 뭉클한 이것을 당신은 알고 있겠지. 어떤 면에서 당신은 나보다 훨씬 많이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이므로. 

 

오늘의 책을 리뷰한 ‘감성소녀’님은?
아직 20대인 것이 희망. 자칭 예술애호가. 어느 날 문득 알게 되었다. 몰입과 지속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단 것을. 규격적 인간을 선호하는 세상을 거스르며 살고 싶어 책읽기를 선택했다. 로마 스페인광장에서 하루 종일 사람구경하며 책 읽는 삶을 꿈꾸지만 여의치 않은 현실에 로마로 떠나는 사람들의 여권에 도장 찍어주는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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