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0.02.05 <29인의 드라마 작가를 말하다> - 로맨틱 드라마의 주인공이 될 수 없을까? (4)

<29인의 드라마 작가를 말하다> - 로맨틱 드라마의 주인공이 될 수 없을까?

신주진, <29인의 드라마 작가를 말하다>, 밈, 2009

고된 하루일과를 마치고 집에 툭하니 던져지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마음 같아서는 책을 펴고 동서고금의 현인들과 만나 농 한 번 걸고 싶지만, 집중력은 아직 귀가하지 않았다. 이럴 때 뱀의 속삭임보다 더 달콤한 게 있으니, 바로 드라마다. TV를 켜면 놀라운 세계가 열린다. 세종로 한복판에서 총싸움이 펼쳐지고, 현실에서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선남선녀들이 아름다운 사랑을 나눈다. 판타지의 힘은 놀랍다. 얼굴에 점 하나 찍었을 뿐인데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뀌고, 우리는 심히 몰입한다. 놀랍도다! 드라마의 힘이여!

이 한 권의 책에는 수백 편의 드라마가 있다. <전원일기>(1981) <여명의 눈동자>(1991) <사랑은 그대 품안에>(1994) 등을 비롯해 지난해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선덕여왕> <베토벤 바이러스>까지. 20년 넘게 국내 브라운관에 등장한 모든 드라마가 저자의 더듬이에 척척 걸친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저자는 왁자지껄한 술집에서도 드라마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나 뭐라나.) 변화무쌍하게 변하는 드라마를 얘기하는데 있어 저자가 부여잡은 건 ‘작가’다. 작가와 작가를 비교(대조)해 성격을 두드러지게 하고, 작가의 변화상까지 포착한다.

‘가부장체제의 안과 밖 - 김수현 vs 김정수’ 등 13개 주제 모두 시선을 끌지만 ‘기획드라마의 시대를 열다 - 송지나 vs 최완규’로 드라마의 맛 좀 보자. 송지나(<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 <태왕사신기>)와 최완규(<허준> <상도> <주몽>) 모두 제목만 들어도 입이 떡하니 벌어지는 작가이다. 이들은 ‘탁월한 작가인 동시에 뛰어난 기획자’로 “사랑이나 불륜을 주로 다루고 가족문제가 중심을 이루는 가족드라마 일색인 우리나라 드라마의 무대와 영토를 매우 큰 폭으로 확장시켰다.”(54쪽) 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이야기 전개에 있어서 두 작가는 전혀 다른 길을 걷는다.

송지나가 세계를 시대와 인물간의 갈등으로 본다면, 최완규는 인물과 인물의 갈등으로 본다. <여명의 눈동자>에서 여옥(채시라)과 대치(최재성), 하림(박상원)은 일제의 폭압과 갈등하는 반면 <허준>에서 허준(전광렬)은 스승 유의태(이순재)의 아들 유도지(김병세)와 갈등한다. 송지나의 인물들은 시대와 갈등하기 때문에 선악구도가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 <모래시계>에서 태수(최민수)는 광주항쟁의 시민군에서 깡패로, 혜린(고현정)은 독재타도를 외치던 운동권학생에서 카지노업자로 변신한다. 하지만 시대와 투쟁하고 있는 이들의 변신은 어떻다 쉽게 평가할 수 없다. 이에 반해 주몽(송일국)과 같은 최완규의 인물들은 끊임없이 상대방과 대결을 펼치며 끝내 영웅의 위치에 선다.

독한 것은 독한 것을 부르네

드라마 본 김에 ‘막장드라마’라 불리며 시청자들의 혈압을 상승시키는 드라마도 보자. 영광의 주인공들은 ‘욕망과 계략의 이중주’란 이름으로 묶인 임성한(<인어아가씨> <하늘이시여>)과 서영명(<이 여자가 사는 법> <금쪽같은 내새끼>)이다. 잠깐 그 이유를 보면, “물론 <조강지처클럽>(2007)의 문영남이나 <아내의 유혹>(2008)의 김순옥도 둘째가라면 서럽다. 그러나 임성한과 서영명은 90년대 말부터 지속적으로, 서로 뒤질세라 파격적인 설정과 논란으로 엽기 경쟁을 벌여왔다는 점에서 가히 ‘막장드라마’의 지존으로 부름직하다.”(255쪽) 대체 얼마나 막장이기에 강력한 라이벌들을 제치고 ‘지존’이란 타이틀을 수성할 수 있었을까.

자신과 엄마를 버린 아버지에게 복수하기 위해 드라마 작가가 돼 이복동생의 남자를 빼앗고(<인어아가씨>), 어려서 버려진 친딸을 며느리로 맞는다(<하늘이시여>). 또 친구의 시아버지를 남편으로 맞아들이고(<이 여자가 사는 법>), 아버지 사채빚을 못 갚아 찾아온 여자를 자신의 의붓아들과 정략적으로 결혼시킨다(<금쪽같은 내새끼). 여기에 특정 직업에 대한 비하 발언 등의 노이즈 마케팅과 구구절절한 연장방송은 막장의 마침표를 찍는다. 주인공의 복수의 완수와 성취로 끝나는 막장의 향연은 가족신화에 허구성을 쉽게 끄집어낸다.

이에 대해 저자는 “암투와 폭력의 현장을 아무 비판의지 없이 혹은 정당화의 방식으로 드러내는 무반성적인 태도”를 지적하며, “이들의 반휴머니즘이 인간의 부정적 측면에 대한 선정적이고 얄팍한 소재주의적 악용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제기한다.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더 ‘독한 것’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저자는 드라마를 이야기, 캐릭터, 트렌드, 마니아 등 4개의 키워드로 분류해 드라마 작가론을 펼친다.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당연히 있다.

바야흐로 드라마 전성시대다. 어른들이 볼만한 프로그램이 조금씩 자취를 감춰가는 현 상황에서 드라마의 역할은 점점 커지고 있다. 이럴 때 필요한 책이 바로 <29인의 드라마 작가를 말하다>가 아닌가 싶다. 워낙 방대한 양이라 정리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 수많은 인물들 뒤에서 하나하나 제자리를 찾아주기 위해 고심하는 저자의 흔적이 엿보인다. 책을 보고 드라마를 보고 싶다는 욕망은 자제하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2010년의 시간은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반디 (ak20@bandinlunis.com

Trackback 0 Comment 4
  1. Sun'A 2010.02.05 10:07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오늘도 엄청 춥네요
    따뜻하게 잘 보내세요~^^

  2. 명동거리 2010.02.05 10:11 address edit & del reply

    잘보고 갑니다~

    • 반디앤루니스 2010.02.05 13:02 신고 address edit & del

      명동거리라면 저랑 가까운 곳에 계시네요!
      전 인사동거리에 있는데..^^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prev 1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