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04.04 [Romantico] - 테테의 어쿠스틱 낭만歌
  2. 2010.10.01 [이슈와 추천도서] 가을이 오면, 나는 ‘나’를 읽고 싶어진다. (2)

[Romantico] - 테테의 어쿠스틱 낭만歌


 

 
 

‘네스티요나(Nastyona)’의 음악은 몽환적이면서도 리드미컬하다. 그루브함 속에 녹아 있는 나른한 기운이 시종일관 귓가를 간지럽히곤 한다. ‘텔레파시(Telepathy)’는 펑크와 일렉트로니카 사이 어딘가에서 방황한다. 감각적인 흥겨움이 모호한 패턴 속에 살아 숨쉬고 질주한다. 둘 다 범상치 않은 음악 색깔을 지닌 인디 밴드다. 그런데 이 두 그룹을 모두를 거친 베이시스트 테테(임태혁)의 솔로 EP라니, 도통 어떤 느낌일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아마도 베이시스트 특유의 리듬감으로 무장된 펑키한 락 사운드가 아닐까 막연히 상상했을 뿐. 허나 이 서투른 짐작은 재생지로 만들어진 디지팩을 받아 드는 순간 사막의 신기루마냥 스르르 사라지고 말았다. 까끌한 도화지 특유의 느낌과 베이지톤의 단색으로 콜라쥬된 그림 위에 소박하지만 장난스럽게 쓰여진 필기체는 아주, 그것도 아주 아주 아날로그틱 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 전에 유추할 수 있는 몇 가지 정보들이 있긴 했다. 앨범 제목 ‘Romantico'가 라틴어로 '낭만'이라는 뜻을 가졌다는 점, 수록곡 모두 「Romantic」, 「저녁」, 「야상곡」, 「Last Scene」 등의 감상적인 단어로 표현되었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통 밴드에 머물던 뮤지션들이 솔로로 데뷔할 때는 결코 이전과 같은 스타일의 음악을 선보이지 않는다는 점까지. 왜 그땐 몰랐을까. 정말 놀라울 정도로 테테(임태혁)는 그간 머물던 밴드들과 180도 다른 사운드로 중무장한 채 나타났다. ‘네스티요나’와 ‘텔레파시’에서 파워풀한 리듬감을 지배하던 존재감은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거친 일면을 버린 그는 부드럽고 서정적인 이미지로 변모해 있었다. 아니 본래 이게 그의 진면목인지도 모른다. 뮤지션의 변신은 언제나 무죄, 특권이 아니었던가. 사실 봄보다는 가을이라는 계절에 더 잘 어울릴 법한 노래들이지만, 점점 따스해져 가는 햇살 아래 피폐해진 심신을 달래줄 한 잔의 차 같은 여섯 곡의 노래들은 어쿠스틱 특유의 질감 아래 감미롭고 아름다운 아우라를 선사한다.

보사노바, 탱고의 라틴 정서를 물씬 풍기는 첫 번째 트랙 「Instant」는 경쾌한 템포의 그루브함이 시종일관 춤을 리드하는, 숙달된 남미 댄서만큼이나 매력적인 노래다. 건조한 듯 나른한 듯 읊조리는 테테의 보컬도 담백하니 좋고, 어쿠스틱 사운드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등장하는 일렉트로닉의 청량감도 시원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것이 테테다!라며 지장을 쾅 하고 남기는 서두로서 아주 잘 어울린다. 멜랑꼴리한 기타 사운드로 시작하는 앨범 제목과 동명의 두 번째 트랙 「Romantico」는 미디엄 템포의 리드미컬한 노래. 베이시스트로서 장기가 유감없이 드러나는 들썩거림이라 생각하는데, 저탄산 음료를 마실 때만큼이나 알싸하고 황홀한 목넘김의 쾌감을 선사한다. 버스 안에서 바라보는 저녁 노을 같은 세 번째 트랙 「저녁」은 집집마다 풍겨오는 밥 짓는 냄새만큼 푸근하지만 외로움의 감성을 자극하는 노래로 기타의 서정적인 사운드와 애절한 보이스의 조화가 마치 누룩처럼 구수하니 작용하는 곡이다. 

피아노와 기타, 코러스가 스산하지만 감미롭게 어우러진 「Island」는 단조로움 속에 짙은 맛이 느껴지는 네 번째 트랙. 고독과 외로움을 상징하는 동시에 목표이자 꿈이 되는 「Island」를 표현하기 위해 테테와 장유진이 함께 부른 이중적인 질감이 백미다. 안젤로 바달라멘티의 영화음악이 살짝 떠오르기도 했다. EP의 마지막 보컬 곡이기도 한 다섯 번째 트랙 「야상곡」 역시 쓸쓸한 애수와 니힐리즘의 색채가 묻어난다. 피아노와 어쿠스틱 기타를 위주로 풀어가다 후반에 드럼과 일렉 기타가 합류하며 드라마틱한 사운드를 펼치는 마지막 간주는 꽤나 아름답다. 대미를 장식하는 「Last Scene」에 이르러서 드디어 자신의 본거지로 회귀한 듯한 성향의 일렉트로니카를 선사하는데, 사실 이것도 펑크와 뉴웨이브에 가까운 것이 아닌, 엠비언트나 인더스트리얼 사운드에 근접해있다. 허나 멜랑꼴리한 멜로디를 헤비하지만 클래시컬하게 포장해내는 그 만듦새는 그 차가운 기계음의 질감 속에서도 어쿠스틱한 분위기를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30분이 채 안 되는 짧은 분량임에도 그간의 이력을 지워버린 채 솔로로서 자신의 스타일과 색깔을 명확히 보여준 존재감은 대단하다. 어쿠스틱과 낭만이라는 테마에 걸맞게 응집력 있는 구성을 짜면서도 라틴 음악과 8-90년대 복고적인 색채, 일렉트로닉을 적절히 나누어 구사하며 변화를 주는 노련한 센스도 만족스럽다. 내공과 감각이 만나 좋은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테테, 그 황홀한 애수에 대하여 이태리 장인이 한땀 한땀 수놓은 듯한 답을 펼쳐 보였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박력남' 님은? 
매체, 장르를 가리지 않는 잡식성 문화소비자
글이 담긴 공간 popinjay.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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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추천도서] 가을이 오면, 나는 ‘나’를 읽고 싶어진다.

 

오랜만에 모두에게 찾아온 긴 연휴를 지내고 나니, 이제 완연한 가을이 와 있는 듯합니다. 번잡한 마음을 추스르고, 몸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있지만, 공연히 창밖으로 애꿎은 시선을 보내게 되는 건, 비단 저만이 아니겠지요. 늦은 밤 평소에 좋아하던 음악을 틀어놓고 마냥 뒹굴어도 좋겠고, 느긋하게 "책상 앞에서 詩集들을 뒤적이"며, "詩의 행간들 속에서 고요가 피어오"르는 걸 보아도 좋겠다, 생각합니다. 한 해의 반 이상을 꼬박 살아낸 우리가, '가을은 낭만의 계절'이라는 낯간지러운 말을 핑계삼아 스스로에게 얼마간의 여유를 주는 것도, 저물어가는 해年와 함께 스스로를 정리할 수 있는 작은 시작이 될 테니까요.

 

 

 

 

「어떤 풍경」

 

고요한 서편 하늘

해가 지고 있습니다

건널 수 없는 한 세계를 

건넜던 한 사람이

 

책 상 앞에서 詩集들을 

뒤적이고 있습니다

 

그가 읽는 詩의 행간들 속에서

고요가 피러오릅니다

그 속에 담겨 있는

時間의 무상함

 

(어떤 사람이 시간의 詩를

읽고 있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최승자, 『쓸쓸해서 머나먼』, 문학과 지성사, 2010, 65쪽 

  

“시집들을 뒤적이”는 일은, 이제까지 미처 알지 못했던 내 안의 언어를 찾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 내 안에 있었지만, 그에 맞는 언어를 갖지 못했던, 어떤 감정과 생각들의 맨얼굴을 보고 싶을 때. 내가 나를 설명하지 못하는 무능력을 절감할 때. 그때야 비로소 추상과 이미지로 열려 있는 시의 세계가, 객관에 지배되는 일상의 우리에게, 간절한 필요로 다가오는 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일상적 삶은 '느낌'에서 '사실'로, '위험'에서 '안전'으로의 끊임없는 이행이다. 예술이 진정한 삶을 복원하기 위한 시도라면, 예술은 일상적인 삶과는 반대 방향을 진행할 것이다. 즉 사실에서 느낌으로, 안전에서 위험으로."  - 이성복,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 문학동네, 2001

 

늘 보고 듣고 느껴왔던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해, 그 생경함으로 '사실'과 '안전'의 지대에 안착한 일상을 뒤흔들고, 자발적인 혼란에 처하는 일. 그게 바로, 시를 읽고, 시에서 타인을 읽으며, 타인을 통해 다시 나를 읽는 방법이 아닐까요. 그러나 '시 읽는 철학자' 강신주가 강조해 말하듯, 이와 같이 "진정한 삶을 복원하기" 위해, "삶을 낯설게 하는" 것은 비단 예술과 시의 역할만은 아닙니다. 다시 말해, "일상적 세계를 동요시키고 낯선 세계를 도래시키는 힘"은 "개념들을 창조하고 그것을 논리적으로 엮음으로써 새로운 사유 문법을 만드는" 철학 또한 충분히 지니고 있는 것일 테니까요.

 

그러니 이 '가을의 낭만'이 자연스럽게 추동하는 "진정한 삶을 복원하기 위한 시도"를 위해, '우리 시에 비친 현대 철학의 풍경'을 그리고 있는 강신주의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을 따라가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가을의 낭만에 기대어 내 자신을 설명해줄 언어를 찾아 헤매다 만난 이 책을 권합니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이즈음이 되면, 그 사이 무감하고 무던해져 버린 일상 속에서, 작년 이맘때쯤과 다른 '오늘의 나'를 찾고 싶어지는 모든 분들에게.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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