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5.01.09 《포기의 순간》 - 먼저 이 추위에 맞서
  2. 2014.12.05 《주홍글자》 - 난 내가 되겠어
  3. 2014.09.12 《면도날》 - 여보게, 젊음이여

《포기의 순간》 - 먼저 이 추위에 맞서

 

 

 

필립 베송 | 《포기의 순간》 | 문학동네 | 2011

 

포기의 순간이 구원의 순간이 될 수 있을까. 필립 베송의 소설 《포기의 순간》은 가장 비극적인 사고에서부터 오히려 구원의 빛을 얻게 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영국 해안의 작은 마을 팰머스에 그가 돌아온다. 토머스 셰퍼드, 아들을 죽인 살인자. 그가 5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다. 5년 전 토머스 때문에 마을의 이미지를 훼손당하고 상처를 입었던 팰머스 사람들은 그의 귀향을 반기지 않는다. 대놓고 그를 무시하고 따돌린다. 하지만 토머스는 고향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 고향에서 누군가를 기다려야만 했다. 그는 묵묵히 하루하루를 견뎌낸다. 한편 마을에서 유일하게 토머스를 사람답게 대해주는 건 그와 마찬가지로 ‘이방인’ 취급을 당하는 파키스탄인 가게 주인과 어느 미혼모이다. 토머스는 그들을 신뢰하기로 하고 자신의 과거를 고백한다. 그리하여 5년 전에 일어났던 비극적 사건의 전말과 현재 토머스가 기다리고 있는 게 누구인지가 드러난다.

 

《포기의 순간》은 비극적인 상황에서 출발한다. 5년 전 토머스가 사람들에게 잡혀가는 순간부터 다시 돌아온 후의 상황이 어둡고 서늘한 해안 마을의 풍경과 맞물려 비장하면서도 비관적으로 그려진다. 독자들은 토머스가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지, 다시 사회에 녹아들 수 있을지를 궁금해한다. 하지만 소설은 독자들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끌고 간다. 사건의 전말과 함께 드러나는 건, 토머스가 이미 오래전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팰머스는 웅덩이에 고여 있는 물 같은 곳이다. 칙칙하고 냄새나며 어딘지 썩어 있는 모양이다. 팰머스의 남자들은 과묵하고 거칠다. 여자들 역시 매섭고 쌀쌀맞다. 팰머스는 한 번 태어나면 벗어날 수 없는 곳이다. 그곳 주민들은 거기서 평생 뱃사람으로, 평생 누군가의 아내로만 살아간다. 그것이 팰머스라는 마을을 이루는 중심이자 핵심이다. 하지만 토머스는 달랐다. 그는 늘 중심과 명확한 것을 경계했다. 토머스의 평생 연인이었다가 그와 결혼까지 한 메리앤은 사실 토머스 몰래 바람을 피웠다. 토머스는 자신의 아이인 줄 알았던 아들이 사실 메리앤이 바람을 피워 임신한 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미 기울기 시작했던 결혼 생활은 그 이후 최악의 상황을 달리기 시작한다. 토머스는 자신이 알게 된 사실을 메리앤에게 밝히지 않는다. 그들의 가정은 거짓말과 위선에 잠식당한다. 하지만 팰머스 사람들은 이혼하지 않는다. 아이가 있다면 더더욱. 어느 날 토머스는 이 모든 게 누군가 죽는다면 끝이 나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토머스는 절대 아이를 죽이지 않았다. 다만 그런 생각을 잠시 했었다. 그러나 아이를 보는 순간 토머스는 그런 생각을 접었다. 아이가 죽은 건 순전히 사고였다. 토머스는 과실치사로 5년형을 선고받았던 거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에게 토머스는 그저 아들을 죽인 살인자일 뿐이고, 토머스에게도 그 자신은 어찌되었든 마음의 죄를 지은 사람이다. 유죄이지만 사실은 유죄가 아니고, 무죄이지만 진짜 무죄는 아닌 것이다.

 

작가인 필립 베송은 다음처럼 말했다. "나는 비극적 사건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며 다루고 싶었다. 그리고 죽음이 인간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러니까 이것은 내 소설 중 가장 낙관적인 내용이 될 것이다." 토머스는 항상 아이를 마음에 안고 살아간다. 그러나 소설을 읽어갈수록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건, 토머스가 얼마나 불행하고 음울한 사람인가가 아니라 그가 얼마나 희망과 기대에 차 있는 사람인가, 이다. 필립 베송은 또한 이런 말도 했다. "틀에 박힌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쩌면 불의의 사건을 겪어야 하는 건 아닐까요?" 마음속으로만 경계를 좋아하던 토머스는 불의의 사건을 겪고 강제로 경계 밖에 내쳐진다. 하지만 그 경계 밖에 처하고서야 토머스는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깨닫고 그것을 받아들인다. 사람들은 중심 속에서 중심 밖에 있는 그를 욕하지만 그는 그 욕에 맞서 당당히 걸어가기로 마음먹는다. 그가 기다리는 사람은 감옥에서 만났던 루크라는 남자다. 토머스는 팰머스에 그가 찾아오리라는 확신 찬 기대를 가지고 하루하루를 기다린다.

 

국내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필립 베송은 프랑스에서 대중과 평단의 사랑을 고루 받고 있는 스타작가다. 그의 문체는 간결하면서 밀도는 높고 단단하다. "간결한 단어, 요동치는 문장, 그리고 폭풍주의보." (베르지옹 페미나)라는 말에 깊이 공감하는 바이다. 필립 베송의 가장 낙관적인 이 작품은 실로 사람들이 가장 비극적일 수밖에 없을 거라 생각하는 상황 속에서 낙관을 얘기하며 독자들에게 놀라움을 안긴다. 소설 속 토머스가 무죄이면서 무죄가 아니듯이, 그에게 어떤 동정을 표하기란 조금 어렵다. 하지만 그 낙관, 중심을 벗어나 경계로 당당히 걸어가겠다는 그 의지에는 마음을 뺏긴다. 《포기의 순간》은 구원과 낙관이라는 것이 단지 환상이나 상상은 아니라고 얘기한다.

 

감옥에서는 눈이 오건 바람이 불건 얼얼한 추위가 살을 에건, 그 모든 요소로부터 보호를 받았다. 그곳에서는 한쪽만 문이고 나머지는 벽이다. 나는 바깥세상에, 이 바깥세상의 공격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시련에 맞서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한다는 걸 새로운 교훈처럼 깨닫는다. 그래, 먼저 이 추위에 맞서자. (50쪽)                               

 

오늘의 책을 리뷰한 '파수꾼'님은?

호밀밭을 뛰놀고픈 자유로운 영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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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글자》 - 난 내가 되겠어

 

 

너새니얼 호손 | 《주홍글자》 | 민음사 | 2007

 

1642년, 신앙의 자유를 찾아 영국을 떠난 메이플라워호가 매사추세츠에 첫발을 디딘 지도 20년이 흘렀다. 이상 국가를 향한 초기의 흥분은 가라앉고 경직화된 청교도 신정(神政)체제가 굳건히 자리 잡았다. 자유보다는 속박이, 포용보다는 편견이 보스턴 식민지사회를 짓누르던 시기였다.

 

새 식민지를 건설한 사람들은 처음에는 인간의 덕성과 행복에 찬 어떤 유토피아를 꿈꾸었는지 몰라도 으레 처녀지의 일부를 묘지로, 또 다른 일부를 감옥터로 떼어 두는 것이 실제적으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7쪽)

 

너새니얼 호손의 《주홍 글자》는 17세기 중반 미국 청교도 사회의 편협성과 부조리를 죄와 벌, 구원과 양심이라는 주제로 담아낸 역작이다. 지금에야 아이들도 아는 유명한 고전이지만, 1850년 출간 후 64년 호손 사망 전까지 판매량은 7,800부에 지나지 않았다. 청교도, 크게 기독교 교리를 폄훼하고 간음을 옹호했다는 이유로 오랜 기간 금서로 묶여있기도 했다. 그러나 작품은 D.H 로렌스, 허먼 멜빌 등 당대 문학가들로부터 최고의 찬사를 받았으며 많은 평론가로부터 《모비딕》(1851년 출간)과 더불어 19세기 최고 미국소설로 뽑혀왔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장문의 설명이 가능하나 공통되는 해석, 이른바 죄와 벌-죄의 본질과 교정의 의미-에 대한 질문, 페미니즘 소설의 효시, 상징주의 문학으로서의 가치를 살펴보며 글을 이어가고자 한다.

 

서평가이자 고전평론가 이현우는 《아주 사적인 독서》에서 “죄가 먼저 있었기 때문에 벌이 있는 게 아니라 벌이 있기 때문에 죄가 있습니다. (50쪽)”라며, 죄와 벌에 대한 작품의 함의를 멋지게 짚어냈다. 이는 소설 초반 감옥에서 나온 헤스더 프린이 종교적 지탄과 비난에 당당하고 초연할 수 있던 이유다. 세상의 시선에서 그녀는 외간 남자와 정을 통하고 아이까지 낳은 불륜녀였지만 본인 내부에선 욕망 앞에 솔직하고 양심 앞에 떳떳한 진취적 여성이었다. 자신을 책망하고 부끄러워하지 않기에 수인(囚人)은 되었어도 죄인은 되지 않았다. 주홍 글자는 치욕이 아닌 순교의 상징이 될 수 있었고, 교정의 장치가 교정의 대상으로 바뀔 수 있었다.

 

‘죄는 짓는 것이 아니라 지워지는 것’이라는 소설의 주제는 헤스더의 숨겨진 연인 딤스데일 목사의 고뇌를 통해 명확해진다. 그는 고결한 품성을 지닌 명망 높은 종교인이었지만, 그것이 멍에가 되어 과오를 숨기고 헤스더의 고난을 모른 척했다. 양심의 가책과 죄책감으로 영혼은 파괴되어 갔고 고백을 통해 마지막 구원을 얻었으나 결국 숨을 거두게 된다. 그는 수인이 되지 못했기에 죄인이 된 인물이었다. 가슴속 주홍 글자는 내어 보일 수 없고 떨쳐 낼 수 없었기에 더 큰 치욕이 되었다. 한편, 헤스더의 전남편이자 복수에 눈이 먼 로저 칠링워스는 심판자가 되려 했지만, 오히려 심판을 받게 되는 인물이다. 타인의 삶을 괴롭히는 것으로 자신의 삶을 벌충하려던 그는 깊은 파멸에 이르게 된다. 복수의 대상이자 삶의 의미였던 딤스데일이 소멸하자 자신의 인생 역시 소각되는 운명에 처한다.

 

19세기 중반, 전통적 성 관념이 굳건하고 순종적·수동적 여성상이 여전히 장려되는 시기, 헤스더 프린이라는 주체적 여성의 창조와 진취적 삶의 묘사는 여러모로 페미니즘의 기치를 보여준다. 그녀는 신정체제의 청교도이건 가부장적 사회질서이건 누구의 명령이나 권유로 움직이는 인물이 아니다. 스스로 각성하고 정화하는 의지를 지녔고, 꺾이지 않는 신념과 자기 철학을 가졌다. 죄의식으로 고뇌하는 딤스데일이나 복수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칠링워스의 나약하고 편협한 남성성과 대치된다. 건실하고 현실적인 여성이다. 말년에 그녀는 오두막으로 돌아와 여생을 보내며 동네 여인들의 상담사로 자신의 경험과 삶의 혜안을 전하는데, 이는 여성 연대에 대한 좋은 시사점이 된다. 또한 그녀의 분신이자 희망인 딸 펄은 틀에 박히지 않은 사고와 행동을 구가하며 미래의 여성상을 제시한다.

 

또한, 헤스터는 숨 막히는 종교적 계율과 사회적 규범이라는 인위성의 대척점에 서 있었다. 그녀는 육체적으로 아름답고 건강하며 정신적으로 자유롭고 유연했다. 그녀는 주홍 글자라는 형벌을 숲 속 오두막집에서 자연을 벗 삼아 홀로 사는 삶으로 대체했다. 관습과 편견에 구애받지 않고 인류애와 헌신으로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했다. 권위자와 통치자들 앞에서 당당했고 힘없고 가난한 이들과는 동화되었다. 끌려가지 않고 끌어내는 삶을 원한 헤스터의 적극성은 죄악의 징표인 ‘A'를 금실로 화려하게 수를 놓는 모습으로 상징화된다. 이는 주홍 글자의 의미 변화와 자연스레 연결되는데, 원래 간통(Adultery)을 의미하는 A는 능력 있는 여성(Able)을 거쳐 천사 같고(Angel), 경탄할만하며(Admirable), 사랑스러운(Amor), 예술적(Art) 여인으로 나아간다. (411쪽 해설 부분 참조)

 

모든 파도가 잦아든 후 노년의 헤스더는 옛집 오두막을 찾아 스스로 주홍 글자를 다시 가슴에 달았다. “세상 사람들의 조소와 멸시를 받는 낙인이 아니라, 함께 슬퍼하고 두렵지만 존경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그 어떤 상징”(311쪽)으로 주홍 글자를 완성해내기 위함이었다. 결국 헤스더의 비명(碑銘)은 검은 바탕에 주홍 글자 ‘A’로만 남게 되었다. A는 하나의 가치로만 규정할 수 없는 복잡하고 신비로우며 진취적인 여성성의 상징, 헤스더 그 자체가 될 것이었다.

 

죄와 벌에 대한 깊숙한 함의와 페미니즘·상징주의 문학으로서의 진지한 고찰 모두에서 책은 잊히지 않는 각인이 되어 독자들 가슴 속에 선명한 ‘주홍 글자’를 남긴다. 내면의 왕국에서 도덕률의 창조자는 나라는 것, 개인의 양심과 의지를 초월하는 시련은 없다는 것 등 《주홍 글자》가 주는 가르침은 16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는 다시 50년 전 고전으로 이어지는데,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 속 문구가 좋은 공명을 만들어낸다. 고전은 고전으로 이해된다는 점, 고전을 읽는 또 다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기 전에 나 자신과 같이 살아야만 해. 다수결 원칙에 따르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건 바로 한 인간의 양심이야. (200쪽, 《앵무새 죽이기》 중에서)


오늘의 책을 리뷰한 '준솔파파님은?

서양사학과 경영학을 전공했으나 진짜 공부는 이제부터라는 열혈 독서가 중년입니다. 금융회사에서 홍보와 연수업무를 담당하나, 사내 책 동아리와 도서관 운영에 더욱 열심입니다. 서평 블로그 ‘준솔파파의 북북긁기’(blog.naver.com/tyworld76)를 운영하며 오늘도 열심히 읽고 쓰고 있습니다. 언젠가 서평집을 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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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도날》 - 여보게, 젊음이여

 

서머싯 몸 | 《면도날》 | 민음사 | 2009   

 

‘구원’은 날카로운 면도칼을 넘어서는 것만큼 힘든 난제다. 인류가 가장 풍요로운 시기로 접어드는 20세기나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고대에나 마찬가지다. 1944년 서머싯 몸은 《면도날》을 출간했다. 이 시기 젊은이들은 전쟁과 공황이라는 사회적 소용돌이 속에서 사랑, 명예, 부, 내적 평화 등 다양한 삶의 가치를 추구했다. 그들이 선택한 가치는 곧 그들의 삶을 대변했다.

 

래리가 ‘정말’ 너를 사랑했을까? (…) 사랑이 열정이 아니라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다른 것을 사랑으로 착각하는 거야 (…) 너희 둘 사이엔 열정이 개입되지 않았어. (278-280쪽)

 

노년의 소설가 몸은 《면도날》에서 삶의 어떤 가치가 옳다, 그르다 평하지 않는다. 여러 인간상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갈 뿐이다. 사랑을 버리고 다이아몬드와 모피코트를 택한 이사벨, 삶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유랑하는 래리, 미국인이지만 유럽 상류사회를 갈망하는 앨리엇,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상대를 잃고 방황하는 소피. 몸은 소설에서 여럿의 이야기를 엮어 나가며 그들 각자 궁극적으로 원하는 바를 얻었다는 결론을 내린다. “물론 ‘자칭’ 지식인들은 거드름을 피우며 트집을 잡겠지만, 우리 같은 평범한 대중은 모두 성공담을 좋아한다. 그러니 나의 결말도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다고는 할 수 없다”고 끝을 맺은 이 소설의 함의는 제목만큼이나 날카롭다.

 

《면도날》은 삶과 구원이라는 문제에 해답을 얻으려 했던 사람들에게 다시 문제를 제기한다. “인식을 통해 본질인 실재에 도달할 수 있다”는 래리와 “자기 확신이 얼마나 강력한 열정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말하는 서머싯 몸.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광활한 세계에서 작가는 독자들에게 ‘구원’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구원으로 가는 길은 무엇인가. 어떻게 가는 것인가.

 

난 단지 자기 확신이 얼마나 강력한 열정이 될 수 있는지 알려주고 싶었을 뿐이야. 정욕도, 굶주림도 그 옆에서는 아주 하찮은 것이 되어 버리지. 자기 확신에 사로잡히면 그것으로 자신의 성격을 완전히 단정짓게 되고, 그로 인해 스스로를 파멸로 몰고 갈 수 있어. (…) (347쪽)


오늘의 책을 리뷰한 '송기'님은?

괜찮은 사람입니다. 좋은 원두를 찾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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