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14.12.03 《눈먼 자들의 국가》 - 2014년 4월 16일
  2. 2012.08.22 [단편소설의 맛] 김애란, <너의 여름은 어떠니>
  3. 2012.01.10 [요즘 뭐 읽니?] 조경아, 《더 테이블》
  4. 2011.10.28 [접어놓은 구절들] 김애란, 달려라 아비
  5. 2011.10.25 [반달토끼의 책방앗간] 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
  6. 2011.06.21 [요즘 뭐 읽니?] 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
  7. 2009.09.04 너와 나 사이 흐릿한 끈 - <이효석문학상수상작품집 2009>(토끼의 묘 외) (2)

《눈먼 자들의 국가》 - 2014년 4월 16일

 

 

김애란, 박민규, 황정은 외 | 《눈먼 자들의 국가》 | 문학동네 | 2014

 

"인간의 인간다운 세상을 위해 인간에게 기여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숭고하고 보람스러운 일이 어디 있을까. 진정한 문학, 참된 문학은 역사를 변혁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 길을 따라 남은 인생을 살고자 노력하는 작가 조정래 작가의 말씀입니다.

 

역사상 유례없는 해양 참사가 일어난 지 여러 날이 지났건만, 아직도 그 슬픔과 상처의 흔적은 몸속 깊이 만연해 있습니다. 잘못과 죄는 일어났는데, 책임을 지려고 하는 이 없는 이 사회에 문인들이 슬픔과 진실을 외칩니다. 이 책은 계간 문학동네 여름호와 가을호에 게재된 김애란, 김연수, 황정은 등 12명의 글을 묶은 것입니다. 김훈 작가가 팽목항에 내려갔을 때 유가족들 모두에게 준 책이 있는데, 바로 이 작품이었습니다. 저는 바로 그때 이 책을 알게 되었습니다.

 

선박이 침몰한 ‘사고’이자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다, 라고 쓴 박민규 작가의 표제작 ‘눈먼 자들의 국가’는 읽는 내내 심장을 두들깁니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눈을 떠야 한다.’는 말이 크게 울립니다. 책의 판매 수익금은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자 하는 다양한 움직임’에 기부될 예정이라니 더 눈길이 갑니다.

 

재일 학자 강상중은 ‘문학의 힘’에 관하여 여러 번 말했습니다. 그는 2010년에 갑작스럽게 아들을 잃었고,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목격했습니다. 그가 느낀 삶과 죽음의 의미를 담은 소설이 《마음》입니다. 그는 한국에서 문인들이 해야 할 일이 많다고도 재차 강조했습니다.

 

“마음의 상처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는 것, 그리고 상처받은 이들을 치유하는 일이 문학이 해야 할 일”

 

앞으로 ‘바다’를 볼 때 이제 우리 눈에는 바다 외에 다른 것도 담길 것이다. ‘가만히 있어라’는 말 속엔 영원히 그늘이 질 거다. 특정 단어를 쓸 때마다 그 말 아래 깔리는 어둠을 의식하게 될 거다.”라는 김애란의 글에서 세월호가 남긴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알겠습니다. 소설가 황정은은 이렇게 말합니다. “얼마나 쉬운지 모르겠다.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세상은 원래 이렇게 생겨먹었으니 더는 기대도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은. 내가 이미 이 세계를 향한 신뢰를 잃었다고 말하는 것은.” 그녀는 우리의 무기력을 고백하는데, 정말 가슴속 깊은 곳을 뜨겁게 찌릅니다.

 

세월호는 고도성장과 눈부신 발전 이면에 숨은 거품과 안개의 단상을 여과 없이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누군가는 지겹다고, 잊고 싶다고 말합니다. 한쪽에서 진상 규명을 외치면, 다른 쪽에서 그만하자고 외치죠. 처칠은 ‘역사는 반복된다. 다만 비극으로….’라고’라고 말했습니다. 같은 사건이 다시는 반복되어선 안 된다며 문인들이 한마음으로 만든 이 책은 곁에 두고 항상 봐야 할 우리의 현주소입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이쁜뚜영이님은?

좋은 책을 읽고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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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의 맛] 김애란, <너의 여름은 어떠니>

평소 ‘끝물’이라는 말을 즐겨 씁니다. ‘과일, 푸성귀, 해산물 따위에서 그 해의 맨 나중에 나는 것’을 뜻하는 이 단어의 용도는 ‘과일, 푸성귀, 해산물 따위’가 아니라도 많습니다. 저는 계절이나 시기를 뜻하는 명사에 접붙여 쓰곤 합니다. 이를테면 사춘기 끝물이라거나 연애 끝물이라는 식으로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끝이 있으면 시작이 있)는 것이 거의 모든 인생사. 무엇보다 생생한 젊음이나 사랑도 이 흐름을 피하진 못합니다. 이러한 시작과 끝을 반복하면서도 사람들은 그 사이, 한복판에서 ‘젊구나!’ 혹은 ‘사랑이구나!’라고 느끼지 못합니다. ‘끝물’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알아차리지요. ‘그땐 참 젊었지.’ 혹은 ‘그건 사랑이었네.’라고요. 실감할 시간은 다 끝나 가는데도 말이죠.

 

‘끝물’이 환기하는 정서란 이처럼 묘한 구석이 있습니다. 왠지 억울하지만, 그런 면 때문에 사람들은 또 다른 젊음을 꿈꾸거나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기도 합니다. 지금 가는 계절이 언젠가 돌아올 것을 알듯이 말이죠. 아, 이거 소설을 읽기도 전에 너무 일찍 결론을 내버린 건 아닌가 싶네요. 바야흐로 여름 끝물입니다. 때맞춰 김애란 신간이 출간되었습니다. 세 번째 소설집인데요. <너의 여름은 어떠니>를 골라 보았습니다. 오래 전, 계간지에서 접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제 ‘끝물’이라고 부를 수도 없을 만큼 저만치로 가 버린 시절의 일이죠. 지금 이 순간도 그리 멀어질 것을 예감하며, 소설을 다시 읽어 나갑니다.

 

선배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9쪽)

 

아직 상복을 벗지 못한 채 울고 있는 나를, 여름옷을 주렁주렁 매단 2단 옷걸이가 무심히 그리고 오랫동안 굽어보고 있었다. (44쪽)

 

이야기를 이루는 시간의 축은 세 가지입니다. ‘선배’를 만나는 현재의 여름, ‘선배’를 홀로 연모했던 과거의 여름, 그보다 더 먼 과거의 여름. 세 번째 여름은 어린 시절 친구 ‘병만’에 관한 기억입니다. ‘병만’은 물놀이 중 물에 빠진 ‘나’를 구한 적이 있습니다. 부탁이 있다며 ‘선배’에게 연락이 온 날은 마침 ‘병만’의 장례식 날이고요. 잠시 망설이지만, 과거의 여름을 기억하는 ‘나’는 거절하지 못합니다. ‘선배’에게 받은 게 많았다고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현재의 여름, ‘선배’의 밥벌이와 관련된 부탁을 들어주는 시간은 ‘나’를 초라하게 만듭니다. ‘선배’와의 관계에 남아 있다고 여겼던, 헤아릴수록 환해지던 기억들은 사실 과거에 불과합니다. 유행이 지난 여름옷처럼 남루합니다. 그 허탈감 속에서 ‘나’는 ‘병만’을 떠올립니다.

 

“손에 걸리는 거라곤 쥐자마자 이내 부서지는 몇 움큼의 강물이 전부”(41쪽)였던 그때, ‘나’는 ‘병만’의 팔을 잡았습니다. 당시 ‘병만’의 팔뚝에는 멍이 들었던 것을 기억하는 ‘나’는 “내가 모르는 곳에서, 내가 아는, 혹은 모르는 누군가가 나 때문에 많이 아팠을 거라는 느낌”(44쪽)에 울음을 터뜨립니다. 그것은 어쩌면 ‘병만’에게 투영한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위로이기도 합니다. 여름 끝물에, 어떤 시절의 끝에서 한창때를 회고하며 기뻐하거나 오롯이 슬퍼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여름을 지나온 본인뿐이니까요. 여름이었구나. 이제야 그런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너의 여름은 어떠니>라는 질문을 문득 건네 봅니다.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hebong2000@bandinlunis.com)

 

  

 

* 김애란
1980년 인천 출생.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 졸업. 2002년 제1회 대산대학문학상에 단편 <노크하지 않는 집> 당선. 소설집 《달려라, 아비》와 《침이 고인다》와 《비행운》,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이 있음.

 

* 현재까지 발표작
<너의 여름은 어떠니>
| 《비행운》에 게재
《두근두근 내 인생》 | 창비 | 2011
《침이 고인다》 | 문학과지성사 | 2007
《달려라, 아비》 | 창비 |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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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뭐 읽니?] 조경아, 《더 테이블》

 


조경아 | 《더 테이블》 | 미호 | 2011

 

어젯밤에 뭐 먹었어? 이런 질문 앞에서 음식만 생각나지는 않을 겁니다. (혼자만의 밥상이 아니었다면) 대개는 함께 먹은 이들이 떠오르기 마련이지요. 《더 테이블》에는 그런 기억으로부터 비롯된 스무 가지의 에세이가 담겨 있습니다. 저자는 《GQ》와 《W》의 에디터였고, 현재는 여행잡지 《Off》와 《4D3N》의 편집장입니다. 패션지 에디터로서의 이력은 《더 테이블》에 고스란히 묻어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유명 여배우와 점심을 먹게 된 일이나 촬영차 머무른 로마의 한 레스토랑에 관한 기억이 그렇지요. 저는 사실 읽는 내내 모종의 거리감을 느꼈습니다. 그들만의 ‘테이블’에 공감할 수 없었다면 너무 속 보일까요.
 

다만, 물만두를 서울에서 제일 잘하는 집이라 만두 좋아하는 나를 데려오고 싶었다는 말을 “서울에서 물만두 제일 잘하는 집이다. 천천히 먹어라.”라는 호응이 안 되는 두 문장으로 해 놓고 또 말없이 만두만 먹었다. 만두가게에서 나와서 아빠와 내가 무엇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 사이는 까무룩 기억이 없다. (59쪽)

그해 봄에 엄마는 암에 걸렸고 머리카락이 빠지고 구토를 하며 항암치료 중이었다. (…) 그리고 비빔냉면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내 것을 덜어 주지는 않았다. 우리는 그런 장면이 슬프게 어울리는 모녀가 아니었다. 사리 하나를 더 시켰고, 그 매운 기운으로 겨울 바람을 맞으며 항암치료로부터 귀환했다. (81쪽)



하지만 색안경은 곧 벗겨졌습니다. 조경아는 에세이 사이사이마다 혀가 기억하는 아주 사적인 이야기를 풀어 놓습니다. 셰프의 성찬을 즐기는 패션지 에디터이기 전에 엄마와의 비빔냉면을 잊지 않는 여자임을 느낄 수 있지요. 이는 단편소설 <칼자국>의 한 대목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난 어머니가 해주는 음식과 함께 그 재료에 난 칼자국도 함께 삼켰다. 어두운 내 몸속에는 실로 무수한 칼자국이 새겨져 있다. 그것은 혈관을 타고 다니며 나를 건드린다. 내게 어미가 아픈 것은 그 때문이다. 기관들이 다 아는 것이다. 나는 ‘가슴이 아프다’는 말을 물리적으로 이해한다. (김애란, <칼자국> 중에서)


여러 층위의 사람들과 밥상을 나누고 새로운 맛을 향한 호기심이 가능한 것은 그들만의 ‘테이블’, 그 이전의 ‘테이블’이 존재했기 때문 아닐까요. 《더 테이블》은 그리 특별하지 않습니다. 일 년도 안 되어 이런 책이 있었나 싶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지금은 이 책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다 읽고 나면 저자가 프롤로그에서 밝히듯 ‘그냥 끼니처럼 드시고 시원하게 내려 보내’는 글을 찾는 분의 밥상에 슬쩍 놓아둘까 하고요.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hebong200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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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어놓은 구절들] 김애란, 달려라 아비


 

김애란 | <달려라 아비> | 창비 | 2005

 

나는 낯선 이들을 웃기고 난 뒤 안도하는 사람. 나는 나의 편견을 아끼는 사람, 나는 그 편견을 얻기까지 달려갔다 다치고 온 길을 버릴 수 없는 사람이다. 나는 '그것은 수난자들의 질문입니다'라는 알료사의 말에 밑줄 긋는 사람.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 나는 내가 정말 아무것도 아닐까봐 무릎이 떨리는 사람이다.

 

(...)

 

나는 자신에 대해서는 '당신들이 모르는 내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타인에 대해서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만 나는 다 알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

 

나는 내가 무엇을 말하고 싶어했는가보다, 당신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해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사람이다. 나는 교양있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하는 사람, 그러나 무엇에나 쉽게 감탄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나는 자신에게 솔직한 사람들을 미워하는 사람, 나는 뻔한 사람, 그러나 당신이 뻔하다는 사실에 불쾌해지는 사람이다.

 

<영원한 화자>

 

김애란 작가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20대에는 저에게 많이 집중했던 것 같아요. 오죽하면 ‘나는’으로 시작해서 ‘나는’으로 끝나는 단편을 쓴 적도 있어요. 사람들하고 얘기하고 나누고 오해하고 실망하고 상처받는 과정도 나를 중심으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 위의 영원한 화자가 바로 그 '나는'으로 시작하여 '나는'으로 끝나는 단편이다. 거의 모든 문장이 '나는'으로 시작하는 <영원한 화자>를 읽는 동안 소설 속 나와 진짜 나를 끝없이 견주어 보았다.

 

투명한 용지를 대고 그림을 그려놓은 듯이 두 '나'는 참 많이도 닮아 있었다. 그것을 확인하고 한편으론 안도했고, 한편으론 울적했다. 나와 너무도 닮은 내가 있다는 걸 알고 나니 나의 모든 걸 이해받는 기분이 들어서 안도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저 내밀한 속내를, 진짜 나를 다 온전히 껴안아준 것 같아서 특별한 말 없이도 위로 받았다. 그런 반면 내가 정말 '뻔한 사람'이라는 게 적나라하게 밝혀진 것 같아 불쾌해질 만큼 울적했다. '당신들이 모르는 내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누구도 모른다고 생각한 내 밑바닥이 낱낱이 밝혀지고 있었다. 또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만 나는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알고 보니 다른 사람들도 다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풀이 죽었다. 결국 나는 내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 정말 아무것도 아닐까봐 무릎이 떨리는 것'이었다.

 

가끔씩 몇 년 전에 읽었던 <영원한 화자>를 꺼내어 다시 읽어본다. 아마 나 스스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 느낄 때에 그러는 것 같다. 언제나 '나'는 이렇다, 하면 저렇고 저렇다, 하면 이렇다. 나를 정의하는 순간 정의된 나는 사라지거나 변모한다. 그리하여 내가 나에대해 말할 수 있는 건 하나 뿐이다. 나는 흐르고, 변한다라는 것. 어디로 흐르고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지만, 그래서 두렵고 그래서 기쁘다.

 

- 컨텐츠팀 에디터 료(fololy@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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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토끼의 책방앗간] 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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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뭐 읽니?] 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 <두근두근 내 인생> | 창비 | 2011

 

지난주 [에디터의 북카트]에 들어있었던 <두근두근 내 인생>이 드디어 제 손에 쥐어져 있습니다.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두근두근 내 인생>은 김애란 작가의 첫 장편소설인데요. 재기발랄하면서도 세상과 사람을 오래, 멀리 바라보았던 작가가 조금 더 긴 호흡으로 돌아왔습니다. <두근두근 내 인생>은 2010년 여름부터 올해 봄까지, 계간 '창작과 비평'에 연재되었습니다. 애틋한 기다림을 견디기엔 지나치게 조급한 성정을 가진터라, 질끈 눈을 감고 책으로 엮여져 나오기만을 얼마나 고대했는지 모릅니다. 오래 기다린 만큼 급하게 읽으면 체할까(?) 싶어 아주 천천히, 천천히 읽고 있습니다.

 

책장을 펼치고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은 '프롤로그'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열일곱에 나를 가졌다.

올해 나는 열일곱이 되었다.

 

(...)

 

이제 나는 아버지보다 늙어버렸다.

아버지는 자기가 여든살이 됐을 때의 얼굴을 내게서 본다.

나는 내가 서른넷이 됐을 때의 얼굴을 아버지에게서 본다.

오지 않은 미래와 겪지 못한 과거가 마주본다.

그리고 서로에게 묻는다.

열일곱은 부모가 되기에 적당하 나이인가 그렇지 않은가.

서른넷은 자식을 잃기에 적당한 나이인가 그렇지 않은가.

 

아버지가 묻는다.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느냐고.

나는 큰 소리로 답한다.

아버지, 나는 아버지가 되고 싶어요.

아버지가 묻는다

더 나은 것이 많은데, 왜 당신이냐고.

나는 수줍어 조그맣게 말한다.

아버지, 나는 아버지로 태어나, 다시 나를 낳은 뒤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싶어요.

아버지가 운다.

 

이것은 가장 어린 부모와 가장 늙은 자식의 이야기다.

 

- 6,7 P 프롤로그

 

프롤로그에서 설핏 짐작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주인공인 '아름'은 조로증을 앓고 있는 아이입니다. 그리고 어머니와 아버지가 자신을 만든 나이인 열일곱이 되었습니다. 자신이 '열여덟이 될지, 열아홉이 될지' 알 수 없는 아이. 너무 빨리 나이 든 신체를 따라 마음까지 빨리 나이 들어 버린 아이. 프롤로그의 마지막 문장처럼 <두근두근 내 인생>은 '가장 어린 부모와 가장 늙은 자식의 이야기'입니다. 이 모순되는 말 속에는 아릿한 슬픔이 침잠해 있습니다. 하지만 예의 김애란 특유의 유머를 머금은 문장들은 아름이를 단지 '아픈 아이'가 아닌 '특별한 아이'로 만들어 줍니다.

 

제가 읽은 1부의 1장에서는 열일곱의 미라와 대수가 임신 사실을 알게 되고, 아름이를 낳기까지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2장에서는 열일곱이 된 아름이의 이야기가 시작되는데요. 학교에 가지 않는 아름이는 책읽기를 좋아해 '곤충, 식물 어류 도감은 물론 가슴을 쿵쿵 밟고 가는 시집과 귀싸대기를 맞은 것처럼 정신을 얼얼하게 만드는 사회과학 책에다, 더러 난데없고 계통없는 입문서까지' 아주 다양한 책들을 읽습니다. 그렇게 여러 사람의 글을 읽다보니 자연스레 무언가를 쓰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고, 진짜 '이야기'를 써보겠다고 마음을 먹습니다.

 

아름이가 열여덟 살을 맞이할 수 있을지, 진짜 '이야기'를 쓰게 될지 어서 읽으러 가보겠습니다!

 

 

- 컨텐츠팀 에디터 료(fololy@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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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 사이 흐릿한 끈 - <이효석문학상수상작품집 2009>(토끼의 묘 외)

 

편혜영 외, <이효석문학상수상작품집 2009>(토끼의 묘 외), 해토, 2009

 

가산 이효석 선생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고, 신진 작가 발굴을 위해 제정한 ‘이효석문학상’이 올해로 10회를 맞았습니다. 그동안 이순원, 성석제, 윤대녕, 정이현, 구효서, 박민규, 김애란 등 주목받는 작가들이 이효석문학상을 거쳐 갔습니다. 10회를 기념하는 <이효석 문학상 수상 작품집 2009 (토끼의 묘 외)>(이하  <작품집>)에는 편혜영, 김애란, 박성원, 조경란, 이장욱, 천운영, 한유주 등이 함께했습니다. 이중 편혜영 작가는 이효석문학상을 수상, 표지에 얼굴이 가장 크게 나오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이번 문학상 수상작은 편혜영 작가의 <토끼의 묘>입니다. 작품의 주인공은 ‘6개월짜리’ 파견근무에 나갑니다. 주인공은 도시를 떠나 조금 긴 여행을 한다고 생각하고 파견근무를 수락했지만, 그곳에서의 삶은 그리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별 의미 없는 일들, 개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무적인 인간관계, 심지어 무단결근을 해도 아무런 일이 없었던 듯 통장에 잔고는 늘어납니다. 이게 배부른 투정 혹은 편안한 삶일까요? 존재의 이유가 무(無)로 사라진 공간에서 주인공은 토끼를 발견합니다. 애정을 주지 않아도, 아무 때나 버려도 되는 애완용 토끼. 주인공은 버려진 토끼에서 자신의 모습을 봅니다.

<토끼의 묘>가 흐릿한 인간관계를 건조하게 그린 작품이라면 수상작가 자선작 <크림색 소파의 방>은 그로 인한 인간의 내재적 불안과 공포를 그린 작품입니다. 소도시에서 지방근무를 하던 ‘박’은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아내와 젖먹이 아기와 함께 서울로 이사를 갑니다. 무미건조하기만 했던 소도시를 떠난다는 기쁨도 잠시,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자동차 와이퍼가 고장 나 폐허가 된 주유소로 도움을 청하러 갑니다. 술 취한 청년이 와이퍼를 고쳐주지만, 박의 기분은 좋지 않습니다. 자동차를 고치는 도중 아내의 젖가슴을 쳐다보는 그의 시선, 도움의 대가를 바라는 그들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불청객과의 만남 자체를 불쾌하게 여겼을 수도 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서울로 향하지만, 차는 갑자기 멈춰 서고 불쾌함은 불안과 공포로 바뀝니다.

김애란의 기수상작가 자선작 <너의 여름은 어떠니>는 청년 실업자로 방바닥과 친분을 쌓고 있는 미영이 주인공입니다. 고향 친구의 장례식에 갈 예정인 미영은 대학 시절 가슴에 품었던 선배의 전화를 받습니다. 도움을 청하는 다급한 목소리에 미영은 선배를 만나기로 하고, 설렜던 한 때를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시 만난 선배의 모습에서 ‘선배’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선배가 미영을 부른 것은 자신이 만드는 방송의 게스트로 섭외한 것입니다. 미영은 날씬한 여인과 핫도그 많이 먹기 대회를 벌이고 있는 ‘뚱뚱한 여자’가 됩니다. 선배와의 기억, 고향 친구의 죽음, 핫도그를 씹고 있는 지금의 나. 미영은 눈을 감습니다.

듣고 싶어, 아니 말하고 싶어

추천 우수작 <고백의 제왕>(이장욱)은 <너의 여름은 어떠니> 보다 시간이 더 오래 지난 대학 동창들의 이야기입니다. 대학 시절 서양철학을 공부하며 지식을 논하던 이들. 하지만 이제 그런 열기는 세상의 바람에 날려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매해 하는 망년회가 지겨워질 무렵 이들은 ‘고백의 제왕’이라 불리던 친구 ‘곽’을 부릅니다. 곽은 자신의 첫 경험, 부친 살해 시도 등 쉽게 상상치 못했던 일들을 ‘고백’해 친해지고, 또 멀어진 친구입니다. 그런데 친구들 모두 곽과의 연락을 끊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개인적으로는 다들 곽과의 만남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곽과 은밀한 고백을 들으며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고픈 중년 사내들의 욕망. 어쩌면 감정의 농도가 짙은,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곽의 모습이 부러웠는지도 모릅니다.

또 다른 추천 우수작 <웃는 동안>(윤성희)은 죽은 ‘나’가 바라본 친구들의 일상을 그린 작품입니다. 예고된 죽음을 맞은 ‘나’는 친구 영재, 성민, 민기와 함께 자신의 장례식을 바라봅니다. ‘친구의 죽음’이란 비장한 출발이지만, 젊은이들의 여정은 유쾌하기만 합니다. 친구들은 ‘나’와의 약속대로 장례식장에 선글라스를 끼고 가야하는지 고민하고, 예전에 극장에서 훔친 낡은 소파를 들고 차례대로 자신의 집으로 가기도 합니다. 초등학생들에게 ‘이건 움직이는 자동차야’라고 ‘뻥’이나 치면서 말입니다. 누가 봐도 세상이 버린 ‘루저’지만, 그래도 이들의 관계는 따뜻합니다. 한 여자를 두고 누가 대시할까 시합했던, 수험표가 있으면 할인받는다는 말에 수능시험도 안보고 극장을 찾았던 기억이, 비록 한 명이 죽었지만, 여전히 유효하니까요.

언급한 작품들은 속에서 관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흐릿해진 인간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외로움과 불안, 공포(편혜영), 그리 긴 시간이 흐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관계를 부정하게 되는 젊은이들(김애란), 냉정한 시간이 멀어지게 한 관계 속에서 마지막 끈을 놓지 않으려는 중년의 사내들(이장욱), 그리고 세상의 버림을 받았지만 함께 있어 기죽지 않는 청년들(윤성희)까지. 또 <너의 여름은 어떠니> <고백의 제왕> <웃는 동안>에는 공통적으로 죽음의 정서가 깔려 있어, 현실의 고민을 더욱 깊게 만듭니다.

<작품집>에는 이밖에도 추천 우수작 <기타부기 부기우기>(조경란), <남은 교육>(천운영), <장면의 단편> (한유주)등의 단편 소설들과 편혜영의 수상 소감, 문학적 자전, 김애란 등의 ‘내가 만난 편혜영’ 등이 실려 있습니다. 반디(ak2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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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n'A 2009.09.04 10:50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반디님 잘보고 갑니다..
    주말 재밌게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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