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에 해당되는 글 43건

  1. 2009.05.14 소믈리에르1 - 특별한 날을 만드는 법, 와인
  2. 2009.05.13 물과 돌의 기억들 - 사랑으로 복원한 오만년의 기억들
  3. 2009.05.11 아버지의 날개: 위기의 중년 가장을 위한 응원 메세지

소믈리에르1 - 특별한 날을 만드는 법, 와인

 

ARAKI JOH, <소믈리에르1>, 학산문화사, 2007

영화 ‘사이드웨이sideaways’에서 주인공은 여행 중에 만난 운명의 상대와 와인을 주제로 대화를 나눈다. 그는 자기가 태어난 해에 빚은 와인을 갖고 있다면서 언젠가 특별한 날에 마개를 열려고 특별한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자 상대방은 이렇게 대답한다.

“그걸 여는 순간이 바로 특별한 날이 되는 거에요.”

영화의 말미에서 주인공은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시켜놓고 그 ‘특별한 와인’의 마개를 딴다. 누군가의 눈길을 끌까 봐 병을 탁자 밑에 숨겨가며 잔도 없이 직접 입에 대고 와인을 비우지만 그 순간만큼은 어느 곳 어느 때와 비교할 수 없이 찬란하게 빛난다.

만화 ‘소믈리에르’는 술 만화를 전문적으로 그리는 Araki Joh의 만화다. 이츠키 카나라는 여성 소믈리에를 주인공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감을 와인을 매개로 다채롭게 펼쳐보인다. 매 권마다 너댓가지의 에피소드를 들려주면서 다양한 와인을 등장시키고 그 와인의 특별함을 이야기 속에서 부드럽게 녹여냈다. ‘신의 물방울’처럼 최고급 와인과 시적인 설명으로 독자를 현혹하지 않으면서도 우리 주변에서 만나는 소박한 포도주의 맛과 향기를 알싸하게 건네준다.

외국의 고아원에서 자라다 후원자의 요청으로 도쿄에 오게 된 주인공은 세상 물정에 깜깜하다. 손님의 대화에 끼어들고, 누군가의 인생에 참견하고, 원하지 않은 와인을 굳이 추천하는 그녀는 기울어진 탁자에 놓인 유리화병처럼 위험해 보이지만 반대로 그만큼 독특한 빛을 뿜는다. 그녀가 믿는 것은 ‘진심’뿐이며, 그 가녀린 진심을 전달하기 위해 오해를 무릅써가며 와인 한 잔을 권한다. 라벨 뒤에 숨은 포도밭의 내력과 포도를 일구느라 자신의 생활을 바꾼 사람들의 인생이 지면 위로 생생하게 솟아오른다. 

만화는 말한다.
“운명을 바꿀 수는 없어.”
그리고 덧붙인다.
“하지만 그 운명과 싸울 수는 있지.”

생각해 보면 와인을 만드는 일도 그와 같다. 기후를 바꿀 수는 없지만, 그 기후에 적응해 가며 밭을 살리고 포도를 재배하는 것, 수많은 변수와 실패를 감수해가면서 포도의 맛을 한 방울의 술 속에 남김없이 담는다는 것… 그것이 우리의 삶과 비슷하지 않느냐고 작가는 칸과 칸 너머에서 낮은 목소리로 설득하는 것처럼 보인다.

누군가에게 와인은 사치품이고, 유행이며, 과시의 수단이기도 하다. 검색 사이트를 몇 번만 뒤져보면 이 동방의 작은 국가에서도 1등급(Grand Cru) 와인을 먹어본 사람은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와인은 기호품이고, 술이며, 음식의 한 종류일 뿐이다. 이 세상에는 수만 종의 와인이 있으며 그 와인들은 각각 다 다르다. 어느 교육감처럼 일제고사를 통해 모든 이의 점수를 매기는 것은 와인의 세계에서는 몰상식으로 통한다. 와인은 다양함은 그 자체로 매력이며, 가격과 맛은 비례하지 않는다. 희소한 와인, 가장 비싼 와인이 가장 좋은 와인은 아니며, 5천원 내외의 값싼 포도주라고 해서 맛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당신이 누군가에게 진심을 전하고자 할 때, 꼭 사랑이 아니더라도 미안함이나 고마움을 표시하고자 할 때 그때 식탁에 놓으면 어울릴 수만 가지 음식 가운데 와인을 선택하면 어떨까. 꽃 향기와 나무통 냄새, 초콜릿 맛, 자두 내음… 코에서 시작해 입안과 혀, 목으로 넘어갈 때 모두 달라지는 와인만의 독특한 바디감과 부케는 식탁 위로 오가는 대화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 것이다.

진심을 믿는다면, 이츠키 카나처럼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할 것. 두렵고 힘들더라도 타인과의 교감을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것. 인생의 결정적 순간은 진실을 회피하지 않는다면 바로 지금일 수도 있다는 것. 순하고 가볍지만 만만찮은 내공을 가진 책, 메를로(merlot) 와인의 담백함을 닮은 만화 ‘소믈리에르’를 강력히 추천한다. 책도, 와인도 그저 행복의 질료일 뿐이라고. 그러므로 읽고 맛보고 느끼고 경험하고 그리하여 더 행복해 지자고. 

오늘의 책을 리뷰한 '뮤즈'

영화와 그림과 책 가운데 자신의 삶을 놓고 싶다는 감성의 블로거. 매년 책 100권, 영화 100편, 전시회 100회를 꾸준히 읽고 보시는 열혈 문화독자이기도 하시다. 그의 좌우명은 이렇다. "부드러움이 곧 강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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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돌의 기억들 - 사랑으로 복원한 오만년의 기억들


현고진, <물과 돌의 기억들>, 포럼, 2009


사랑으로 복원한 오만년의 기억들


성경 <전도서>의 저자는 ‘해 아래 새것이 없다’고 말한다. 이 말은 무슨 뜻일까? 문명은 역사 속에서 새로운 제도를 만들었고, 새로운 기계를 발명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인간은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고, 그 끝은 상상할 수 없다. 멀게는 우주로 가깝게는 인간의 육체로, 거시와 미시를 넘나드는 인간의 능력은 화려하고 그 자체로 경이로울 뿐이다.

그럼에도 ‘해 아래 새것이 없다’라는 성경의 선언은 곱씹어 볼수록 의미롭다. 길가에 놓인 흔하디 흔한 돌 하나, 소리 없이 강폭을 따라 흐르는 물줄기는 소위 인간의 역사나 인간 자신보다는 오래되었음이 분명하다. 발길에 채이는 돌은 너무나 흔하여 아무도 관심 갖지 않고, 무시해 버릴만한 존재이지만 그 존재가 갖고 있는 시간의 역사와 무게란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을 것인가? 저 돌은 모진 시간들을 인고하여, 오늘 저 길에 놓여 있다. 그 존재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시간의 폭과 영역을 훨씬 넘었고, 넘어설 것이다.

인간이 자랑 삼아왔던 문명이란 저 돌과 물로 이루어진 지구라는 터전이 없었다면 감히 존재나 할 수나 있었을까?  만물의 영장이란 화려한 자화자찬으로 이 행성을 지배하여 왔다고 생각한 인간은 오직 개발과 발전만이 유일한 선이란 착각으로 물과 돌의 겸손함은 알지도 못한 체, 무지한 삽질만 계속하려 한다. 21세기, 대한민국 이 땅에서 벌어지는 4대강 정비사업, 대운하 프로젝트 등이 자연의 엄숙함과 겸손함을 잊은 오만한 삽질의 대표주자다. 

그들의 리드미컬한 삶

현고진 장편 <물과 돌의 기억들>은 5만년 전 원시 구석기인들의 삶을 리드미컬하게 복원하고 있는 소설이다. 이 소설의 기록은 그대로 인류가 걸었던 발자국이고, 유전자가 저장하고 있는 원형질의 기억이다. 인류는 오랜 시간 무수한 발견을 이룩해냈다. 진보는 발견 속에서 나왔고, 그걸 통해 인류는 보다 나은 삶을 향해 전진 할 수 있었다. 사랑의 발견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라는 감정이야말로 5만년 전 구석기인과 현대인이 함께 공유하고 있는 공통된 생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 소설 속 등장 인물들은 그 사랑의 원시적인 형태를 여러 갈래로 보여주고 있다. ‘주름살’은 실연을 당한다. 그가 집단에서 종적을 감춘 것은 곧 실연의 고통이 죽음을 앞선다는 것을 의미한다. 좋아했던 ‘여우비’란 당사자에게 직접적으로 거부의 응답을 받은 그는 더 이상 살아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던 것. 집단을 벗어난다는 것은 곧 죽음과 같다. ‘여우비’의 ‘독뱀’에 대한 사랑은 권력지향적인 사랑이다. 잔인한 성정의 독뱀을 사랑하고, 그의 자식을 낳고자 하는 여우비의 욕망은 권력욕을 교묘하게 사랑으로 포장시킨다. 문명의 역사에서 여우비에 비견될만한 권력욕을 지닌 여인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서사의 중심축은 물보라를 사이에 둔 ‘하늘바람’과 ‘푸른지네’의 관계다. 이미 하늘바람의 아내가 되어서 그의 아이까지 두고 있는 물보라를 사랑하고 있는 푸른지네는 복합적인 사랑의 형태를 보여준다. 집단과 집단의 리더인 하늘바람과 푸른지네의 대립은 곧 연인 물보라에 대한 소유, 곧 사랑의 궁극적 쟁취를 목적으로 한다. 푸른지네는 지고지순한 사랑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연인이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갖고 있음에도 자신의 사랑을 포기하지 않고, 연인을 손에 넣으려는 그는 정적의 아이까지 보듬는 괴이한 형태를 보여준다. 푸른지네는 연인을 위해 목숨을 건 종족간의 싸움을 피하지 않는다.  

푸른지네였다. 그는 나뭇가지에 올가미를 매달아놓고 그 위에 걸터앉아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물보라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는 애원했다.
‘나를 하늘바람에게 보내 줘’
푸른지네는 올가미를 끌어올려 그의 목에 걸며 쓸쓸하게 말했다.
“나는 영혼이 없다. 네게 다 줘 버렸기 때문에, 네가 가면 나는 죽는다”
( p.144,  현고진 장편 <물과 돌의 기억들>)


그러나 지고지순함은 맹목성의 다른 이름이며 그 열정의 이면에 냉혹한 양날의 칼을 품고 있다. 그것은 사랑으로 미화된 폭력성이기도 하다. 집단의 리더가 한 여자를 위해 전쟁을 일으킨다면, 그것은 원시나 현대에서나 옳은 일은 아니다. 집단의 리더는 대의를 갖고 행동하고, 판단해야 한다. 푸른지네는 잘생겼고, 용맹하며, 건강하고, 남성미가 물씬 풍기지만 사랑하는 여인을 소유하지 못하는 한 그 모든 능력에도 불구하고 절름발이에 지나지 않은 삶을 살 것이다. 물보라를 소유하고 나서야 그가 아버지 독뱀으로부터 물려받은 잔혹성을 희석시키고, 종족의 지도자로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을 주지해야 한다. 푸른지네의 사랑은 목적지향적이고, 이기적이며, 맹목적인 야만성 때문에 결코 아름답지 않다. 

세상의 북쪽 끝을 꿈꾸는 하늘바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하늘바람’이다. 하늘바람은 이 소설의 주인공이지만, 개성이 특별하지 않은 인간이다. 그는 그다지 용맹하지도, 싸움을 잘하지도, 영특하지도, 잘 생기지도 않았다. 그는 스페셜리스트가 아니라 제너럴리스트 같은 인물이다. 어느 특정한 능력을 품고 있진 않지만, 다양한 영역에서 지도력을 발휘하고 인간적인 매력을 발산한다. 그는 사랑을 위해 목숨을 걸지만, 종족의 어른인 ‘구름호수’의 불호령에 대의를 살필 줄 아는 자기통제가 가능한 인물이다. 그는 ‘느린소’로 대표되는 원로의 지혜를 존중할 줄도 아는 인물이다. 그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탐험가의 기질이 있다. 그는 누구도 찾질 않는 ‘세상의 북쪽 끝’을 항상 궁금해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그가 작품 속에서 사랑의 완전한 한 형태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아내와 아이를 뺏긴 남자가 보여줄 행동이란 어느 시대건 몹시 단순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늘바람은 푸른지네와 행복하게 아이까지 낳고 살고 있는 물보라를 빼앗기 위한 술수를 부리지 않는다. 푸른지네와 피를 부를 수도 있는 싸움도 포기한다. 여기서 하늘바람의 포기는 겁쟁이의 비겁함이 아니다. 그것은 푸른지네의 맹목적인 목적지향적 사랑과 비교된다. 물보라에 대한 사랑, 자신의 아이에 대한 그리움, 푸른지네에 대한 증오, 이 모든 감정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고, 한발 물러서 한번 더 생각하고, 그들의 평화를 깨려 하지 않고, 뒤돌아 자신의 길을 떠날 줄 알았던 하늘바람의 사랑은 뭔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한 차원 더 높은 사랑의 모습이다. 이 사랑을 작가는 외롭고, 비참하지만 아름답다라고 썼다.

 하늘바람은 땅을 보고 걷는 주름살을 돌아보며 뜬금없는 물음을 툭 던졌다.
‘사랑이 뭔지 아나?’
주름살은 그를 힐끗 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늘바람도 더는 묻지 않았다. 그는 묵묵히 걸으며 자신의 물음을 곱씹고 있었다. 사랑은 외로울 수 있다. 사랑은 비참할 수 있다. 그러나 아름답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다. (p.235, 현고진 장편 <물과 돌의 기억들>)


소설 <물과 돌의 기억들>은 서사의 단순성이 보이며, 내용적인 측면의 흥미로운 요소가 산재해 있진 않다. 그러나 이 소설이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은 의미심장하다. 왜 사랑이 아름다워야 하는가? 왜 아름답지 않으면 사랑이 아닌가? 남녀간의 사랑이란 그렇게 아름답지 않은 경우가 허다한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 모두를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의, 당신의, 기억 속 사랑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 진정 그것은 아름다운 모습이었는가? 독자는 어떤 답을 하게 될까?

그러나 하늘바람이 보여주는 행동에는 남녀간의 사랑이란 단순한 감정을 훨씬 뛰어넘는 요소가 숨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의 사랑은 개인의 욕망을 뛰어넘고, 과거에 연연하지 않으며, 미래까지를 내다보고 있다. 그의 사랑이 아름다운 이유는 사랑을 단순히 한 인간의 욕망의 범주 내에 가둬두려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욕망이란 본능에 가깝지만 얼마나 많은 폐해를 불러오는가?

아름답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어야 한다

사랑이란 욕망의 또 다른 이름이다. 욕망이란 더 나쁜 의미의 탐욕으로 흐를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죄악은 탐욕에서 나온다. 브레이크가 없는 탐욕 때문에 개인이나 사회, 그리고 국가 모두 곤경에 처하기도 한다. 경제의 계급적 폭력성에 매몰된 신자유주의를 주도하던 미국의 몰락이나 前대통령 측근과 가족의 패가망신은 그 좋은 예이다. 탐욕에 물든 정치인, 경제인들이 넘쳐난다. 모든 것이 경제 제일주의로 흐르는 지금 이 땅의 자연은 훼손의 삽질을 기다리고 있다. 탐욕은 자기중심적인 욕망이다.

자기중심적인 욕망이란 인간의 본능을 극복할 수 있음으로써, 하늘바람은 덜 진화된 ‘오스트랄로 피테쿠스’라는 원숭이가 아니라, 진정한 인간인 ‘호모 사피엔스’였음을 스스로 증명해 보인다. 5만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 주위엔 ‘오스트랄로 피테쿠스’나 ‘크로마뇽인’의 마인드를 가진 이들이 널려 있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자신이 덜 진화된 원숭이에 가깝다는 사실을 모른다. ‘하늘바람’처럼, 현재와 미래 그리고 자아와 타자의 관계까지를 고려할 수 있는 그 넓은 성정을 우리는 사랑이라 부르자. 사랑을 단순히 자기 욕망의 충족행위로 해석하는 이들은 명심할 일이다. “아름답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어야 한다. 사랑은 호모 사피엔스가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개츠비'님은?

잡식성 책 읽기를 즐기는 30대중반의 직장인입니다. 좋은 책을 고르고, 좋은 책을 읽고, 좋은 리뷰를 쓰는 것은 제 삶에서 가장 중요한 소일거리 입니다. 그러나 그 소일거리 때문에 삶이 정말 행복합니다. 한 권의 양서는 바이러스와 같은 감염성이 있습니다. 단, 행복하고 기쁜 생각들을 사람에게 전파합니다. 책 읽기를 멈출 수 없는 것은 그것이 제 인생의 면역력을 높이고, 생의 다양성을 통해 인생의 아름다움을 선물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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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날개: 위기의 중년 가장을 위한 응원 메세지


 
정우택, <아버지의 날개>, 휴먼드림, 2009


오월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이 있고 어버이날도 있다.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5/21)등 많은 날들이 우리를 기다린다. 오월은 또 결혼이 많은 달이다. 총각 처녀들이 하나의 가정의 가꾸어 나가는 그런 신비로운 달이기도 하다. 장미의 계절!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어느 누가 나를 사랑해줄까? 아내가? 자녀가? 직장의 동료가?  절대 아니다. 내가 나를 미워하는 만큼 그들도 나를 미워한다. 나만 외로운 길, 쓸쓸한 길을 홀로 가야 한다. (p 75)

이 책은 살아가는데 필요한 내용들이 들어 있는 생활백서다. 어찌하면 사회에 잘 적응하고 가정에 잘 적응하여 살아갈 수 있는지 알려준다. 짧은 항목들 중에 필요한 것을 찾아 읽어보면 많은 도움을 준다. 부정적인 글이 아닌 희망을 노래하는 글이다. 자녀는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보는 대로 한다.” 맞아! 어른들은 무단 횡단을 하며 아이에게 횡단보도로 길을 건너라고 하는 것과 같은 말이다. 나는 자녀에게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 부부간에, 가족 간에 서로 사랑하고 아끼는 모습을 보여주면 자녀도 그런 마음을 갖는다. 부모가 돈, 돈하고 다니면 자녀도 돈독이 오른다. 부모가 좋은 학교 타령을 하면 자녀도 학벌병에 걸린다.(p 269)

저자 정우택은 자신도 중년임을 알리며, 일명 ‘삼팔육’, ‘오륙도’의 아버지를 대변하는 글로 그들을 위로하고자 한다. 가족들을 위해 힘들게 살아 왔지만 가족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그분들의 이야기! 그 이야기는 내 부모, 내 신랑, 나의 이야기이다. 서로를 사랑하고 위로하는 그런 따듯함이 새삼 그리워진다. 따사로움 오월, 마음으로부터 전달되어지는 진실한 사랑이 그리워진다.

날개 꺾인 새

<아버지의 날개>. 책 속에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신랑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들어 있다.  내년이면 일흔이신 친정아버지, 쉰 살을 넘어 일명 ‘오륙도’ 세대인 신랑, 마흔을 넘겨 이제 중년소리를 듣는 나, 그렇게 글 속에서 들었던 말들이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로 들려온다. 술을 좋아하시는 아버지 젊은 시절 거의 매일 술로 사셨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그때는 그런 아버지를 원망도 많이 했고 다섯이나 되는 자식들을 버려두고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나버린 엄마를 증오했었다.

무책임한 부모 밑에서 동생들을 거두어야했고 힘들게 공부를 가르쳤다. 내 자신은 뒷전으로 밀린 채. 내게는 남들 다 있는 십대가 없다. 바쁘게 부모의 역할을 대신하며 살아갔기에 사춘기를 몰랐고 이십대의 청춘도 없었다. 그래서 내게는 부모님에 대한 감사나 고마움을 간직할 기회가 부족하다. 내 나이 사십을 넘겨 그 시절 아버지 나이가 되었다. 이제 조금씩 이해를 한다면.

책에 나오는 많은 중년 가장들의 이야기가 가슴에 들어와 나를 울린다. 돈벌이기계로 전락했다고 느끼는 사람들,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가정에서 구박받는 사람들. 그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일까? 다들 바쁘게 살아간다. 공부를 해야 하는 학생들도, 사회생활과 가정을 겸업하여 돌봐야 하는 엄마들도, 한 지붕 아래 살아도 각자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한 지붕, 세 가족’이 많다. 중년의 나이가 되면 남편도 아내도 변한다. 순한 양 같던 아내도 호랑이가 돼버리고, 마냥 친절할 것만 같은 신랑도 잡힌 고기에겐 미끼를 주지 않는다는 말 마냥 불친절하고 독선적으로 변해 간다.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그렇게 흘러간다는 것이다.

연탄불 사랑

많은 부분에 공감이 가지만 그중에서 연탄불 사랑이 더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연탄불은 자신을 태워 주위를 따듯하게 만든다. 자신을 희생하여 주변에 따듯함을 주는 그런 사랑을 배워 보련다. 내가 다른 사람이 붙여 놓은 연탄불에 불을 쬐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 자신이 연탄불이 되어 가족과 다른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전파해야 한다는 것. 여기서 설득력 있게 들려오는 말은 노후 대비는 철저히 하라는 것이다. 자녀에게 의지하려하지 말 것, 오히려 자녀의 생계까지 책임질 일이 생길수도 있다는 것이다. 내게는 딸 하나뿐이기에 딸을 꽃처럼 바라보며 키운다지만 나중에 나이가 들어도 그리 예뻐할 수 있을까?

노후를 대비하라는 소리에 공감은 하지만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투자하는 한국인의 특성상 말일뿐 실천하기 힘든 항목이다. 7남매라는 많은 자식을 두고도 쪽방에서 얼어 죽었다는 어느 노인의 말이 다름 아닌 내 부모를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더 슬프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도시에 살고 있고, 평생을 농촌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오신 분께서 도시 생활을 못 견뎌 하신다며 농촌에 홀로 남아 사시는 것을 보며 어떤 방도를 취해야 할지 사뭇 걱정스러워지는 중이다.

돈보다 중요한 것이 사랑이고 가족의 정이라고, 그래서 귀농을 꿈꾼다고 딸에게 이해를 구했다. 현재의 학교에서 낯선 시골로 이사를 가는 것을 반겨할지 걱정도 된다. 아이에게 상처를 심어주는 것은 아닌지. 모두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빈부격차 없이 돈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다면 자신이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난 꿈을 꾼다. 중년의 가장들이여! 힘을 내시라고, 가족들 모두 당신을 사랑한다고!  

 오늘의 책을 리뷰한 ‘우렁각시’님은?
자신의 얼굴을 책임져야 한다는 사십대. 딸 하나를 키우며 살림을 하는 전업주부. 아직도 오랜 꿈을 꾸고 있는 철없는, 아니 철들고 싶지 않은 마음만은 십대를 바라고 싶다. 오랜 시간 책을 읽어 왔지만 남는 것이 없어 책을 읽고 서평을 쓰며 글 솜씨를 다듬는다. 동화작가를 꿈꾼다. 딸이 어렸을 때 동화를 들려주며 함께 꿈꾸어 갔다. 아이들에게 다정하고 따듯한 동화를 들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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