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에 해당되는 글 43건

  1. 2009.06.18 나 내가 잊고 있던 단 한 사람
  2. 2009.06.15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
  3. 2009.06.11 북극곰과 펭귄 - 이기고 싶으면 함께하라!
  4. 2009.06.10 재미 - 다르게 보면 재미가 보인다
  5. 2009.06.09 슬프고 무섭고 아련한 - 시간의 강을 건너 그대를 만나다 (2)
  6. 2009.06.05 온돌 그 찬란한 구들문화 - 전통문화에서 미래에너지로
  7. 2009.06.04 바람이 바뀌는 곳에서의 3일 - ‘윈드 시프트’로 빨려 들어가고 싶다
  8. 2009.06.02 희망을 심다 - 박원순이 당신께 드리는 희망과 나눔
  9. 2009.06.01 해남 가는 길: 고3 아들과 쉰 살 아버지가 함께한 9일간의 도보여행
  10. 2009.06.01 와일드 하모니 - 북극 동물의 삶과 생명 이야기

나 내가 잊고 있던 단 한 사람

 

 
정채봉, <나 내가 잊고 있던 단 한 사람>, 코리아 하우스, 2009


아주 작은 속살거림 그리고 설렘

초록색 하늘바다 위에 솜털 같은 잎새로 나를 잠재워주는 곳. 유유하게 헤엄쳐 다니는 하늘 물고기도 나의 잠을 깨우지 않습니다. 하얀 구름이 나의 꿈인 양 그렇게 흘러가는 곳. 거기가 어디일까 생각해 봅니다. 넓게 펼쳐진 책띠의 그림을 보면서 아주 포근한 상상 속에 갇혀 봅니다. 바로 이 느낌, 접혀있던 마음의 날개를 그야말로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해주는 따스함이 있다는 것, 내가 당신의 글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참 맑고 좋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당신의 글들을 다시 만난다는 건 행복한 일입니다.  적어도 내게는 말입니다.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이야기 <오세암>이 당신의 글이라는 걸 알았을 때 당신께 눈물이 나도록 고마웠습니다. 지금도 내가 끔찍하게 아끼는 당신의 글들은 지쳐버린 내 마음이 가끔씩 찾아가 쉬어가는 작은 쉼터이기도 하지요. 채송화 ‘채’에 봉숭아 ‘봉’자가 어울린다는 당신, 평안하신가요?

책꽂이 한 편을 보란 듯이 차지하고 있는 정채봉님의 글들을 바라본다. 참 예쁜... 가끔씩 나를 불러 마음 쉼을 권해주는 책이기도 하지만 내 스스로 찾아가는 기회도 꽤나 되지 싶다. 이 책 <나 내가 잊고 있던 단 한사람>은 냉정하게 말해 새로울 건 없다. 그간 있어 왔던 작품들 속에서 선별해낸 글들인 까닭이다. 하지만 언제보아도 산뜻한 느낌을 전해주는 정채봉님의 글은 두 번 세 번을 거듭하여 본다하여도 참 좋은 느낌을 받는다. 오로지 나 혼자만의 생각이라 할지라도 나는 그 느낌이 참 좋다. 그야말로 뛰다시피 살아야 하는 바쁜 세상 속을 헤치고 나아가면서 우리가 챙기지 못하고 지나치는 그 무엇들을, 잃어버린 채 잃어버린 줄도 모르는 그 무엇들을 이제는 찾아야 한다고 안타깝게 말해주고 있는 것만 같다. 아주 오래도록, 아주 간절하게, 아주 작은 속살거림으로...

뛰지마. 그러면 너도 볼 수 있을 거야. (209쪽)

바쁜 생활. 조금이라도 뒤쳐지면 왠지 낙오자가 된 듯한 느낌을 버리지 못하는 시간들. 남들보다 앞서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것처럼 그렇게 바쁜. 무엇이 우리를 그토록 바쁘게 하는지. 무엇이 우리에게 그토록 힘겨운 달리기를 하게 만드는지. 알 수 없다. 아니 알면서도 우리는 못내 안 그런 척, 모르는 척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가 그렇게 안 그런 척, 모르는 척 하는 것들이 어디 하나 둘뿐일까? 그러면서도 우리가 추구하며 갈구하는 것들이 애써 시선을 비껴갔던 것들 속에 머문다는 것은 삶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행여 숨겨놓은 내면과 마주칠까 두려워하며, 보다 더 아름답게 포장할 수 있는 그리하여 그 포장되어진 모습이 더 두드러지게 보여질 수 있는 형식과 겉치레에 모든 수고를 아끼지 않는 우리의 습성이 어쩌면 우리를 그토록 힘겹게 달리라고 말하고 있는 건 아닐지.

사람이 가장 많이 미치는 것은 사람한테다.
그리고 가장 많이 빈털터리가 되는 사람 또한 사람한테 미쳤던 사람들이다.
당신은 지금 무엇에 미쳐 있는가? (114쪽)


무엇엔가 미쳤던 사람들, 그 순간 그들은 얼마큼 행복했을까? 무엇엔가 미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행복한 일일 것이다. 온 마음을 다해 관심과 사랑을 쏟아 부을 수 있었으니 그 순간만큼은 아무것도 부럽지 않았으리라. 작가의 글을 보면서 나는 생각한다. 사람사치를 부려보는 것도 꽤나 괜찮은 일일 거라고. 하지만 어찌 생각해보면 사람에게 미쳤을 때의 후유증이 가장 크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사람에게 미치고 싶은 것일까? 역설적으로 생각해보기로 한다.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따스함이 느껴질 수 있는 대상이 사람인 까닭이라고. 배려와 위안이 함께 머무는 사랑이라는 표현을 가장 잘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 또한 사람인 까닭이라고.

사랑을 묻는 소녀에게, 나무가...

책을 읽는 동안 한 줄의 글을 읽더라도 급하게 읽지 못한다. 그의 마음이 거기에 담겨 있는 까닭이다. 사랑을 묻는 소녀에게 나무가 말해주듯이 그렇게 말이다. 꽃 피는 봄을 보고, 잎 지는 가을도 보고, 나목으로 기도하는 겨울도 보았다면 사랑에 대한 나의 대답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하던 나무의 대답은 한동안 나를 멍하게 했었다. 우리의 삶에, 우리의 사랑에 무슨 정답이 있을까? 일상 속에서 온통 넘쳐나는 것들이 바로 그것인데, 우리 스스로가 고개를 돌려버린 채 느끼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일 뿐인데...

이 책을 통해 소소한 작가의 병상일지를 보게 된다. 딸에게 전해주지 못한 채 갖고 가야 할 안타까운 사랑이 전해져 온다. (아마도 딸은 아버지의 그 사랑을 가슴 한가득 안아들었을 게다. 이렇게 다시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보면.) 그의 아픔이 담겨진 사적인 공간을 들여다본다는 것도 왠지 안타까움으로 전해져 온다. 살면서 누구나 그만그만한 아픔 하나쯤은 간직한 채 살아갈 텐데도.

<멀리 가는 향기> <향기 자욱> <참 맑고 좋은 생각> <이 순간> <나는 너다> 등 그가 남겨준 작품들이 얼마 전부터 다시 출판되기 시작했다. 생각하는 동화시리즈라고도 하고 어른들을 위한 동화 시리즈라고도 하는 글들.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들이지만 짧은 글이 단순하게 그려진 그림과 어울려 누구나 부담 없이 가까이 할 수 있다는 것도 책의 장점 중 하나일 것 같다. 그만큼 부담 없는 편한 느낌을 전해주기도 한다. 그의 작품을 다시 만난다는 사실에 설레였던 시간이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아이비’님은?

일상을 떠나 내 마음이 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친구, 가끔씩 투정을 부려도 아무 말 없이 받아주는 친구, 힘겨움에 끙끙거릴 때마다 한번쯤은 위로의 손길을 보내주는 친구, 제게는 바로 그런 친구가 있답니다. 그 친구가 머무는 곳이 책속 세상이요, 산과 마주하는 시간속이랍니다. 그래서 산, 책을 너무나도 좋아하는 여인이라면 어떠세요? 산과 책 중에서 어떤 것을 더 좋아하냐고 묻지 마세요. 곤란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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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

 

조진국,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 해냄, 2008


#  사랑을 놀이기구로 표현한다면 아마 롤러코스터가 아닐까?


사랑은 롤러코스터와 닮았다. 아무런 감정이 없던 두 사람이 공통점을 발견하는 순간, 둘이 함께 탄 롤러코스터는 가속 페달을 밟으며 빠른 속도로 정상으로 올라간다. 올라갈 때의 스릴과 즐거움이 큰 만큼, 딱 그 높이만큼 내려올 때의 공포를 느껴야 한다. 사랑의 크기만큼, 외로움과 두려움도 함께 커져가는 위험한 놀이이다. 설렘과 추억의 순간이 있기에, 무섭고, 처음 시작의 위치로 돌아올 수 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매일 사랑을 꿈꾼다. <고마워요, 소울메이트>에서 만났던 공감의 글이 많았기에, 저자의 새 책을 읽기로 결심했다. 사랑에 관한 에세이를 읽으며, 사랑의 감정을 다시 느낄 수 있다면, 아직 연애세포가 죽어있는 건 아니라 생각한다. 잃어버린 연애세포를 찾는 마음으로, 저자가 들려주는 사랑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 사랑의 시작에서 헤어짐,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과정까지

20편의 러브레터와 이어지는 이야기로 책의 내용이 채워진다. 빨리 뛰어가는 토끼와 토끼를 바라보며 느리지만 꾸준히 걷는 거북이의 달리기는 더 많이 사랑하는 자와 더 많이 사랑 받는 자의 모습과 닮아있다. 사랑에 빠질 때 생각하게 되는 운명적인 우연의 합리화, 작은 숫자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설렘, 내가 더 사랑 받았으면 하는 본심, 함께 있어도 생각까지 함께 공존할 수 없는 현실, 사랑하기에 빠져드는 오해와 갈등까지, 사랑의 순간에 느끼게 되는 질투, 행복함, 기쁨, 원망 등의 다양한 감정을 저자의 글을 통해 다시 돌아본다.

사랑의 목적이 행복이 아니듯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일은 때론 아픔과 상처를 감내하는 일을 필요로 한다.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사랑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지 않기에 행복하지 않는다고 할까. 머리로 계산해서 할 수 일이 아니기에, 그 끝도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불확실한 둘 사이의 게임. 예측 할 수 없기에 행복의 순간이 소중함과 함께 상실의 불안감이 함께 한다. 글을 따라 마음을 맡기다 보면, 사랑에 상처를 심하게 받아 사랑할 수 없는 게 아니라, 더 상처받을지도 모르는 상황을 만나고 싶지 않기에 사랑에서 도망치는 이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젊었을 때는 감정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기회가 없기에, 빠져드는 마음에 집중해, 내 기분, 내 마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세월을 경험할 수록, 상대의 기분까지 고려하기에, 사랑에 더 조심스러워진다 생각한다. 알면 알수록 더 잘할 수 있다는 마음과 더 조바심 내며 주춤거리는 마음을 안고 있기에, 사랑에 관한 글들이 독자들에게 여전히 사랑 받는다 생각한다.

우리는 항상 누군가를 더 사랑하게 된다는 말과 울어도 변하는 게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쓸쓸함이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딱 내가 좋아하는 그만큼, 상대도 나를 좋아하면 좋을 텐데, 더 많이 좋아하기에 더 자신이 없어지고, 더 많이 사랑 받기에 더 상대가 힘들어하는 미묘한 차이가 연애에 늘 발생한다. 사랑의 정의는 모두에게 각자의 의미로 정답이고, 사랑을 지속시키는 과정도 각자 다르다. 객관식 정답이 아닌, 서술형 답을 써야 한다고 할까. 내 가치관의 정답이 아닌, 상대의 마음에 드는 정답을 쓸수록, 더 좋은 점수를,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는 시험문제를 푸는 기분이다. 정답을 알면서도 쓰기 싫어지거나 다른 답을 쓰게 되었을 때, 연애는 끝이 난다.

달콤한 연애를 하는 연인보다는 외사랑을 하고 있거나, 솔로인 독자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더 연애를 잘 할 수 있는 비법을 알려주지는 못하지만, 연애의 순간들에 대해 고민하게 해주는 힘은 충분히 지니고 있다. 사회의 대인관계는 적당한 선을 지키는 일이 서로를 행복하게 해 주지만, 연애는 개인의 내밀한 콤플렉스와 사소한 일까지 부딪치기에 더욱 어렵다.

사랑에 관한 글을 읽으면, 마음이 설레고, 여행에 관한 책을 보면 여행이 떠나고 싶어진다. 책을 읽고, 감정의 변화가 느껴진다면, 아직 충분히 사랑할 능력이 있다 생각한다. 책을 읽으며, 마음의 움직임이 느껴진다면, 책에 웅크려있지만 말고, 사랑을 시작해보길 권한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비이’님은?
문학이 주는 삶의 감동의 숲과 인문학이 주는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의 산, 과학이 주는 정확한 사실과 호기심의 바다를 여행하기를 좋아하는 초보 독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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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과 펭귄 - 이기고 싶으면 함께하라!

슈테판푸리에, <북극곰과 펭귄>, 시공사, 2008

 이기고 싶으면 함께하라!

북극곰과 펭귄이 뿔났다. 모 영화처럼 돌연변이가 돼 뿔이 솟은 것은 아니다. 지구가 더워져 도저히 먹고 살 수 없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또 지구온난화야?’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들의 사연을 들으면 쉽게 넘길 일이 아니다. 북극곰은 눈앞에서 사랑하는 그녀를 잃어버렸다. ‘그가 지금껏 보았던 가장 아름다운 여인, 비단처럼 윤이 나던 빛나던 흰털, 흑진주를 박아놓은 듯 신비스러운 검은 눈동자의 그녀’가 북극으로 가는 바다 한 가운데서 탈진하여 비참한 모습으로 죽었다. 사랑도 잃고, 삶의 터전도 잃은 곰은 추위를 찾아 아래로 아래로 향한다.

북극곰의 정반대에는 펭귄이 있다. 이 친구의 운명도 기구하다. 같은 이유로 위로 위로 갈 수밖에 없는 운명. 지금껏 험한 운명이 단번에 필 리 있겠는가. 추위를 찾아 떠난 ‘펭귄 원정대’의 여정은 험난하기만 하다. 동지 펭귄들은 상어, 물개에게 잡아먹히고, 희망봉 바로 앞에서 빠져 죽었다. 또 ‘지상낙원’이라 불리는 동물원이 나머지 펭귄들을 유혹해, 오직 배에 오렌지색 점이 있는 펭귄만이 북으로 향한다. 왜? 집에서 애타게 기다리는 펭귄 식구들이 아른거리기 때문에.

실패, 그리고 또 실패

적도에서 만난 북극곰과 펭귄은 서로에게 ‘불편한 진실’만 알려준다. 아무리 내려가도, 아무리 올라가도 서로가 찾는 추운 곳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충격적 사실. 그토록 고생을 하면서도 내려왔는데,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다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북극곰과 펭귄이 아니다. 이 환상의 짝꿍은 이제 지구 어딘가에 존재할 추위를 찾아 떠난다. ‘검푸른 밤하늘에 특별히 밝게 빛나는 별 하나’를 따라가던 어느 날, 이들은 국도변에서 흰색의 큰 냉동차를 발견한다. ‘유나이티드 피시’(United Fish). 거기엔 연어, 게, 청어, 새우 등 갖은 생선과 사라진 추위가 있었다. “추위는 여기에 있어!”, “인간들이 추위를 훔쳤던 거야”, “이 나쁜 놈들, 나쁜 인간들”(p. 94)

추위가 왜 사라졌는지, 어디에 있는지 확실하게 안 북극곰과 펭귄은 인간 세상으로 진출한다. 그들의 목적? 추위를 찾기 위해서. 방법은 간단하다. 세상의 모든 냉장고에서 추위를 해방시키면 된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몇 날 며칠을 동네 냉장고는 다 열고 다녔는데, 이상하게도 산꼭대기로 돌아오면 여전히 발밑은 질척거렸다. 몸은 녹초가 되고, 아무런 보람도 없다. 또 이들의 습격 소식이 퍼지면서 냉동식품 공장의 모든 출입구는 자동권총으로 무장한 경찰들이 가로 막았다. ‘으앙~’ 정말 울고 싶은 심정이었을 거다. 펭귄은 말한다. “다 소용없어.”(p. 106)


너와 함께, 나와 함께, 우리 모두 함께!


북극곰과 펭귄은 무엇을 해야 추위를 돌려받을 수 있을까. 체질적으로 불을 싫어하는 이들은 촛불시위를 할 수도, 그렇다고 동물원에서의 파업을 선동할 수도 없다. 이때 이들에게 빛을 비춰주는 것은 다름 아닌 희망과 연대의 메시지다. 시계를 되돌려 북극곰이 고향을 떠날 때 ‘어르신 북극곰’과 나눈 대화를 잠깐 들어보자. 당시 북극곰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었다. 어르신 북극곰은 “네가 안 가면 아무도 가지 않을 거야. 우리를 위해 가거라”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위험한 곳에 홀로 가게 생겼는데도 북극곰은 기분이 좋다. “그의 말을 들은 순간 북극곰은 갑자기 지금껏 느끼지 못했던 에너지가 용솟음치는 것 같았다. 근육이 팽팽해지고 가슴은 뜨겁게 타올랐다.”(p. 27) 희망을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희망만으로 세상이 변하지는 않는다. 숱한 시련을 겪으면서 북극곰은 혼자 할 수 있는 게 그리 많지 않음을 깨닫는다. 그 때 만난 이가 펭귄과 동물 친구들이다. 이들은 만남을 통해서 많은 일을 한다. 펭귄은 북극곰을 통해 자신이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고, 동물 친구들과 함께 세상을 바꿀 깜짝 놀랄 일을 준비한다. 여기서 누구하나 빠질 수 없다. 수리부엉이는 절망의 순간에 나타나 북극곰과 펭귄에게 갈 길을 제시해주고, 놀기만 좋아하는 원숭이도 좋은 아이디어를 낸다. 또 새, 벌, 모기 등은 이 프로젝트를 비밀리에 전 세계에 퍼트렸다. 이처럼 동물 친구들은 연대 속에서 세상을 변화시킨다.

용서, 그리고 지금 우리

가장 아름다운 장면을 하나 꼽으라면 동물 친구들과 하이에나의 화해를 들 수 있다. 하이에나는 애초 동물 친구들의 편이 아니었다. 지구가 더워지고, 다른 동물들이 지치면 자동으로 그들의 먹이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이에나들은 ‘세상 변화 프로젝트’에 참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동물 친구들은 하이에나들에게 먼저 손을 내민다. 과거는 과거일 뿐,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데 함께 하자는 것이다. 아직 세상에는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음으로. 동물 친구들의 관용과 아름다운 화해는 ‘인류는 만물의 영장’이란 말을 기억 속에서 삭제하고 싶게 만든다.

<북극곰과 펭귄>은 귀여운 삽화가 들어 있는 우화이다. 책장을 넘기면서 들려오는 그들의 목소리와 머릿속으로 연상되는 그들의 모습이 연신 미소 짓게 만든다. 하지만 책을 뜯어보면 볼수록 우리가 배울 게 많다. 북극곰과 펭귄의 조화는 지역주의, 진보와 보수의 갈등이 만연하는 한국 사회를 꼬집는 듯 하고, 헐뜯기보다 서로 관용으로 대하는 동물 친구들의 모습은 분열 가득한 우리 사회에 필요한 메시지가 아닌가 싶다. 또 포기하지 않는 희망과 모든 이들이 각자의 역할을 할 때 세상은 변할 수 있다는 마음은 오늘 하루의 새로운 동력으로 다가온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여야겠다.

“북극곰아, 펭귄아~ 이번 여름에는 더워도 꾹 참을게~ 시원하게 잘 살렴~”

-안늘(ak2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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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 다르게 보면 재미가 보인다


다르게 보면 재미가 보인다

책은 이래서 좋은 것 같다. 여유를 잃어버린 시간과 바쁜 나날들 속에서 메말라가고 무디어져 가는 나의 본질을 찾게끔 충전시켜준다. 그런 것이 어떤 느낌이라는 걸 알면서도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며 매번 잊어버린다. (그래서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럴 때마다 빠르게 흘러가는 정신없는 현재의 나에게 삶은 그렇게 아득바득 할 필요 없고,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안절부절 할 필요도 없으며, 때론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고 좋으면 좋다고 말할 줄 알아야 하고, 힘들면 잠시 돌담에 앉아 아픈 다리 주무르며 늘 보아온 주위를 다시 한 번 둘러보면서 쉬어가는 거라고, 책은 격려하고 위로하며 일깨워준다.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또 놓치고 사는 건 없는지, 불황의 시대에도 세상이 얼마나 즐겁고 재미난 일들로 가득한지 잊을만하면 말이다.

우화식 자기계발서를 쓰시는 한상복님의 <재미>를 읽게 되었다. (만약 이 책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하는 두려운 생각이 잠시 들었다.) 처음엔 난 다소 밋밋한 <재미>라는 제목에서 본연의 그 단어 그대로 '재미'라는 뜻을 인지하지 않고 그저 책을 읽을 요량으로 책을 펼쳐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예전 책방에서 빌려 본 작가님의 책 <배려>를 떠올랐다. 어렴풋하지만 그때도 뭔가 가슴을 후벼 파는 전율과 감성을 자극하는 내용에 깨우침과 감명을 받았었는데, 이번 책 <재미>또한 나의 감성을 뭉클하게 만들며 경종을 울린다. (정말로 책보다가 짜릿한 전율을 느끼며 울컥 눈물이 맺히기도 했다. 나 요즘 너무 메말라 있었던 걸까….) 



"전에는 제품의 품질이나 서비스가 기업의 핵심가치였지만, 이제는 이야기라고 말이야. 지금은 이야기를 파는 시대라고 했잖아. 재미와 감동이 있는 이야기 말이야. 그러니까 재미가 없는 건 무능력이야. 아니, 가장 심한 모욕이라구. 그러니까 무조건 '열심히' 일하겠다는 생각을 버리란 말이야. 방향이 그게 아닌데 전력질주하면 뭘 해?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지. '데이모스의 법칙'이라는 것 들어 봤어?"(p. 18)

디자이너인 아빠는 열심히 일하는 자신과 달리 만날 모여서 노닥거리는 팀원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전력질주를 해도 모자랄 광고판에서 그들을 두둔하는 이사의 말 또한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하는지 짜증나기만 한다. 아무려면 어때. 이미 끝난 일인데.

"취미를 갖는 것이 좋겠습니다. 푹 빠져들 수 있는 것으로 말이죠. 취미가 걱정을 잊게 해주거든요. 그리고 자신을 남들과 비교하지 마세요. 비교하다 보면 한이 없어요."(p. 24)

현실이라는 물에 빠져 허우적대다보니 악착같이 살아 온 엄마는 시집 잘 간 여자들의 모임에서 늘 스트레스만 받는다. 여지없이 외출을 하고 온 날엔 모든 스트레스를 늘 가족에게 화풀이하기 일쑤다. 마음에 드는 구석 하나 없는 남편과 말귀를 못 알아듣는 아이 때문에 사는 게 지겹다. 그런데 분노로 가득 차 있다는 카운슬러의 말에 세상 물정 모르면서 아는 척 한다고 빈정대며 무시한다.

나는 아직 어른이 아니라서 인생이 어떤 것인지 모른다. 그렇지만 죽을 것 같은 아픔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다. 어느 날 갑자기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 것, 이유를 알 수 없는 괴롭힘을 당하는 것. 그것도 가장 친했던 친구에게.(p. 48)

반 아이들의 왕따에 힘겨운 학교생활을 하는 아이는 만날 싸우는 아빠 엄마가 싫다. 다른 아이와 비교하며 공부를 강요하는 엄마도 무관심한 아빠도. 자기들 마음대로 낳아놓고는 왜 미워하는지 모르겠다. 

작가님은 책 <재미>에서 한 가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다른 회사로의 이직을 꿈꾸는 아빠, 다른 사람들의 삶을 부러워하며 자신의 삶에 분노를 끌어안고 사는 엄마,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집에서는 천덕꾸러기인 아이. 요즘을 살아가는 어느 가정집의 여느 삭막한 풍경일지도 모를 구성원들은 지쳐가는 생활에서 조금씩 부정적인 생각을 극복한다. 아빠는 자전거를 타면서 세상을 재발견하고, 엄마는 사진을 찍으면서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되었고, 아이는 완소영우라는 멋진 남자친구를 얻고 용기가 생겨 배신민아를 어려움에서 구해주는 등 생각하기에 따라 삶이 다르게 보이는 단순한 변화를 겪으며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되고 그 속에서 즐거움과 재미를 찾아낸다.



재미는 왜 불안한 걸까? 

작가님은 사람들이 즐거운 것, 재미있는 것을 시간낭비라고 생각하고 불안해하고 죄악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즐거움을 미룬다고 해서 이자가 붙는 것도 아닌데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지금 이 순간을 즐기지 못하는 이유는 심각한 것이 진짜고, 즐기는 건 가짜라고 생각하는 편견과 강박증 때문이라고 한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위에서 말했듯이 책 제목 '재미'가 고스란히 그 단어 그대로 느껴지지 않았던 건 아마도 나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요즘은 진심 없이 생존수단으로 누구나 읽는 책, 누구나 보는 드라마, 누구나 듣는 음악, 누구나 보는 영화 등을 보며 시대에 편승하지 못하면 인간관계에서 뒤쳐지고 무시당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불안한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먼저 선수를 치듯 상대방의 말을 귀 기울여 듣기보단 말 많은 혹은 말 잘하는 사람이 많은 시대인지도 모르겠다. 또는 책 속 '척하니즘의 대가' 아빠처럼 우리는 즐거워도 즐겁지 않은 척, 재미있어도 재미없는 척. 반대로 재미없어도 재미있는 척, 즐겁지 않아도 즐거운 척 등을 하며 씁쓸하지만 그것이 근엄하고 수준 높은 짓인 '척'을 또 하고 있는 것이다.

"선생님께 배웠거든요. 사람한테 '틀렸다'는 말을 쓸 때는 조심해야 한다고요. 실제로는 다른 것인데, 상대방이 틀렸다고 고집하면서 자기 생각대로 바꾸려고 하기 때문에 슬픈 일들이 일어난다고 가르쳐주셨어요."(p. 85)

한편으로는 남들과 다른 생각, 의견은 무조건 틀리다고 말하는 사람들 때문에 '척'할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언제부턴가 자신의 생각에 동조하지 않는 이들은 배척하고 헐뜯으며 좌파 우파로 나누어 서로 상대방이 틀렸다고 지적하고 고집을 부리며 분노 한다. '다르다'는 것은 그저 '다양한' 것일 뿐인데 '다르다'는 이유로 거부감을 보이고 상대방을 멸시하며 이해하지 않으려 한다. 여기 책 속 아빠도 팀원 하얀 안경의 프라모델 수집 취미를 보며 쓸데없는 곳에 돈과 시간을 쏟는다고 비아냥거린다. 이기지도 못하는 경기를 하면서 재미있다고 말하는 이사도 이해할 수 없고, 프로젝트가 엉망이 될지도 모르는 판국에 밸리댄스 동호회 공연 연습으로 힘들다는 노란머리 귀걸이까지 다들 한심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한다. 



"뭔가에 미칠 수 있다는 건 축복이죠. 가슴 뛰는 기대감 때문에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낼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더욱 재미있는 건, 덤으로 보너스까지 생긴다는 겁니다. 전에도 말씀 드렸지만 제 영감의 원천이 프라모델이라니까요."(p. 122)

팀원 노란머리 귀걸이의 말을 듣고 보니 어느 정도 수긍이 되는 듯 하지만 여전히 그들의 취미를 이해할 수 없는 아빠는 일과 다른 분야에 심취해 영감을 끌어낸다는 말에서 조금씩 무언가를 깨닫기 시작한다.

"교장 선생님 말씀이 맞네요. 정말 세상이 다르게 보여요. 저번에 죽어라 달릴 때는 그냥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재발견이죠. 다시 찾아낸 것이니까요."(p. 97)


재미는 남들보다 조금 다르게 발견하고 찾아내는 것에서 시작된다. 많은 전형적인 자기계발서에서 강조하듯이 좋은 생각이 좋은 생각을 끌어당기듯 즐겁고 재미난 생각이 인생을 행복하게 만든다. 사는 게 힘들다고 여유를 잃어버리지 말고 그 속에서 즐거움과 재미를 찾다보면 우리의 삶은 재미로 가득한 에너지가 넘쳐흐를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다르다고 배척하고 으르렁 댈 필요 없이 다름과 다양성을 융합시켜 우리의 문화를 발전시키고 소통하면서 서로를 인정해줘야 한다. 다름을 인정하는 순간 세상은 다양성과 재미로 넘쳐나며 창조가 일어난다.

요즘은 방송이나 광고나 독특한 발상과 재미가 없으면 주목 받지 못하는 세상이다. 독특한 생활용품과 사무기기 등 재미있고 신기한 다소 엽기적인 물건들이 흥미를 유발하여 즐거움을 주듯이 조금만 시선을 달리하면 조금만 생각을 달리하면 재미있고 신기한 달 안에서 방아를 찧고 있는 토끼도 진짜로 볼 수도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책을 덮으면서 즐겁지 않은 현재를 살아가며 재미도 있는 '척'을 해야 하는 요즘 사람들에게 이 책은 분명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재미를 안겨다주는 책이 될 것이다. 책 읽는 내내 밑줄 그을 곳이 많아서 너무 좋았다. 큰일을 겪고 난 후 깨달은 아빠의 '재미있게 살자'는 마인드는 어느새 나의 삶의 모토가 되어 버릴 정도로 난 이 책에 반해버렸다. 정말 <배려>이후 다시 한 번 감동을 선사한 한상복 작가님의 <재미> 정말 요즘 같은 시대에 꼭 필요한 최고의 책이 아닐 수 없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바바라’님은?
'무슨 일을 끝까지 하지 못해도 좋다. 다만 처음부터 포기할 생각만은 하지 말아라.'는 어느 책 구절에 마음을 뺏긴 후, 요즘 밥 안 먹어도 책꽂이에 꽂혀 있는 책들만 보면 흐뭇한, 뒤늦게 책의 중독증에 빠져버린 책을 사랑하는 1인입니다. 요즘은 한상복님의 책<재미>를 읽고 '재미있게 살자'라는 모토와 함께 삶에 나름대로 진지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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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고 무섭고 아련한 - 시간의 강을 건너 그대를 만나다

  

아사다 지로, <슬프고 무섭고 아련한>, 북하우스, 2008


칠흑같은 어둠. 시리도록 푸른 연기. 담배연기라 생각했다. 어떤 사연이 있어 연기를 내뿜지 못하고 저리도 곱게 피워 올릴까. 가슴을 누른 무게를 겨우 뚫고 낸 숨통인가. 책을 읽고 다시 보니 그것은 향이다. 죽은 이를 호출하는 가녀린 외침. <슬프고 무섭고 아련한>은 산자와 죽은자 간의 사랑, 아픔, 그리움을 그린 아사다 지로의 단편 소설집이다. 여기엔 7편의 이야기가 있다.

고백컨대 책을 덮고 글을 쓰기가 무척이나 망설여졌다. 이야기를 관통하는 비밀이 있어 그 비밀을 어느 정도 노출해야 하는지 판단이 쉬이 서지 않았고, 어떻게 건드려도 깨지고야 말 것 같은 유려한 문장의 흐름이 부담스러웠다. 무엇보다 한 페이지 전까지만 해도 예상치 못하던 격한 감정의 출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무모한 도전을 하는 이유는 많은 이들과 함께하기 위함이요, 글쓰기를 통해 나의 바닥을 체험키 위함이다. 한 가지 믿음과 한 가지 기대는 있다. 작품이 좋으면 그에 대한 글도 좋을 수밖에 없다는 믿음과 어쩌면 영적인 존재가 나의 손을 움직일지도 모른다는 기대다. 행여나 여기서 글 읽기를 중단하는 분들을 위해 한 마디 한다. <슬프고 무섭고 아련한>은 정말 슬프고 무섭고 아련하다.

슬프고

“그 남녀 손님은 달도 없는 한겨울 산속 길을 서로 부둥켜안고 이 산꼭대기까지 올라왔었다고 이모님은 말했다.” (p 9, ‘인연의 붉은 끈’)

그 남녀는 누굴까. 누구의 눈을 피해 달도 없는 밤 산꼭대기 신사를 찾았을까. 남자는 명문가문의 대학생이고, 여자는 유곽에서 만나 한 눈에 사랑에 빠진 이다. 청춘을 빼놓고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는 이들의 사랑을 남자의 가족은 축복할 리 없다. 둘은 결심한다. 수중의 돈이 허락하는 곳까지 가서 함께 죽음을 택하자고. 하지만 죽음이 온전히 신의 의지에 달려있는 탓인지, 아니면 그들이 겪은 고통이 모자란 탓인지, 최후의 자유의지도 예상을 빗나간다. 이렇듯 사랑을 모티브로 한 ‘인연의 붉은 꽃’, ‘뼈의 내력’, ‘손님’은 극복할 수 없는 신분의 차로 인해 비극적 삶을 산 이들의 사랑을 노래한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그 어느 것 하나 의지대로 택할 수 없는 운명. 이는 통속 멜로드라마의 단골 소재이다. 하지만 아사다 지로의 것은 독하고 슬프다. 시련 후 찾아오는 달콤한 시간은 없다. 오히려 인물들을 비극적 상황으로 몰아넣고, 온몸으로 그 시간을 견디라 한다. 어린 화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인연의 붉은 꽃’은 아픔이 더 크다. 화자가 볼 때 청춘남녀가 사랑을 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어른들은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둘을 가로 막는다. 사랑이 거절당하고, 남녀가 괴로울수록 화자의 상실감은 더 커진다. 작가는 남녀의 비극적 상황에 어린 화자의 애절한 마음을 더해 차곡차곡 슬픔을 채운다.

무섭고

“어찌할 수가 없어 죽는 건 관두고 벌레를 잡아먹거나 상처에 솟은 구더기를 집어먹거나 내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를 뜯어서 먹었어.”(p. 87, ‘벌레잡이 화톳불’)

사업에 실패에 시골로 도망친 쓰야마는 가족들이 자신을 만났다는 얘기를 듣는다. 한창 회사가 잘나가던 시절의 ‘나’를. 쓰야마는 또 다른 ‘나’에게 자신의 자리를 빼앗기는 것 같아 괴롭다. 이때 동네 영감님은 힘든 상황에서 또 다른 자신을 만날 수 있을 있음을 말하며, 자신이 겪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을 얘기한다. 여기서 그 상황을 극복했는지 그렇지 못했는지는 그리 중요치 않다. 오로지 그 체험만이 강렬하게 전해온다.

전쟁은 ‘벌레잡이 화톳불’뿐 아니라 ‘원별리’(遠別離)의 배경이 된다. 이들이 일본인이란 걸 생각하면 그들이 마주한 현실이 얼마나 처절했을지 짐작이 간다. 사랑하는 이를 두고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낯선 땅, 전우라고 불리던 이들은 한낱 고깃덩이가 된지 오래다. 여기에 삶의 희망이 있을 리 없다. 구두끈으로 목을 매려고 해도 툭 끊어져 그것조차 할 수 없다. 자신이 키운 것도 아닌데 몸속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구더기를 바라봐야 하는 심정, 지독한 외로움도 사치다. 삶과 죽음의 의미를 상실해버린 이들의 상황은 그저 무섭기만 하다.

아련한

“아, 안개 속에서 사신이 다가온다. 검은 외투를 입고 얼굴은 목도리로 둘둘 감고 백합 꽃다발을 안고서. (…) ”오지마, 오지 말라고. 나는 아직 안 죽을 거야. 기어코 돌아가서 요리코를 내 품에 안아봐야 해. 내 자식을 내 품에 꼭 안아봐야 한다고. 그런 다음에는 죽어도 여한이 없으니, 지금은 제발 못 본 척 지나가줘.””(p. 286~287, ‘원별리’)

고도 근시로 현역 입대는 없을 거라 생각했던 야노에게도 전쟁의 이별은 찾아온다. 그토록 사랑했던, 임신한 아내 요리코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 저 문밖으로 나가면 아내를 만날 수 있을 거 같은데 나갈 수 없다. 또 악질적인 감기에 걸려 파르르 떨리는 몸뚱이로는 아내를 마음껏 그리워할 수도 없다. 칠흑같이 어둔 밤 야노는 근무를 서러 나간다. 대기를 가득 메운 안개, 그 안개를 뚫고 오는 죽음의 신. 아니, 난 이렇게 죽을 수 없다. 사랑과 전쟁은 ‘원별리’에서 교차된다.

좋은 기억도 아픈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 다 추억이라고 했던가. 시간은 비극적 사랑과 죽음의 공포를 아련하게 만든다. ‘인연의 붉은 끈’, ‘벌레잡이 화톳불’ 모두 사건의 발생시점과 발화의 시점의 거리가 없었다면 얘기할 수 없었으리라.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사진이 바래는 것과는 달리 이들 기억은 빛을 잃지 않는다. 오히려 매초의 기억은 더욱 강렬해져 몸 속 깊숙이 파고든다. 그토록 바람, 그리워함이 없었다면 산자와 죽은자는 다시 만날 수 없었을 테다. 슬프고 무섭고 아련한 이야기는 시간의 강을 건너 그렇게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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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돌 그 찬란한 구들문화 - 전통문화에서 미래에너지로



김준봉 외, <온돌 그 찬란한 구들문화 - 개정증보판>, 청홍, 2008


토방이 높고 마루가 짧았던 내 방의 처마 밑에 앉아 바라본 세상. 내 유년의 세상은 그 방에서 쪽문으로 본 세상이 가장 넓었고 가장 아름다웠다. 서녘으로 지는 붉은 노을이 있는 날과 눈이 소복소복 내린 아침에 참새가 종알거리며 마당을 걸어 다니는 풍경. 그 풍경이 따뜻하게 기억되는 것은 아궁이에 지펴진 참나무 타는 소리와 푸른 불꽃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오래 살던 흙집을 떠나 시멘트와 적벽돌로 옥상을 만든 양옥집을 지으면서 참 좋아하셨다. 이젠 남의 산에 가서 땔감을 해오느라 가슴 조일 필요도 없었고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수고로움 없이도 따뜻한 방에 앉을 수 있는 안도감에서였다. 그렇게 바라던 빨간 벽돌에 보일러가 돌아가는 집이었지만 요즘 엄마는 가끔 말한다. 뜨뜻하게 군불 지핀 아랫목에 배 깔고 누워있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그렇게 누워서 황토냄새 물씬 맡아보았으면 좋겠다고. 온돌이 없어진 후에야 그 흙집이 너무도 그립다. 엄마도 나도.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한 생각은 ‘내 손으로 꼭 흙집을 지으리라’였다. 아궁이가 있고 무쇠 솥을 걸어 하얀 쌀밥을 하면 밑밥을 잉걸불에 살짝 눌려 나무주걱으로 귀퉁이를 툭툭 쳐서 후드득 긁어낸 누룽지. 햇살 따뜻한 흙담에 기대 앉아 먹었으면 좋겠다. 가능하다면 누마루도 만들어 바람냄새, 흙냄새 맡으며 따뜻한 꽃차 한 잔 마시면 더욱 좋겠다. 그런 날이 오면 엄마를 초청해야지. 아궁이 불이 따뜻하고 흙냄새가 나는 나의 흙집으로.

이 책은 우리 전통문화인 온돌과 구들문화에 대한 역사적 해석 등 자료집으로도 손색이 없을 만큼 훌륭한 저서이다. 직접 온돌 집을 짓고 싶은 사람들이 그 실전서로 읽으면 많은 도움이 될 만큼 공법과 사진까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대략적인 내용을 보면, 온돌과학이 서양보다 1000년 이상 앞선 발명품이라는 온돌의 역사와 문화적 가치, 구들의 용어정의와 구조적 특성, 아궁이 청소와 내 손으로 구들방 만들기, 온돌이 주는 보건의학적인 의의, 만주지방 민족들의 거주형태와 조선족과 만주족, 한족 등의 구들형식과 역사적 배경, 한 번 불을 지피면 100일간 온기가 있다는 지리산 반야봉 밑에 칠정사에 있는 아자방등 온돌문화가 깃든 역사적 건축물을 소개했다. 온돌로 바라본 선조들의 지혜, 역사적 기록으로 본 고래온돌의 역사, 현대의 온돌이 주는 가치, 우리나라 근대 온돌 발전사, 미래의 생태주택을 위한 황토온돌의 적용, 온돌의 현대화와 미래적 전망 등을 소개하고 있다.

온돌을 전통유산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 책을 통해 자연과의 조화를 이룬 신재생에너지로 개발하여 미래에너지로 개발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천대하고 무시하던 시기에 첨단기술 선진국인 미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은 온돌의 원리를 이용한 난방을 도입하여 병원, 축사, 고속도로, 비행장의 제설용 등에 바닥 난방 기술을 개발하고 이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닥쳐올 에너지 위기에 대비하고 기존에너지원에서 발생하는 공해를 줄이는 방법으로도 연구 개발할 필요가 있다.

근대건축의 거장인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역시 구들을 만들어 살았다고 한다. 라이트가 일본 제국 호텔을 지어 달라는 의뢰를 받고 일본에 머물 때 일본 귀족 집에 초대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난로도 없는데 방이 매우 따뜻하여 라이트는 그 방에 대한 강한 호기심을 갖고 일본인에게 무슨 장치냐고 물었다. 그것이 한국식 구들방이라는 말을 듣고 라이트는 이렇게 회고했다고 한다. “한국인의 방은 인류가 발명한 최고의 난방방식이다. 이것은 태양열을 이용한 복사난방보다도 훌륭하다. 발을 따스하게 해주는 방식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난방이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로 예측할 수 없는 자연재해들이 속출하고 있다. 누구도 지구가 멍든 이유가 인간에게 있음을 부인할 수 없는 시점에 와 있는 것이다. 환경에 대한 극단적인 문제들은 이제 확인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문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해야할 막바지시기에 이른 것이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 재생에너지를 이용한 공생의 관계. 온돌이 그 답 중에 하나라고 말하고 싶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목생화'님은?
책 읽고 리뷰 쓰는 일을 행복으로 삼는 1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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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바뀌는 곳에서의 3일 - ‘윈드 시프트’로 빨려 들어가고 싶다

 

 

안드레아 데 카를로, <바람이 바뀌는 곳에서의 3일>, 2009, 예담

“어른이 되어서 돈 많~이~ 벌게 되면 멋진 전원주택 지어서 함께 모여 살자~!!” 인생에서 ‘친구’라는 존재의 우선순위가 최고로 높아지는 시기가 있다. 눈 뜨면 만나야 되고, 하루에 한 끼 이상은 꼭 함께 먹어야 하고, 아무리 많은 시간을 함께 있어도 대화가 끊이질 않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에 친구들과 했던 철없는 약속이 문득 생각난다. 어른이 되어 어떤 모습으로 만나든지 우리의 우정은 변함이 없을 거라고. 결혼 후에도 한 동네에 옹기종기 함께 모여 살자던 약속. 그땐 그랬다.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고민하는 것보다는 ‘늘 푸른 소나무처럼’ 변치 않을 우리의 우정만이 소중했으니까.

윈드 시프트를 찾아 떠나는 네 명의 주인공이 바라는 것도 어린 시절부터 꿈꾸어 오던 그들만의 공간을 구입하는 것이다. 사회적 성공으로 누리는 부와 명예는 그들에게서 달콤한 휴식을 빼앗아 가버렸다. 주말여행을 떠나면서도 휴대전화에 얽매인 그들을 통해 전형적인 도시인의 모습을 보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계약 성사에만 몰두한 부동산 중계인의 무리한 진행은 어이없는 실수를 부르고 인적 없는 숲에서 길을 잃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고야 만다.

“처음에는 길을 잃고, 그 다음에는 우리에게 팔려고 했던 집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하더니, 이젠 우리를 죽일 뻔했잖아!” (p.71)

숲에서 길을 잃었다. 차는 고장이고, 휴대폰은 먹통인 곳이다. 몸은 지치고 발은 부르트고, 배고프고... 거기다 비까지 온다. 최악이다. 그래도 죽으란 법은 없나 보다. 환영 받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도와줄 사람을 만났다. 끼니를 제공받고 몸 뉘일 공간도 구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무슨 원시부족도 아니고 문명과 교류하지 않으면서 자급자족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란다. 더욱 황당한 것은 그곳이 바로 윈드 시프트라는 사실. 새 주인이 될 사람들과 불법 거주자들, 부동산 중계인의 불편한 동거는 그렇게 시작된다.

‘윈드 시프트’로 빨려 들어가고 싶다

가끔씩 원시부족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볼 때마다 그들의 삶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덜 문명화 된 것에 대해, 무지에 대해, 비위생적이고 미신을 숭배하는 것 등에 대해서 마치 다른 종족을 보는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타인의 삶을 함부로 평가하는 것 만큼 위험하고도 어리석은 일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가 그들의 일상을 들여다 보았던 것처럼 우리의 생활을 보여준다고 가정했을 때, 무조건적으로 도시인의 삶을 동경할 것이라는 생각은 성급한 판단이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 스스로 선택한 인생을 살 권리가 있듯이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서는 있는 그대로 지켜봐 주고 인정해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가장 재미있는 장면은 양측의 갈등이 극에 달한 시점이다. 재미있다는 표현이 좀 이상하긴 한데 ‘도시 얼뜨기들’과 ‘문명을 등진 이기주의자들’이 서로를 비난하던 분위기에서 오히려 네 친구의 우정이 무너져 버린 것이다. 어린 시절 한 없이 순수했던 감정들이 어른이 되면서 조금씩 변해가는 것에 대한 씁쓸함이랄까 약간은 허탈하기도 했다. 아무리 친구 사이라도 돈이나 이성관계, 사업파트너 등과 같이 현실적인 문제들과 얽히면 좋지 않은 결말을 가져온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친한 사람일수록 지켜야 할 예의가 있고 선을 그어야 할 부분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인생은 얼굴과 같은 거예요. 누구나 다른 얼굴을 가지고 싶어 하죠. 적어도 가끔은요. 하지만 당신에게 주어진 얼굴은 하나뿐이에요.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요.”

“그렇지 않다는 건 당신도 알고 있소. 당신 머릿속에 호기심과 아이디어가 충분하다면, 자기가 원하는 얼굴을 가질 수 있어요. (중략) 인생은 자기가 상상하는 것이오. 자기가 원하는 것이고. 자기 꿈꾸는 것이오. 누군가가 실망할까 비판할까 조롱할까 하는 두려움 없이 그것을 발견하고 추구하려는 에너지가 필요할 뿐이오” (p.387-389)

그러고 보니 인생이란 얼마나 변화무쌍하며 예측불허인지. 전원주택을 구입하기 위한 단순한 주말여행이 삶을 뒤바꿀 만큼의 변화를 가져왔으니 말이다. 만약 모든 과정이 무난하게 진행되어 계약이 성사되었다면 더 행복했을까? 가식으로 만들어진 가면을 쓰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이라고 적으며 이 부분에서 잠시 멈칫하게 된다. 어떻게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사느냐며 스스로를 닦달했던 사람이 누구더라. 허허~



시원하게 뻗은 도로가 인상적인 표지다. 구도가 특이해서 ‘Wind Shift’로 향하는 차 안에 타고 있는 것 같은,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아님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건지도. ^^  

오늘의 책을 리뷰한 ‘푸른바다’님은?
책 읽는 것이 좋고 글 쓰는 것을 즐기는 30대 직장맘 입니다. 정신없이 바빴던 하루 일과를 마치고 온 세상이 고요해진 즈음에 읽는 글로 내일의 에너지를 충전한답니다. 푸른바다 저 멀리 넘실거리는 새 희망을 향해 하루하루 노 젓는다는 마음으로 살며, 행복은 늘 손 뻗으면 잡을 수 있는 곳에 있다고 믿는 낙천주의자 입니다.^^ 현재 네이버 북카페
‘책을 좋아하는 사람’ 운영진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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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심다 - 박원순이 당신께 드리는 희망과 나눔


박원순, 지승호, <희망을 심다>, 알마

책의 형식에 맞추어 리뷰도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됨을 알려드린다. 처음 진행하는 인터뷰라 미숙한 점이 많지만 그냥 이해하고 넘어가 주시길.

Q : 어쩌다가 이 책을 읽게 되었는지?
A : 2000년 총선연대의 낙천, 낙선운동을 통해 시민의 힘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강력하게 느끼고 잠시나마 시민운동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다. 시민운동 중심에 박원순 변호사가 있었고, 인권변호사로서의 이력까지 더해서 막연하게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 때만 해도 이 분이 시민운동으로 경력을 쌓고 정계로 진출하지 않을까 하는 불손한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대통령 후보로까지 거론되면서도 그저 시민운동이라는 한 우물만 파고 계시는 모습에 신뢰감을 느낀 것 같다. (훌륭한 정치인을 원하면서도 나는 훌륭한 분들이 정계로 나가는 건 반대한다는 묘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시민운동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고, 이 분의 개인사도 궁금해서 읽기 시작했다.

Q : 책날개의 박원순 변호사의 프로필을 보고 놀랐다는데?(박원순 변호사가 현재 전혀 변호사 활동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변호사라는 호칭이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편의상 계속 사용하겠다.)
A : 좀 속물적인 이야기이지만, 박변호사의 학벌을 이번에 처음 알았기 때문이다. 소위 KS마크라는 경기고-서울법대 출신이셨던 거다. (시위 참가 때문에 제적을 당해 서울대를 끝까지 다니지는 못하셨다.) 돈과 권력과 명예를 위해 홀로 전력질주 해도 충분히 성공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셨는데,(요즘 다들 이걸 못해서 난리 아닌가.) 그걸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사용하고 계셨으니 놀랄 만도 하지 않았겠는가.

3개월 동안 양말 한 번 벗지 않은 남자

Q : 책을 읽지 않았거나 책을 읽으려는 사람들을 위해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해 달라.
A : 책이 제법 묵직하다. 몇 시간을 할애하여 읽은 책인데, 다른 사람들을 위해 요약까지 하는 건 사실 귀찮은 일이다. 그러나 귀찮다고 거절하면 박변호사가 말하는 '나눔'의 취지에 어긋나는 것 같다. 책을 읽었으면 실천적으로 달라져야 하지 않겠나.

혹시라도 박원순 변호사를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덧붙이자면 박원순 변호사는 대한민국 시민운동계의 살아있는 역사라고 생각하면 될 듯 싶다. 아마 참여연대, 아름다운 재단, 아름다운 가게, 희망제작소 중 하나쯤은 이름이라도 들어봤으리라 생각한다. 현재는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로 계시지만, 과거에 그 분이 만들고 활동했던 단체들이다. 그러한 단체들을 통해 계속 다양한 방식으로 시민운동을 이끌고 계신 분이다.

많은 질문이 오간 인터뷰라 간단하게 요약하기는 좀 힘들지만, 편리하게 연대별로 요약할 수 있다. 시골에서 성장한 어린 시절부터 대학 입학 후 사법시험 합격하고 검사로 잠시 활동한 이야기, 인권변호사로서 활동한 이야기, 시민운동가로서 활동한 이야기. 초반에는 어린 시절과 대학 시절의 개인사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사법 시험에 합격하고 짧은 검사 시절을 뒤로 한 채 인권 변호사의 길을 걷게 될 때는 <전태일 평전>의 저자이자 인권변호사이셨던 조영래 변호사로부터 많은 걸 배우셨다고 한다. 그 후 영국으로 유학을 다녀오고 시민 운동에 전념하고 계신 관계로 당연히 시민운동에 대한 집중적인 질문과 답변이 오고 갔다. 시민 운동을 하면서 겪었던 어려움과 보람, 앞으로의 전망과 발전 방향에 대한 이야기가 꽤 자세하게 진행된다.

Q : 혹시 읽으면서 사소하지만 진위가 의심되는 부분은 없는가?
A : 두 가지 있다. 하나는, 고등학교 입학 시험을 앞두고 3개월간 양말 한 번 안 벗고 공부했다는 이야기이다. 3일도 아니고 무려 3개월이다. 나중에 발바닥이 다 하얗게 떠 감각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사실 원래 씻는 걸 몹시 싫어하시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웃음) 다른 하나는, 미국에 머무를 때 하버드 법대의 도서관을 처음부터 끝까지 훑어가며 필요한 자료를 모두 복사하셨다는 이야기다. 일개 단과대 도서관이 뭐 그리 클까 싶지만 무려 7층짜리 도서관이란다. 상식적으로는 둘 다 정말 믿기 힘든 이야기이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이 분의 열정과 집요함과 집중력을 고려하면 전혀 불가능한 일이 아닌 듯도 싶다.

아름다운 가게, 아름다운 사람

Q : 책 속에서 만난 박변호사는 어떤 분인가?
A : 사람 겉만 보고는 알 수 없다더니 맞는 말이다. 표지를 봐라. 허허 웃는 모습이 느긋한 동네 아저씨처럼 보인다. 그런데 내면에는 무서울 정도로 일에 대한 열정과 집념을 가진 분이다. 과로사로 죽는 게 소원이라고 하실 정도다. 그 분 연세쯤 되면 일에 대한, 특히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은 일이라면 서서히 권태를 느낄 법도 하건만 여전히 청년처럼 넘치는 아이디어를 주체하지 못하고 계신다. 단지 일벌레 같은 열정만이 아니라 시민운동의 기본 토대가 되었던 인간의 선의를 믿는 긍정적인 마인드, 다른 이의 비판도 발전과 경계의 마음으로 수용할 줄 아는 포용력까지 보여주시니 인간적으로도 매우 호감이 간다. 그 바쁜 활동 중에 필요한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여 여러 권의 책을 내실 만큼 성실함과 부지런함도 겸비하셨다. 한편 현장에서 오랫동안 실무를 담당하셔서 그런지 굉장히 실용적이고 세분화된 구체적인 사고를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하셔도 늘 대안을 언급하셨다. 이렇게 일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분들은 게으른 사람들에게 별로 관대하지 않다. 아마 같이 일하는 분들이 결코 게으름을 피울 수 없다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겠다.(웃음)

Q : 시민운동에 대해서 뭘 좀 배웠는지?
A : 시민운동 하면 단순히 피켓 들고 시위하는 장면을 먼저 연상하게 되지만, 시민운동 분야가 굉장히 다양하고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문제가 되는 사안에 대한 공감할 수 있는 의제를 만들어 내고, 분야마다 개별적으로 접근하는 능률적인 전략을 발굴하고,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하기 위한 수익성 구조 창출, 일반인들의 참여를 증진시키는 방안까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블루오션이라고 표현하셨는데 공감이 간다. 시민단체의 운용 방식에도 기업적 기법이 도입되고, 더 많은 시민의 참여를 위해 재미를 강조하는 점이 새로웠지만,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아름다운 가게를 통해 남이 쓰던 것도 사용할 수 있다는 사람들의 사고 방식의 변화에서 보듯이 시민운동이 단순한 일회성 캠페인이 아닌, 근본적인 사람들의 생활 철학까지 변화시킬 수 있다는 부분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다만 이 모든 희망적인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시민운동이 여전히 박봉(사실 그조차 포기해야 할 때도 많은)에 시달리는 시민운동가들의 헌신에 기대는 부분이 많다는 사실에 큰 빚을 진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Q :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무엇인가?
A : 새겨들을 부분이 많아서 책 여기 저기에 포스트잇을 붙여 두었다. 그 중에서도 젊은이들이 세상을 변화시키는데 자신을 한 번 바쳐보겠다는 야망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말씀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사실 'Boys, Be Ambitious'는 아주 고전적인 문장이지만, 책에서 이 문장을 본 순간 마치 처음 듣는 것처럼 경이롭게 들렸다. 아마 중학교 영어 교과서 이후로는 거의 처음 듣는 게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요즘은 어떤 기성세대도 젊은이들에게 그런 말을 결코 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나를 두고 현실을 망각한 몽상가라고 할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문장이 한참 동안 귀에 쟁쟁 울린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Q : 끝으로 이 글을 읽는 분께 하고 싶은 말은 없나?
A : 인터뷰어의 질문이 경직되고 식상해서 답변들도 별로 실속이 없다. 그러니 이 인터뷰는 대충 읽고 되도록이면 책을 직접 읽어보면 좋겠다. 책은 이보다 훨씬 많은 내용을 담고 있어서 각자 배우고 느끼는 게 더 다양할 거라고 생각한다. 개인의 삶에 치이다 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을 좀 더 아름답고 살기 좋게 바꾸는데 동참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예전보다 조금 더 나은 사회에서 산다고 느껴질 때, 누군가에게 노력과 희생에 빚지고 있다는 생각까지는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게 희망을 빚진 자의 최소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해 그 예의를 배울 수 있다. 물론 거기서 더 발전할 수도 있다면 좋겠지만 말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그로밋’님은?
책을 좋아하고 가끔은 책을 놓기도 하지만 결국 책으로 다시 돌아오는, 책 없이도 살 수 있지만 그래도 책 없는 세상은 매우 심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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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가는 길: 고3 아들과 쉰 살 아버지가 함께한 9일간의 도보여행

 

송언, <해남 가는 길>, 우리교육, 2009 

‘함께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뼈져리게 느낀 지난 한주였다. 한 사람을 떠나보낸 많은 이들은 슬퍼하고 또 슬퍼했다. 인생이란 긴 길을 걷는 우리에게 ‘동행’이란 어떤 의미일까. 슬플 때 눈물 닦아주고, 힘들 때 어깨를 내어줄 수 있는 동행이 우리에게 있기는 한 것일까. 그때 ‘고3 아들과 쉰 살 아버지가 함께한 9일간의 도보여행’이란 부제를 단 여행 에세이 <해남 가는 길>이 눈에 들어왔다.

<해남 가는 길>은 고3을 눈앞에 둔 아들의 선언으로 시작한다. “아빠, 나 국토순례를 해 볼까 하는데…….” 웬만한 전투보다도 치열하다는 ‘고3 전쟁’을 앞둔 아들의 말에 부모는 지레 걱정부터 앞선다. 시간을 쪼개서 공부를 해도 모자랄 판에 국토순례가 웬말인가. 하지만 부모 자식 간에 감정싸움을 하기 싫은 아버지(저자)는 백기를 든다. 그렇다고 해서 걱정이 멈추는 것은 아니다. 누구와 함께 여행을 할지, 위험하지는 않을지 걱정은 멈추질 않는다. 그 때 아들의 한 마디 “그런 게 아니고, 난 아빠랑 둘이 국토순례를 떠나고 싶어.” 이 말에 아버지는 입가에 미소를 짓게 되고, 부자(父子)의 여행은 시작된다.

여행 한 달 전부터 체력단련도 하고 옷가지도 든든하게 챙겼지만, 12월 31일부터 시작한 여정은 만만치 않다. 한겨울 추위에 찬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등짐은 무겁기만 하다. 거기에 빠르게 달리는 차들이 남긴 세찬 바람은 뼛속 깊숙이 스며든다. 또 길거리에 만난 (로드킬 당한) 수많은 주검들, 나그네들의 여관은 사라지고 연인(?)들의 모텔만 남은 한국의 현실은 속상하기만 하다. 하지만 이들은 걷기를 멈추지 않는다. 왜. 동행이 있기 때문에...

그저 함께 있음

‘해남 가는 길’은 공간적 개념이지만, 시간적 의미가 더 크다. 쉰 살인 아버지와 고등학생인 아들이 9일 동안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함께 보내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길을 걷는 동안 부자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지만, 서로 입을 꾹 다문 채 걷기만 하는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외롭지 않다. 그들은 자신이 마음이 서로에게로 뻗어있다는 것을 어느 순간부터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까 내가 어깨가 끊어질 것처럼 아파서, 배낭 좀 바꿔 메자고 부탁하려고 아빠를 슬쩍 쳐다봤어. 그랬더니 아빠가 나보다 더 힘들어하고 헉헉대는 거야. 그런데 어떻게 배낭을 바꿔 메자고 부탁해. 내가 참고 아빠를 봐준 거라고. 알기는 해?” 나는 고만한 것에 그만 감격했다. “그랬니?” 할 말을 잃었다.(p 34)

이쯤 되면 ‘피 끓는 애정의 결말’을 예상하기 쉽다. 하지만 그들의 길에 사무치는 감동이나 피 끓음은 없다. 하루의 여정이 끝나면 아버지는 9시 뉴스를 보고, 아들은 영어 공부를 한다. 참 멋없는 여관 풍경이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서로를 알아 가는 소중한 시간이 있다. 그 시간을 채운 것은 아버지와 아들의 삶이다. 수덕여관 앞 너럭바위에 새겨진 고암 이응로의 작품, 소리꾼 김창진의 사연 많은 이야기 등, 아들은 아버지의 얘기를 들으며 그의 삶과 가치관을 자연스레 체득한다. 또 아버지는 아들과 소주잔을 비우면서 어느덧 성장한 아들의 무게를 느낀다. 시간이 만들어준 공감이다.

긴 시간 속에 나

전날 내려온 모녀(母女)와 합류해 어머니와 여정의 마지막 날, 네 식구는 KTX를 타고 서울로 돌아간다. 9일 동안 힘들게 내려간 길을 단 몇 시간만에 돌아오면서 아버지는 많은 생각을 한다. 그런데 문득 차창에 비친 아들의 모습에서 자신의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한다. 길과 길이 맞닿아 있듯이 끊임없이 이어질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의 시간. 끝없이 이어진 길에서 한 인간은 작은 존재일 수밖에 없듯, 아버지는 역사의 긴 흐름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겸손한 자세로 자신의 역할을 생각한다. 모든 길을 갈 수도, 모든 것을 쥘 수도 없는 것이 우리가 걷는 길의 법이니까.

평택에서 해남까지 걷는 9일 동안 길 위에서 만난 많은 이들이 부러운 눈길로 이들을 쳐다본다. 서로 시간을 낼 수 있는 여유도, 함께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관계도 부럽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잠시 생각해봤다. 아버지 혹은 가족과 도보 여행을 떠난 적, 아니 단 둘이 떠난 적이 있던가. 특히 도보 여행은 많지 않다. 밤바다가 보고 싶어 무작정 길을 나섰지만 파도 소리만 듣고 새벽녘에 돌아온 제주도의 기억, 멀지 않아 보여 걷기 시작해 5시간 동안 꼬박 걷기만 했던 경포대의 기억이 전부이다.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 긍정적인 대답을 할 수 있는 이는 얼마나 될까. 

책을 덮으며 앞으로 ‘나’의 여정에는 무슨 일이 펼쳐질까 궁금해진다. 가보지 않은 길은 늘 새로운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을 테니까. 바쁜 일상에 여행을 망설이는 나에게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날 것을 권한다. “큰 손해가 아니라면 10분쯤 참는 건 삶의 여유가 아닐까 생각하느니라.”(p 145)

안늘(ak2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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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하모니 - 북극 동물의 삶과 생명 이야기



 

월간지 '좋은 생각'에서 익숙하게 봐 왔던 생태 화가, 이태수님의 그림이 표지로 쓰여진 책. 동물원에 갇혀 있는 곰이 아닌, 눈빛이 살아 있는 곰의 그림이 근사했다. 무광의 적당한 두께의 표지와 검정색 형압은 촉감만으로도 제목이 읽혀진다. 환경을 위한 재생용지의 속지는 짙은 와인 빛깔의 색지로 책의 내용을 감싸고 있다. 이런 종이로 만든 책은 종이에 손이 베이거나 다칠 위험이 적다. 내가 좋아하는 형태의 책이라서 맘에 들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는 한동안 경외심에 책을 껴안고 다녔다. 책의 내용은 무거운 편이다. 동물을 소재로 한 그림 동화는 결코 아니다. 이 책은 지금의 현실을 더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지닐 수 있도록 해 줄만큼 신념있는 학자의 통찰력이 엿보이는 고전이다. 책을 읽다보면 북극의 대하 드라마를 오랫동안 시청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그만큼 그의 글은 생생하다.) 마치, 동물의 왕국을 다큐멘터리로 영화화한 작품을 보는 것과 같은 체험을 안겨 준다. 아주 쉽고 평이한 문체로 쓰여져 있지만, 상당한 깊이의 내용을 담았다. 



태양 에너지는 수많은 방식으로 작용한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을 하나 꼽으라고 하면
식물, 곧 잎과 줄기와 꽃과 열매를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초식 동물들은 이 햇빛 에너지의 일부를 고기로 바꾼다.
그리고 육식동물은 초식 동물을 먹음으로써, 햇빛에 들어 있던 에너지 가운데 자기 몫을 챙긴다.
이렇게 태양 에너지가 전달되는 과정을 먹이 사슬이라고 한다. (p.15)


이미 학교에서 배운 먹이 사슬이지만, 태양 에너지로 자연계를 서술하며 생태계의 흐름으로 보여준다. 북극에서 살아가는 동물과 사람은 저마다 고유한 영역과 질서, 주어진 환경에 순응했던 모습이 아주 조화로워 보였다. 온갖 장비로 무장된 군대가 등장하기 전까지 숲은 자연 속의 조화로 가장 효율적이고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해 주었고, 신비롭고 경이로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숲은 고요하다. 개발이라는 미명아래 끊임없이 자연을 파괴해 왔기에 이젠 숲도 보호대상이 되었다. 개발 제한 보호구역의 숲에서는 커다랗고 위협적인 동물과 군집을 이루며 활동하는 초식동물들을 더 이상 보기 힘들다.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만든 동물원에 가야만 그러한 희귀한 동물을 구경할 수가 있다.

지난 주에 딸 아이와 함께 동물원에 야외학습을 다녀왔는데, 동물 농장을 재현한 곳에서 나는 악취에 질식 할 것만 같았다. 갖혀진 동물을 구경하는 사람도, 구경거리가 된 동물도 모두 제정신은 아닌 듯 했다. 예전에 동물원의 우리를 탈출한 야생 동물이 세 사람의 생명을 위독하게 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갖혀 있다고 해서 야생 동물을 자극하는 사람과 그것을 보고 웃는 구경꾼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갑갑했다. 동물원의 입장료를 냈다고 해서 마치 동물의 군주라도 되는 양, 착각하는 사람들의 행동이 아이러니하다. 우리 인간 역시 너무나 연약한 존재에 불과하며, 자연의 일부분임을 잊으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 지 한번쯤 생각해 볼 문제이다.

이 책의 번역자가 쓴 서문에는 우리가 모르고 지나쳤던 아주 중요한 사건이 소개되어 있다. 바로 알래스카 전차 계획Project Chariot, 1958년 존 F. 케네디가 대통령이 되기 전, 상임의원 시절이었을 때 알래스카에 핵폭탄을 떨어뜨려 개발을 하겠다는 내용의 계획이다. 이 계획은 책의 저자, 윌리엄 프루이트의 노력으로 무산될 수 있었다. 우리 부부는 잘 생긴 존 F. 케네디가 그렇게 무식 용감한 사람인 줄 몰랐고, 전혀 상상이 되지 않아서 그 사건을 찾아 보았다. 그러는 과정에 짧은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미국인이라면 누구라도 우상시하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설마 그런 발상을 했을까하고 의아했지만, 그 기록이 남겨진 자료를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인기있는 정치가를 무조건 우상하는 맹신자들에게는 불편함을 줄 수 있는 책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 화려하기만 하던 존 F. 케네디의 집안이 왜 몰락을 하고, 존 F 케네디의 재임시절 함께 활동했던 영국의 수상, 처질의 말년이 왜 불행할 수 밖에 없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은 자연을 경외하지 않은 오만한 정치인이었던 것이다. 인간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그에 비하면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당시 크게 빛을 보지 못했던 지미 카터가 다시금 새롭게 인식된다. 지미 카터가 지금 누리고 있는 행복과 사람들로부터 받는 존경은 얼마나 값진 것인가? 


누가 뭐래도 파급 효과가 가장 큰 가시적인 변화는
처칠 폭포(그랜드 폭포)수력 발전소가 생기면서
래브라도의 중부 지역에 드넓은 침수지가 형성된 것이다.
수많은 작은 댐과 제방이 생기면서 래브라도 중앙의 드넓은 침하 지대는
물이 모이는 집수 지역으로 바뀌었고,
그 물은 지금 메마른 그랜드 폭포 밑에 묻힌 터빈을 향해 흘러가고 있다.(p.262-263)


 한국의 현 정부가 자연의 질서를 무시한 채, 그 옛날 미국에서도 실패했던 개발 사업에 열을 올린다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하다. 당장의 일자리 창출과 침체된 경제를 살리는 수단으로 자연을 훼손하는 일은 앞날을 내다보지 못한 어리석은 행동이다. 이런 것을 알고도 실행한다면 불행을 자초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 시간에 보다 더 효율적이고 가치있는 일을 추구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세상을 위하여 더 깊이 고민하고 진지하게 공부하는 정치인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케네디처럼 잘 아주 잘 생긴 것도 아니고, 처칠처럼 극적인 영웅도 아닌, 인기마저 추락하고 있는 정치인들이 케네디가와 같은 비극을 초래한다면 얼마나 억울할 노릇이겠는가. 지금의 세상은 정복이 아니라, 소통을 하면서 조화롭게 지내야만 더 잘 살 수 있는 패러다임으로 바뀌었다. 더 늦기 전에 이러한 대열에서 벗어나는 우를 범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여전히 춥고 쌀쌀했던 봄날, 밤마다 따뜻한 이불을 덮고, <와일드 하모니Wild Harmony>를 읽었다. 이 책은 '북극 동물의 삶과 생명의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낮에 책을 읽다가 만 4살인 이런 딸의 눈에 띄여 실랑이를 벌인 끝에 책이 조금 찢겨졌다. 책 표지에 곰이 그려져 있어서 동물을 좋아하는 딸 아이에게 책을 빼앗길까봐 밤마다 몰래 조금씩 읽었다. 애 딸린 주부는 맘 편히 책 읽을 시간조차 없을 것이라고는 그 예전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책을 읽고, 짬을 내어 책의 리뷰를 남길 수 있어 다행이다. 조화롭고 가치있는 삶을 추구하는 정치인이라면 시간을 일부러 만들어서라도 이 책을 읽어 보길 권한다. 


현재 북극 지방의 동물들이 직면한 문제들 중에는
생물학이나 야생 동물 관리, 심지어 과학 전반에 속한 것들이 많다.
전문 지식을 동원할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지, 아니 적어도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 지를 안다.

문제는 과학자의 지식을 정치가에게 전달하고,
이 지식을 행동과 규제, 집행으로 옮기고 대중의 태도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때문에 이 책을 개정하여 더 늘린다면, 아마도 인간 정치라는 세계까지 다루어야 할 것이다.

(와일드 하모니 Wild Harmony, 책의 마지막 페이지)

- 매니토바 위니펙에서
윌리엄 프루이트




아주 추운 봄날 동물원으로 야외학습을 갔던 날이었어요.
 



우리는 여전히 추운 날씨였지만,
북극곰에겐 아주 더운 듯 보였습니다.

 

 헉헉거리며 걷는 모습이 안쓰럽더군요.
북극곰이 있어야할 곳은 동물원이 아니라 북극이어야겠지요.
야생동물을 보호한다고 동물원을 만드는 행위가 정말 동물을 위한 것일까요?

3년 전에는 추운 시카고의 동물원에 코끼리가 추위에 그만 동사하고 말았답니다.
코끼리가 생존할 수 있는 따뜻한 곳이 아님에도
상류층의 기부로 링컨 파크의 동물원은 코끼리를 시카고로 데려 왔지요.
결국, 코끼리의 죽음으로 실패했어요.
세상엔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 많습니다.
자연적으로 그대로 두었다면 그럴 일은 없었겠죠.
북극곰의 지친 모습을 바라보면서
거대한 코끼리의 죽음이 떠오르더군요.
 



시카고 시에서 조금 벗어난 개발 제한 구역입니다
숲을 보호하는 차원으로 인위적인 그 어떤 시설도 없었어요.
구경꾼들로 지친 북극곰은 이런 숲의 환경이 그리웠겠죠.

 

이른 봄, 웅덩이같은 작은 호수는 얼어 있었습니다.
눈과 비가 많이 내렸던 겨울이었어요.

 숲은 신비함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강봉조'님은?
시카고에서 남편 맷휴와 딸 유빈이, 반려견 바둑이, 길고양이 노랑이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녀의 일상은 아내, 엄마, 그리고 농사꾼이자 정원사로서의 소박한 기쁨으로 채워진다. <나는 오후에 탐닉한다>(갤리온. 2008)를 펴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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