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14.08.14 [그리는 일기] 슈퍼문이 돌아왔다
  2. 2014.08.07 [서점에서 만난 사람] ☆ 별의 별 이야기 - 천문학자 이명현
  3. 2014.07.03 《한 줄로 사랑했다》 - 한 줄로 말하는 기술
  4. 2013.07.26 《이 길 끝에 네가 서 있다면 좋을 텐데》 - 이불 홑청에 담긴
  5. 2010.09.17 <양치기의 책> - '새로운 길'로 나아가는 여행을 함께 하다
  6. 2010.08.18 <나를 보고 놀라지 마시라> - 당신을 동정하지 않아요. 우리는 같기 때문이에요.
  7. 2009.06.23 [인터뷰] 길에서 만난 ‘Yellow Butterfly’ - 꽃별 2부

[그리는 일기] 슈퍼문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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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만난 사람] ☆ 별의 별 이야기 - 천문학자 이명현

 

 

 

 | 컨텐츠팀 에디터 정혜원


 

천문학자를 만난다고 했더니 모두들 걱정했습니다. 어떻게 잘 말할 수 있겠니, 하는 눈빛으로요. 저도 무척 의외였습니다. 우주가 재미있어졌거든요. 이렇게 말 해보면 어떨까요? 천문학자는 맞는데, 이명현은 문학에 관심이 많은 천문학자입니다. 《이명현의 별 헤는 밤》에는 별만 많은 것이 아니라 헤아리고 싶은 시(詩)도 많습니다. 무더운 여름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 별 하나에 시와 그리고 여기서 천문학자 이명현이 말하는 별의별 이야기를 헤아려 보는 것은 어떨지요. 열대야에는 달빛만이 시원합니다. 달빛을 쐬며, 시원하게 달 샤워를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photo / goro

 

 

저도 선생님과 같은 쌍둥이자리예요.

 

아, 그런가요? 반갑습니다.

 

쌍둥이자리의 사람들은 태양이 쌍둥이자리에 없을 때 태어났다는 사실을 책에서 알았어요.

 

그런 별자리가 되게 많아요. 하늘은 우리 뜻대로 만들어진 게 아니잖아요. 거기에 규율을 만들어 대입시키니까 원하는 대로 안 되죠. 그러니까 그럴 수밖에 없고.

 

선생님도 별자리 운세를 보세요?

 

저는 보지 않는데, 학교 다닐 때 천문학 공부한다 그러면……. 질문은 엄청나게 받죠. 사람들이 제일 많이 물어보는 게 별자리, 별자리 운세, 날씨.

 

잘 얘기해 주셨어요?

 

사실 천문학자들은 그런 걸 전혀 몰라요. 그래서 날씨를 물어보면, 설명부터 해줘요. 그거는 기상학이고, 천문학은 별이야. 그리고 별자리 물어보면, 그건 아마추어들이 하는 거고, 우린 이렇게 하고, 운세도 아니, 그건 점성술사가 하는 거고……. 이런 식으로. 대학원 졸업할 무렵부턴가. 질문을 하도 많이 받으니까 뭘 구태여 또 그걸 그렇게 할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그런 걸 통해서 교류하는 건데. 근데 별로 아는 건 없어요. 그래서 날씨도 제멋대로 얘기해요. 다행히도 1학년 때 기상학 과목이라는 걸 1년 동안 배워요. 얼추 해보면, 구름 만들어지는 원리도 알고, 바람이 어떻게 불지 대충 아니까……. 점성술도 전혀 모르지만, 대충 어떤 게 있다는 건 알죠. 날짜 구분해서 탄생 별자리랑 진짜 별자리랑 안 맞는 것도 1학년 때 알고요. 그런 거 갖고 이 사람 대충 보고 말을 만들어요. 하하 그럼 막 용하다 그러고.

 

하하하

 

그렇게 하고 나중에 분위기 좋아지면 그냥 대충 했다고 고백하죠. 

 

무슨 별자리를 가장 좋아하세요?

 

돌고래 자리라는 게 있어요. 저뿐 아니라 아마추어 천문학 하는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별자리일 거예요. 은하수가 흐르고 견우랑 직녀가 흩어져 있으면, 요 은하수 바로 바깥에 별이 하나 둘 셋 넷 한 여섯 개쯤 이렇게 로우(ρ) 표시처럼 돼 있어요. 마치 돌고래가 뛰어드는 것처럼요. 이게 되게 어두운 별이라 서울에서는 거의 안 보이고요, 어쩌다 한 개 보여도 이게 돌고래자리인지 모르죠. 파주나 저쪽 강원도 어두운 데 가면 이게 잘 보이거든요? 이게 예쁘기도 되게 예뻐요. 나라마다 여러 전설이 있는데, 보편적인 전설이 사랑의 메신저예요.

 

돌고래가요?

 

네. 사랑에 빠진 두 남녀가 난관에 닥쳤을 때 돌고래가 사이를 막 왔다 갔다 하면서 소식을 전해준다는 전설이 많아요. 그래서 돌고래자리는 프러포즈 할 때 많이 써먹어요. 전설에 자기 얘기 보태서 하고. 보여주려면 같이 어두운 데로 가야 하고…….

 

와, 경험담이에요?

 

저는 직접 써먹어 본 적이 없어요. 한 번도……. 시도는 했는데, 날씨가 흐렸어요. 계속 보고 있으면 되게 아스라하게 예쁘기도 해서 혼자 가서 본 적은 있는데, 얘기해 주려고 가서는 성공하지 못했어요.

 

돌고래자리는 처음에 어떻게 알게 되셨어요?

 

초등학교 때 아마추어 천문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요. 과학 잡지 같은 데서 보고 하나하나 알게 되다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동아리에 가입했어요. 동아리 가입할 무렵에는 별자리 다 외웠죠. 다 찾아보고 책에서 본 거 밤마다 맞춰 보고. 그때는 제가 김포공항 가는 변두리에 살았는데, 서울에서 돌고래자리도 보였어요. 은하수도 다 보고. 봄철만 되면 보이는 왕관자리라고 있어요. 그것도 돌고래자리처럼 어두워요. 그런 것도 눈에 잘 보이고. 그 무렵에 다 알았죠.

 

스티븐 호킹이 어렸을 때 부모님 몰래 샀던 전기 열차세트가 그의 인생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변곡점이 되었다면, 선생님의 1차 변곡점은 언제가 될까요?

 

딱 그 무렵인데요, 초등학교 1학년 입학하기 전에 아폴로 11호가 달에 내렸거든요? 사실 그 무렵에 달을 알기 전에 금성을 먼저 봤어요. 동네에서 애들하고 놀다 보면, 혼자 맨 끝에 남아요. 끝에 남는 그룹이에요. 거의 어두워질 때 하늘을 보면 서쪽에 별이 떠 있는데, 그게 뭔지 모르다가 나중에 2, 3학년 돼서 알게 됐어요. 맨날 보면서 뭔지도 모르지만, 밝게 빛난다, 이런 막연한 느낌이 있었어요. 그 무렵에 아폴로 11호가 내린 거예요. 그때부터 달에 관심을 갖고. 저기 달에는 누가 우리를 보고 있겠나? 이런 생각도 들고. 생각해 보면, 그때가 진짜 큰 변곡점이었어요.

 

꿈에서도 별이 많이 나오나요?

 

어릴 때는 그럴 때가 있었죠. 아마 기억이 왜곡된 걸 수도 있어요. 그때 기억이 강하게 남아 있으니까. 별도 그렇기도 하지만, 천문대.

 

천문대에 가는 꿈이요?

 

네. 갔던 곳이나 가보지 못했는데, 맨날 가고 싶었던 천문대들 있잖아요. 그런 데가 나타나기도 하고.

 

이 책에서도 로스앤젤레스의 그리피스 천문대처럼 서울에도 시민천문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서울에 생긴다면 어디가 좋을까요?

 

서울에도 몇 군데가 있는데, 대부분 교육 목적으로 만들어졌어요. 마음 편하게 가서 차 한잔 마시고 올 수 있는 곳이 아니잖아요. 그런 곳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데, 개인적인 욕심은 남산 타워 있는 데 하면 좋겠어요. 게다가 서울은 낮은 산이 여기저기 있잖아요. 그러니까 사실 천문대가 있을 만한 곳은 꽤 있죠. 올림픽 공원 있는 쪽, 아차산. 그런 데 있으면 되게 좋을 것 같아요.

 

 

"천문대는 별만 보는 곳이 아니랍니다. 절망한 사람들의 마음을 잠시 잡아두는 곳이기도 하답니다." 천문대 앞에 이런 문구를 새겨 두면 어떨까 그런 상상을 해봤다. (134쪽, '천문대')

 

영화 < HER > 보셨어요?

 

보진 못했는데, 얘기를 하도 많이 들었어요

 

인공지능형 운영체제인 OS와 인간의 사랑이야기인데, 어느 날, 스칼렛 요한슨 목소리를 가진 OS가 이런 말을 해요. 우리는 우주라는 한이불을 덮고 있는 물질이라고. 서로 다른 걸 얘기하기 전에 같은 걸 얘기해 보자 그래요.

 

좋다. 천문학자들은 ‘별 먼지’라는 말을 많이 써요. 화학적으로 다 연결된 물질이라는 얘기 많이 하거든요. 그런 유대감을 갖는 게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러면 적대감을 갖기 보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 관심과 연민을 갖게 되고, 배려를 하게 되니까.

 

칼 세이건이 인간은 ‘생각하는 별 먼지’라고 했는데, 하필 찌꺼기예요. 먼지. 선생님은 우주 공부를 하시면서 인간이 별 먼지라고 인식했을 때 허무하지 않았나요?

 

그렇죠. 우주가 시간도 길고 공간도 큰데, 우주에서 찍은 지구 사진 같은 거 보면, 점 하나잖아요. 그 속에 우리가 다 들어있는 거고. 그런 거 보면, 엄청나게 경이로우면서도 허무함이 같이 오죠. 근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는 별이 일생을 사면서 만들어진 원소들로 이루어져 있는 거고. 이런 거 생각하면, 굉장히 허무할 것 같지만, 또 한편으로는 옛날에 만들어진 게 지금까지 이렇게 끊이지 않고 이어 와서 우연의 산물로 기적처럼 만들어진 사람끼리 만나고. 그러니까 우리는 우주의 전체 역할을 머금고 있는 존재이기도 하니까. 슬프면서도 아련히 기쁜 느낌? < 로미오와 줄리엣 >에 나오나, sweet sorrow라는 말 있잖아요. 스윗소로우라는 그룹도 있고. 스윗하면서 소로우 한 거죠. 달콤하면서도 슬픈. 그런 느낌인 것 같아요. 아주 허무하면서도 한편으로 기쁘고.

 

이별을 인정하는군요.

 

그 부분이 과학이 종교랑 나뉘는 것 같아요. 종교는 절대적인 존재나 영혼이 사는 영생을 상정하잖아요. 그래서 거기에 의지하고. 그런데 과학자들의 작업은 유한한 걸 인정하는 거예요. 사라질 존재라는 것을. 그러면 영생을 얻는 게 아니라 사라져 버리는 거니까 허무하죠. 허무하지만, 이 순간이 있기 위해 수많은 우연이 겹쳤으니까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찬란한지, 그러니까 이 순간을 보람 있고 즐겁게 살아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게 돼요.

 

그런데 옛날에 만들어진 우연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하더라도, 내가 겪어보지 않은 과거를 좋아하긴 힘들 것 같아요.

 

사실 천문학에서 다루는 별빛은 백억 년 전 과거에 있어요. 스케일도 항상 크고 긴 시간을 다루잖아요. 그러면 일상의 것들이 하찮아지거나 그럴 수도 있는데, 역으로 이게 당장 내일이 끝일 수도 있는 거예요. 그런 맥락에서 이제 우리는 모든 우연들이 잘 겹쳐서 지금 이 순간에 탁 만난 거잖아요? 그러니까 이게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죠. 계속되는 우연의 산물들이니까. 그러면 끝을 보는 거예요.

 

과거가 아니라 나중을 생각하시는군요.

 

네. 죽음이라는 끝을 먼저 상정하고, 거기서부터 거꾸로 이 생활을 보는 습관이 길러지는 것 같아요. 그러면 이 끝이라는 게 내일이 될 수도 있고, 10년 후가 될 수도 있잖아요. 항상 그 끝을 봐야죠. 그러니까 매 순간이 나에게는 마지막 순간이더라고요. 그렇게 되니까 일상생활이 가치 없어지고 이런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너무 절실한 순간이 되는 거죠.

 

우주를 바라보면, 끝과 시작이 다 막연하게 느껴져요.

 

뭐 요즘에는 말로 표현하지만, 막연한 느낌으로 있는 거죠. 그런 식의 생활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 스파이크 존즈(Spike Jonze) 감독의 영화 《Her》, 2013

 

 

책에서 우주의 70%를 구성한다는 암흑에너지의 존재에 대해 알았어요.

 

암흑에너지가 되게 많다고 생각하고 있죠.

 

그렇지만 암흑에너지를 알기 전까지 집중적으로 연구했던 건 나머지 30%잖아요.

 

네. 우주가 있는데, 옛날엔 눈에 보이는 물질들이 전부 다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연구를 해보니까 그거 갖고는 설명이 안 되는 게 너무 많았어요. 그래서 ‘암흑물질’이라는 것을 가정했는데, 그중에 일부를 발견했어요. 어쨌든 물질 덩어리인 거예요. 그런데 또 그거 갖고도 설명이 안 되는 뭔가가 있는 거예요. 굉장히. 그래서 그걸 그냥 암흑에너지라고 이름 붙였고. 그런데 아직 아무도 실체를 몰라요. 얘가 갖는 특성은 알아요. 뭐든지 물질이 있으면 질량이 있으니까 끌어 잡아당기는 힘이 있는데, 관측을 해보니까 얘는 일종의 반중력처럼 밀어내는 힘. 그런 속성을 가진 뭔가가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뭔지 정체를 아직 모르는 거죠.

 

정체를 모르지만, 저는 암흑에너지가 우주를 그만큼이나 많이 구성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니까 제가 미미하게나마 이해하고 있던 우주를 처음부터 다시 공부해야 되나 막막했어요.

 

점점 막막해지죠. 제가 1학년 때 배우던 교과서 내용 중에 아주 기본적인 좌표 빼고는 지금 완전히 다른 얘기가 됐어요. 그때는 암흑에너지라는 단어조차도 없었고. 그렇게 막 바뀌는 거죠. 천문학 교과서는 너무 자주 바뀌어서 새로운 말들이 많아요.

 

그럼 미지의 존재가 충격이라기보다 항상 바뀔 가능성을 열어 놨기 때문에 또 그냥 연구해야 할 대상이 나왔구나 싶으셨던 거예요?

 

꼭 그렇지는 않아요. 1998년부터 공식적으로 천문학회에서 암흑에너지를 받아들이기 시작했거든요? 이전까지는 뭐 간헐적으로 암흑에너지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고, 언노운(unknown) 에너지라고도 불렀어요. 여러 개로 불러서 그런 속성이 있는 ‘무엇’이라고 알았어요. 아, 그런 소리 하는 사람도 있구나, 이런 정도였어요. 그런데 그때 딱 발견이 되면서 거의 모든 천문학자들이 관심을 갖고 연구하기 시작한 거거든요. 바뀔 가능성을 항상 생각하지 하죠. 근데 그런 사건이 터지면, 재빠르게 옮겨 가는 건 잘하죠.

 

어떻게 그게 될까요?

 

과학자들은 항상 뭘 버릴 준비가 돼 있는 거예요. 지금 진리라고 믿는 이론이 있으면 그 이론에 충실해요. 충실하다가 이거에 잘 안 맞는 증거들이 나오잖아요? 그래서 확실한 증거가 나오면 이걸 그냥 버려요. 그래서 과학 철학 하시는 분들이 ‘개종’하는 거에 많이 비유해요. 과학자들은 항상 자기가 하는 것을 진리라고 믿지만, 언제든지 이게 깨질 수 있다는 걸 동시에 믿고 있어요. 그리고 항상 의심을 해요. 이것을 훨씬 월등히 대체하는 이론이나 관측도가 나오면, 이거는 그냥 쓰레기통에 버려 버리고 새로운 연구를 하는 거죠.

 

‘어둠이 아직’이라는 시가 생각나요. 책에도 쓰셨죠. "어둠을 두려워하거나 지레 어둠 찬가를 부르지는 말자. 사실 우리들의 일상에 영향을 주는 것은 우리 눈에 보이는 하찮은 것들일 테니까.”

 

조금 더 객관적일 성향이 있는 사람들이 과학을 하기도 하고, 그런 선택 효과도 있고, 또 과학을 하면서 훈련이 돼요. 자기가 아는 걸 항상 의심하는 자세. 눈에 뭐가 보이더라도 와, 정말 대단해, 이럴 수도 있지만, 이게 지금 우연히 잠깐 보이는 걸까, 계속 이게 나타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품게 돼요. 눈에 보이는 것들이 어떤 건 대단해 보이지만, 사실 그거는 그냥 거품일 수 있고, 하찮긴 한 거지만, 사실은 그게 어떤 것들의 증표일 수도 있고. 그런 면에서 생각하면, 하찮은 것을 좀 더 보게 돼요. 사람들이 막 몰려가는 것에는 에이, 그럴 리가, 하고. 우선 직관이 굉장히 중요하고요. 직관적으로 ‘아, 이럴 것 같아.’하고 그다음부터 ‘그럴까?’하고 생각해 보는 게 맞거든요. 근데 직관은 사실 하찮은 것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아요. 아인슈타인도 ‘내가 빛의 속도로 달리면, 세상은 어떻게 보일까?’ 이 궁금증이 고등학교 때부터 생긴 거예요. 근데 물리학이나 수학을 잘 모르니까 그걸 어떻게 풀 방법이 없지. 그걸 알기 위해서 공부를 계속 하거든요. 근데 그건 누구나 던질 수 있는 하찮은 질문이잖아요. 빛이랑 같이 달리면 옆이 어떻게 보일까, 이 의문에서 시작해 빛에 대해 탐구 하다가 상대성 이론이 나왔고. 사소한 단서에서 뒤에 더 많이 숨어있는 세상을 찾아내는 게 과학자들의 할 일이죠. 거창하게 포장을 해 놔도 에이, 아닐 거야, 하고 포장을 뜯고 비판적으로 보는 자세. 지레 어둠 찬가를 부르지 말자는 것에 그런 의미들이 담겨 있어요. 보는 것과 안 보는 것이 서로 반대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같은 맥락이에요.

 

더 다가가기 위한 집요함.

 

그런 거죠. 때로는 강박적이고. 몰두하다 보면, 생각이 곧 단순해져요. 다른 생각은 다 가지 쳐내고 ‘왜 그럴까?’ 여기에만 몰두해요. 그러다 보면 사실 엉뚱한 행동도 하게 돼요. 뭐 1년 내내 집요하면, 사람이 생활을 못하니까. 그렇게 되는 거죠.

 

 

얼마나 다행인가

눈에 보이는 별들이 우주의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암흑 물질이

별들을 온통 둘러싸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그 어둠을 뜯어보지 못했다는 것은

 

별은 어둠의 문을 여는 손잡이

별은 어둠의 망토에 달린 단추

별은 어둠의 거미줄에 맺힌 밤이슬

별은 어둠의 상자에 새겨진 문양

별은 어둠의 웅덩이에 떠 있는 이파리

별은 어둠의 노래를 들려주는 입술

 

별들이 반짝이는 동안에도

눈꺼풀이 깜박이는 동안에도

어둠의 지느러미는 우리 곁을 스쳐 가지만

우리는 어둠을 보지도 듣지도 만지지도 못하지

 

뜨거운 어둠은 빠르게

차가운 어둠은 느리게 흘러간다지만

우리는 어둠의 온도와 속도도 느낄 수 없지

 

알 수 없기에 두렵고 달콤한 어둠,

아, 얼마나 다행인가

어둠이 아직 어둠으로 남겨져 있다는 것은

 

― 나희덕, '어둠이 아직'

 

올해 초에 < 감자별2013QR3 >을 열심히 봤어요.

 

예전에 강연하는데, 김병욱 PD님이랑 다른 작가님 한 여섯 명이 오셨어요. 소행성이 지구에 잡혀서 오래 있을 가능성이 사실 희박하거든요? 그분들은 조금이라도 확신을 얻고 싶었던 거예요.

 

감자별 뒤에 붙은 숫자조차 치밀하게 계산된 것이더라고요.

 

그렇죠. 그것도 녹록하게 발견 안 될 걸로 해서.

 

노준혁(여진구)도 혜성처럼 노 씨 집안에 나타났죠. 알고 보니 준혁이도 이름이 원래 홍혜성이었어요. 책에서도 혜성을 쉽게 설명하셨는데, 감자별의 결말 때문인지 “태양 주위를 무사히 돌고 난 혜성 중 일부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우주의 방랑자가 된다.”는 말이 유독 슬프게 들렸어요.

 

그런 것 같아요. 아까 경이로움과 허무함을 얘기했죠? 또 한가지, 유한함. 고정된 것이 아니라 뭔가가 계속 변해가니까. 결국, 이별에 대한 얘기잖아요. 그런 것들을 자연이 얘기해 주는 거니까 기본적으로 좀 슬프죠. 혜성도 자기 길을 가야 하니까.

 

홍혜성도 그렇고, < 별에서 온 그대 >의 도민준도 그렇고, 오늘날 대중매체에서 다루는 외계인은 ‘인간’과 다름없이 그려져요. E.T 같은 모습이 아니라.

 

외계인이 등장하는 프로그램이나 영화를 쭉 보면, 처음에는 파충류 모양으로 나오다가 색깔도 변해요. 푸른색에서 약간 회색으로. 외계인에 대한 생각이 바뀌는 과정이죠.

 

우리는 왜 외계 생명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꼭 그렇지는 않아요. 확률이에요. 지구 같은 게 너무 많으니까. 지구랑 비슷한 행성이 전 우주 한 천억 개의 별 중에 수십 개밖에 안 된다면, 외계 생명체가 있을 확률도 별로 없는데, 최근에 관측한 결과를 보면, 지구와 같은 환경, 크기, 질량이 비슷한 행성이 500억 개 정도 추산돼요. 천억 개의 별 중 500억 개 정도.

 

그 행성에는 사람과 비슷한 생명체가 있겠다고 예상하는 것이죠?

 

외계인이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낮으니까. 없으면 이상하다고 또 생각이 바뀌겠죠. 1992년 무렵에 태양계 바깥 행성의 산화가 처음 발견됐어요. 1995년에 또 하나가 발견되고. 지금은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만 해도 몇천 개 정도 돼요. 하늘을 요만큼만 관측해서 발견한 게 수천 개인데, 하늘 전체 넓이를 곱하면, 오억 개, 오백억 개 정도가 돼요. 물론 오차가 심하겠지만. 해봤는데, 너무 많으니까 이제는 자신감을 가질 만한 개연성이 높아졌어요. 없을 수도 있죠. 조건이 미미하게만 틀려도 생명이 발견되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근데 일단 조건이 맞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희망적인 소식이에요. 오히려 없으면 또 굉장히 재미있는 질문이죠. 화성에 우리 같은 지적 생명체는 없지만, 원소가 조합된 것들, 생명체의 재료가 되는 것들, 박테리아나 미생물 이런 것을 찾으려고 노력해요. 2018년에 보내는 탐사선이 있는데, 걔가 땅을 파는 로봇을 데리고 가요. 땅을 파면, 땅속에 진흙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거기에는 미생물과 박테리아가 있을 거라고 지금 기대하고 있어요. 그걸 발견해서 지구 생명체 DNA와 비교하고. 그러면 얼마나 비슷한지 혹은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고. 그리고 화성이랑 비교해서 추론을 필 수도 있죠. 하나보다 몇 개가 발견되면, 믿을 거리가 더 생기는 거잖아요.

 

 

 

△ 《감자별 2013QR3》

 

 

1977년에 칼 세이건은 보이저 1호에 골든 레코드를 실어 보냈죠. 만약 뭔가를 보낸다면, 거기에 무엇을 담고 싶으세요?

 

이미지를 담는다면, 바깥에서 본 지구를 담고 싶어요. 골든 레코드에도 달에서 본 지구 사진이 있지만, 지금은 화성에서 찍은 지구 사진이나 보이저호 자신이 명왕성 궤도 근처로 가면서 찍은 지구 사진도 있거든요. 골든 레코드는 70년대의 지구를 대표하는 것들이니까.

 

외계인이 봤을 때 좀 더 관심을 가질만한 걸로요?

 

네. 우리가 밖에서도 우리를 들여다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보여주고 싶어요. 지구 자체에 대한 성찰도 좋지만, 우리가 지구를 벗어난 곳에서도 지구를 성찰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혹시라도 보이저호가 다른 외계인들에게 발견됐을 무렵에는 우리는 이미 멸종했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우리 다음 세대라고 상상할 수 있는 지적생명체는 인공지능 OS나 사이보그 이런 걸 텐데, 그들에 대한 정보도 보강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지금이 아니라 다음을 생각하시는군요. 후손들이 이해할 우주에 대하여.

 

네, 그렇죠. 보이저호가 5억 년~6억 년 정도 버틸 수 있어요. 근데 그때까지 인류가 생존할지는 굉장히 의심스러워요. 지구 자체만 보더라도 한 3만 년 정도면, 빙하기가 와요. 그러면 적도 쪽으로 몰려가야 살아요. 거기서는 안락하게 살 수 있는 조건이 되거든요. 그러면 그쪽으로 이주하지 못한 문명은 멸종해요. 한고비를 어쨌든 3만 년 내로 맞게 되는데, 생각해보면 되게 회의감이 들어요. 보이저호 같은 데 남아있는 것들은 결국 우리의 단면이고, 유서 같은 거잖아요. 그럼 살아남은 우리의 후손들과 외계인의 조우가 있게 된다면, 그들에 대해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비전들을 담아놓는 게 좋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거죠. 부질없을 수도 있어요.

 

무언가를 기필코 남기려고 했던 자세가 부끄러워지네요.

 

77년부터 삼십몇 년의 세월이 있지만, 거기에 인류의 모습 대부분을 아주 잘 담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미래에 관한 부분은 좀 약했다고 생각해요.

 

어떤 물건에 담아 보내는 것이 가장 좋을까요?

 

당시에도 엄청나게 고민하다가 레코드 판으로 한 거예요. 가장 기초적이고 가장 오래갈 수 있는 걸로. 바늘은 전자기기가 없어도 되니까. 전자기기가 들어가면 배터리가 있어야 하고, 그것을 읽어내는 장치도 있어야 하고, 이러니까 이제 복잡해지는 거죠. 고민이 많이 되는데, 아직도 뾰족한 답은 없어요. 77년 당시에도 정말 고민에 고민을 더해서 내놓았는데, 아직도 유효한 거죠.

 

 

 

 

△ 보이저 탐사선에 실린 레코드 《Voyager Golden Record》 (사진 출처: ⓒ NASA)

 

 

별도 얘기하고, 외계인도 얘기했는데, 달 얘기를 못했네요. 선생님은 누군가에게 달 같은 사람인가요?

 

스타를 별에 빗대어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어떤 사람은 초신성이 폭발하는 것처럼 강렬하고, 어떤 사람들은 쌍성처럼 항상 둘이 붙어 다닌다거나. 그때 달이 생각났어요. 달처럼 항상 조력하는 뛰어난 조연들. 그래서 이 글도 쓰면서 그럼 나는 누구의 달일까, 그 생각 많이 했어요. 그리고 새삼스럽게 저한테는 달 같은 사람들이 꽤 많다는 것도 느꼈어요.

 

별보다 달 같은 사람이 되고 싶으세요?

 

그러기도 하고. 이건 취향의 문제인데요, 저는 어떤 것들이 모이기 시작할 때 생기는 권력을 되게 싫어했어요. 그래서 그런 걸 안 만들려고 되게 노력했어요. 이건 되게 극단적인 건데, 학교 다니면서 반장 안 하려고 막 빼잖아요? 그럼 그걸 겸손으로 알고 막 찍어줘요.

 

그래도 안 하셨나요?

 

그래도 안 한 적도 있어요. 반장으로서 마땅히 해야 되는 것들이 싫었어요. 제가 나서서 제 주위에 무언가가 형성되어 가는 것에 대한 강박감이 들어요.
 
인간 사회에 호기심이 별로 없는 편인가요?

 

관심이랑 태도가 생기게 되는 거죠. 이 순간을 행복하고 즐겁게 사람들이랑 나누면서 지내고 싶은 거예요. 소박한 소망인데, 주변에서 그걸 방해하는 것들이 생겨요. 학교 다닐 때는 혼자 그냥 결석해버린다거나 친구들 선동해서 소극적인 저항도 했는데, 커서는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여러 가지가 생기는 거예요. 기본적으로는 내가 즐겁고 유한한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 아주 이기적인 욕망이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하자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싶은 거예요. 그게 다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고. 나는 서로 별 적대감 없이 사회에 살고 싶은데, 그게 그렇지 못해요. 그렇다면, 이 사회의 모순을 바꾸는 데 내가 일조를 해야 그게 결국 내가 유한한 삶을 즐겁게 사는 방법인 거예요. 그래서 자꾸만 소외 받은 사람이나 소수자 쪽에 동감하는 눈길이 가요. 그걸 누군가 악착같이 막으려고 행동하면, 나는 그거에 반하는 행동 대열에 서게 되는 거죠. 그런 식으로 나에게 맞는 태도와 가치관이 형성되는 것 같아요.

 

 

살다 보면 달 같은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격렬한 어떤 사연을 공유한 사람. 그것이 인연이 되어서 사랑을 했던 그 사랑을 가슴속에 묻고 떠나갔던 여전히 그리운 사람. 끝없는 배려를 해주는 사람. 한 쪽 면만 보여주지만 그것이 나를 위한 동조 과정의 결과라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사람. 나 자신의 모습을 반사하듯 내게 보여주는 사람. 그러면서 늘 옆에 있는 사람. 하지만 멀리 떨어져서 지켜만 보는 사람. 보름달처럼 나를 상쾌하게 만들어주는 사람. 어둠 속에서 환한 그림자를 만들어서 나를 춤추게 하는 사람. (160쪽, '당신은 누구의 달입니까')

 

보이저 1호가 실패를 겪는 과정에 대해 쓰면서 선생님은 과학자의 투명성을 강조하셨죠. 근데 이 투명성이라는 게 정치와 언론에 투영했을 때 ‘억압’이 되고 ‘강요’로 바뀌어요. 이런 세상에서 과학자가 정말 할 수 있는 건 뭘까요?

 

지금 오히려 과학자의 역할이 대두된다고 생각해요. 과학자로 훈련받거나 과학적인 사고방식을 우리가 견지한다면, 마땅히 상식적인 결론을 내리게 될 텐데, 지금 그렇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아요. 그러니까 과학자 집단이 목소리를 좀 내야 돼요. 과학적 인식론이 세상에 퍼져야 상식을 회복하는 능력으로 사용될 수 있지 않을까요? 결국은 합리성 회복이거든요.

 

내가 속한 집단이나 오직 나 중심에서 주위를 바라보면, 오류가 생기는 경우도 많은데, 그렇다면 지구 중심에서 우주를 생각하는 건 맞는 걸까요?

 

그렇게 살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인간을 중심으로 두고 과학이 인간의 삶 속에서 어떻게 녹아있는가, 이걸 무시할 수 없어요. 그런 걸 자꾸 자각하고. 우주를 얘기할 때 지구 중심, 자기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이 마치 덜떨어진 것이라든가 모자란 것이라든가 계몽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과학자가 있다면, 그건 큰 오산이라고 생각해요. 굉장히 오만한 자세죠. 자기 자신도 하나의 인간인데. 당연히 우리는 지구 중심, 인간 중심으로 생각해야 하지만, 제가 조금 더 원하는 건 범위를 넓혔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나만 알다가도 내 가족을 알면, 자기 정체성의 범위가 넓어지잖아요. 공동체라든가. 그러면 내 이익만 생각했던 게 내 가족의 이익이 되고, 이게 마을이 되면, 마을의 이익이 되고. 그러다 보면 지구 전체의 이익이 돼요. 그런 식으로 인식의 범위를 넓힐 필요는 있죠. 넓힌다고 해서 인간 중심을 벗어나는 건 아니죠. 넓히면서 사람끼리 어떻게 잘 살까, 하는 문제로 귀결되잖아요. 결국 자기 얘기를 진솔하게 계속 하다 보면, 공감대가 넓어지는 거지. 자기를 드러내는 게 조금은 어색한 작업이잖아요. 근데 그런 걸 드러내면, 남들이 공감대로 들어오니까.

 

좀 어설프더라도.

 

네. 시간이 지나면 어설픈 것도 다시 다른 상태로 바뀔 수도 있는 거고.

 

 

이명현

과학저술가/천문학박사. 초등학생 때부터 아마추어 천문가 활동을 시작하여 네덜란드 흐로닝언 대학교에서 전파천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세티코리아 조직위원회에서 전파망원경을 이용해 우주로부터 오는 인공 전파를 포착해 외계 지적생명체의 존재를 찾고 있으며, 우주와 외계생명체에 대한 강연과 교육을 통해 대중과 정보를 나누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역서로는 『문더스트』(2008- 공역), 『우주 생명 이야기』(2005), 『스페이스』(2002),  등 다수가 있다.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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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로 사랑했다》 - 한 줄로 말하는 기술

 

윤수정 | 《한 줄로 사랑했다》 | 달 | 2012 

 

마음 언저리에 불안이 늘 묵직하게 들어앉아 있던 20대 후반쯤이었다. 신문을 보다 눈에 띄는 광고 하나를 발견했다. 카피라이터를 뽑는다는 극장의 구인 광고였다. 전에 했던 일과도 겹치는 부분이 있어 별 부담 없이 지원서를 냈다. 서류 전형을 통과하면 2차는 극장에서 직접 시험을 치른다고 했다. 시험 당일 영화관에서 각기 다른 영화 4편을 본 후 각 영화가 끝날 때마다 헤드카피, 메인카피, 보조카피, 광고 문구까지를 10분 안에 써내야 했다. 오전에 영화 두 편, 점심 먹은 후 연달아 두 편을 보자니 마지막엔 머리도 어질어질하고 속까지 메슥거렸다. 게다가 보는 걸로 끝나는 것도 아니고 '준비~ 땅' 하듯이 시험지를 받자마자 카피까지 쓰려니, 꽁지에 불붙은 쥐처럼 달려가듯 써내려가야 했다. 시험은 저녁 6시쯤 끝났고,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 속이 다 후련해지는 느낌이었다.

 

그 후 며칠을 우편함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지냈다. 그러고도 얼마를 더 지나 결과를 담은 봉투가 왔다. 차라리 깔끔하게 결과만 알려주지, 위로한다고 적은 글귀가 자존심을 더 상하게 했다. 글 쓰면서 가장 어려운 게 제목 뽑기고, 전체를 한 줄이나 두 줄, 혹은 몇 줄로 요약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인 줄 알면서도 기분이 안 좋았다. 그다음부터 카피 쪽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지냈다. 자신의 실력은 생각도 하지 않고 상처를 받았다고 여겼으니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만 하다. 그러나 때때로 카피 쪽에 관심이 갔던 것은 그들이 써내는 문구들의 특별함 때문이었다. 재미있거나 상큼하고, 가슴을 때리거나 잔잔히 스며드는 그 문구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이 썼고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증이 생겼다.

 

'한 줄로 사랑했다'는 내가 떨어졌던 그 세계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만든 카피라이터 윤수정의 책이다. 윤수정은 영화 전문 카피라이터다. 재미있게 봤던 몇몇 영화의 카피가 그녀의 손에서 나왔다니 신기하기도 하고, 내가 밟지 못한 세계여서인지 더 관심이 갔다.

 

윤수정의 글은 감성적이다. 그녀가 얼마나 여린 사람인지, 얼마나 감정을 잘 다칠 수 있는 사람인지는 글을 읽어가면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녀가 얼마나 강한 사람인지도 글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녀의 강함은 조직을 택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길을 걸어간 것을 통해서도, 언제든 끊어질 수 있는 인연을 조직보다 소중히 여겼다는 데서도 알 수 있다. 난다긴다하는 사람이 모인 광고계에서, 거칠다면 거칠 수 있는 영화판에서, 그녀가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고 외연을 넓힌 것은 많은 순간을 참고 견디며 자신 안에서 소화했다는 사실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의 강함의 원천은 감성에 있다. 그 감성을 붙잡고 인간의 소중함을 무엇보다 우선시했기에 그녀가, 그녀가 쓴 카피가 살아남을 수 있었으리라. 


동생은 오전반 오빠는 오후반 운동화는 한 켤레

 

자, 이 착하디착한 영화에게 나는 어떤 카피를 주어야 할까. 오빠와 여동생, 그리고 그들의 운동화 한 켤레를 나눠 신는 아름다운 이어달리기가 이야기의 핵심이 될 것이다. 아이들이 타박타박 달려가는 리듬감을 담을 수 있다면 그래서 마치 동요처럼 읽는 것만으로도 동심이 느껴진다면 좋을 것이다. 하긴 느린 달리기와 동심은 최고의 친구다. 우리는 모두 그 달리기를 겪고 어른으로 자라왔다. 기억 속에 잠긴 어린 시절의 노래를 건져 햇볕에 말리는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느낌이었다. 그렇게, 넉 점 반, 넉 점 반의 운율에 맞춰 줄거리를 정리했다. 오전반, 오후반, 운동화……그렇게 완성한 카피였다. 몽타주 기법에서 컷과 컷을 겹치듯 오전반의 동생과 오후반의 오빠를 겹치고 두 사람과 대비되는 갈등의 요소 한 켤레의 운동화로 마무리했다. "동생은 오전반, 오빠는 오후반, 운동화는 한 켤레." 카피를 완성하고 읽다 보니 동시를 읽는 기분이 들었다. '넉 점 반, 넉 점 반' 노래를 부르며 온 마을을 돌고 오는 아기가 오랜만에 내 마음도 들렀다. -천국의 아이들 (111~112쪽)


어떤 상황에서도 윤수정이 택하는 것은 따뜻함이었다. 많은 방법 중에서도 그녀는 굳이 가장 약하고 흐릿한 방법을 택했다. 피튀기는 카피, 보자마자 기억에 남을 수 있는 극단적인 카피를 생각해 볼 수도 있으련만 그녀는 직선을 두고 돌아가는 것처럼 그렇게 카피 문구를 만들어냈다. 그랬기에 그녀의 카피는 힘이 있었고 생명력이 길었다. 일등만 기억하는 세상, 그래서 더러운 세상이 아니라 그럼에도 살만하고, 사는 방법을 우리 안에서 찾아보지 않겠느냐는 청유의 글로 그녀는 사람들을 위로했다. 그뿐만 아니라 가라앉은 마음엔 살포시 향기를 불어넣었고, 일상의 작은 행복은 가슴 깊이 느끼도록 했으며, 짝사랑의 애틋함은 세상 가득 비추는 찬란함으로 채워 넣었다.


때로 수많은 말보다 한마디의 말이 더 큰 힘을 발휘하는 때가 있다. 줄이고 줄여 더 줄일 게 없지만 온기를 머금은 그런 말 말이다. 그런 카피 한 줄을 뽑기 위해 윤수정은 수많은 생각을 품고 버리며, 많은 밤을 밝혔다. 그래서 이 책은 '카피라이터 윤수정의 카피 노트'라는 부제가 붙었음에도 읽는 이의 생각을 바꾸거나 관점을 달리하는데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 영화 카피를 뽑았던 시간이야말로 그녀가 가장 빛나던 순간이었으며, 영화라는 대상과의 내밀한 이야기야말로 자신을 세상에 완전히 드러내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곱고 아름답지만 결코 대상을 미화하지 않고, 나직하지만 할 말은 하는 그녀이기에 격랑이 이는 영화판에서 자신만의 자리를 구축할 수 있었다. 카피 노트라는 데 마치 남의 연애편지를 보는 듯한 즐거움을 느꼈던, 잔잔한 재미가 있었던 책이다. 나도 이제부터는 한 줄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싶다. 그래서 한 줄의 여자가 되고 싶다.

 

오늘의 책을 리뷰'둘이서랄랄라' 님은?
평범한 아줌마입니다. 제게 간직한 꿈이 하나 있는데요. 3층 짜리 조그만 건물을 지어 1층은 작은도서관으로, 2층은 작은 출판사로, 3층은 선교사를 위한 단기 게스트하우스로 만들어 멋지게 활용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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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 끝에 네가 서 있다면 좋을 텐데》 - 이불 홑청에 담긴

 

최갑수 | 《이 길 끝에 네가 서 있다면 좋을 텐데》 | 달 | 2010

 

낯선 골목을 걷고 있노라면 시간의 회벽을 따라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추억의 한 장면을 만나곤 한다. 골목을 따라가면 언제나처럼 작은 공터가 나오고 왁자한 아이들이 그곳에서 숨바꼭질을 하거나, 비석치기를 하거나, 양갈래머리를 한 한 무리의 여자아이들이 고무줄 놀이를 하고 있다. 때로는 무리에 속하지 못한 어린 아이들이 놀이에 끼이고 싶어 이리저리 기웃대며 놀이를 방해하지만 저녁 어스름이 질 때까지의 골목은 온통 아이들 차지였다. 어둑어둑 해가 지면 아이들은 아쉬움만 한아름 내려 놓고 공터를 떠난다. 호박꽃이 환한 저녁이면 공터 한켠에 놓인 평상으로 더위에 지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고 밤새 모깃불이 타올랐었다. 이따금 어른들의 이야기가 호박 넝쿨처럼 길게 이어지는 날이면 졸음에 겨운 아이들은 제 어미의 무릎을 베고 곤한 잠에 빠져들고 풀벌레 소리만 별처럼 가득했었다.

 

골목에서는 그때 맡았던 제 어미의 땀내음처럼 아릿한 향수가 밀려오곤 한다. 낮은 담장 넘어 손바닥만한 마당 한켠에선 걸레를 빠는 누이의 모습. 일렁이는 검은 머릿결에 함초롬한 가을 햇살이 소복소복 쌓일 것 같은 오후.  영훈, 종애, 영숙, 정태 같은 낯익은 이름들이 어디선가 들려올 것만 같다. '아무개야!  밥 먹어라!' 하는 메아리가 앞산 머리에 쩌렁쩌렁 울릴 것만 같다. 손을 뻗으면 그 정겨운 풍경이 하마면 잡힐 듯한데...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골목의 옛 모습은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까치발을 뜨면 안마당까지 훤히 보이던 정겨운 풍경도, 깡통을 차며 놀던 작은 공터도, 세월의 더께가 일던 담배가게도 이제는 모두 아슴아슴 멀어지고 있다. 여행작가 최갑수의 《이 길 끝에 네가 서 있다면 좋을 텐데》는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최갑수 골목산책'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나즈막한 슬레이트 지붕이 골목으로 나란히 펼쳐지는, 골목을 따라 코스모스 여린 데궁이 일렁일 것만 같은 그때의 풍경 속으로 안내한다.

 

골목을 다니다보면 순수한 사랑으로만 가득 찬 곳에 들어서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것은 바람으로 흔들리는 미루나무의 움직임처럼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다. 나는 할머니들과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을 지켜보며 보일러로 따뜻해진 방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있을 때의 느낌을 받았다. 온통 평화와 사랑으로 충만하다는. (240쪽)
 
서울의 부암동이나 북촌 한옥마을에서부터 통영의 동피랑, 청주의 수암골, 부산의 태극도마을, 대전의 복지관길 등 저자의 발길은 몇 남아 있지 않은 전국의 골목을 누비고 있다. 건물의 높이가 1m씩 높아질 때마다 남보다 두세 걸음쯤 앞서 걸어야만 했던 우리는 골목의 여유란 그저 게으름의 상징, 청산해야 할 구태의 하나쯤으로 여기며 살았는지도 모른다. 어미의 시큼한 땀내음이 물씬 풍겨오던 삶의 터전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자리에는 생명의 기운이라고는 도통 찾을 길 없는 콘크리트 건물만이 위압적인 자세로 우리를 내려다 보고 있다. 이렇듯 풍경의 변화는 사람들의 일상을 생경하게, 또는 살풍경하게 만들어 놓았다. 추억은 오직 마음 속의 그리움으로만 존재하는 추상적 개념이 되고 말았다.

 

나는 지금 수암골 골목에 서 있다. 주홍빛 불이 들어오고 있는 가로등 아래로 단발머리 여자 아이가 뛰어간다.  먼 지붕 위로 별이 돋고 어디선가 졸리운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이 모든 것은 익숙하지만 새롭게 다가온다. 익숙한 풍경을 새롭게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한 곳. 그곳이 바로 골목이다. (359쪽)

 

언젠가 댐 건설로 인해 자신이 발붙이고 살던 고향을 잃고 실향민 아닌 실향민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호수 어드메쯤을 가리키며 자신이 살던 곳이라고 말했었다. 그때 나는 느꼈었다. '아, 개발이라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아픔이 되는구나!'하고 말이다. 개발이라는 것이 누군가의 삶의 흔적을 송두리째 앗아갈 수 있음을 그때 알았다. 내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의 체취는 이제는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새로이 태어나는 자식들에게 제 부모의 흔적을 지우도록 강요하는 사회를 선진국이라 할 수 있을까. 골목을 보존해야 하는 첫째 이유는 거기에 있지 않은가.

 

뽀얀 가을 햇살 속에 온종일 펄럭였던 이불 홑청처럼 순수한 마음이 흘러가던 곳. 그곳이 바로 골목이었음을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모퉁이를 돌면 백구가 컹컹 짖던 내 어릴 적 친구의 집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이제는 몇 남지도 않은 골목이 부디 무사하기를... 그곳에 흐르던 순수의 마음들이 계단을 오르고, 공터를 돌아 고샅고샅 흩어지기를... 

 

오늘의 책을 리뷰한 ‘꼼쥐’님은?
책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딱히 장르를 정하지 않고 그때그때의 기분에 따라 읽는 잡식성의 독서가이자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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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치기의 책> - '새로운 길'로 나아가는 여행을 함께 하다

조앤 데이비스, <양치기의 책>, 달, 2010 


“변화에 대해 말하지만 말고 스스로 변화를 만들고 행하라. 당신 몫의 길을 갈 수 있는 또 다른 사람은 없다. 당신이 그 한 사람이다.”

<양치기의 책>을 펼치고 처음 만나게 되는 글귀다. 얼핏 당연하게 생각하고 지나쳐 버리기 쉬운 말이다. 말은 힘이 없고, 변화는 말로써 생겨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내 몫의 길을 갈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것 또한.

당연한 말을 곱씹어 되새겨야 할 때가 있다. ‘마땅히 그러하다’라는 의미가 생각과 말에 그쳐 무감하게 받아들여질 때가 그렇다. 내 몫의 길을 갈 수 있는, 그리고 가야 하는 사람은 ‘지금, 여기’에 있는 ‘나’임에도 불구하고, 이제껏 한 번도 ‘나’인 적 없는 ‘상상된 나’를 허망하게 쫒고만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한 장을 더 넘겨보니, 그려놓은 듯 파아란 하늘과 들녘이 맞닿아 있다. 이 사진 속 어디에도 길은 보이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어디에나 길이 있는 듯도 하다. 편안한 안도감이 찾아온다. ‘휴~’ 하고 한숨 돌리고 나서, ‘다시 가보자’ 생각한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런 사람에서 저런 사람으로 나아가는 양치기의 여행길을 ‘함께 가보자’ 생각한다.

이 책의 주인공, 양치기 조슈아는 당연하게 ‘생각되는’ 것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어린 시절 그의 아버지가 작고 연약하게 태어난 어린 양을 죽이려 했을 때, 그 양이 다 자라 장에 내다 팔려고 했을 때, 그는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고 양을 지켜낸다. “이게 세상 이치란다.”라고 말하는 아버지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럼 세상을 바꾸면 안 되나요?”

그 물음이 양치기 조슈아의 여행을 시작케 한다. ‘새로운 길’을 찾아나서는 깨달음의 여행에 길잡이가 돼준다. 그 길에, 자신의 양심과 감정을 거스르지 않고, 사람으로서 반드시 지켜야 할 것, 진정으로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 나서는 ‘한 사람’의 발걸음이 새겨진다. 스스로 변화를 만들고 행하고자 하는 사람만이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새로운 길’은 자신의 몫인 길을 걸어 나가는 자에게만 보이는 것이다. 혹은 걷고 있는 자에게만 길이 새로이 만들어진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일들은 일어나는 데 긴 시간이 걸리지. 변화란 한 움큼씩 다가올 뿐이라네. 하지만 결국은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되네. 또 하나가 모여 여럿이 된다는 것을. 결국은 맨 마지막 한 알의 모래가 저울을 움직이는 힘이 되지 않는가. […] 그래, 누구라도 한 알의 모래가 될 수 있어. 누구라도!”

“세상을 바꿔 놓을 특별한 한 사람을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누구든 자기에게 맡겨진 몫이 있었다. 그 몫을 다할 때마다 하나의 작은 기적이 일어났고, 가장 큰 기적은 작은 기적들 뒤에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가 세상을 바꾸는 모레알들이기에 누구든 맞은편 접시의 돌을 들어 올릴 수 있었다. 오직 내 안의 힘을 믿기만 한다면.
” (152-155쪽)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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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고 놀라지 마시라> - 당신을 동정하지 않아요. 우리는 같기 때문이에요.

 

케빈 마이클 코널리, <나를 보고 놀라지 마시라>, 달, 2010  


오토다케 히로타다,  닉 부이치치.  이 책의 저자 케빈 마이클 코널리 역시 그들과 같은 장애인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오토다케와 닉은 사지 모두 없는 반면 케빈은 양팔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큰 장애가 있지만, 긍정적이며 일반인들과 다르지 않게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 <나를 보고 놀라지 마시라>는 표제처럼 장애인인 케빈을 보며 놀라는 세계인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처음엔 책 속 곳곳에 사진이 무엇인가 했는데 케빈이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의 발인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가며 그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찍은 사진이란다.  사진 속 인물들의 표정은 비슷하다.  그 누구도 웃지 않으며 약간 놀란 듯한 혹은 힐끔거리는 또 혐오감을 느끼는 표정들.  하루에도 몇 십 번 누군가로 하여금 그런 시선을 받는 케빈은 어떨까?  또한 그의 높이에서 바라본 모습들은 일찍이 내가 보지 못한 세상이었다.  땅과 가깝고 수많은 무릎들에 둘러싸인 세상. 
 

  


출처: 케빈 마이클 코넬리 홈페이지 


케빈은 자신의 출생 당시의 상황부터 차분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아이를 갖고 그 과정에서 어떤 장애의 가능성도 발견하지 못한 채 출산한 아이었는데 두 다리가 없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끔찍한 현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장애를 극복하고 누구보다 삶을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에게는 부러우리만치 좋은 가족들이 있다.  지독하게 개성있는 생김새로 태어났다고 말해주는 사람들.  남들과 다를 뿐 틀린 것은 아니라는 격려.  케빈에게도 그랬다. 

이 책과 오토다케 히로타다의 <오체 불만족>을 읽으면서도 느낀 일인데 각 나라의 장애인을 위한 복지 상태를 알 수는 없지만 최소한 우리나라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매번 하게 된다.  오토다케 히로타다 역시 사지가 없지만, 수영을 할 수도 있다.  만약 우리나라의 수영장 어느 곳에 사지가 없는 장애인이 입장하려 한다면 모든 과정이 일반인의 그것과 같이 순조로울까?  모르긴 몰라도 방송국의 카메라를 대동하지 않고라면 힘들지 않을까 싶다.  마찬가지로 케빈은 스키 대회에서도 수상한 적이 있는데 다리가 없는 자가 우리나라 스키장에 가서 스키를 타겠다고 한다면 쉽게 허락할까?  모두 같은 뜻으로 거절할 것이다.  '위험할 수 있어요'  또 한 마디는 속으로 삼킬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낄 수 있어요'  그러나 이들에게는 이런 스포츠를 지원해주고 지도해주는 코치들이 있었다.  나는 이것이 몹시 부러웠다.  비록 내가 장애인은 아니지만, 만약 내가 장애인이라면 이런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함은 물론 누가 볼세라 칩거하며 지냈을 것이다. 

그들은 모든 것을 스스로 판단하기 전인 아기 때부터 부모로 부터 '넌 할 수 있어' 라는 메시지를 받으며 성장했을 것이다.  실제로 이 책에서는 폭우로 부엌이 물에 잠겼다는 말에 케빈의 엄마는 "괜찮아.  집이 몽땅 잠긴 것도 아닌데 뭐"(p.12) 라고 말했다고 한다.  케빈의 어머니의 이런 낙관적인 성향이 양육과정에도 분명 중요하게 작용을 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망설임과 주저함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케빈의 삶은 비장애인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는 사랑을 하기도 하고 여행을 할 수도 있었다.  그들이 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것일 것이다.  케빈의 가슴 아프고 애틋한 사랑의 이야기에는 내 마음마저 아련해왔다.  그리고 그의 스케이트보드 아래에는 '다리가 없는 사람의 스케이트보드입니다.  훔쳐가지 마세요" 라고 적어두었단다.  이 역시 그동안 그가 얼마나 많은 스케이트보드를 도둑맞았으며 그로 인해 난감한 상황들을 많이 만났음을 뜻한다.

케빈이 가장 분노했던 대목은 자신에게 적선하는 자들에게 있었다는 것은 주목해야 할 점이다.  비장애인은 장애인을 보면 안타깝고 측은한 마음을 갖게 된다.  그리고 금전적으로 도움을 주거나 그들에게는 비장애인에게 보다 더 편하고 수월한 과정을 제공한다.  그런데 케빈은 그들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그는 장애를 가진 것이 동정받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신체가 다를 뿐인데 건강한 신체를 갖지 않은 이들을 무조건 동정하고 특별한 시선을 보내는 일이 그들에게는 무관심만큼이나 상처가 되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그들에게 선행한답시고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불손한 행동은 조심해야 할 것 같다. 

케빈은 장애인이 아니다.  도리어 사지가 멀쩡하지만 스스로 아무것도 못한다고 최면을 거는 자가 진짜 장애인 아닐까.  케빈에게 메일을 보냈다. '나는 당신을 동정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당신과 우리는 같기 때문이예요.  누구도 완벽하게 행복한 사람은 없어요.  그러나 우리는 지금 행복하잖아요.  당신은 여행 마니아 같은데 기회가 되면 한국에도 놀러오세요' 라고.  그 어디선가 책에서 만난 모습 그대로 스케이트보드에 몸을 얹고 자유롭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기를. 
 

 
전 세계에 출시된 케빈 마이클 코넬리의 <나를 보고 놀라지 마시라>의 외국어판
 

* 케빈 마이클 코넬리의 웹 사이트 - 홈페이지: http://kevinmichaelconnolly.com/
                                            트위터: http://twitter.com/KevinConnolly
                                            온라인 전시회: http://www.therollingexhibition.com/       
 

오늘의 책을 리뷰한 '매우맑음' 님은?
밥은 굶어도 책만 읽으면 포만감을 느끼고 읽은 책은 반드시 서평으로 배설해야 후련함을 느끼는 평범한(?) 독자다. 편지, 낙서, 일기, 문자메시지 등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활자에 무한한 애정을 갖고 있으며 아날로그적 감성을 나누기 좋아하는 소녀 같은(!) 30대다.  현재 찾는 이 없는 서평 블로그를 금이야 옥이야 애지중지 가꾸고 있는 소박한(?) 블로거다.  블로그에 생명을 불어넣어 줄 구미호의 파란 구슬을 찾고 있으며 스마트폰 없이 140자 소통을 즐기는 가엾은 트위터리안이다.  http://twitter.com/kids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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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길에서 만난 ‘Yellow Butterfly’ - 꽃별 2부


 

길에서 만난 ‘Yellow Butterfly’ 

언젠가 길 위에서 만난 나비 얘기를 들은 거 같아요.
혼자서 막바지에 왔을 때 정말 힘들었어요. 그때가 4월 봄이라 나비들이 막 날아다니는데, 흰 나비만 있고 노랑나비는 없는 거예요. 노랑나비가 막 보고 싶었어요. 숲길을 걸으면서 ‘노랑나비를 보면 힘이 나서 걸을 텐데’라고 혼잣말을 했어요. 말동무가 없으니까 혼잣말을 하게 되더라고요. ‘구름아 너무 땡볕인 거 아니니? 양심적으로다가. 나무야 어디 그늘 없니?’ 이렇게요.(웃음)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면서 걷고 있는데….

있는데요?
노랑나비가 저 앞에서 길을 따라 오는 거예요. 그리고 제 옆을 스치고 지나갔어요. 순간 얼음이었죠. 또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때 ‘내가 부탁을 하면 누군가가 듣는구나’ 깨달았어요. 누구도 안 믿는다고 해도, 노랑나비는 길이 보내준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끝까지 잘 걸어라’는 응원처럼요. 잊지 못할 장면으로 가슴에 확 새겨졌어요. 너무너무 고맙고, 그 순간이 제가 힘들게 걸었던 모든 순간의 이유가 됐어요. ‘내가 여기 왜 왔을까’ 스스로 질문하면서 걸었는데, ‘내가 이 나비를 보려고 이 길을 와서 그 고생을 했구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음반 제목을 ‘Yellow Butterfly’라고 지었어요.

음반 제목에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지는 몰랐어요.
여행이라는 건 그런 걸 만날 수 있는 최고의 장소인거 같아요. 내가 찾으려고 했건 안했건 간에 어느 순간에 어마어마한 선물이 발견할 수 있죠. 일상생활에서도 겪을 수도 있지만 여행을 가지 않으면 그런 걸 겪기 힘들 거 같아요. 고생스럽지 않았다면 그 나비가 그렇게 소중하지 않았을 거 아니에요. 특별함이 있는 거죠.  

특별함 좋죠. 노랑나비 얘기를 들으니까 3번 트랙 ‘사월’이 생각나요. 왈츠 풍의 연주가 살랑거리며 나는 나비 같고, 클라이맥스에서 들려오는 해금 소리가 긴 여행 끝에서 만난 무언가 같아요.
“따단~ 따단~” 그 부분 말씀하시는 거죠? ‘사월’ 지금 모 화장품 광고에 나오는데.(웃음) 그 곡을 제가 직접 만들지는 않았어요. 대신 만든 사람하고 많은 얘기를 나눴죠. 그때 얘기도 들려줬고, 내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도 말해줬어요. 근데 그 곡 녹음하는데 정말 힘들었어요.  

왜요?
들어보셔서 아시겠지만 작고 절제된 소리를 내기가 힘들거든요. 막 내지르는 소리가 오히려 더 쉬워요. 들릴 듯 말 듯 하면서도 사람들의 마음에 닿을 수 있는 소리를 내기가 만만치 않아요. 그래서 연습도 많이 하고, 꽤 여러 번 녹음했어요. 작곡한 친구가 어찌나 요구하는 게 많던지.(웃음) 덕분에 좋은 음악 나와서 감사해요. 

별의 소리를 찾아서 

이번 음반 들으면서 꽃별 씨가 소리에 대한 욕심이 커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보통 뮤지션이 활동을 오래하면 소리 자체에 관심을 갖게 되잖아요.
맞아요. 여행을 하면서 많은 소리를 들었어요. 낯선 곳에서 들려오는 음악은 물론 흙 밟는 소리, 비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 바람이 나무에 부딪히는 소리, 나비가 스쳐가는 소리까지요. 그러다 보니 제 음악의 소리에도 관심이 가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다양한 악기들과 함께 연주를 했어요. 들으시는 분들은 그 속에서 다양한 감성을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기존 앨범에서 다른 악기들이 해금에 맞춰 연주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번 앨범은 연주자 각자가 자기의 소리를 내고 그 가운데서 꽃별 씨의 연주도 녹아드는 것 같았어요.
3집까지는 모든 게 저를 중심으로 준비가 됐었어요. 음, 잘 차려진 무대 위에 내가 ‘짠’하고 나타나서 아름답게 해금을 연주한다고 할까?(웃음) 근데 이번엔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다른 연주자 분들도 자유롭게 연주하는 가운데, 저도 제 소리를 내는 거죠. 

많은 소리 가운데 꽃별 씨가 자기 소리를 내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는 모습이 느껴졌어요. 그러다 보면 꽃별 씨만의 해금 소리를 찾을 수 있을 거 같아요. 해금 소리 하나만으로 사람들을 휘어잡을 수 있는.
아, 그거 제가 꼭 해보고 싶은 거예요. 오로지 해금 소리로만 사람들을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연주. 해금 소리만으로 넓은 공간을 가득 채울 수 있는, 5초 이상 해금 소리만 있어도 조금도 어색하지 않는 그런 음악이요. 안 그래도 요즘 해금하고 다른 악기 하나만 해서 소품집을 만들까 생각 중이었어요. 

피아노와 해금 정도?
아니요. 피아노는 소리가 너무 풍성해요. 퍼커션하고 해금이면 충분할 거 같아요. 미니멀하면서도 다양한 연주를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자유롭게 상상하는 걸 보면 꽃별 씨의 음악은 여행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리를 찾아가는 여정이요.

음악을 찾아서 여행을 하기도 하고, 여행을 하다가 소리를 찾기도 해요. 그 여정에서 ‘넌 왜 그 음악을 하니’라는 질문은 별 의미가 없는 거 같아요. ‘너는 전통악기를 하는 사람이니 이런 음악을 해야 해’라는 틀에 갇히고 싶지도 않고요. 전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면서, 그럴 리는 없겠지만, ‘아, 이 음악은 나를 위한 곡이야’라고 생각한 적도 많아요.(웃음) 

재밌는 상상인데요?
음악은 이유를 찾기 전에 먼저 듣잖아요. 그냥 좋으니까. 그럼 음악을 더 자유롭게 하고, 자유롭게 들을 수 있을 거 같아요. 

4집 음반을 듣고, 꽃별 씨와 대화를 나누니까 앞으로 어떤 음악을 할지 예측이 안 돼요. 그래서 더 기대가 되고요.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3집 앨범 나오고 이번 앨범이 3년 만에 나온 건데, 다음 앨범은 언제 나올지 모르겠어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일단 내년에 40일 여정으로 순례자의 길을 한 번 더 다녀오고 생각해볼까 해요.(웃음)  

하고 싶은 음악 다 하세요. 그렇게 앨범 30장 내면 꽃별 씨 음악 좋아하는 분들은 평생 들을 수 있겠네요. 꽃별 씨 음악의 변화도 함께 느낄 수 있고요.
30장이요? 어이쿠!(웃음) 

재밌고, 기묘하고, 가벼운 

여행도 많이 하시고, 좋은 음악도 많이 해주시길 바랍니다. 근데 책을 많이 읽으시는 거 같아요. 음악작업 하느라 시간 없을 텐데.
책은 생각지도 못해 봤던 걸 상상할 수 있게 해 줘서 재밌고, 겪어보지 않은 걸 가슴절절하게 느낄 수 있게 해 줘서 기묘하고, 우울할 때는 깔깔거리면서 읽을 수 있을 정도로 가볍고, 참 많은 걸주죠. 읽기만 하면 기분이 바뀔 수도 있다니. 얘기하다보니 신기하다. 그쵸~?  

네. 볼수록 다양한 매력이 있죠. 가슴 속에 품고 있는 책이 있다면?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요. 예술가로 산다는 것. 아, 고독하고 그래서 잔인하기도 한. 스스로에게나 타인에게나. 그래서 완성되는 무엇. 그리고 망설임 없이 허물어버릴 수도 있는. 스트릭랜드는 정말 미친 사람이었죠. 그린다는 것, 그 외에는 아무것도 그 사람의 존재에 영향을 줄 수가 없었어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삶과 사랑, 산다는 것 자체가 그리기 위한 것이었죠. 살기 위해서 작품을 만들고, 그 작품을 팔기 위해서 또 다른 작품을 만들어내야 하는 그런 변절한 예술가가 아니었던 거죠. 광기. 저는 가지지 못했어요. 그래서 이 책을 보면서 따끔거리고 가슴이 터질 것 같았죠. 얼마나 도덕적이어야 하고, 사회성이 있어야하는지 아직도 모르지만. 스스로 원한 걸 분명히 알고, 그렇게 살아간 스트릭랜드는 정직하고 순수한 사람이었단 생각이 들어요. 으윽, 난 정말 그렇게 살수 없는 것인가. 근데 딴 책도 얘기해도 돼요? 

물론이죠.

여행 얘기할 때도 나왔던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요. 무언가를 원하는데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모든 사람들이 읽어야 할 책이에요. 일본에서 혼자 살며 외롭게 음악 활동을 했던 저에게 가장 큰 가르침이자 불꽃이 되었던 책이에요. “무엇인가를 온 마음을 다해 원하면, 반드시 그렇게 된다. 온 우주가 그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 그렇다고 믿어요. 정말. 멋진 말이죠. 제가 항상 말하는 “진심으로 최선을 다한 것에는 후회하지 않는다”는 말도 이 책의 영향이고요. 그리고 하나만 더 할게요.

얼마든지. 저희 서점입니다.
히라노 게이치로에 <달>에 이런 대목이 있어요. “내 사랑은, 제발 들어주시오. 내 사랑은 단 한번 휘두른 검이오. 달군 불길이 그대로 남은, 거세게 달구어져 번쩍번쩍 빛이 나는 붉은 검이오. 뽑아서 휘두르면 사람도 단번에 베었을 것이오. 그러나 헛되이 그것을 증명할 필요가 있을까. 검이라면 반드시 그 속에 죽음을 감추고 있을 터. 일격에 죽일 죽음을! 칼집의 매듭은 그저 한번 풀면 족하요. 베지 못할 검이라면 그저 그걸로 끝일뿐! 지금 나는 그 검을 뽑았고. 당신 앞에서 뽑아 보인 것이오. 칼집은 일찌감치 내던졌소. 다시 집어넣을 수는 없어요! 당신은 그저, 그 칼자루를 쥐고 내 가슴팍 앞에 서기만 하면 되오. 그리고 혼신의 힘을 담아 찌르면 되오! 깊게깊게, 저 먼 곳으로 뚫고 나갈 만큼!” 뭐, 더 말 할 것도 없죠? 사랑에 대해서 이런 표현을 할 수 있다는 게 놀라울 뿐입니다. 근데 히라노 게이치로는 정말 저런 감정을 일으키는 사랑을 해 본 것일까요? 

 


나중에 인터뷰할 기회가 생기면 물어보겠습니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은 뭔가요?
히라노 게이치로의 <당신이 없었다 당신>이요. <달> 생각하다 갑자기 히라노가 그리워져서 지금 읽고 있어요.  

꽃별 씨는 여행도 많이 하고 해서 출판 제안도 받았을 거 같아요.
제안을 몇 번 받았어요.(웃음) 음, 누구에게나 자기 인생은 특별한 거겠죠. 그렇게 보면 누구든 당연하게도 특별히 사는 것이고요. 그러나 그게 다른 사람에게도 특별한 건지는 잘 모르죠. 저도 아직 잘 모르겠어요. 제가 저의 이야기들을 책으로 써내서 사람들에게 읽어보란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특별하게 살고 있는 건지. 그리고 저에게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 잘 음미하고 그 엄청난 혹은 사소한 의미들을 잘 깨우치고 있는지. 아직 시간이 필요한 게 아닐까. 먹을 것들을 아직 다 소화하지 못했는데 섣부르게 피와 살이 된 것처럼 얘기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돼요.  

그런 고민을 한다는 건 반은 준비가 된 것 같은데요?
좀 더 시간이 지난 후에 해 보려고요. 그래서 조금씩 쓰고 있답니다. 일기는 어느 정도 꾸준히 써왔고, 여행기들은 제대로 써보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책, 언젠가 할 수도 있겠죠?(웃음) 근데 짧은 소설이나 편지 같은 것들을 쓰려고 하면 꼭 그 즈음 잃었던 책들과 문체가 닮아있어서 다시 읽으며 당황하죠. 김훈의 <칼의 노래> 읽고 나서 쓴 글들은 어찌나 비장하고 메마르고 아프던지. 제 새로워진(?) 문체를 보며 헛웃음이 나오더라고요. 아, 난 왜 이리도 영향을 잘 받는 걸까요?(웃음)

에필로그: 이렇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을 받으며 인터뷰는 끝이 났다. 1시간 반이 조금 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무언가 하고자 함’이 가득한 그녀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지치면 쉬고, 힘들면 우는 그녀는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그 식지 않은 열정이 음악과 (언젠가 빛을 볼) 글로 오랫동안 기억되기를 바란다.

꽃별과의 인터뷰 즐거우셨나요? 반디앤루니스 오늘의 앨범 인터뷰 기사에 댓글을 남겨 주시면 신청자 중 5분을 선정해 꽃별의 4집 앨범 "Yellow Butterfly" 사인 CD 5장을 추첨을 통해 선물로 드립니다. 많이 참가해주세요~ ^^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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