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옥'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5.01.13 《무진기행》 - 서울의 겨울
  2. 2014.01.24 [서점에서 만난 사람] 함께 살고싶은 한국문학의 새로운 집 -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 출간 기념 간담회
  3. 2012.05.11 [서점에서 만난 사람] 여름의 소설가, 그 소설가의 여름 - 소설가 김유진

《무진기행》 - 서울의 겨울

 

 



김승옥 | 《무진기행》 | 문학동네 | 2004



만약 소설이란 분야에도 신이 존재한다면, 작가가 정말로 접신한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책이 있다. 바로 김승옥의 단편 「서울, 1964년 겨울」이다. 해마다 여름이 오면 표제작인 「무진기행」을 꺼내 읽고, 겨울이 오면 그의 또 다른 단편인 「서울, 1964년 겨울」을 꺼내 읽는다. 두 편 모두 고등학생 때 어느 언어영역 문제집에서 처음 만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김승옥의 문학 지문을 읽고 나서 느꼈었던 그 오묘함이란 다른 때와는 뭐가 달라도 확실히 달랐다. 문제는 한참 전에 다 풀었지만, 잔상이 계속 머릿속에 남아 나의 남은 자습 시간을 뒤덮었다. 하굣길에 결국 모의고사 문제집을 사려고 챙겨둔 돈으로 나는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덜컥 사고 말았다. 평소 나다운 선택은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탁월한 선택이었다.

『무진기행』을 책꽂이에 둔 지 십 년, 그리고 「서울, 1964년 겨울」로부터 무려 오십 년이 지났다. 구청 병사계에서 일을 했던 '나'도 부잣집 아들내미이자 대학원생이었던 '안(安)'도, 지금쯤 살아있다면 벌써 춘추가 근 칠십오 세다. 그들이 따로 또 같이 보냈을 오십 번의 겨울은 그들의 정수리 위에 흰 눈을 뿌렸거나 아니면 검은 뿌리들을 몽땅 뽑아버렸거나 둘 중의 하나는 했을 것이다. 파리는 여전히 하늘을 날고, 손을 뻗어보면 손 안에 잡히기도 하지만, 포장마차에서는 이제 참새구이 대신 출처가 불분명한 닭꼬치를 판다. 젊은 청춘은 일을 마치고 홀로 선술집을 찾지 않고, 길가에 즐비한 프랜차이즈 카페에 들어가 아메리카노를 한 잔 시키거나, 조금 더 여유가 있다 싶으면 근처의 바를 찾는다. 가끔 한 모금씩 홀짝이며 주위 사람들을 눈으로 훑어 보지만, 불필요한 말 따위는 굳이 건네지 않는다. 괜한 오해도 싫고, 괜한 어색함도 싫다. 눈앞에 있는 낯선 누군가 보다 조그만 휴대폰 속 익명의 존재가 차라리 더 편하다. 언제라도 홈 버튼만 누르면 관계에서 안전하게 빠져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옛날 무진의 명산물이 모두를 휘감는 뿌연 안개였다면, 서울의 명산물은 개인을 더욱 또렷하게 분리하는 욕망이었다. 지금, 무진의 명산물은 『무진기행』이라는 소설이 되었고, 서울의 명산물은 여전히 욕망이다. 그러나 서울 밖을 벗어나도 아주 손쉽게 욕망과 마주할 수 있다. 1964년 당시 '나'와 '안(安)'의 청춘은 마치 발밑의 흙물처럼 기온에 따라 녹았다 얼기를 반복했다. 살얼음 같은 개인주의였다. 비정하나 끝까지 모질진 못했고, 모질지 못했지만, 끝까지 인간답지도 않았다. 그들의 인간성은 어는점 0℃를 기준으로 묘하게 꿈틀거렸다. 평온해 보였다. 반면 요즘의 청춘들은 요동의 폭이 남다르다. 이상하다. 평균치를 내어보면 이들이 수렴하는 곳도 분명 0℃가 맞는 듯한데, 움직임은 확연히 다르다. 퍽 격하다. 이러한 세태는 나만 알고 있는 사실도 아니기에 그다지 의미 있는 일도 아니다. 오히려 옆집 아저씨의 야구 동영상 취향이 무엇인지 복도 창문 너머로 확인하는 일 따위가 의미 있을 것이다. 그딴 건 아무도 알고 싶어 하지 않고, 또 실제로 나만 아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 물론 이 이야기마저 1964년의 '나'와 '안(安)'을 제외하면 인정해 줄 사람도 없다는 게 함정이다. SNS가 발달하고부터 나만 알고 있는 게 큰 의미가 없어졌다. 남도 알게 하는 것에 오히려 더 큰 의미가 부여된다.

오십 년이 지난 지금, 서울 한복판에서 그대로인 것은 오로지 ‘겨울’이다. 날씨가 춥다. 추위는 언제나 외로움을 동반한다. 도시의 청춘들은 여전히 외롭다. 타인의 죽음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서울, 1964년 겨울」의 마지막 장에서 두 청춘은 이렇게 말했었다.

"김형, 우리는 분명히 스물다섯 살짜리죠?"
"난 분명히 그렇습니다."
"나두 그건 분명합니다." 그는 고개를 한 번 갸웃했다.
"두려워집니다."
"뭐가요?" 내가 물었다.
"그 뭔가가, 그러니까...." 그가 한숨 같은 음성으로 말했다.
"우리가 너무 늙어버린 것 같지 않습니까?"
"우린 이제 겨우 스물다섯 살입니다." 나는 말했다.
"하여튼..." 하고, 그가 내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자, 여기서 헤어집시다. 재미 많이 보세요."하고, 나도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286~287쪽)

이 겨울이 지나가면 반드시 봄이 찾아오고 또 그다음 겨울이 찾아올 것이다. 칠십육 세를 바라보는 '나'와 '안(安)', 이십 대 후반을 달리는 나와 친구들, 이 두 무리 중 어느 쪽이 더 빨리 늙을까. 장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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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과 서평을 나누고자 반디앤루니스 '오늘의 책'을 펜벗과 함께 만들어 갑니다.
펜벗이란 서평을 쓰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를 의미합니다.
매주 월요일, 성실한 서평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1월의 펜벗 서평 주제는 '겨울'입니다.

| 펜벗 일문일답

● 「서울, 1964년 겨울」로부터 오십 년이 지난 지금, “이 서울의 한복판에서 그대로인 것은 오로지 겨울이라는 사실이다.”고 서평에 쓰셨는데요, 서울의 어떤 점이 매해 겨울을 변함없게 만들까요?

사실 그 문장에 그렇게까지 깊은 의미는 없습니다. 요즘 날씨가 매우 춥잖아요. 말 그대로 절기상의 겨울이라는 뜻입니다. 그때 1월도 겨울이었을 테니까요. 덧붙여 서울의 어떤 점이 매해 겨울을 변함없이 만든다기보다는. 제가 생각하기에 서울과 겨울은 그냥 닮아있는 두 가지 형태인 것 같습니다. 읽었을 때 발음도 그렇고. 사람과 사람을 움츠러들게 하는 그 속성도 그렇고요. 오지랖이 넓어지는 것을 허용 안 하죠.

● 이십 대 후반을 나고 있는 사람으로서 “우리가 너무 늙어버린 것 같지 않습니까?”라는 김형의 말에 공감하시나요? 공감하신다면, 그때 왜 그렇게 느낄까요?

공감하는 편입니다. 저를 포함한 요즘 세대 중 다수는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 때, 최대한 손해 보지 않는 방향으로 움직이려 하니까요. 직접 경험에서 답을 찾기보다 간접 경험에서 답을 찾죠. 그게 더 안전해 보여서 그럴까요? 그러다 보니 문제에 대해 고를 수 있는 답도 자꾸만 줄어가고 있습니다. 가장 빠른 답이라고 해서 가장 젊은 답은 아닌데 말이죠.

● 펜벗 앨범에 쓰셨던 ‘기계화되지 않기 위해 책을 읽는다’는 말이 인상 깊었습니다. 최근엔 무슨 책에 관심을 두고 계세요?

기계화되지 않으려면 그때그때 호기심을 가지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그래야 뭐가 됐든 계속 생각을 하게 되니 말입니다. 요즘은 잠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보통 하루에 4, 5시간 정도 자는데, 어떻게 하면 잠으로부터 몸이 자유로워질지, 그럴 수 없다면 과연 어떻게, 얼마나 자야 건강에 이로운지 궁금합니다. 새해를 맞아 습관도 바꿔보고 싶고요. 최근에는 『24/7 잠의 종말』과 『잠의 사생활』이라는 두 권의 책을 읽고 있습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녹색양말'님은?

자질구레한 것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저도 그런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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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만난 사람] 함께 살고싶은 한국문학의 새로운 집 -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 출간 기념 간담회

 

편집·정리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혜원
사진 제공 | 문학동네

 

같은 책이라도 전집(全集) 안에 들어가면, 새로워 보입니다. 책의 새로운 터전 같다고나 할까요? 위대한 문학전집이 세상에 나오면, 이 땅에 훌륭한 집 한 채가 지어진 것 마냥 우두커니 바라보는 일부터 시작합니다. 자꾸 보면 살고 싶어지는 것이 집입니다. 책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훌륭한 전집일수록 전부 다 모으고 싶죠. 그래서 전집은 ‘샀다’는 말보다 ‘장만했다’는 말이 더 어울립니다.

 

 

세계문학전집과 한국고전문학전집을 출판한 문학동네에도 새집이 들어섰습니다. 하얗고 튼튼한 스무 권의 책들입니다. 김승옥의 단편 10편이 수록된 1권부터 2009년에 나온 박민규의 <카스테라>까지. 스무 권을 아우르고 있는 시대는 사실 모호합니다. 문학동네의 신형철 편집위원은 한국문학전집의 발간을 기념하며, 선정 기준을 밝혔습니다.

 

 

 

 “’문학성’입니다. 문학동네가 소설을 출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신뢰하는 기준은 ‘서사의 힘’입니다. ‘인간과 세계의 진실을 이야기가 밝혀서 보여줄 수 있는가.” 그리고 작품이 어느 정도 독자들과 소통했는지, 한 시대의 사회적 징후를 대표적으로 보여줬는지 하는 ‘문제성’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모두가 박완서를 읽고 자랐고, 모두가 박완서를 읽으며 세월을 났다.” (400쪽)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의 세 번째 책, 박완서의 대표 중단편선 <대범한 밥상>에 쓰인 문학평론가 차미령의 해설입니다. 세월을 함께한 책을 전집으로 다시 보는 기분은 어떨까요?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은 2014년에 나온 ‘새 책’이기도 합니다. 이 전집을 계기로 누군가는 한국문학 입문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을 통해 ‘한국문학이 이런 거구나.’라고 처음 경험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새로운 세대의 한국문학 독자, 한국문학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우리 사회 속에 정착되도록 하는 게 문학 출판사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황종연 편집위원의 바람이 문학동네가 한국문학전집을 출간하는 중요한 목적이기도 합니다.

 

우선으로 발표된 스무 권 외에 앞으로 전집에 입주 예정인 이웃도 궁금해집니다.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의 문은 언제나 열려있습니다. 문학동네 편집위원들은 자신감 있게 입을 모았습니다. “전집을 만든다는 것이 기존에는 정서를 확정 짓는 대단히 권위적인 작업이었습니다. 문학동네는 좀 더 동시대 독자들과 호흡할 여지를 많이 남기고자 합니다. 조금 더 유연하게. 어떤 작품은 전집으로 묶기엔 조금 낯설 수 있어요. 하지만 동시대의 작품 중 앞으로 어떤 것이 한국문학전집에 포함될 것인지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상태에서 누군가는 맨 처음 기준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모한 일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만, 문학동네의 자신감 표현이라고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어요.”

 

한국문학전집을 장식하는 표지에는 한강 사진이 있습니다. 낯선 풍경의 한강을 아름답게 찍는 이대원의 사진입니다. 문학동네가 기록할 한국문학전집의 역사가 한강의 물결을 따라 굳세게 흘러가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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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만난 사람] 여름의 소설가, 그 소설가의 여름 - 소설가 김유진

 

 

편집·정리·사진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희진

 

여름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발바닥이며 겨드랑이에 땀이 차는 것, 빨래처럼 자질구레한 집안일이 느는 것, 하루 전에 끓여 놓은 보리차가 쉽게 상하는 것, 뼛속까지 축축하게 젖어드는 장마 기간, 만원버스를 가득 채운 정체불명의 냄새, 아름답지 않은 맨살을 무방비하게 드러내야 하는 일상에 넌더리가 나거든요. 싫은 꼴을 조금이라도 덜 보기 위해 저는 부지런해집니다. 옷을 꼬박꼬박 갈아입고, 수시로 빨래를 널고, 물을 자주 마시고, 우산을 잘 펴서 말리고, 평소보다 출근을 서두르고, 퇴근하면 깨끗하게 씻기부터 합니다.

 

그저 개인적인 이야기는 아닙니다. 여름은 누구에게나 바쁜 계절이니까요. 사람들은 겨우내 굳어 있던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럴 만한 사정이 곧잘 생깁니다만, 바꿔 말하면, 움직이기 좋은 계절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작년 여름을 돌이켜 보세요. 많은 사람들이 다음 계절을 향해 온몸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 다다를 수 있었고요. 이를테면 소설가 김유진처럼 말입니다.

 

주로 여름에 소설을 써 왔다는 그녀는 올 여름을 앞두고 《여름》을 선보였습니다. ‘김유진’ 이름 석 자가 박힌 세 번째 발표작이자, 두 번째 소설집이자, 서른 이후 첫 번째 결과물이죠. 이 정도로 의미 있는 책의 제목이 ‘여름’이라니 궁금합니다. 김유진, 그 소설가의 여름이요.

 

작품집을 묶을 때면, 한 시절의 마디를 지나는 기분이 든다.

지난 3년간의 기록이다.

그동안 이십대에서 완연한 삼십대로 접어들었다.

조바심이 난다.

 

-《여름》 255쪽, <작가의 말> 중에서

 

《여름》에 수록된 작품을 쓰는 동안 서른이 되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집의 출간 소감은 전작들과 좀 다를 것 같습니다.

 

《여름》은 작품집으로는 두 번째고, 나이로는 삼십대가 된 후에 낸 책인데요. 솔직히 첫 번째 단편집 낼 때는 경황이 없었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잘 안 오고 내는 것 자체에 급급했죠. 그런데 두 번째 책을 낼 때는 그 사이 나이를 좀 더 먹으면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나에게 어울리는 것을 생각하며 내가 생각하는 내 책에 대해서도 구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고요.

 

그런 의미에서 삼십대가 되고나서 달라진 게 스스로 긴 머리가 안 어울린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머리 기르는 걸 완전히 포기한 거예요. 이전까지 가장 큰 고민 중에 하나가 머리를 기르고는 싶은데 안 어울린다는 것이었거든요. (웃음)

 

한 권의 책으로 완성돼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단편집의 특성상, 《여름》은 인간적으로나 작품적으로나 어떤 분기점이 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더 의미가 있고 애착이 가는 책이기도 하고요.

 

그러면 이 책을 만드는 과정에도 작가님의 의견을 보태신 건가요?

 

표지도 그렇고, 책의 순서를 결정하는 데도 제 의견이 반영됐어요. 첫 책의 경우는 순서대로 엮었는데, 이 또한 시간 안에서 생겨난 생생한 변화의 과정을 담는다는 나름의 의미가 있었어요. 그런데 두 번째는 단편들이 모인 또 하나의 작품을 만든다는 차원에서 처음과 끝을 정해 열고 닫는 느낌을 주고 그 사이에 놓일 작품들을 조율해갔죠.

 

한때, 전대미문, 전인미답이라는 단어에 홀린 적이 있었다.

소설을 시작하기 전 그 두 개의 압도적인 풍경을 그리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 가능한 한 평범한 것에 대해 생각한다.

단번에 알아채기 어려울 정도로 옅은 것, 미묘한 것, 그러나 이곳에 있는 것에 대해.

사는 것이란 쉽게 경계를 나눌 수도 없고, 때때로 지루하며, 대부분 소박한 채로 흘러간다는,

더 이상은 외면할 수도 미룰 수도 없는 사실을, 그것을 노래할 수 있다면.

 

-《문학과사회 2012년 봄호》, 387쪽, <멀어지는 것, 남아 있는 것> 중에서

 

기존의 서사를 따르기보다는 특유의 화법을 만들어 가고 계십니다. 《여름》에 이르러서는 삶과 일상에 한 발짝 밀착하는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전작이 주는 낯선 느낌과는 다른 인상을 받았는데요. 이처럼 문학관이 변화하게 된 계기나 배경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자연스러운 과정인 것 같아요. 이십대 때는 마치 어린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현실과 비현실의 구분이 거의 없는 단계여서, 당시에는 나의 격렬한 감정과 그 감정을 형상화하는 왜곡된 이미지들에 집중했었어요. 그런데 살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영향을 받으면서 관심사가 차츰 옮겨갔고, 이전까지와 달리 좀 더 미묘한 것, 소소하지만 중요하게 느껴지는 것들에 시선을 두게 된 거죠. 하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는 크게 변하지 않았어요. 단지 말하는 방식에 차이가 생겼을 뿐이죠. 그리고 비교적 등단을 일찍 한 제 입장에선 이렇게 나의 질풍노도의 시기와 이후의 변화해가는 과정 모두를 작품으로 남길 수 있다는 게 의미 있어요. 동시에 부끄럽기도 하고요. 

 

물론 이런 얘기는 사후적으로 분석한 것에 지니지 않아요. 글을 쓸 때는 사실 변화를 잘 못 느끼는 편이거든요. 그러니까 지금에 와서 첫 번째 소설집에서 썼던 것처럼 다시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나는 그런 K에게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곁에서 그 이름을 불러주고 싶었다.

 

-《여름》 31쪽, <바다 아래서, Tenuto> 중에서

 

《여름》에 실려 있는 작품들 중에 특별히 애착이 가는 게 있으신가요?

 

<바다 아래서, Tenuto>가 그래요. 이 작품이 전작과의 분기점이 되었다는 느낌도 들고, 무엇보다 쓸 때 기분이 좋았거든요. 이미 머릿속에 있는 걸 문자화하는 건 굉장히 지난하고 힘든 과정이라 사실 글을 쓰면서 짜증을 많이 내는 편인데, 이 소설은 오히려 쓰면서도 끝내는 게 아쉽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쓰는 게 그렇게 힘들지 않았던 거의 유일한 소설이었어요. 무겁지 않는 소설이기도 하고요.

 

그 소설에 대해 조금 더 얘기를 듣고 싶은데요. 이를테면 등장인물이 피아노를 치는 설정에 특별히 영감을 주었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많은 분들이 동네 피아노 교습소에 다녀본 경험이 있으실 텐데요. 저도 어렸을 때 오래 피아노를 치다 그만 두었고, 다 커서도 손이 너무 굳는 것 같아 소설 쓰기 몇 년 전에 교습소를 잠깐 다닌 적이 있어요. 제가 피아노를 치고 싶을 때마다 가서 쳤는데, 아이들이 엄청 많아 정신이 하나도 없는 곳이었죠. 그래서 한 달 정도 다니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그만뒀는데 그 경험들이 예전에 제가 처음 피아노를 쳤을 때라든가 피아노를 그만둔 후의 상실감 같은 것들을 떠올리게 하고, 재고해볼 수 있도록 만들었어요. 그게 <바다 아래서, Tenuto>의 바탕이 된 것 같고요. 

 

그런데 사실 이 제목은 원래 소설쓰기 전부터 있었어요. 소설을 자꾸 생각하다 보면 소설에 관한 꿈을 꾸게 되는데, 어느 날 제가 꿈속에서 얕은 바닷물 아래에 잠겨 있던 ‘바다 아래서, Tenuto’라는 글자가 적힌 종이를 주워들었거든요. 그 꿈을 꾸었을 땐 너무 오랫동안 피아노를 치지 않은 상태라 Tenuto가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그저 적어두었다 다음에 써먹어야지 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이 말이 음악 용어였다는 게 다시 생각났어요. 결국 소설의 제목으로 붙이게 됐고요.

 

평소 음악에 관심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소설을 쓰실 때는 가사가 없고, 길지 않고, 단조로운 곡 듣기를 선호한다고 들었습니다. 그 중 몇 곡에 대해 이야기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 소설집은 단편 하나하나마다 그 소설을 쓸 때 들었던 음악들이 정해져 있었어요. 그래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고 음의 전개가 단조롭다는 점은 비슷했고요. 예를 들어, 제가 많이 들었던 레이 첼스나 아르보 파르트 같은 경우 음의 미묘한 차이를 가지고 감성을 내는 음악이거든요. 음의 고조가 너무 심하거나 목소리가 들어가면 아무래도 소설 쓰는 데 방해가 되니까요. 그러니까 작가로서 글을 쓸 때 제가 듣는 음악은 그 자체가 아니라 소설을 위해 이용하는 부수적인 측면이 강하다고 볼 수 있어요. 종종 음악적 구조에서 영감을 얻을 수는 있겠지만 그 음악에 헌사하기 위해 글을 쓰는 건 아니라는 거죠.

 

그런데 또 소설을 안 쓸 때는 음악을 거의 듣지 않아요. 특히 소설 쓸 때 들었던 음악은 절대 듣지 않고요. 한 달 내내 같은 음악을 들으며 소설을 쓰다 보니, 그 음악만 들어도 소설 썼을 때의 괴로움 같은 게 생각나거든요. 그래서 이전에 들었던 음악은 소설과 함께 묻어두고 다시 새로운 음악을 찾죠. (웃음) 

 

 

 

나뭇가지를 부러뜨리면 연유처럼 희고 끈적끈적한 물이 흘렀다.

그것이 나무의 피였다.

 

-《여름》 205쪽, <나뭇잎 아래, 물고기의 뼈> 중에서

 

음악만큼이나 작가님에게 영감을 주는 게 나무라고 생각하는데요. 《여름》 안에도 후박나무, 체리나무, 무화과나무 등 다양한 나무들이 등장하는데요. 작가님에게 나무는 어떤 의미인가요?

 

다른 인터뷰에서도 했던 말인데요.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시를 썼었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어떤 자연이나 아름다운 대상체를 묘사하는 게 익숙한 상태였어요. 다른 한편으로 인간에게 가까이 가고 싶어 하지 않는 성향도 있었고요.

 

어느 날 앉아서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보고 있었는데, 나무가 나로 하여금 굉장히 기묘한 감정을 갖게 했어요. 약간 초월적인 느낌도 들면서 저것만큼 아름다운 건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자꾸 그런 쪽으로만 노래하다 보니까 인간과의 격차가 더 커지게 되고, 도리어 인간에 대해서는 무관심해지고 불신하고 경계하게 되는 것들이 심해졌어요. 하지만 저 또한 인간이라는 종에 속해 있기 때문에 이제까지 글을 쓰면서 보냈던 시간이 저에게는 먼 길을 돌아 다시 인간에게로 다가가는 과정이었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도 여전히 나무를 끌어다 쓰게 되긴 해요. 저에게 나무는 영감을 주었던 대상체고, 나무를 보면서 아름답고 뭔가 성스럽다고 느꼈었기 때문에 자꾸 옆에 두고 싶은 거죠. 그래서 소설에서도 자주 쓰게 되는 것 같고요. 나무의 감정이라든가, 사시사철 바뀌는 것, 열매를 맺는 것들이 저에게는 큰 감흥을 주거든요. 

 

그런가 하면 《늑대의 문장》의 <마녀>에도 나무가 등장하는데, 그 나무는 독자로 하여금 일종의 두려움을 갖게 하는 느낌이 강해요. 혹시 이 나무와 작가님이 말씀하신 인간과 다소 거리를 두었던 태도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다고도 볼 수 있을까요?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대체로 그걸 아름답다고 느끼는 좋은 감정과 두려움을 동시에 가져다준다고 생각해요. 죽음과 맞닿은 부분이 함께 가는 게 아닐까 하는 거죠.

 

<마녀>에 나오는 나무에게는 제가 알량한 인간들과 대비되는 압도적인 존재로서의 느낌을 갖고 있었던 것 같고요. 스스로 생각하기에 이십대 때는 뭔가 되는 일이 별로 없는 것 같고, 뜻대로 안 되는 것도 너무 많다고 느꼈는데, 전체적으로 자기 자신에 대한 불만을 크게 느끼는 질풍노도의 시기였어요. 그게 소설에 반영된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B는 마뜩잖아 하는 Y에게 ‘가능성’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집은 아름다워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 《여름》 69쪽, <여름> 중에서

 

《여름》에서 나무만큼이나 인상적인 것이 있습니다. 특정한 공간인데요. <바다 아래서, Tenuto>의 피아노학원이나 K의 방, <여름>의 톱밥 날리는 집, <나뭇잎 아래, 물고기의 뼈>에서 선희 언니를 마지막으로 본 육교 등은 이야기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요. 이와 같은 소설 속 공간을 구상하는 관점을 듣고 싶습니다.

 

일단 이 소설집은 작품 하나하나가 모여 한 폭의 그림과 같은 느낌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공간이 중요해졌어요. 그래서 제가 눈으로 보듯 그려낼 수 있는, 제어 가능한 공간을 찾게 됐고요. 이를테면 좁거나 익숙한 곳들이요. 소설 속에 나왔던 대부분의 공간이 그렇고요. 저한테 익숙한 공간이기 때문에 그 안의 감정들이 조금씩 배어나왔던 게 아닐까. 또 그게 손쉬웠던 게 아닐까 생각해요.

 

제가 전체적인 풍광을 보여주는 걸 좋아해요. 그걸 봐주셨으면 하는 바람도 있고요. 그래서 글을 쓸 때 그림을 그리듯이 전체적으로 구상해놓고 조금씩 디테일들을 갖다 쓰죠. 이런 습관은 첫 번째 작품집 쓸 때도 있었고, 오래 가는 것 같아요.

 

집 앞에 다다랐을 때, L은 물었다.

취직하니까 어때?

그 목소리가 지나치게 상냥해,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나는 발끝을 이용해 바닥에 널브러진 우산대를 들어 올린 후 손으로 집었다.

차 안에서 내내 짓밟힌 우산은 축축하고 더러웠다.

응, 점점 인간이 되어가는 것 같아.

 

-《여름》 200쪽, <물보라> 중에서

 

이 소설집에서 <물보라>라는 작품이 거의 유일하게 직접적으로 사회적인 발언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사회적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부닥쳐야 하는 문제적 상황이 참 많습니다. 한 인간으로서 요즘 주목하고 있는 이슈가 있다면요?

 

특별하게 어떤 한 사건을 중심으로 하진 않고요. 요즘 주로 생각하는 건 불안이에요. 사람들은 왜 불안해하는가, 라고 질문하죠. 이건 바꾸어 말하면 사람들은 왜 그렇게 안정을 추구하는가, 이기도 하고요.

 

제 주위에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몇 년 씩 투자해 시험 준비를 하는데, 그렇게 공무원이 돼서 그들이 얻는 게 과연 무엇일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들 대부분이 정말 공무원이 되고 싶어 한다기보다는 짤리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있는 안정적인 구조를 원하는 것일 테니까요. 다들 안정성에 너무 목을 매는 게 아닌가 싶은 거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같은 걸 꿈꾸고 있는 게 오히려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물론 이런 현상의 원인은 사회가 개인을 책임져줄 수 있는 지지 기반이나 구조 자체가 불안하다는 데 있겠죠. 그래서 개인들이 느끼는 불안감이 지나치게 크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회가 불필요하게 부과하는 불안감이죠. 그렇게 사회보장이 미약하고 경쟁의식이 심화되면서 사람들이 느끼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도대체 왜 안정을 추구하려 하는가, 그게 가능하긴 한가를 질문해보는 거죠.

 

사실 불안은 제 전공 분야이기 때문에 (웃음) 몇 년간 끊임없이 생각해왔어요. 그래서 조금 더 심도 있게 파고들 수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지금 쓰고 있는 단편도 그런 내용을 약간 담고 있고요.

 

‘불안’과 ‘분노’라는 키워드로 《숨은 밤》을 비롯한 작가님의 소설을 읽은 독자 분이 있었습니다. 더불어 ‘미완의 인생’이라는 화두도 생각해 보셨다고 하고요. 《숨은 밤》을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불안’과 ‘분노’는 어떤 상태인가요?

 

연구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웃음) 진행 중에 있는 생각을 말씀드릴 수밖에 없는데요. 《숨은 밤》은 어떤 미완의 감정, 즉 이제 막 촉발되는 감정에서 출발한 소설이었어요. 그러니까 미완의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불안이 생기게 되고요. 또 미완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이해되지 않는 존재일 수밖에 없는데, 이로 인해 분노가 촉발되었다고 생각했고요. 청소년이나 사회적인 변방에 있는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이나 분노는 그런 식으로 촉발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개인적으로는 나는 왜 불안에 떨면서 마감을 하지 못하는가(웃음), 미리미리 하면 될 것을 왜 이렇게까지 궁지로 몰아넣는가, 생각하죠.

 

그런데 사실 무언가를 만들고 창조하는 존재들, 이를테면 예술가라든가 글을 쓰는 사람들은 이런 불안을 그냥 갖고 살아가야 하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어요. 자기 자신이 완벽하게 세계와 합일되었다고 느끼는 사람이 세계의 어떤 결핍을 느낄 수 있을 것이며, 결핍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이 어떻게 새로운 것을 볼 수 있을까 의문이 생기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불안은 창조를 촉발하는 데 필요한 감정으로, 창조력을 도와주는 것이기도 하죠. 그런데 짜증나죠. 불안하면. (웃음)

 

 

 

나는 사랑의 전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채 형태를 갖추기도 전에 사라지는, 혹은 사라지는 미완의 감정에 대해 적었다.

 

-《숨은 밤》 207쪽, <작가의 말> 중에서

 

《숨은 밤》은 ‘불안’ 이외에 ‘사랑’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습니다. 작가님의 소설에는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어도 표출하지 않거나 할 줄 모르는 인물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바다 아래서, Tenuto>에는 ‘감정을 배운다’라는 표현이 나오기도 하고요. 이 부분에 대해서 조금 더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어떤 대상체에 애정을 갖는 것, 사랑이라는 감정이 생겨 관계를 맺는 것, 쉽게 말해 연애하는 것은 그 자체가 매번 다시 태어나는 과정인 것 같아요. 그러면서 감정 또한 다시 겪게 되고요. 아이가 태어나 이런저런 감정들을 배워 나가듯이요.

 

개인적으로 사람과의 교류가 단절된 상태에서 오랜 시간을 자라다 보니까 어떤 감정에 있어서 무지한 경우가 있었어요. 다른 사람들한테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감정인데, 나한테만은 글을 배우는 듯이 배워야 하는 것들, 사회적 감정이라고 하는 것들이 생각보다 많았죠. 그래서 사회적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부딛히면서 그들도 황당해 하고 나도 황당한 경우가 많았고요. 그런데 이게 또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식으로 배우게 되는 감정들이 있고, 《숨은 밤》의 경우에도 감정이 촉발되고 서서히 실체를 알아가는 과정이 재밌다, 라고 생각했어요. 그것이 가장 격렬한 게 애정이고요. 이미 감정이 생기고 난 다음에 관계에서 벌어지는 불화나 사건사고들에 관심이 있었던 게 아니라 그 이전에 관심이 많았던 거죠. 막 생기려고 하는 감정, 스스로 알아챌까 말까 하는 순간들에요.

 

제가 항상 뭔가를 시작할 때 차근차근 하는 걸 되게 좋아하는데, 언젠가는 연애소설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고, 써보기도 할  테지만 그 전에 어떤 전조에 대해서 소소한 이야기를 해보자 싶었던 거죠.

 

언젠가는 연애소설을 쓰고 싶으시다는 말씀인 거죠?

 

작가들의 소망은 궁극적으로 연애소설에 가 있다고 생각해요. 대상체를 사랑한다는 게 가장 가치 있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A의 배낭끈을 잡고 걸으며, 나는 열 살의 A를 떠올렸다.

문득 그때의 A는 지금의 A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으나 이내 지워버렸다.

 

-《여름》 156쪽, 중에서

 

작품에 아이들이 많이 등장하는데요. 유년 시절을 궁금해 하는 독자 분들이 많았습니다. 저 또한 자전소설로 알고 있는 <나뭇잎 아래, 물고기의 뼈>를 읽고 비슷한 궁금증을 가지게 되었는데요. 작가님은 유년 시절에 어떤 아이였나요? 서른 살의 ‘나’를 만든 그 시절의 ‘나’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나뭇잎 아래, 물고기의 뼈>에 나오는 아이와 거의 유사한데요. 언젠가 제가 학적부를 땔 일이 있었는데 그때 초등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이 가정통신란에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하나 협동심이 없다’라고 적어 놓으셨더라고요.(웃음) 그런데 이게 저의 지금 모습과 너무 닮아있는 거죠.

 

혼자 자랐고,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어요. 게다가 전학도 자주 다니는 편이었는데, 환경이 지속적으로 바뀌니까 사람은 도리어 정적으로 변하는 것 같더라고요. 나를 중심으로 세계의 변화가 지나치게 빠르면 사람은 오히려 가만히 있게 되고 무던해지는 면이 생기면서 내적으로 더 파고들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외부의 폭력성과 마주쳐야 하기 때문에 피하는 것도 많고요. 그래서 약간 사회성이 떨어지게 되죠. 

 

지금도 유년을 생각하면 항상 기억나는 게, 전학 가서 맨 처음 반 아이들한테 인사했을 때 그 아이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들이에요.

 

그냥 가만히 있었지요. 학교 다닐 때 (웃음) 어린 시절에 크게 뭔가를 한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밖에 나가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해서 대게는 그냥 집에 있었고요.  

 

그런 유년 시절이 있어 자연스럽게 글을 쓰고 문학을 하시게 된 건가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으면 딴 생각을 하게 되잖아요. 시간이 많으니까 혼자서 뭔가를 하게 되고요. 그렇게 나도 모르게 혼자 있는 시간에 혼자 할 수 있는 일들을 꾸준히 해왔던 것 같아요.

 

사실 학창시절에는 글쓰기에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일기는 늘 써왔지만, 일기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평가받는 게 아니니까, 제가 글을 쓰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죠. 인생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는구나, 이런 생각 정말 많이 했어요.

 

8년 전 당선 소식을 들었을 때였다. 여름, 토요일 오후였다.

나는 이 놀라운 소식을 믿을 수가 없어서, 정말로 믿지 않았다.

하루가 지나고 장난 전화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에서 벗어난 후에야 그 사실을 서서히 받아들였다.

그러자 막연한 두려움이 몰려왔다.

두 손으로 쥐어도 휘두르기 어려운 큰 칼을 받아든 병사가 된 기분이었다.

 

-《문학과사회 2012년 봄호》, 387쪽, <멀어지는 것, 남아 있는 것> 중에서

 

본격적으로 ‘내가 글을 쓰고 있구나.’라고 인지하게 되신 건 언제였나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도 궁금하고요.

 

제가 문창과를 다녔는데, 사실은 뭐 하는 곳인지 잘 모르고 들어갔어요. 그냥 은연중에 글을 쓰는 것 자체에 관심이 있어서 비슷한 과들을 다 지원했는데, 그냥 문창과가 특별하게 느껴져서 선택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니까 이미 고등학교 때부터 문청이었던 학생들이 많아서 어리둥절했죠. 

 

그때 제가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이 시를 썼었고, 시가 뭔지도 모르고 같이 어울리면서 자연스럽게 시를 쓰게 된 것 같아요. 시에서는 특별히 재능이 부각되지 않았고요. 그런데 이렇게 소설가가 되어 있으니, 재미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영향을 받았거나 롤모델로 삼고 있는 작가가 있으신가요?

 

영향을 받은 작가는 너무 많은데요. 극과 극의 작가들을 다 좋아하는 것 같아요. 대학 다닐 때는 오정희 선생님이나 김승옥 선생님 같은 분들의 작품을 많이 봤고, 중간에는 파스칼 키냐르처럼 시적인 소설을 쓰는 작가도 좋아했다가, 갑자기 오르한 파묵이 좋아지기도 하고,또 한 때는 박상륭 선생님이 좋아서 진짜 훌륭하신 분이라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말하고 다니기도 했고요. 그때그때 바뀌었죠. 

 

그러니까 따로 롤모델이라고 할 만한 작가는 없지만, 너무나 다양한 스승들을 두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직장에 들어가 일을 배우려면 누군가 물어야 할 존재가 있고 인수인계를 받아야 하는데, 저 같은 경우는 글을 쓰다가 모르는 게 있으면 책 속에 있는 스승들에게 물어보면 되니까요. 그런 면에서 풍요롭다고 생각하고요.

 

 

요즘 특히 스승으로 삼고 계신 작가가 있으신가요?

 

누가 스승일까요. 요즘은 그게 별로 없네요. 막 글을 쓰기 시작했던 이십대 때는 어떻게 쓸가, 생각이 많았기 때문에 스승도 많았는데요. 지금은 좀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고, 조심스럽게 살펴보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은 것 같아요. 그러니까 예전처럼 ‘이게 정말 최고인 거 같아, 진짜 잘 써’ 이런 건 줄어들고, 더 많은 것들을 보게 되고요. 

 

사실 요즘 제가 생각하는 좋은 소설가란 오래 쓰는 소설가에요. 그래서 거의 죽기 전에 펜을 놓는 그런 분들을 스승으로 삼고 있죠.  

 

작가님께서도 오래 쓰고 싶다는 말씀이기도 한 것 같은데요. 어느덧 8년차 소설가입니다. 이십대의 반을 소설가로 살았고, 어쩌면 인생의 반 이상을 소설가로 살지도 모릅니다. 이 순간, 작가님을 사로잡는 태도나 대상이 있을 것 같습니다. 소설가가 되기 전에 A가 중요했는데 지금은 B라고 할 수 있는 것을 말씀해주신다면요?

 

학교 다닐 때는 반짝이는 것들에 관심이 많았어요. 어떤 영감을 주는 천재성이라든지, 한 번에 발현되는 것들이요. 그리고 특히 나, 나 자신, 내가 하고 싶은 것, 쓰고 싶은 것,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관심이 집중되었죠. 그래서 ‘내가 지금 당장 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해’라는 태도도 있었고요. 그런데 지금은 좀 변한 것 같아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되고,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걸 다른 사람도 아름답게 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생기고요. 좀 알량하긴 하지만 삼십대가 넘고 보니 앞으로 긴 인생을 살아야 하는데 사람들과 화합하며 살아야겠다 싶은 거죠. (웃음)

 

사실 작가로서 글을 쓴다는 것은 단순히 글을 쓰는 행위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읽는 사람들을 같이 끌고 가야 하는 면이 있는데, 이렇게 생각한 지가 얼마 안 됐어요. 최근에서야 내가 쓰는 것들을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그 사람들이 어떤 걸 느끼며 나와 같이 갔으면 좋겠는지 생각하게 됐고, 그걸 오래하고 싶은 마음도 들고요. 저도 제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오래오래 글을 써야 하기 때문에 생기는 자연스러운 방향성일 수도 있고요.  

 

예전처럼 내가 내 감정에만 치우쳐서 쓰다 보면 감정이 지나치게 앞서니까 그게 어떤 폭력성으로 드러나는데, 쓰는 사람이야 자신이 만들어낸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에 큰 타격을 받지 않지만, 읽은 사람들은 그걸 훨씬 더 세게 받아들인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그래서 좀 더 사려가 깊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고요. 

 

제가 작품에서 어린 친구들이 나오는 유년의 기억을 많이 썼던 건 저 스스로 정리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내 내면에 대해서, 내가 왜 이렇게 컸는가, 어떻게 지금의 내가 되었는가에 대한 내부적인 질문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그걸 해소할 만한 과정이 필요했던 거죠. 그리고 그게 어느 정도 지나가고 있다고 생각이 되니까 이제는 자연스럽게 눈이 바깥으로 열리는 것 같고요. 좀 더 많은 것들을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처음에 《늑대의 문장》이라는 단편집을 내셨고 그 다음이 장편인 《숨은 밤》 그리고 이번에 나온 소설집 《여름》인데요. 혹시 또 장편 계획이 있으신가요? 

 

다음에는 장편을 써야 될 것 같아요. 부지런히 책을 쓰고 싶다는 마음도 있고요.

 

지금 구상하고 있는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요즘에는 제가 첫 번째 단편집을 쓸 때 마구 벌려놨던 이미지들을 좀 수습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런 생각을 계기로 다음 소설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싶고요. 사실 이 이외도 여러 가지 생각이 많이 들어요. 아직 확실한 것은 없고 쓰고 싶은 마음만 있어요. 맨날 얘기만 하죠. 장편 쓸 거라고. (웃음)

 

 

소설 쓰지 않을 때는 주로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시는지도 궁금합니다.

 

소설을 쓰지 않을 때는 규칙적으로 살고 있어요. 술자리가 아니라면 보통 소설가들이 저처럼 조용하게 살 거라고 생각해요.

 

요새는 강의를 하고 있어서 그걸 준비하는데 시간이 꽤 드는데, 그게 아니라면 운동하고 산책하고 집에 와서 책 읽고, 아주 단조로워요. 밥 해먹고 집 치우고 그러면 하루가 금방 갑니다. (웃음) 이렇게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이유는 몸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오래 글쓰기가 힘들기 때문이에요. 글을 쓸 때면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어야 하는데 건강하지 않으면 짜증이 나거든요. (웃음)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까, ‘아, 신경질 난다. 왜 아픈 것인가’ 자꾸 이런 생각이 들죠 (웃음) 어렸을 때는 맨날 술 마시고 아파야 뭐가 나온다고 생각하는 결핵 같은 낭만성이 약간 있었는데(웃음), 지금은 건강한 신체에서 ‘글발’이 나온다, 라는 생각으로 몸을 열심히 만들고 있어요.

 

혹시 영화도 좋아하세요? 앞서 그림을 그리듯이 소설을 구상하신다고 하셨는데, 회화나 영화의 이미지에도 관심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많이 보진 않아요. 최근에 끝까지 봤던 영화가 브레드 피트가 주연인 ‘생명의 나무’ 였는데, 성경을 차용한 이미지가 굉장히 독특하고 시각적으로 충격적이었어요. 영화 자체는 지루한데, 그 이미지 하나만으로도 끝까지 보게 됐었고요. 

 

그거 말고는 주로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영화를 보는 편이에요. 액션 영화나 무협영화요. 예술 영화는 너무 머리를 쓰게 되고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니까 가끔 보고요.

 

물론 나는 내가 태어난 해의 여름은 기억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 집 문을 열고 들어서던, 그해 여름의 풍경에 대해서는 조금 말할 수 있겠군요.

 

-《여름》, 84쪽, <여름> 중에서

 

날씨가 벌써부터 후덥지근합니다. 《여름》은 여름을 앞두고 출간된 책이기도 한데요. 작가님에게 ‘여름의 책’이라고 할 수 있는 게 있을까요?

 

여름의 책이라고 하니까 갑자기 떠오르는 책 제목이 있는데요. 《아서의 섬》이라고, 작가 이름은 생각이 안 나는데, 어떤 소년의 유년기를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담은 책이에요. ‘여름’이 주는 어떤 청량한 느낌을 담고 있는 소설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작가님에게 다가올 계절은 어떤 의미일지 궁금합니다.

 

일단은 마감을 얼른 하고 (웃음) 여름을 좀 더 창조적으로 맞이하고 싶어요. 지금 이 마감이 끝나야 나의 봄이 끝날 것 같거든요. 이미 여름이 와 있는 느낌도 들지만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여름에 더 많은 걸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장편 《숨은 밤》도 여름에 시작했고요. 그래서 이번 여름에도 새롭게 뭔가 쓰고 싶어요. 제가 하는 일이 이런 것이다 보니 새롭게 뭔가를 시작한다고 하면 신작 쓰는 거 이외에는 크게 떠오르는 게 없어요. 

 

끝으로 긴 여름을 살아갈 이들에게 한 말씀해주신다면요?

 

좀 상큼하게 사셨으면 좋겠어요. 여름이 덥고 그래서 길고 지루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장점이 많은 계절인 것 같아요. 혹독한 겨울보다는 낫다는 생각도 들고요. 나름대로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많으니까, 즐기면서 지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책도 많이 보시고. 사실 글을 쓰는 입장에서 ‘문학을 사랑해주세요’ 같은 이런 얘기는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잘 안 하게 되는데, 많은 것들을 보고 소소한 재미를 누리면서 조금 덜 빡빡하게 살았으면 해요. 이 계절의 장점이 있잖아요? 나무도 있고, 풀도 있고, 좋은 그늘도 있고요. 

 

대화를 나누는 사이, 그 소설가는 종종 나무들을 보았습니다. 노천카페의 뜰을 지키고 있는 것으로 갓 새잎에 난 듯 했습니다. 작은 이파리가 모여 소설가의 얼굴에 연둣빛 그늘을 만들었습니다. 이 여름이 싫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든 건, 아마 그 순간이었을 겁니다.

 

 

 

 

 

김유진

 

1981년 서울에서 태어나 명지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04년 단편소설 「늑대의 문장」으로 문학동네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늑대의 문장』『여름』, 장편소설 『숨은 밤』, 번역서 『마마의 성을 습격하라』가 있다. 2011년 단편소설 「여름」으로 제2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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