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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1.02 [서점에서 만난 사람] 아름답게 살고 싶어요 - alterego 님
  2. 2010.04.06 [4월 1-2주 이슈와 추천도서] 죽음에서 삶으로 돌아오는 길

[서점에서 만난 사람] 아름답게 살고 싶어요 - alterego 님

 

요 며칠 정말 가을 답다, 말하고 싶은 날들입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에,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과 따땃한 햇살이 더해지니, 딱 요즘만 같았으면 좋겠단 생각도 들고요. 게다가 이런 날, 누군가와 마음까지 주고 받을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겠죠? 오늘 소개해드릴 이분은 어떤 마음을 여러분께 전해주실지, 이번주 [서점에서 만난 사람] 시작해볼까요?

 

 

alterego 님이 궁금합니다!

 

아름답게 살고 싶은 사람입니다. 아이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어요.

 

* 프로필 이미지는 alterego 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오지호의 '남향집'입니다.

 

반디 서재와의 인연을 말씀해주세요.

 

대학 시절부터 ‘반디북’ 사이트를 자주 이용했었지요. 그때보다 지금은 웹사이트가 많이 세련되어진 것 같아요. 읽을거리도 많아지구요. 저는 지금 전주에 살지만, 이따금 서울에 올라가서 약속을 잡을 때면 종로 반디앤루니스 앞 계단에서 친구를 만나곤 한답니다. 기다리는 시간 동안 새 책을 둘러보러 반디앤루니스에 들어가 있으면 시간이 훌쩍 지나가요. 인터넷 반디 서재에는 최근에 관심을 갖고 종종 책을 읽고 느낀 점들을 올리고 있어요.

 

반디 서재에서 활동하시는 동안 가장 의미 있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아직 활동 기간이 길지 않아서 다양한 에피소드들은 없는데요, 제 글이 베스트리뷰로 많은 분들에게 읽힐 때면 기분이 뿌듯해요. 이따금 댓글을 달아주시는 분들에게도 감사하고요.

 

‘책 읽는 설렘’에 대해서 한 말씀해주신다면?

 

책을 사면 일단 책 안쪽 표지에 언제, 어디에서 샀다는 것을, 혹은 누군가에게 어느 날에 받았다는 것을 꼭 기록해두곤 해요. 그때 날짜를 적는 그 순간이 왠지 떨리고 설레는 순간 같아요. 일단 읽기 시작하면 굉장히 지저분하게 읽어요. 밑줄이나 낙서도 막 하고. 결국 날짜가 적히는 순간, 책에게는 수난이 시작되는 거죠. ^^

 

책을 고르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제목부터 끌리는 책들이 있어요. 목차를 넘기다보면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낄 때도 있구요. 대부분은 제가 관심을 갖게 된 저자를 따라가며 그가 지은 책들을 다 사모으는 식으로 읽을 때가 많지요.

 

이런 책은 무조건 산다! 라고 할 만한 기준이 있으신가요?

 

미술 관련 책을 굉장히 좋아해요. 미술 작품이나 화가의 생애에 얽힌 이야기들이 담긴 책들을 자주 산답니다. 심리학 쪽에도 관심이 많은데요, 진지한 심리학 책도 많이 보지만, 연애와 관련한 심리학 책도 자주 찾아 읽어요. 솔직하고 자세한 연애 심리서가 많이 나왔으면 하는데, 사실 배우는 건 그때 뿐이더라구요. 역시 연애는 실전인 거죠.ㅎㅎ 그런 게 아니라면 대부분 저의 전공인 한문학과 관련된 책이나 한국 문학 작품들을 많이 읽지요. 요즘에는 시가 좋아져서 문지 시인선에 부쩍 관심이 많아요.

 

현재 많은 출판사들이 세계문학전집을 출간하고 있는데요. 그중 특별히 선호하거나 신뢰하는 시리즈가 있으신가요?

 

 

 

문학전집은 아니지만 책세상의 카뮈 전집에 관심이 많이 가요. 같은 출판사에서 펴낸 니체전집도 사고 싶었지만 너무 비싸서 엄두를 못내고 있지요.

 

요즘 읽고 있는 책에는 어떤 게 있나요?

 

박형준 시인의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예요. 동명의 시가 실려 있는데, 읽으면서 지나간 연인 생각에 눈물이 나더군요. 상대를 향한 순수한 마음, 그러나 이미 엇갈려 있는 상대의 시선. 사랑이 고달프고 애처롭게 느껴지는 순간은 그럴 때인 것 같아요. 청년의 눈부신 설렘과 냉담해진 여인의 눈길이 대비를 이루면서, 지나온 사랑의 풍경을 되짚어보게 되는 시였어요.

 

요즘 눈독(?) 들이고 있는 책에는 어떤 게 있나요?

 

한길그레이트북스 시리즈는 항상 만족스러운 수준이에요. 출판사에 대해 기본적으로 안정감이랄까, 믿음이 가는 것 같아요. 새 책이 나올 때마다 찜해놓는답니다. ^^

 

평소 즐겨 있는 분야와 그간 읽어온 책 중에 ‘이 책만은 반드시!’라고 추천할 만한 도서도 소개해주세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일단 직업상^^; 우리 문학 작품을 가장 많이 읽는답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너무 외국 작가에 편중된 독서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저는 <백석 시전집>을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답니다. 우리의 말과 우리의 전통에, 얼마나 신비하고 아름답고 고운 힘이 서려있는지를 느끼게 해주는 시들이구요, 우리가 평소에 느끼는 서러움이나 쓸쓸함 등이 묻어나는 시들도 참 많아요. 기본적으로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이 참 따뜻해서 좋아요.

 

좋아하는 작가가 있으신가요?

 

 

 

박민규 작가는 정말 최고라고 생각한답니다. 슬픈 걸 슬프게, 웃기는 것을 웃기게 표현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겠죠. 웃음 속에 삶의 초라함을 담고, 삶의 고난 속에서 인생의 위트를 찾아내는 작가의 시선이 참 놀라워요.

 

늘 마음에 두고 있거나, 몇 번이고 다시 보며 감동을 느끼는 책이 있으신가요?

 

하하~ 네, 여러 책을 언급하게 되네요. 음.. 이 질문을 받고 가장 먼저 떠오르는 책은 <모모>예요. 저는 지지(혹은 기기)라는 캐릭터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는데요, 지지가 모모를 위해  다른 사람에게는 들려주지 않았던 이야기를 들려주는 대목이 있어요. ‘모든 사람을 위한 이야기와 한 사람을 위한 이야기’라고... 저는 지지를 보면서 (성격은 조금 다르긴 하지만) 소설을 쓰던 예전의 연인이 떠오르더군요. 마치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모모는 저 같다고 착각에 빠지면서 읽었답니다.

 

최근 3개월 동안 인상 깊게 읽으신 책은 어떤 게 있나요?

 

최인호 선생님의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였어요. 원로 선생님답게 공력이 대단한 작품이었죠. 그러나 이야기하는 방식이나 내용은 또 가장 참신했던 작품이었죠. 원로다우시면서도 새내기작가 같은 파격을 지니신 선생님이 참 존경스러웠어요.

 

책을 읽지 않을 땐, 보통 무엇을 하면서 지내시나요?

 

홈페이지 관리를 자주 한답니다. ^^; 관리라기보다는 혼자 자기 생각을 궁시렁궁시렁 써내려가는데요, 그러다보면 하룻동안 쌓인 스트레스도 풀리고, 나름대로 해결책을 찾게 되기도 하더라구요. 제자들과 좀더 개별적이고 인간적인 모습으로 만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답니다. 

 

독서하면서 생긴 특별한 습관이 있으신가요?

 

밑줄을 많이 긋고 거기에 메모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왠지 책은 지저분하게 보아야 열심히 공부한 듯한 느낌이 들어서...^^; 그래서 빌려읽는 책은 불편하고요, 대부분은 제 책으로 보아야 제 것이 된다는 생각 하에 사 모으고, 열심히 밑줄 긋고, 쌓아두고 있답니다. ^^

 

그간 읽으신 소설 속 캐릭터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이 있으신가요?

 

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 중에서 원미동 시인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사실 제 이상형이기도 하구요. 저는 어쩐지 그런 어수룩한 사람에게 참 매력을 느껴요. 대부분 세상에서 그런 사람들은 이용되고 버려지기 쉽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마음에 강한 힘을 지닌 사람은 그 시인 같은 존재가 아닐까요? 그 시인은 몰라서 속고 당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알면서도 당해줄 수 있다는 거... 이거 웬만한 내공으로는 힘들걸요? ^^

 

단 한 권의 책으로 자신을 설명해야 한다면, 어떤 책을 꼽으시겠어요?

 

  

 

백석이나 기형도의 시집을 조용히 건네줄 것 같아요. 저의 내면과 닮은(혹은 닮고 싶은^^) 사람들인 것 같아서요.

 

가장 좋아하는 분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은 어떤 건가요?

 

역시나 위에서 말한 시집을 선물하거나... 아니면 고운 그림이 그려진 화집을 선물하고 싶어요.

 

세상 모든 책이 불탈 때 단 몇 권의 책을 구할 수 있다면 어떤 책을 구하실 건가요?

 

하하하~ 어려운 질문이네요. 지금 막 떠오르는 것은 성서나 노자, 장자, 논어 같은 책들이에요. ^^ 

 

앞으로의 독서 계획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길을 따라가는 읽기. 어느 작가든, 어떤 생각의 흐름이든... 길을 찾아 따라가며 읽는 독서를 하고 싶어요. 그 길은 아마도 저의 인생을 닮아 있겠죠?

 

 

말씀만 듣고 왠지 소녀 같은 분이 아닐까, 상상해봅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라고 하시니, 그 아이들도 선생님을 닮아 촉촉한 감수성을 지닌 어른으로 성장하지 않을까, 도 생각해보고요. 문득 제 학창시절의 국어 선생님이 떠오르는데, 그분이 어떠셨는지에 대해서는, 노코멘트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는 판단이...^^;;

 

★ alterego 님이 어떤 길을 따라 독서를 해오셨는지 [여기]로 가서 함께 걸어가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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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2주 이슈와 추천도서] 죽음에서 삶으로 돌아오는 길

안녕하세요. 반디앤루니스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누군가는 현재의 시간을 얻어 새로운 생(生)으로 태어나고, 다른 누군가는 잠시 빌려온 시간을 반납하듯 영원한 과거로 자리를 옮겨가고 있습니다. 태어나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인간의 보편적 역사가, 그렇게 우리의 곁에서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막 태어난 어린 생의 눈에는 비치지 않는 생사(生死)에 얽힌 순환의 구조가 오늘은 또 오늘만큼 늙어가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언젠가 죽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죽음은 누구에게나 그리고 언제나 갑작스럽고 반갑지 않은 사건임에 틀림없습니다. 어제까지도 들썩이던 내 피붙이의 가슴이 더 이상 세상의 공기를 안으로 들이지 않을 때, 그 단절의 명백한 증거가 온기를 잃고 싸늘하게 식은 그의 육체로 남을 때, 어제를 기억하며 사는 우리 모두에게는 어쩔 수 없는 상실의 고통과 슬픔이 여지없이 찾아오고 맙니다. 그러므로 기억할 수 있기 때문에 슬퍼질 수 있는 우리는 지나간 어제를 부여잡은 채 온전한 오늘을 미루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는 고(故) 기형도 시인이 말하듯, “이 거리 끝”, 그 인생의 마지막에 있는 “커다란 전당포” “주인의 얼굴”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자각되는 살아있는 자의 무능력, 즉 죽음 앞에 선 인간은 떨어지고 있는 가로수 잎들을 보고도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앞에 놓일 수 있는 접속사는 ‘그래서’가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될 것입니다. “가는 비……”와 같은 죽음은 “사람을 선택하지 않으며”, “가는 비…… 오는 날, 사람들은 모두 젖은 길을 걸어야” 하다는 사실을 알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는 비 온다」

간판들이 조금씩 젖는다
나는 어디론가 가기 위해 걷고 있는 것이 아니다
둥글고 넓은 가로수 잎들은 떨어지고
이런 날 동네에서는 한 소년이 죽기도 한다.
저 식물들에게 내가 그러나 해줄 수 있는 일은 없다
언젠가 이곳에 인질극이 있었다
범인은 「휴일」이라는 노래를 틀고 큰 소리로 따라 부르며
자신의 목을 긴 유리조각으로 그었다
지금은 한 여자가 그 집에 산다
그 여자는 대단히 고집 센 거위를 기른다
가는 비…… 는 사람들의 바지를 조금 적실 뿐이다
그렇다면 죽은 사람의 음성은 이제 누구의 것일까
이 상점은 어쩌다 간판을 바꾸었을까
도무지 쓸데없는 것들에 관심이 많다고
우산을 쓴 친구들은 나에게 지적한다
이 거리 끝에는 커다란 전당포가 있다, 주인의 얼굴은
아무도 모른다, 사람들은 시간을 빌리러 뒤뚱뒤뚱 그곳에 간다
이를테면 빗방울과 장난을 치는 저 거위는
식탁에 오를 나날 따위엔 관심이 없다
나는 안다, 가는 비…… 는 사람을 선택하지 않으며
누구도 죽음에서 쉽사리 자수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쩌랴, 하나뿐인 입들을 막아버리는
가는 비…… 오는 날, 사람들은 모두 젖은 길을 걸어야 한다

-기형도, 『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지성사, 2004, 50-51쪽- 

그런데 요사이 우리 앞에 나타난 갑작스러운 죽음들은 이전까지 어느 정도 예감하고 있었던 어느 날과 달리, 그 모습이 자연스럽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김길태에게 희생된 여중생의 어린 목숨이 그랬고, 아직도 그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천안함 침몰 실종자들의 생명이 그랬고, 고(故) 최진영 씨의 자살이 그러하며,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끝내 사망한 고(故) 박지연씨가 그렇습니다. “어느 날 저녁, 지친 눈으로 들여다본 석간신문의 한 귀퉁에서, 거짓말처럼, 아니 환각처럼 읽은 짧은 일단 기사로, […] 한 시인(기형도)의 죽음을 알게” 된 그 누구(김현)처럼, “이럴 수가 있나, 아니, 이건 거짓이거나 환각이라”고 느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죽음은 늙음이나 아픔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육체가 반드시 겪게 되는 한 현상이다. 한 현상이라기보다는, 실존의 범주이다. 죽음은 그가 앗아간 사람의 육체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의 눈에서 그의 육체를 제거하여, 그것을 다시는 못 보게 하는 행위이다. 그의 육체는 그의 육체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환영처럼, 그림자처럼 존재한다.”

-김현,「영원히 닫힌 빈방의 체험 - 한 젊은 시인을 위한 진혼가」,『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지성사, 2004, 135쪽

        

 이와 관련하여 베르크손H. Bergson(1859~1941)은 『창조적 진화』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기억이나 기대를 가지지 않은 존재들은 결코 ‘비어 있음’이나 ‘없음’과 같은 말을 할 수가 없다. 그들은 단지 있는 것과 지각되는 것만을 표현할 것이다. 그런데 있는 것과 지각되는 것은 이러저런 사물의 현존이지 결코 어떤 것이든 그것의 부재는 아니다. 기억하고 기대하는 능력이 있는 존재에게만 무엇이 없다는 것이 가능하다. 아마 그는 어떤 대상을 기억하고 있어서 그것과 만날 것을 기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다른 대상을 발견한다. 이때 그는 기대를 좌절시키는 것 앞에서 원래의 기억을 상기하게 되고, 자신에게는 이제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는다고, 자기는 ‘없음’과 조우했다고 말하게 된다."  

-강신주, 『철학, 삶을 말하다』, 이학사, 2009, 214-215쪽에서 재인용  

그러므로 기억할 수 있기 때문에 슬퍼질 수 있는 우리는 지나간 어제를 끊임없이 불러다가 오늘에 앉히고 슬픔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어제의 기억과 그 기대에 집착하는 이유로, 그 고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됩니다. 게다가 해명되지 않은 죽음의 원인은 ‘있음’의 기억으로부터 오는 좌절된 기대, 즉 ‘없음’의 지각에 더해져 더욱 더 우리를 지난 시간에 묶어놓습니다. 

물론 우리는 마땅히 물어야 합니다. 그들이 죽어야 했던 이유를. 그리고 그것으로 하여금 어제를 정리해야 합니다. 순수한 애도의 시간을 유예시키고 있는 그 불투명을 투명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가을이 되면 낙엽이 떨어지고 육체의 시간이 다 하면 누구나 서서히 소멸해가는 자연의 순리와 같이 생사의 투명함을 되찾아, 그로부터 애도를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에게는, 영원히 해명되지 않을 죽음의 사건이 남겨져 있습니다. 자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해 자신을 죽인 이들은 흔히 그 죽음 이후에 삶에 대한 우울과 절망으로 설명되는 게 대부분이지만, 그것의 진위가 어떠한지에 대해서는 영영 알 길이 없습니다. 이는 설사 그들이 죽기 전에 몇 글자의 유언을 남겨 놓았다 할지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자살은 종종 그것이 옳고 그른가의 문제 틀을 갖게 되지만, 그 누구도 죽은 이를 두고 자신의 입장에서 판단하고 무어라 말하지 못하는 어려움에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해명되지 않는 죽음의 이유는 스스로 자살을 겪고 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는, 삶에 내재해 있을 어떤 절망의 존재를 상기시킵니다. 더욱이 내 가족이나 친구가 자살을 선택한 경우, “내가 그러나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무능력에 대한 자책이 사실상 남은 자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하며, 이와 함께 외롭게 죽음을 선택했을 그들의 마지막을 더욱 안타깝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자살』(살림, 2007)에서 저자 이진홍은 ‘거칠고 급하게’ 죽음을 택해 버린 자에 대해 말하는 행위 자체에 뒤따르는 불편함과 망설임을 시작으로, 자살에 대한 사회적 수용의 양태를 다양하게 살펴보고, 아우슈비츠 생존작가 장 아메리가 주장하는 것처럼 자살이 자유인의 권리(『자유죽음』, 산책자, 2010)인지, 아니면 불가피한 선택인지에 대해 논의하며, 이와 함께 자살과 관련된 윤리적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해줍니다. 다시 말해, “때가 되어 떠나가는 조용하고 포근한 죽음을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이 원하는 때에 의도적으로 소멸의 시기를 결정해버리는 ‘자살’”을 고찰하여, "자살이 가지고 있는 ‘터부’라는 묘한 신비감을 제거하고, 우리가 현재 영위하고 있는 삶의 가치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것입니다.  

              

또한 키에르케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한길사, 2007)을 통해 여러 익명의 작품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의 삶을 보여주며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사람들의 절망을 간접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로써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 즉 절망에 빠져 있는 이들에게 현재의 삶의 모습을 다시금 돌이켜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톨스토이의 소설 『이반일리치의 죽음』은 “이반 일리치란 한 개인이 자신을 상실한 삶을 살다가 죽음에 직면하게 되면서 진정한 자기를 발견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어 죽음에 의해 삶에 생겨나는 동요와 불안을 독자로 하여금 목격하게 하고, 이를 통해 다시 삶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해줍니다.

       

그러므로 죽음이라는 사건 이후에 우리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들에 대한 충분한 애도를 통해 어제에 대한 기억과 기대를 위로하고, 그런 연후에 이러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나 다시 자신의 삶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철학, 삶을 만나다』의 저자 강신주는 이러한 마음의 고통을 치유하는 방법으로 불교의 가르침을 제안합니다. 그리하여 고통의 바다(苦海)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우리의 오늘에게, 더 이상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것(있음에 대한 기억과 기대)을 마음 바깥으로 투사하지 말고 외부 사태(없음)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지나간 어제가 아닌 오늘을 바로 보며, 지금도 서서히 사그라지고 있을 내 생의 역사로 돌아와 나에게 다가올 죽음이라는 사건을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문국진은 『주검이 말해주는 죽음 屍活師』(오픈 하우스, 2009)에서 수많은 죽음을 지켜봐 왔던 의사의 입장으로서 그간 보고 느낀 경험을 토대로 죽음을 과거, 현재, 미래로 나우어 정리해줍니다. 영생과 부활의 상징인 고대 이집트의 미라에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존엄사(안락사)까지 포괄하고 있는 이 책은 죽음에 대한 의학적, 철학적, 문화적 고찰을 통해 독자 스스로 죽음에 대한 개념과 사생관을 수립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이와 함께 소크라테스, 플라톤, 쇼펜하우어, 니체, 하이데커, 야스퍼스, 레비나스, 들뢰즈, 장자, 유가 등의 철학자들이 죽음을 어떻게 생각했는지에 대해 고찰하고 있는 『철학, 죽음을 말하다』(정동호 외, 산해, 2009)는 죽음 자체에 대한 다양한 사유를 통해 독자가 다시 삶의 가치를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죽음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자는 아직은 그것을 경험하지 못한 살아있는 자들일 수밖에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생각은 살아있는 자들이 살아가기 위해 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최종 목적은 죽음을 통해 다시 삶으로 돌아오는 것이며, 결국 삶의 일부인 죽음을 긍정하여 웰빙(Well-being)뿐 아니라 웰다잉(Well-dying)를 준비하는 게 되어야 하는 건 아닐까요. 



「귀천(歸天)」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미래사, 2002, 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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