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4.11.13 《선생님, 오늘 날씨 어때요?》 - 오늘도 일교차가 크겠습니까?
  2. 2014.10.23 《안녕 하루》 - 마음을 읽다
  3. 2014.09.24 《도서관에서 책과 연애하다》 - 같이 읽자
  4. 2014.02.05 《도착》 - 해피엔딩이 곧 도착합니다
  5. 2012.05.23 [서점에서 만난 사람] 작은 붓으로 이룬 다정(多情)의 세계 - 그림책 작가 조원희

《선생님, 오늘 날씨 어때요?》 - 오늘도 일교차가 크겠습니까?

 

 

수지 모건스턴 | 《선생님, 오늘 날씨 어때요?》 | 크레용하우스 | 2014

 

사람의 감정과 인생은 날씨와 같아서 예측할 수 없다.

 

무역풍이라는 뜻의 ‘알리제’, 북풍이라는 뜻의 ‘트라몽탄느.’ 알리제 선생님의 이름과 성이다. 선생님에게 날씨는 열정 그 자체다. 오늘의 날씨를 보며 하루를 시작하는 반 아이들은 알리제 선생님에게 직접 일기예보를 준비해서 발표해 볼 것을 제안받는다. 지금 사는 지역인 니스뿐 아니라 세계의 다른 곳까지. 옷 속에 수영복을 입고 돗자리와 비치 타월을 챙겨 와서 바닷가에 놀러 가고 싶을 정도로 더운 날씨를 소개하는 셀리아, 검은색 물감과 꿀을 섞어 발라 신문지로 싸온 지폐를 흔들며 발표를 시작하는 카롤 등 아이들은 각자의 개성대로 세계의 날씨를 발표한다.

 

올해 서른, 아직 결혼하지 않은 알리제 선생님은 모델처럼 키가 크고 날씬하다. 선생님에게는 두 가지 고민이 있다. 첫 번째는 동료 제니퍼 선생님은 물론 모든 선생님이 전염병 환자처럼 자신을 취급하며 따돌리는 것. 그리고 친절하고 단정하지만 일방적으로 약속을 정하는 권위적인 성격의(악셀이 바라는 여자는 자신의 말을 충실히 따라 주는 사람이라니 벌써 말 다한 셈이다.) 악셀이 청혼한 것이다.

 

토마는 모험과 도전을 통해 진짜 용기가 무엇인지 보여 주었어요. 하지만 여러분도 보다시피 천둥 번개와 같은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했어요. 토마는 발표를 통해 첨단 기술을 갖춘 아주 뛰어난 기상 예측 시스템도 모든 것을 완벽하게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 줬어요. 날씨는 우리 인생과 같아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답니다. (44쪽)

 

장학사 모렐 선생님은 알리제 선생님의 남다른 수업방식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하필 토마가 비와 천둥에 대해서 발표하기 위해 강아지를 데리고 오고 물을 준비한 날, 모렐 선생님이 들이닥친 것이다. 토마의 발표를 돕는 피에르의 실수로 모렐 선생님은 물벼락을 맞아 잔뜩 화가 났다. 그야말로 천둥 같은 날이다. 모렐 선생님은 알리제 선생님에게 교육청에서 지시한 프로그램대로만 수업하라고 요구한다.

 

아이들에게 창의력과 인성을 키워주는 수업이 진짜 수업 아닌가. 학창시절 내가 국어 시간을 제일 좋아했던 것도 마음껏 내 생각을 쓸 수 있어서였는데 말이다.

 

저녁 7시가 되었다. 하지만 초인종을 누르는 사람은 없었다. 7시 30분이 되어도, 8시가 되어도 아무도 오지 않았다. 알리제 선생님은 우울한 마음을 떨쳐 버리고 준비한 음식들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했다. (96쪽)

 

알리제 선생님은 친구의 조언대로 자신을 따돌리는 동료 선생님들에게 초대 문자를 보냈다. 핼러윈 파티를 열기로 한 토요일, 악셀과 함께 장식품, 커다란 호박 그리고 맛있는 음식들을 준비한 거다.

 

나는 혼자인 걸 멈추고 싶어서 친하지 않은 아이들, 친해지고 싶은 아이들을 내 생일파티에 초대했던 적이 있다. 알리제 선생님을 보고 학창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먹는 거라면 만일을 제치는 아이들이었는지 내 생일파티에 참석하지 않은 아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그중에 나와 절친한 친구가 되어준 아이도 없었다. 그럴 바에 차라리 알리제 선생님의 핼러윈 파티에 참석하지 않은 교사들이 더 양심적이란 생각이 든다. 얻어만 먹고 놀아주지 않으면 더 얄미우니까.

 

《선생님, 오늘 날씨 어때요?》를 읽고 씁쓸했던 건 교육자라는 장학사가 고정 관념에 사로잡혀 고루한 수업방식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학교 선생님들부터도 자신과 조금 다를 뿐인 동료를 따돌린다. 선생님들의 행동을 보고 아이들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 기억 속에도 알리제 선생님처럼 나와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가르친 선생님은 정말 소수인 듯하다. 반 아이들 앞에서 한 아이를 지목하고서는 “쟤 왜 이러냐?”, “이상하다.”를 발언했던 선생님은 많았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겨울인형'님은?

직접 커피를 내려 마시는 번역작가 지망생입니다. 사람의 감정과 인생은 날씨와도 같지만 커피와도 같습니다. 30년이 조금 넘은 제 인생을 커피 맛으로 표현한다면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절은 쓴맛, 20대는 쌉싸래한 맛, 30대인 지금은 신맛에 가까운 에스프레소랍니다. 앞으로는 설탕과 우유를 첨가한 달고 부드러운 카페라떼 인생이 되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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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하루》 - 마음을 읽다

 

 

하재욱 | 《안녕 하루》 | 헤르츠나인 | 2014

 

지하철에 앉아있는 시커먼 아저씨. 그의 일상, 빡빡한 하루를 들여다보는 것이 뭐가 흥미롭고 재미있겠느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삶에 찌들어 지독하리만큼 쓰디쓴 술에 하루를 털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까?’ 한편으론 마음이 답답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웬걸! 이 야밤에 식구들 모두 자는데 혼자서 눈물을 질질 흘리다 피식 웃다….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 그림과 글입니다. 


이 책은 지각할까 봐 방금 떠난 전철을 원망하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 월급봉투 앞에서 무릎을 꿇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아저씨이자 아이 셋을 둔 아빠의 이야기입니다. 남자는, 아저씨는 감정이 참 메말랐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내에게 표현도 잘 안 하고 야근을 핑계로 거나하게 취해 술 냄새 풍기며 귀가하는 모습 등 이상하게도 부정적인 이미지가 머릿속을 꽉 채웠지요.

 

한데  책을 보니 마음이 짠한걸 넘어섭니다. 아저씨도 아빠임을, 감정이 있는 존재라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새벽에 가끔 눈을 떴을 때, 다른 방에서 자고 있던 아이가 자신의 얼굴을 베고 잠든 모습을 보고 눈물이 난다는 사람. 가장으로서의 삶은 물론 표현은 서툴지만 뜨끈한 아버지의 사랑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꼭 남편의 일기를 몰래 보는 느낌입니다.

 

남자도 여자가 표현하지 않으면 모르듯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책을 보는 동안 남편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내 옆 지기도 우리 아이들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겠구나. 나는 아이들과 집에서 지지고 볶고 힘들게 산다고, 육아 스트레스라며 투덜대곤 했지만 이 사람은 투정조차 못 했겠구나. 이런 마음 들여다봐 주질 못했구나.’ 싶었습니다.

 

가끔 무뚝뚝한 남편이 못마땅해질 때, 아이들 일로 머리가 폭발하려 할 때, 신데렐라도 아니면서 12시 딱 맞춰 들어오려는 남편을 기다릴 때,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싶어질 때. 이 책을 살포시 꺼내 들면 절로 힘이 날 것 같습니다. 아내와 아이가 온전히 하루를 함께하지 못하는 남편이자 아빠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아이의 시선으로는 ‘우리 아빠는 잠든 나를 보며, 학교 가는 나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아내의 경우, ‘내 남편은 이런 생각을 하며 살고 있구나.’ 새삼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점점 커가는 아이들을 보며, 예전처럼 살갑지 못하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남편은 서운함이 저보다 더할 텐데 아내인 저마저 그러니  허전함이 오죽할까 싶었습니다. 그러면서 왠지 또 마음이 짠해집니다.

 

주인공이 회사에서 잠시 짬을 내 담배를 태우는 그림에서, 옆 지기가 떠오릅니다. 힘들게 땅만 보고 연기를 뿜을지, 하늘 한번 보고 기지개라도 켤지. 오늘따라 남편 어깨의 짐이 참 무거워 보입니다. 저거 내가 들어줘야 하는데. 내 짐만 보고 살고 있었나 봅니다. "어느 날 문득 오늘이 떠오른다면 참 질투 나는 하루일 거야." 질투 나는 하루! 저도 그런 하루 좀 살아봐야겠습니다. 오랜만에 아주 마음이 뜨끈뜨끈해지는 이야기를 만났습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꿀꿀페파'님은?

책을 즐기며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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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책과 연애하다》 - 같이 읽자

 

 

안정희 | 《도서관에서 책과 연애하다》 | 알마 | 2014

 

꼭 이루고 싶은 나의 소망은 작은 도서관을 만드는 것이다. 큰아이가 걸음마를 배우기도 전에 아동문학에 발을 들였다. 동화 읽는 어른 지역모임에 나가 그림책과 동화를 읽기 시작했고, 급기야 어린이 독서지도사 교육을 받았다. 동기는 단순했다. 내 아이를 좀 더 알고 싶다는 것. 나와 닮았지만 전혀 다른 아이의 마음이 궁금했다. 수많은 그림책과 동화 속에서 해답을 찾기 시작했다. 답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하나씩 눈에 들어왔다. 아이의 순수함과 재기발랄한 모습은 뻔히 보이지만 감춰져 있고 꼭꼭 숨겨진 듯 의외의 장면에서 톡톡 튀어나왔다. 그림책이나 동화는 그저 어린이들이 보는 ‘쉽고 단순한 책’이 아니란 걸 실감했다.

 

그즈음이었다. 외형이나 내용에서 천편일률적으로 규격화된 전집이 대부분을 차지하던 어린이 책시장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났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느티나무 도서관 얘기였다. 그곳에서는 어린이책 전문가의 검증과 부모들이 추천하는 단행본이 서가를 가득 메우고, 일과 중에 동화를 읽어주거나 어린이를 위한 공연이 열렸다. 엄마들이 도우미로 활동하는 도서관이기도 했다. 아동문학 작가의 염원이 볼로냐국제도서전의 초청이라면 내겐 느티나무 도서관이 그랬다.

 

2000년에 개관한 느티나무 도서관이 오늘날까지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도서관 서가를 가득 메운 책에서 찾을 수 있다. 베스트셀러에 연연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 사소하지만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고 배움의 동기를 찾을 수 있는 책으로 가득하다. 느티나무 도서관은 모든 도서관이 나아가야 할 바를 보여준다.

 

《도서관에서 책과 연애하다》의 저자는 느티나무 도서관의 북큐레이터 안정희다. 그는 법학을 전공했음에도 책이 좋아 책과 일상을 함께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 속에서는 또 다른 책들을 만날 수 있다. 전쟁 중에도 인간의 내면이 성장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미스터 핍》, 《기억전달자》를 통해 저자는 인간에게 ‘책’과 ‘읽기’는 삶 그 자체(38쪽)라고 말한다. 책이 존재하는 공간인 서점, 헌책방, 북카페, 개인의 서재가 저마다 어떻게 다른지 짚고, 책이 어디에 놓여있느냐에 따라 책의 의미도 달라지기 때문에 가끔은 도서관처럼 열린 공간에서 책을 읽으면 시야가 확장되는 걸 느낄 수 있다고 저자는 전한다.

 

책은 인류가 후대에 전승코자 하는 정신이자 기억이다. 그 오래고 방대한 ‘인류의 기억’인 서가 앞에 서면 ‘나’라는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게 된다. (61쪽)

 

소설가 김연수와 시인 문태준의 일화를 소개하는 대목은 놀랍다. 그들이 중학교, 고등학교 동창이라는 것도 그렇지만, 일찍이 작가를 꿈꾼 김연수와 작가를 꿈꾸지 않았지만 저절로 시가 흘러나왔다는 문태준, 두 작가의 이야기에서 도서관이란 공간의 무궁무진함을 느낀다.

 

취학 전 아이는 도서관에 바로 데리고 들어가지 말라는 것도 의외였다. 아이가 되도록 빨리 책을 접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보다 아이가 도서관 주변 환경을 관찰하면서 익숙해지는 과정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도서관이 가장 필요한 시기가 중, 고등학교 때라고 말한다. 요즘 청소년에게 도서관은 공부의 장소로 여겨지고 있어 안타깝다. 나는 학창시절에 도서관에서 책으로 빼곡한 서가 사이를 걷다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지곤 했는데, 내 아이도 그럴까? 때로 원하는 책을 찾지 못해 서가 사이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더라도 그것 역시 소중한 경험이고 추억이라는 걸 내 아이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쩌다 우리집을 방문한 이는 모두 한결같이 묻는다. “여기 이 책들, 전부 읽었어요?” 난데없는 질문에 처음엔 당황했지만 이젠 당당하게 말한다. “에이, 설마 다 읽었겠어요? 그래도 일단 차례를 훑어보니까 대충 어떤 내용인지는 알아요.” 내 아이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한다. 어떤 책을 읽었고 어떤 책을 읽는 중인지, 외면 받는 책은 무엇인지 아이 방을 정리하면서 짐작해본다. 방 안 여기저기 쌓여있고 아무렇게나 펼쳐진 책들을 보면서 핏줄의 무서움을 새삼 느낀다. 오늘도 난 아이와 함께 할 책을 찾고 있다.

 

무엇보다 내 눈에, 내 마음에 아이가 들어왔다. 처음에는 내 아이가, 다음에는 다른 아이들이, 그렇게 책과 더불어 나와 아이는 진정으로 가족이 되었다. 내 인생이 통째로 변하기 시작했다. (216쪽)

오늘의 책을 리뷰한 '몽당연필'님은?

어떤 일에도 미혹되지 않는다는 나이를 한참 지났지만 책의 유혹에는 번번이 백기를 들고 맙니다. 공주(공부하는 주부)가 세상을 바꾼다는 신념으로 매일 책을 읽고 지인들과 독서모임을 꾸려가고 있으며 바다가 보이는 마을에서 작은 도서관 개관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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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 - 해피엔딩이 곧 도착합니다

 

 

숀 탠 | 《도착》 | 사계절 | 2008 

 

진짜 새해가 밝았다. 무의미하게 흘러간 1월 한 달은 2014년을 어떻게 보낼지 다시 한 번 고민하고 계획의 실효성을 검증하는 시간이었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해본다. 한편으론 도착하지 않은 시간들 때문에 두려운 마음이 든다. 올 한해 내게 어떤 일들이 생길지, 혹시나 그 일들이 지금보다 더 안 좋은 상황으로 나를 몰아갈까봐 두렵다. 이렇게 도착하지 않은 날들로 인해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온전히 느끼지 못한다. 이런 내가 바보 같다는 것 누구보다 잘 알면서 말이다. 이럴 때마다 꺼내보는 그림책이 있다. 한국에서도 이미 두터운 팬층을 확보한 일러스트 그림작가 숀 탠의 《도착 THE ARRIVAL》이 그것. 이 그림책을 꺼내 볼 때에는 내 마음이 공허할 때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살다보면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여기가 아닌 곳에 있고 싶은 마음,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한 걱정 등등, 마음이 현실에 안착하지 못하고 떠돌 때가 있다. 사실 내게 이 같은 마음은 현실도피의 다른 표현이다. 현실에 단단히 정착하기 위해 무언가를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럴수록 마음은 먼 곳을 향해 떠돈다. 이럴 때 호주 이민 역사에 판타지적 상상력을 더해 이민자의 삶을 그린 숀 탠의 그림책에 손이 간다.

 

오래된 가죽장정 앨범 같은 표지를 넘기면, 작가 숀 탠이 일일이 직접 그린 사람들의 초상화가 양면으로 빼곡이 채워져 있다. 책 맨 뒷장에도 이 초상화들이 똑같이 실려 있다. 연필로 세밀하게 그린 사람들의 초상화에는 삶의 고단함과 희망이 동시에 어려 있다. 그들의 얼굴을 한 명 한 명 가만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 순간의 내 얼굴도 여기 어디쯤에 그려져 있는 것만 같다. 그렇게 내 마음의 얼굴을 뒤로 하고 페이지를 넘기면 가난과 전쟁, 박해로부터 가족을 지키기 위해 이민을 준비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가 시작한다. 

 

 

작가는 가족의 추억과 손 때가 묻어있는 세간을 여러 컷의 그림으로 보여준다. 여기에는 사랑스러운 어린 딸과 찍은 가족사진도 포함돼 있다.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이 가족의 이민사와 그들이 정착한 신세계의 모습은 판타지한 표현과 묘사로 그려진다. 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남겨 두고, 가족들이 정착할 수 있는 새로운 터전을 찾아 미지의 세계로 혼자 먼저 떠난다. 가족을 데려오기 전에 자신이 먼저 새로운 정착지에서 기반을 잡기 위해 이민을 떠나는 아버지와 그를 배웅하는 가족의 모습 주변으로 괴물의 꼬리처럼 생긴 그림자가 드리운다. 아마도 작가가 전쟁과 가난 같은 사회적 불안요인을 거대한 괴물의 꼬리로 형상화한 듯하다.우여곡절 끝에 아버지는 미지의 땅에 도착한다. 전에 살던 곳과 다르게 건물의 모양과 식재료, 동물들의 모습이 낯설고 신기하다. 낯선 땅, 이곳에서 아버지는 자신보다 먼저 새로운 땅에 도착해 정착한 정착민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서서히 적응해 나간다. 떠나기 전 집에서 가져온 가족사진을  자신이 머물고 있는 숙소 벽에 걸어두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가족을 그리는 마음과 새로운 곳에서의 삶에 대한 두려움이 동시에 전해진다.

 

책에는 주인공 가족 외에도 여러 사람의 이민사연이 소개되고 있다. 모두들 자신들의 고향을 버리고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이 있었다. 이민자 대부분이 인종차별(유태인학살이 모티브가 아니었을까 추측된다)과 가난, 그리고 정치적 억압으로 인해 고향 땅을 등졌다. 그렇게 과거의 상처를 안고 새로운 곳에 정착하는 이들의 모습에선 삶을 포기하지 않는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강인함이 엿보인다.

 

숀 탠은 이민자이기도 했던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모티브로 이 책을 구성했다고 한다. 수 많은 이민자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참고하고 그들의 이민 이야기가 적힌 책과 이민자 인터뷰를 통해 이 책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잡아나갔다. 이런 풍부한 자료 덕에 그는 가난과 박해, 전쟁 등으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뿐만 아니라 낯선 곳에서 새롭게 시작해야만 하는 불안과 두려움을 캐릭터의 표정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됐다. 단순히 이런 삶의 어두운 면만 부각한 것은 아니다. 이 책이 뛰어난 이유는 삶의 희망을 새로운 땅에 단단히 옮겨 심고 살아간 이들의 용기와 의지를, 책을 보는 이들에게 생생히 전해준다는 거다. 어쩔 수이 고향땅을 버릴 수밖에 없었지만, 그것이 결코 삶이란 고통을 회피하기 위한 게 아니라 삶을 정면으로 마주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다시 말해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닌 현실 속에서 당당히 살고 싶은 마음이 이민자들의 얼굴에서 드러난다. 이런 마음이야말로 미래라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시간을 희망으로 채색해, 현실로 만들어주는 삶의 중심축이 되어준다. 

 

무엇보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글자 없이 오직 그림만으로도 보는 이에게 수많은 감정과 단상을 선사한다는 것이다. 상상력이 대폭발한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숀 탠의 그림책은 볼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떤 날은 삶의 고단함에 공감의 눈물을 짓게 만들고, 또 다른 날에는 그럼에도 살아내야만 하는 삶의 무게를 견디게도 해준다. 특히 오늘처럼 마음이 붙잡히지 않을 때에는 지금 내가 속한 현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해준다.

 

어느 철학자의 말마따나 지금의 우리는 떠도는 삶을 사는 이들일지 모른다. 인터넷이라는 가상세계 속에서 떠돌고, 현실에 붙박이된 것처럼 살지만 실상 그 어느 곳에도 마음을 두지 못할 때가 많다. 육체적/물질적 이동(이민)이 아닌, 정신적 이민(이동)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럴수록 혼자라는 절대고독은 시도 때도 없이 불쑥 찾아오고, 실체가 잡히는 않는 그리움은 무력감을 동반한다. 삶의 의지는 꺼져가는 촛불처럼 자꾸만 위태롭고 흔들리기 일쑤다. 이럴 때마다 여기가 아닌 곳으로 떠나야할 것 같은 조급함이 밀려온다. 숀 탠은 말한다. 현실을 단단히 붙잡고 있을 때, 진짜 새로운 삶은 시작될 수 있다고 말이다. 그의 그림책은 분명 이민자들의 삶을 모습을 그리고 있고, 그들이 고향땅을 뒤로 하고 정착한 새로운 땅은 판타지한 상상력으로 표현됐다. 그러나 이것은 삶의 고통으로부터 도망치지 않은 사람들이 만든 새로운 현실이라는 진실이다. 그 진실을 행복과 희망이라는 삶의 풍경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우리 각자의 몫이다.

 

이야기의 결말은 해피엔딩이다. 안정적으로 신세계에서 기반을 잡은 아버지는 가족들을 기다린다. 드디어 사랑하는 아내와 어린 딸이 그의 품에 안긴다. 이들은 함께 있어야만 진짜 현실이 되는 가족으로서 가난과 박해를 피해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행복과 희망을 키워나간다. 우리 삶 또한 주인공 이민자 가족처럼 해피엔딩으로 끝내려면 지금 이 순간의 현실을 새롭게 만들어나가야 한다. 해피엔딩이란 결국 삶을 주체적으로 살았을 때만 주어지는 행복이다. 오늘도 숀 탠의 그림을 보면서 현실을 외면한 채 과거 속으로 떠돈 마음을 단단히 움켜쥐어본다. 또 다른 날에 숀 탠의 그림책을 펼쳐 본다면 이번에는 어떤 새로운 이야기가 그의 그림 속에서 상상되고 전해질지 기대하면서 말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진격의두통’님은?
솔직히 독서를 즐기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책 모으기가 취미 아닌 취미라서 좋은 책, 특이한 책 골라내는 데 소질을 보이고 있습니다. 북러버보다 북콜렉터를 꿈꾸는, 어찌됐든 책과 가까이 하는 삶을 지향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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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만난 사람] 작은 붓으로 이룬 다정(多情)의 세계 - 그림책 작가 조원희

 

편집·정리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희진

도서 이미지 제공 | 출판사 느림보·SANG

 

오래된 서점 한 군데를 압니다. ‘○○서림’이라는 예스러운 상호를 고집하는 곳으로, 지금도 고향의 시내 외곽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자주 드나든 때는 열여덟 무렵입니다. 학교 수업을 빼먹고 그곳에 은신했습니다. 딱히 열렬한 문학소녀는 아니었습니다. 그저 교실에는 내 자리가 없는 것만 같았거든요. 저는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오후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곳에는 빈자리가 많았습니다. 키 큰 서가들 옆에서, 볕이 드는 창가에서, 앉기 좋은 바닥에서, 누구나 쉬었다 갈 수 있었습니다.

 

고등학생은 어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이 세상의 한복판에서 길을 잃습니다. 그런 날이면 ‘○○서림’을 생각합니다. 서울 한복판에서 당장 그 서점이 나타날 리 없습니다. 하지만 대체 가능한 것이 있습니다. 그림책입니다. 색색의 그림 사이에서, 한두 줄의 이야기 사이에서, 때로는 말없는 여백 사이에서, 누구나 지친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을 상실한 이들에게 그림책은 몇 안 되는 은신처입니다. 조원희 작가의 말처럼 어린이보다는 오히려 “어른을 위한 작업”이기도 하고요. 그 이야기, 더 들어 보실래요?

 

 

조원희

 

홍익대학교에서 멀티미디어디자인을 전공했으며, HILLS(한국일러스트레이션학교)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습니다. 조원희 작가는 자연과 동물,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감정들, 그 밖에 작고 소중한 것에 관해 그림으로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쓰고 그린 책으로 《얼음소년》, 《혼자 가야 해》, 《근육 아저씨와 뚱보 아줌마》가 있습니다.

 

 

2009년부터 지금까지 (삽화 작업을 제외하면) 세 권의 그림책을 발표하셨습니다. 멀티미디어디자인을 전공하시고 한국일러스트레이션 학교를 졸업하셨다는 프로필을 보았는데요. 이와 관련하여 그림책 작가로 활동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는지요?

 

막연하게 그림 그리는 게 좋아서 미대를 선택했는데 회화든 디자인이든 다 그냥 그림을 그리는 건 줄 알았어요. 다니던 화실에서 권한 전공을 선택했는데 다양하게 이것저것 배울 수 있어서 재미는 있었지만, 생각했던 그림을 그리는 작업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요. 회사생활도 적응을 잘 못했고 혼자 이것저것 그려보다가 한국일러스트레이션학교에 가게 되었어요. 그림책을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그동안 막연하게 생각해왔던 작업과 굉장히 가까워서 만족하며 지금까지 작업해오고 있어요.

 

 

 

지난 3월에 《근육 아저씨와 뚱보 아줌마》를 출간하셨습니다. (축하드려요!) 굉장히 크고 무섭게 생겼다고 묘사되는 두 사람이 새·개미 같은 작은 동물과 공존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자연물에 비해 두 사람을 비대하게 묘사한 데에 특별히 의미 부여를 하신 바가 있나요?

 

작고 선한 인상의 사람들보다 크고 무섭게 생긴 사람들이 조그만 것을 세심하게 챙기는 모습을 볼 때 더 인상 깊게 다가와요. 그 대비 자체도 재미있지만 겉모습에 대한 선입견이 깨지면서 책을 읽고 나서 근육아저씨와 뚱보아줌마가 한없이 사랑스럽게 보이기를 바랐어요. 이 책은 작은 배려심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해요. 크기와 색. 구도의 대비가 클수록 그런 마음이 효과적으로 보일 거라 생각했어요.

 

덧붙여, 작가님이 바라보는 요즘 사람(인간)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나요? 《근육 아저씨와 뚱보 아줌마》에 평소 꿈꾸는 이상적인 인간상을 구현했다고 봐도 될까요?

 

사람 자체보다는 관계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해요. 완벽한 사람은 없지만, 서로에게 잘 맞는 혹은 서로 맞춰갈 수 있게 소통이 가능한 관계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이상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사람이든 동물이든 자기를 버리면서까지 상대방을 배려할 수는 없겠지만, 기본적인 배려심과 다정한 마음이 있다면 큰 갈등이나 다툼은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이상적인 인간상은 상대적인 거라서 좀 애매하지만, 조용하고 선한 사람을 보면 어김없이 반하고는 해요.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편안해져요.

 

 

그런가 하면 《혼자 가야 해》에는 반려견이 등장합니다. 살아 있는 것들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 작가님에게 그런 생명체가 어떤 영감을 주는지 궁금합니다.

 

살아있는 것에 애정을 가지고 있다기보다 죽음에 관심이 많아요. 모두에게 예외 없는 가장 공평한 거라고 생각해요. 두려운 마음도 있지만, 반면 결국 언젠가는 끝날 것을 알고 살아간다는 것이 왠지 위안이 되기도 해요. 동물들이 가지고 있는 자연스럽고 한결같은 모습을 좋아해요. 생김새도 신기하고 작은 것에 만족하고 행복할 줄 아는 모습도 좋아요. 가만히 보고 있으면 각자 자기만의 시간의 흐름을 가지고 있다고 느껴져요. 매순간 자기 속도로 집중해서. 열심히 살아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저는 주로 혼자 있다 보니 동물이나 자연을 보면서 더 많이 느끼는 듯합니다.

 

인류가 지구 혹은 자연물에 가하는 문제에도 관심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얼음소년》의 경우, 지구온난화 문제를 다루고 있기도 하고요. 그런 이야기를 화두로 작업하시게 된 배경이 있었나요?

 

《얼음소년》은 ‘눈, 사람, 눈사람’ 이라는 소재로 주제는 각자 자유롭게 작업하는 그룹전에서 기획했던 작업이에요. 지구온난화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기보다는 얼음소년의 정서와 감정에 초점을 맞춰서 작업했어요. 영문도 모르고 떠나야 하는 얼음소년을 보고 안쓰러운 마음을 갖게 되기를 그래서 자연스럽게 환경에도 관심을 갖게 되기를 바랬어요. 환경파괴에 대항해서 강력하게 큰 목소리를 내지는 못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하고 싶은 범위 내에서 조용히 이야기해 보았던 작업입니다.

 

 

《혼자 가야 해》는 동물에 관한 이야기인 동시에 삶과 죽음을 말하는 그림책입니다. 이처럼 자연물 외에도 다루고 싶은 주제가 있을 것 같습니다. 요즘 생각하고 계신 이야기가 있다면 설명해주세요.

 

요즘 하고 있는 작업은 상아 밀렵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별것도 아닌 것을 만들기 위해 남의 이빨을 뽑는다는 게 잔인하면서도 허무하고 우스꽝스러워 보였어요. 이것 역시 커다란 목소리로 상아 밀렵에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느낌은 아니고 강하고 낯선 이미지로 그 느낌을 전달해주는 것에 집중하고 있어요. 1차 콘티가 나왔는데 너무 이미지 자체에 집중되어 무엇을 이야기하려는 건지 애매하게 보여서 현재는 작업을 잠시 미뤄두고 조금 거리를 두고 보고 있어요.

 

요즈음에는 컴퓨터만으로 그림 작업을 하는 작가 분들도 많은데요. 추측컨대 작가님은 물감으로 작업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작업실 풍경이 궁금한데요. 평소 작업 방식, 주로 사용하는 도구, 그것을 고수하는 이유 등을 설명해주신다면요?

 

제가 좋아하는 조형이 물감과 가장 잘 맞아서 주로 수채화를 사용하고 있지만, 컴퓨터든 뭐든 원하는 이미지를 내는데 효율적인 방법으로 작업하기를 좋아해요. 재료의 성질에 좀 둔해서 물감도 종류 가리지 않고 사용하고 싸인펜, 색연필, 마카도 많이 써요.

 

종이 딱 펼쳐놓고 공들여서 작업하는 방식도 매력적이지만, 그보다는 다양하게 바꿔보면서 레이아웃 중심으로 테스트 하는데 공들이는 것을 더 선호해요.

 

콘티 단계에서는 테스트하는 시간을 단축시키고 효율성을 높이는데 컴퓨터를 주로 사용해요. 본작업 때는 콘티를 바탕으로 수작업으로 붓의 느낌. 물감의 농도. 종이의 질감 등 여러 가지로 시도할 수 있어요. 중요한건 재료나 방식이 아니라 생각하는 이미지를 어떻게든 최대한 가깝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조형의 관심이 바뀌면 그에 따라 재료나 그리는 방식도 바꾸면서 작업할 생각이에요.

 

작업을 하지 않을 때는 어떤 일상을 보내시는지 궁금합니다. 취미라든가 특히 관심을 두고 있는 소일거리가 있을 것 같은데요. 작가님의 하루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신다면요?

 

단조롭고 조용한 일상이에요. 작업과 생활이 분리가 안 되어 있어서 최대한 작업 위주로 생활하다가 내키면 산에도 가고 책도 읽고 영화도 보러가요. 음악 들으면서 한강에 가서 달리기도 하고 짧게 영화제나 걷는 여행을 가기도 해요. 수면과 식사, 운동시간을 지키면서 좀 더 효율적인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하는데 혼자 조용히 있는 것을 좋아하다보니 멍하게 있는 시간이 참 많아요. 20대까지는 술을 많이 마셨는데 몸과 마음, 작업하는데도 지장을 줘서 이제는 가끔 날 잡아서 작정하고 마셔요.

 

개인적인 관심사 외에도 작업을 하는 사람은 여러 가지 요소의 영향을 받습니다. 이를테면 롤모델 같은 게 있기도 하고요. 작가님에게도 그런 영향을 준 또 다른 작가가 있을 것 같습니다. 독자 분들에게 ‘내가 좋아하는 그림책 작가  TOP 3’를 추천해주세요.

 

정말 많지만 꼭 세 명의 작가를 꼽으라면 사노 요코, 초 신타, 볼프 에를브르흐를 추천하고 싶어요. 주제, 어투에 일관성이 있으면서도 자유롭고 다양한 시도들이 보여서 참 좋아요. 따뜻하든, 유머러스하든 작가 특유의 정서가 느껴져서 한권의 그림책이면서 작가의 작은 세계관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림책을 보다보면 글에 비해 그림이 조금 아쉽거나. 그 반대의 경우, 둘 다 따로는 좋은데 어딘가 조화롭지 않는 경우도 많아요. 그래서 글과 그림이 서로 리듬감 있게 조화를 이루고 여러 번 읽고 싶고 갖고 싶은 그림책을 만나는 일은 정말 반갑고 즐거워요.

 

 

그림책의 주요 독자층은 어린이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작가님의 그림책을 어른들에게 권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읽는 대상을 보통 생각하고 작업을 하시나요? ‘누구누구가 이렇게 읽어줬으면 좋겠다.’라고 바라는 부분도 있나요?

 

제가 하는 이야기들이 아이들이 읽기엔 조금 어려울 거라고 생각해요. 대상을 생각하고 작업해야한다는 소리를 예전부터 들었는데 저는 그게 잘 안돼요. 어린이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라고 해도 제가 어린이도 아니고, 생각한다고 해서 작업하는데 큰 영향을 줄 수도 없는 듯해요. 다만 주제를 해치지 않는다면 되도록 아이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단어나 어투에는 신경을 쓰고 있어요.

 

오히려 어른들을 위한 작업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저는 제 책을 읽고 좋았다는 얘기를 어른에게 듣는 게 더 반가워요. 특히 그림책은 노년층이 읽기에 참 좋은 책이라고 생각해요.

 

반대로 작가님이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부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이런이런 그림책 작가가 되고 싶다.’라는 마음가짐, 그리고 앞으로의 작업 계획 등을 듣고 싶습니다.

 

아직 작가라는 호칭이 어색해요. 배울 것도 많고 불확실한 것도 많아요. 책이 세권 나왔지만 아직도 매번 작업할때마다 거의 비슷한 지점에서 막히고 거기에 새로운 고민까지 더해져요. 어느 날은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그리다가도 어느 날은 아무것도 그릴 수 없어요.

 

다만 다소 밋밋하고 사소하더라도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 힘이 돼요. 생활도 작업도 속도가 빠른 사람이 아니라서 천천히 꾸준히 할 생각입니다. 일관성 안에서 최대한 다양한 작업을 하고 싶어요. 그게 그림책이 아닌 다른 매체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얼음소년》으로 작가님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요. 그때의 감동이 여전히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얼음소년’은 북극으로 향하는 동안 작은 캐리어를 가지고 다닙니다. 그 캐리어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었을까요? 작가님께서는 그 캐리어 속에 무엇을 넣고 싶으셨나요?

 

책의 뒤표지를 보면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 있어요. 캐리어에는 아이가 눈사람을 만들 때 둘러준 장갑과 털모자. 목도리가 들어있어요. 제가 생각하는 얼음소년은 급박한 상황에서도 그것을 소중하게 챙기는 아이에요. 아무것도 원하는 게 없고 그저 그 자리에 있기를 바라지요. 환경에 대한 관심도 아이가 눈사람에게 장갑과 털모자와 목도리를 둘러주는 정도의 다정한 마음이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해요.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했습니다. 조원희 작가의 메일을 기다리는 동안 《얼음소년》을 재차 펼쳐보곤 했습니다. 그림책 한 권에 인생이 뭐 달라질까. 누군가는 불평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맞습니다. 그 세계의 끝에서 다시 복잡하고 먼 길이 펼쳐집니다. 휴식은 짧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정한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몇 번이고 추억할 수 있을 테지요. 때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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