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4.11.28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 누가 내 사랑을
  2. 2014.11.14 《호텔 뒤락》- 노처녀 대신 골드미스라 불러다오
  3. 2014.10.20 《이케아세대 그들의 역습이 시작됐다》 - 그래! 나, 이케아다
  4. 2014.06.30  [접어놓은 구절들] 결혼, 여름, 휴가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 누가 내 사랑을

 

 

줄리언 반스 |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 다산책방 | 2014

 

제목이 왜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인지 영, 감을 못 잡았다. 책을 읽어보니 단박에 알겠다. ‘사랑은 죽음으로도 끝나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작가 줄리언 반스. 그가 아내를 잃고 처음 쓴 소설이라는 말에 이 책이 궁금했다. 나는 그의 예전 책에서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짐작할 수 없었다. 사랑에 냉소적이고, 아니 인간에 냉소적이던가, 아니면 통찰력이 넘치는 것인가? 책을 읽기 전에 곤혹스러울 수 있겠다고 지레짐작했었다. 과연 그가 아내의 죽음을 슬퍼할까? 아니면 평소의 그답게 냉소적으로 죽음을 고찰할까? 관계의 허망함에 대해 누구보다 날카롭게 말하는 그가 과연 사생활은 어땠을지 궁금하다. 그는 자신 앞에 떨어진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라는 명제 앞에 과연 얼마나 초연할 수 있을까?

 

내가 집중해서 본 이야기는 마지막 장 ‘깊이의 상실’이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오롯이 하고 있었다. 믿을 수 있었다. 문학이니 예술을 위한 소리가 아니라, 그는 그가 아는 것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음이 분명해 보였다.

 

그의 애도에는 군더더기가 없었다. 아내를 허망하게 보낸 뒤 자신이 느꼈던 심정 그대로였다. 그가 그려 왔던 글을 쓸 수 있게 되기까지 몇 년의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나에게도 역시 그런 경험이 있다. 나의 감정과 거리를 두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비통의 시간을 겪어야 했던가.

 

사별의 고통이란 건, 언제 그 고통에서 벗어나게 될지 기약할 수 없다. 내가 죽지 않고서는 이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겠다는 깨달음조차 별 위안이 되지 못한다. 어떤 것에서도 위로를 기대할 수 없다. 그가 어쩜 그리도 나와 비슷한 방식으로 사별의 고통에 대처하였던지 실소하고 말았다. 나는 당시 대부분 지인과 절연했다. 살다 보니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는  그렇게 유난을 떨게 된다. 비이성적인 것을 알면서도, 비이성적으로 굴어야 속이 시원했다.

 

그의 애도 방식 말고도 나는 다른 감흥에 잠기게 됐다. 이젠 내가 꽤 사별의 고통에서 멀어졌구나 싶었다. 책을 읽으면서 그때의 감정으로부터 졸업했다는 걸 알았다. 20년 넘게 끙끙 앓았으니 그럴 때도 됐다. 줄리언 반스는 이 책에서, 과연 사별의 고통에도 무뎌지는 날이 올까, 의문을 품는가 하면, 절대 그런 날이 오지 않을 거라고 단정하는 듯하다. 조심스럽지만 그런 날이 온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 날이 온다. 평온해지는 날이. 여전히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 이해되지도 않은 채 남아 있는데도 공허마저 너무 익숙해진다. 아무런 고통을 받지 않고도 한참을 살아남으면 죽음도 나를 더 이상 할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 세상엔 죽음보다 더 끔찍한 일이 많다는 것 역시. 사랑마저 객관적으로 보게 되는 날이 오는 것이다.

 

그렇다. 어떤 사랑은 죽음으로도 끝나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사랑은 죽음이 오기도 전에 끝난다. 가끔은 궁금해진다. 어떤 것이 나을까?

 

그나마 죽음으로도 끝나지 못한 사랑을 해봤다는 것 자체가 인간인 우리로서는 나은 것 아닐까? 아마 내가 줄리언 반스의 책을 냉정하게 볼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 없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럼에도 이렇게 짧은 인생을 살다가는 인간에게 사랑보다 더 귀한 축복은 없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이네사'님은?

아이들의 추억이 될 수 있다는 삶이 마냥 행복한 조카 바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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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뒤락》- 노처녀 대신 골드미스라 불러다오

 

 

애니타 브루크너 | 《호텔 뒤락》 | 문학동네 | 2011

 

근로장학생으로 근무했던 부서에 노총각 선생님이 있었다. 서른여섯이 되도록 장가를 못 갔는데, 다행히 5월 어느 날 맞선을 통해 운명의 여인을 만났다. 그는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빠르게 결혼 날짜를 잡았다. 며칠 후 나는 "선생님 행복하세요?"라는 질문을 던졌고 그는 웃으며 "그래 이제 살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선생님 그분 사랑하세요?"라는 질문에는 "그건 잘 모르겠다."라고 답했다.

 

사랑에 확신이 없는데 어째서 결혼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 일단 외롭지 않느냐. 친구 같은 사람과 함께 살면 나름 행복할 것 같아서 결혼하는 거지. 그런데 가장 큰 이유는 주변 시선 때문이야. 네가 내 나이까지 결혼 못 하면 내 마음을 이해하게 될 거야. 너도 서른여섯이 넘도록 결혼 못 하면 사람들이 어딘가 이상하게 볼 거야. 그리고 집에서는 얼마나 난리인지 아냐?" 당시에는 아직 어렸기에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애니타 브루크너의 《호텔 뒤락》을 읽고 난 뒤 그의 말을 조금은 이해하게 됐다.

 

《호텔 뒤락》의 주인공 '이디스'는 스스로 삶에 만족했다. 그녀는 경제적, 정신적 여유를 즐기며 살았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통과의례를 거치지 못했기에 '비정상' 취급을 받곤 했다. 그래도 그녀는 '일단 결혼하고 보자.'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을 꿈꿨기 때문이다. 그게 불가능하다면 혼자 힘으로 살아가리라 생각했다. 그런 그녀를 이상하게 여긴 주변 사람들은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더라도 일단 결혼할 것'을 강요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회적으로 성공한 한 남자가 그녀에게 갑작스레 청혼을 한다. 그녀는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주변 사람들의 강요에 못 이겨 청혼을 받아들인다.

 

시간이 흘러 결혼식 날이 됐다. 결혼에 대한 신념이 무너졌다는 마음에 그녀는 결혼식이 열리는 시간까지 내적 갈등을 겪는다. 그러나 기왕 이렇게 된 거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에 결국 결혼식장으로 향한다. 하지만 예식장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그녀는 결국 사고를 치고 만다. 예식장에 가지 않은 것이다. 그 사건으로 인해 졸지에 비웃음거리가 된 그녀는 도망치듯 '호텔 뒤락'으로 떠나게 된다. 그곳에서 결혼 이전과 이후의 사회적 위상이 달라진 여인들을 보며 '능력이 있으면서도 결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저평가'된 자신의 위치에 혼란을 느낀다.

 

《호텔 뒤락》을 읽을 때 한 가지 유념해야 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점이다. 인간 개개인은 사회 속에서 타인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이 사회에는 수많은 관습이 존재하는데, 이것을 어기면 '비정상' 취급을 받는다. 결혼도 사회의 관습 중 하나다. 혼자 힘으로도 꿋꿋이 살아가는 사람들과 독신 주의자들, 그들은 결혼하지 않았다는(또는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불합리한 취급을 받기도 하지 않던가. 이들이 정상인 대우를 받고자 한다면 무슨 수를 서서라도 결혼을 해야만 한다.

 

이디스는 사회적 관습을 거부하고자 했다. 그녀의 모습은 니체가 말한 '주인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 니체는 사회적 관습이 어떻든간에 스스로의 가치관에 따라 '고유한 나(주인)'로 살라고 말했다. 쉽게 말해 남들의 기준에 휘둘리지 말고 자기 기준대로 살라는 말이다. 그런데 고유한 나로 사는 건 말이 쉽지, 사실 어렵고 고독한 일이다. 주인의 삶을 살다보면 의도치 않게 소외 될 수도 있다.

 

고유한 나로 살기위해서는 부득이하게 사회의 관습과 부딧쳐야만 할 때가 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느니 차라리 혼자 살겠다.'라는 이디스의 생각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은 여자는 정상이고 그렇지 않은 여자는 비정상'이라는 사회적 관습과 부딪치는 것처럼 말이다. 사회적 동물이길 포기하지 않는 이상 '고유한 나'로 살기는 정말 어렵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타인과 불협화음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주인의 삶을 포기하고 사회적 동물의 삶을 택한다.

 

문제는 사회적 동물로 사는 것도 꽤나 피곤하다는 점이다. 타인들의 시선과 사회의 관습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혼'이라는 관습을 어긴 사람들 또는 못 지킨 사람들. 그들은 노총각, 노처녀라는 치욕적인 호칭으로 통틀어지곤 한다. 그들이 빛나는 인생을 살고 있다고 해도,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고 해도, 주인의 삶을 살고 있다고 해도 결국 타인의 눈에는 '불쌍한' 노총각, 노처녀로 정의 내려진다. 그들은 결혼하지 않았거나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철저하게 평가 절하된다. 솔직히 결혼 좀 못하면 어떻고, 안 하면 어떤가. 어째서 결혼 여부가 인간의 가치를 측정하는 기준이 되는 것일까? 결혼은 하나의 사회적 제도일 뿐이지, 한 인간의 가치를 재는 척도가 아닌데 말이다. 딱한 일이다.

 

이디스도 결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대로 평가 받지 못했다. 그녀는 사회의 관습과 정반대에 서 있는 자신의 신념 때문에 많은 고통을 받아야만 했다. 그렇더라도 끝까지 주인의 삶을 살고자 하는 이디스라면 이렇게 외치지 않을까? "노처녀 대신 골드미스라 불러다오!"

 

오늘의 책을 리뷰한 ' 꿈꾸는 독서가'님은?

책에 살짝 미쳐있는 20대 후반 보통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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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아세대 그들의 역습이 시작됐다》 - 그래! 나, 이케아다

 

 

전영수 | 《이케아세대 그들의 역습이 시작됐다》 | 중앙북스 | 2013

 

제목만 보자면 내용을 오해할 수 있겠다. 이케아라는 초대형 업체 이름이 들어가니 혹자는 가구산업과 관련한 책이라 여길 수 있다. 만약 작은 부제를 발견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결혼과 출산을 포기한 30대는 어떻게 한국을 바꾸는가.'라는 엄숙한 글귀 말이다.

 

먼저 이케아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연초부터 이케아 상륙 소식에 세간의 관심이 들끓었다. 올 12월에는 드디어 경기 광명에 그 첫 매장이 들어선다. 내 또래 동성 친구들과 잡담을 나누자면 이케아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대체 개장이 언제냐는 등 관심이 대단하다. 그렇기에 나 또한 이 책의 제목 중 그 단어가 제일 눈에 띄었다. 그런데 '세대'라니? '이케아 세대라는 것이 있었던가? '저자는 한국의 경제학자로, 그 옛날 N세대, X세대처럼 새로운 세대를 작명해냈다. 정의는 이렇다.

 

해외여행이나 어학연수, 유학을 경험해 해외 문화에 익숙하고 높은 안목을 지니고 있으나 가벼운 주머니 사정으로 세련됐지만 내구성 약한 스웨덴 가구브랜드 이케아로 절충해 2년마다 거처를 옮기며 살아가는 30대를 뜻한다. 고학력에 최상위 멋을 알지만 낮은 몸값으로 이른바 '머리로는 샤넬을 현실은 다이소를 소비하는 세대'다. 현재 자본주의 양극화의 충격을 고스란히 받고 있고(...) 치솟는 물가에 고용은 불안해 결혼, 양육, 내집마련 등 어느 것 하나 온전히 감당하기가 버겁다.

 

아뿔싸! 제법 들어맞는다. 경제학자가 아니기에 지표를 들이댈 순 없지만, 적어도 나와 같은 또래의 이들이 공감할 만한 '팩트'임은 분명하다. 단지 책 날개에 적힌 간략한 정보에 불과하건만 흥미는 잠시. 뒤이어 알게 모를 씁쓸함이 느껴졌다. 작가는 이케아 세대가 '역습'을 펼치고 있다고 말한 까닭을 '저출산' 문제를 들어 이야기한다. 어찌 보면 이들이 취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한 방이다.

 

청년 복수가 매섭고 놀라운 것은 그것이 선전포고 없이 진행된다는 점이다. 발악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이들은 입조차 닫아버렸다.

 

부제에서 밝혔듯, '3포 세대'라는 말이 곧 현실이다. 출산과 양육과 내집마련까지. 우리 세대는 육상선수가 경주하듯 인생의 커다란 허들을 힘겹게 뛰어넘고 있다. 기성세대는 말할 것이다. 나약한 척 하지 말라고. 충분히 안다. 누군들 이전 세대가 이 같은 과정을 겪지 않았겠느냐 만은 지금은 상황이 그때보다 더 복잡하고, 급변하지 않았나. 그 어떤 것도 확신하고 예측하는 게 불가능한 시대이다. 모든 것은 복합되고 융합되며 섞여 들어가 새로운 현상을 만들어 낸다.

 

78년 전후에 태어난 이들은 대학 졸업 후 신입 딱지를 떼고 이제 어느 정도 경력을 쌓았다. 조직에서는 적잖은 위치를 차지한다. 그렇기에 저자는 이제 이들이 한국의 사회, 경제의 허리를 담당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만큼 중요한 위치의 세대이건만 허약한 내실과 먼 미래를 계획할 수 없다는 점에서 문제라고, 내구성이 약하다고 강조한다. 그 회사 가구처럼.

 

일례로 장롱만 해도 보통 북유럽산이라면 '부르는 게 값'인 반면 이케아는 10만 원 전후의 가격으로 조립 제품을 살 수 있다. 우리의 관심사인 35세(전후) 대다수도 돈과 인연이 없다. 슬프게도 몸값이 저렴하다. (25쪽) 

 

첫 장부터 빈틈없이 조목조목 현 세대를 분석함이 엿보인다. 작가는 이러한 세대의 문제는 비단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할 수 없단 말을 덧붙이다. "지금 한국사회는 세대를 둘러싼 냉엄한 현실과 우리고 모르고 있던 세대 변화를 놓친다면 감당할 수 없는 충격에 빠지게 된다." 제도적인 제안도 녹여냈다. 

 

만약 어느 정도 공감하지 않았다면, 당장에 책을 던져버렸을 거다. 이내 프롤로그부터 읽어 내려간 까닭은 너무도 쉽게 '현실'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책장을 넘기기가 쉽진 않았다. 몇 번이고 읽고 끊기를 반복해야 했다. 줄곧 뭇매를 맞는 느낌이 들어서다. 알고는 있지만 불편한 얘기라서 더욱 그랬다. 하지만 나조차 모를 '정체성'에 대해 알아야겠다 싶어 읽기를 계속했다. 내가 느끼는 이 버거움이, '나만 그런 건 아니지?' '정상인 거지?' 되물으며 책을 통해 자기 위안하고 싶었던 거다.

 

누가 더 불행한지 줄 세울 필요는 없다. 모두 다 힘들고 어렵다. 저성장, 고령화는 모든 연령대에서 기쁨과 희망을 앗아가는 현상이다. 빈부격차로 통칭되는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재산과 권력, 명예의 힘은 더 공고해진다. 이 기득권 세력에 숟가락 하나 얹어놓지 못한 이들이라면 단언컨대 당면한 호구지책조차 해결하기 힘들 만큼 삶은 움츠러들고 힘들어졌다. (35쪽)

 

책에서 언급했듯, '졸업 → 취업  → 결혼  → 출산'의 행복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은 더는 제대로 작동되지 않음을 안다. 이케아 세대가 윗세대와 이어달리기를 거부한 최초의 세대라 말하고, 시스템에서 이탈하기 시작한 최초의 시대라 명명한 부분이 마음에 든다. 자신들이 지향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한 탓이다.

 

한 세대에 대해 깊숙이 탐구하고 관심 가진 저자에게 심심한 감사를 표한다. 그리고 한 마디 더해 보자면, 이케아 세대의 특성을 한 가지 빼놓았더라. 이들의 가장 큰 경쟁력은 'flexible'함이 아닐까 감히 생각한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시대로의 빠른 변화를 직격으로 맞은 터. 그 어떤 세대보다 유연함을 지녔으며 유동적으로 대처하는 힘이 있다. 이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이러한 힘이 결국 그들만의 자구책을 마련하게 하며 그들의 삶을 탄탄히 지탱해 줄 것이라 책을 읽으며 다시 한 번 자각하고 위안한다.

 

훨씬 거대하고 강력한 복수는 《탈무드》에 나오는 말처럼 "지금 이 순간 잘사는 것"이다. 이들은 사회의 요구와 생물학적 본능, 국가의 경제성장에 맞춘 제도적 라이프스타일 대신 철저히 자신들의 상황과 눈높이에 맞춘 생존법을 찾아냈다.

 

 

Editor_김민경

mins@bn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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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접어놓은 구절들] 결혼, 여름, 휴가

 

카뮈의 산문 「결혼」에서는 바다 냄새가 난다. 소금맛이 섞인 압생트의 독한 술 기운까지 짙게 풍기니 뜨거운 젊음이 따로 없다. 나는 카뮈의 『결혼, 여름』 곁에 오오타키 에이치(大瀧詠一)의 음반 『A LONG VACATION』을 두었다. 결혼, 여름, 그리고 '휴가'라고 길게 말하면서 이미 충분한 만족을 넘치게 하고 싶었다. 카뮈는 부드러움과 영광이 노란 빛과 푸른 빛 속에서 서로 만나는 곳에 있다. 그곳에서 "아무런 가면도 쓰지 않"고 있다. 오오타키 에이치는 바닷물에 녹아버린 종이처럼 "나는 내가 누구인지도 잊어"버렸다.(' カナリア諸島にて ' 중에서) 어떻게 됐든 둘 다 바다를 바라보다가 흠뻑 취했다.

 

열기가 이글거리는 요즘, 술과 길고 긴 휴가 생각만 간절하다.

그게 바닷가에서 마시는 압생트라면, 거기가 지중해라면 어디든 걷고 싶다. 

계속 헛디뎌도 좋겠다.

 

"이 태양, 이 바다,젊음이 용솟음치는 이 가슴, 소금맛이 나는 나의 몸, 그리고 부드러움과 영광이 노란 빛과 푸른 빛 속에서 서로 만나는 장대한 무대장치가 바로 그것이다. (...) 여기서는 그 무엇도 내 본연의 모습을 그르치지 않는다. 나는 나 자신의 그 어느 부분도 버리지 않는다. 나는 아무런 가면도 쓰지 않는다." (「결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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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컨텐츠팀 에디터 정혜원 (hyewonjung@bn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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