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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12.12 [서점에서 만난 사람] 그 말에 닿고 싶은 마음 - 《부다페스트》의 옮긴이 루시드폴
  2. 2013.02.28 《무국적 요리》 - 사람은 다 작은 사람
  3. 2013.02.25 [서점에서 만난 사람] 새봄을 맞듯 나를 읽어 주세요 - 《무국적 요리》의 소설가 루시드폴
  4. 2013.02.06 [요즘 뭐 읽니?] 루시드폴, 《무국적 요리》

[서점에서 만난 사람] 그 말에 닿고 싶은 마음 - 《부다페스트》의 옮긴이 루시드폴

 

 

편집·정리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희진
사진 제공 | 안테나뮤직

 

Chico Buarque. 한글로는 ‘시쿠 부아르키’라고 표기합니다. 그러나 저로선 저 문자를 포르투갈어로 어떻게 소리 내는지 알지 못합니다. 분명 우리말이 소리 나듯 시.쿠.부.아.르.키는 아닐 것 같은데 말이죠. 낯선 말이고, 낯선 사람입니다. 모국인 브라질에서 시쿠 부아르키는 대중음악계의 전설적 거장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로 이름이 높다고 하는데요. 지금의 우리에게는 그저 그가 살고 있는 브라질이 그렇고, 그가 쓰는 말과 글이 그렇듯 너무 멀게만 느껴지는 게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때의 언어란 사람 사이를 잇는 고마운 매개이기보다 그 사이를 찢고 가르는 야속한 “장벽”일 텐데요. 그러므로 나에게서 너를, 그리고 세계를 저만치로 떨어뜨려놓는, “오직 하나, 건드릴 수 없는, 옮길 수 없는” 말 앞에서 우리는, 누가 하나 예외일 것 없이 고독한 “이방인”으로 서있을 겁니다. 아무리 낯설지라도 혹은 이리도 낯설기 때문에 더 간절히, 그 말에 닿기를, 그 안에서 사람이 보이길, 또 그 이의 삶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길 바라면서 말이죠. 시쿠 부아르키의 소설 《부다페스트》를 우리말로 옮긴 루시드폴이 또한 그러했듯이.

 

누구나 책에 대한 고유의 기억을 갖게 되는데요. 독자로서 《부다페스트》를 처음 접했을 때를 회고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이 소설을 읽게 되셨는지요?

 

루시드폴 |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2006년 아니면 7년이에요. 제가 스위스에 있을 때였죠. 그때 프랑스 리옹에 자주 왔다 갔다 할 일이 있었어요. 주로 기차로 가서 새벽 버스로 오는 편이었는데 2시간 반 정도 걸렸어요. 《부다페스트》는 그때 두 번 정도 읽었던 것 같아요. 원서도 리옹에서 샀던 걸로 기억하고요. 35유로인가, 되게 비쌌어요. (웃음)

 

제가 포르투갈어에 능통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원서로 보다가 막히면 영문판도 보고 하느라 시간이 좀 많이 걸렸던 것 같아요. 소설이 꼬여있고 어려워서 그 뜻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도 힘들었고요.

 

시쿠 부아르키의 소설은 《부다페스트》가 처음이신 건가요?

 

루시드폴 | 네. 《벤자민》은 조금 읽다가 놔버렸어요. 앞서 말씀드렸지만 제가 소설책을 많이 읽는 편도 아니고 아무튼 외국어 책이잖아요. (일동 웃음) 머리가 너무 아프고 고생하는 기분이 드는 거죠. 못 읽겠더라고요.

 

《부다페스트》의 어떤 점이 가장 매력적으로 느껴지셨나요?

 

루시드폴 | ‘시쿠 부아르키’라는 사람의 책이라는 점이요. 거꾸로 이야기하면 시쿠 부아르키의 책이 아니었다면 전 매력을 못 느꼈을 것 같아요. 마음이 안 열렸을 것 같아요. 그 사람의 음악과 대략적인 인생, 공연하는 모습, 이런 것들을 제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편견이 강하게 작용했다고 봐요.

 

시쿠 부아르키가 브라질에서는 굉장히 유명한 국민가수라고 하는데 아직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의 음악을 소개해주신다면요?

 

루시드폴 | 시쿠 부아르키가 아마 44년생일 거예요. 제가 그 세대의 뮤지션들을 보면서 하는 생각이, ‘한 나라의 문화가 확 꽃피는 시기라는 게 있나 보다’ 하는 거예요. 그건 한 두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게 아니라 굉장히 재능 있는 사람들이 동시대에 비슷비슷하게 나와서 서로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하나의 영역을 만들어가는 건데, 그 시대에 질베르토 질(Gilberto Gil)이나 카이타누 벨로조(Caetano Veloso), 시쿠 부아르키(Chico Buarque), 갈 코스타(Gal Costa) 등 너무 많은 사람들이 출현을 한 거죠. 마침 브라질 정국도 굉장히 어수선했고 그 사람들이 문화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탄압을 받으면서 예술적으로 더 부흥하기도 했고요.

 

당시의 많은 사람들이 그랬겠지만 시쿠 부아르키도 보사노바의 영향을 받고 시작을 했다고 해요. 50년대 말, 60년대 이때 보사노바가 빵 하고 터지면서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Antonio Carlos Jobim), 비니키우스 데 모라레스(Vinicius de Moraes), 조앙 질베르토(Jo?o Gilberto), 이런 사람들이 거의 혁명을 일으켰어요. 보사노바라는 혁명을. 그걸 십대, 이십대 때 듣고 자랐던 카이타누 벨로조나 시쿠 부아르키 같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고 음악을 시작한 거죠. 하지만 가는 길은 많이 달랐어요.

 

보사노바가 한참 떴다가 슬슬 내리막길을 걸기 시작했을 때 일부 삼비스타들이 ‘저건 너무 뺀질뺀질한 음악이다, 중산층들이 적당히 기분 좋게 해변에서 커피 마시면서 듣기 좋은 음악이지 우리 사는 거랑 무슨 관계가 있느냐’ 그렇게 생각하는 류가 있었어요. 나라 레옹(Nara Le?o) 같은 사람도 그랬고. 이런 흐름에 강경하게 동조하는 입장이었던 게 카이타누 벨로조나 질베르토 질, 갈 코스타였는데 이들은 출신이 리우도 아니고 보통 바이아 쪽이었어요. 그리고 이들이 ‘우리, 센 음악 좀 해보자’ 하면서 트로피칼리스모(Tropicalismo, 열대주의)*로 확 움직여버려요. 반면에 시쿠 부아르키는 보사노바를 부정하진 않았지만 그의 초반 음악부터 그 기본은 늘 삼바였고 그걸 배경으로 사람들 이야기를 계속 해왔거든요. 그래서 브라질 사람들이 더 좋아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카이타누 벨로조의 최근 음반을 들어보면 굉장히 전위적인 락을 하고 있는데 시쿠 부아르키는 예전의 그 기조대로 삼바를 기본으로 한 음악들을 쭉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엠뻬베(MPB, 브라질 대중음악)의 범주에 있긴 하지만 장르적인 혁신이나 눈에 띄는 큰 변화보다는 그냥 자기자리에서 묵묵하게 음악을 해왔다는 거죠.

 

참고로 저는 동의하지 않지만 일부 호사가들에 따르면 이 뮤지션들이 브라질의 삼바학교랑 연계되어 있는데, 말이 학교지 거의 ‘파’를 형성하고 있다고 해요. 시크 부아르키나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은 망게이라(manguira) 에스꼴라(escolar, 학교)랑 밀접하고요. 2월 달에 리우에서 삼바 축제를 할 때 열 몇 개 되는 삼바학교에서 해마다 테마를 정해 코스튬(costume)을 하고 노래를 만들어서 행진을 하거든요. 그걸로 우승팀을 가리는데 98년 테마가 시쿠 부아르키고 92년이 조빔이었어요. 조빔은 1등을 못했는데 시쿠 부아르키가 테마일 때-“시쿠 부아르키 데 망게이라(chico buarque da mangueira)”, 망게이라는 시쿠 부아르키다.-는 1등을 했어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그거 봐라, 시쿠 부아르키를 더 좋아하지 않냐’ 말하기도 했대요. 지금도 브라질 여자들이 가장 결혼하고 싶어하는 남자는 시쿠 부아르키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고요.

 

 

* 편집자 주: 60년대 말, 1968년 파리 학생 운동 주동자인 Daniel Cohn-Bendit, el Danny el Rojo. 그리고 Bob Dylan, Jimmi Hendrix, Janis Joplin, los Beatles, Santana ,los Rolling Stones이 브라질 음악에 영향을 미쳤다. 기타와 banquitos는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었다. 세계 시장에 내놓기 위해서는 당시 외국에서 사용하던 악기를 사용해야 했다. 그로 인해 미국 등지의 영향을 받은 악기인 기타, 베이스, 전자 오르건, 드럼 등이 전해졌다. 열대주의는 바로 이러한 영향에 반응한 브라질 음악이다. 그 특징은 체계적 이론이 뒷받침된 퇴폐, 비형식, 좋지 못한 취향의 배제, 당시 관습에 대한 혁명 등이다. (자료 출처: 세르지오 바르보사 세라, ‘브라질 대중음악 개관: 기원에서부터 현재까지)

 

《부다페스트》를 만나기 전에 이미 음악가로서의 시쿠 부아르키를 좋아하신 건데요. 소설을 읽으면서 그 안에서 이미 알고 있는 그 사람이 보였을 수도 혹은 이제까지 알지 못하던 그 사람이 보였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어떠신가요?

 

루시드폴 | 소설이라는 게 이런 건가, 라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소설에는 조예가 별로 없어서 한 소설을 이렇게 열심히 읽어본 적이 없었던 거예요. 시쿠 부아르키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도 했지만 ‘좋은 소설이라는 건 이런 건가’ 싶었던 것 같아요. 제가 워낙에 (비교해 볼만한 소설의) 샘플 수가 없으니까. (웃음) 그래서 저는 음악하는 사람으로서의 시쿠 부아르키와 글 쓰는 시쿠 부아르키가 조금 다르게 느껴져요.

 

‘시쿠 부아르키는 브라질 국민에게 가장 사랑받고 존경받는 음악가이자 작가이다…….’ 이런 문장으로 옮긴이의 말을 시작하려고도 했다. 하지만 솔직히 털어놓자면 자신이 없다. 나는 그의 소설과 그의 음악을 좋아하고 심지어 어정쩡한 그의 삼바춤까지도 좋아하는 그의 팬이다. 그런데 그가 이야기하고 노래하는 언어, 포르트갈어는 나의 모어가 아니기에 작품의 진수를 온전히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 솔직히 난 자신이 없는 것이다.

 

(…) 마치 소설 속에 등장한 시인 코치시 페렌츠의 삼행시처럼, 이방인들은 그 ‘오직 하나, 건드릴 수 없는, 옮길 수 없는’ 말의 장벽 앞에서 늘 속수무책이니까. (235-236쪽, 옮긴이의 말‘ 중에서)

 

‘옮긴이의 말’에도 썼지만 내가 시쿠 부아르키의 음악을 좋아한다는 건 어떤 의미였을까 생각해보면 자신이 없는 거예요.

 

예전에 브라질 친구들을 몇 번 만난 적이 있는데 제가 포르투갈어를 배우고 싶다는 얘기를 하니까 어떤 음악하는 친구는 “시쿠 부아르키 가사 보고 공부해! 그러면 돼지 뭐.” 하고, 또 미국에서 만났던 어떤 아가씨는 “시쿠 부아르키 가사는 우리도 잘 몰라. 무슨 뜻인지.”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브라질에서) 검열이 심할 때는 말장난처럼 언어유희적으로 말을 바꿔서 교묘하게 검열을 피해 가사를 썼는데 나중에 그걸 조어 해보면 ‘닥쳐’ 이런 내용이 되기도 하니까 심지어 지금 세대의 리우 사람들은 그 가사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거예요.

 

그 사람들이 그 정도인데 저는 어쩌면 그냥 그 사람의 이미지, 미디어를 통해 짤막짤막하게 알게 된 것들 혹은 내가 해석한 가사 내용, 목소리, 음악, 이런 것들이 어중간하게 뭉쳐져서 ‘나는 시쿠 부아르키 팬’이라고 하나보다 생각이 드니까, 이제는 좋아한다는 말도 못하겠는 거예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지금은, 그런 상태예요.

 

이 책이 본인에게 위안이고 쉼이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루시드폴 | 사실 저에게 《부다페스트》는 굉장히 복합적이에요. (위안이고 쉼이었던 반면에) 좌절이기도 하고요.

 

제가 다른 언어에 대한 관심이 많은 사람이긴 한데 언어적으로 천부적인 감각이 있는지는 물음표에요. 욕심은 많아서 중학교 때 중국어도 배우고 일본어도 배웠는데 실제로 말을 빨리빨리 습득하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책을 보면서 더 이상 다른 나라말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없어졌어요. 번역하면서 더요. 작년까지만 해도 일본어를 좀 더 해야겠다는 생각에 듣기도 하고 그랬는데 이제는 그냥 놔버렸어요.

 

그러니까 글은 모르겠지만 말은 모어가 아니면, 내가 그 나라에서 평생을 완전히 섞여서 살지 않는 한 허무하게도 무의미하구나, 생각한 거죠. 관광 가서 몇 마디를 건네고 기본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는 있겠지만 말을 배운다는 건 정말 만만한 일이 아니구나, 하는 좌절 같은 게 있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모어가 아니면 그 말의 뜻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말을 몰라도 알아듣는 경우가 있는데요. ‘크리슈카’와의 첫만남에서 헝가리어를 모르는 ‘주제 코스타’가 그녀의 헝가리어를 알아듣는 것처럼요. ‘옮긴이의 말’에서는 이를 언어가 아닌 가슴으로 받아들인다는 말로 부연해주셨는데요. 언어를 초월한 그런 가능성에 대한 경험이 있으신지요?

 

(…) 그런데, 마자르 말은 책으로 배우는 게 아니야, 그녀가 이렇게 말했을 때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문장이 완벽하게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포르투갈어, 아니면 영어, 아니면 심지어 루마니아어로 말한 걸까. 난 궁금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단 한 단어도 알아들을 수 없는 바로 그 헝가리어로 말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심의 여지도 없이 그녀는 확실히 말했다. 마자르 말은 책으로 배우는 게 아니야. 어쩌면 그녀는 언어를 노래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비록 이해는 못해도 귀로 주워들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이다. 어쩌면 나는 억양만으로 그녀가 하려는 말을 알아들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음악을 좀 아니까 가사를 추측하는 일이 쉬웠는지도 모른다. (79-80쪽)

 

루시드폴 | 저는 아닌데 저희 어머니요. 한국 아줌마들, 대단하시잖아요. (일동 웃음). 참고로 저희 어머니는 경남 사천 분이시고 외국어를 하나도 못하세요. 스위스 살 때 낮에 저는 학교를 가고 어머니는 집에서 음식을 해놓고는 하셨는데, 언젠가 한번은 갓김치를 담아놓으신 거예요. 어떻게 된 거냐고 여쭤보니까 시장가서 사셨대요. 말 한 마디도 못하는데. (웃음) 그리고 가족끼리 프랑스로 여행을 간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 무화과나무가 막 열려있었어요. 저희 어머니가 무화과나무에 대한 로망이 약간 있으신 것 같아요. 제가 기억하기로 무화과가 귀한 거였거든요. 그런 게 주렁주렁 달려 있으니까 어찌할 바를 모르시는 거예요. 저거 따야 하는데 하시면서요. 그런데 그쪽 사람들은 무화과가 흔해서 그런지 따지도 않고 그냥 놔두더라고요. 그걸 저희 어머니가 주인한테 어떻게 얘기를 하고 따오셔서는 옆집 사람들한테 나눠주고 계시더라고요. 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 다 통해요.

 

포르투갈어를 배우면서 《부다페스트》 원서를 번역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언어를 배우면서 번역한다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텐데요.

 

루시드폴 | 포르투갈어를 너무 배우고 싶었어요. 그래서 혼자 책 보고 문법 공부도 했는데 어휘 같은 게 부족함이 많았죠. 브라질까지 갈 수는 없으니까 포르투갈에 여행가서 말 조금 배우고, 스위스에도 포르투갈 사람들이 많이 살아서 그 사람들 만나면 통하든 안 통하든 얘기하고 그랬어요. 그런 열정이 활활 불타오를 때 덜컥 《부다페스트》 번역 계약을 했는데, 그 후에 생존권에 직결된 문제들이 너무 많았어요.

 

일단 논문 마무리해야 했고, 실험이 또 지지리도 안 됐거든요. (일동 웃음) 한국 와서는 음악하고 음반 내는 일로 정신없어서 번역은 계속 뒷전이었어요. 그 사이 편집 담당자가 여러 번 바뀌었고 심지어 한 분은 나가서 다른 출판사를 차렸고 거기서 제 소설책이 나왔죠. 문득문득 전화 오면 깜짝깜짝 놀라고 (일동 웃음) 항상 뭔가 마음에 짐처럼 있다가 ‘아, 이건 이렇게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작년에 좀 여유 있을 때 초벌 번역을 했다가 다시 ‘올해 더 이상은 미루면 안 되겠다’ 싶어, 많이 할 때는 하루에 열네 시간 정도 붙잡고 있었어요. 그렇게 거의 마무리될 무렵에 담당자한테 한 1년 만에 문자가 와서 ‘판권이 곧 마감된다고’ (일동 웃음) 너무 죄송하면서 그래도 할 말은 있는 상황이었던 거예요. 다행히. 그래서 안 그래도 연락드리려고 했다, 그랬죠. (일동 웃음)

 

우여곡절 끝에 번역을 마무리하셨고 이로써 《부다페스트》를 소개하는 안내자의 역할을 하게 되셨는데요. 한국어로 소설을 접하는 독자의 경우, 아무래도 원래의 글맛을 온전히 느끼기란 어려울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가의 글맛을 가까이에서 느끼고 싶다면 어떤 점에 집중해 읽으면 좋을까요?

 

루시드폴 | 잘은 모르지만 사실 우리나라에는 낭독문학이라는 게 그리 많지 않잖아요. 시도 그렇고, 듣는 문학은 거의 없고 주로 책을 통해 읽죠. 그런데 전체적으로 이 책은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읽어주는 톤이거든요. 문장 상으로는 짤막짤막하게 단문 위주로 깔끔하게 쓰여 있고 글로서 본다면 쉼표도 많고 중문도 많아요. 그래서 번역할 땐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도 많았는데 누군가가 읽어주는 책이다, 라고 가정하고 ‘주제 코스타’라는 사람의 이야기처럼 받아들이면 어떨까, 그렇게 읽어보시면 어떨까 해요.

 

또 소설에 약간 환상적인 것들이 있어요. 현실과 판타지가 모호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미야자와 겐지’의 《은하철도의 밤》 봤을 때랑 되게 비슷한 느낌을 받았어요. 동화이긴 하지만 미야자와 겐지의 책도 어디부터가 현실이고 어디부터가 판타지인지 좀 모호하잖아요.

 

소설 중간에 현실과 환상이 섞이기도 하고 특별히 대화에 따옴표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번역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루시드폴 | 너무 어려웠죠. 특히 포르투갈어는 주어가 많이 생략 되니까 동사로 유추를 해야 돼요. 그마저도 어떤 동사는 1인칭, 3인칭이 같이 움직이는 경우가 있어 쉽지 않았어요. 계속해서 많이 읽는 수밖에 없었죠.

 

포르투갈어로 쓰인 소설이긴 하지만 제목이 헝가리의 수도인 ‘부다페스트’고 주인공인 ‘주제 코스타’는 우연히 하룻밤 묵게 된 호텔에서 뉴스에 나오는 헝가리어를 듣고 매혹되는 경험을 합니다. 이후에 그는 부다페스트에서 헝가리어로 시를 쓰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도 하고요. 번역하시는 동안, 헝가리어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 다시 텔레비전을 켰다. 화장을 짙게 한 금발 여자가 자정 뉴스에 다시 나왔다. (…) 그걸 보는 나의 양어깨에도 잔뜩 힘이 들어갔다. 보이는 것들 때문은 아니었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한 단어라도 알아들으려 애쓰고 있었던 것이다. 단어? 나는 헝가리어 단어의 생김새나 구조나 형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단어가 어디서 시작되고 어디에서 끝나는지조차 구별하지 못하니 단어와 단어를 떼어놓을 수조차 없다. 마치 칼로 물 베는 일처럼 나에게 헝가리어는 단어로 구성된 말이 아니라 끊김 없이 이어지기만 하는 말로 들렸다. 멀리 어둠 속 비행기가 활주로에 내려앉는 정지된 장면이 남자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한 번 더 강조하는 듯했다. 이제 더 이상 비행기와 관련된 소식은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뉴스를 전하는 말의 신비로움에 그 수수께끼의 빛이 바래버린 것이다. (11-12쪽)

 

루시드폴 | <부다페스트> 영화를 봤어요. 어렵게 구해서 봤는데 ‘코스타’가 처음 ‘크리슈카’를 만나는 장면의 영상이 굉장히 아름다웠어요. 코스타에게 크리슈카가 “마자르 말은 책으로 배우는 게 아니다”라고 말하고 두 사람이 서점을 나와 호텔에 가기까지 씬이 쭉 이어지는데, 크리슈카가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가면서 끊임없이 말을 해요. 지붕, 애기, 물방울…… 코스타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따라가면서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더듬더듬 따라하고요. 그 장면이 전 너무 인상적이었는데, 뭔지는 모르겠지만 헝가리어가 음성학적으로 되게 듣기 좋았어요. 책으로는 헝가리어를 들을 수가 없으니까 기회가 되면 이 영화도 같이 개봉해서, 여기 나오는 몇몇 말들, 문장들이 귀로는 이렇게 들리는구나, 독자들도 같이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 플라자…… 플라자…… 플라자…… 요. 그리고 호텔로 가는 길에 나는 처음으로 소요학파 식으로 헝가리어 수업을 받았다. 거리, 인라인 스케이트, 물방울, 웅덩이, 밤, 피자 가게, 디스코클럽, 바, 회랑, 가게 진열장, 옷, 사진, 모서리, 시장, 사탕, 담배 가게, 비잔틴식 아치, 아르누보풍 발코니, 신고전주의풍 파사드, 동상, 광장, 현수교, 이끼 같은 초록빛, 가파른 길, 리셉션, 로비, 카페테리아, 생수, 그리고 크리슈카. (81쪽)

 

시쿠 부아르키가 의도적으로 선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헝가리어도 굉징히 독특한 언어잖아요. 슬라브계에 속하지도 않고, 일종의 고립어라고 볼 수 있으니까. 책에도 헝가리 바깥의 삶이란 없다, 라는 말이 나오고요.

 

소설의 이야기가 리우 데 자네이루와 부다페스트를 왔다 갔다 하면서 진행되는데요. 리우 데 자네이루와 부다페스트, 각각이 나오는 장면을 번역할 때 장소에 대한 묘사라든가, 특별히 신경 쓰신 점이 있으신가요?

 

루시드폴 | 부다페스트에 있는 장면을 어떻게, 리우 데 자네이루에 있는 장면을 어떻게, 이런 생각은 없었고 소설에 나오는 장소들을 직접 가보고 싶었어요. 리우 데 자네이루의 해변 보타보고나 코파카바나가 계속 나오는데, 그곳을 가서 보고 조금 더 생생하게 느끼면서 번역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죠. 리우 데 자네이루가 너무 멀면 부다페스트라도. 플라자 호텔도 찾아가보고 지하철도 한 번 타보고 싶었고요. 그런데 플라자 호텔은 5년 전까지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대요. 이름이 바뀌었다고요. 암튼, 가상의 공간이라도 더듬어서 찾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때 음반 작업이랑 맞물리면서 못 갔죠. 그래서 조금 아쉬워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언어 감수성’이라는 말을 생각하게 되는데요. 말의 뜻을 알기 때문에 좋은 것도 있지만 뜻은 모르고도 그 말의 울림 때문에 좋은 것도 있는 것 같습니다. 어느 나라 말이든 혹시 유독 좋아하는 단어가 있으신가요?

 

루시드폴 | 한 글자 단어를 좋아해요. 쉼, 흠, 숨, 틀…… 저한테는 순 한글로 된 한 글자 한 음절의 말이 굉장히 임팩트 있게 느껴져요. 선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었고요. 그래서 심지어는 5집 앨범을 구상할 때 앨범 타이틀 제목을 집, 모든 노래의 제목을 한 단어로 지을까 진지하게 생각했어요. 새, 움, 터 등 너무 많은 거예요. 이런 한 음절 우리말이 전 되게 좋아요.

 

그런가 하면 언어만큼이나 소설에서 중요하게 그려지는 게 ‘부다페스트’라는 장소입니다. 이 소설의 경우처럼, 음악이나 소설 작업 하시면서 장소 자체로부터 영감을 받기도 하시는지요.

 

루시드폴 | 저는 절대적이에요. 어디에 살고 있고, 어떤 집에 살고 있는지가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창작을 하는 입장에서, 내가 무슨 옷을 입고 무슨 차를 타고 무슨 음식을 먹는지 보다 더 중요한 게 환경이에요. 그래서 한국에 왔을 때도 이 동네(이 인터뷰의 장소이기도 했던 삼청동)에 살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게 우선은 좀 걸어 다닐 수 있고, 걸어 다녔을 땐 눈이 피로하지 않은 곳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영감을 준다기보다는 그냥 제 삶에 커다란 영향을 주고 그게 그대로 음악으로 연결되니까, 제게는 굉장히 중요하죠.

 

글을 쓰면서 음악을 하는 게 훨씬 편해지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부다페스트》를 번역하고 나서 개인적으로 영향을 받거나 변화를 겪은 게 있으신가요?

 

루시드폴 | 이 책을 번역하면서 ‘나도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작년에 소설책을 썼던 거, 그게 가장 큰 변화에요. 앞으로 또 소설을 쓰게 될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부다페스트》가 저한테 준 가장 큰 선물이라고도 생각하고요.

 

《부다페스트》 말고 따로 소개하고 싶은 시쿠 부아르키의 소설이 있으신가요?

 

루시드폴 | 없어요. (일동 웃음) 《부다페스트》가 끝이에요. 아마도. 글쎄요. 지금은 모르겠어요.

 

번역하시면서 많이 힘드셨다고 했는데 혹시 어떤 이유로든 마음을 움직이는 책이 있다면 《부다페스트》처럼 다른 나라 말을 우리말로 옮겨서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계획이 있으신가요?

 

루시드폴 | 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말은 포기했고 (웃음) 사어들은 공부만 열심히 하면 배울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예전에 산스크리트어를 한 3개월 배웠는데 그땐 학위 과정 중이라서 저도 너무 방만하게 공부했어요. 산스크리트어가 사어라고는 하지만 그 언어를 공부하는 사람들끼리는 모여서 세미나하고 토론할 때 실제로 말을 한다고도 해요. 또 라틴어도 5년 혹은 10년, 좀 길게 보고 공부해보고 싶어요. 사실 그 생각은 이미 몇 년 전에 했고 그래서 책도 사놓았어요. 번역하고 싶은 책도 있고요. 그런데 이건 평생의 일처럼, 언제 하게 될 지 또 얼마나 걸릴 지는 잘 모르겠어요.

 

소설을 많이 안 읽는다고는 하셨지만, 좋은 책을 받아들여서 번역을 하셨고 그 영향으로 소설을 쓰시기도 했는데요. 평소, 좋은 책을 고르는 기준이 따로 있으신가요?

 

루시드폴 | 작년에는 특히 신문 서평을 많이 읽었어요. 제가 모든 신문을 읽지는 않지만 집에서 보는 한겨레, 그리고 경향신문 서평도 좋아해요. 서평 보고 마음에 드는 책 있으면 메모해 놓았다가 서점가서 책 보고 결정해요. 그런데 10권 메모해 가면 1권 마음에 들랑말랑? 거의 10% 정도 남더라고요. (웃음) 그렇게 해서 사고 싶은 책 있으면 사고 아니면 그냥 돌아오죠.

 

한 번에 한 권씩만 고르신다고 들었는데, 최근에 선택된 책은 뭔가요?

 

루시드폴| 좀 부끄럽지만 최근에는 책을 많이 못 읽었어요. 마지막에 산 책이 귀농 관련 책이었어요. 농촌에서 뭐 먹고 살지, 얘기하는 책. (웃음) 제주도 여행을 갔다가 공항에 있는 서점에서 눈에 띄어 사서 읽었어요.

 

 

이번에 새 앨범하고 이 책 하고 거의 비슷한 시기에 나왔어요. 두 개 다 홍보하시느라 힘드셨을 것 같은데요.

 

루시드폴 | 아니, 안 힘들어요. (일동 웃음) 저, 앨범 홍보 끝났어요. 이제. (일동 웃음)

 

그럼 올해 직접 쓰신 소설도 나오고 번역하신 소설도 나오고 앨범도 나온 거잖아요. 앞으로도 이 세 가지를 병행하실 계획이 있나요?

 

루시드폴 | 모르겠어요. 음악은 지금처럼 계속 할 텐데 뭐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때그때 하고 싶은 걸 하려고요.

 

장편소설을 준비 중이시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언제쯤 만나볼 수 있을까요?

 

루시드폴 | (화들짝 놀라며) 소설이요? 쓰다가 접었어요. (일동 웃음) 지금 내년 계획을 머릿속에 세우고 있는데 변화가 굉장히 많을 것 같아요. 저의 신상의 변화, 그리고 제가 앞으로 음악을 하든 책을 쓰든, 방법상의 변화가 굉장히 많을 것 같아요.

 

책도 나오고 음반도 나왔으니 올해 계획하신 일들은 거의 다 이룬 셈인데 얼마 남지 않은 12월, 어떻게 보내실 계획인가요?

 

루시드폴 | 몸이 너무 안 좋아졌어요. 글 쓰는 분들은 계속 운동하고 관리를 하시던데, 제가 좀 심각하게 안 좋아졌어요. 목이랑 허리가. 살도 너무 많이 빠졌고요. 그래서 내년 봄 되기 전에 재활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잘 먹고 아무 생각 없이 운동하고 치료받아야겠다 싶어요. 내년 한 2월까지.

 

마지막으로 아직 《부다페스트》를 만나지 못한 독자 분들에게 추천사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루시드폴 | 사람이 웃긴 게요. 제 소설책 나왔을 땐 많이 사랑해주세요, 이런 거 못하겠더라고요. (일동 웃음) 그런데 이 책은 많이 팔렸으면 좋겠어요. 물론 저한테 인세가 더 들어오는 건 아니고요. (일동 웃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일단 시쿠 부아르키라는 사람이 조금 더 알려졌으면 싶어요. 누군가 이 소설을 보고 재미있어 했다면 이 사람이 하는 음악은 어떨까, 찾아볼 수도 있잖아요. 그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이 사람 음악 좋네, 생각할 수 있고요. 음악 하는 사람 입장에서 아쉬운 게, 우리나라 음악시장이 다양하지 못하다는 거예요. 우리나라 음악도 그렇지만 청자들이 듣는 음악도 북미 위주고요. 예전에 제가 월드뮤직을 진행하기도 했지만 세상은 넓고 좋은 음악들은 너무 많거든요. 그런 면에서도 조금이라도 기여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루시드폴 

 

1975년 3월생. 음악인, 화학자. 1998년 인디밴드 미선이의 첫 앨범 'Drifting'으로 데뷔했다. 2001년 루시드폴 1집 을 시작으로 <오, 사랑>, <국경의 밤>, <레미제라블>, <아름다운 날들>, <꽃은 말이 없다.>까지 모두 6장의 정규 앨범을 냈다. 2008년에는 스위스 로잔연방공과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2009년에는 미국 화학회지에 논문 「Micelles for delivery of nitric oxide」를 발표했다. 지은 책으로는 가사집 《물고기 마음》과 시인 마종기와의 서간집 《아주 사적인, 긴 만남》, 소설집 《무국적 요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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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국적 요리》 - 사람은 다 작은 사람

 

 

 

루시드폴 | 《무국적 요리》 | 나무+나무 | 2013

 

“사람은 다 작아지는 거래. 그러다가… 없어지는 거래.” (131쪽, <애기>)

 

와병 중에 있는 할머니는 작았다. 그 몸이 중환자실에 들어가서는 더 작아졌다. 아마 할머니를 어둔 땅속에 홀로 누였을 때는 보다 더 작아졌을지도 모른다. 한 명의 작은 사람을 떠나보내고 나는 이제 다른 이들과의 헤어짐을 예감한다. 외할머니, 어머니와 아버지, 잘 아는 어른들이 차츰 작아지는 것을 본다. 이 변화가 늙고 병들기 때문일까. 나는 애초에 변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크고 작음은 외형일 뿐, 사람은 본디 작은 존재다. 병으로 작아지기 이전에 슬픔 앞에서, 가난 앞에서, 시대 앞에서 할머니는 보잘것없었다. 갓난아기에서 성장판의 최대치까지 자란 손녀는 다를 것인가. 할머니보다 큰 몸으로 나는 일상의 사사로운 균열 정도에도 쩔쩔맨다. 사람은 무력하다. 이토록 작은 것이 우리의 원형이다.

 

발버둥 쳐 봐야 원형대로 살게 되니 삶은 퍽 고단하다. 예컨대 기껏 작은 시절로부터 독립한 청년은 “회사일, 목욕탕, 노인, 삼촌, 아줌마, 아버지, 봉래탕, 집, 고향. 온갖 단어들이 머릿속에 똬리를 틀고 앉아 질질 짜는 자신을 비웃는 듯”(50쪽, <탕>)한 자괴의 순간을 맞닥뜨리고, 한 정치인을 통해 “예전의 나와 같이 작고 소박한 삶에 안주하는 이들은 결코 꿈꿀 수 없는 원대한 야망”(77쪽, <똥>)을 보고 감화된 전직기자는 그러나 그의 뒤처리용으로 취급될 뿐이고, 어떤 마을 주민들은 “한 달간 쌓인 독을 비우는 세례(洗禮)”(268쪽, <독>)를 치르지 않으면 제 몸에 쌓인 독을 스스로 감당하지 못한다. 사람이, 작은 사람들이 너무도 쉽게 망가지고 우스개가 되고 상처 입는 삶. 이는 《무국적 요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책에 수록된 여덟 편의 소설을 쓴 사람은 루시드폴이다. 뮤지션으로 잘 알려진 그는 일찍이 음악을 통해서도 소소한 존재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보여준 바 있다. 사람부터 고등어에 이르기까지 흔하디흔한 존재들을 호명했다. 그의 소설은 이러한 작업의 연장선에 있다. 처음 읽을 때는 언뜻 다른 사람의 목소리 같다. 음악에 비하면 어둡고, 날카롭고, 황당하고, 아리송한 면도 분명 있다. 허나 읽어 갈수록 나는 그가 일관되게 불러낸 사람과 만난다.

 

“할매 만나고, 아빠 낳고, 산이 낳고…”
할아버지는 웃으며 말했다.
“점점 작아지데…?”
“그럼 진짜 오래됐네?”
“그럼. 조금씩, 조금씩 작아진 거지.”(117쪽, <애기>)

 

앞서 엿본 이야기에서처럼 작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저도 모르게 작음을 드러내거나, 작음으로 되돌아간다. 하지만 그들의 삶에 대해 그는 어떤 변화도 취하지 않는다. 다만 보잘것없고 무력한 상태로도 존재하는 사람의 모습을, 그것이 결코 함량 미달의 삶이 아님을 보여주고자 한다. 한 소설에서 그가 인용한 “제비꽃만큼 작은 사람으로 태어났구나.”(102쪽, <애기>)라는 나쓰메 소세키의 말은 이 점을 암시한다. 작은 사람은 제비꽃만큼, 바람에 흔들리거나 꺾일 수 있는 가능성 속에서도 살아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작아서 망가지고 우스개가 되고 상처 입은 것이 아니다. 나의 할머니는 작아서 병을 앓은 것이 아니다. 살아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작은 사람이라고 불리는 이 원형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나는 루시드폴의 소설에서 본다.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hebong200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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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만난 사람] 새봄을 맞듯 나를 읽어 주세요 - 《무국적 요리》의 소설가 루시드폴

 

편집·정리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사진 제공 | 나무+나무

협조 | 안테나뮤직

 

고요하게 어둠이 찾아오는
이 가을 끝에 봄의 첫날을 꿈꾸네
만리 넘어 멀리 있는 그대가
볼 수 없어도 나는 꽃밭을 일구네
가을은 저물고 겨울은 찾아들지만
나는 봄볕을 잊지 않으니
눈발은 몰아치고 세상을 삼킬 듯
이 미약한 햇빛조차 날 버려도
저 멀리 봄이 사는 곳 오, 사랑

 

눈을 감고 그대를 생각하면
날개가 없어도 나는 하늘을 날으네
눈을 감고 그대를 생각하면
돛대가 없어도 나는 바다를 가르네
꽃잎은 말라가고 힘찬 나무들조차
하얗게 앙상하게 변해도
들어줘 이렇게 끈질기게 선명하게
그대 부르는 이 목소리 따라
어디선가 숨 쉬고 있을 나를 찾아
내가 틔운 싹을 보렴 오, 사랑

 

내가 틔운 싹을 보렴 오, 사랑

 

겨울부터 봄, 그 사이는 다른 환절기보다 유독 오랜 시간 같습니다. 이 체감의 원인은 겨울이라는 계절보다 자신의 기다림이 깊은 쪽에 있을 겁니다. 홀로 사랑하는 우리들의 기다림이요. 헌데 이때 루시드폴은 노래했습니다. 그것이 곧 "어디선가 숨 쉬고 있을 나를 찾"는 시간이기도 하다는 것을요. 봄이 오기까지 듣곤 하던 '오, 사랑'의 노랫말입니다. 아름다운 선율도 선율이지만, 그의 음악에는 작고 초라한 것들을 소환하는 말의 감동이 있습니다. 이런 말이 어디론가 번져 가리라는 예감 때문이었을까요? 루시드폴이 소설을 쓴 것은 저에게 꼭 자연스러운 수순처럼 느껴집니다. 여러분도 오로지 말로 일군 그의 이야기가 궁금하실 텐데요. 봄 맞으러 가듯 느릿느릿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반디 | 《무국적 요리》의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이전에도 가사집 《물고기 마음》과 서간집 《아주 사적인, 긴 만남》과 같은 책을 내신 경험이 있으시지만, 소설집은 처음이신데요. 데뷔 앨범을 선보인 듯 기분이 남다를 것 같습니다. 소설을 읽은 주변 지인 분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루시드폴 | 아직 지인들의 반응을 많이 접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일부의 반응은 ‘재미있었다(전 이 말이 제일 좋더라고요)’와 놀랐다(어떤 의미인지는 모릅니다만)’였어요. 지인들의 반응은 아니지만 인터뷰를 하다 보면 인터뷰어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공통적으로 루시드폴의 음악과는 느낌이 또 다르다거나 기존에 많이 읽던 소설들과 다르다는 평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반디 | 포르투갈 소설 번역 중에 소설을 쓰고 싶어져, 두 달 만에 쓴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짧은 시간을 들인 편인데요. 사실은 오래 묵혀둔 이야기일 것 같습니다. 언제부터 이런 이야기들을 생각했는지, 본격적으로 소설 쓰기에 임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루시드폴 | 말씀하신대로 작년엔 제가 정말 좋아하는 브라질의 작곡가, 가수, 소설가인 쉬쿠 부아르키의 소설 《부다페스트》를 번역하고 있었어요. 원래는 수년 전에 하기로 마음먹은 일이었는데 그간 바쁘다는 핑계로 손을 놓고 있었던 일이었지요. 평소 소설을 많이 읽는 편이 아닌데 번역을 하면서 한 소설을 깊이 한 문장 한 문장 읽고 음미하게 되었지요. 그 과정도 재미있었지만 그러다 보니 내 이야기도 한 번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이야기를 상상하고, 시놉시스도 짜보고 하면서 장편소설 하나를 쓰고 있더랬습니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이번에는 또 짧은 이야기의 모티프들이 계속 떠오르더라고요. 그때마다 떠오르는 단상을 메모해 두곤, 단편으로 써봐야지,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글을 쓰고 싶어질 때 컴퓨터 앞에 앉아서 소설을 썼습니다. 그게 시작이었어요. 지나고 보니, 노래라는 틀 속에서 다 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소설이라는 (그 당시엔 이게 과연 소설이 될까 하는 의문도 있었지만) 다른 방식으로 쓸 수 있었으니, 어쩌면 필연이었겠구나, 싶기도 합니다.

 

반디 | 소설에는 여러 인물이 등장합니다. 인물들의 다양함 만큼이나 작명 또한 독특한데요. 일본이나 유럽 어디쯤을 연상케 하지만, 이야기의 무대를 한곳으로 종잡을 수는 없는데요. 인물과 그들이 사는 세계에 특별히 부여한 의미가 있다면요?
 
루시드폴 | 소설을 쓰면서 자연스럽게 전제가 된 것은, 소설을 쓰면서 구체적인 시공간의 제약을 만들지 말자, 였습니다. 그래야 더 자연스럽게 주인공들을 구상하고 배치하고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느꼈어요. 물론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도 없애고 싶었고요. 그래야 각각의 단편들이 다시 하나로 묶일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예를 들면, <탕>에 나오는 목욕탕인 '봉래탕'은 <싫어!>에도 다시 등장하지요. <탕>에서 주인공이 마신 소주의 광고 카피는 <기적의 물>의 주인공 목군이 마신 소주의 광고 카피와 같습니다. <싫어!>의 어린 두 아이는 제가 키우는 강아지 두 마리의 이름에서 착안했는데, 마지막 소설 <독>에는 목욕가방을 든 한 부부가 두 마리의 강아지를 데리고 걸어가는 장면이 나오고요. <똥>의 마을 이장이자 곰인 '하요'가 <독>의 배경이 되는 마을의 이장이기도 합니다. 시공간뿐만 아니라 사람과 동물의 경계도 모호하게 만들었어요.
 
반디 | 목욕탕이나 정수기가 등장하는 <탕>, <기적의 물>, <싫어!>의 공통점은 물입니다. 소설 속에서 물은 대개 무용하지만 때로는 소중한 것과 이어주는 끈처럼 보이는데요. 화학자 루시드폴님에게 물이 ‘H2O’라면, 소설가 루시드폴님에게 물이란?

 

루시드폴 | 제가 스웨덴에서 연구할 때 저희 교수님께서 수업시간에 농담 삼아, “'dihydrooxygen'와 'hydrogen monoxide'의 차이가 뭐냐”라고 어떤 학생에게 물었던 적이 있었어요. 답을 아는 사람은 키득거렸지만 막상 질문을 받은 학부 학생은 대답을 못해서 쩔쩔맸었지요. 그런데 교수님은 다시 “그럼 'water'와의 차이는 뭐냐”고 또 물으시더라고요. 세 가지 물질 모두 우리말로 하면 그냥 '물'입니다. 소금과 'sodium chloride (NaCl)'가 같은 물질인 것처럼 말이지요. 물은 단순한 분자지만 다른 어떤 비슷한 덩치의 분자들과는 정말 다른 성질을 띠지요. 그래서 이렇게 우리가 살 수 있는 거구요. 물은 분자량에 비해 안정적이고, 상온에서 액체 상태로 존재하고, 열용량도 크지요. 화학적으로도 정말 재미있는 물질입니다. 꼭 그래서만은 아니겠지만 저는 평소에 물에 대해서 관심이 많아요. 실험을 하면서 때로는 물이 독이 되는 경우도 있었고, 그 물을 없애는 반응조건을 만들기 위해 거의 1년을 허비한 적도 있으니 사실은 웬수 같은 물질이기도 합니다. (결국 저의 실험은 실패로 돌아갔고요.)

 

다시 일상의 저로 돌아와서 보면, 어릴 적 늘 물이 접한 바닷가에서 자라서 그런지 큰 강이나 호수나 바다에 면해 있는 도시에 살 때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물은 언제나 낮은 곳에 있으면서, 시야를 확보해주고 걸리적거리는 풍경에서 우릴 해방시켜주지요. 또 조금 다른 이야기가 될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목욕탕도 정말 좋아합니다! 한숨 돌리고 쉬고 싶을 때, 머릿속이 복잡하거나 피곤할 때, 항상 찾는 곳이 목욕탕이에요. 어쩌면 제 사주에 물(水)이 생(生)하는 나무(木)가 많을지도?
 
반디 | <독>의 내용이 인상적입니다. 몸에 쌓인 독을 받아주는 마을 사당의 독이 사라지자 주인공인 우미와 사람들은 혼란에 빠지는데요. 섬뜩하게도 느껴지는 이 소설은 세상에 대한 비유로 읽히기도 합니다. <독>에 담고자 했던 이야기를 부연해 주신다면요?

 

루시드폴 | 이 세상을 살아가는 어느 누구나 살면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런 스트레스가 풀리지 못해서 마음 어딘가에 쌓이면 화가 됩니다. 특히 바쁘고 치열한 현대사회에 사는 우리는 항상 어떤 종류의 '화'로 가득 찬 채 살지요. 그게 '독'이라고 봅니다. '독'을 적절히 배출하고 비워낼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된 사회는 건강한 선순환의 고리를 보장해 주지만 '해독'의 출구가 막힌 사회에선 결국 개인의 독이 사회의 독이 되고 모두 파멸될 수밖에 없다고 봐요.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사회는 개개인의 '독'에 관심이 없지요. 그저 삭히고 참으라고 할 뿐입니다. 마음과 몸에 쌓인 독을 제대로 해소할 수 없는 곳. 우리가 그런 곳에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사회의 해독작용이 얼마나 원활한가 여부에 따라 똑같은 공간도 때론 유토피아가 때론 지독한 디스토피아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반디 | 모든 소설이 묵직하지만은 않은데요. 흔히 ‘스위스 개그’로 불리는 루시드폴님 특유의 재치가 돋보이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똥>과 <추구> 같은 소설에서의 풍자는 날카롭기까지 합니다. 이런 화법에 애정을 가지고 계시다면, 그 이유는요?

 

루시드폴 | 원래 장난기가 많아요. (물론 진지한 면도 많습니다. 꺄르르~)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은 일차적으로 저 자신이 재미있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이야기를 풀어내는 과정에서 일부 장난기 어린 표현들을 '용감하게' 쓰게 되었지 않나 싶어요. 요즘은 예능이 대세인 시대니 '개그'라는 코드로 받아들이는 것이 일반적이긴 하겠지만, 부족한 이 초보작가의 가소로운 '위트' 정도로 봐주면 좋겠다, 싶은 바람이 있습니다만.
 
반디 |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은 최초의 독서에서 비롯되기도 합니다. 틈틈이 많은 책을 읽으실 것 같은데요. 《무국적 요리》에 영향을 준 소설이나 소설가가 있었나요? 혹은 평소 즐겨 읽는 뮤즈 같은 책이 있다면, 독자 분들께 소개해주세요.

 

루시드폴 | 소설을 많이 읽는 편이 아니라 큰 영향을 준 소설이나 소설가는 없어요. 아마도 작년에 제가 꽤 많은 책을 읽었지만 그 중 소설책은 다섯 권이 채 안됐지 싶은데, 그나마도 바빴던 다른 해에 비해서는 많은 편이었습니다. 책을 고르는 과정은 주로 신문을 통하는데요. 매주 몇몇 신문들의 서평 기사를 꼼꼼히 보는 편입니다. 서평을 보다가 관심이 있는 책은 메모를 해두고 서점으로 가서 책들을 찾아 읽어보지요. 그리고 마음에 드는 책은 한 권씩 사서 읽는 편입니다. 꼭 한 권씩이라는 원칙!

 

 

음악활동을 쉬었던 작년에는 우연히도 '말'에 관한 책을 많이 만나게 되었어요. '말'과 '언어'에 대해 생각할 거리들도 많아졌지요. 번역하고 있는 《부다페스트》만 해도 그렇습니다. 어느 브라질 대필 작가의 이야기예요. 헝가리에 우연히 불시착한 인연으로 난생 처음 헝가리어를 접하고 결국 그 후 부다페스트로 가서 헝가리어로 시를 쓰는 시인이 된다는 그런 이야기거든요. 가늠할 수 없는 인생역정이지요. 마치 제가 소설을 쓰게 된 것처럼요.  노마 히데키의 《한글의 탄생》이나 니컬러스 에번스의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죽다》가 작년에 제가 읽은 가장 좋았던 책인데 우연인지 몰라도 다 말과 글에 대한 책입니다. 다른 책을 또 떠올려본다면, 연말 즈음 출간된 윤여일씨의 《여행의 사고》도 가슴 깊이 공감하면서 읽었던 책이고요. 문학 작품 중에서는 그나마 좋아하는 시인의 시집을 찾아 읽는 걸 좋아합니다. 마종기 선생님의 모든 시집은 물론이고요. 백석 시인의 시, 일본의 동요시인 가네코 미스즈의 시, 다니카와 ?타로를 좋아합니다.
 
반디 | 《무국적 요리》와 같은 작업은 ‘뮤지션이라면 음악을 해야지!’와 같은 인식을 허물기도 합니다. 루시드폴님이 소설을 써냈듯 어떤 사람도 현재의 영역에서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자 할 텐데요. 그런 분들에게 조언의 말씀 부탁드려요.

 

루시드폴 | 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건 그것만으로도 행복하고도 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싶은 일을 과감하게 하는 것. 남들이 어떻게 보고 어떤 평가를 내리든 아랑곳 없이, 인생의 최우선 존재인 나를 위해 더 행복해지려는 적극적인 노력.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을까 싶어요.
 
반디 | 뮤지션, 화학자, 소설가. 대중 앞에 매번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계시지만 이 행보를 두고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뭔가를 만든다는 점에서 똑같다.”라고 어떤 인터뷰에서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아이디어를 발전시킬 앞으로의 관심사를 예고해 주신다면요?

 

루시드폴 | 2012년에는 단독공연도 하지 않았고 앨범 작업이나 곡 작업도 하지 않았어요. 올해엔 당분간은 곡 작업과 연주에 더 무게중심을 둘 생각입니다. 물론 다른 몇 가지 재미있는 구상들도 하고 있지만 아직 밝힐 단계는 아니에요. 새로운 것을 구상한다는 것. 입이 근질근질하지만 당분간은 참겠습니다. 상상만으로도 즐겁습니다.
 
반디 | 뮤지션으로서의 활동을 궁금해 하시는 팬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공연이나 앨범 등과 관련하여 올해의 계획을 간단하게 밝혀 주세요.

 

 

루시드폴 | 4월 한 달 간 종로의 '반줄 로프트 (Banzul loft)'라는 곳에서 공연을 합니다. 월요일만 쉬고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4주간 24회 장기 공연을 하지요. 2010년, 2011년 가을에 학전 소극장에서 하던 '목소리와 기타' 공연을 한 해 쉬고 올해 다시 하게 된 거예요. 2010년, 2011년에 비해 장소도 계절도 바뀌었어요. 하지만 여전히 매일 같은 곳에서 기타치고 노래할 겁니다. 노래 듣고 싶으신 분들 오세요. 재미있는 공간입니다. 공정무역 커피를 파는 근사한 카페도, 전시공간도, 나무데크와 푸릇푸릇한 풀이 자란 테라스 공간도 멋집니다. (힌트를 하나 드리자면 이런 공간은 공연을 안 보셔도 즐기실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4월 공연이 끝나면 앨범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에요. 루시드폴의 정규 앨범을 가을에 낸 적이 3집 <국경의 밤>밖에는 없어요. 그것도 11월 즈음, 하필 제가 외국에 있을 때 발매되었었지요. 이번에는 기어코, 이른 가을, 10월 전에는 앨범을 내고 싶습니다.
 
반디 | 《무국적 요리》를 제대로 맛보기 위해 필요한 것들, 무엇이 있을까요? 소설을 읽을 독자 분들에게 마지막으로 귀띔해 주세요.

 

루시드폴 | 이왕 책을 사셨거나,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신 분들께:
조금 느릿느릿 읽어주시길. 제가 조금은 더 잘 보이지 않을까, 도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루시드폴

 

1975년 3월생. 음악인, 화학자. 1998년 인디밴드 미선이의 첫 앨범 'Drifting'으로 데뷔했다. 2001년 루시드폴 1집을 시작으로 '오, 사랑', '국경의 밤', '레미제라블', '아름다운 날들' 등 5장의 정규 앨범을 냈다. 2008년 스위스 로잔의 EPEL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같은 해 미국 화학회지에 논문 「Micelles for delivery of nitric oxide」를 발표했다. 가사집 《물고기 마음》과 시인 마종기와의 서간집 《아주 사적인, 긴 만남》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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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뭐 읽니?] 루시드폴, 《무국적 요리》

 

 

루시드폴 | 《무국적 요리》 | 나무+나무 | 2013

 

나를 둘러싼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즐겁다
사람들은 즐겁다
(‘사람들은 즐겁다’ 중에서)

 

이런 노랫말로 어떤 어둠을 포착했을 때, 혹은

 

나를 고를 때면 내 눈을 바라봐줘요
난 눈을 감는 법도 몰라요
가난한 그대 날 골라줘서 고마워요
수고했어요 오늘 이 하루도
(‘고등어’ 중에서)

 

이런 노랫말로 몸소 고등어가 되어 나타났을 때, 그의 남다른 필력을 일찌감치 알아차려야 했습니다. 이 재능은 물론 인정받아 왔습니다. 루시드폴의 노래를 듣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조하는 ‘음유시인’이라는 별칭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죠. 조금 낯간지럽긴 해도 ‘음유시인’을 대체할만한 단어가 딱히 없습니다. 그의 음악세계와 작사 능력, 그 합은 실로 자신이 지은 시를 직접 낭송했다는 ‘음유시인’의 무대 같으니까요. 그런데요. 이런 루시드폴에게 곧 새로운 수식어가 따라 붙을 것 같습니다. ‘소설가’라는 별칭이요.

 

뮤지션 혹은 배우에서 소설가로 종횡무진하는 사례가 그리 희귀한 것은 아닙니다. 영화 ‘비포 선셋’에 소설가로 등장했던 에단 호크는 실제로 소설을 쓰고요. 우리나라만 해도 이적, 구혜선, 타블로 등이 소설집을 선보인 바 있습니다. 그리고 루시드폴도 《무국적 요리》를 통해 이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어요. 그 소설집이 지금 제 손에 들려 있네요. 여덟 편의 단편소설 중 고향의 목욕탕을 떠올리며 고단해하는 사회초년생 ‘마유’의 하룻밤을 그린 <탕>과 정치판을 변소에 비유한 묘한 우화 <똥>까지, 두 편을 읽어 보았는데요. 그의 음악에 대한 팬심으로, 한국소설에 대한 팬심으로, 어떤 마음으로 읽어도 이 소설들, 꽤 좋습니다. 소소하지만 그 조용조용한 힘으로 밀고나가는 이야기라고 할까요. 감이 안 오시죠? 노래도 들어 봐야 아는 것처럼 《무국적 요리》도 읽어 봐야 그 맛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손이 안 닿는 데는 있어도, 물이 안 닿는 덴 업서. 알겠제?” 어린 마유는 아버지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마유가 대답을 주저하면 할수록 아버지는 더 크게 말했다. “물로 몬 씻는 건 업서. 알겠나, 모르겠나?” (…) 마유는 이 비가 더 세게, 더 세게 내렸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물로 몬 씻는 게 없다고요? 아버지, 웃기지 마세요. 물만 갖고 씻기는 기 뭐가 있습니까? 마유는 혼잣말을 하며 피식피식 웃었다. (28쪽)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hebong200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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