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에 해당되는 글 12건

  1. 2014.12.31 《폴링 인 폴》 -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2. 2012.08.22 [단편소설의 맛] 김애란, <너의 여름은 어떠니>
  3. 2012.06.20 [단편소설의 맛] 윤해서, <아>
  4. 2012.06.08 [단편소설의 맛] 최제훈, <위험한 비유>
  5. 2012.05.29 [단편소설의 맛/보다] 열두 번째 소설가를 부탁해
  6. 2012.04.20 [단편소설의 맛/보다] 《여름》의 김유진, 지금 맛보러 갑니다
  7. 2012.04.02 [단편소설의 맛] 백수린, <밤의 수족관>
  8. 2012.02.17 [단편소설의 맛] 정용준, <사랑해서 그랬습니다>
  9. 2012.02.03 [단편소설의 맛] 김유진, <나뭇잎 아래, 물고기의 뼈>
  10. 2012.01.20 [단편소설의 맛] 김태용, <알게 될 거야>

《폴링 인 폴》 -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백수린 | 《폴링 인 폴》 | 문학동네 | 2014

 

‘자신의 글이 소설이라 명명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아 괴로웠다’는 백수린 작가의 소설집 《폴링 인 폴》을 읽었다. 남의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인물들의 감정과 심리가 세밀하게 묘사돼 있었다. 특별히 걸리는 부분은 없었다. 오히려 쉽게 읽혔다. 그게 잘못이었을까. 나는 빠르게 읽기에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정확하게 읽는 데는 분명 실패했다. 아홉 편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하나의 메시지를 발견해내기까지 너무도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것이 불가능의 영역이었다 할지라도, 나는 찾고 싶었고, 나름의 방식으로 명명하고 싶었다.

‘감자의 실종’으로 시작돼 ‘꽃피는 봄이 오면’으로 끝나는 9편의 소설에는 각기 다른 인물이 등장한다. 소설에는 저마다의 시간과 계절이 있고, 갈등과 고민이 존재한다.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한국이 주 무대이기는 하나, 때로 미국과 독일 또는 프랑스에서도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리고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각각의 삶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상상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지극히 평범한, 그래서 상투적이지만 동시에 보편적이기도 한, 개별적인 삶의 이야기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내뱉는 문장들은 어쩌면 그렇게 상투적이었을까. 한두 문장으로 요약된 타인의 삶이 얼마나 진부해질 수 있는가를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그와 나 사이에 있었던 무수한 시간들이, 기억들이, 몸짓들이, 지극히 통속적인 한 문장으로 완결되었다. 나는 소음 속에서 입을 굳게 닫았다. (‘거짓말 연습’, 190쪽)

‘거짓말 연습’은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남편의 외도로 평온했던 결혼생활의 단꿈이 깨져버린 주인공 ‘나’는 예정에 없단 프랑스 유학을 떠난다. 남들의 시선으로부터 해방돼 고요함이 절실했던 ‘나’에게 어찌 보면 유학은 당연한 선택이었다. 떠나왔지만, 그렇다고 그곳에 제대로 정착한 생활을 이어가는 것도 아니다. ‘나는 내가 한 달 후 어디에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어떤 주소를 적어 내야 하는지 망설여졌다.’

잠시 머무는 거처인데다, 언제 다시 만날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기에 ‘나’는 어학원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솔직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이 묻는 말에 대한 대답의 목적은 진실보다는 스킬에 있었기 때문이다. 도리어 다채로운 거짓 상상이 언어적 소통에는 득이 됐다.

이곳에 온 지 몇 달 만에 깨닫게 된 사실은 떠나기로 예정되어 있는 사람들은 상대에게 모든 것을 드러낼 필요가 없다는 점이었다. 떠날 사람들은 보여줄 수 있는 만큼, 아니 보여줘도 되는 만큼, 아니 보여주고 싶은 만큼만을 드러낸 채로 제한된 삶을 살았다. 그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곳에 온 이래 나에게는 거짓말을 하는 버릇이 생겼다. (‘거짓말 연습’, 182쪽)

한국에서 온 ‘내’가 어떤 사람이었고, 어떻게 살아왔으며,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지는 결코 중요치 않았다. 어차피 잠시 머무르다 곧 떠날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래서 거짓말을 하기 시작한다. ‘이곳에 진실한 것이 하나라도 존재했다면 그것은 다만 우리가 끊임없이 서로에게 말을 건네고 있는 행위, 그것뿐이었을 것이다.’ 물론 절대 이해하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엄마를 이해하게 되는 지점도 주인공 ‘나’가 거짓말을 하게 되면서부터다.

엄마는 이 세계가 그럴듯한 거짓말들에 의해서 견고히 다져질 수 있다는 것을 나에게 알려주려 했던 것이었는지도 몰랐다. 처음으로 엄마를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어쩌면 거짓말이야말로 엄마가 나에게 가르쳐주려 했던 가장 건전한 소통방식이었는지도. (‘거짓말 연습’, 196쪽)

경계에서 ‘거짓말’로 삶을 지탱한 반면, ‘밤의 수족관’의 주인공 ‘나’는 어느 누구도 믿어주지 않는 자신만의 진실을 지켜내려다 그만 삶을 잃어버린다. 스타와의 사랑, 그것은 사랑을 사랑이라 말할 수 없는, 너무도 비현실적인 진실이었다. 그것을 선택하고, 지키기 위해서 ‘나’는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고, 포기하고, 단념하고, 당연하게 감수해야 했다.

당신이라는 사람의 사랑을 홀로 독차지한다는 것은 날카로운 칼날을 몰래 삼키는 것과도 같지. 아무와도 공유할 수 없는 섬뜩한 고통이 가끔씩 내 안을 찢기라도 하듯, 훑으며 지나가. 당신을 내 사람이라 말할 수 없고, 내가 당신의 사랑이라 밝힐 수 없다는 데서 기인한 고통. 당신이 우리의 결혼 사실조차 비밀로 하고 싶다 했을 때, 나는 그것마저도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했어. 스타의 뒤에서 사는 그림자 같은 삶. 역사 속 유명한 스타를 사랑한 여자들은 모두들 숙명처럼 그런 삶을 짊어지고 살아갔잖아. 당신은 언제나 때가 되면 우리의 결혼의 결혼사실을 밝히겠다고 약속했지. 그런데, 당신. 그때는 대체 언제 오는 거야? (‘밤의 수족관’, 132쪽)

세상에 감출 수 없는 것 중의 하나가 ‘사랑’이라는데, 그리고 가끔은 그 ‘사랑’이란 것이 누군가에게 말하면서 더욱 선명해지고, 커지기도 하는 법인데. 아무리 ‘사랑’이 둘만의 은밀한 감정이라 하더라도 말할 수 없는 그것이 정말 ‘사랑’일 수 있을까. 만인의 스타이면서 나만의 유일한 남자인 그의 아이를 잃어버리고, 확신했던 자신의 사랑마저도 잃어버리는 주인공 ‘나’를 보면서, 어쩌면 이 모든 상황이 그녀의 삐뚤어진 집착과 오해가 만들어낸 허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림자 같은 삶을 살면서도 ‘사랑’을 지켜내기 위해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되묻는 그녀가 애처롭고 가여웠다. 앞뒤 맥락과 자초지종을 알 수도, 알 필요도 없지만 어쨌든 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지나가는 다람쥐에게조차도 들켜서는 안 되는 것이 자신의 사랑이었다.”고 말한 여배우가 떠올랐다. 삶에서 사랑이 전부인 사람에게, 그 사랑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면, 그 말할 수 없는 상황 자체를 철저하게 지켜내야만 했을 것이다. 그래야 자기 존재도 증명될 수 있으니까. 더욱 철저하게 고립되어야만 존재할 수 있는 주인공 ‘나’가 아이를 놓아버린 건지, 정신을 놓아버린 건지 스스로 모를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것은 너무도 예견돼 있었다.

나는 정말 묻고 싶었어. 도대체, 실체란 것은 무엇이야? A라는 사람과 B라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봐. 그때, A라는 사람은 오로지 B라는 사람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B라는 사람이 A라는 사람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듯이. 그것은 당연한 거지. 그러니까 만약, 누군가가…… 그래, 어떤 영화에서처럼, B에 대한 A의 기억을 다 지워버리면, 그러면 B는 A에게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눈을 감으면 눈앞의 모든 것이 사라지듯이 말이야. ('밤의 수족관‘, 136쪽)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건 ‘폴링 인 폴’의 주인공 ‘나’ 또한 마찬가지다. 자신보다 한참 어린 남자아이를 짝사랑하게 되는 그녀는 그것이 애초에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앞서는 마음을 붙잡지 못한다. ‘그렇지, 넌 미국을 선택하지 않았지. 나를 선택하지도 않았고. 무슨 이야기를 들어도 생각은 자꾸만 한쪽으로 흘렀다.’

폴의 부족한 어휘력과 부정확한 발음으로 인한 커뮤니케이션의 오해를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은 그녀 자신뿐이라고 생각해보아도, 그것으로 폴의 마음을 붙잡을 수 없다는 것 또한 그녀는 안다. 폴이 한국에 온 목적은 한국인 누군가와, 혹은 아버지와 대화를 하기 위해서가 아닌 까닭이다.

나는 결코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해 한국에 온 것이 아니었어요. 내가 한국말을 배우려고 결심한 것도 아버지와 communicate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어요. 나는 나를 이해하고 싶었어요. 내가 벗어던지려 해도 절대, 절대 벗을 수 없는 내 피부색의 역사를 말이에요. (‘폴링인폴’, 80쪽)

그 순간, 그녀는 폴을 잃고 있다고 실감했다.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가장 절실한 사연이 타인 앞에서는 한없이 진부해지는’ 것이 삶이고, 또한 ‘삶이란 신파와 진부, 통속과 전형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말해질 수밖에 없는 것들에 지속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녀 자신이 폴의 정체성과 존재에 대한 고민을 들은 유일한 상대였다는 것에서 위안을 얻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수많은 문장들에 밑줄 긋던 나는 ‘자전거 도둑’과 ‘감자의 실종’을 다시 읽으면서 어렴풋하게나마 아홉 편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나름의 단어를 찾을 수 있었다. 다양한 에피소드에서 공통적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결국 ‘존재’와 ‘이해’라고 보았다. 진부하고, 평범한 개인적 삶이지만, 그럼에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나의 존재를, 나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이해받고 싶어 하는 이야기. 언어에 의해 삶이 규정되는 한, 이해받기 위해서는 일단 오해하더라도 말해야만 한다는 것. 그러고 보니 작가는 소설마다 끊임없이 존재와 이해를 언급하고 있었다.

당신도 들었지? 물고기들은 기억력이 삼 초밖에 안 된다잖아. 아닌가? 금붕어만 그런 거던가? 갑자기 헷갈리네. 어쨌든 기억력이 단 삼 초뿐인 생명체의 삶이란 어떤 것일까. 불현듯 궁금해져. 삼 초 후면 소멸될 것이 자명한 불안과 두려움이라면 삶은 훨씬 수월해질까. 아니, 어쩌면 지금의 행복과 짜릿함이 삼 초 후면 또다시 흔적도 없이 사라질 거라는 불안에 삶은 고통의 연속이 되어버릴지도. 분명한 것은 기억이 오직 삼 초밖에 지속되지 않는다면 그 생명에게 역사 같은 것은 존재할 수 없으리라는 거야. 그렇지? 결국에는 사랑도, 슬픔도, 아니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확신마저도. 그것들은 모두 기억에 의해 지속될 수 있는 것일 테니까. (‘밤의 수족관’, 121쪽)

그녀는 술에 취해 하천으로 뛰어드는 사람의 마음을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었다. 그러나 비단, 이해할 수 없는 것이 그것 하나뿐일까. (‘부드럽고 그윽하게 그이가 웃음짓네’, 114쪽)

우리는 서로의 처지를 너무 잘 알았다. 잘 나가는 친구들에게 손 벌리기 민망할 때, 우리는 서로의 주머니를 털었다. 세상으로부터 미끄러진다는 느낌을 더 이상 받지 않기 위해 서로에게 뿌리를 내렸다. 어둠을 움켜쥐고 자라는 음지식물처럼. ‘우리’라는 견고한 껍질 안에서 우리는 그 누구보다 안전했다. 우리에게는 비밀이 없었고 모든 것은 공유되었다. 가족보다도 가깝고 서로를 분신처럼 아꼈던 우리. 우리의 공동생활은 삼 년 팔 개월 동안 아무 탈 없이 지속되었다. ('자전거 도둑‘, 36쪽)

문득, 아무에게도 호명되지 않는 내 이름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아아, 안나. 너는 왜 이렇게 빛나는 것일까. 나는 너를 미워하고 싶지 않은데. 불현듯, 이 모든 것이 그놈의 자전거 때문이라는 데 생각이 다시 미쳤다. 자전거. 자전거만 안나에게서 빼앗아버린다면. 그렇게만 하면 원인을 알 수 없는 이 부당한 억울함도 사라지고 말 것만 같았다. 한번 떠오른 생각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자전거 도둑’, 53쪽)

언어가 사고의 집이듯 이해받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결국 언어로 파악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동시에 언어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비언어, 즉 태도와 행동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쉽게 잊었던 그것을, 나는 너무도 직접적으로 박힌 한 문장 덕분에 오래도록 상기시킬 수 있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곰자'님은?

사람들의 사소한 일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알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이 제 안에 내재돼 있는 것인지 보고, 듣는 것을 좋아하고요. 언젠가 제가 마음으로 전해들은 무수한 이야기를 잘 엮어,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과 세상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 있기를 꿈꾸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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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의 맛] 김애란, <너의 여름은 어떠니>

평소 ‘끝물’이라는 말을 즐겨 씁니다. ‘과일, 푸성귀, 해산물 따위에서 그 해의 맨 나중에 나는 것’을 뜻하는 이 단어의 용도는 ‘과일, 푸성귀, 해산물 따위’가 아니라도 많습니다. 저는 계절이나 시기를 뜻하는 명사에 접붙여 쓰곤 합니다. 이를테면 사춘기 끝물이라거나 연애 끝물이라는 식으로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끝이 있으면 시작이 있)는 것이 거의 모든 인생사. 무엇보다 생생한 젊음이나 사랑도 이 흐름을 피하진 못합니다. 이러한 시작과 끝을 반복하면서도 사람들은 그 사이, 한복판에서 ‘젊구나!’ 혹은 ‘사랑이구나!’라고 느끼지 못합니다. ‘끝물’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알아차리지요. ‘그땐 참 젊었지.’ 혹은 ‘그건 사랑이었네.’라고요. 실감할 시간은 다 끝나 가는데도 말이죠.

 

‘끝물’이 환기하는 정서란 이처럼 묘한 구석이 있습니다. 왠지 억울하지만, 그런 면 때문에 사람들은 또 다른 젊음을 꿈꾸거나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기도 합니다. 지금 가는 계절이 언젠가 돌아올 것을 알듯이 말이죠. 아, 이거 소설을 읽기도 전에 너무 일찍 결론을 내버린 건 아닌가 싶네요. 바야흐로 여름 끝물입니다. 때맞춰 김애란 신간이 출간되었습니다. 세 번째 소설집인데요. <너의 여름은 어떠니>를 골라 보았습니다. 오래 전, 계간지에서 접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제 ‘끝물’이라고 부를 수도 없을 만큼 저만치로 가 버린 시절의 일이죠. 지금 이 순간도 그리 멀어질 것을 예감하며, 소설을 다시 읽어 나갑니다.

 

선배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9쪽)

 

아직 상복을 벗지 못한 채 울고 있는 나를, 여름옷을 주렁주렁 매단 2단 옷걸이가 무심히 그리고 오랫동안 굽어보고 있었다. (44쪽)

 

이야기를 이루는 시간의 축은 세 가지입니다. ‘선배’를 만나는 현재의 여름, ‘선배’를 홀로 연모했던 과거의 여름, 그보다 더 먼 과거의 여름. 세 번째 여름은 어린 시절 친구 ‘병만’에 관한 기억입니다. ‘병만’은 물놀이 중 물에 빠진 ‘나’를 구한 적이 있습니다. 부탁이 있다며 ‘선배’에게 연락이 온 날은 마침 ‘병만’의 장례식 날이고요. 잠시 망설이지만, 과거의 여름을 기억하는 ‘나’는 거절하지 못합니다. ‘선배’에게 받은 게 많았다고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현재의 여름, ‘선배’의 밥벌이와 관련된 부탁을 들어주는 시간은 ‘나’를 초라하게 만듭니다. ‘선배’와의 관계에 남아 있다고 여겼던, 헤아릴수록 환해지던 기억들은 사실 과거에 불과합니다. 유행이 지난 여름옷처럼 남루합니다. 그 허탈감 속에서 ‘나’는 ‘병만’을 떠올립니다.

 

“손에 걸리는 거라곤 쥐자마자 이내 부서지는 몇 움큼의 강물이 전부”(41쪽)였던 그때, ‘나’는 ‘병만’의 팔을 잡았습니다. 당시 ‘병만’의 팔뚝에는 멍이 들었던 것을 기억하는 ‘나’는 “내가 모르는 곳에서, 내가 아는, 혹은 모르는 누군가가 나 때문에 많이 아팠을 거라는 느낌”(44쪽)에 울음을 터뜨립니다. 그것은 어쩌면 ‘병만’에게 투영한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위로이기도 합니다. 여름 끝물에, 어떤 시절의 끝에서 한창때를 회고하며 기뻐하거나 오롯이 슬퍼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여름을 지나온 본인뿐이니까요. 여름이었구나. 이제야 그런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너의 여름은 어떠니>라는 질문을 문득 건네 봅니다.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hebong2000@bandinlunis.com)

 

  

 

* 김애란
1980년 인천 출생.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 졸업. 2002년 제1회 대산대학문학상에 단편 <노크하지 않는 집> 당선. 소설집 《달려라, 아비》와 《침이 고인다》와 《비행운》,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이 있음.

 

* 현재까지 발표작
<너의 여름은 어떠니>
| 《비행운》에 게재
《두근두근 내 인생》 | 창비 | 2011
《침이 고인다》 | 문학과지성사 | 2007
《달려라, 아비》 | 창비 |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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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의 맛] 윤해서, <아>

사람은 어떤 대상을 규정하는 ‘범주’를 저마다 설정합니다. ‘범주’를 일상적으로는 ‘이 정도’나 ‘최소한(최대한)’으로 바꿔 말하곤 합니다. ‘사랑한다면 이 정도는 해 줘야 돼.’ 혹은 ‘최소한 시간약속은 지켜야지.’와 같은 활용형을 보세요. ‘범주’는 이처럼 무언가를 선택·판단하는 기준입니다. 재밌는 건 굉장히 유동적이라는 겁니다. 아무것도 해 주지 않은 상대에게 홀딱 반하거나, 그 상대가 약속보다 한 시간을 늦어도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간 나름의 ‘범주’로 쌓은 당신의 세계는 이미 격변한 겁니다.

 

같은 의미에서 독서는 인식의 ‘범주’를 매번 새롭게 정해 나가는, 그러니까 확장하는 행위입니다. 소설을 읽는 일도 그래요. 말은 안 해도 다들 ‘내가 생각하는 소설은 이런 거!’라는 기준을 가지고 있을 터. 하지만 세상은 넓고 소설은 많습니다. 지난 [단편소설의 맛]에서 소개한 <위험한 비유>를 기억하시나요?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읽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요. 이렇듯 ‘범주’가 흔들린 지 며칠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맛보고 말았습니다. <아>라는 단편소설을요.

 

5. 고프다

 

긴 오후를, 단단한 저녁을, 무거운 밤을,
다시 찾아온 새벽과 낯선 아침을
온통 한 얼굴의 여자와 보냈다.
이 도시의 말로.
나는 빛도 거리도 조절하지 못한다.
모든 허기로부터. 깊은 어둠 속에서.
내가 내 죄를 사할 수 없다.
말로의 말로. (287쪽)

 

59. 희미하다

 

이 도시의 말로. 내가 처음 쓴 문장.
(…)
빠까 안개 (356쪽)

 

《문학과사회 2010년 여름호》중에서

 

어떠세요? 저는 현기증이 났어요. ‘범주’라는 성이 또 다시 흔들렸기 때문입니다. <아>는 말에 관한, 그 말들이 모인 소설에 관한, 그 소설을 쓰는(읽는) 인간에 관한 소설입니다. 그 이야기를 풀어 놓기 위해 윤해서가 끌어온 것은 ‘말로’라는 대상과 ‘말로의 말’이에요. 번호를 매겼음에도 분절된 듯 보이는 각각의 에피소드에서 ‘나’는 끝없이 이야기해야만 하는 주술사처럼 무수한 말을 중얼거립니다. 이 모습은 꼭 “소설이 뭔가, 그러면 시는 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돼요. 그런데 그렇게 가다 보니 인간은 뭐지? 하는 식으로 자꾸 범위가 커져서” <아>를 쓰게 됐다는 소설가 자신 같습니다.

 

그림, 도표, 타이포 등 문자 이외의 이미지가 넘나드는 이 소설을 가리켜 ‘이런저런 내용이에요.’라고 단정하지는 못하겠어요. 사실은 저도 재차 읽어 볼 참이거든요. 단, 한 가지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소설을 이루고 있는 언어의 가장 작은 단위로 내려가보자는 생각”을 한다는 윤해서가 몸소 보여주듯 소설은 ‘언어로 쓴’ 결과물인 동시에 ‘언어를 쓰는’ 행위이며, 그 행위가 낡은 ‘범주’들을 과감하게 돌파하고 있다는 것을요!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hebong2000@bandinlunis.com)

 

 

 

* 윤해서
1981년 경기도 부천 출생. 2010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 현재까지 발표작
<최초의 자살> | 《문학과사회 2010년 여름호》에 게재
<?다> | ‘문장웹진 2010년 10월호’에 게재
<아> | 《제2회 웹진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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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의 맛] 최제훈, <위험한 비유>

단편소설 분량을 아시는 분! 통상적으로 200자 원고지 80∼100매 안팎입니다. 감이 잘 안 오실 텐데요. A4(글자 크기 10일 때)는 빡빡하게 쓴다고 치면 10~12매에 해당합니다. 앉은 자리에서 다 읽자면 한 시간도 안 걸리는데 수치로 환산하면 결코 짧지 않습니다. 그러니 쓰는 입장에서는 어떻겠어요. 하고 싶은 이야기 한 가지도 온전히 담지 못하는 것이 단편소설이라는 형식입니다. 그렇지만 장편 못지않은 단편을 써내는 것이 소설가라는 사람이죠. 이 형식은 그들에게 한계일까요, 아니면 가능성일까요?

 

한국일보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최제훈은 “소설의 정의나 역할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는다. 그런 짐을 소설에 미리 지우기보다 자유롭게 풀어놓고 그 가능성을 마음껏 따라가보고 싶다.”라며 소감을 밝힌 바 있는데요. 한 마디로 “나에게 소설은 가능성이다!”라고 답하는 것 같죠. 이 말이 잘 와 닿지 않는다면, 역시 소설을 통해 확인할 수밖에요.

 

나는 당신이다. (166쪽)

 

당신은 나다. (184쪽)

 

《문학동네 2012년 봄호》중에서

 

처음과 마지막이 완벽한 대구를 이루고 있습니다. ‘나’가 열고 ‘당신’이 닫는 이야기는 대체 무엇일까요. 단 두 개의 문장만으로는 <위험한 비유>가 도대체 어떤 맛인지 ‘예측 불가’입니다. 그래요. 이 소설은 ‘예측 불가’ 자체입니다. 여덟 개의 에피소드가 계속해서 이어지는데요. 인물, 시공간, 사건들이 매번 완전히 달라집니다. 정작 이야기보다 그 자체의 무한한 속성을 체험하게 된다고 할까요. 파편 같은 소설을 아우르는 것은 ‘나’와 ‘당신’의 대구입니다. 저에게는 ‘소설’과 ‘작가’ 혹은 ‘작가’와 ‘소설’을 이르는 것처럼 보입니다. 한 가지 의미로 규정되기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정의나 역할에 연연하는 세상에는 위험한 비유겠죠. 하지만 뭔 상관? 이야기를 탐하는 이들에게는 곧 매혹적인 초대장인 걸요.

 

《문학동네 2012년 봄호》는 자전소설인 <위험한 비유>와 함께 작가초상 <소설가 J의 작명법>을 싣고 있습니다. 소설가 정이현이 쓴 것으로 최제훈과 동문수학한 시절이 있다고 합니다. 합평모임 중 자신의 소설에 쏟아지는 비판에 “누나, 근데 말이에요. 왜 꼭 다 똑같이 써야 하죠?”라고 되묻던 한 청년을, 정이현은 회고합니다. “그의 물음표가 내 후두부를 어떤 충격으로 강타했는지 고백할 기회가 없었다. 소설은 ‘다 똑같이’ 쓰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저마다의 무엇이라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은 거다.”라고 이어지는 다음 문장에서 저는 잠시 그녀가 되어 봅니다. 그 시절부터 현재까지, 또 앞으로도 최제훈의 물음표는 두루두루 전이될 것 같습니다.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hebong2000@bandinlunis.com)

 

 

 

* 최제훈
1973년 서울 출생. 2007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한국일보문학상 수상. 소설집 《퀴르발 남작의 성》, 장편소설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이 있다.

 

* 현재까지 발표 작품
《퀴르발 남작의 성》 | 문학과지성사 | 2010
《일곱 개의 고양이 눈》 | 자음과모음 | 2011
<위험한 비유> | 《문학동네 2012년 봄호》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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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의 맛/보다] 열두 번째 소설가를 부탁해

안녕하세요!

 

부정기적으로, 불시에, 불특정다수를 겨냥하는 [단편소설의 맛/보다]입니다. 후기가 조금 늦었네요. 지난 5월 8일, 많은 독자 분들의 성원에 힘입어 김유진 소설가와의 만남을 가졌습니다. 그 인터뷰 아직도 안 읽었다면 클릭! 이미 완독하셨다면 다음 만남으로 넘어가셔야죠. 바로 [단편소설의 맛]입니다. 그거 아세요? [단편소설의 맛]이 11회씩이나 연재했다는 사실! 아무도 모르게 지나가버린 10회 연재를 자축하며, 뒤늦게나마 깔때기를 들이대려고 합니다. 도저히 못 봐주겠다면 조용히 스크롤을 내리셔도 좋겠습니다. 하하하.

 

 

격주마다 맛본 단편소설이 어느덧 열한 편! 동일인의 작품이라면 소설집 한 권을 묶을 수 있는 분량입니다. (참 잘했죠?) 손보미, 박솔뫼, 김태용, 김유진, 정용준, 임성순, 서유미, 백수린, 주원규, 이영훈, 윤고은을 소개하기까지 개인적인 취향과 판단에만 의존해 왔는데요. 그래도 관련 작품이 좋은 상을 받거나 때 맞춰 몇몇 작가들의 소설집이 출간되어 흐뭇한 날도 있었습니다. (참 잘했죠?) 저 같은 독자도 꼭 쓸모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는 다른 독자 분들의 혜안을 빌리고자 합니다. 이 소설가한테 끌린다. 나는 이 소설이 좋더라. 이런 소설을 읽고 싶다. 기타 등등. 이와 같은 의견들 수시로 접수 받습니다. 가벼운 댓글도 환영하고요. 에디터의 메일주소로 긴 의견을 보내주셔도 좋습니다. 12회 연재부터는 여러분과 함께 만드는 [단편소설의 맛]을 선보이겠습니다. 지켜봐주세요. 제발~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hebong2000@bandinlunis.com)

 

[단편소설의 맛]에 참여하기

 

1. 내가 찜한 단편소설을 생각한다.

2. 반디앤루니스 공식 블로그에 접속한다.

3. [단편소설의 맛] 포스팅에 댓글로 알려준다.

4. 할 말이 많아지면 메일(hebong2000@bandinlunis.com)을 보낸다.

5. 내친김에 둘 다 한다.

6. 둘 다 귀찮다면 손가락 모양(다음뷰 버튼)을 클릭한다.

 

* 추천수가 올라가면 더 많은 독자들에게 국내문학을 소개할 수 있어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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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의 맛/보다] 《여름》의 김유진, 지금 맛보러 갑니다

 

안녕하세요!

 

[단편소설의 맛/보다]는 여러분이 애독하시는(?) [단편소설의 맛]의 번외 꼭지입니다. [단편소설의 맛]에서 소개한 소설, 그 맛의 비법을 캐는 전초전이라고 할까요. 저 혼자 떠들어 봐야 뭐하나요. 진짜 궁금증은 도무지 풀 수 없는 걸요.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그 맛을 내는 장인을 직접 만나기로요.

 

벌써 두근두근 하시나요? 진정하세요. 아직 소개도 안 했습니다. 첫 번째로 만나게 될 장인은 김유진입니다. 아는 분들도, 잘 모르는 분들도 있겠지요. 8년차 소설가로 [단편소설의 맛]에서는 <나뭇잎 아래, 물고기의 뼈>를 소개한 바 있습니다. 최근에 신간이 나왔는데요. 때 맞춰 인터뷰를 추진하고자 합니다. 먼저 아래 레시피를 참고하시죠. 

 

김유진이라는 맛, 조금 긴 레시피

 

 

1. 1981년, 그녀는 서울에 태어납니다.

 

2. 2004년, 문학동네 신인상에 단편소설 <늑대의 문장>이 당선됩니다. 그녀의 등단작이기도 한 이 소설은 “신선한 상상력과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묘사가 인상적이다. 인위적인 접속을 생략한 채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단문들의 연쇄가 이 그로테스크한 풍경을 적절하게 담아내고 있다.”라는 평가를 받았고, 오 년 후 첫 소설집의 표제작이 됩니다.

 

3. 2009년, 첫 소설집 《늑대의 문장》의 해설을 쓴 평론가 김형중은 “목소리의 무력함, 말하기의 무력함, 소설이란 장르 자체의 무력함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는 데”에서 김유진이라는 소설가를 신뢰한다고 말합니다. 이를 증명하듯 2011년 장편소설 《숨은 밤》을 발표합니다. 이 작품에 대해 “채 형태를 갖추기도 전에 사라지는, 혹은 사라질 미완의 감정에 대해 적었다.”라고 밝히는 그녀는 차츰 자신만의 색을 띠어 갑니다.

 

4. 2012년, 두 번째 소설집 《여름》을 발표합니다. 장편소설까지 더하면 이것은 세 번째 책입니다. 출간에 앞서 《2012년 문학과사회 봄호》에 산문을 게재합니다. 그녀는 한때 “누구도 본 적 없는 압도적인 풍경”을 그리고 싶었으나, 지금은 “가능한 한 평범한 것”을 “노래”하겠다고 쓰고 있습니다. 이 산문의 제목은 <멀어지는 것,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녀에게 남아 있는 것들이 점점 궁금합니다.

 

5. 2012년, 그녀를 [서점에서 만난 사람] 꼭지에서 맛보입니다.

 

 

 

그리하여!

 

반디앤루니스 독자 여러분의 질문을 공모합니다.여름》을 비롯한 소설, 김유진이라는 소설가에게 보내는 궁금증 및 각종 추파. 저희가 전달하겠습니다.

 

참여 방법: 공식 블로그 본 게시글에 머리말 [참여]로 댓글 작성
              * 반디앤루니스 홈페이지에 로그인하면 참여 가능합니다.
              * 다음, 네이버, 티스토리, 이글루스, 싸이월드 블로그 댓글은 무효입니다.
참여 마감: 4월 25일 수요일

결과 발표: 4월 27일 금요일 (3명 추첨 및 개별 통보)

 

추첨된 독자 분들에게 반딧불 각 10,000점씩을 지급합니다.

반딧불은 적립금으로 전환하면 현금처럼 바로 사용 가능합니다.

 

많은 참여 바랍니다. 제발~

 

[단편소설의 맛/보다] 참여 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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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의 맛] 백수린, <밤의 수족관>

저는 소설을 씁니다. [단편소설의 맛]에서 말하자니 커밍아웃을 하는 기분인데요. 정확히는 지망생입니다. 그래서 쓰는 사람의 눈으로도 소설을 읽게 됩니다. 이야기의 얼개를 머릿속에 그려 본다거나, 탐나는 문장을 필사한다거나, 묘사나 서사의 문제를 생각합니다. ‘탐난다’라는 표현을 썼는데요. 훔쳐서라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을 정도의 소설이 있다면, 소설에 가 닿지 못해 자괴감에 빠지는 내가 있습니다. ‘탐난다’는 그런 상태에 대한 은유라고 할까요. 말 한 번 참 어렵게 하죠잉? 무언가를 설명하는 일이란 게 그렇습니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대상이라도 어디부터 말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하물며 공백은 어떨까요. 이를테면 텅 빈 공간, 부재하는 마음, 타인의 무표정 같은 것들.

 

백수린은 그러한 공백의 풍경을 자신만의 언어로 형상화했습니다. <밤의 수족관>에서요. 이 소설에는 톱스타와 비밀결혼을 한 ‘나’가 등장합니다. 그들 사이에는 ‘아이’가 있습니다. ‘나’는 톱스타와 식사 약속을 한 레스토랑 건너편 아쿠아리움에서 ‘아이’를 잃어버립니다. 그리고 소설이 끝날 때까지 ‘아이’를 찾아 헤매지요. 혹시 아침드라마 같은 줄거리라고 생각하시나요? 하지만 이 소설은 그것과는 종류가 다릅니다.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을 읽어 보시죠.

 

우리는 아쿠아리움의 수족관 사이를 거닐며 시간을 때우고 있어. (311쪽)

 

내 아이는 도대체 지금 어디에 있다는 말입니까. (330쪽)

 

《문학동네 2011 겨울》

 

<밤의 수족관>은 ‘아이’를 잃은 슬픔에 빠진 엄마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였던 주어가 ‘나’와 ‘아이’로 분리되기까지, 배경의 대부분은 아쿠아리움입니다. 그 공간에서 ‘나’가 느끼는 혼란은 꼭 사랑(처럼 유일무이한 존재)을 상실한 이와 닮아 있습니다. “나는 곧이라도 물고기들을 움켜쥘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허공으로 손을 뻗어봐. 그렇지만 막상 손에 닿는 것은 차가운 유리벽이지. (…) 나는 허망한 마음으로 발걸음을 멈춰. 박제된 심해어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어.”와 같은 독백은 그런 상태를 대변합니다. ‘나는 ‘아이’는 인물이 아니라 은유적인 장치에 가깝습니다. 그러니까 ‘아이’의 엄마가 되어 본 적 없는 저도 ‘나’와 모종의 동질감을 느끼는 것이겠지요.

 

백수린은 신춘문예 당선 인터뷰에서 “소설을 통해 거대 서사에 가려진 개인들을 호출해내고, 개인사를 복원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됐다. 소설이란 것이 개인이 느끼는 세밀한 감각, 생각, 기억 같은 것들을 통해 우리가 어쩌면 끝내 포착할 수 없을 ‘인간’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해줄 무엇인 것처럼 느껴졌다. 경계에 놓인 이름 없는 존재들에 관심이 많다. 그런 존재들에게 이름을 찾아주고 싶고, 인간에 대해 잘 이야기할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다”라는 포부를 밝혔는데요. 작년에 갓 등단한 신인이고, 아직은 문예지에서만 그 이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만, 저는 쉽게 잊지 않을 것 같습니다. 포부대로 나아가고 있는 이 소설이 탐나니까요!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hebong2000@bandinlunis.com)

 

 

* 백수린

1982년 인천 출생. 201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되어 등단.

 

* 현재까지 발표 작품

<거짓말 연습> | 《2011 신춘문예 당선소설집》 게재

<기도> | 《2011 신춘문예 당선자 새소설》 게재

<감자의 실종> | 《현대문학 2011.04》 게재

<밤의 수족관> | 《문학동네 2011 겨울》 게재

<폴링 인 폴> | 《창작과비평 2011 겨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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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의 맛] 정용준, <사랑해서 그랬습니다>


“내게 가장 익숙한 인격인 불면의 두려움과 친근함의 힘에 의지해 글을 쓰고 책을 읽었다. 모든 소설을 새벽에 썼다”라고 말한 사람은 누구? 이름하야 정용준. [단편소설의 맛]에 쓰려고 좀 아껴두었습니다. (이런 소설 여럿 됩니다. 궁금해 죽겠죠? 그럼 격주 금요일마다 스크롤 고정!) 어느 날 문득 ‘아니 이런 소설이?’ 하며 급궁금(?)해지는 쪽이 있는가 하면, 단행본 출간 소식을 알고 ‘아니 벌써?’ 하며 흐뭇해지는 쪽이 있습니다. 정용준은 후자였어요. 이 작가가 여러 계간지에 발표한 작품을 꾸준히 접해 온 저로서는, 단행본 소식이 유난히 반갑더군요. 《가나》는 작년 11월에 출간되었습니다. <사랑해서 그랬습니다>는 그 단행본에 실린 작품으로, 《2012 젊은소설》에 재수록 되었습니다. 여기까지도 흐뭇한 일입니다만, 정용준 소설을 흐뭇하게 읽는 것은 좀 어렵습니다. 이 작품은 어떨까요?

 

다음 달이면 만 스물세 살이 되는 사라의 배가 조금씩 부풀어오르고 있다는 사실을 사라와 그의 가족들은 아직 모르고 있다. (235쪽)

 

안다는 것은, 누군가를 가장 많이 또 깊이 안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많이 생각한 마음이다. 내 모든 것을 지금 멈추겠다. 사라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261쪽)

 

《2012 젊은소설》중에서

 

첫 문장으로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미혼의 여자애(‘여자’보다 ‘여자애’로 느껴졌습니다.)가 임신을 했다. 끝나는 문장은 감이 잘 안 잡히실 텐데요. 부연 설명을 하겠습니다. 소설은 임신한 여자애를 둘러싸고 그녀 자신, 어머니, 아버지, 남동생의 내면을 차례로 조명합니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것은 추측컨대 태아의 목소리입니다. 누구보다 연약한 상태인 이 존재는 여자애가 느끼는 혼란을 누구보다 이해합니다. 그리고 앞서 사랑을 앞세워 본인의 입장을 정당화했던 가족들과는 다른 결정을 내립니다. 이 대목에서 그동안 믿어 온 가치, 상식, 이상이 흔들립니다. 저는 불편합니다. 이것은 불쾌함과 다릅니다. 이 감정은 처음이 아닙니다. 정용준의 다른 소설을 읽을 때에도 느껴 본 것이지요.

 

정용준은 ‘친근한’ 재료를 선택하나 ‘두려운’ 요리를 만듭니다. 잘 아는 장애, 잘 아는 사랑, 잘 아는 고립은 그의 부엌에서 변모합니다. 완성된 요리는 과연 우리가 모르는 맛일까요? 저는 모르고 싶은 맛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불편한 풍경의 대부분은 사실 직시 가능한 시야에 있습니다. 그것을 보게끔 이끄는 것이 소설가의 직무라면, 정용준은 적어도 자신의 직무를 유기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독자의 직무는? 이 불편함을 기꺼이 공유하는 것이겠지요. ‘작가의 말’을 아래 덧붙이며 물러갑니다. <사랑해서 그랬습니다>를 읽는 데에 도움을 줄 거예요.

 

사랑이라면 모든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믿음을 의심한다.
사랑에 대한 의심이 아닌 사랑의 방식에 대한 의심이다.
사랑해서 그랬습니다……는 사랑에 대한 고백이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사랑을 포기한다는 선언에 가깝다.
사랑의 방식이 아무리 다양하더라도
사랑은 불가능한 방식으로 끝이 난다.

 

어쩔 수 없었다. 혹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사랑을 아름다움으로 배운 우리들의 어리석음이다.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hebong2000@bandinlunis.com)

 

 

* 정용준
1981년 광주 출생. 조선대 문예창작학과 석사과정 졸업. 2009년 《현대문학》 신인상에 단편소설 <굿나잇, 오블로>가 당선되어 등단. 소설집으로 《가나》가 있음. ‘루’ 동인으로 활동 중.

 

* 현재까지 발표 작품
《가나》 | 문학과지성사 | 2011

- 아래 작품들은 위 단행본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K에게> | 문학웹진 뿔 ‘단편소설 릴레이 연재’에 게재
<사랑해서 그랬습니다> | 《2012 젊은소설》 게재
<떠떠떠, 떠> | 《제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게재
<가나> | 《제1회 웹진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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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의 맛] 김유진, <나뭇잎 아래, 물고기의 뼈>




특정 상황이 읽고 있는 책을 규정하기도 합니다. 나의 감정을 너(책)에게 투사하기 때문입니다. 바꿔 말하면, 너의 감정이 나에게도 전해온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연애 중인 이들이 ‘사랑 노래를 들으니 다 내 얘기’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지요. 작년 여름, 저는 그런 책을 읽었는데요. 오랜 투병 생활 끝에 숨을 거둔 할아버지의 장례식, 발인 이후 집에 머물었던 며칠 동안이었습니다. 김유진의 《숨은 밤》이라는 소설. 표지에 이끌려 아무런 정보 없이 구입한 책이었습니다. 《숨은 밤》은 서점을 나선 후 부고를 듣자마자 고속터미널로 내달렸던 저를 뜻하지 않게 따라왔습니다. 그날부터 긴 독서가 시작되었습니다. 술술 읽히지는 않았습니다. 공교롭게도 삶과 죽음의 형상을 말하는 소설이었고, 저는 가족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중이었으니까요. 무엇보다도 쉽지 않았던 것은 김유진의 방식이었습니다. 이야기의 근간이 서사라면 독자는 그것을 곧이곧대로 따라갑니다. 보통은 그런 소설에 익숙해져 있지요. 김유진은 달랐습니다. 삶의 모호함을 있는 그대로 풀어 놓습니다. 순간을 늘이거나 대화를 압축하지 않습니다. 플롯 같은 것도 빌려오지 않습니다. 어떤 장면은 앞선 과거 같기도 한낱 꿈같기도 합니다. 이들에 대해 굳이 설명하지 않습니다. 손쉬운 외피를 입지 않은 날것의 감정은 고스란히 직격탄이 되었고, 저는 그만큼의 마음을 투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오랫동안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347쪽)

 

언니는 곧 육교를 향해 가볍게 뒤돌아서 갔다. (358쪽)

 

《문학동네 2011 여름 (67호)》중에서

 

힘들어, 힘들어 죽겠다고! 《숨은 밤》으로 몇 권 분량의 감정을 소모하자 다른 소설을 읽어 볼 엄두를 못 내겠더군요. 하지만 독서는 순환의 궤를 그립니다. 저는 돌고 돌아, 한 문예지에서 김유진의 자전소설을 접했습니다. 《숨은 밤이 날카롭고 뾰족한 것들만 모아 둔 봉지라면 <나뭇잎 아래, 물고기의 뼈>는 모서리가 마모된 조각들 같습니다. 그럼에도 무심코 가져간 손끝에 피가 묻어나는 것은 왜일까요. ‘한 사람의 죽음’을 ‘가볍게 뒤돌아서 갔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 아닐까요. 첫 문장의 사유와 마지막 문장의 회상 사이에는 두서없고 나른하며 무심하기까지 한 감정이 흐릅니다. 화자는 도통 자신의 심정을 꺼내 보이지 않지만 이 조각들을 만지고 있자니 조금은 알겠습니다. 김유진이 느꼈을 슬픔, 말하고 싶은 죽음의 모호함을요. 삶과 죽음의 문제는 결국 선명하게 만져지지 않습니다. 다만 이것이 ‘모두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서서히 받아들였다.’(358쪽)고 말할 수는 있겠지요.

 

글쓰기 방식은…… 일단은 첫 문장과 끝 문장을. 근데 제가 구상이라고 하는데 뼈대를 적어 놓는 거라면, 저는 포인트로 찍고 싶은 문장들을 적어 놓는다거나, 그러니까 흐름을 따라간다는 것이 이야기의 흐름을 따른다는 것보다는 그런 쪽을 따라가는 경우가 많았어요. 저는 제 안의 논리가 있죠. 이미지의 논리라거나 문장의 논리 같은 것들을 따라가기 마련이죠. (…) 서사를 따라가는 구조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 근데 이 책을 너무 쉽게 읽는 사람들이 있어요. 자신이 갖고 있던 (고정관념을 잠시 버려두고) 편안하게 읽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것을 약간 버린다면 다른 재미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출처 : 문장웹진 11월호)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hebong2000@bandinlunis.com)

 

* 김유진
1981년 서울 출생. 명지대 문예창작과 졸업. 2004년 문학동네신인상에 단편 <늑대의 문장>이 당선되어 등단. 소설집 《늑대의 문장》, 장편소설 《숨은 밤》이 있다.

 

* 현재까지 발표 작품
《늑대의 문장》 | 문학동네 | 2009
《숨은 밤》 | 문학동네 | 2011

<눈 위의 발자국> |《사랑해 눈》 게재

<희미한 빛> | 《제1회 웹진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 게재

<여름> | 《제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게재

<나뭇잎 아래, 물고기의 뼈> | 《문학동네 2011 여름 (67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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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의 맛] 김태용, <알게 될 거야>

삼 년 전이었을 겁니다. 《읽은 척 매뉴얼》이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명작을 읽지 않은 이들을 위한’과 같은 부제를 앞세워 아는 척 좀 해 보자는 취지를 표방하고 있었습니다. 숨은 목적은 고전을 읽게끔 독려하는 것이었겠지요. 이 책을 접한 순간 뜨끔한 건 저 뿐인가요? 독서가(가 되고자 하는 이들)의 심리를 들추어낸 제목이잖아요. 저는 독서가에게 세 가지 욕망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알기, 책을 읽기, 책을 쓰기. 하지만 ‘알기’에서 ‘쓰기’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많은 독서가들이 ‘읽기’나 ‘알기’에 머물고 말지요. 어이쿠! 사설이 너무 길었습니다.

 

저는 ‘읽기’와 ‘쓰기’의 중간쯤에서 얼쩡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알기’를 완전히 뗀 것은 아닙니다. 부끄럽지만 이번에 소개할 김태용이 그렇습니다. 문단에 등장한지는 꽤 되었지만, 저에게는 오랫동안 ‘알기’만 했던 작가이지요. <알게 될 거야>는 처음 읽은 김태용의 작품입니다. 자체 검증(?)을 충분히 거치지 않았음에도 만나자마자 추천에 올리는 이유가 궁금하실 겁니다. 일단 줄거리는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라고 설명할 수 없는 소설입니다. 이제 질문을 받아야겠네요. 그럼 대체 뭔데? <알게 될 거야>에서 빌려온 첫 문장과 끝 문장으로 그 답을 대신하겠습니다.

 

여기서 계속 가자. (272쪽)

그러니까 만나서 얘기하자. (291쪽)

《세계의 문학 2011 가을호》중에서

 

이 소설에 제가 설명할 줄거리, 그러니까 서사는 없습니다. 의미만 있습니다. 서사라는 그릇 없이도 소설이 될까. 초반부에서 저는 의문을 품었습니다. 읽어갈수록 낱개의 의미들에 말(문장)이 입혀지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인물이 숨겨지고 공간이 분할되고 시간이 멈춥니다.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나는 내가 쓴 것을 증명한 뒤 부정하기 위해 이 글을 지속해야만 한다. 나는 내가 무엇을 쓰지 말아야 하는지 알게 된 것일까. 너는 네가 무엇을 읽지 말아야 하는지 알게 된 것일까.’라는 말과 함께 <알게 될 거야>의 결말은 덜컥 독자의 몫이 됩니다. 저는 혼란을 느꼈습니다. 독서의 최고봉은 ‘쓰기’라고만 여겼는데, 일순간 기존의 인식이 뒤집혔으니까요. 저는 오랫동안 ‘알기’만 했던 작가를 비로소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이 글을 보는 분들은 모를 겁니다. 그러니까 만나서 얘기해야겠지요! ‘알기’는 독서의 시작이 아니라 끝일지도, 그 욕망은 영영 채워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한 마디 덧붙이겠습니다. 책은 손이 닿는 곳에 있습니다. 그리고 김태용을 읽으면, 알게 될 거야. (이거 어쩐지 지난번과 비슷한 마무리네요. 하하.)

 

“일반적인 얘기로 소통이 안 된다, 대화의 커뮤니케이션으로서 소통과 문학의 소통은 다른 거라고 생각해요. 작가가 첫 문장을 쓸 때 세상과 단절되어서 혼자 쓰지만 또한 소통하고 있음이 증명되고 있지 않은가, 이야기를 뚫고 가려는 교란하려는 게 소통이 아닌가 싶어요. 10명의 독자가 다 읽을 수 없을 거고, 다르게 해석되겠지만, 그게 문학적인 것 아닌가하는 거죠. 이런 욕심은 있어요. 누가 읽어도 정보와 의미가 머릿속에 그려지는 소설, 그렇더라도 다 읽고 나면 '내가 뭘 읽었나?' 하는 소설. 읽혀나갈 때는 문장에서 멈추지 않게 하고 싶은 소설이요.” (출처: 주간한국 ‘피플’)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hebong200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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