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해당되는 글 9건

  1. 2014.01.14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 - 삶의 가장 절박한 질문
  2. 2013.11.19 [詩로 물드는 오후] 허연, ‘가시’와 ‘가시2’
  3. 2013.10.21 [사이언스 북 카페] 레이첼 허즈, 《욕망을 부르는 향기》
  4. 2010.07.09 <百의 그림자> - 쓸쓸함이 쓸쓸함을 만났을 때
  5. 2010.03.10 <윤미네 집> - 한 장의 사진이 담고 오는 한 움큼의 그리움 (4)
  6. 2009.12.01 <조세현의 얼굴> - 사진이란 이름의 기도 (4)
  7. 2009.11.19 기억하고 싶은 건 사랑일 텐데 (2)
  8. 2009.07.10 ‘Into the memory’ - 기억 속으로
  9. 2009.07.06 ‘ㄱ’을 통해 기억을 마주하다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 - 삶의 가장 절박한 질문

 

최진영 |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 | 실천문학사 | 2013

 

죽어야겠다는 생각과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라는 생각이 같은 무게로 시소의 양 끝에 앉아있으며, 원도는 어느 쪽으로 몸을 기울일지 선택하지 못한 채 시소의 중간에 위태롭게 서있다. 죽어야겠다는 생각은 최근 것이고 왜 죽지 않았는가라는 생각은 오래전 것이지만, 최근 것이라고 해서 더 가볍지도, 오래된 것이라고 더 묵직하지도 않다. (41쪽)

 

“검은 봉지에 담겨 으슥한 곳에 버려진 불법 쓰레기 같은 원도.”이것은 원도의 기억이다. 죽지 않고 살기 위해, 지난 삶을 샅샅이 뒤져 “인생의 뒤틀려버린 단 한 순간”의 장면을 복원하려는 의식의 몸부림이다. 온갖 실패가 켜켜이 쌓여, 병든 도망자의 신세로 전락한, 고독한 생(生)의 절박한 되새김질이다. 그 안에, 원도의 눈앞에서 물을 먹고 죽은 아버지가 있다. 죽기 전에 그가 남긴 “만족스럽다”라는 말이 있다. 산 아버지가 있고, 너를 이해한다, 원하는 대로 살아도 좋다, 그러나 네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그의 말이 있다. 원도의 앞에선 늘 눈물을 보이고,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원도가 아닌 다른 아이들을 돌보던 어머니가 있다. 그 어머니가 원도 대신 정성으로 돌보던 장민석이란 남자가 있다.

 

확연한 기시감 속에서도 거부할 수 없었던 맹목적인 실패들, 기억도 학습도 젬병인 원도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치명적인 것이다. 기억할 수밖에 없는 것.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것. 원도를 꿰뚫어버린 것. 메워지지 않는 구멍을 내버린 그런 것. (…) 메워지지 않고 계속 썩어 들어가 더 깊은 구멍을 만들어버리는 것은 그러므로, 상처라기보다 통로다. 상처는 몸의 일부지만 통로는 몸을 뚫고 지나가는, 몸의 바깥이다. 나와 닿아있지만 오직 나만의 것은 아닌 것. 내 의지로는 어쩔 수 없는 것. 나를 뚫고 지나가기에 나를 소외시키는, 나는 절대 볼 수 없는 비밀을 간직한 길. (64쪽)

 

이것은 메워지지 않는 구멍을 쫓는 이야기다. 그와 닿았던 타인, 그의 의지로는 어쩔 수 없었던 그들의 흔적을 되짚는 일이다. 알 수 없었으므로 모르는 그대로, 그를 뚫고 지나가며 상처를 내고 방향을 바꿔놓은 그들을 불러들이는 기억이다. 오해와 몰이해에 분노하며 자기만의 이해로 또 다른 오해를 구축해온 고립된 내면의 설명이다. 변명이다. 당신은 그런 그를 보고 “검은 봉지를 채운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피해갈지 모른다. 알게 된 후에는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나?”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왜 죽지 않았는가” 그것을 끝내 원도에게 묻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묻는 당신은 누구인가.”라고 묻는 원도를 만나기 전까지.

 

덮지 말고 끝까지 보라. 이것은 숱한 구멍 중 가장 광활한 구멍, 당신에 대한 기억이다. (168쪽)

 

퍼즐을 맞춘 후, 전체 그림을 보기도 전에 다시 판을 뒤엎고, 새로운 그림을 맞춰갈 수 있다. 조각은 많다. 그것들 모두, 반드시 필요한 조각이다. 모든 순간이 결정적이다. 살아야 할 이유라면 무수히 많다. 살아내는 일 분 일 초, 모든 행위와 생각이 결국 다 사는 이유다. 어떤 것은 이유고 어떤 것은 이유가 아닐 수 없다. 인간은, 그런 식으로, 드문드문 살 수 없다. (240쪽)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 (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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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물드는 오후] 허연, ‘가시’와 ‘가시2’

가시

 

내 온몸에 가시가 있어 밤새 침대를
찢었다. 어제 나의 밤엔 아무것도 남지
못했고 아무것도 들어오지 못했다
가시는 아무런 실마리도 없이 밤마다 돌아
나오고 나의 밤은 전쟁이 된다.
출구를 찾지 못한 치욕들이 제 몸이라도
지킬 양으로 가시가 되고 밤은 길다.
가시가 이력이 된 날도 있었으나 온당치
않았고 가시가 修辭가 된 적이 있었으나
모든 밤을 다 감당하진 못했다. 가시는
빠르게 가시만으로 완전해졌고 가시만으로
남았다. 가시가 지배하는 밤. 가시의 밤

 

- 허연, 《시인수첩》2013 여름 통권 37호, 38쪽

 

문제는 기억이었어. 망할 놈의 기억, “아무런 실마리도 없이” 불쑥 찾아와서는 평온으로 닿을 수도 있었던 “나의 밤”을, 그 고요를 견딜 수 없는 침묵으로 만들어버렸어. 그래 난 아무도 듣지 못하는 소리를 나만 알아듣고 반응하는 것처럼 철저히 혼자가 되어 무섭도록 외로워져버렸지. 그 밤에 나를 막무가내로 습격한 기억의 조각은 나 이외에 “아무것도” 허락하지 않았거든. 과연 망각이란 내 마음과 생각 따위와 무관하게 독단적으로 진행되는 의식의 흐름이었어. 그것을 간절히 바란다는 건 이미 기억인 것을 다시 기억하는 일에 다름 아닌 거였고. 기억의 반복과 반복된 기억에 의한 깊은 각인이랄까. 마치 단단한 돌 위에 뾰족한 칼로 여러 번 흠집을 내어 글을 새겨 넣듯이. 오히려 말이야. 그렇게 기억의 영역에 굳건히 잔존해있던 “치욕들이 제 몸이라도/ 지킬 양으로 가시가” 되었고. 그런 가시가 “내 온몸에” 돋아 “밤새 침대”만 찢어버렸지. 밤새 이토록 성실히 뒤척이도록. 죽음과 같은 암흑 속에서 살아있는 그대로 치욕으로 음각된 무거운 묘비 밑에 억지로 묻힌 모양새를 하고. 그 밤이 끝나도록, 아침이 올 때까지 묘비의 글씨를 곱씹고 되새기면서. 그 밤, 그 침대 위에서 날이 새도록 몸뚱이를 뒹굴게 했던 가시. 그래 그건, 분명 기억이었어. 

 

가시 2

 

  알약 한 알이 녹는 시간 동안 기억이 훈제가 되는 동안 나의 증언은 계속됐다 블록을 씌운 문자 몇 개가 깜박이면서 나를 재촉했고 나는 가끔씩 눈물을 흘리는 습성과 숨을 몰아쉬는 습성을 털어놓아야 했다 검은 점 몇 개로 나의 이름을 만들고 몇 번의 손가락질로 나의 상태를 증언해야 했다

 

  잠 속에서 셀 수 없이 많은 가시가 돋아나는 것에 대해서도 말해야 했다 누구도 나에게 오지 못하고 내가 누구에게도 가지 못하는 그 가시의 시간에 대해서도 말해야 했다 가시의 시간은 길었으며 고통스러웠고 아무것도 보듬지 못했다고 가시 알레르기까지 고백한 그 시간은 어둡고 길었다

 

  나는 생리 중인 방의 주인이 내민, 이제는 단종된 푸른 줄이 그어진 노트에 사인을 하고 일어났다 쓴맛을 다 본 소년처럼

 

  그래도
  이제는 가시가 나를 지탱하고 있다고
  그 말만은 끝내 하지 않았다

 

- 허연, 《시작》, 2013 여름 통권 45호, 128쪽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 (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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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북 카페] 레이첼 허즈, 《욕망을 부르는 향기》

 

 

레이첼 허즈 | 《욕망을 부르는 향기》 | 뮤진트리 | 2013

 

■ 오늘은 어떤 책인가요? 

 

냄새가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차지하는지, 후각의 비밀을 과학적으로 풀어내 보여주는 책, 레이첼 허즈의 《욕망을 부르는 향기》입니다.

 

■ 후각은 시각이나 청각에 비해 그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지 않는 게 사실입니다. 대개는 냄새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후각을 다루는 책들도 드문데요. 이 책의 저자인 레이첼 허즈는 냄새 심리학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 중 하나로, 20여 년간 냄새와 감정 및 인지에 관해 연구해 그 성과를 인정받아 왔다고 합니다. 《욕망을 부르는 향기》는 그 연구를 바탕으로 냄새와 후각의 심리적인 면을 다루며 후각이 우리의 행동과 반응, 취향, 생각, 사랑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야기해주고 있고요. 

 

■ 보통 냄새에 대한 지각은 좋다, 나쁘다의 반응으로 나타는데요. 그래서 맛있는 냄새가 나면 입맛을 다시고, 좋은 향기가 나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게 되기도 하고요. 

 

말씀하셨던 것처럼 우리는 좋은 냄새가 나면 가까이 접근하고 나쁜 냄새가 나면 피합니다. 이는 냄새로 화학물질을 감지해 생존에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할 수 있도록 인류가 진화해온 결과인데요. 이와 같은 화학감각은 지구상에 출현한 생명체에서 처음으로 나타난 감각으로, 오늘날 가장 원시적인 단세포생물이 우리와 공유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 그럼 우리 뇌에서도 후각이 제일 먼저 발달했겠네요. 

 

네. 처음에는 아주 단순하게 저 물질에 다가가야 할지 아니면 피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데 사용되다 점차적으로 복잡하게 진화해 음식과 짝을 찾고 포식자를 피하는 등 여러 행동을 취할 때의 기준이 된 것이죠. 

 

■ 감정이 냄새와 비슷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같은데요?

 

네. 기쁨과 관심을 나타내는 긍정적인 감정은 상대에게 다가가서 손을 내밀고 증식하라는 메시지를 전해 우리가 성공적으로 후손을 만들어 살아남게 합니다. 반면에 분노나 두려움, 역겨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도망치거나 싸우라는 메시지를 전해 우리가 생존할 수 있도록 돕고요. 

 

■ 냄새와 감정 사이에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 건가요?

 

네. 냄새와 감정을 처리하는 뇌 부위가 변연계인데요. 뇌에서 가장 오래된 부분인 이 변연계에는 우리의 감정을 처리하고 기본적인 기억과 동기 부여를 담당하는 편도체가 속해 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이 편도체는 후각피질로부터 생겨났다고 하고요. 말하자면, 감정을 경험하고 표현하는 능력이 냄새를 처리하는 뇌의 능력으로부터 유래되었다는 것이죠. 실제로 우리가 냄새를 지각할 때 뇌의 영상을 살펴보면 이 편도체가 활성화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합니다. 

 

■ 우리가 어떤 냄새를 좋다, 나쁘다, 라고 느낄 때 그 선호는 어떻게 생겨나나요? 

 

일반적으로 여러 냄새에 대한 좋고 싫음은 선천적으로 고정되어 있다는 의견이 우세합니다. 하지만 이와 달리 저자는 향기에 대한 선호가 모두 학습된 것이라고 주장하는데요. 이는 유아를 대상으로 한 냄새 선호도에서 같은 냄새에 대한 유아의 반응과 어른의 반응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근거합니다. 예컨대, 유아들은 배설물의 냄새를 좋아하고, 고약한 치즈처럼 어른들이 부정적으로 생각하거나 바나나처럼 긍정적으로 여기는 냄새에는 무관심한 반응을 보인다고 합니다. 

 

■ 그렇다면 어떤 냄새에 어떻게 반응하느냐는 그 냄새를 처음 맡았을 때의 경험과 관련이 있겠네요?

 

그렇습니다. 처음 그 냄새를 경험하는 순간의 장소, 상황, 사람, 사건은 그 각각의 정서적 가치와 의미를 지니고 이것이 다시 냄새에 대한 정서적 의미와 가치로 이어져 좋거나 싫은 선호가 생겨나는 거죠. 그리고 이와 같이 냄새가 주는 쾌락적 반응을 설명하는 이론을 냄새 연상 학습론이라고 하는데, 대표적인 예로 편안하고 행복한 느낌을 안겨주는 ‘엄마 냄새’나 크게 아팠던 사람에게 그 냄새만으로 불쾌감을 주는 ‘병원 냄새’ 등을 들 수 있습니다. 

 

■ 냄새가 감정과 기억으로 이어지면서 우리의 삶에 굉장히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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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의 그림자> - 쓸쓸함이 쓸쓸함을 만났을 때

황정은, <百의 그림자>, 민음사, 2010


시간은 무엇에게나 흔적을 남긴다. 짧게는 하루, 길게는 평생 동안 혹은 그 이상으로. 이 순간에서 다음 순간으로 넘어가는 사이, 필시 무언가는 사리지고 또 무언가는 생겨난다. 수많은 밤과 낮을 오고가며 이루어진 생멸(生滅)의 축적이 다름 아닌 시간의 흔적일 것이다. 그렇게 어제를 지나 오늘에 이르는 우리에게 아픈 상처의 기억을 남기는 것도, 그 고통을 이겨낼 또 다른 기억을 심어주는 것도 결국 시간이다.

이 소설, <百의 그림자>은 그 시간의 흔적들을 생각하게 한다. 처음 책을 폈을 때, 우리에게는 숲을 헤매고 있는 ‘은교’와 ‘무재’가 걸어들어 온다. 쓸쓸한 그들의 기억, 그들에게 새겨진 시간의 흔적이 함께 따라 들어온다. 그 안에 집 나간 어머니, 무뚝뚝한 아버지, 왕따와 폭행을 당했던 은재의 학창시절과, 아홉 명의 식구, 개연적으로 혹은 필연적으로 빚을 지게 된 무재의 부모, 아버지의 죽음 등이 들어 있다.

그들의 일상이 이어진다. 은교와 무재를 만나게 했던 장소, 도심에 있는 전자상가가 이야기 속에 들어온다. “가동과 나동과 다동과 라동과 마동으로 구별되는 상가는 본래 분리되어 있었던 다섯 개의 건물이었으나 사십여 년이 흐르는 동안 여기저기 개축되어서 어디가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얼핏 봐서는 알 수 없는 구조로 연결되어 있”는 그곳. (29쪽) 그 자체가 시간의 흔적이고, 그 안에 수많은 이들의 삶을 담아냈을 그곳, 전자상가의 역사가 함께 들어온다. 가족들에게 외면당한 기러기 아빠, 공사장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유곤 씨, 전구를 파는 ‘오무사’ 할아버지가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전자상가 철거가 시작된다. 그렇게 사십여 년의 시간 동안, 수많은 이들의 삶을 품어 주었을, 그 ‘시간의 흔적’을 참 쉽게도 지워버리는 철거가, 또 한 번의 쓸쓸함을 남기며 또 다른 '시간의 흔적'으로 새겨지고 있다.

“이 부근이 슬럼이래요. […] 나는 슬럼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은 있어도, 여기가 슬럼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요. […] 슬럼이라느니, 라는 말을 들으니 뭔가 억울해지는 거예요. 차라리 그냥 가난하다면 모를까. 슬럼이라고 부르는 것이 마땅치 않은 듯해서 생각을 하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 언제고 밀어 버려야 할 구역인데, 누군가의 생계나 생활계, 라고 말하면 생각할 것이 너무 많으니까, 슬럼, 이라고 간단하게 정리해 버리는 것이 아닐까.”
(113-115쪽)

전자상가의 가동을 밀어내고 들어선 깔끔한 공원 벤치에 앉아 은교와 무재는 말한다. “다들 어디로 갔을까요. […] …… 어디로 갈까. ……조용하네요. 네. 예쁘네요. 예쁘지만, 이상한 기분이 드네요.” (112-117쪽)

그러나 여기에 한 번의 눈물로 타인(그들)의 불행을 쉽게 지나쳐 가게 하는 상투적 표현은 없다. 그들은 그저 담담하게 ‘자신의 그림자가 일어섰다’고, 말하자면 언제고 우리 옆에 들러붙어 있는 어둠이 결국 일어서고야 말았다고 말할 뿐. 헤어나올 수 없을 것만 같은 어둠 속을 걷고 또 걷는 그들이, 모두에게 남겨진 ‘시간의 흔적’처럼 시간을 걸어 나가고 있다. 그러므로 실컷 울고 난 후, 어렵지 않게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나는 없다. 내 옆에도 그림자(어둠)는 언제든지 달라붙어 있으니까.

그러나 삶의 어느 순간에 “달려온 방향과 가야 할 방향이 모두 어둠에 잠겨 있”을지라도, 은교의 쓸쓸함과 무재의 쓸쓸함이 만나 그랬던 것처럼, “걸어갑시다”라고 말하며 손을 이끌어주는 누군가를 만나 “어둠에 잠겼다가 불빛에 드러났다가 하며 천천히” 시간을 걸어 나가면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현선(
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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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네 집> - 한 장의 사진이 담고 오는 한 움큼의 그리움

전몽각, <윤미네 집>, 포토넷, 2010  

그 찰나, 서로 다른 ‘순간’들의 마주침

눈도 채 뜨지 못한 갓난아이를 보았습니다. 딱 그 순간이었습니다. 그 아이의 ‘지금’과 나의 ‘지금’이 만나는, 그 찰나 말입니다. 그때, 단 한 장의 사진 속, 그 사각의 틀 안에서, 오래도록 꼼짝 않고 있었을 그 아이의 시간이 나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그리하여 <윤미네 집>을 펼쳐 책장을 넘기는 내 손이, 그 손을 따라 옮겨가는 내 눈동자가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과거의 시간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 전몽각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보여주기 위해 태어난 사진의 운명이 그제야 보고 있는 나로 인해 완성될 수 있었던, 그 찰나 말입니다. 그때, 무한한 의미의 가능성을 품고 있던 ‘보는 이’의 공백은 채워지고, 언제나 ‘지금’이라는 이름만이 허락된 ‘현재’가 그녀와 나 사이에서 차마 언어화할 수 없는 감정을 만들어냅니다. 그리하여 나는 내가 알고 있던 모든 언어의 무능력을 절감하며, <윤미네 집>이 붙들어 놓은 시간의 흔적들 안에서 그저 울고 웃을 따름입니다.

신기한 일입니다. 가장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시간 속에서 우리네 모두의 삶을 머금은 순간의 살결들이 드러나니까요. 놀라운 일이기도 합니다. 타인의 시간이 이리도 가깝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게. <윤미네 집>은 “기념을 위한 사진이 아니라 매일 매일이 다른 아이들의 모습과 가족의 생활을 자연스럽게 담고 있기 때문에 보는 이(나)의 가슴에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나 봅니다.(161쪽) 

지나간, 지나가는 모든 ‘순간’들에 대한 그리움

몇 장을 더 넘겨보았습니다. 그 사이, 그러니까 앞장과 뒷장이 서로 자리를 바꾸는 짧은 시간 동안, 아이는 그새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윤미네 집>의 한 장이 사진첩을 넘기는 내 찰나의 시간에다, 그들의 몇 개월 혹은 몇 년의 세월을 나란히 맞대어 놓습니다. 그 세월 속에서 고(故) 전몽각 선생의 첫아이 윤미는 태어나고, 어느새 자라 학교를 다니며,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결국 윤미네 집을 떠나갑니다. 그렇게 갓난아이 윤미가 엄마가 되었을 때, 윤미의 엄마 이문강 여사는 가족의 역사를 주름으로 새겨 놓은 할머니가 되어 있습니다. <윤미네 집>의 첫 장과 마지막 장 사이사이에 켜켜이 쌓인 가족의 사랑이, 웃고 있는 할머니의 눈가에 촘촘히 배어 삶의 표면을 드러내줍니다.  


ⓒ 전몽각

그 삶을 따라가다 보면, 안고 업고 뒹굴고 비비대는 피붙이의 촉각이 사진에 점점이 박혀 있는 빛의 흔적, 그 2차원의 세계를 넘어 본래의 감각을 회복한 양 나의 과거가 되고 오늘의 그리움이 됩니다. 그러므로 미처 기억(기록)되지 못한 순간, 그 보이지 않는 시간의 흔적들마저, 나의 시간을 빌어 되살아나는 듯합니다. 그리고는 ‘오늘’ 끝끝내 그것을 볼 수 없음에 사무치는 그리움은 더해만 갑니다. 이미 지나간, 지금도 지나가고 있을 모든 순간들이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아름답고 또 애틋한 것임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됩니다.

“기억과 망각 사이에 사진이 있다. 잊혀져 가는 것을 떠올리게 하고 다시 숨쉬게 하는 사진. 한 장의 사진이 담고 있는 것은 과거의 한 순간이지만 그것이 되살리는 것은 그 순간을 감싸고 있는 시간에 대한 감정이다. 그리고 그 시간이 아주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 사랑하는 것들을 대상으로 펼쳐질 때 그것은 오늘, 그리움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다. 되돌아가지 못해 더 아름답게 추억될 수밖에 없는 그런 순간들이, 사진 속에서 그리움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온다.”
(159쪽)

<윤미네 집> 앞에 선 나는 ‘보는 이’로만 온전히 남아 있지 못하고, 어린 날의 윤미가 되었다가 어린 날의 내가 되기도 하고, 내 부모의 딸이 되었다가, 누군가의 부모 혹은 나이 지긋한 여인이 미리 돼 보기도 합니다. 그러다 다시 ‘보는 이’, 그 최초의 자리로 돌아와, 윤미네 집의 가장이자 남편이고 아이들의 아버지였던 고(故) 전몽각 선생, '내가 보고 있는 사진의 이편에서 몇 십 년 전 내 자리에 서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을'  선생의 애정 어린 시선 또한 가져 봅니다. 그리하여 결국 유유히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하루 또 하루를 보내며 아무렇지 않게 많은 것들을 잊어버리고, 몇몇의 기억으로만 살고 있는 오늘의 나로 되돌아옵니다. 아련하고 슬픈 그리움에 취한 내가 ‘지금’, ‘여기’에 돌아와 있습니다. 


제공 PHOTONET

“한 장의 사진, 그 사진 속의 아름다운 순간을 추억하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렌즈 너머에 있는 사진가를 생각하게 하는 사진. 그런 사진이야 말로, 사람의 가슴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사진일 것이다.” (166쪽)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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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현의 얼굴> - 사진이란 이름의 기도

 

조세현, <조세현의 얼굴>, 앨리스, 2009


“여기 보세요! 하나, 둘…. 기분 안 좋은 일 있으세요? 좀 웃으세요. 김치! 하나, 둘, 셋!” “찰칵” 누구나 이런 기억 하나쯤은 있습니다. 너무 오래 웃고 있어 경직된 입꼬리,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어색한 브이(V). 생각해 보면 한 없이 촌스러운 포즈지만, 우리는 오래된 사진 한 장덕에 웃고, 그 시절을 추억합니다. 만약 인간의 기억이 무한하거나, 세상을 그리는 솜씨가 빼어나다면 사진은 그 의미가 반감했을 겁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인간은 그렇지 못하기에, 사진은 소중한 기억을 담습니다.

<조세현의 얼굴>은 인물사진 잘 찍기로 소문난 조세현 사진작가가 2009년 중국 시안의 여름을 담은 책입니다. 시안에서 만난 사람들은 작가를 향해 한없이 맑은 웃음을 짓습니다. 그들의 웃음을 보면 “거짓 없는 그들의 얼굴이 이방인의 마음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는다. 낯선 사람이 들이미는 카메라에 성내지 않고 웃어주는 그 얼굴이 고맙다.”(45쪽)는 작가의 마음을 함께 느낄 수 있습니다. 작가는 그 웃음에 매료됐는지 길, 시장, 버스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담습니다. 남루한 차림을 하고도 해맑은 표정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합니다.
 


( ‘야채 장수’, 사진 제공 앨리스)


사진은 ‘발견’입니다. 작가가 입을 빌자면 ‘사람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가장 짧은 시간은 1/16초’입니다. ‘그보다 더 빠르게 지나가는 찰나의 순간은 오직 사진을 통해서만 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사진기는 우리의 한계로 인해 일상적으로 사라져가는 표정들을 사로잡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게 하는 것. 발견이지요. 작가는, 사진기는 무심히 스쳐가는 이들의 표정을, 그들이 사는 이야기를, 오랜 시간 진시황릉을 지켜온 병사들의 생기를 발견합니다. 사진 한 장으로 이야기는 무궁무진해집니다. 

문득 이런 의문이 듭니다. 작가를 순식간에 스쳐가는 사람들의 표정을 어떻게 잡을 수 있을까. 사진기가 초를 잘게 쪼개 몹시 짧은 순간을 잡는다 해도 그건 쉬운 일이 아닐 텐데요. 답은 ‘사진은 사진기가 아닌 마음으로 찍는다’는 작가의 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는 사진을 찍기 전 먼저 마음을 열고, 그들과 친해지려 노력합니다. 그 속에서 누구도 알지 못했던 무언가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마음과 마음 사이에 오가는 따뜻한 기운들. 그는 그것을 사진기에 담습니다. 그에게 있어 사진의 또 다른 이름은, ‘기도’입니다.
 


(‘친구’, 사진 제공 앨리스)


먼 훗날 자신의 어린 시절이 담긴 사진으로
스스로의 세월을 돌아보며 행복해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들을 향해 셔터를 눌렀다.
키가 자라고 몸집이 커지면
저들의 마음에도 이루고 싶은 꿈이 생길 것이다.
그 꿈이 무엇이든
포기하지 말고 이루어 가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189쪽)

작가가 소개한 얼굴들을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납니다. 또 더 오래 보고 있으면 코끝이 시큰해지기도 합니다. 그중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닿은 사진 한 장을 고르라면, 오랜 고민 끝에, 시안의 외곽 마을 화련에서 찍은 ‘빨간벽돌 앞에서’를 꼽겠습니다. 은은한 달빛 아래서 그림자 연극에 푹 빠져버린 마을사람들. 나이도, 성별도, 직업도 상관없이 그들은 한 곳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한 곳을 바라본다는 것, 상상만으로도 행복한 일입니다. 사람의 온기, 순박함, 하나 됨을 느끼게 한 작가에게 ‘고맙다’는 말이라도 해야겠습니다.
 


(‘빨간벽돌 앞에서’ , 사진 제공 앨리스)


                                                                                               -반디(ak2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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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싶은 건 사랑일 텐데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의 책과 음악 이야기 No.13 - 기억하고 싶은 건 사랑일 텐데

「희재」

그대 떠나가는 그 순간에도 나를 걱정했었나요
무엇도 해줄 수 없는 내 맘 앞에서
그댄 나를 떠나간다 해도 난 그댈 보낸 적 없죠
기다림으로 다시 시작일 테니

얼마나 사랑했는지 얼마나 더욱 사랑했는지
그대여 한순간조차 잊지 말아요
거기 떠나간 그곳에서 날 기억하며 기다려요
날 기억해줘요

한없이 그대에게 다가가는 나일 테니

*Album from 성시경, 영화 <국화꽃 향기 O.S.T.>「희재」중

죽음은 삶 속에 잠재해 있다

죽음은 삶의 대극(對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 잠재해 있는 것이다. 죽음이라는 단어를 되뇔 때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상실의 시대>에서 쓴 문장을 떠올리게 된다. 최근 몇 년 나이를 실감한 것 중 하나는 ‘삶 속에 잠재해 있는’ 죽음으로 침잠해가는 이들이 포위망을 좁혀 내게로 다가올 때였다. 멀지 않은 시간 나의 어머니 혹은 아버지가, 그리고 내가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먼 시간인지, 얼마나 가까운 시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유진 케네디가 지은 <당신도 유능한 카운슬러가 될 수 있다>에서는 홈스(Holmes)와 라헤(Rahe) 박사가 제시한 생활 속 스트레스 수치를 소개한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배우자의 사망. 평균치 100, 즉 누구에게나 가장 큰 스트레스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 뒤를 잇는 것이 이혼(73), 부부간의 별거(65), 가족의 사망(63)이며 이는 자신의 부상 또는 질환(53)보다 높은 수치다. 15가지 항목 중 가족 문제가 10개, 그 중 죽음이나 질병은 5가지에 이른다. 죽음이 이토록 고통스러운 것은 자신의 문제인 동시에 그들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 죽음을 맞이하지만 그 과정에는 누군가가 함께 하고 있다. 죽음이 ‘삶 속에 잠재해 있는’ 진리를 사실로 받아들인다는 건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인 것이다.  

댄과 카르멘은 좋은 직장을 갖고 예쁜 아이와 살아갈 것을 의심해 본 적이 없는 평범한 부부다. 그러던 중 카르멘에게 유방암 선고가 내려진다. 가슴절제 수술까지 받아가며 유방암과 맞서는 이는 카르멘이지만 낫을 든 사자(死者)에 쫓기는 것은 댄과 카르멘 두 사람이다. 레이 클룬은 자전적인 소설 <사랑이 떠나가면>을 통해 ‘죽어가는 카르멘’보다 ‘죽음을 지켜보는 댄’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댄은 고독공포증을 가진 쾌락주의자다. 아내의 죽음 앞에서도 여자에 빠져든다. 여느 소설이나 영화가 ‘죽음=순결’이라는 등식을 만들어내는 것에 비해 댄은 아내 앞에서 눈물을 참아내고 심지어 아내에 대한 사랑을 의심하기도 한다. 그리고 아내에게서 전이되는 죽음의 공포를 연인 로즈에게 매달리며 해소한다. 

그런가 하면 정작 죽음을 앞둔 카르멘은 남편의 외도를 이해하고 아이에게 죽음을 설명하고, 자신의 죽음을 선택한다. 죽음 앞에서 댄이 나약함의 상징이라면 카르멘은 강인함의 상징이다. 하지만 댄이 살아가야 하는 이의 상징이라면 카르멘은 죽어가는 이의 상징이다. 그렇게 댄과 카르멘은 이분법으로 나눌 수 없는 존재다. 인간은 나약함과 강인함, 삶과 죽음을 모두 감당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기억하고 싶은 건 음악이 아니라 사랑일 텐데

헤어지고 난 뒤에는 모든 이별 노래가 내 이야기인 것만 같다. 세상 모든 이들이 이별한 것만 같고, 모든 이들이 이별 노래만 부르는 것 같은 기분이다 ‘우리 함께 듣던 이 노래에 나는 왜 또 눈물이 흐르는지’(「Goodbye Day」, 김장훈) 흐느끼고 ‘시간이 흐르고 내 마음이 흘러서 그렇게 당신도 함께 흘러가야 하는데 정말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네요’(「마음을 잃다」, 넬) 한탄해도 커다란 비어버린 마음에는 노래만 가득 채워진다. 

레이 클룬은 <사랑이 떠나가면>을 쓰면서 수없이 많은 노래를 듣지 않았을까. 마치 <상실의 시대>에서 레이코와 와타나베가 나오코를 위한 음악 장례식을 열어주었던 것처럼. 소설의 시작은 비틀즈의 「Yesterday」다. ‘어제는 모든 고뇌가 저 멀리 있는 듯 했건만’ 굳이 그가 음악을 찾으려고 하지 않았어도 일상의 음악이 그의 귀에 내려앉았는지도 모른다. 수많은 노래가 흐른 뒤 라디오헤드의 「No Surprises」를 들으며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 ‘경고도 없이, 놀라움도 없이. 침묵.’ 각 장마다 흐르는 음악들만 모아도 한편의 소설이 될 정도로 <사랑이 떠나가면>에서 음악의 의미는 크다. 바로 그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가 기억하고 싶었던 건 음악이 아니라 사랑이었을 것이다. 음악으로나마 그 사랑을 기억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음악이 흐르는 동안은 영원히 잊히지 않기를, 혹시라도 잊혔을 때는 음악을 듣고 기억해낼 수 있기를, 그만큼 사랑하고 있음을 먼 곳에서라도 기억해주기를 바라며.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 [<재즈피플> 보러 가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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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o the memory’ - 기억 속으로

 

안녕하세요. DJ 반디입니다. 이제 한반도 전역에서 장맛비가 오네요. 어제까지만 해도 중부지방엔 비가 오지 않았었는데. 올 장마는 남부지방에서 먼저 시작했습니다. 블로그 이웃분들이 올리신 사진을 보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비가 많이 와도 상처받는 사람은 없어야할 텐데요. 그래서 가만히 소원해 봅니다. 남쪽의 비구름이 빨리 지나가든지, 그게 안 된다면 중부지방으로 좀 오든지. 아무래도 아픔은 같이 나누는 게 낫겠지요.

오늘 들으실 곡은 ‘러브앤팝’(Love&Pop)의 ‘Into the memory’입니다. 혹시 러브앤팝을 기억하시나요? ‘들리는 블로그’를 시작하고 DJ 반디가 처음 선정한 뮤지션이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여성 보컬이 조설영이라고도 말했는데.. ^^  ‘Into the memory’도 전에 소개드렸던 앨범 “LOVE & POP”에 수록돼 있는 곡입니다.

이 노래는 인트로 부분의 빗소리가 인상적입니다. 요즘처럼 비가 많이 오는데, 왠 빗소리냐고요? 일단 한 번 들어보시면 생각이 확 바뀔 겁니다. 차분히 내리는 빗소리에 조설영의 감미로운 허밍으로 시작되는 ‘Into the memory’는 반디 가족 여러분을 금방 기억 속으로 안내합니다.

“어쩌면 너에겐 사랑이었니. 힘겹게 뒤돌아서는 널 바라보던 그날을 잊지 못해 아무런 변명을 하지 말자고 모두 이해하겠다고 날 바라보던 니 눈을 잊지 못해. 헤어질 때는 아쉬워하다 고갤 돌리면 여전히 그 자리에 그런 너처럼 이젠 내가 기다려. 고갤 돌리면 나를 볼 구 있도록...”

기억 한 조각이 떠오르지 않나요?
사랑과 이별, 후회는 한 통속인가 봅니다. 빠른 템포의 곡이지만 그리움의 정서가 가득 묻어납니다. 그래도 끝난 사랑을 이렇게 노래할 수 있음은 그 사랑을 어느 정도 잊었기 때문은 아닐까요. 물론 그 흔적을 다 지우지 못해 때때로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는 순간은 있겠지만요. 비오는 날, 기억을 부르는 좋은 곡이란 생각이 자꾸 듭니다. 

 
아래 '음악 들으러 가기'를 누르면 들리는 곡이  ‘Into the memory’입니다.) 이 곡은 반디앤루니스 싸이월드 블로그(http://cyworld.com/bandinbook)에 올립니다. 기억 속에서 뜨거웠던 ‘나’를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__)(^^)v  [음악 들으러 가기] 


*음악 신청은 반디앤루니스 네이버 블로그((http://blog.naver.com/bandinbook) -> 메모 -> 들리는 블로그에서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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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을 통해 기억을 마주하다



‘사진에 기대어 詩를 보다’ 두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 함께 볼 시는 강영은 님의 ‘ㄱ의 뒤편’입니다. 작가는 ㄱ자로 날아가는 철새들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는 돌아봅니다. ㄱ(‘기역’)과 ‘기억’의 발음의 유사성과 먼 곳으로 날아가는 새와 기억의 정서의 일치가 시 속에서 멋들어지게 펼쳐집니다. 

문득 자유로를 타고 파주로 출근하던 아침, 차창으로 들어오던 철새들의 모습이 떠오르네요. 로맹 가리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본 이후로 날아가던 새들을 멍하니 바라보는 버릇이 생겼는데... 함께 시 감상하시죠. ‘사진에 기대어 詩를 보다’는 반디앤루니스 종로타워점에서 21일까지 펼쳐집니다. 

  

ㄱ의 뒤편

ㄱ을 소리 내어 부르면 앞장 서 가는 기억이
기억의 무리를 이끌고 가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림자처럼
쓸쓸해진 기억이
내 몸의 문간을 떠나가네
삐걱거리는 날개가
폭풍의 눈처럼 사라지는 그런 날이면
밤새도록 가랑잎이 몰려다니며
바람의 길 위,
날개 모양의 문신을 새긴하 하네
ㄱ은 굴러 떨어지는 깃털이 되어
마당 구석구석을 뒤지네
그런 날 새벽이면 날아가는 깃털만 보아도
헛간 문짝이 덜컹거리네
헛간 속 낡아가는 낫의 등뼈처럼,
늙어가는 등뼈를 지탱해주는 지팡이처럼
ㄱ은 한 번도 제 앞을 보여준 적이 없다네
나는 ㄱ위 뒤편에서
그리운 그림자를 주울 뿐이네

ㄱ은 돌아오지 않는 부메랑
첫사랑, 첫 키스의 기억으로 날아가는
기러기의 첫 글자

<시: 강영은 / 사진: 이형규>


[전시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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