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책'에 해당되는 글 13건

  1. 2015.02.10 나유리, 미셸 램블린 『핀란드 슬로우 라이프』
  2. 2015.02.02 『부모와 다른 아이들』 - 세상에는 이런 부모들도 있다
  3. 2015.01.09 《포기의 순간》 - 먼저 이 추위에 맞서
  4. 2015.01.07 《사포》 - 아슬아슬하게 아찔하게
  5. 2015.01.06 《그게 누구였는지만 말해봐》 - 겨울 바람 때문에
  6. 2015.01.02 《장서의 괴로움》 - 내 방엔 책이 너무도 많아
  7. 2014.11.21 《나를 보내지 마》 - 우리도 똑같이 사랑할 뿐이야
  8. 2014.09.26 친구 할래요?
  9. 2014.09.26 [서점에서 만난 사람] 원색 그림의 본색 - 그림 동화 작가, 로저 멜로
  10. 2014.09.18 9월의 책 두 권

나유리, 미셸 램블린 『핀란드 슬로우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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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다른 아이들』 - 세상에는 이런 부모들도 있다

 

 


 


앤드루 솔로몬 | 『부모와 다른 아이들』 | 열린책들 | 2015


 

장애는 질병일까요? 정체성일까요? 어쩌면 우리는 장애가 질병이라는 사고방식에 익숙해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저자는 장애를 정체성으로 규정하는 것이 더 나은 사회를 이루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듯 합니다. 이를 위해 저자는 먼저 수직적 정체성과 수평적 정체성에 대해 말합니다. 부모와 동일하게 물려받은 민족성, 피부색 유전, 언어, 종교 등은 수직적 정체성입니다. 반면에 부모와 구별되는 속성, 이를테면 게이, 신체장애, 천재성, 정신병, 자폐, 지적장애 등은 수평적 정체성입니다. 그러니까 이 책 제목 『부모와 다른 아이들』의 그 '부모와 다른'이 바로 수평적 정체성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장애가 정체성이라는 사실이 당사자들을 온전히 위로해줄 수는 없는 일입니다. "겉으로 명백히 드러나는 자식의 장애는 부모의 자부심을 욕보이고 그들의 사생활을 침해한다." (49쪽)라는 저자의 말처럼 장애가 있는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마음은 그렇지 않은 부모의 그것에 비해 이루 말할 수 없이 무겁겠지요. 심지어 저자는 이렇게도 말합니다. "아무리 폭력적인 아버지도 자신의 외모를 닮은 자식한테는 상대적으로 덜 폭력적이다. 혹시라도 불량배의 자식으로 태어났다면 부디 아버지와 닮은 외모를 가졌기를 빌어야 할 것이다." (24쪽)

 

그런데 사실 저자 자신부터가 수평적 정체성으로 고민하고 상처받았던 사람입니다. 저자는 '게이'라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드러내 놓습니다. 그러니까 이 책의 '아들'이란 제목의 1장은 저자 자신의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열일곱 살에 한 남자와 성관계를 했다는 사실도 숨기지 않습니다. 미국 사회가 여전히 동성애에 적대적이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저자의 용기에 박수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저자는 이 책 1권에서 청각 장애, 소인증, 다운증후군, 자폐증, 정신분열증, 장애에 관해 다룹니다. 어느 것 하나 가볍지 않고, 쉽게 말할 수 없는 소재입니다. 저자는 자신이 직접 취재해 장애를 지닌 자녀를 둔 부모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사실 저는 청각 장애와 소인증, 다운증후군을 각각 다루는 2장과 3장, 4장을 읽을 때만 해도 평정심을 유지하며 읽었습니다. 그렇지만 5장 자폐증 이야기부터는 계속 마음이 흔들리더군요.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한숨을 쉬었던 적이 많았습니다.

 

자폐증 아이들에 관해 말한다면, '부모가 준 사랑에 반응하기 어려운 아이들'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우리는 부모님 주신 사랑의 극히 일부도 갚지 못하지요. 하지만 자폐증의 경우에는 그 정도가 심합니다. 치료를 통해 증상이 완화될 수는 있지만, 어느 부모나 그것을 참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폐증 아들을 살해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한 데브라 윗슨은 경찰에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그 아이가 '엄마, 사랑해요.'라고 말해 주기를 기대하면서 장장 11년을 기다렸어요." (525쪽) 이 책에는 자폐증 자녀를 살해한 사례가 너무도 많이 열거돼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살해하는 일은 아마도 세상에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일 것입니다. (물론 그 역도 마찬가집니다.) 저자는 자폐증 자녀를 살해한 부모 중 절반가량이 이타적인 행동이었다고 주장한다면서, 법정이 이런 범죄에 대해 관대함을 보이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합니다. 저도 저자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렇지만 '자폐증 자녀를 두었다면 과연 끝까지 참는 부모가 될 수 있는가'란 질문이 제게 주어진다면, 쉽게 대답하진 못할 것 같습니다.

 

"정신분열증은 다른 수평적 정체성과는 달리 늦은 사춘기나 성인 초기에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부모에게는 더 큰 아픔으로 다가옵니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자기 자식을 영원히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529쪽) 저자는 심지어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보기에 그들(정신분열증 환자와 그 부모)의 고통은 끝이 없으며, 특이하게도 그 어떠한 보상도 없다." (630쪽) 정신분열증 환자 해리의 어머니 키티의 말을 들어볼까요. 아들 해리를 보살피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심력을 소모하는지 묻는 저자에게 키티는 이렇게 진술합니다. "내게 있는 전부요, 모조리 다요. 정말 이렇게까지 말하고 싶지 않았어요." (541쪽) 자신의 전부를 자기 자식을 위해 소모해버리는 부모 앞에서, 저는 부모로서 자식에게 어떤 보상을 바랐던 적은 없었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세상에는 비유적 표현에서가 아니라 정말 자신의 전부를 불태워 자식을 돌봐야 하는 부모도 있습니다.

 

가슴을 치는 이야기들이 수없이 많이 나오지만, 특히 7장의 '장애'에서 '중도 중복 장애'의 사례가 가장 마음을 울리더군요. 중도 중복 장애의 '중도'는 정도가 심하다는 의미고, '중복'은 말 그대로 장애가 겹쳐진 상태를 말하지요. 그러니까 중도 중복 장애는 그 두 상태를 포괄하는 말입니다. 다음은 이러한 중도 중복 장애 아이를 두 명이나 낳았던 데이비드와 세라 해든의 이야깁니다. 첫째 아들 제이미는 지적 장애에다 전신마비 상태입니다. 다행히 둘째 딸 라이자는 건강하게 태어나지만, 아뿔싸! 셋째 샘이 제이미와 같은 증후군을 앍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어머니 세라는 샘의 진단명이 나온 지 이삼 개월이 지났을 때 자신의 상태를 이렇게 회고합니다. "나는 주방 바닥에 주저앉아 갈등했어요. 그대로 제이미와 샘을 데리고 차고로 가서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다 같이 일산화탄소를 마시고 죽고 싶었죠." (641쪽) 막내 샘은 몇 년 후 욕조에 잠겨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서 마음이 먹먹해지지 않기란 불가능합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저는 '너무도 쉽게 부모가 되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다 보니 부모가 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겠네요. 장애를 지닌 자녀들을 위해 끝까지 버티고, 끝까지 사랑해준 부모들에 견주면 제 사랑은 정말이지 왜소한 것이었더군요. 책을 읽으며 계속 제 아이들을 생각했습니다. 제가 자식에게 한 수많은 실수 가운데 부정적 영향을 끼친 것들이 얼마나 많을지 생각하면 마음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네요. 이런 저에게 저자는 이렇게 말해줍니다. "부모는 완벽하지 않고 수많은 실수를 범한다. 그리고 나는 선의가 부모의 실수를 감쪽같이 지워 주는 것은 아니지만, (...) 적어도 실수의 무게를 줄여 준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받는 일은 끔찍한 경험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당신을 도와주려고 그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 끔찍함이 줄어들 것이다." (700쪽)

이 말이 그나마 위로가 되긴 하지만, 저는 확실히 진짜 부모가 되려면 아직도 멀었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부모들처럼 비록 자녀들이 나와 다르고, 내 기준에 미치지 못해도, 끝까지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라도 이 절실한 이야기들을 오래도록 기억해두고 싶습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캐러웨이92'님은?

바쁘다는 핑계로 책읽기를 미루고 미루다가, 독서하지 않는 자는 평생 무언가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뒤늦게 깨달은 직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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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의 순간》 - 먼저 이 추위에 맞서

 

 

 

필립 베송 | 《포기의 순간》 | 문학동네 | 2011

 

포기의 순간이 구원의 순간이 될 수 있을까. 필립 베송의 소설 《포기의 순간》은 가장 비극적인 사고에서부터 오히려 구원의 빛을 얻게 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영국 해안의 작은 마을 팰머스에 그가 돌아온다. 토머스 셰퍼드, 아들을 죽인 살인자. 그가 5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다. 5년 전 토머스 때문에 마을의 이미지를 훼손당하고 상처를 입었던 팰머스 사람들은 그의 귀향을 반기지 않는다. 대놓고 그를 무시하고 따돌린다. 하지만 토머스는 고향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 고향에서 누군가를 기다려야만 했다. 그는 묵묵히 하루하루를 견뎌낸다. 한편 마을에서 유일하게 토머스를 사람답게 대해주는 건 그와 마찬가지로 ‘이방인’ 취급을 당하는 파키스탄인 가게 주인과 어느 미혼모이다. 토머스는 그들을 신뢰하기로 하고 자신의 과거를 고백한다. 그리하여 5년 전에 일어났던 비극적 사건의 전말과 현재 토머스가 기다리고 있는 게 누구인지가 드러난다.

 

《포기의 순간》은 비극적인 상황에서 출발한다. 5년 전 토머스가 사람들에게 잡혀가는 순간부터 다시 돌아온 후의 상황이 어둡고 서늘한 해안 마을의 풍경과 맞물려 비장하면서도 비관적으로 그려진다. 독자들은 토머스가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지, 다시 사회에 녹아들 수 있을지를 궁금해한다. 하지만 소설은 독자들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끌고 간다. 사건의 전말과 함께 드러나는 건, 토머스가 이미 오래전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팰머스는 웅덩이에 고여 있는 물 같은 곳이다. 칙칙하고 냄새나며 어딘지 썩어 있는 모양이다. 팰머스의 남자들은 과묵하고 거칠다. 여자들 역시 매섭고 쌀쌀맞다. 팰머스는 한 번 태어나면 벗어날 수 없는 곳이다. 그곳 주민들은 거기서 평생 뱃사람으로, 평생 누군가의 아내로만 살아간다. 그것이 팰머스라는 마을을 이루는 중심이자 핵심이다. 하지만 토머스는 달랐다. 그는 늘 중심과 명확한 것을 경계했다. 토머스의 평생 연인이었다가 그와 결혼까지 한 메리앤은 사실 토머스 몰래 바람을 피웠다. 토머스는 자신의 아이인 줄 알았던 아들이 사실 메리앤이 바람을 피워 임신한 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미 기울기 시작했던 결혼 생활은 그 이후 최악의 상황을 달리기 시작한다. 토머스는 자신이 알게 된 사실을 메리앤에게 밝히지 않는다. 그들의 가정은 거짓말과 위선에 잠식당한다. 하지만 팰머스 사람들은 이혼하지 않는다. 아이가 있다면 더더욱. 어느 날 토머스는 이 모든 게 누군가 죽는다면 끝이 나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토머스는 절대 아이를 죽이지 않았다. 다만 그런 생각을 잠시 했었다. 그러나 아이를 보는 순간 토머스는 그런 생각을 접었다. 아이가 죽은 건 순전히 사고였다. 토머스는 과실치사로 5년형을 선고받았던 거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에게 토머스는 그저 아들을 죽인 살인자일 뿐이고, 토머스에게도 그 자신은 어찌되었든 마음의 죄를 지은 사람이다. 유죄이지만 사실은 유죄가 아니고, 무죄이지만 진짜 무죄는 아닌 것이다.

 

작가인 필립 베송은 다음처럼 말했다. "나는 비극적 사건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며 다루고 싶었다. 그리고 죽음이 인간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러니까 이것은 내 소설 중 가장 낙관적인 내용이 될 것이다." 토머스는 항상 아이를 마음에 안고 살아간다. 그러나 소설을 읽어갈수록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건, 토머스가 얼마나 불행하고 음울한 사람인가가 아니라 그가 얼마나 희망과 기대에 차 있는 사람인가, 이다. 필립 베송은 또한 이런 말도 했다. "틀에 박힌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쩌면 불의의 사건을 겪어야 하는 건 아닐까요?" 마음속으로만 경계를 좋아하던 토머스는 불의의 사건을 겪고 강제로 경계 밖에 내쳐진다. 하지만 그 경계 밖에 처하고서야 토머스는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깨닫고 그것을 받아들인다. 사람들은 중심 속에서 중심 밖에 있는 그를 욕하지만 그는 그 욕에 맞서 당당히 걸어가기로 마음먹는다. 그가 기다리는 사람은 감옥에서 만났던 루크라는 남자다. 토머스는 팰머스에 그가 찾아오리라는 확신 찬 기대를 가지고 하루하루를 기다린다.

 

국내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필립 베송은 프랑스에서 대중과 평단의 사랑을 고루 받고 있는 스타작가다. 그의 문체는 간결하면서 밀도는 높고 단단하다. "간결한 단어, 요동치는 문장, 그리고 폭풍주의보." (베르지옹 페미나)라는 말에 깊이 공감하는 바이다. 필립 베송의 가장 낙관적인 이 작품은 실로 사람들이 가장 비극적일 수밖에 없을 거라 생각하는 상황 속에서 낙관을 얘기하며 독자들에게 놀라움을 안긴다. 소설 속 토머스가 무죄이면서 무죄가 아니듯이, 그에게 어떤 동정을 표하기란 조금 어렵다. 하지만 그 낙관, 중심을 벗어나 경계로 당당히 걸어가겠다는 그 의지에는 마음을 뺏긴다. 《포기의 순간》은 구원과 낙관이라는 것이 단지 환상이나 상상은 아니라고 얘기한다.

 

감옥에서는 눈이 오건 바람이 불건 얼얼한 추위가 살을 에건, 그 모든 요소로부터 보호를 받았다. 그곳에서는 한쪽만 문이고 나머지는 벽이다. 나는 바깥세상에, 이 바깥세상의 공격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시련에 맞서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한다는 걸 새로운 교훈처럼 깨닫는다. 그래, 먼저 이 추위에 맞서자. (50쪽)                               

 

오늘의 책을 리뷰한 '파수꾼'님은?

호밀밭을 뛰놀고픈 자유로운 영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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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포》 - 아슬아슬하게 아찔하게

 

 

 

 

알퐁스 도데 | 《사포》 | 예문 | 2014

 

《사포》에는 사랑에 대한 풍부한 묘사와 그 앞에 웅크리고 발가벗겨진 인간의 모습이 있다. 장과 파니에게서 예상치 못했던 사랑의 숨은 그림자들을 발견한다.

‘연애’보다도 ‘사랑’은 그 깊이를 가늠하기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진다. 언제나 쉽게 달라져 버릴 것을 알고도, 늘 사랑에 대해 정의하고 싶어 하는 연유 또한 이 때문이 아닐까. 사랑이란 그것의 본질적 속성 위에 유연한 형체들을 지닌 모습으로 어딘가에 놓여 있을 것만 같다. 다양한 문학 작품 속의 새로운 주인공과 그들이 알려주는 모든 것을 통해, ‘사랑’의 정의를 하나씩 보태어 본다.

알퐁스 도데의 《사포》에 그려진, ‘파니’에 대한 ‘장’의 사랑 또한 그러하다. 사랑은 때때로 이유를 짚어낼 수 없는 따스한 분위기와 찰나에 다가와 환락 같은 안온함에 사뿐히 자리한다. 선택과 결정을 위한 움직임을 알아차잖기도 전, 순간의 얕은 변화에 자리를 쉽게 내어 주는 것이 사랑의 시작일 뿐일지도 모른다. 다만, 순수한 열병과 같은 감정의 휩쓸림만이, 경외심과 찬탄과 아름다움, 희생과 헌신, 그것들만이 ‘사랑’을 그리지는 않는다. 사랑이라는 슬하는 이리도 깊고 넓다. 알량한 허세 의식, 진흙탕 같은 질투, 우둔함, 나약함, 동정과 연민, 광포한 충동, 우유부단함 속에서도 사랑은 미약한 숨을 내뱉는다. ‘장’이 그것을 알려주었다.

프랑스 남부의 명망가 자제인 장은 외교관 시험 준비를 위해 파리에 있었다. 그는 무도회에서 15살 연상의 파니를 만난다. 고지식하고 엄격한 편이지만 순진하던 장은, 파니와의 관계가 집안과 자신의 미래보다 중하지 않고 마뜩잖음을 느끼면서도 파니의 지속적인 구애와 질긴 숙명과도 같은 끈에 의해 점차 그녀에게로 이끌린다. 장은 곧 파리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신경 쓰며 그녀와 동거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지금 난 사랑에 빠진 걸까? 아니야, 그렇지 않아. 그렇지만 어쨌든 이처럼 나를 따스하게 둘러싸고 있는 분위기는 사랑어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만 가능한 게 아닐까? 어떻게 그토록 오랫동안 이러한 행복을 접어 두고 살아올 수 있었지··· ··· 타락이라든가 구속당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일까? 하지만 그 얼마나 우스운 얘기야··· ··· 이 세상에서 무엇을 더 바랄 것인가?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이 여자 저 여자와 어울리며 방탕한 생활을 하는 것보다 한 여자의 사랑을 받으며 편안하게 지내는 지금의 생활을 더 불결하고 추하다고 할 수 없지··· ··· (본문 중에서)

그는 외무부의 연수 기간인 3년 동안만 그녀와의 관계를 유지하면 될 거라고, 스스로 불안을 자위했다. 황홀감에 도취되어 신혼 같은 생활을 보내던 그때 의도치 않은 일들이 발생한다. 무도회를 주최했던 디셸레트와 유명한 조각가 카우달을 만나, 파리 사교계의 꽃으로 많은 예술가와 사랑을 거쳐 온 파니의 과거에 대해 듣게 된 것이다. 사랑의 경외심을 찬양하던 라구르너리 시의 사포가 파니였다니, 카우달이 조각한 브론즈 빛의 아름다운 사포가 파니였다니. 파리의 유명 예술가들의 뮤즈, 그녀가 '사포'였다. 그는 역겨움과 더러움을 느끼며 파니를 향한 경멸스러운 감정에 비틀거리면서도, 속마음에 생경한 목소리가 울린다.

생각이 이쯤 미치자 장은 당대의 프랑스를 뒤흔드는 위대한 예술가들이 거쳐 간 여자를 자신도 한번 안아봤다는 우쭐함과 그 예술가들이 자기더러 미남이라고 불러 주었다는 데 대한 묘한 자부심이 어이없게도 마음 한구석을 차지해 가는 걸 느꼈다. 그의 나이 때에는 무엇이든 확실한 게 없으며 더군다나 세상에 대한 이해라든가 삶에 대해서 아직도 방황과 모색을 시도하는 때라 남들이 조금만 부추겨도 세상이 다 제 것인 양 믿는 법이다. (···) 장 역시 그랬다. 라구르너리가 아름다운 운율로 시를 적어 노래하고 카우달이 심혈을 기울여 대리석과 브론즈로 조각한 사포의 모습이 후광에 싸여 그의 머릿속에서 자꾸 커져만 갔다. (본문 중에서)

파니의 곳곳에 새겨졌을 지난 사랑의 방탕한 흔적들과 함께 파니의 출생과 집안에 관한 사실들이 연달아 베일을 벗는다. 감추어 둔 것이 드러나기 시작한 후, 파니는 이전의 고귀함과 조심스러움을 버리고 장 앞에서 거침없고 난잡한 모습으로 돌변했다. 그즈음 도착한 고향의 편지를 빌미로, 장은 파니와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끝낼 결심에 이른다.

혼란스러움과 질척거리는 사랑놀음에 진이 빠져버린 장은, 고향으로 돌아와 평온함과 순수함에 젖어든다. 결국 그는 파니에게 이별을 고한다. 얼마 가지 않아 전원생활의 고루함과 나른함에는 싫증이 났지만, 행간에 녹아나는 애정이 애무와도 같은 파니의 편지는 계속되었다. 궁금함과 기다림은 애틋한 마음과 그리움으로 색칠되어 가고. 장과 파니는 다시 만나게 된다. 그러나 떨어져 있던 여백만큼의 새로움에도―새로움이 늘 그렇듯― 아주 짧은 행복이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겨우 지켜보았을 따름이다. 짧았던 새로움이 퇴색되고 장은 다시 허물을 벗겨내 벗어나야 할 구실을 들먹였다.

남루해지던 생활이 이어지던 중 장은 급작스레 나타난 어린 소녀에게서 모든 것이 합당하고 정돈된 것만 같은 구원을 발견한다. 소녀는 좋은 집안의 자제였고 젊었으며 싱그러웠다. 그렇게 파니를 떨쳐 보냈음에도, 알 수 없는 잔영이 그의 온몸과 정신을 휘감았다.

모든 의욕을 잃어버린 채 혼자 사는 사람들 특유의 방향감각을 상실한 허전하고 괴로운 나날이었다. 그것은 끝나 버린 사랑에 대한 미련이라기보다는 갑자기 잃어버린 분신을 향한 그리움 때문이었다. 한솥밥을 먹고 잠자리를 같이하던 날들이 켜켜로 모여 보이지 않는 견고한 천이 한 올 한 올 짜지기 마련이며 그런 관계가 느닷없이 단절되었을 때 그 견고함은 고통으로 드러나는 법이다. (본문 중에서)

혼란과 방황의 시간을 꾸역꾸역 넘기며 새로운 소녀와의 그것이 사랑이자 행복이라고 다짐하던, 장은 그가 보냈던 편지들을 돌려받으러 파니를 찾아간다. 그러나 그곳에서 맞닥뜨린 파니의 옛사랑과 흐트러진 침대 시트에 장은 광포한 질투에 휩싸인다. 그날, 장은 파니를 떠나지 못했다. 그는 벗어나려고 발버둥 쳐도 곧 제자리로 돌아와 버리는, 늪에 머물기로 한다.

그러나 그녀는 영원히 장에게서 멀어지는 길을 택한다. 장은 저 멀리 사라지는 파니의 모습을 바라본다.

완전히 파멸해 버린 자신의 허망한 삶이 바위가 파도에 씻겨나가듯 그의 가슴속에서 천천히 빠져나가고 있었다. (본문 중에서)

아름다움과 경외심으로 점철된 열정만이 사랑은 아니다. ‘파니’를 향한 ‘장’의 사랑은 질척했고 갑갑했지만, 처절할 만큼 순수하고 원색적이기까지 했다. '사랑'의 또 하나의 정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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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누구였는지만 말해봐》 - 겨울 바람 때문에

 

 

 

 

존 치버 | 《그게 누구였는지만 말해봐》 | 문학동네 | 2008

 

해마다 첫눈이 오면 어느 겨울밤이 생각난다. 예상치 못한 공포에 나는 봄 햇살 아래 놓인 눈사람마냥 무기력하게 녹아내렸다. 늦은 밤 벼락치기를 끝내고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학교 도서관을 나서는 길이었다. 도서관 정문 앞에서 누군가가 푸념을 늘어놓았다. “날씨가 단단히 미쳤군.”

 

 

창문 밖으로 시커먼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이까짓 겨울 날씨쯤이야.’ 집에 갈 생각에 부풀었던 나는 호기를 부리며 도서관을 나왔다. 몇 걸음이나 걸었을까. 엄청난 눈바람이 거대한 파도처럼 나를 덮쳤다. 나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단순한 눈바람이 아니었다. 두려움, 암흑 속에서 시퍼런 칼날이 날아와 나를 수십 조각으로 베어버릴 듯이 섬뜩했다. 나는 도망치듯 도서관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영문을 알 수 없는 공포에 완전히 압도당한 채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매년 겨울이면 존 치버의 단편집 《그게 누구였는지만 말해봐》이 떠오른다. 책에 수록된 ‘다리의 천사’라는 매력적인 단편 때문이다. 이 소설은 그날 도서관에서 보낸 겨울밤의 추억을 아련하게 불러일으킨다. ‘다리의 천사’는 두려움에 관한 소설이다. 화려한 옷차림을 하고 스케이트장에서 왈츠를 추는 쾌활한 성격의 어머니는 비행공포증을 앓고 있다. 맏아들로서 언제나 가족들에게 의젓한 모습을 보였던 형은 사실 엘리베이터에 대한 극도의 두려움이 있다.

 

 

주인공은 형과 어머니의 모습에서 슬픔과 조소를 동시에 느낀다. 사소한 사물과 행위에 기겁하면서 무너지는 근엄한 가족들을 보고 우월감과 자존심의 승리를 맛보기도 한다. 그러나 주인공 또한 가족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아내와 딸들에게 든든한 가장이었던 그는 불현듯 천둥 번개가 내리치는 강가의 다리 앞에서 걷잡을 수 없는 두려움에 몸서리친다.

 

 

‘다리의 천사’가 매력적인 이유는 두려움에 대한 사려 깊은 성찰이다. 평범한 일상의 일부가 누군가에게 민감한 공포로 느껴질 때가 있다. 각자 가진 트라우마 때문이다. 저마다 겪은 고유한 유년시절의 기억과 관계에서 받아온 상처, 여러 경험에서 긁히고 베인 감정의 생채기는 각기 다른 형태의 두려움으로 형상화된다.

 

 

형상화된 두려움은 일상 곳곳에 움츠려 있다. 두려움으로부터 나약한 자아를 숨기기 위해 자존심과 허세로 한껏 무장하지만, 막상 근엄했던 타인이 두려움을 직면했을 때 몰래 손가락질을 하거나 코웃음을 터뜨린다. 나는 두려움 그 자체보다도 내가 두려움을 마주했을 때 나를 바라볼 잔인한 시선이 너무나도 무섭다.

 

 

소설 마지막 부분에서 주인공은 다리 위에서 딸을 태운 차를 세워두고 다시 절망과 공포에 휩싸인다. 그때 젊은 여자 한 명이 히치하이크를 시도하고 엉겁결에 그녀를 태운 주인공은 다리를 무사히 빠져나온다. 그토록 두려움에 떨던 그를 다리 밖으로 나올 수 있게 한 마법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주인공의 두려움 따위는 안중에도 없던 여자의 즐거운 노랫소리였다. 무던하리만치 자아도취적이고 긍정적인 삶의 에너지였다.

 

 

어느덧 도서관에 갇혀있던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어스름한 아침 햇살이 창문으로 새어 들어왔다. 동시에 밤을 새운 친구가 퀭한 눈을 하고 라면이나 한 그릇 먹자고 말했다. 나는 크게 한번 심호흡을 하고 도서관을 나섰다. 영원히 계속될 것 같던 눈보라가 그치고 어느새 세상은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두려움 위로 하얀 눈이 소복이 쌓였다. 친구와 나는 캠퍼스 저편에 있는 학생식당을 향해 조심스럽게 눈길을 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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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과 서평을 나누고자 반디앤루니스 '오늘의 책'을 펜벗과 함께 만들어 갑니다.

펜벗이란 서평을 쓰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를 의미합니다.

매주 월요일, 성실한 서평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1월의 펜벗 서평 주제는 '겨울'입니다.

 

 

| 펜벗 일문일답

 

● 서평 한 편이 소설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펜벗 앨범에서도 평소 글쓰기에 관심이 많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부끄러운 질문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펜벗 활동이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에게 동기가 될 수 있을까요?

 

좋아하는 책에 대해 쓰는 글은 사랑하는 이에게 보내는 연서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연애편지를 쓰면서 좋아하는 사람의 환한 미소를 떠올리고 더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처럼, 좋아하는 책에 대해 서평을 쓰면서 어렴풋한 책의 인상과 감명 깊었던 구절을 어루만지면 그 책에 더 빠지게 됩니다.

펜벗 활동은 좋아하는 책에 대한 연애편지를 함께 쓰는 일입니다. 연애와 독서는 둘 다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이기에 때로는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공공의 연애편지를 써 보면서 얼마간 무뎌졌었던 독서에 대한 열정과 글쓰기에 대한 감각을 다시 깨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열정과 감각을 되찾은 것이야말로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에게 가장 큰 동기가 되지 않을까요?

● ‘두려움에 대한 사려 깊은 성찰’이라는 말로 존 치버의 단편 ‘다리의 천사’를 말끔하게 말 해주셨죠. 존 치버의 소설 말고도 단순한 극복 이상으로 나를 반성하고 살펴본 계기가 된 책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 그리스인 조르바 >를 읽고 마음속에 큰 불길이 일었던 적이 있습니다. 제도권이 만들어 놓은 성공의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 평생을 노력해 왔던 제게, 소설 속 조르바가 보여준 자유의 외침은 충격과 부러움으로 다가왔습니다. 사실 모두가 꿈꾸는 진정한 자유는 지금보다 훨씬 더 동물적이고 실존적인 삶의 방식에서 가능한지도 모르겠습니다. TV를 틀면 쏟아져 나오는 소모성 웃음과 허황된 미적 기준, 물질적 풍요를 보면서 늘 그러한 가치에 길든 자신을 반성하고 다짐합니다. ‘모든 형이상적인 근심의 언어에서 나 자신을 끌어내고 헛된 염려에서 내 마음을 해방시킬 것. 지금 이 순간부터 인간과 직접적이고도 확실한 접촉을 가질 것.’ (니코스 카잔차키스, < 그리스인 조르바 >, 96쪽)

 

 

● 펜벗 앨범에서 ‘매주 토요일 구립 도서관에 들러 책을 빌린다’고 말씀하신 기억이 납니다. 최근엔 무슨 책을 빌려 읽으셨어요?

 

공공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일은 백화점 세일 기간에 쇼핑하는 것 같습니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잘 나가는 신상품은 순식간에 동나고, 하는 수 없이 저는 동묘 앞 벼룩시장을 기웃거리는 패션피플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명작과 고전을 물색할 때가 많습니다.
운 좋게도 최근에는 높은 경쟁률을 뚫고 김영하의 < 보다 >를 빌려 봤습니다. 총 4부로 구성된 산문집입니다. 자본주의와 개인의 관계, 영화와 문학작품에 대한 비평까지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작가의 독특한 시선과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었던 책이었습니다. 공공도서관에서 신상 베스트셀러를 빌리다니! 모처럼 쇼핑의 승자가 된 것 같은 치졸한 승리감에, 대여한 지 하루 만에 책을 다 읽고도 몇 번이고 다시 들추어 봤습니다. 만기일을 꽉 채워 반납했던 기억이 납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김이온'님은?

요리와 음악을 애호하는 독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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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의 괴로움》 - 내 방엔 책이 너무도 많아

 

오카자키 다케시 | 《장서의 괴로움》 | 정은문고 | 2014

 

네이버의 ‘지식인의 서재’를 보고, 언젠가 나 역시 저런 큰 서재를 가지고 싶었다. 서재가 있는 방을 가지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예전에 살던 방엔 책을 둘 공간이 없어 항상 이불 옆에 책이 몇 권씩이나 쌓여있었다. 서점에 들어가면 항상 기분이 좋았다. 책 냄새가 잔뜩 나는 곳. 내가 읽을 책이 많은 곳. 《장서의 괴로움》을 읽으면서 그 괴로움이 너무나 부러웠다. 삶을 위협할 정도로 많은 책을 가지고 인생을 꾸리고 있다니 놀랍고도 신기했다.

 

새 책은 계속 나오는데, 만약 책을 더 놓을 공간이 없을 정도로 도서관이 가득 차면 어떡하지? 이러다 도서관이 무너져버리는 것은 아닐까? 가끔 도서관에 올라갈 때면 그런 생각을 했다. 《장서의 괴로움》에는 실제로 그만큼 책을 많이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나온다. 집이 흔들리고, 집의 모양이 기울만큼 건물 가득 책을 가지고 있다.

 

나는 절대 《장서의 괴로움》에 시달리지 않을 것이다. 도서관에서 책을 주로 빌려보는데, 이상하게 내가 가진 책보다도 가지고 있지 않은 책에 더 흥미가 생긴다. 분명 같은 책이 집에 있더라도 어쩐지 안 읽고 있다가 결국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해 읽는다든가 하는 식이다.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하지만 읽기 위해서는 기한이 필요하다. 반드시 며칠 내에 읽어야 한다는 그 기한이 책에 더 집중하게 해 준다. 게다가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난 책과의 연이라는 것이 좋다. 내가 찾아 헤맨 것이 아니라 책이 나에게로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늘 어디에 살더라도 집 근처에 도서관이 있으면 좋겠다고 바란다.

 

헌책방에 책을 꽤 많이 팔아 보고, 중고책도 많이 사봤는데, 《장서의 괴로움》에 나오는 일화처럼 엄청나게 많은 양의 책을 판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책을 팔 땐 역시 마음이 쓰리다. 방이 좁아서 어쩔 수 없이 가진 책 중에서 더 읽지 않는 책을 모아 팔았다. 책들은 헐값에 팔려 나갔다. 한번은 1권과 2권을 같이 팔려고 헌책방에 갔다. 책의 상태 때문에 2권은 팔지 못하고, 1권만 팔았다. 남은 2권을 가지고 돌아오는데, 순간적으로 1권이 없어진 2권이라니, 안타까웠다. 헌책방에서 아주 낡은 책을 산 기억도 있다. 누군가 책에 낙서한 것을 발견하면 기분이 묘하다. 마치 같은 책을 읽고 있던 어떤 사람의 순간을 엿본 듯하다. 어떤 책에는 누군가에게 보낸 편지가 적혀 있었는데, 그것이 꽤 낭만적이라 책 자체에 대한 운치가 풍겼던 기억이 난다. 내가 판 책들도 어딘가를 헤매고 있겠지.

 

책만큼 시대가 지나도 그 가치가 여전히 고마운 것이 있을까. 책을 좋아하고, 자랑하면서도, 한편 고통스러운 저자의 모습이 재미있다. 비슷한 구성이 반복되는 바람에 굉장히 색다른 재미를 주는 책은 아니었지만, 한 번쯤 나도 이런 괴로움을 알아보고 싶다. 언젠가 산더미 같은 책들에 쌓여.

 


오늘의 책을 리뷰한 '라미'님은?

책에서 행복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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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내지 마》 - 우리도 똑같이 사랑할 뿐이야

 

 

가즈오 이시구로 | 《나를 보내지 마》 | 민음사 | 2009

 

《타임(TIME)》에서 선정한 최고의 영문소설 100선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린 영국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를 읽었다. 이런 찬사 때문에 많은 기대를 했다면, 어쩌면 《나를 보내지 마》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책을 읽기 전에 이미 영화를 보았다. 《나를 보내지 마》를 읽는 건 이미 본 영화에 대한 복기이자, 영화와 원작 소설의 차이점을 찾는 오디세이였다고나 할까. 영화 《아일랜드》와 같은 소재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정말 하늘과 땅 같은 차이를 보여주는 원작 소설의 깊이는 남달랐다. 어떻게 보면 밋밋할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작가가 인터뷰에서 언급한 대로 러브스토리와 우정에 관한 깊은 성찰을 엿볼 수 있는 수 작품이었다. 가즈오 이시구로와의 첫 만남은 대단히 만족스럽다.

 

주인공 캐시 H.는 클론 즉, 복제인간이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클론이 등장한 여느 SF 소설과 다른 변별점을 지향한다. 이해하기 어려운 과학용어라든가 근원을 알 수 없는 화려한 서술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캐시를 비롯한 루스와 토미가 엮어내는 관계에 더욱 집중한다. 그들은 영국 모처에 존재한 헤일셤이라는 기숙학교에서 ‘사육’되어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자신의 장기를 근원자에게 기증하고 죽어야 한다. 그들은 그 사실에 대해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 어느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그런 사실을 알려 주겠는가.

 

바로 이 지점에서 영화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도덕적, 윤리적 문제를 직면한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아무리 기술문명이 발전하고 무병장수 영생의 시기가 도래해서 인간이 인간답지 못한 삶을 살게 된다면, 그게 도대체 무슨 의미란 말인가. 최근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 경비원의 분신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에 물질만능주의의 폐해가 얼마나 만연한 지 다시 한 번 되새겼다. 나와 내 가족을 살리기 위해, 하나의 영혼이 희생된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되묻게 된다. 어쩌면 그렇기에 가즈오 이시구로는 기증자인 루스와 토미를 철저하게 타자로 분리한다. 인간은 클론의 운명을 몰라도 된다는 식의 사고야말로 끔찍하다.

 

그가 원한 것은 헤일셤이 어떤 곳이었는지를 단순히 듣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자기가 유년기를 그곳에서 보낸 것처럼 헤일셤을 '추억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기 삶이 곧 완결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나로 하여금 여러 가지 것들을 자세히 묘사하게 해서 그것들이 실제로 자기 머릿속에 서서히 자리를 잡아서는, 약 기운과 통증과 피로감으로 잠 못 이루는 그런 밤 동안 나의 기억과 자기 기억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기를 원했던 것이다. (17쪽)

 

헤일셤에서 유대감을 가지고 성장한 캐시와 루스, 토미는 여느 인간과 다르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16 세가 되어 헤일셤을 떠나 코티지에 정착한 그들은 비로소 세상과 접촉한다. 고립된 헤일셤 출신들은 다른 기증자들에게도 특별한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성인이 되기 전 이들 사이에 벌어지는 고민과 갈등 또한 치열한 양상을 띠기 시작한다. 어렴풋한 미래에 대한 고민이 증폭되고, 자신의 삶이 궁극적으로 특정한 목적을 지니고 설계되었다는 가혹한 운명을 그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나를 보내지 마》를 읽는 동안, 캐시와 루스, 토미는 왜 영화 < 아일랜드 >에 나오는 클론들처럼 자신의 운명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에 나서지 않는지 궁금했다. 그들을 옥죄는 운명을 피하려면 도망이라도 쳐야 하지 않나. 성장, 잠깐의 병간호 생활 그리고 기증과 종료(completion)로 이어지는 삶의 순환고리는 인간의 삶과 달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가운데 그들의 자유의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 바로 그들이 인간과 다른 결정적 차이다.

 

"어딘가에 있는 물살이 정말이지 빠른 강이 줄곧 떠올라. 그 물 속에서 두 사람은 온 힘을 다해 부둥켜안지만 결국은 어쩔 수가 없어. 물살이 너무 강하거든. 그들은 서로 잡았던 손을 놓고 뿔뿔이 흩어지게 되는 거야. 우리가 바로 그런 것 같아. 부끄러운 일이야, 캐시. 우린 평생 서로 사랑했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영원히 함께 있을 순 없어" (386쪽)

 

영화는 확실히 소설과 많은 차이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영화는 중요한 에피소드의 핵심 위주로 빠르게 진행된다. 노퍼크 여행에서 따로 남겨진 캐시와 토미가 절벽의 벤치로 뛰어가는 장면과 뭍 위에 올라온 배를 찾아가는 미장센은 탁월했다. 소설에서도 역시 중요한 모티프로 작용하는 노래, 주디 브릿지워터(judy bridgewater)의 ‘Never Let Me Go’의 애절함도 영화가 잘 담아냈다. 하지만 나는 역시 소설을 권하고 싶다. 독서에 가속도 붙을 뿐 아니라, 영화에서 미진하게 다룬 부분도 충분히 보충된다.

 

《나를 보내지 마》에서 SF 클론 소설의 전통적인 이야기 구조를 기대했다면, 독자는 분명 실망할 것이다. 모든 진실을 밝혀주는 결정적 한 방도 없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인터뷰에서도 밝혔듯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클론, 복제인간이라는 소재로 인간이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을 환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윤리적 이슈에 대해서도 그는 침묵한다. 그래서였을까, 에밀리 선생님이 소설의 끝자락에서 ‘사육’이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했을 때 나는 그 말이 너무 불편했다. 가끔 진실을 관통하는 직언은 그렇게 육중한 무게로 영혼을 타격하기 마련이다.

 

소설의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나는 다시 생각했다. 인간은 왜 존재하는 것일까. 소설에 나오지는 않지만, 영화에 나온 캐시의 말 또한 의미심장하다. 어떻게 근원자의 삶이 클론인 캐시의 삶보다 낫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오늘의 책을 리뷰한 '레삭매냐'님은?

책의 산에 도전하는 게으른 독서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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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할래요?

 

 

 

친구 할래요?

 

녹색양말, 책사랑, 무진기행, 바벨의 도서관, 지원맘짱, 5for10, 드림모노로그, 꼼쥐1, 서린, 하늘 바람™, 진격의 두통… 누군가는 나열된 단어만으로 단번에 공통점을 떠올릴 겁니다.

입에서 술술~ 마치 반 친구의 이름을 부르듯, 반디앤루니스 회원들의 닉네임을 읊조려 봤는데요. 사실 홈페이지에서 책 구매만 했던 회원이었다면 닉네임조차 알지 못했을 겁니다. '나의 서재'에 일기를 쓰듯, 꾸준히 서평을 남기는 회원들이기에. 이제는 너무나 친숙한 이름입니다.

사족입니다만. 월요일 아침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회원들이 남긴 서평을 확인하는 일입니다. 여느 직장인처럼 의자에 착석한 뒤 모니터를 켭니다. 주말을 지나 맞이하는 첫 번째 요일에는 누적된 서평의 횟수가 더 많습니다. 회원들이 하나씩 올린 서평은 사람이 읽고 관리합니다. (여기 그런 사람 한 명 추가요!) 왜, 학창시절 오엠말(OMR) 카드에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답을 표시해 제출했던 기억. 한 번쯤 있죠? 그런 것이라면 기계에 일괄 넣어 쭉쭉 성적을 뽑아냈을 겁니다.

그런데 서평이란 건 성격이 완전히 다른 것이라 기계가 관리를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물론 정답도 없고요. 수작업하듯 클릭과 읽기를 직접하곤 합니다. 언젠가 서평을 모니터링하며 생각했습니다. ‘이거 꼭 라디오 같다!’ 서평이 곧 한 명 한 명의 사연처럼 들리게 된 거죠. 함께 모니터링 하는 에디터 J도 동감합니다. 그러니 올라오는 서평은 물론이고 글쓴이의 닉네임도 기억에 남을 수밖에요.

인문, 철학, 과학, 예술, 문학 등. 회원들의 관심 분야는 저마다 다르기에 서평을 둘러보는 날은 뇌가 호강하는 날이기도 하죠. 서평을 통해 이런저런 지식을 유입 받을 수 있어 ‘융합형 인재’로 거듭나는 기분입니다.

서평은 사람이 올리는 것입니다. 정답도 없을뿐더러 책을 읽고, 생각을 자유롭게 서술하는 데 의의가 있죠. 강조하지만 서평이 반드시 새 책이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좋은 작품’을 공유한다면 더없이 반가울 겁니다. “나는 이렇게 읽었습니다.” 서평을 올린 뒤, 다른 이의 공감과 의견을 기다려보는 일. 일련의 작은 행위가 일상에 소소한 설렘을 더하지 않을까요.

지금 반디앤루니스에서는 처음으로 '책 친구'를 찾고 있습니다. 책 이야기 할 친구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취지에서죠. 기존 회원도 물론 지원할 수 있고요. 책 구매만 했었다면, 반디앤루니스 ‘펜벗’이라는 직함을 달고, 직접 서평을 작성해 보는 건 어떨까요. 굳이 ‘벗’이란 말을 사용한 이유는, 서로의 거리를 좁혀보고자 보탠 것입니다.

쓰고 보니 실상은 이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고백하는 것 마냥 오래 걸렸습니다. “이제 우리 친구 할래요?" 보다 많은 사람과 다양한 책 얘기로 소통하길 바라봅니다. 반디앤루니스에서 말이죠. 첫 번째 펜벗 지원에 많은 관심 바랍니다. 진짜 책 이야기 나눌 벗을 기다리겠습니다.

"왜냐하면 책이란 다름 아닌 사랑의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고 결국 어떤 책을 사랑하느냐는 그 사람의 속성, 그 사람의 자존감, 그 사람의 희망, 그 사람이 꿈꾸는 미래, 그 사람이 살아온 삶, 그 사람의 포용력, 그 사람의 사랑에 대해 더할 나위 없이 정확히 짚어주기 때문이다."
(정혜윤, 《그들은 한 권의 책으로 시작되었다》, 푸른숲, 2008)

 

 

연관 도서

 

   

 

 

|Editor_김민경

mins@bn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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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만난 사람] 원색 그림의 본색 - 그림 동화 작가, 로저 멜로

 

 

 

어린이 책이라는

아주 강력한 수단이자 도구

 

지난 19일,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흥미로운 일러스트 전시의 막이 올랐다. 브라질 출신의 그림·동화 작가, 로저 멜로의 첫 번째 개인전이 열린 것.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Hans Christian Andersen Award) 수상 직후, 그의 행보를 눈여겨보던 차이다. 그를 만나기 위해 한낮 미술관을 찾았다.

Editor_김민경

 

 

2014 안데르센상 수상

로저 멜로. 국내에선 다소 낯선 이름일 수 있다. 타국에서는 어떨까. 그는 현재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주목받는 그림 작가 중 한 명이다. 아동문학계의 ‘작은 노벨상’이라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수상한 것은 올해 초 일이다. 수상 직후 로저멜로는 작가로서 자신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동문학계에서 ‘안데르센상’이 차지하는 의미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상을 수여하는 협회 측은 수상자 선정에 만전을 기한다. 기본적으로 아동, 청소년 문학에 지속적으로 공헌해온 작가여야만 하며, 현재까지 작가가 완성한 모든 작품을 평가하기에 이른다. 그러니 여타의 상과는 '급'이 다른 셈이다. 어린이 책 작가에게는 생애 최고의 영예가 아닐 수 없다.  그와의 첫 만남. 늦었지만  짧은 축하 인사로 반가움을 표했다.

 

“수상소식을 듣고 정말 기뻤습니다. 상을 수여하는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설립된 협회입니다. 설립자인 옐라 레프만은 어린이 책을 통해 사람들 사이에 서로에 대한 이해와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었죠. 그의 생각에 깊이 공감합니다. 그래서 이 상이 제게 더 의미있죠. 안데르센은 제가 본받고 싶은 사람이기도 합니다. 여행가이며 사상가이자 상상의 세계를 연구하는 작가로서, 문학과 철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멋진 작품을 선보였기 때문이죠.”

 

 

그림책을 탐험하다

로저 멜로가 지금껏 펴낸 책은 100여 권에 다란다. 그중 22권의 책은 직접 글을 썼다. 이를 제외한 나머지 책들은 대부분 그림으로만 구성되었다. 페이지를 한가득 매웠던  그림들은 이번 전시를 빌어 ‘책’을 탈피할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는 전시장 곳곳에 ‘하나의 작품’으로서 존재하게 되었다.

“전시도 어떻게 보면 하나의 그림책이라 볼 수 있어요. ‘근대 미술’을 하는 이들은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요. 책과 전시를 분리해서 생각하기 보다, 거대한 또 하나의 책 안으로 들어간다고 접근해 보면 좋겠어요."

애당초 그림이 책이란 틀을 벗어나게 됐다는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림을 ‘작은 책’이란 공간에서 꺼내어 더 '큰 책’(전시장)에 배치했다는 게 작가의 생각이다. 이를 통해 어린이들이 책 속을 맘껏 거닐고 만지며 ‘체감’하는 게 가능토록 하였다.

 

 

    

                (좌 - 마리아 테레사)                                        (우 - 피레네폴리스의 가면 축제)

 

 

                                                                                                                        

그림에 깃든 고유의 문화

그림을 면면히 살펴보면 작가가 브라질 출신임이 명백히 드러난다. 남미 특유의 원색적이고 강렬한 색은 작가에 의해 과감히 사용되어졌다. ‘푸름’을 표현할 때, 그는 어두울 정도로 짙고 선명한 파란색을, ‘붉음’을 표현할 때는 브라질의 날씨마냥 열기가 느껴지는 새빨간 색을 거칠게 펴 발랐다. 원색의 구성 요소들은 한 장의 그림 속에서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이러한 특성이 작가가 태어난 브라질의 문화와 맥을 같이 한다.

 

“브라질은 알다시피 다문화 국가입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죠. ‘다름’ 그 자체는 요즘 브라질 문화 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거의 모든 나라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죠. 다름이란 여러 모로 긍정적인 측면을 내포하는데, 인간 존재로서 우리를 한데 묶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또한 하나의 객체로서 우리를 좀 더 도전적으로 만들어 주지요.”

 

그림 속 녹아든 브라질의 전통 문화 요소를 찾아내는 일은 매우 흥미롭게 여겨진다. 이는 장소를 불문한다. 아이들은 어디에서든 그림 책을 넘기며 브라질의 문화를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다. 타국의 문화를 접하기에 로저의 ‘그림 책’은 더없이 훌륭한 ‘매체’로써 기능한다.

 

 

 

(좌 - 일어나 일어나 소야)               (우 - 맹그로브 소년)

 

 

그들의 삶도 동화가 될 수 있다

그림책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무엇일까? 사실 작가는 인류의 꿈과 환상에 대한 이야기도 하지만 외로움, 브라질의 문화 문제, 아동 노동 착취 등 사회적인 문제도 풀어낸다. 맹그로브 숲에서 노동 착취를 당하는 아이들의 이야기, 브라질의 주요 수출품인 ‘철’ 생산 공장에서 뜨거움을 견디며 일하는 어린이의 생활상 등이 그러하다.

 

“어린이 책이라는 것은 아주 강력한 수단이자 도구입니다. 제가 어린 시절, 브라질은 독재 정부 체제였습니다. 당시에는 어떠한 ‘금서’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문제가 됐죠.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거나 처형당하기도 했습니다. 책이란 정말 무서운 것이구나. 어릴 때부터 생각했습니다. 역사적으로도 책은 이러한 의미를 지니고 있죠. 반대로 생각해 보면, 책이 무엇인가 변화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책은 일상이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해야 만 합니다. 만약 열악한 가마터에서 노동하는 어린이들이 있다면, 맹그로브 숲에서 노예처럼 일하는 어린이들이 있다면 그들의 일상도 그림책에 나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세상의 일부라든지 시민이라는 생각 자체를 갖지 못할 거예요. 아이들은 나의 인생은 동화 에서는 제외된 소재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작가는 책을 통해 외치고 있었다. "여기 이 아이들도 세상의 일부랍니다." 로저 멜로는 어떠한 변화란,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일부터 시작이라 전했다. 이같은 생각을 책을 통해 이끌어낼 수 있다면서. 그는 어려운 이야기를 그림을 통해 부드럽게 전달하는 능력을 지녔다. 그렇다면 그림이 ‘텍스트’보다 유용한 점이 무엇일까. 그에게 물었다.

 

“책은 언제나 이미지와 글자의 통합체였습니다. 서술적 이미지와 글자가 어린이들의 상상력에 다가갈 방법이라 믿습니다. 책에는 언제나 그림이 있었고, 글자가 의미전달 수단으로 사용되기 이전부터 책이 필사되어 전해지기 이전 시대부터 그림은 존재했습니다."

 

그림이 ‘origin’ 한 것이란 말인가. 어찌 됐건 좋다. 그의 메시지를 어린 친구들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면 된 것 아닌가. 더군다나 그림을 통해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작가의 말에 동의한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림을 해석하고 이야기를 만들어보는 과정. 이러한 경험이 아이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굴한다는 사실에 토를 달 여지가 없다. 끝으로 인터뷰 말미. 작가가 남긴 이야기 중 인상 깊었던 대목을 짚어 본다. 책과 기술의 대립에 대한 대화 중, 기술에 의해 사람들이 책을 등한시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오갈 쯤이다. 짧지만 강한 그의 답변이 마음에 스친다.

 

“사람들 모두 입 모아 말합니다. 책이 위기라고요. 하지만 이때에 우리는 책 얘기를  더 잘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기회인거죠. 기술이 마치 책과 경쟁하는 인식이요? 이것이 어찌보면, 사람들로 하여금 책에 대해 더 큰 관심을 갖게 합니다. 이같은 현상은 책을 위해서도 그렇게 나쁜 일이 아닙니다.”

 

 

본색의 진화

원색 그림의 본색. ‘본디의 특색이나 정체’는 작가가 그토록 사랑하는 브라질일 수도, 소외된 아이들을 향한 뜨거운 관심. 혹은 피터 팬을 꿈꾸는 소년일지 모른다. 로저 멜로의 그림에 대해 본색을 규정하기에 아직은 그 시기가 적절치 않아 보인다. 작가는 아직도 들려줄 이야기가 많이 남아있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본디 빛깔이나 생김새’는 진화를 거듭할 예정이다. 물감, 붓, 책에 의해 완전한 형체를 갖춰나가는 중이다. 이러한 일련의 단계를 로저 멜로는 작가 특유의 감성으로 즐기는 모습이다. 멋지지 않은가! 앞으로 그의 작품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기도 하다. 한낮 미술관에서 그와의 만남. 잠깐이었지만 작가와 그림과 책과 문화를 논하던 시간은 이내 유쾌함으로 각인되었다. 로저의 그림처럼 강렬하고 여운이 짙다.

 

 

 

작가의 새 책_《실 끝에 매달린 주앙》(나미북스)

 

 

최근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로저 멜로의 책이 출간되었다. 《실 끝에 매달린 주앙》은 밤에 홀로 남아 잠을 자야 하는 어린이 ‘주앙’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불 속에서 혼자 밤을 보내는 주앙에게 이불은 온 세상만큼이나 크게 느껴지는데…. 작가는 어린 소년의 두려움을 경쾌하고 발랄한 상상으로 풀어냈다.

 

이불 속에서 발장난을 치자 지진이 일어나요! 하늘로 솟은 산등성이가 순식간에 산골짜기로 바뀌어요. 그러는 동안, 이불 위에 세워진 작은 마을에서는 지진에 대비할 방법을 찾아요. 거인 주앙을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본문 중에서)

 

 

 

 Tip_ 로저멜로 한국전

동화의 마법에 홀리다!

읽기만 하던 책에서 벗어나 책을 체험해 볼 수 있다. 작가가 1996년부터 2011년까지 작업했던 그림책 원화 88점은 물론 한국전을 위해 작가가 특별 엄선한 30여 점의 원화 및 스케치. 아이디어북과 브라질 소품 등을 선보인다. 책 속 그림을 홀로그램으로 구현한 공간은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장소: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기간: 2014년 9월 19일(금) ~ 2014년 10월 15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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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책 두 권

 

 

 

 

어떤 노래를 듣는 와중 바로 다음에 듣고 싶은 노래를 떠올릴 때가 있다. 두 노래는 어딘가 닮았다거나 번뜩 떠오르는 서사가 있기 마련이다. 강상중이 쓴 소설 《마음》을 읽던 중에 나쓰메 소세키의 어떤 이야기든 이어 읽고 싶었다. 마침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전집 2차분 목록이 나왔다. 갱부, 《산시로》, 《그 후》, 《우미인초》. 이렇게 네 권이다. 네 권은 불안과 불만으로 묶인 한 권으로 보이기도 한다. 나는 이 네 권 중에 가장 어두운 《갱부》를 강상중의 《마음》에 이어 본다.

 

영원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다면, 저는, 역시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사랑해야 하는 고인들에게 어울린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청춘과 죽음의 배반성을 견디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어떨까요. - 강상중

(강상중 / 노수경 옮김, 《마음》, 사계절, 2014)

 

주인공인 학생 나오히로는 친한 친구의 죽음을 겪었다. 그는 지독한 괴로움을 견디며 선생 강상중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위 구절은 강상중이 소년에게 보내는 편지 일부다.

 

《갱부》의 앞표지에는 일본어로 '걸으면 걸을수록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흐릿한 세계'라고 쓰여 있다. 《갱부》에는 견디다 못해 죽으려고 집을 뛰쳐나온 한 소년이 등장한다. 소년은 계속해서 걷는데, 그저 어둠만이 목적지다.

 

“임자, 일할 생각 없나? 어차피 일은 해야 할 거 아닌가?”
도테라가 다시 물었다.

다시 물었을 때는 나도 그럭저럭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눈앞의 상황을 이해하게 되었다.
“일해도 됩니다만.”
이게 내 대답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임시방편이라 하더라도 적어도 그런 대답이 입 밖으로 나올 만큼 내 머리가 가까스로 정리되었다는 것은, 단순하지만 과거를 한번 쭉 돌이켜보는 과정을 거쳤다는 걸 의미한다.

(...)

간단히 말하자면 나는 어두운 곳으로 갈 생각이지만, 사실은 어쩔 수 없이 가는 것이고 뭔가 붙잡는 것이라도 나타나는 날엔 얼씨구나, 하고 보통의 사바세계에 머물 생각인 것으로 보였다. 다행히 도테라가 붙잡아주어 아무렇지 않게 다리가 뒤쪽으로 걷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를테면 자신의 큰 목적에 송구스러운 배반을 좀 해본 셈이다.

(나쓰메 소세키 / 송태욱 옮김, 《갱부》, 2014, 현암사)

 

강상중의 《마음》과 나쓰메 소세키의 《갱부》에 나오는 '실패 중인 인생'을 잠깐 바라봤다. 두 작가의 책을 읽을 때면, 나는 읽지 않은 이야기여도 언제나 읽어본 이야기 같다고 생각했다. 《마음》과 《갱부》를 읽는 중에도 나는 두 작가의 일관된 치열함이 좋았다. 또한 두 소설에서 나는 그동안 잊고 지냈던 말, '배반'이라는 단어에 여지없이 묶여 버렸다.
'배반'이라고 알고 있던 뜻 옆에 '뜻 2'가 새겨졌다. 놓치기 아까운 것을 견디는 데 '배반'이라는 단어가 쓰일 수도 있으며, 억지스러운 마음가짐과의 배반이 어쩌면 송구스러울 수 있다는 것. 고쳐먹을 마음이 아직도 많이 남았다.

 

 

| 정혜원

(hyewonjung@bn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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