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에 해당되는 글 8건

  1. 2015.02.13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 위화의 위로하는 마음
  2. 2014.12.16 《외딴방》 - 지우고 싶었어
  3. 2014.12.04 《노동자 쓰러지다》 - 산재를 신청합니다
  4. 2014.11.03 저문 가을에 삽을 씻고
  5. 2014.01.03 《벼랑 위의 꿈들》- 내일도 꿈꿀 수 있는 삶을 위하여
  6. 2012.08.02 [詩로 물드는 오후] 최성수, 서울에 살기 위해
  7. 2009.08.31 알랭 드 보통과 유쾌한 일로의 여행! - <일의 기쁨과 슬픔> (7)
  8. 2009.06.13 힐더월드(HEAL THE WORLD) - 세상을 치유하는 법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 위화의 위로하는 마음

 



위화 |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 문학동네 | 2012


오늘날 중국은 놀라울 정도로 급성장했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이후 발전을 거듭하면서 이제는 미국과 나란히 힘을 겨루는 나라가 되었다. 전 세계의 명품들은 중국으로 쏟아져 들어가고 그들은 세계로 여행을 다닌다. 당장 우리나라만 해도 관광객이 줄어들면 큰 타격을 입을 정도로 중국의 영향력은 커졌다.

하지만 억만장자와 백만장자가 넘쳐도 중국의 다른 한쪽에서는 빈민 인구가 1억 명에 달한다. 대외적 이미지에 빠진 중국은 힘든 가난 속에서 생활하는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지 않는다. 위화는 중국인의 진정한 비극이 여기에 있다고 말한다. 빈곤과 기아의 존재를 무시하는 것이 빈곤과 기아보다 더 무서운 것이다.

이 책은 중국에서는 금지되어 대만에서 출판되었다. 중국 지식인들이 보편적으로 침묵하고 있는 문제에 관하여 작가가 거론했기 때문이다. 1989년 베이징 대학생들은 천안문 광장에 모여 민주와 자유를 요구하는 동시에 관료의 부패와 전횡에 반대했다. 하지만 곧 중국 정부는 무력으로 진압했고 그 후 어느 매체에서도 이 사건은 사라졌다. 인터넷에서도 6월 4일은 금지된 날짜가 되었다.

위화는 유년시절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을 거쳐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그리고 천안문 사태를 겪으면서 오늘날의 중국이 되기까지, 그의 경험을 토대로 10가지 단어를 선택해서 이야기한다. 즉 10개의 방향으로 나아가며 중국을 입체적으로 그려보는 것이다. 나에게는 이 책이 몰랐던 중국의 과거와 현재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놀라운 책이었다.

문화대혁명이 진행되던 때에는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반혁명분자가 되었다. 가정은 파탄이 나고 모든 가정에서 책이 사라졌다. 사람들은 책을 찾아 헤매고, 거리에는 대자보가 붙고, 수많은 사형수가 총살되는 장면을 목격해야 했다. 하지만 30여 년이 지난 지금, 책이 넘쳐나고 개발 명문으로 불도저가 강제로 집을 무너트린다. 사람들은 돈만 쫓아다닌다. 물질이 결핍된 시대에서 낭비가 넘치는 시대로, 정치 지상의 시대에서 금전 제일의 시대로, 본능이 억압된 시대에서 욕망이 넘쳐나는 시대로. 극과 극으로 바뀌었다.

위화는 이렇게 10개의 단어로 중국을 살피고 무조건 개발과 돈만 보고 달리는 지금, 환상의 이면에 진정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말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어디 이것이 중국뿐이겠는가? 우리나라 현실과도 겹치는, 지금 세상의 모습이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다.

이 책은 특히 후기에서 여운이 길게 남는다. 직업을 국가에서 배정할 때 위화는 1978년 치과의사가 되었다. 치아를 뽑는 일 외에도 매년 여름이면 노동자들과 아이에게 예방주사를 놓았다. 당시에 물자가 부족하다 보니 주삿바늘을 재사용했다. 매번 주사기를 사용해서 바늘 끝이 구부러져 팔뚝에 바늘을 꽂는 것도 힘이 들었다. 주사기를 뺄 때는 작은 살점이 바늘에 딸려 올라오기도 했다. 노동자들은 극심한 고통을 참느라 이를 악물었지만 위화에게 그들의 고통은 와 닿지 않았다.

하지만 유치원에 가서 예방주사를 놓을 때는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졌다. 살이 연한 아이들은 바늘에 달려 나오는 살점의 크기가 컸고 피도 많이 났다. 유치원이 온통 아이들의 고통으로 울음바다가 되었다. 그 뒤 달리 손을 쓸 수 없었던 위화는 일과가 끝나면 숫돌에 구부러진 주삿바늘을 뾰족하게 갈기 시작했다.

그는 왜 울부짖던 아이들의 모습을 보기 전에 노동자의 고통을 생각하지 못했는지 회상할 때면 마음이 괴로웠다. 주사를 놓기 전에 먼저 구부러진 주삿바늘을 자신의 팔에 찔러보았더라면 노동자들이 극심한 통증을 못 이기고 신음하는 그 고통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느낌이 내 뼛속 깊이 새겨졌고, 그 뒤로 내 글쓰기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타인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되었을 때, 나는 진정으로 인생이 무엇인지, 글쓰기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이 세상에 고통만큼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쉽게 소통하도록 해주는 것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고통이 소통을 향해 나아가는 길은 사람들의 마음속 아주 깊은 곳에서 뻗어 나오기 때문이다. (353쪽)

‘이 책에서 나는 중국의 고통을 쓰는 동시에 나 자신의 고통을 함께 썼다. 중국의 고통은 나 개인의 고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위화의 말이다. 이 말처럼 타인의 고통이 자신의 고통이 되어 글쓰기를 한다는 위화의 글이야말로 진정 빛보다 멀리 간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자두줄기'님은?

꿈, 희망, 행복이라는 단어를 좋아합니다. 이 세 가지를 가지기 위해서 오늘도 책을 읽고, 글을 끄적거리고, 그리고, 웃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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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방》 - 지우고 싶었어

 

 

신경숙 | 《외딴방》 | 문학동네 | 2014

 

영화 박하사탕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 어디였느냐고 묻는다면 열에 아홉은 바로 김영호(설경구 분)가 열차 철교 위에 올라가 두 팔을 뻗고 달려드는 기차를 향해 "나 돌아갈래!"라고 소리치는 장면을 꼽기 마련이다. 이런 보통의 반응과 다르게 나는 열에 하나에 속하는 사람이다. 나는 철교 아래로 소풍 온 공돌이들과 공순이들, 그리고 그들이 둥글게 둘러앉아 부르던 샌드페블즈의 '나 어떡해'가 기억난다. 뭐랄까. 사진 속에서 봤던 과거의 아버지, 숙부, 고모들이 거기 있었다. 내게는 단절되고 토막 나 있던 개발시대의 기억이 영화를 통해 삽입되면서 비로소 생명력을 갖기 시작했다.

 

그 시절을 영화 박하사탕이 시각적으로 그렸다면, 신경숙의 《외딴방》은 텍스트로 그려냈다. 김영호의 생애를 뒤로 돌려가며 그린 박하사탕과 다르게 신경숙의 《외딴방》은 나로 지칭되는 한 여자의 기억이 뒤죽박죽 엉켜서 전개된다. 나는 정읍에 사는 열여섯 살 소녀로 라디오에서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샌드페블즈의 '나 어떡해'를 들으며 큰오빠가 있는 서울로 올라갈 꿈에 부풀어있다. 중학교를 마쳤으나 집에서 동생들을 돌보던 소녀는 쇠스랑으로 자신의 발등을 찍는다. 그리고 다친 발에 쇠똥을 붙인 채 밤 열차를 타고 외사촌과 서울로 올라간다. 사진작가가 되겠다는 외사촌이 건넨 사진집에서 새들의 사진을 보면서. 그때가 잘살아 보세를 외치며 허리띠를 졸라매던 1978년의 여름이었다.

 

생에 처음으로 집을 떠난 열여섯 시골소녀. 그녀는 직업훈련원이란 낯선 곳에서 시작해 구로공단의 동남전자주식회사란 회사에 공순이로 들어간다. 그의 큰오빠와 외사촌과 함께 방이 서른 일곱 개나 되는 가리봉동의 허름한 집 한구석을 차지한 채 살아가는 소녀. 시골에서 딱히 부족함을 느끼지 못하고 살았던 그녀는 서울이란 도시에서 살고 일하면서 처음으로 저임금과 빈곤을 체험하게 된다.

 

내가 어리둥절했던 건 갑자기 도시로 나와서가 아니라, 도시에서의 우리들의 위치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제사가 많았던 시골에서의 우리집은 어느 집보다 음식이 풍부했으며, 동네에서 가장 넓은 마당을 가진 가운뎃집이었으며, 장항아리며 닭이며 자전거며 오리가 가장 많은 집이었다. 그런데 도시로 나오니 하층민이다. 이 모순 속에 이미 큰오빠가 놓여 있고, 이제 열여섯의 나도 그 모순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59쪽)

 

저임금과 관리자들의 상습적인 폭력, 성희롱 등에 지친 일급사원(반대는 행정 보는 관리사원이다) 그녀들은 노조를 결성하고, 화자와 외사촌에게도 가입을 권유한다. 처음엔 노조에 가입했던 그녀들도 지속적인 회유와 폭력 앞에 하나둘 탈퇴서에 서명하기 시작한다. 노조위원장과 미스리에게 미안해하면서도 화자와 외사촌은 산업체 특별학급을 운영하는 영등포여고에 입학하기 위해 역시 노조를 탈퇴하고 만다.

 

그 와중에 YH 사건이 벌어지고 화자가 태어나기 전부터 대통령이었고 공순이가 돼서도 대통령이었던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당하는 사건도 벌어진다. 짧았던 서울의 봄은 가고 광주가 핏빛으로 물들면서 80년대는 다시 군부독재의 시대로 귀결된다. 서울로 올라와 야간대학에 진학한 셋째 오빠는 대학을 가더니 광주를 이야기하기 시작하고 언제부턴 가는 도망쳐다니기 시작한다.

 

이런 와중에도 화자는 공단과 가리봉동을 벗어나고자 하는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옥상에서 처음 만난 아랫방 희재 언니와 서로 희망과 바람을 이야기하고 상대에게 '그럼~'이라고 대답해주며 서로를 의지하는 '그럼 놀이'를 하면서 말이다. 그녀가 기억하는 그 시절은 군부독재의 어둠으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말도 안 되는 빈곤과 불편함, 추위, 이해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의 시간이었다. 지금의 나는 셋째 오빠를 만나서도 그렇게 대답한다.

 

"문민정부면 뭐하냐. 하극상에 의한 군사 쿠데타 사건이다 규정하면서도 처벌도 못 하고.... 문민 대통령 시절이라고 하면 또 뭐하니? 광주 때 발포자라고 하는 사람이 어엿이 국회의원직에 앉아 있는 판인데. 적어도 양심상 공직에는 있지 말아야지. 안 그러냐?" ..... 몰라, 오빠. 나는 그런 것들보다 그때 연탄불이 잘 타고 있었는지, 가방을 챙겨들고 방을 나간 오빠가 어디 길바닥에서나 자지 않았는지, 그런 것들이 더 중요하게 느껴져. 그 때 왜 그렇게 추웠는지 말야. 김치를 꺼내다가 잘라서 접시에 올려서 밥상 위에 얹으면 살얼음이 끼어 쭉 미끄러지곤 했어. 그릇이 깨지고 김치가 사방으로 흩어졌지. 오빠. 그 때 내가 정말 싫었던 건 대통령의 얼굴이 아니라 무우국을 끓이려고 사다놓은 무우가 꽝꽝 얼어버려가지고 칼이 들어가지 않은 것 그런 것들이었어. 눈이 내린 아침에 수돗물을 틀었을 때 말야. 물이 얼지 않고 시원스럽게 나와주면 너무 좋았고, 안 그러고 얼어서 나오지 않으면 너무 싫고 그랬어. (218쪽)

 

그 시절. 이유 없이 미안해져야 하고, 끔찍하게 빈곤하며, 모든 것이 비극으로 끝나버리고 말 것 같던 그 시절. 화자에게 16살은 있어도 17살은, 18살은, 19살은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희재 언니의 열쇠 잠긴 방을 열어보고 가리봉동을 뛰쳐나와서 용산의 외사촌 집으로 달려갔던 그때로부터 다시는 그 동네를 찾지 않았던 화자에게 소녀 시절이란 고스란히 들어내고 싶은 시간이었나 보다.서로 다른 친구를 사귀면 토라지고 나뭇잎 같은 거 말려서 그 뒷면에 그애의 이름을 써넣고, 자전거 하이킹도 가고, 밤새 편지를 써서 그애의 책갈피에 몰래 끼워놓고.... 내게는, 그리고 내게 전화를 걸어온 그녀들에겐, 그런 시절이 없었다. 토라질 틈도, 나뭇잎을 말릴 틈도 우리들 사이엔 없었다.

 

우리들 사이엔 봉제공장, 전자공장, 의류공장, 식품공장들의 생산부 라인이 존재했다. (23쪽)

 

하지만 피한다고, 외면한다고 해서 잊히지도, 사라지지도 않는 것이 그 시절이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 살아온 흔적이며 삶이었으니까. 같이 살았던 사람들과 부대끼고 위로받고 밥을 먹었던 그 시간은 불현듯 걸려온, 이름도 가물가물한 여고 친구 하계숙의 전화로 인해 되살아난다. 그리고 그녀의 질문들은 화자에게 아직도 아프다.

 

"너는 우리 얘기는 쓰지 않더구나."
어딘가가 또 저려왔다.
"네가 썼다는 책을 사서 읽어봤단다. 첫 책만 못 읽었어. 큰 서점이 있는 데로 외출하기가 쉽지 않단다. 네 첫 책은 동네 서점에서 구하기가 힘들더라구. 그래서 그것만 못 봤지.... 어린시절 얘기도 많이 쓰는 것 같고, 대학 때 이야기도 쓰는 것 같고 사랑 얘기도 쓰는 것 같은데 우리들 얘기는 전혀 없었어."
"....."
"우리들 얘기가 혹시 써져 있을까, 하고 일부러 찾아가며 읽었거든."
내가 침묵을 지키자, 하계숙은 내 이름을 나직이 부르며 목소리의 톤을 가라앉혔다.
"혹시 네게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걸 부끄러워하는 건 아니니?"
나는 긴장해서 수화기를 바꿔들었다.
 (33쪽)

 

이해하지도 못하는 헤겔을 펴서 읽음으로써 '나는 너희와 다르다'고 느끼며 그 시절을 버텼던 여고 동창 미서처럼... 화자 역시 가리봉동을 떠나온 다음부터, 아니 그 시절부터 그렇게 살았던 것은 아닐까. 큰오빠에게 말하지도 못하면서 대학노트에 '대학가고 싶다'고 몇 번이고 썼던 것처럼.

 

95년, 유명작가가 되어 있는 화자는 아직도 자신의 과거와 마주할 용기를 내지 못한다. 아직도 글쓰기가 무엇인지 묻고 있는 화자만 있을 뿐이다. 삶의 외면을 타고 흐를 뿐인 문학의 한계에 절망하고, 문학이 옳은 것과 희망을 향해 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느낀다. 과거를 외면하고 포장된 자신으로 살아가려는 자신에 대한 자기비판 역시 날카롭다. 변덕을 부리고 전화선을 뽑고, 며칠이고 방바닥에 붙어있던 화자. 겨우겨우 제주도에 가서 마음속에 있던, 78년 밤 기차에서 마음속에 담아뒀던 학을 하늘로 날려보내면서 화자는 그 시절과 화해하는 듯하다. 그로부터 다시 20년이 흐른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문학은 어떤 역할을 짊어지고 있는가. 작가에게, 독자에게 글쓰기와 글읽기는 무엇으로 남았을까. 나 역시 처음 글 읽기를 시작했던 때를 다시금 돌아본다.

 

주인공부터 호남 출신임에도 소설의 배경이 되던 당시 만연했던 호남지역에 대한 차별 문제가 드러나지 않은 점, 주인공을 둘러싼 주변 인물, 특히 공장에 있던 여공들을 지극히 선하고 평면적인 인물로 그려낸 점 등에서 비평가들로부터 비판을 사고 있는 것이 《외딴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세기 꼭 읽어봐야 할 소설로 평가받는 것은 질곡의 세월을 살아온 사람들과 문학의 역할에 대한 작가의 끈질긴 고민 때문이었을 것이다. 문학이 세상을 바꾸는데 무능할지 모르나, 사람을 꿈꾸게 할 수는 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사회를 바꾼다. 문학은, 생각보다 힘이 세다.

 

 

좋은 책과 서평을 나누고자 반디앤루니스 '오늘의 책'을 펜벗과 함께 만들어 갑니다.

펜벗이란 서평을 쓰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를 의미합니다.

매주 월요일, 성실한 서평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12월의 서평 주제는 '처음'입니다. 셀 수 없이 많은 각자의 '처음'을 책과 함께 떠올려 보세요.

'오늘의 처음'으로 생생히 떠오르길 바랍니다.

 

│ 펜벗 일문일답

 

서평에서 ‘문학은 생각보다 힘이 세다.’라는 표현을 했어요. '한량의 독서'님이 생각하는 문학의 궁극적인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이 사회에서 문학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문학은 사람들의 쉼터 혹은 희망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희망을 잃고 절망의 벽 앞에 선 사람들이 많아 보입니다. 금력이나 권력 등 개인이 쉽사리 맞서볼 수 없는 거대한 힘에 가로막혀 탈출구를 찾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건 하루 이틀 만에 해소될 성질의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지친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고, 새로운 미래를 모색하고 고민해보는 희망을 놓지 않는 데 있어 문학만큼 큰 힘을 가진 건 없다고 봅니다. 휴식의 공간, 사회적 공론의 장을 제공하는 것이 이 사회에서 문학이 맡아야 할 역할 아닐까요?

 

그간 읽은 한국소설 중에서 가장 기억 남는 인물(캐릭터)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한국소설가 중 최고의 이야기꾼은 작가 천명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작품 《고래》에 등장한 ‘금복’이라는 캐릭터가 가장 기억이 납니다. 작가 천명관이 《고래》에서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서 물질을 향한 금복의 지난한 여정이 인상 깊었습니다. 작가의 상상력이 탄생시킨 ‘금복’의 캐릭터는 작품 안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와 권세를 향하는데, 그런 면에서 금복은 우리 중 그 누구와도 교집합을 가진 인물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매우 현실적인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금복’은 다름 아닌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일지도 모르겠지요.

 

죽기 전에 좋은 책 한 권을 쓰는 게 목표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어떤 종류의 책을 쓰고 싶나요. 그러기 위해 현재 노력하고 있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독자에게 조언하고 치유하는 책도 좋지만 저는 (매트릭스에 등장한) 네오의 알약 같은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실과 박리된 인식은 자신을 기만하는 선택을 하게 하고, 자위할 거리를 찾다가 스러지고 말 테니까요. 독자의 현실과 인식을 연결할 교량 같은 책을 써보고 싶습니다. 장르는 소설이 좋겠다고 봅니다. 좋은 글을 쓰는 비법은 다독, 다작, 다상량이라 하는데 다독과 다상량에 힘을 쓰는 편입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더한다면 직접 경험을 많이 해보려 한다는 것 정도입니다. 모자란 글재주는 이런 부분으로 메워보려 합니다.

 

요즘 무슨 책을 읽으세요?


책 한 권을 진득하게 읽는 타입의 독자가 아니라서 몇 권의 리스트를 정해두고 그 안에서 돌아가면서 읽습니다. 최근 리스트 안에는 김진숙 《소금꽃나무》, 중국CCTV 《기업의 시대》, 국민일보 특별취재팀 《독일리포트》, 김중혁 《메이드 인 공장》, 정지향 《푸른 가죽소파 표류기》 등의 책들이 있습니다. 생각의 지평을 넓혀주거나 마음의 깊이를 더해주는 좋은 책들인데 정작 독자인 제가 게을러 진도가 빨리 나가지 않아 걱정입니다. 펜벗들의 리뷰를 보면 어찌나 좋은 책이 많은지! 읽고 싶은 책은 늘고 있는데 큰일입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한량의 독서'님은?

탐정의 꿈을 갖고 있습니다. 보고 듣고 생각하고 씁니다. 죽기 전에 좋은 책 한 권 쓰는 게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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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쓰러지다》 - 산재를 신청합니다

 

 

희정 | 《노동자 쓰러지다》 | 오월의봄 | 2014

 

내 이야기이다. 유리컵을 깨뜨리는 바람에 손을 다쳤다. 일을 못하는 일주일 치 시급은 날아갈 테지만 병원비는 내 지갑에서 지급되지 않았다. 병원에 가서 손을 세 바늘 꿰맨 뒤 카드를 하나 받았는데 뒷면에 '勞'라는 도장이 찍혀 있다. 노동자 재해보상 보험. 한국의 산재보험에 해당하리라. 그 후로 약 일주일간을 매일같이 병원에 드나들며 소독하고 붕대를 새로 감아 나왔다. 몇 년 전쯤 일본에 있을 때 벌어진 일이다. 부러운 건 솔직히 부럽다고 말해야겠다.

 

당시 손에서 피가 나자 동료들이 밴드를 가져와 붙여주었고 그래도 멈추지 않자 지배인은 병원을 수배한 뒤 스스로 택시를 잡아 나를 태웠었다. 《노동자, 쓰러지다》를 읽으면 딴 나라이자 별세계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러나 무대는 한국이다. 뉴스와 신문에서 단신으로 처리되곤 하는 산재 말이다. 페인트칠 하다 코가 헐고 콧속에 혹이 생기며 진상 손님을 응대하고는 마음을 다친다. 시간이 없어 쓰레기 수거차에 매달려 아슬아슬하게 이동하는가 하면 실제로 어딘가 다쳐도 산재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기가 힘들다.

 

산재보험이란 일단 개인 비용으로 치료비를 부담한 뒤 신청하게끔 되어 있기 때문이며, 산재로 인정받기 힘든 까닭에 그마저도 신청할 엄두를 못 낸다. 산재보험이 아닌 건강보험으로 때운다. 그리고 상처 난 몸에는 파스가 덕지덕지 붙는다. 오늘날 전태일의 바보회는 없는 한국이다. 10만 원짜리 안전펜스가 없어 용광로 쇳물에 빠져 죽고, 감시원 하나가 없어 선로 보수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열차에 치인다.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리고 타이어 공장의 벤젠에 중독되어 사람이 쓰러진다.

 

2012년 조선소에서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는 46명. 1년에 광고비로 10조를 넘게 쓰는 대기업의 안전관리 비용은 천억 안팎. OECD의 최저임금 권고는 평균임금의 50%인데 비해 한국은 35% 수준. 한 해 평균 80만 명이 일하다 다친다는 독일에 비해 한국은 8만 명 정도에 그친다. 그러나 OECD 가입국 중 한국의 산재사망률은 1위다. 왜? 한국의 노동자들은 '덜 다치지만 많이 죽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사람이 죽는 것은 감출 수 없다 해도 부상당한 것 정도는 얼마든지 감출 수 있다. 건강보험은 적자를 면치 못하지만 산재보험은 5조 이상의 흑자를 기록하는 나라이므로. 더군다나 비정규직은 정규직에 비해 이렇다 할 호소를 하기도 어렵다. 그들의 고용구조가 하청에 하청 또 하청인 탓에 그렇다. 산재처리를 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치는 순간 다음 계약은 없을지도 모르며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변모하는 것 또한 요원하다.

 

2013년 2월, ‘알바연대’는 소위 '알바 오적'을 선정했다. GS25, 파리바게트, 카페베네, 롯데리아, 고용노동부. 「해당 기업들은 매출 규모가 급성장해 당기순이익이 수백억에서 수천억에 달하는데 알바들은 여전히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 (...) 영세 가맹점을 양산해 알바들의 노동조건을 취약하게 만드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334쪽, 이 오적에 고용노동부를 넣은 것이 눈에 띈다) 책을 펼치자마자 나오는 추천사와 서문만으로도 머릿속이 뜨거워져 열이 뻗친다.

 

학교에서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배우지만 학교를 벗어나자마자 그 논리는 박살이 나며 실제로 계급사회 밑에 있는 노동자의 이야기는 잘 들려오지 않는다. 사람들은 알지만 모르며(모른 척하며) 모르고 있지만(모르는 척하지만) 다 알고 있다. 그리고 숨기거나 눈을 돌리고 귀를 막는다. 내 이야기가 아니니까.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내 아버지도 노동자이며 할아버지도 노동자였고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또한 노동자였을 것이다. 나 또한 노동자가 될 수 있으며(아니면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것일지도) 나보다 어린 사람들도 머지않은 미래에는 노동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나의 이야기이며 당신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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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문 가을에 삽을 씻고

 

사진: 고규홍 (출처: http://www.solsup.com)

 

저문 가을에 삽을 씻고

 

나뭇잎이 붉어지는 것은 한 해 노동의 결과다. 나무가 스스로 자랄 수 있는 양분을 만들기 위해 다른 어느 부분보다 잎사귀들은 애를 썼을 것이다. 그의 노동으로 나무는 한해살이를 무사히 마치고 이제 서서히 겨울나기 채비를 해야 한다. (…) 단풍나무나 화살나무와 같이 안토시아닌 성분이 더 많은 나뭇잎에는 빨간 물이 올라온다. 나뭇잎은 한 해 동안의 모든 노동의 수고를 접고 서서히 숨어 있던 색깔 요소들을 불러내 빛의 잔치를 벌인다. 그런 뒤에는 서서히 나무와 이별하는 낙엽제를 치른다. (고규홍, 《천리포 수목원의 사계》, 휴머니스트, 2014)

 

나무들이 알아서 붉어지거나 노랗게 변할 때면 괜스레 숙연한 기분이 듭니다. 세상사 모두 지켜보는 것도 벅찼을 텐데, 어느 겨를에 기약이라도 한 듯 작년 이맘때의 제 색으로 돌아오는지. 위에서는 잎사귀가 애를 쓰고 아래에서는 기둥이 그 애씀을 기억하여 서로 의존하고 소통하는 나무의 노동이 다부져 보입니다.

 

똑같이 ‘노동’이라는 말을 쓰고 있으나, 인간의 노동이란 왜 이렇게 모질어야 할까요?

 

일을 하여 얻는 만족이 아니라 생산을 지휘하는 사회관계에서 얻는 직장과 배경, 직책과 승진 등의 지위가 되었다. (…) 노동이 생산성을 내고 존경할 만한 가치를 획득하려면 전문가가 노동과정을 계획하고, 감시하고, 감독해야 한다. 그런 노동이라야 표준 방식을 따라 전문가가 공인한 필요를 제대로 만족시킨 노동이라고 입증할 수 있다. (이반 일리치,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느린 걸음, 2014)

 

공존하려 애쓰는 자연계와 달리, 인간 사회는 서로 밀치기 바쁜 것 같습니다. 아니, ‘사회(社會)’라는 말이 무색합니다. 낱낱의 사람들은 스스로 울타리를 두른 채 그 안에서 계급을 가립니다. 53세의 경비원을 분신자살로까지 몰아간 주범은 동 아파트 주민의 몹쓸 언행이었습니다. 자살은 다행히 기도에 그쳤지만, 그가 직면치 않아도 됐을 부당한 대우와 처사는 한 인간에게 상처로 박혔습니다.

 

자본이 자신의 삶을 사막화하고 있다는 깨달음에서 출발하는, 노동자들의 자기회복을 위한 광범한 사회적 운동이 필요하다. 일 때문에 개인의 사생활이 파괴되지 않도록 보호해주고, 또한 노동자로서 누려야 할 권리를 보장해주는 사회적 장치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노동자들 스스로가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병훈 외, 《사장님도 아니야 노동자도 아니야》, 창비, 2013)

 

신분과 자본에 근거를 둔 관계만이 거듭되는 것 같아 쌀쌀해진 날씨가 더욱 매섭게 느껴집니다. 메마른 땅에서도 꿋꿋이 절정에 달한 단풍을 바라보며. 노동의 기쁨은 자연계에서만 순수하게 허락되고 있었다는 것을 문득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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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ditor_ 정혜원

hyewonjung@bn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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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위의 꿈들》- 내일도 꿈꿀 수 있는 삶을 위하여

 

정지아 | 《벼랑 위의 꿈들》| 삶창 | 2013

 

택배 기사들의 이직률이 높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자주 택배를 받다 보니 같은 택배 기사가 방문을 하면 몇 번인가 인사를 주고받기도 했는데, 그런 시간은 오래 가지 못한다. 며칠 사이-혹은 몇 달 만에라도- 택배 기사가 다른 분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 방문하는 어느 택배 기사님은 한 가정의 가장이다. 어느 날, 엄마와 택배 기사가 주고받는 대화를 듣게 되었다. 한 달에 자동차 기름값이 100만원도 넘게 들어가고, 물량은 많고 택배비는 많이 오르지 않는다고 했다. 실제로 힘들게 한 달 배달해도 자기 손에 들어오는 돈은 평균 100만원 남짓, 혹은 조금 더. 그 돈으로 살림하고 아이들을 키운다고 했다. 아이들 학원도 변변히 보내줄 수가 없어서 안타깝다는 말을 할 때는 고개 숙인 가장의 모습 그대로였다. 한참 자랄 나이의 아이들을 보면서 뭔들 해주고 싶지 않을까마는, 현실은 그런 바람을 들어주지 않는다. 그날 배송이 안 되면 불같이 화를 내는 고객, 혹시라도 물건이 상하거나 망가져서 오면 핏대 세워가면서 변상을 요구하는 목소리, 배송기한을 어기면 안 되기에 그날 배송을 안 했어도 배송완료로 처리하는 경우도 있다. 그들의 하루를 듣고 나니 나도 한발 물러서서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이 생긴다. 100만원 남짓의 한 달 생활비를 손에 쥐고도 택배기사를 그만둘 수 없는 그들의 모습을 《벼랑 위의 꿈들》이 다시 한 번 들려주고 있다.

 

저자가 노동의 현장에서 만난 19명의 생생한 이야기가 그대로 담겨 있다. 그 안에서 그들은 아직은 사라지지 않았을 저다마의 꿈을 꾸고 있다. 하루 3교대로 불면증과 불임, 유산의 아픔을 경험하면서도 간호사의 일에 기쁨을 찾는다. 이름 대신 ‘야 인마’로 불리는 외국인 선원은 불평등과 불이익을 고스란히 참아내야 고향으로 돈을 보낼 수가 있다. 최소한의 임금도 기대할 수 없는 택시운전사에게는 아이들의 웃음이 희망이다. 월 60만원의 급여로 꿈을 키우고 있는 드라마 보조작가는 1%의 꿈을 찾아 지금도 글을 쓰고 있다. 영화가 관객에게 전해주는 꿈이 자신에게도 보이길 바라는 영화 미술감독은 현실 속에서 자신의 꿈이 멀어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갓길에 세워놓고 새우잠을 청해야만 하는 화물트럭 운전사는 정해진 운임이 만들어지는 시스템을 희망한다. 한 칸의 책상 안에서 호흡하는 텔레마케터, 감정노동자라 불리는 이들 역시 기본적인 노동자의 대우를 원한다. 학자금 대출로 겨우 대학을 졸업하고 나니 엄청난 빚을 진 채무자가 되었다. 제대로 취업도 하기 전에 대출이자와 원금 상환에 대한 걱정을 한숨으로 채운다. 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노동자라 불리는 우리들의 삶을 고스란히 마주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이란 땅, 그 길 위에서 저자가 만난 사람들의 목소리다. 나와 상관없는, 그저 남의 목소리가 아니다. 그래서 더 생생하게 들리는 것일 테다. 학자금 대출로 등록금을 마련해야 하는 이십대 청춘의 현실이며, 타향살이의 외로움에 떨며 사우디아라비아의 건설 현장에서 월급을 부쳐오던 우리네 아버지들의 과거다. 하교 후에도 교복을 입은 채로 편의점 알바를 하고 있는, 보호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의 청소년의 모습이다. 비정규직이라도 이력서를 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면 감사해야 하고, 매년 재계약 시기에 위장병이 도지는 우리의 현주소다. 거창한 꿈도 아닌데, 일상의 소박한 꿈마저 이루어지기 어려운 현실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잔잔한 파도만 일어도 헤엄치기 힘들 텐데, 매번 거친 파도가 인생을 감싸고 몰아친다. 달리고, 오르고, 오토바이의 페달을 밟고, 빙판이 목숨을 위협하는 커브길을 돌고 있는 오늘이다.

 

고공의 크레인 위에서 아찔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게 노동자의 삶이 되어버렸다. 최소한의 생계와 인권, 존엄성을 보장해달라는 목소리를 내야만 협상이라도 시도해 볼 수 있는 사회다. 억대의 이익을 창출하면서도, 임원들의 연봉을 ‘억’소리 나게 올리면서도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비정규직을 고용하는 거대 자본이 만들어낸 피눈물이다. 거창한 것도 아니다. 그저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는 현실을 만나는 게 꿈인 사람들이다. 해고나 재계약의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는 시간, 주말이나 휴일의 여유로움을 가족들과 보내는 소소한 행복, 몸은 고단해도 꿈이 사라지지 않는 삶을 희망하는 것. 우리들이 바란 소박한 꿈은 그런 것이다. 그런 우리의 삶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 현실을 저자가 만난 사람들을 통해서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그 안에 무수히 많은 우리가 있다. 저임금에라도 출근할 수 있는 곳이 있다면 행복해하고, 비정규직의 불평등에라도 위안을 삼아야 하는, 학자금대출이라도 받아서 대학을 졸업해야 하는, 불편한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아야 하는 우리, 우리 가족, 우리 친구들의 모습이 있다. 슬프게도, 이런 우리의 꿈이 조만간 이루어진다거나 세상이 금방 바뀔 것 같지는 않다. 저자의 말도 같다. 저자가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람들에게서도 금방 그 삶들에 찾아올 만한 희망은 보지 못했던 듯하다. 말 그대로 그건 우리의 희망이고 꿈이다. 평등하게 주어지는 기회와 말 그대로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난다는 것 자체가 꿈이 되어버렸으니…….

 

그럼에도, 그 꿈을 놓을 수 없어서 오늘도 치열하게 삶을 이어간다. 나아지기를, 보장되기를, 빛을 만날 수 있는 꿈을 꾸면서. 그 꿈이 이루어져야 우리가 바라는 일상의 소박한 꿈이 동시에 이루어질 것임을 알기에 더욱 간절해진다. 《벼랑 위의 꿈들》이란 이 책의 제목처럼, 저자가 만난 사람들을 통해서 한발만 내딛으면 바로 떨어져버리는 벼랑 끝에 우리 꿈이 매달려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면, 이제는 그 꿈을 벼랑에서 끌어올릴 수 있는 희망을 보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몫으로 남았다. 저자가 만났던 성훈 씨의 말처럼, 연대는 그런 의미로 더욱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희망을 꿈꾸어야 하며, 꿈꾸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살아갈 날을 만날 수 있는 희망을 놓지 않아야 한다. 그와 함께 같은 뜻을, 같은 마음을 가진 목소리가 똘똘 뭉쳐야 한다는 게 지금 우리 앞에 주어진 과제라고 본다. 그래야 힘을 낸다. 그런 모습, 희망을 품고 오늘을 살아가고 같은 마음을 위해 연대하는 우리들의 모습은 또 다른 누군가의 희망이 된다. 시작은 있어도 끝은 없다. 우리의 모습이 누군가의 희망이 되고, 그 희망은 또 다른 누군가의 희망으로 이어질 것이기에 끝이 없음이다. 그 끝없는 희망과 연대를 바라면서 오늘도 우리의 인권을 위해, 소박한 꿈을 위해, 달린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캔맥주’님은?
책이 세상을 구원할 거라 믿지는 않지만, 책이 한 사람에게 작은 토닥임을 건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한 페이지를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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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물드는 오후] 최성수, 서울에 살기 위해

 

 

서울과 노동시 기획위원회 엮음 | 《서울과 노동시》| 실천문학사 | 2010

 

서울에 살기 위해

 

서울에 살기 위해 아침마다 머리를 빗는다
불거진 베갯자국을 지우고, 물칠도 조금 하고
나의 가리마는 왼쪽, 부드럽게 빗어넘긴다
오늘도 하루를 무사히― 머리를 다듬듯
차근차근 넘기기로 한다
붐비는 버스 타고 마이동풍 우이독경의
아침 방송을 들으며 떠나는 나의 시간은 0시
창경궁이 복원되고 국립 중앙박물관은
총독부 건물이던 중앙청으로 옮겨지고
(기이하게도 이것들은 모두 식민지 시대를 연상시킨다)
이 새벽 늘어선 행렬을 바라보는 나의 시계도 0시
                          생각 : 외출중
                          말 : 출타중
                          모든 일은 어제와 동일
갈아타려는 버스는 더러 그냥 지나쳐버리고
주먹으로 한 대 열리지 않는 문을 내지르기도 하지만
너무 흥분하지는 말 것 아무것에도 신경 쓰지 말고
되지 않는 소리로 공자왈 맹자왈 떠들다
소금에 절인 무청으로 돌아오는 저녁
건물 너머로 길게 눕는 검은 노을
돌아보면
서울에 살기 위한 내 하루 노동의 대가도
0

 

- 《장다리꽃 같은 우리 아이들》, 실천문학사, 1990

 

노동자의 하루가 지나간다. 하루, 또 하루, 매일이 같은 날들이 하나의 목적에 매달려 흘러간다. 서울에 살기 위해, 서울에 살기 위해, 서울에 살기 위해. 아무리 되뇌어도 잘 모르겠다. 서울에 산다는 게 도대체 뭔지. 아니다. 실은 잘 모르게 돼버린 것이다. 서울 아닌 곳에서 서울에 사는 걸 생각하는 것과 서울에 살면서 서울에 사는 걸 생각하는 게 달라진 까닭이다. 서울특별시, 삶의 전 영역을 아우르는 대한민국의 중심, 이름 있는 대학에 들어가 이름 있는 기업에 들어간 후 그 이름들 달고 살아보려던 꿈들의 무덤. 사람 아닌 노동자 되어, 아니 그마저도 쉽지 않은 이들의 빼앗긴 이름이 묻힌 생무덤. 그러니까 이제, 서울에 산다는 건 뭐냐. 산다는 건 도대체 뭐냔 말이다. 그럼에도 여태껏 서울을 떠나지 않고, 또 다시 서울에 살기 위해 고스란히 하루를 바치고 있는, 나는 누구냐, 이 말이다. 질문들이 생겨난 지 오래임에도, 무시로 지나치며 대답을 유예한 채, 목적에 목매어 있는 나는, 그러므로 내 지난 시간은, 그리하여 그 시간의 의미값은 “서울에 살기 위한 내 하루 노동의 대가”가 그렇듯, “0”

 

“돌아보면”, 이 모든 말과 글과 생각의 대가도

“0”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 (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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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과 유쾌한 일로의 여행! - <일의 기쁨과 슬픔>

 

알랭 드 보통과 유쾌한 일로의 여행! - <일의 기쁨과 슬픔>


글을 읽기 전에 먼저 ‘창식 씨’의 하루를 생각해 봅니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밥은 먹는 둥 마는 둥 출근을 합니다. 사무실에 도착해 컴퓨터를 켜면 지난밤 연인과 대화를 나두던 기억은 사라지고, ‘일하는 나’만 남습니다. 일하는 나는 기분, 컨디션과 상관없이 수첩에 적힌 일들을 척척 잘 해냅니다. 퇴근 후 집에 돌아가면 지친 몸을 달랠 것은 TV나 맥주, 생각만큼 많지 않습니다. 그러다 잠자리에 들면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내가 왜 일을 하고 있지?’

<일의 기쁨과 슬픔>은 <불안> <여행의 기술> <우리는 사랑일까>의 작가 알랭 드 보통이 쓴 ‘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작가는 “우리는 왜 일을 하며, 무엇이 일을 이토록 즐겁게 혹은 즐겁지 않게 만드는가?”란 질문을 던지며, 일을 둘러싼 갖가지 상상을 합니다. 작가가 여정은 흥미롭습니다. 그는 비스킷 공장, 위성 발사 현장 등을 찾아 노동자의 일상, 과학의 숭고미 등을 목격합니다. 또 참치가 바다에서 식탁으로 오는 과정을 체험하고, 기술자와 수천 킬로미터의 송전탑 기행을 하면서 사고 깊숙한 곳으로 들어갑니다.

알랭 드 보통은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자신이 얘기할 화두의 기초를 든든히 합니다. 일의 의미를, 그것이 본질은 아니라 할지라도, 명확하게 규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물류 창고로 갑니다. 멋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건물에, 자연의 법칙(낮에 일하고, 밤에 자는)을 무시한 공간이지만, 현대인들은 이곳이 없다면 일상적인 생활조차 불가능합니다. 비스킷 공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정 과정이 수없이 쪼개진 공장에서 노동자의 반복적인 행위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작업이 없다면 우리는 우는 아이에게 과자를 줄 수도, 재정이 빵빵한 국가도 만들 수 없습니다. 결국 누구도 누구의 일을 ‘감히’ 아래로 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일은 가치 있는 것’이라며 마침표를 찍을 수도 없습니다. 작가는 런던 중심부 고층빌딩에 있는 회계사 사무실을 방문해 한 회계사의 지켜봅니다. 회계사는 ‘집요하게 짹짹 울려대는’ 전자음 때문에 고통스럽게 일어나고, 무표정한 사람들 틈에 끼어 회사로 향합니다. 기차 안에서 보는 신문에는 세상의 온갖 잔인한 일들이 가득하지만 별 감흥은 없고, 자신은 안정적인 일상 속에 속해 있음에 안도합니다. 그리고 시간당 500파운드를 벌 수 있는 자신의 시간을 아끼기 위해 쉴 새 없이 하루를 달립니다. (그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웨이터는 시급 7 파운드.) 그리고는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와, 와인 한 잔에 위로를 받습니다. 수많은 기업의 회계업무를 처리해주고,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갈 총알을 풍부하게 지급받는 것.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일의 충돌과 경계를 뛰어 넘는 응시

일들이 충돌하면 상황은 더 복잡해집니다. 알랭 드 보통은 아내의 막내 사촌 결혼식 피로연에서 만난 스코틀랜드의 어느 전력회사 직원과 함께 송전탑 기행을 합니다. 그 중년의 사내는 연애시절 송전탑 아래서 형광등(송전탑 아래는 전력이 높아 따로 전원을 연결하지 않아도 불들 들어온다고 함.)을 켜고 사랑을 속삭인 이야기 등 송전탑에 얽힌 신기한 이야기를 해줍니다. 그러던 중 철새 보호구역 방문자 센터에 들어가 다양한 편의시설이 구비돼 있는 것을 보고, 사내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낍니다. 사람이 사는데 없어서는 안 될 송전탑이지만 늘 흉물 취급을 당하고, 송전탑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이들에게는 별다른 공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난 2년간 이스트 앵글리아의 밀밭에서 똑같은 떡갈나무를 그리며 많은 시간을 보내’는 화가 스티븐 테일러와 만남은 흥미롭습니다. 그는 5년 전 여자 친구가 죽고 시골길을 걷다가 만난 평범한 나무에게서 ‘자신을 그림으로 그려달라고 외치고 있다는 느낌’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는 돈과는 무관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8주 동안 전시를 열었지만 그의 그림은 산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큰 상관은 없습니다. 행여나 그림을 산 사람이 식구들이 모두 잠든 밤 자신의 그림을 보며, 말로 설명할 없는 느낌을 받으면 그만일 테니까요. 그에게 예술은, 일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때로는 멈추게 하는 그런 것입니다. 그는 묻습니다.

“물을 본 적 있어요?” 테일러가 묻는다. “제대로 본 적이 있냐는 거죠? 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처럼.” (p. 214)

이밖에도 알랭 드 보통은 일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토해 놓습니다. 위성 발사의 현장에서 과학의 무한한 능력을 목격하면서도, 그로부터 소외받는 사람들, 인간이 인간을 우러러봐야 하는 부조리를 느낍니다. 또 직업 상담사와 함께 구직(이직)자들을 보면서는 모두가 성공할 수 없는 세상에, 모두가 성공하고자 하는 불가능한 욕망을 발견하고, 창업 박람회장에서는 새로운 것에 대한 열정보다 세상을 읽는 눈이 사람들에게 ‘통’하는 것도 봅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일이 있듯 작가의 이야기도 다양합니다. 그는 ‘일의 의미 찾기 미로’ 속에서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소소한 일상의 것들에도 관심이 많고, 사람의 감정과 심리 묘사에 탁월한 작가이니 만큼 미로 찾기의 과정 또한 섬세하고 유쾌합니다. 미로의 끝이 궁금하시다고요? 제가 생각하는 답을 말할 수는 있지만, 잠시 유보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끝을 모른채 알랭 드 보통과 함께 이리저리 느릿느릿 여행을 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니까요. 대신 힌트만 살짝 드리겠습니다. 바로 ‘죽음’입니다. ‘일’과 ‘죽음’. 다시 산으로 가는 느낌이신가요? 불쾌해 마시고, 창식 씨를 구원해줄 방법을 직접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반디(ak2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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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더월드(HEAL THE WORLD) - 세상을 치유하는 법

어릴 적에는 로보트 태권브이가, 커가면서는 수퍼맨, 배트맨 등 수많은 ‘맨’들이 세상을 지키는 줄 알았다. 일신의 안위를 생각지 않고 몸을 날리는 영웅들의 활약을 보고 있으면 으레 눈물이 났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왜 쟤네들만 지구를 지키는 거야’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희생당하는 모습을 보면 화도 났다. 그래서 주체적인 인간이 되기로 마음먹었고, ‘세상을 지키겠다’는 야무진 꿈도 꿨다. 그런데 범인(凡人)이 세상 지키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하늘을 날지도, 괴력을 갖고 있지도 못하는데. 그래서 먼저 <힐더월드(HEAL THE WORLD)>를 보고, ‘세상을 치유하는 법’을 배워보기로 했다.

<힐더월드>는 국제아동돕기연합에서 만든 책이다. ‘이해할 수 없지만 치유할 수 있는 일들(HEALing)’, ‘돌이킬 수 없지만 회복할 수 있는 일들(RECOVERing)’, ‘강요할 수 없지만 함께할 수 없는 일들(JOINing)’이란 목차에서 알 수 있듯, 더 나은 세상에 대한 희망을 고이 품고 있다. HEALing은 자비 없는 세상에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을, RECOVERing은 오직 사람 입장에서 행동해 죽어가는 지구와 동물들을, JOINing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이야기한다.


“삶은 에이즈로 끝나지 않는다”

먼저 HEALing을 보면 숨이 턱 막힌다. 르완다, 소말리아 내전 등으로 수백만 명이 죽어가고, 2,500만 명의 아프리카 에이즈 감염자들이 치료제를 못 구해 고통 받으며, 1억 2,600만 명의 아동들이 가혹한 노동을 강요받는다. 또 한쪽에서는 음식 쓰레기가 넘쳐나는 판에 다른 한쪽에서는 진흙쿠키를 먹고 뱃속에 기생충을 키운다. 이게 언제 적 얘기냐고? 바로 지금! ‘인간은 이성적,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말은 통용되지 않는다. 다행인 것은 빈곤층을 대상으로 무담보 소액 대출을 하는 ‘그라민 은행 프로젝트’, 위험을 무릅쓰고 본연의 소명을 지키고 있는 ‘국경 없는 의사회’ 등의 존재이다. 그들을 통해 인간의 양심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을 수 있다.

인류의 발달과 인간의 탐욕이 만든 ‘파괴된 지구’의 모습을 담고 있는 RECOVERing은 충격적이다. 오존층의 파괴로 인간 뿐 아니라 모든 생물들이 고통 받고 있다. 이산화탄소 증가로 인한 지구온난화의 폐해는 더욱 심각하다. 한 벌의 밍크코트를 만들기 위해 약 70마리의 밍크가 산 채로 벗겨진다. 물론 사라지는 동물은 밍크뿐만이 아니다. 여우, 친찰라(털실쥐), 과일박쥐 등은 곧 사진으로만 만날 수 있다. 혹자는 ‘예전에 다 그렇게 살았어’라며, 이들의 노력을 ‘도덕적 청결주의’로 매도할지도 모른다. <힐더월드>가 말하는 건 일방적인 환경과 동물 보호가 아니다. 절제와 균형을 통한 공존이다.

JOINing은 우리가 세상을 치유할 수 있는 몇 가지 조언을 한다. 일상적으로 낭비되는 에너지를 절약하고, 일회용 용품을 사용하지 않고, 음식을 남기지 않더라도 세상은 그만큼 가벼워진다. 또 몸의 움직임을 귀찮아하지 않고 ‘우리들의 BMW’(Bus/Bike, Metro, Walking) 이용을 권하기도 한다. 흥미로운 것은 배트맨, 스파이더맨이 실제로 지구를 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크리스천 베일과 토비 맥과이어는 채식주의자이며, 만인의 연인 오드리 헵번은 소식(小食)을 실천하고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한 사업에 앞장섰다. 오드리 헵번은 이렇게 말했다. “날씬해지고 싶으면 다른 사람과 나눠 먹으세요.” 이밖에도 일상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삶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달은 차야 기운다

<힐더월드>의 가장 큰 매력은 강요하지 않는데 있다. 사실 책을 읽으며 많은 고민을 했다. ‘과연 고기를 줄일 수 있을까’, ‘일상의 편리함을 포기할 수 있을까’ 이런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 듯 <레옹>의 나탈리 포트만이 한마디 건넨다. “나는 매우 엄격한 채식주의자이고, 동물에 대한 잔인한 처우에는 진심으로 반대하고 있지만, 설교가는 아니다. 나는 누군가를 강제로 변화시키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내가 내 가치에 따라 행동하듯 타인도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고 믿는다.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매사를 무신경하게 흘려보내지 말고, 자신의 의견을 가지면 된다고 말하고 싶다.”(p 191) 그렇다. 달은 차야 기운다. 부담을 갖는다고 ‘나’는 변하지 않는다. 세상의 목소리에 귀를 막고 있지 않는다면, 움직일 것이다.

책을 읽고 가만히 생각해본다. 미래의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게임기보다는 놀이터와 맑은 공기가, 장난감보다는 함께 뛰어놀 수 있는 동물친구들이 더 소중하다. 우리는 이미 우리의 아이들을 더 사랑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HEAL THE WORLD.

안늘(ak2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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