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에 해당되는 글 43건

  1. 2009.09.02 환경지식의 재발견 -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2)
  2. 2009.08.17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2)
  3. 2009.06.29 핑크 리더십 -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리더
  4. 2009.06.29 YB 갱생 프로젝트
  5. 2009.06.27 인터월드: 떠도는 우주기지의 전사들
  6. 2009.06.26 존 라베 난징의 굿맨: 전쟁에 영웅은 없다
  7. 2009.06.25 손석희 스타일: 우리 시대 모든 프로페셔널의 롤모델
  8. 2009.06.24 홍대 앞 새벽 세시: 감성과 자본의 격한 충돌의 시공간 (2)
  9. 2009.06.21 어쩌다 우리 사이가 이렇게 됐지 - 대인관계가 미숙한 사람들에게
  10. 2009.06.19 살구꽃이 돌아왔다 - 시와 자연과 나의 교감

환경지식의 재발견 -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이진아,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책장, 2008


책 소개에 앞서 쉽고 재밌는 퀴즈를 풀어볼까요?
 
질문1: 콜럼버스가 북미 대륙에 도착하고 200년 동안 감소한 원주민 수의 비율은?

질문2: 일제 식민지 시대 36년 동안 파괴된 우리나라 삼림의 비율은?

질문3: 중국산 한약재에 중금속이 많이 함유되어 있는 이유는?

질문4: 먹을거리 오염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어떤가요. 주관식 문제라 풀기 어렵지는 않았는지요. 혹자는 몇 초 안에 다 풀고 ‘이게 무슨 문제라고’하며 코웃음을 쳤을지도 모릅니다. 또 혹자는 ‘이게 무슨 쉽고 재밌는 문제야’라며 저를 미친 사람 취급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저도 답을 몰랐습니다. 그럼 여기서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의 저자 이진아가 밝힌 답을 살짝 들여다볼까요? 

답1: 95%(16세기 유럽인 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갑자기 무서운 전염병이 돌아 인구가 95%씩 감소된 곳에서는 세상이 왜 이렇게 돌아가는지 생각해 볼 여유도 없었을 것이다. - p 96)

답2: 90%(그 36년 동안 우리나라 삼림의 90% 이상이 파괴되었다. 자국에서, 그리고 2차 대전 중 군수 용도로 필요해서 일본이 대대적으로 벌채를 해갔기 때문이다. - p 160)

답3: 한약재를 채취해 철망 같은데 올려놓고 밑에서 석탄을 때문.(중국산 석탄에는 중금속과 유황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 편에 속한다. - p212)

사실 이 문제들은 쉽지도 재밌지도 않습니다. 열 식구 중 아홉 식구가 죽어버린, 시체가 강 같이 흐르는 아비규환의 풍경, 남의 산이라고 사정없이 도끼질을 한 일본인의 이기심과 힘없이 발가벗겨진 산들, 몸에 좋다고 먹었는데 독약을 먹은 격이 된 이 현실은 상상할수록 복잡하고, 슬픕니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지구 온난화 등 환경의 역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니까요.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란 제목만 보면 지금 지구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환경 파괴와 ‘환경을 살리자’는 구호가 나올 법도 합니다. 그런데 저자는 그런 외침은 ‘이제 충분하며, 외침만으로 환경문제를 극복할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 대신 역사 속으로 들어가 인간이 살 수 있는 지침을 찾고자 하는데, 저자가 눈을 돌린 곳은 소빙하기였던 14세기 유럽입니다. 저자는 이 시기 유럽을 ‘슬픈 유럽’이라고 합니다. 그 당시 유럽은 전쟁, 질병 등으로 참 힘들게 살았는데, 이들은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바다 건너 대륙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지요.

옛날 옛적에 유럽에서는

책 중반까지 등장하는 유럽 곳곳의 풍경과 유럽인들의 만행, 그리고 그 속에서 벌어진 환경 파괴 사례들이 빠르게 전개됩니다. 1500년부터 노예무역을 금지한 19세기 초반까지 약 1천만 명의 아프리카인들이 유럽인들에 의해 노예가 되었고, 대규모 농장에서 생산된 차, 커피, 설탕 등의 소비를 촉진시키기 위해 디저트, 후식 문화가 발전했으며, 생산력을 늘리기 위해 많은 숲이 황폐해졌습니다. 물론 ‘유럽인은 우월하다’는 이성주의와 ‘과학은 발전된 것이다’라는 과학주의가 그들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지요. 저자의 서술은 바다 왕국들이 거침없이 타 대륙을 정복해나간 것처럼 거침이 없습니다. 이는 150개가 넘는 참고문헌을 바탕으로 한 광범위한 지식이 아니면 불가능한 것으로 보입니다. 무협지의 고수가 어려운 초식을 쉽게 펼치는 그 느낌입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상 이변, 석유 에너지가 만든 수많은 독성물질들, ‘개발 중국’에서 날아오는 독한 미세먼지들, 환경 호르몬으로 인한 인간의 생식 기능 감퇴 등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그래도 인간은 산다”고 말합니다. 중세 이후의 유럽인들이 소빙하기의 고난을 뚫고 살아남은 것처럼. 하지만 그것이 최선의 방식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우리는 해결책을 찾아 효율적으로 실천해가야 합니다.

‘사랑’이라는 그 흔한 말이

이제 앞서 제기한 네 번째 질문의 답을 들여다볼까요? 저자가 밝힌 답은 ‘사랑’입니다.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냐’라고 하시는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너무도 상투적인 답에 실망했으니까요. 하지만 저자의 말을 듣다 보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집니다. “사랑이나 감사의 마음을 갖는 상태에서 인간의 뇌 파동은 알파-파를 보이는데, 그러면 우리 몸이 만드는 쾌감 물질인 엔도르핀 등이 다량으로 분비되면서 몸 안의 독성물질이 해독되고 혈액순환이 좋아져 모든 세포의 기능이 활발해진다.”(p 249) 먹을거리를 만드는 사람이나 먹는 사람이 사랑과 감사의 마음으로 먹으면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얘기입니다. 생명은 기계가 아니니까요.

‘사랑’을 생각하다 보면 우리는 전통의 지혜공생의 삶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침 일찍 물을 뜨러 가는 가족의 마음, 장독대를 소중히 아끼며 많은 미생물과 평화롭게 공존하려는 마음, 그리고 텃밭에서 길러 많은 손을 거쳐 식탁에 오르는 김치까지. 예전에는 뜨거운 물을 땅에 버리지 않았다고 하지요.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요즘 한국사회에까지 생각이 뻗칩니다. 학창시절부터 몸에 밴 경쟁의식, 경제성을 높인다고 늘어만 가는 비정규직, ‘나와 다르면 잘못된 것’이라는 경직된 사고. 가장 많은 사랑이 필요한 환경이 바로 인간사회 아닐까 합니다. 오늘(6월 5일)은 환경의 날입니다. 새삼스레 환경에 대해 생각해 보자거나, 공존의 삶을 모색하자고 하는 건 아닙니다. 그냥 그렇다는 겁니다. 책 속에 등장한 히말라야의 앵무새 이야기를 소개하고 글을 마치겠습니다.

“어느 날 히말라야 산에 큰 불이 난다. 수많은 동식물의 삶의 터전이었던 숲은 빠르게 잿더미로 변해갔다. 무서운 기세로 타오르는 불을 피해 모든 동물들이 달아나고 있었다. (…) 물은 불에 닿기도 전에 증발해버렸지만 앵무새는 호수와 불타는 숲 사이를 바쁘게 오갔다. 결국 숲에 쓰러지고 만 앵무새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 광경을 보신 부처님은 앵무새를 불쌍히 여겼고, 앵무새의 눈물 한 방울을 호수만큼의 물이 되게 했다. 숲의 불길은 잦아들기 시작했고, 숲은 다시 푸르게 회복되었다.” (p 171)

안늘(ak2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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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로맹가리,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문학동네, 2007

새들, 페루, 죽다. 이 세 가지는 하루를 살면서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낯선 단어들이다. 눈에 보이는 새라고는 왠만하면 날지 않는 비둘기, 어디에 위치해있는지도 헷갈리는 페루, 아직은 멀게 느껴지는 죽음. 그런데 세 단어의 한 데 모였을 때, 묘한 매력을 느꼈다. 로맹 가리의 단편 소설집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낯선 것들에 대한 동경일까, 아니면 ‘새들이 페루에 가서 죽는 이유’에 대한 호기심 때문일까, 답은 잠시 뒤에 찾기로 하고 책을 먼저 손에 쥐었다.

책을 편 것은 일상의 긴장이 풀린 주말, 덜컹이는 전철 안. 지구 먼 곳으로부터 온 햇빛이 너무 강렬했던 탓일까. 늘 타던 전철이었지만 환상의 공간에 머문 듯 했고, 종이 위 문자들은 어지러이 망막에 박혔다. 표제작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읽는 동안 약간의 현기증을 느꼈다. 어지러움은 잠시, 소설에 짙게 배어 있는 고독이 밀려왔다. 인적 드문 해변에서 자신의 이름보다 고독이 더욱 친숙한 사내. 그는 우연히 해변에서 자살하려는 여인을 발견하고 그녀를 구한다.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은 여인을 보며 사내는 연민 혹은 애정을 느낀다. 그녀를 안을까? 고독을 선택한 그에게 불쑥 찾아온 뜨거운 감정은 그를 괴롭힌다.

그녀의 중얼거림은 너무나도 절박했고, 그녀의 눈빛에는 애원이, 그의 어깨에 매달린 그녀의 연약한 두 손에는 약속이 깃들여 있었다. 그는 자신의 삶이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순간에 성공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를 가슴에 꼭 안고 그는 이따금 자신의 두 손 안에 묻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살포시 들어올렸다. 불현 듯 수십 년간의 고독이 한꺼번에 몰려와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아홉 번째 물결이 그를 쓰러뜨리고는 그녀와 함께 먼 바다로 그를 휩쓸어갔다. (p 28.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인간, 그 알 수 없는 허울

사내는 왜 외로울까. 그는 어째서 벗어날 수 없는 고독에 스스로 투신했을까. 파리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2차 대전에 로렌 비행중대 대위로 참전한 로맹가리는 역사의 격동 속에서 삶의 모순을 느꼈을 테다. 그가 공부한 것은 명확한 법학인데, 그가 마주한 현실은 새벽녘 안개길 만큼이나 불투명하다. 더욱이 유태계 프랑스인인 그는 유태인 학살을 지켜보며 인간 생명의 나약함과 잔인함을 동시에 목격했다. 그가 목격한 인간의 몸뚱이에 희망이란 뜨거운 피가 흐를 수 있었을까.

“운전사는 번들거리는 얼굴의 반점을 다시 한번 처녀 쪽으로 돌려 그녀를 한동안 바라본 다음 다시 눈앞의 길을 주시했다. 그래요, 이 어린 것은 금간 유리처럼 연약하지요. 폭격, 폐허 속에서의 생활, 그리고 그 딱한 군인들…… 오! 물론 그들은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알고 있었겠지만, 전쟁이란 다 그런 것이라며 당연하게 여겼겠지요. 문제는 그때 이후 이 어린 것이 모든 것에 대해 눈을 감아 버린 겁니다.”(p253. <지상의 주민들>) 전쟁의 충격으로 눈을 감아버린 이 여린 여인은 흰 눈 가득한 크리스마스를 보기 위해 눈을 뜨고 싶어 하지만, 그녀의 순수함은 이내 훼손된다.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는 여러 작품 속에서 반전이라는 형식으로 나타난다. 예술의 고결함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대가든 치러야 한다는 미술품 애호가 S(<가짜>), 사랑하던 옆방 여인의 교성을 듣고 자살을 선택한 청년(<벽>), 문명의 손이 묻지 않은 곳에서 우연히 만난 위대한 그림에 희열을 느끼는 남자(<도대체 순수는 어디에>) 등은 마지막 순간 배신을 당한다. 사건의 전말이 드러났을 때 당혹스러운 건 비단 소설 속 인물뿐만이 아니다. 이성으로 예측한 방향대로 흐르지 않는 인간관계. 언제 깨질지 모르는 그 관계를 붙잡고, ‘이건 안전해’라고 ‘능동적인 착각’을 하고 있는 나는 안. 전. 한. 가.

위태롭지 않은 곳이 없는 현실, 작가는 환상으로의 탈주를 꿈꾼다. “마부석에 비둘기 한 마리가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자체로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수많은 비둘기들이 거리에서 똥을 쪼아 먹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충격적인 것은 비둘기의 태도였다. 그 비둘기는 마부 일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실제로 그 비둘기는 고삐에 매여 있지 않았고, 옆좌석에는 가는 끈이 늘어뜨려진 작은 종이 달려있었다. 비둘기는 이따금 부리로 줄을 잡아 끌어당기곤 했다. 한 번 잡아당기자 말이 왼쪽으로 돌았고, 두 번 잡아당기자 오른쪽으로 돌았다.”(p179. <비둘기 시민>)

환상으로의 탈주

이 상상이 미쳤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불에 태워죽이고, 누군가를 등쳐먹기 위해 최고의 지성을 발휘한다는 것은 미치지 않은 거라 할 수 있을까.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는다> 속 16편의 단편들을 읽으며, 사내는 왜 외로운지 원인을 밝히는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물론 짐작은 간다. 하지만 그건 단지 내 생각일 뿐이다. 이성과 논리의 틀로 광기의 시대를 재단한다는 것 자체가 미친 짓일지도 모른다. 또 그 원인을 알 수 있었다면 프랑스의 대문호 로맹 가리가 차가운 권총으로 자신의 생을 날려버리지 않았겠지.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는다. 그들의 주검은 바닷물에 쓸려 이리저리 뒹굴고, 그나마 숨이 붙어 있는 새들은 어린 아이들의 발에 짓이겨져 골수를 쏟는다. 그래도 그들은 돌아갈 곳을 알고 있다. 인간은 어디로 돌아갈지 모른다. 차가운 길바닥에서, 소음 가득한 공장에서, 총탄이 비행하는 전장에서 언제 죽을지 모른다. 새들을 부러워하지 않더라도, 새들을 동정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비명횡사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제 돌아갈 곳을 찾아봐야겠다. 

안늘(ak2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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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 리더십 -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리더

 

메리 캐이 애시, <핑크 리더십>, 씨앗을뿌리는 사람, 2009

“당신은 특별합니다”

이 한마디로 꿈의 회사를 만들었던 메리 케이 애시. 세계적인 화장품 회사인 메리케이사의 창업자이자 전 회장이었던 그녀. 1963년 그녀의 나이는 48세였고, 가진 돈은 불과 5천 달러에 불과했지만 ‘골든 룰’을 기반으로 조화와 상생을 강조하는 독특한 리더십으로 회사 건립 후 20년도 되지 않아 메리케이사를 미국 최대의 화장품 회사로 키울 수 있었다.

세계적인 화장품 회사로 성장한 메리케이사는 여성을 위한 10대 기업, 가장 일하고 싶은 미국 100대 기업, 포춘 500대 기업 등 현재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회사로 자리를 잡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2001년 추수감사절 날 타계했다. 표지 속 그녀의 모습은 온화한 표정을 보이며 한없이 여성스러워 보이기도 했고, 또 어떤 면으로는 냉정하고 차가워 보이기도 했다.

메리 케이의 진짜 모습, 또 어떤 열정으로 나약하기만 했던 회사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울 수 있었는지 무척이나 궁금했기에 이 책을 꼭 읽고 싶었다. 책 제목을 봤을 때도 여성을 상징하는 핑크와 여성 기업인의 이야기라는 사실이 눈에 띄었다. 핑크 리더십은 그녀가 여성이기에 더더욱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고, 그래서 더 찬사를 받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훌륭한 경영이라면 불굴의 의지와 타오르는 모험심, 어떤 술책과도 타협하지 않고 직원들을 이끄는 리더십을 쉽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메리 케이의 경영철학은 가슴이 따뜻해지도록 사람을 품어 그들이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협조자 역할을 해주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사업은 냉정한 판단력과 결단력만이 필요할 것이라는 내 생각과는 조금 달랐던 부분이었기 때문에 좀 의아하기도 했지만 그녀의 변하지 않았던 원칙은 사업 발전과 훌륭한 삶에도 기여할 정도로 풍요롭고 가치 있는 것이었다.

기업은 돈을 벌어들인다는 사실에 가장 민감하고, 또 가장 큰 비중을 갖고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메리 케이는 돈을 벌겠다는 목적 하나로 창업하지 않았다. 여성들에게 무한한 기회를 주는 것에 더 큰 목적을 두었고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공공연히 받아들여지고 있는 ‘여자처럼 생각하는 것’이 신뢰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지 않게 여성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며 여성에 대한 믿음으로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그 의미가 있었다.

리더는 독보적인 존재가 아니라 사람들과 같이 성장하는 사람이고, 회사는 사람들에 힘입어 성장하며 발전하는 것이다. 메리 케이는 이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으며 사람들이 스스로를 중요한 사람으로 느끼도록 만들어 주었다. 기업인으로서 그녀는 자리가 중요했던 것이 아니라 직원들의 이야기를 언제나 경청하고, 될 수 있는 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책을 읽어 갈수록 기업인은 무조건 냉철할 것이란 내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녀를 보며 특히나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모든 사람은 다 특별하다고 믿었던 그녀의 가치관이었다.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하는 여성이 자신들의 아이를 사랑으로 감싸고, 보듬으며 키우는 일은 우리에겐 익숙한 사실이지만 메리 케이는 기업의 오너로서 전 직원과 고객들에게 세심한 관심을 기울였고, 그들이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지향하는 삶을 살았다. 바로 이 부분이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리더가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 되어주었던 것이다.

아내이자 어머니, 가정주부, 요리사 등 다양한 역할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효과적인 시간 관리기술이다. 많은 것을 이뤄내려면 반드시 계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을 따라야 한다. 뛰어난 재능보다는 어떤 위치에서든지 계획을 세우고 꾸준하게 실행하는 사람이 결국은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는 것이다. 세상의 위대한 성취자들을 보면 작은 일에서부터 치밀하게 준비하고, 실천한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우린 쉽게 볼 수 있지 않은가.

메리 케이는 평생을 여성으로서, 기업의 오너로서 뛰어난 인생을 살았고 분명히 많은 이들이 그녀의 인생을 돌아보며 가치 있는 깨달음을 얻었으리라 생각된다. 원칙에 충실하고, 고객과 직원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 그녀는 늘 여성이 가진 장점을 최대한 살려서 많은 이들을 아우르고, 세심하게 살폈으며 도와주었다.

자신 있고, 당당한 모습의 그녀는 절대 거만하지 않았다. 또, 현재에 안주하지 않았고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열심히, 치열한 인생을 살았던 것이다. 이제 그녀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는 않지만 그녀가 남긴 살아있는 유산들을 돌아봤을 때 물질적인 부와 가치뿐만 아니라 그를 믿고 따랐던 수많은 여성들의 자부심 속에 그녀는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지젤'님은?
책과 커피, 요리와 여행을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은 것은 커피향을 맡으며 책장을 넘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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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B 갱생 프로젝트

 

YB(윤도현밴드), "공존", 로엔엔터테인먼트, 2009


짧은 인트로 ‘Millimicron Bomb’의 빈티지한 기타소리와 작렬하는 드럼. YB에게 바라는 건 이런 거다. 이어지는 ‘88만원의 Losing Game’은 작정하고 만든 태가 난다. 반복적인 드럼과 기타 리듬이 탄탄한 긴장을 유지하고 심심할 때 쯤 기똥차게 리듬을 바꿔준다. 송곳처럼 날카로워진 윤도현의 목소리도 단단히 맘먹은 태가 나지만 악 바친 하몬드 올갠에 이르면 속이 다 후련하다. YB라면 통상 이정도 하고 나면 발라드가 나오기 마련인데 ‘깃발’까지 통쾌함이 이어진다. 킹스턴 루디스카(Kingston Rudieska)의 나팔들과 찰떡궁합을 과시하는 YB 특유의 멈췄다 다시 달리기 신공은 쏘가리 뽈살 마냥 쫄깃쫄깃하다.

YB는 분명 뛰어난 밴드다. ‘이 땅에 살기 위하여’부터 ‘빨간 숲 속’까지 브레이크 포인트를 활용하는 땐땐한 사운드는 언제나 탁월했다. 하지만 YB에게는 묘한 구식 냄새가 났다. 한국 록이 영국 모던록을 전범으로 삼기 전, 그러니까 하드록과 헤비메탈의 정교한 기교주의가 단절 없이 이어진 느낌이랄까? 민중가요 포크 씬(그런 게 있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지만)과의 연결고리는 트렌디한 록 음악의 변화에 발맞추지 못하는 것처럼 인식되었다. 이런 게 한국 록이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그건 아니다. 이런 밴드는 현재 YB밖에 없다.

4집 “한국 록 다시 부르기”로 절정을 친 뒤로 YB의 음악적 행보는 이 ‘구식 느낌’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었다. 모던록으로 방향을 선회하기도 했고(5집 “An Urbanite”) 의기양양하게 하드코어(6집 “YB Stream”)도 했다. 한 곡 가지고 우려먹는 거장들보다야 나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판매고는 미흡했고 음악적 평가는 더욱 미흡했다. 그래서 이번 앨범 초반부의 통쾌한 세 곡이 어떤 갱생의 징조로 받아들여진다. 한국 록의 적자(嫡子)라는 더부룩한 명예가 월드컵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 한 것일까? 가장 잘 할 수 있는 직선적인 하드록으로 거듭났다. 조금 누렇게 변색된 기타톤, 심플하게 파괴력을 높이고 다채로운 변박으로 유니크해졌다. ‘Talk To Me’를 들어보라. 이렇게 중심을 잡고 보니 사물을 집어넣거나 브라스로 흥겨워지는 것도 자연스러워졌다. 

그런데 이런 설명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지금까지 YB 앨범을 장악했던 건 록킹한 트랙이 아니라 대중적이라고 말하는 록발라드들이었다. 대놓고 1번에 놓진 않았어도 앨범 전반에 걸쳐 A-B-A-B'로 구성된 재미없는 진행들이 YB를 대중 지향적 밴드의 혐의를 지울 수 없게 만들었다. 한국적인 상황에서 몸집 큰 밴드로서 어쩔 수 없었으리라고 어지간히 봐 줄 수 있는 일이지만 윤일상의 곡을 받아 타이틀로 내건 건 정말 끔찍했다. 아무리 록 스피릿이 땅에 떨어졌다 해도 유분수지, 밴드와 특별히 연관 없는 유명 작곡가의 곡을 부르다니, 눈에 흙이 들어가도 용인할 수 없는 일을 벌인 거다. 그러므로 이번 앨범을 평가하는 가장 주요한 기준은 YB의 ‘대중 취향(?)’을 어떻게 요리했느냐에 있다. 

그런 점에서 타이틀 곡 ‘아직도 널’의 편곡을 유명 작곡가 전해성에게 맡겼다는 부분이 맘에 걸린다. 하지만 같은 곡을 밴드 편곡으로 다시 녹음해 제목도 다르게 넣은 것을 보면 ‘아직도 널’은 솔직하게 공중파를 위한 곡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듯 하다. 전해성이 편곡한 ‘아직도 널’보다 같은 곡을 YB 편곡으로 넣은 ‘엄마의 노래’가 3.5배쯤 좋다. 이쯤 되면 YB가 가진 대중지향성과 부족한 음악성이 적절한 선에서 균형을 맞추고 있다고 판단된다. ‘편지’와 ‘후회 없어’는 후렴구보다 각 절들의 멜로디가 훨씬 더 좋다는 이상한 점만 빼면 무난한 대중취향 곡이다. 특히 ‘산울림을 들으며 밤새 기타쳤다’는 부분의 가사와 멜로디가 찡한데, 아무리 구식이고 대중지향이라도 이렇게 진심이 느껴지면 길가다 문득 생각날 수밖에 없다. 

의도된 대중지향을 몸서리치게 싫어하는 나 같은 사람이 듣기에도 썩 괜찮은 앨범이다. ‘Talk to Me’같은 호쾌함과 스트록스( The Strokes)에 메가데스(Megadeth)를 살짝 얹은 듯한 ‘Stay Alive’가 한 몫 했다. 반면 사무치게 아쉬운 점은 사회비판적인 내용을 담은 가사에 있다. 록 스피릿을 다시 꺼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다. 이런 가사를 쓰는 일은 오히려 좋은 일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더욱 권장해야 한다. 사실 이번 앨범이 록 스피릿을 다시 꺼낸 게 아니다. 

문제는 그 가사가 감동적이지도 않고 깃발을 흔들고 싶지도, 일어나서 싸우고 싶어지지도 않는다는 데 있다. ‘88만원’이 제목에 등장하다니, 손발이 오그라든다. ‘영화 괴물을 보고’라고 노래 제목을 붙인 것과 같다. 용산 철거민들에게 ‘고맙다 형제들아’라니, 슬픔과 분노의 역설인건 알겠지만 진실의 윤리학이라는 게 있는 법이다. 무너진 담장에 꽃이 피지 않았다. 기대에 앞서 애도를 표함이 옳다. 나는 윤도현이 시류에 영합하려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멋이 없다. 음악은 멋있는데 가사는 멋이 없다.  

오늘의 음반을 리뷰한 '전자인형'님은?
초등학교 3학년 어느 맑은 날 컬처클럽 뮤직비디오를 보고 2차 성장을 감지한 구 메탈키드. 대마초 한 대 펴 보는 게 소원인 말보로 라이트 헤비 스모커. 웹진 음악취향Y(
http://cafe.naver.com/musicy)에서 전자인형이란 필명으로 평균 조회수 50의 잡다한 글을 쓰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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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월드: 떠도는 우주기지의 전사들


닐 게이먼, <인터월드>, 지양사, 2009


기차를 타고 서울을 올라가는 길. 비가 주룩주룩 내리다 못해 억수같이 쏟아지는 창밖을 보며 책을 꺼내 들었다. 감상에 빠지는 것보다 책을 보는 것이 더 좋기에 비가 쏟아지는 날과 조금은 안 어울리는 내용일지도 모르는 <인터월드>를 집어 들었다. <인터월드>는 그야말로 비가 내리는 창 밖, 서울을 향한 기차 안이라는 사실을 잊을 정도로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는 내용이었다. 잠시 고개를 들어 현실을 보면 오히려 더 낯선 곳이 되어 버리는 듯한 착각이 일 정도로 보이지도 않고 존재하지 않는 곳의 이야기였다.

종종 심한 길치를 주변에서 보게 된다. 디지털 장애로 인한 길치도 심심찮게 보이지만 이 책의 주인공 조이처럼 심하지는 않을 것이다. 공사 중인 자신의 집에서 길을 잃는가 하면, 사회 체험학습 시간에 길을 잃고 헤맨 일은 조이의 운명을 갈라놓고 말았다. 단순한 길을 잃어버린 것이 아닌 다른 세계로 들어가 버렸기 때문이다. 조이가 지구에서 길을 자주 잃은 것은 바로 그런 세계에서 공간이동을 하는 능력 때문이라는 사실과 함께 전혀 평범하지 않은 세계로 편입하게 된다.

처음에 조이는 자신이 공간이동을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여러 군데를 방황한다. 순간순간의 위기에 따라 장소 이동을 할 뿐이었는데 그 자체가 공간이동이 되었다. 조이의 그런 능력을 알아채고 우주를 지배하려는 마법의 제국 헥스와 첨단 과학의 제국 바이너리는 조이를 추적한다. 조이가 '워킹'하면서 공간이동을 한 덕분에 위기를 넘기고 있었지만, 그렇게 헤매다 사회탐구 담당인 디마스 선생님을 만나 충격적인 소식을 듣는다. 자신이 사라진 시점에서 폭포에 빠져 죽었으며 그 소식을 듣던 중 헥스 제국의 마녀 인디고에게 붙잡힌다. 그들은 조이처럼 워킹 능력을 가진 아이들을 연료로 쓰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 와중에 인터월드에서 파견된 제이로 인해 구출되지만, 자신의 실수 때문에 복귀하던 중 제이는 목숨을 잃고 만다. 조이가 그려준 좌표 덕에 인터월드로 돌아온 조이에게 싸늘한 시선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조이는 제이를 대신할 전사가 되어야 했다. 조이 자신도 제이가 얼마나 뛰어난 전사였는지,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존재인지를 알지만 인터월드에서 필요한 재원이 되기 위해 훈련을 받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신병 기초 훈련 일 단계를 마무리 하는 과정에서 위기에 처하고 만다. 자신을 추적한 인디고의 계략에 빠져 동료들만 남겨 놓은 채 인터월드로 복귀한다. 조이는 동료들을 구하러 가야 한다는 요청을 하지만 묵살되고 기억이 지워진 채 고향으로 보내진다. 다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조이는 또 다른 현실과 마주한다. 며칠 동안 기억 상실증에 걸렸던 고등학생의 조이로 돌아와 평범한 학교생활을 한다. 그러다 막내 동생과 비눗방울 놀이를 하던 중 제이의 목숨을 잃게 만든 원인이자,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머드러프 ‘휴’를 기억하고 만난다. 분명 자신의 기억은 지워졌는데, 인터월드에서 공부했던 내용과 그곳에서 익혔던 무술들이 드러났다. 결정적으로 '휴'를 기억해 낸 조이는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할지 잠시 혼란에 빠진다.

파란만장한 조이의 ‘인터월드’ 입성(入成)

그냥 평범하게 삶을 이어가야 할지, 인터월드로 돌아가 동료들을 구해야 할지 혼란스런 가운데 또 다시 디마스 선생님을 찾아간다. 디마스 선생님이야말로 조이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줄 분이며, 조이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알려 줄 분이었다. 선생님은 자신이 시키는 대로 하라고 했고, 인터월드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은 조이는 가족과의 이별을 해야 했다. 엄마에게 모든 것을 설명했지만 이별은 힘들었다.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엄마는 조이를 믿어 주었고, 그렇게 이별을 하고 인터월드로 돌아왔다. '휴'와 함께 동료들을 잃어버린 곳으로 돌아가 우주를 지배하려는 포부를 가진 헥스 제국을 위기에 빠트리고 동료들과 무사히 탈출한다. 동료들과 힘을 합쳐 결코 만만치 않은 마녀 인디고 일당과 맞선 장면은 조이가 지구를 떠나 그곳으로 돌아온 의미를 깨닫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신뢰가 없었던 동료들과 믿음을 만들어 갔고, 힘을 합쳤을 때 자신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게 하는 귀한 시간이 되었다.

그렇게 인터월드로 귀환한 그들은 영웅이 될 거라 생각했다. 헥스 제국의 음모를 저지했고, 무사히 돌아왔으니 사령관인 올드맨이 자신들에게 큰 상을 줄줄 알았다. 그만큼 그들은 끈끈한 동료애가 넘쳤고, 자신들의 능력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올드맨은 최악의 팀이었다며 너무 자만하다고 되레 엄포를 놓았다. 그러나 '잘했다'는 칭찬과 함께 팀을 유지하라는 명령이 떨어졌고, 그들은 또 다시 새롭게 태어난 듯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새로운 임무를 맡는 것으로 파란만장한 조이의 ‘인터월드’ 입성(入成)은 그렇게 막을 내린다.

무한한 상상력이 필요했던 책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SF와 거리가 먼 나의 독서 취향에 애를 먹을 거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림은 풍부하고 명확했다. 글을 읽어가면서 조금씩 그림을 완성시켜가는 것이야말로 독서를 하는 묘미였고, 독특한 소재 속으로 독자를 이끌어준 저자의 역량에 감탄했다. 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것이 때로는 무척 쉬울 때도 있고, <인터월드>처럼 힘겨우면서 뿌듯할 때가 있다. <인터월드>가 빛을 보지 못하고 오랫동안 어둠 속에 묻혀 있다 어둠을 나온 순간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할 따름이다.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 것 같은 <인터월드>. 그 세계가 한동안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태극취호’님은?

도능독(徒能讀)을 일삼는 자. 책 읽기도 습관이라 생각하며, 책이라면 환장하며 달려드는 서른을 눈앞에 둔 철딱서니. 언제나 머릿속에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인 방에서 살아볼까 꿈만 꾸는 몽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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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라베 난징의 굿맨: 전쟁에 영웅은 없다

 

존 라베, <존 라베 난징의 굿맨>, 이룸, 2009

언젠가 전쟁영화에 대한 글을 쓸 때 다음과 같이 쓴 적이 있다. “수없이 반복된 전쟁을 지켜보면,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학습 능력이 떨어지는지 알 수 있다. 전쟁을 통해 무고한 사람이 고통 받고, 죽어감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멈출 줄 모른다. 부와 권력이 인간의 눈을 멀게 한 탓일까. 아니면 전쟁을 일으키는 이와 전쟁을 통해 고통 받는 이가 다르기 때문일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전쟁은 신이 준 최고의 저주라는 것이다.” <존 라베 난징의 굿맨>을 읽으면서 이 문장이 다시 떠올랐다.

<존 라베 난징의 굿맨>은 존 라베라는 독일인이 1937년 일본이 중국 난징을 침공할 때 그곳에서 쓴 일기를 엮은 책이다. 그는 당시 ‘난징 안전구 국제위원회’를 결성해 무고한 중국인들의 안녕을 위해 힘썼다. 독일 기업 지멘스 중국지사에서 일하던 ‘함부르크 상인’인 존 라베가 피로 물든 난징에 머문 이유는 무엇일까. 다른 외국인들은 일본의 침공이 시작되자 서둘러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중국은 존 라베라는 이방인에게 30년 동안 잘해줬고, 그는 도망칠 수조차 없는 가난한 이들을 두고 떠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937년 9월 22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존 라베의 일기에는 일본군의 침공, 난징 안전구 국제위원회의 활동, 중국인이 겪은 전쟁의 참혹함 등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피난을 가지 못한 중국인들은 그의 집과 안전구로 들어와 ‘생’(生)을 찾는다. 존 라베는 당시 독일의 상징인 나치 깃발을 안전구 곳곳에 세우고 일본군의 공습을 막고자 한다. 그는 500 평방미터인 자신의 집에 650명의 중국인들 피신시켰다. 상상해 보라! 더구나 식량은 떨어지고, 수도와 전기는 끊겼으며, 일본군의 위협은 끊이지 않는다. 그렇게 25만 명의 중국인이 난징 안전구로 모여들었다.

전쟁 속에서 존재할 수 없는 ‘안전구’

이성이 마비된 전쟁이란 시공에서 ‘안전구’는 존재할 수 없다. 일본군은 안전구에 들어와 중국인들을 데려가고, 강간과 폭력을 일삼는다. 또 길거리에 즐비한 시체들은 학살의 잔혹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존 라베, 미국인 선교사 등 외국인들이 폭력의 현장에 당도해 일본군의 폭력을 막고자 하지만, 몇 안 되는 이방인이 모든 현장에 존재할 수 없다.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폭력, 또 외국인이라고 해서 그 폭력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중국 정부는 별 도움이 되지 않으며, 외국 각국의 구원의 손길을 내밀지만 그 또한 녹록치 않다.

상황이 이쯤 되면 존 라베의 일기는 울분과 한 맺힌 절규로 가득할 법도 하다. 하지만 그는 난징의 현실을 차곡차곡 기록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 깊은 고민을 토로하지는 않는다.

“최근의 환자는 어제 왔다. 한 여성은 목이 반쯤이나 잘려서 윌슨 박사 스스로도 이 불행한 여성이 아직 살아있다는 데 놀랄 정도였다. 어느 임신부는 총검창상을 입어 태아를 잃었다. 같은 병원에는 많은 소녀들이 성폭행 당해 들어오고 있다. 한 소녀는 연이어 스무 번이나 성폭행을 당했다.” (p. 207)

상상할 수 없는 참혹한 현장, 현실이지만 그는 자신의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영화에 비유하자면 클로즈업과 장중한 음악으로 감정을 자극하는 영화가 아닌 극사실주의 영화나 다큐멘터리에 비교할 만하다. 어떻게 그는 그토록 침착(?)할 수 있었을까. 책을 보면 답을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만약 그가 매순간 벌어지는 납득할 수 없는 일들에 분노했다면 그는 그곳에 남아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미 감정이 모두 소진돼 난징을 떠났거나, 아니면 남아있었더라도 자신의 존재 의미를 상실할 수밖에 없다. 존 라베는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고자 하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깊은 슬픔은 사치다.
 

 

(사진 상하이로. 안전구의 중심 교통로. 이룸 출판사 제공)


존 라베, 독일 속의 또 다른 난징 시민

1938년 2월 23일 존 라베는 난징 안전구를 떠났다. 일본군과 중국 자치위원회는 이방인이 난징에 머무는 것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았다. 그가 떠나기 얼마 전 난민들은 절을 하며 그에게 “당신은 수십만 사람에게 살아 있는 부처입니다”라며 인사를 했다. 또 독일로 돌아갔을 때 신문과 통신사들은 그를 영웅으로 찬양했다. 물론 그는 이를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했지만…. 그럼 이 살아있는 부처, 영웅은 이후 어떤 삶을 살았을까.

애석하게도 그는 더 이상 영웅이 될 수 없었다.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고, 독일이 패망의 길로 접어들면서 나치에 가입했던 전력은 그를 ‘전쟁의 가해자’로 만들었다. 25만의 생명을 구한 영웅이 졸지에 살인자가 된 셈이다. 또 난징에서의 비참한 삶이 이제 그의 고향에서 벌어진다. 독일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는 러시아군은 난징에서의 일본군과 다름없으며,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닌 존 라베 또한 무력한 피해자일 뿐이다. 살아있는 부처 존 라베도 이제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존 라베가 중국에서 독일로 건너온 다음의 일기는 많은 것을 의미한다. 애초 영웅도, 살아있는 부처도 없다. 그저 전쟁이란 극한 상황에서 영웅, 부처로 비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면 영웅은 사라진다. 또 가해자와 피해자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 비단 일본-중국, 러시아-독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서구 선진국은 물론 우리도 가해자다.  ‘정의를 위해’, ‘문명을 발전시키기 위해’, ‘살기 위해’란 변명은 이제 유통기한이 지났다.

존 라베는 굿맨(좋은 사람)이다. 그 또한 영웅이 되고자 하지는 않았다. 영웅을 꿈꾸는가? 아니. ‘굿맨’이 그저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전쟁 없는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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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 스타일: 우리 시대 모든 프로페셔널의 롤모델

 

진희정, <손석희 스타일>, 토네이도, 2009


그 안티 없다던 유재석, 김연아보다도 안티세력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사람. 대학생이 닮고 싶은 인물 1위,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1위의 타이틀을 거머쥔 그는 바로 언론인 손석희이다. 손석희는 이 어지러운 세상 위에 똑바로 서기 위한 모든 이들의 롤모델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사실 나는 손석희 아나운서라는 기억 외에 그에 대해 말끔하고 말 잘하는 사람 정도의 기억밖에는 가진 것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라디오를 듣게 됐다. “자꾸만 헛소리를 해대는 일본을 향해 도대체 우리들이 언제까지 이런 자들의 발언을 들어야 하는 것이냐? 여기서 자는 놈자(者)이다”라며 멋진 비판을 하는 그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 이 일은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가 될 만큼 큰 이슈였고, 그의 강단을 느껴 볼 수 있는 대목 이었다.

그때 아 저 사람 정말 제대로 된 언론인이다. 물론 언론이란 흔들림 없이 중계자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임에 틀림없지만 약자와 자국의 입장을 제대로 대변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언론인이 아닐까 라는 생각에 그의 이야기에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 내게 <손석희 스타일>이란 책은 이미 굳어버릴 만큼 굳어버린 나의 이미지를 쇄신할 수 있는 좋은 지침서가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손석희에게 열광한다. 적어도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에게 감탄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좋아하는 손석희의 모습은 과연 무엇일까? 손석희의 흰 피부? 그의 머리스타일? 아니면 그의 목소리? 것도 아니면 그의 패션 감각? 아마 모두 아닐 것이다. 내가 ‘이 책 제목 참 잘 지었다’라고 느낀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우리는 손석희가 가지고 있는 외모, 학벌과 이력에 열광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그가 가지고 있는 그의 스타일에 열광하는 것이다.

손석희 스타일 안에는 화려한 수사도 없고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반짝 반짝한 처세도 없다. 사람의 마음을 빼앗는 영악한 유혹도 없고 성공과 부를 보장하는 약속이나 기대도 없다. 단 하나, 손석희 스타일 안에는 인생의 원칙과 소신을 지켜나가는 ‘철학’이 있다. 복잡하고 난해한 문법을 가진 철학이 아니라 언제나 사람 사이의 참된 소통을 위한 소박한 철학이 손석희 스타일을 롱런에 롱런을 거듭하는, 우리시대의 가장 매력적인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p. 6)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우리의 인생에는 임계치가 존재한다. 임계치란 물이 섭씨 99도에서 100도로 넘어가는 어느 찰나의 끓는 순간을 말한다. 우리 인생에 성공 여부는 이 임계치를 뛰어 넘었느냐의 성공과 실패 여부에 달려 있다. 이 임계치는 보다 쉬운 말로 아마 끈기와 인내일 것이다. 나는 항상 뒷심이 부족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나의 초반 스피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위력적이다. 물론 달리기는 초반스피드부터 형편없다. 하지만 나의 끈기와 인내는 임계치 근처도 가지 못한 채 주저 않아 버리고 만다. 공부건 운동이건 이제 조금만 더하면 넘어갈 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조금만 더’가 되지 않는 인간유형이다. 책은 이 임계치에 중요성에 대해서 거듭 강조하고 있다. 

“1% 다른 임계치가 성공과 실패를 가늠한다. 성공과 실패는 99%까지는 같은 길을 걷는다. 하지만 결정적인 마지막 1%가 서로 전혀 다른 인생으로 우리를 이끌어 갈 것이다” (p. 4)

이 결정적인 1%의 장벽을 넘어서야지만 우리는 성공의 길에 한발짝 더 다가갈 수 있게 된다. 손석희, 그는 모든 일에 임계치를 뛰어넘는 끈기와 인내의 소유자 이다.

그는 스스로를 지각인생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모든 인생의 경로가 남들보다 3~4년가량 늦다. 대학진학, 입사, 결혼 등이 그랬고, 40살에 늦은 나이에 새로운 공부에 도전하는 그의 과감성 또한 그랬다. 손석희는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라는 말을 몸소 실천한 사람이다.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남들의 고민을 해결해주는 것처럼 말로 하기란 참 쉬운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몸소 실천 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그는 남들의 시선과 나이 듦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고 시간을 역행했다. 그는 결코 본인이 정해 놓은 틀에 맞지 않는 광고로 수익을 내는 일을 하지 않았으며, 시청자가 준 영향력과 권한을 남용하지 않았으며, 또한 남에게 엄격한 사람이 아닌 그 자신에게 엄격한 사람으로 살아왔다.

어쩌면 그의 모습은 이시대가 생각하는 바보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스타일은 원칙과 소신을 지키며 살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스타일이며, 진정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스타일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이코이코'님은?

제가 처음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그저 욕심이 많아서 입니다. 다른 사람보다 많이 알고, 모르는 게 없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는 단순한 생각에서였습니다.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기에 충분한 위력을 가지고 있듯 제가 만난 수많은 책들은 저의 어리석음을 꼬집었고, 어느덧 책은 제 마음의 안식처이자 피난처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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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앞 새벽 세시: 감성과 자본의 격한 충돌의 시공간

 

성기완, <홍대 앞 새벽 세 시>, 사문난적, 2009


홍대 앞 새벽 세 시. 나에게도 홍대 앞 새벽 세 시가 있었다. 동행이 있으면 음악이 크게 나오는 맥주집에 있었고, 동행이 집에 가고 나면 홀로 피씨방을 향했다. 5만원에 가까운 택시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언젠가 소녀시대의 ‘Gee’를 무한 재생시켜 놓고 첫차를 기다린 적이 있다. 출근하는 사람들을 사이를 역주행하는 심신이 지친 1인. 출근하는 사람들과, 둘 다 피곤한 눈빛이었지만 뭔가 다른, 눈을 마주치는 것은 언제나 낯설었다. 홍대 앞 새벽 세 시는 그렇게 나를 낯설게 했다. 생각이 여기까지 머물자, 시인이자 밴드 ‘3호선버터플라이’의 기타리스트 성기완의 <홍대 앞 새벽 세 시>가 궁금해졌다.

‘3호선버터플라이’의 기타리스트

그는 기타리스트이다. 1집 앨범 “Self-Titled Obsession”을 2000년에 발표했으니, 훨씬 전부터 홍대 앞을 누볐을 게다. 그에게 ‘누비다’는 표현이 적절할까. 경제적 부는 모르겠지만 기타 하나 등에 매고 거침없이 걸었을 테니, 그리 나쁜 표현은 아니겠다. 여기엔 그가 만난 동료 뮤지션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크라잉 넛, 달파란, 황신혜 밴드, 서울전자음악단, 장기하와 얼굴들 등은 지난 10년 동안 각자 다른 흔적을 남긴 자유로운 영혼들. 그는 이들과 담소를 나누며 홍대 인디문화의 기원을 찾아간다.

책에서 인디 뮤지션들의 배고픈 이야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배고프지 않은 인디 뮤지션이 어디 있겠냐마는 중요한 건 어디까지나 음악이다. 그는 술자리에서의 비화를 들려주며 ‘이렇게 힘들게, 치열하게 살았어’라고 말하기보다 음악에 집중해 그들의 매력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홍대 문화나 인디음악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누구나 귀 기울일 만하다. 나 또한 스카 밴드 킹스턴 루디스카의 이야기가 나올 때 그들의 음악을 듣는 것처럼 신이 났으니까.

또 음악에 대한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게는 도움이 될 책이다. 음악에 대한 글쓰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눈에 보이는 텍스트가 있는 것도 아니고, 청자에 따라 느껴지는 정서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음악보다 뮤지션의 히스토리나 주변에 집중하는 글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그는 음악을 이야기한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음악에 대해서 말할 때도 그는 각종 루머를 상기하지 않는다. 그저 밴드의 사운드, 가사를 언급하며 ‘찌질이 세대의 시대적 송가’라 일컫는다. 열정 혹은 쓸쓸한 담배연기 가득한 홍대 무대에서 연주하고 음악을 듣는 그의 모습이 상상된다. 그리고….

시인: 시공을 노래하는 사람

지금까지 이야기를 보면 음악이나 인디문화를 좋아하지 않는 이들은 이 책에 별 매력을 느끼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할 게 있다. 그는 시인이다. 시인은 가시적 공간을 상상의 공간으로 치환하는 ‘재주’를 가진 자들이다. 때문에 시인은 사물을 보는 깊고 예리한 시선을 갖고 있다. 그도 마찬가지다. 그는 홍대 앞 새벽 세 시에 목격한 것들을 낯설게 바라보고, 이야기를 한다. 흥분이 절정에 다른 이들, 술 취해 비틀 거리는 이들, 외로움에 치를 떠는 이들, 지독히 혼란하거나 어떤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이들이 공존하는 홍대 앞 새벽 세 시. 평범할 리 없다.

그가 주목한 공간은 편의점이다. 편의점은 ‘하루 종일 물건들의 잠을 재우지 않는, 물건들의 유곽’이며, ‘불빛을 스물네 시간 켜놓고 사람들의 욕망이 자기 논리 밖으로 비어져나가는 것을 철저하게 감시하고 있는’ 공간이다. 그는 늦은 밤, 이른 새벽 편의점을 지나며 이 공간의 지령을 듣는다. “단 1초라도 불빛을 끄지 말고 욕망을 관리하라.”(p. 154) ‘아름다움, 현명함, 부드러움, 강함, 심지어 참선까지도 관리 당하는 세상’에서 편의점은 ‘인간의 일회용품의 최말단 소비에 관한 욕망을 자기 밑으로 회수’한다.

허기를 채우기 위해 컵라면을 먹고, 순간의 상쾌함을 체험키 위해 콜라를 마시고, 사랑을 하기 위해 콘돔을 산다. 쉽게 소비할 수 있기에 우리는 그 1차적 의미를 묻지 않는다. 컵라면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콜라는 어디서 왔는지, 콘돔은 ‘왜’ 필요한지 중요치 않다. 물론 편의점에서 이 많은 생각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생기(生氣)를 강요하는 형광등 불빛, 바코드 문신을 하고 발가벗겨지기만을 기다리는 물건들, 그리고 내 몸짓을 지켜보는 감시 카메라까지.

“너는 물건이다. 니가 물건들을 고르는 것 같지만 실은 물건들이 너를 고르는 것이다. 니가 창녀를 고르는 줄 알지만 그건 오해다. 실은 창녀의 강한 생활의 눈빛이 널더러 날 고르라, 고 해 너는 그 창녀를 고르는 것이다. 물건들이 너를 본다. 물건은 너를 택하여, 예쁜 일회용 비닐 옷을 던지고 우물우물 흉하게 씹히거나 후루룩 더럽게 마셔지고 똑 분질러지며 북 찢어지고 휘리릭 넘겨진 다음 죽어버린다.” (p. 24)

음악과 편의점이 만나는 시공간이 홍대 앞 새벽 세 시다. 인간의 뜨거운 숨과 자본의 욕망이 격하게 충돌하는 곳. 책을 읽다가 핑크 플로이드의 ‘더 월’ 뮤직비디오가 떠올랐다. 편의점에서 계산을 위해 줄을 선 모습은 ‘인간 소시지’가 되기 위해 걸어가는 사람들과 섬뜩할 정도로 닮아있다. 모든 책이 마찬가지겠지만, <홍대 앞 새벽 세 시>는 천천히 읽는 게 좋다. 일을 하지 않아도, 바삐 움직이지 않아도 누가 뭐라 할 수 없는 시간 새벽 세시. 모든 것이 빠른 지금, 길게 늘어선 줄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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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우리 사이가 이렇게 됐지 - 대인관계가 미숙한 사람들에게

 

이성호, <어쩌다 우리 사이가 이렇게 됐지>, 말글빛냄, 2009


서재에서 이 책이 한눈에 끌렸던 이유는 직설적인 책 이름 때문이었던 것 같다. '어쩌다 우리 사이가 이렇게 됐지'는 나의 고민(?)이었고, 나의 탄식(!)이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미숙한 나의 대인관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았다고 한다면 그는 관계에 성공한 것' 이라고 말한다. 가족, 친구, 친인척, 학교, 직장동료 등 우리가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삶은 누구에게나 관계로 가득 차 있다. 신이 아니라면 모를까, 이 세상에 스스로 홀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나' 라는 존재는 바로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만물에 의해 규정되며, 그것이 부정적으로 작용하든 긍정적이든 상호 의존적이다. 그 모든 관계들이 곧 인간의 삶을 이루는 실체인 것이다.

애초부터 우리는 혼자가 아니었고 것이고, 나 홀로 살 수 있는 세상도 분명 아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모르거나, 알면서도 간과한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느끼는 피곤함과 상처들로 인해 저마다 마음의 장벽을 높이 쌓아올리고 있다. '혼자만의 세계' 속에 자기 자신을 가두고, 스스로 아파한다. 그리고 탄식한다. "부모님과의 관계, 친구들과의 관계, 애인과의 관계, 내 주변의 모든 관계들이 어쩌다가 이렇게 됐지?"

이기주의가 만연하고 각박해진 물질만능주의 세상 속에서, 인간관계에서 소외되거나 염증이 난 사람들은 간혹 하나님과 같은 절대자를 찾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 역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필요한 것 아닐까? 성경에는 분명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쓰여 있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서, 인간관계는 필요조건이다. 오히려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라고 쓰여 있듯이, 신앙은 인간의 보편적 능력을 뛰어넘는 높은 도덕적 수준을 요구하고 있다.

'너와 나, 우리 사이의 흐트러지고, 약해지고, 끊어져 있는 인연의 끈, 어떻게 다시 엮을 수 있을까?'

책 뒷면에 보니 이렇게 쓰여 있다. '세상에서 통째로 왕따 당하고 있다는 절망과 자괴감에 빠져 있는 사람들',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 힘들고 두렵고 그래서 스스로 담을 쌓는 사람들' 을 위한 '이성호 교수의 긴급 처방과 진단'. 이처럼 사람들과의 관계를 힘들어거나, 실패한 인간관계 속에 가슴 아파하는 이들이 보아도 참 좋은 책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히 '어떻게 하면 인간관계를 잘 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자기계발서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연세대 교육학과 교수가 쓴 이 책은, 그보다 한 발짝 더 나아가 원인과, 진단, 처방까지 많은 부분, 교육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었다.

오늘날을 소위 네트워킹 시대라고도 말한다. 사회가 다원화되고 개인, 이기주의가 강해지지만, 역설적으로 원활한 인간관계와 소통의 필요성은 매우 중요해진다. 그러나 많은 젊은이들이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려워한다. 저자는 요즘 젊은이들이 갖고 있는 인간관계의 미숙함을 '관계적 사고'의 부족에서 진단하고 있다. 이 '관계적 사고'는 유아~청소년기의 매우 중요한 발달과업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중요한 '관계적 사고 능력'이 요즘의 젊은 사람들에게는 왜 부족한 것일까? 분열화되고 다원화된 사회적 환경변화 속에서 자란 성장배경 등 다양한 원인이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저자는 무엇보다도, 요즘 소위 말하는 젊은 X세대 학부모들의 그릇된 자녀양육에 문제를 제기하며, 이 점을 중요하게 다룬다. 따라서 현재 자녀를 키우고 있는 학부모들은 말할 것도 없다. 사실 아이가 있든 없든 관계 없이, 요즘의 핵가족 시대에 키워져 '관계적 사고'가 부족하고,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젊은이들은 한번쯤 꼭 읽어보아야 할 필독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부모-자식간에, 친구나 연인간에, 부부간에, 살아오면서 누구나 겪을 법한 일들을, 일화나 상황극을 통해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거의 모든 내용을 공감할 수 있었고, 내용이 난해하거나 어려운 부분은 전혀 없었다. 특히 요즘에는 아이들에 대한 부모의 과도한 보호와 관심이 도를 넘고 있다. 부모는 그것을 두고 '자식 잘 되게 하려고', '사랑해서' 라고 말하지만, 정작 본인의 문제가 무엇인지는 모른다. 이처럼 아이들에 대한 잘못된 관심과 과보호를 꼬집는 상황극이나 일화도 많았다. '우리 아이는 어리기 때문에 부모인 내가 당연히 해줘야 되고, 간섭해야 되고, 보호해야 된다는 생각!' 그러한 부모들이 자녀의 관계적 사고, 창의적 사고를 어떻게 죽이는지,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커서 머리만 크고 가슴은 텅 비어있을 수 있다는 사실, 대인관계가 어떻게 어려워 질 수 있는지를 재미있게, 통쾌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독자로 태어나, 이 책에서 따지면 Y에서 N세대의 중간쯤 되는 나 역시, 얼핏 이 책에서 제기한 관계적 사고 결핍의 피해자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해자라고 한다면 좀 과도한 생각일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리의 성장 배경을 되돌아 볼 수 있었다는데 의미가 있었고, 나 역시 부모의 입장이 되었을 때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봤다. 그만큼 인간관계에 있어서 '관계적 사고'는 중요하고, 자라나는 유아-청소년시절에는 더욱 그러하다.

관계는 한번 정해지면(만들어지면) 그 상태로 영원히 고착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관계는 두 사람의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새롭게 변화시키고 새로운 모습으로 창조해나가는 것이어야 한다. (79 Page)

이 책은 비단 부모-자식간의 관계가 아니더라도, 부부, 연인, 친구 등 대인 관계에서 필요한 내용들을 많이 다루고 있었다. 베려, 인내, 감사, 공감대 형성의 중요성과 지속적인 이데올로기 계발, 희생, 자아존중, 거리감, 여유 등과 같은 각론을 다양한 사양한 사례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또한 자녀교육시 '관계적 사고력'의 증진을 위해 필요한 여러 가지 내용들도 포함되어 있다. 관계는 얼마든지 새롭게 변화시키고 새로운 모습으로 창조해나가는 것이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처럼, 이 책에서 배운 것들을 우리의 삶 속에 깊이 적용한다면, 그 동안 힘들고, 어렵고, 밋밋했던 관계들도 새로운 모습으로 창조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오늘의 책을 리뷰한 '룔'님은?
책에 대해 할 말이 많진 않다. 그저 필요한 책을 찾아 조금씩 읽으려 할 뿐이다. 독서광이 되려고 하기 보다는 책과 담을 쌓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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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꽃이 돌아왔다 - 시와 자연과 나의 교감

 

김선태, <살구꽃이 돌아왔다>, 창비, 2009


살구꽃이 돌아왔다. 꽃은 어디로 갔길래 다시 돌아왔을까.

“죽으면 살구나무 아래 묻어달라던 계집아이는 이내 파리한 얼굴로 병마를 따라갔다 살구꽃 이파리들이 혈담처럼 지던 봄날이었다 살구꽃 필 때 낳았다 하여 행화, 그래서인지 유독 살구꽃을 좋아했던 아이, 행화야 부르면 이름 대신 살구꽃을 내밀며 환히 웃던 아이는 결국 다시 살구나무 아래로 돌아갔다 (…) 해마다 어김없이 살구꽃이 필 때면 마을 사람들은 언덕을 바라보며 말했다. 행화가 돌아왔다고” (p. 19, ‘행화’)

김선태 시인의 <살구꽃이 돌아왔다>는 이렇듯 삶과 죽음, 정(靜)과 동(動)의 교차에서 시작된다. “삶과 죽음이 한통속”임을 목격한 티베트 여인의 장례식(‘조장’), 벌새의 움직임 속에서 발견한 “꽃과 새가 서로의 몸과 마음을 황홀하게 드나드는 저 눈부신 교감”(‘벌새’)은 세상 만물이 둘이 아닌 하나임을 알려준다. 이처럼 시인은 세상과 자연을 응시하며 이치(理致)를 하나둘 체득한다. 

시인의 눈은 다시 세상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눈은 먼 곳으로 달려가지 않는다. 시인이 바라본 것은 ‘굴곡진 해안선’, ‘가난한 선원들이 모여사는 목포 은금동’, ‘쌀 한톨 나지 않는 서해 어느 섬마을’이다. 물론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혹은 지인들과 소주 한 잔 비우기 위해 찾은 횟집도 시인의 말 놀이터다. “살이 귀하던 시절, 죽기 전 흰쌀밥 한 그릇 먹어보길 소원한 아비에게 대신 지어올려 효도했다는 쭈꾸미 쌀밥”(‘쭈꾸미 쌀밥’) “저 화사한 꽃잎 한점씩 따먹으면 / 입안 가득 싱싱한 맛 다디단 맛 / 그러나 뼈만 남은 꽃받침 보면 / 왠지 마음도 쓰린 // 숭어회꽃이다.”(‘숭어회꽃’)

시인과 말, 사유놀이를 하다 보면 ‘관능적인 저릿함’을 느낄 수 있다. ‘개불’, ‘조개 야담’ 시리즈, ‘관음’ 시리즈가 그 대표적인 예다. 

“삶을 때 우러나는 뽀얗고 시원한 국물과 담백하고도 쫄깃한 육질은 그만이지요. 게다가 벌어진 가랑이 사이로 그러나는 발그레한 명기(名器)와 예봉(銳鋒)에 터까지 수북하게 돋아 있으니 뭍 사내들이 군침을 흘릴 수밖에요.” (p. 67, ‘조개 야담 1-홍합’) 

“인적 드문 무더운 여름밤 / 홀딱 벗고 섬진강에서 낚시를 하다, 얕은 물속에 드러누워 꼿꼿하게 낚싯대를 세우고 유유자적하다, (…) 그때 마침 물고기까지 물고 늘어져선 낚싯대가 팽팽하게 휘어지며 끄덕, / 끄덕거리던 일이여” (p. 74, ‘관음3’)

어물전 한 편에서 벌어진 술판에서나 나올 법한 농이다. 하지만 지천명(知天命)의 사내가 이런 농 한 번 못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많은 ‘나’(독자) 앞에서 노래하고, 한 판 웃자는 시인은 순수하고, 건강하다. 또 ‘아마추어 낚시꾼 김씨’를 통해 들려주는 시인의 유머는 유쾌하다.

“감성돔 30쎈티미터였다 야호, 1등이다 감격에 겨운 김씨, / 은빛 감성돔을 두 손에 움켜쥐고 펄쩍펄쩍 뛰는데, / 이게 웬일, 아까부터 나뭇가지에 앉아 있던 물수리 한 마리가 / 쏜살같이 날아와 홱, 낚아채 사라지는 것 아닌가, 저런 // 1등을 도둑맞고 졸지에 꼴등이 된 김씨, / 한동안 우두커니 선 채로 허공만 바라보며 쓴 웃음을 짓더니 / “허허, 오늘 낚시도 허사로구만” / “오늘 1등은 허사도 물수리야” / 글쎄, 이렇게 투덜거리는 것이었다” (p. 86, ‘낚시 이야기1’)

시인은 서해 바다를 이리 저리 거닐며 생명의 경이로움을 노래하기도 하고, 짓궂은 상상력으로 농을 던지기도 한다. 그런데 시인과의 여행은 가볍지도, 그리 험하지 않다. 시인의 시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면 시인이 어디에 앉아(혹은 서) 무엇을 응시하고 있는지 대충 짐작이 간다. 시인의 시선과 ‘나’의 시선이 일치에서 오는 짜릿함은 시인이 ‘나’의 손목을 잡고 서해 바다 어딘가를 여행하는 기분이다. 언젠가 시인과 소주 한 잔 들이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이는 아마 시인과 세상, 자연이 교감하는 방식이 그런 터이다. 삶과 죽음을 관통한 시인이 주저할 게 무엇이랴. 세상, 자연 - 시인- ‘나’의 교감은 이렇게 완성된다.

달빛 쟁쟁한 밤
천관산 정상 너럭바위에
너를 눕히고
혼신을 다해
절정에 도달하는
순간,

달빛과 별빛
풀잎이며 나뭇잎
다도해 잔물결까지도
바르르
몸을 떤다

문득
삼라만상이
저토록 짜릿짜릿하다
(p. 76,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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