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왜쓰는가'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2.01.27 [접어놓은 구절들] 조지 오웰, 《나는 왜 쓰는가》
  2. 2010.12.10 <나는 왜 쓰는가> - 쓰고 읽고 다시 쓰면서
  3. 2010.11.19 <코끼리를 쏘다> - 조지 오웰, 그 이름으로 느끼는 글맛

[접어놓은 구절들] 조지 오웰, 《나는 왜 쓰는가》


 

조지 오웰 | 《나는 왜 쓰는가》 | 한겨레출판 | 2010

 

우리 시대에는 ‘정치와 거리를 두는’ 일 같은 건 있을 수 없다. 모든 문제가 정치 문제이며, 정치란 본래 거짓과 얼버무리기, 어리석음, 반목, 정신분열증의 집합체인 것이다. 그러니 전반적인 분위기가 좋지 않을 경우 언어는 수난을 당하게 된다. 검증할 만한 자료를 들고서 하는 추측은 아니지만, 나는 독일어, 러시아어, 이탈리아어가 지난 10년에서 15년 사이 독재 정권 때문에 상당히 타락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생각이 언어를 타락시킨다면, 언어 또한 생각을 타락시킬 수 있다. 부적절한 어법은 알 만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관습과 모방에 의해 퍼져나갈 수 있다. 내가 거론하고 있는 타락한 언어는 어떤 면에서는 대단히 편리한 것이다. (…) 이렇게 이미 만들어진 표현들(‘토대를 구축하다’, ‘획기적인 변혁을 달성하다’)이 내면에 침입하는 것을 막자면 항상 경계를 단단히 하는 수밖에 없으며, 그렇지 않으면 그런 표현들 하나하나가 뇌의 일부를 마취시켜버린다. (…)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의미가 단어를 택하도록 해야지 그 반대가 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산문의 경우, 단어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단어에 굴복하는 것이다.

<정치와 영어>중에서

 

무협소설을 쓰는 주인공 ‘대구’가 노트북을 빠르게 두드리며 소리친다. 내 타이핑 속도가 영감이 떠오르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2007년에 방영한 드라마 ‘메리 대구 공방전’의 한 장면이다. 이번에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김영하의 <옥수수와 나>에도 비슷한 대목이 있다. 소설가인 주인공 ‘박만수’가 며칠 만에 미친 듯이 장편소설을 쓰는 것이다. (작가의 경험담과 무관하다는 전제 하에) 아마도 이것은 글 쓰는 사람의 공통된 로망인 것 같다. 현실에서는 반대인 경우가 더 많으니까.

 

몇 줄 안 되는 이 글을 쓰면서도 나는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한다. 생각이란 엉킨 실타래와 비슷하다. 언어를 쓴다는 것은 실을 살살 풀어 다시 정돈된 타래를 만드는 일과 같다. 언어가 생각을 타락시킨 모양새는 무엇일지 그려 본다. 겉보기에는 말끔하지만 막상 사용할 때면 뚝 끊어지는, ‘잇는’ 기능을 상실한 실이 아닐까. 한 마디로 속아 넘어가기 쉬운 실 말이다. 어떤 면에서는 생각이 언어를 타락시키는 쪽보다 더 악질이다.

 

《나는 왜 쓰는가》는 조지 오웰의 생각이 담긴 실타래다. 나는 어느덧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수십 년 전 문학관(정치관)이 여전히 유효한 시대라니.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총선을 앞둔 유권자로서 참 씁쓸하다. 우울한 얼굴을 모니터에 비추면 뭐하나. ‘대구’나 ‘박만수’는 없다. 그러니 정신 바짝 차리고 조지 오웰의 말을 따를 수밖에. 의미에 맞는 단어 고르기. 시대를 속이지 않는 사람 고르기.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hebong200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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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쓰는가> - 쓰고 읽고 다시 쓰면서

 

조지 오웰, <나는 왜 쓰는가>, 한겨레출판, 2010

 


인터넷이 발달한 요즘은 너나 할 거 없이 많은 이들이 글을 씁니다. 홈페이지, 블로그, 카페뿐 아니라 트위터, 페이스북 등의 SNS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짧은 문장에 정보와 사람, 그들의 삶을 실어 나르기 바쁩니다. ‘글’이라는 매개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곳 어디에서든, 자신을 타인에게 드러내 보이고, 그들을 통해 자신의 크기를 넓혀가려는 많은 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1인 미디어’라는 말이 나오는 이 시대에, ‘나는 왜 쓰는가’라는 질문과 고민은 비단 이름을 알린 작가의 것만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지 오웰의 에세이 중 가장 빼어난 29편을 묶은 <나는 왜 쓰는가>는 1946년 ‘갱그릴’지에 게재한 오웰의 대표적인 에세이 제목이기도 합니다. 이 글은 그의 작가론과 정치론이 한데 잘 녹아 있는 가장 상징적인 작품으로, “작가로서의 자신에 대한 일종의 짧은 자서전”도 한데요. 그 속에서 오웰은 자신이 글을 쓰는 동기를 네 가지로 정리해 밝히고 있습니다.

1. 순전한 이기심. 똑똑해 보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고 싶은, 사후에 기억되고 싶은, 어린 시절 자신을 푸대접하는 어른들에게 앙갚음을 하고 싶은 등등의 욕구
2. 미학적 열정.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에 대한, 또는 낱말과 그것의 적절한 배열이 갖는 묘미에 대한 인식
3. 역사적 충동.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알아내고, 그것을 후세를 위해 보존해두려는 욕구
4. 정치적 목적.세상을 특정한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어떤 사회를 지향하며 분투해야 하는지에 대한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구
(293-294쪽)

그의 이런 생각에서 저는, 세상에 나를 더하고 세상 속으로 좀 더 들어가려는 ‘글쓰기’의 마음을 읽게 됩니다. 그리고 이 책, <나는 왜 쓰는가>를 채우고 있는 그의 또 다른 에세이들에서 그 마음을 다시금 발견하게 됩니다. 오웰의 생애 곳곳에 배어있는, 세상을 향한 발걸음의 흔적을 읽으며, 그의 작품들을 하나하나 되새겨 보기도 합니다.

‘스파이크(1931)’에서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1933)을, 그리고 이어지는 <위건부두로 가는 길>(1937)의 기억. ‘교수형(1931)’, ‘코끼리를 쏘다(1936)’를 읽으며 <버마시절>(1935)을, ‘스페인의 비밀을 누설한다(1937)’과 ‘스페인내전을 돌이켜본다(1942)’에선 <카탈로니아 찬가>(1938)가, 그 모든 기억으로 더 풍성하게 읽을 수 있었던 <동물농장>(1945)과 <1984>(1949)까지.

그러고 보면, 이 책을 읽는 것은 이미 그 목적을 달성한 오웰의 성공적인(?) 글쓰기를 확인하는 일이 되기도 합니다. 특유의 유머와 통쾌한 독설에 담긴 날카로운 통찰은 그의 글을 읽는 이로 하여금 끊임없이 “어떤 사회를 지향하며 분투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도록 이끌고, 그 생각은 다시 책 속의 세상과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나를 더해, 세상 속으로 좀 더 들어가고 싶은 ‘글쓰기에 대한 욕망’를 구체화시켜주니까요. 그렇게 쓰고 읽고 다시 쓰는 과정에서 어제와 다른 오늘의 우리가, 과거와 다른 현재의 세상이 만들어지고 있을 테니까요.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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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를 쏘다> - 조지 오웰, 그 이름으로 느끼는 글맛

 

조지 오웰, <코끼리를 쏘다>, 실천문학사, 2003

 


“오웰의 문학을 논할 때 우리는 그의 삶을 생각하지 않고서는 작품을 생각할 수 없고, 작품을 생각하지 않고서는 삶을 생각할 수 없다.” -리처드 리즈(문예비평가)

이처럼 적확한 표현이 또 있을까. 책 뒷표지에 적혀 있는 이 글에 오래도록 시선이 머문다. 흔히 조지 오웰이라는 작가를 수식하기 위해 등장하는 작품은 누구나 알고 있을 법한 <동물농장>과 <1984>. 오웰의 후기 작품에 속하는 이 소설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그의 삶의 궤적이 묻어나오는 다른 작품들이 소환되곤 한다.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버마시절>, <위건부두로 가는 길>, <카탈로니아 찬가>, 그리고 그의 산문집 <코끼리를 쏘다>, <나는 왜 쓰는가>까지.

시대의 목격자인 동시에 참여자이기도 했던 그의 삶이 오롯이 담긴 이 책들 속에서 우리는 1920년대 유럽의 제국주의, 30년대 경제대공황과 전체주의라는 역사의 큰 흐름을 만나게 된다. 그 흐름에 휩쓸려 역사의 변두리로 내몰린 개인들의 삶을 대면하게 된다. 부랑자, 식민지 피지배자들, 실업자, 참전 의용군 등, 이념과 사상에 묻혀 지워지기 일쑤인 그들의 숨소리가 시대의 공기처럼 전해져온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중간의 어디쯤에서 역사의 큰 흐름과 삶의 세부를 오고가는 ‘비판적 개인’ 혹은 ‘실천적 지성인’으로서의 조지 오웰이 느껴진다.

그리고 바로 그때, 조지 오웰의 작품이 아닌 작가 ‘조지 오웰’이 읽고 싶어진다. 그를 ‘제대로’ 이해하고 싶어진다. 소설과 르포르타주 이외에, 한국어 텍스트로 읽을 수 있는 그의 또 다른 글을 만날 수 있는 <코끼리를 쏘다>를 읽기 시작한다.

책은 크게 다섯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1부는 오웰이 제국주의 식민지 경찰 시절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 글들로 실제 그의 ‘버마시절’을 느끼게 하고, 2부는 오웰이 가지고 있는 문학적·정치적 견해를 밝히고 있는 글들로 삶과 작품이 겹쳐져 있는 작가 ‘조지 오웰’을 생각할 수 있게 한다. 3부는 파리와 런던의 뒷골목에서 최하층 사람들과 생활했던 경험을 담은 글들로 이 또한 그의 작품인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과 이어진다. 그리고 4부는 일상에 스며 있는 정치성에 관한 견해를, 마지막으로 5부는 유럽 문학에 대한 단상들을 피력한 에세이들이 담겨 있다.

그렇게 그의 작품을 읽다 삶으로 눈을 돌리게 된 우리는 그 삶의 일부 혹은 전부일 수 있는 작품들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곤 또다시 삶으로 향하게 되는데, 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삶과 작품의 세계가 교차하는 ‘조지 오웰’을 읽으며 ‘글 속의 세상’과 그 ‘세상 속에 있는 글’ 사이를 오고가는 우리에 대한 발견으로 이어진다. 그러니 조지 오웰, 그 이름으로 우리가 느끼고 이해하게 되는 것은, 세상과 사람 사이를 잇는 견고한 고리, 즉 세상을 스스로 등지거나 혹은 그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이끌어 ‘사람이 세상’인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냉혹한 현실은 생생한 묘사로, 날카로운 비판과 자기 성찰은 위트와 유머로 담은 그의 글이 ‘맛’을 더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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